27. 초상화를 찾다
터엉!
남하림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휘연과 당무독, 성철각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세 사람만이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유도, 넌 여기서 뭐 해?”
“다들 각자 방으로 가서…… 제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래? 안 돌아간다고 하든?”
“부장이 허락을 하기 전까지는 안 간다고 하던걸요.”
스윽.
남하림이 백리희와 시선을 마주쳤다.
“안 돌아가시면 여기서 주무셔야 할 텐데요?”
“네. 대협께서 허락할 때까지 이곳에 있겠어요. 그렇게 아시면 됩니다.”
“음…… 고집과 신념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걸 알죠?”
“…….”
“그럼 그렇게 하세요. 난 피곤해서 잠이나 자야겠어요. 할 말이 있으면 내일 하죠.”
남하림은 할 말을 한 뒤 이 층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백리희는 무작정 피곤하다고 올라가 버리는 남하림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도 한 번 마음 정하면 중간에 바꾸지 않는 고집스러운 성격이었다.
팽유도는 남아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때 위층에서 남하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도야, 여기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하시니, 어쨌든 손님 대접은 해야겠지. 백리세가의 부가주께는 일 층 손님방을 내줘라. 화를 잘 내는 아저씨는 밖에서 재우고 싶지만 공휴실 한편에 이부자리 펴면 되겠지.”
“아, 알겠습니다!”
‘하림 형이 바로 내쫓지 않는 것을 보니 다른 뜻이 있는 모양이군.’
팽유도는 큰 소리로 대답을 하면서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 * *
스륵.
백리희는 손님방 문을 열고 방 안을 보았다.
‘흐음.’
문을 열자 좋은 향내가 풍겨왔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방이었다.
스윽-
백리희는 정갈한 침상의 자리를 만져보았다.
‘이것도…… 이 인간, 대체 정체가 뭐야?’
털썩.
침상에 그대로 누웠다.
온몸을 감싸는 부드러움이 마치 구름 위에 누우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내 이불보다 좋잖아.”
백리희는 가만히 누운 채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혼자 남게 되자 머릿속에 그녀가 개봉까지 와야 했던 원흉이 생각났다.
‘……망할 놈.’
백리희는 한 사내의 얼굴을 떠올리고 인상을 구겼다.
순간, 기억하고 싶지 않는 것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뚝뚝.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다음 날.
번쩍.
백리희가 눈을 떴다.
‘헉.’
순간 자신이 어디에서 잠이 들었는지 떠올린 백리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타지에서 이렇게 푹 잠든 적은 없었는데.’
침상이 이렇게 폭신할 수가 없었다.
백리희는 침상에서 일어나 멍하니 앞을 보았다.
‘이 향은…….’
그러다 방문 틈 사이에서 들어오는 차 향을 맡았다.
스윽.
침상에서 일어나 매무새를 만진 백리희는 심호흡을 하며 문을 열고 나왔다.
다섯 명의 사내들이 한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인귀항도 자리에 함께했다.
벌떡.
인귀항이 다급히 일어났다.
“부가주님. 기침하셨습니까?”
“네. 앉으세요.”
그녀도 자연스럽게 탁자 앞으로 다가온 뒤 앉았다.
팽유도가 얼른 찻잔을 하나 더 가지고 왔다.
“부가주님, 앉으세요. 따뜻하게 한 잔 드시고요.”
“고마워요.”
백리희는 차를 받으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보이지 않는 인물은 남하림밖에 없었다.
“부장은 목욕 중입니다.”
“……아.”
순간 ‘거지가?’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아…… 깨끗한 분이시군요.”
“하하, 특이하긴 하죠.”
“많이…….”
백리희가 작게 중얼거렸다.
덜컹.
계단 옆에 있던 문이 열렸다.
탈탈탈.
머리를 말리며 밖으로 나오는 사내.
그녀는 남하림의 얼굴을 자세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역시 무림에서 만난 다른 후기지수들과 비교해도 잘생겼어.’
어제도 느꼈지만 거지라고 하기에는 피부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소?”
“아뇨.”
털썩.
남하림은 재빠르게 대답하는 백리희를 마주 보며 앉았다.
“불편한 건 없으셨습니까?”
“편히 잤어요.”
“잘 잤다니 다행이군요.”
팽유도가 얼른 남하림 앞으로 차를 따랐다.
“부장, 한 잔 드세요.”
“고마워.”
남하림이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아침이 되면 항상 마시는 청량한 느낌의 안계(安溪) 철관음.
곧 입안의 텁텁함이 사라졌다.
“아침에 한 잔 마시니 개운하군.”
타악.
그러고는 잔을 턱 내려놓은 뒤 백리희를 보았다.
“어떻게, 계속 여기에 있을 건가요?”
“네. 허락해 주실 때까지 있을 겁니다.”
“뭐, 있는 것은 자유지만. 매일 식사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남하림의 말을 듣자 잊고 있던 허기가 조금씩 밀려왔다.
“본 방의 식사는 입에 맞지 않으실 텐데요?”
“괜찮아요. 못 먹을 건 없죠.”
“아, 그런가요? 드실 수 있다고 하니 그럼 우린 신경을 안 써도 되겠군.”
“…….”
“아 참! 그리고 본 방은 정확히 하루에 한 끼만 식사를 하는데. 이것도 알고 계셨겠지요?”
“……?”
“우리가 따로 챙겨 드릴 수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뜻입니다. 밖에서 가지고 오든, 말든.”
평소였다면 굳이 남하림이 언급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챙겨놨을 것이었다.
하지만 백리희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지, 하림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싫다면 괜한 고생 하지 말고 바로 돌아가시면 되고요.”
“그건…….”
백리희는 망설였다.
만약 남하림이 계속 허락을 하지 않는다면?
우긴다면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만 여기서 평생 머물 수는 없었다.
원래 계획은 초상화 속 인물을 개방에서 찾는 동안 미리 방을 구해놓은 객잔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남하림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백리희를 보았다.
“아 참, 한 가지 물어볼 게 더 있는데.”
“무…… 엇인가요?”
“어제부터 묻고 싶었는데, 본 방에 부탁을 하러 오면서 설마 맨손으로 온 것은 아니겠죠?”
“그게 무슨 말인가요?”
“허어? 정말 공짜로 넘어갈 심산이었어. 부가주께선 약간 도둑놈 심보가 있으시군요.”
‘저놈이 계속 말을 함부로……!’
인귀항은 순간 울컥했지만 이내 백리희와 시선이 마주치자 겨우 꿀꺽 참아냈다.
“남 대협, 협과 의를 중시하는 대개방에서 언제부터 대가를 바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협과 의를 중시한다고 해서 무작정 부탁을 들어줄 만큼 대개방은 한가하지 않아요. 부탁을 하는 처지에는, 통상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왜 본 가에서 공짜로 부탁을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어제 들어보니 그런 말은 없는 것 같아서요. 그럼 준비한 게 따로 있나요?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까?”
“굳이 남 대협께 이야기를 해야 하나요?”
“그야 내가 움직이니까.”
백리희와 남하림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난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예를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하기 싫은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거 아닐까?’
백리희는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본 방이 동네 잡일을 하는 삼류 흥신소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무엇을 원하시는 건가요?”
“흐음, 사회생활을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냥 까놓고 쉽게 풀어서 말씀드리죠.”
백리희의 이마에 결국 주름이 잡혔다.
백리세가의 부가주까지 오른 자신을 사회 초심자로 보다니.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
“기분 나쁘시겠지만 잘 들어보세요. 부탁을 하는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말 중 절대로 믿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럼 그게 무엇이냐?”
뭔가 알 수 없이 당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남하림이 하는 말이니 또 안 들을 수도 없었다.
“‘괜찮아요’, ‘우린 원하는 게 없어요’.”
“…….”
“구 할 정도는 그냥 하는 말들이에요. 누가 하지 않아도 될 걸, 굳이 많은 인원과 시간을 허비하면서까지 남 일을 도와주려 할까요? 아…… 물론 우리 방주님은 마음이 너그러운 분이시죠. 그러니 처음부터 충분히 도움을 주고자 하신 거고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렇습니다.”
하긴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개방에서 백리세가에 도움을 청했을 때 대가를 받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표정을 보니 어느 정도 이해는 하신 것 같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스스로 먼저 충분한 대가를 제시한다면, 얼마나 진심으로 도움을 얻고 싶어 하는지 상대가 이해하기 쉽겠죠.”
“알겠어요. 남 대협의 말씀을 이해했어요.”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곰곰이 생각했다.
“좋아요. 낙양에 개방의 총타가 들어올 수 있도록 힘쓰겠어요.”
“부가주님, 그 문제는 장로회의에서 허락을 해야 할…… 문제입니다.”
인귀항이 화들짝 놀라며 난색을 표했다.
백리희 혼자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괜찮아요. 다른 문파도 아니고 개방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이 정도는 부가주의 권한으로 가능해요.”
“부가주님…….”
그녀가 결심을 했다면 말릴 수 없었다.
총타와 분타의 의미는 달랐다.
지역에 영향력을 크게 줄 수 없는 분타는 중원 어디든지 세울 수 있지만, 한 지역을 통으로 책임지는 총타의 경우 기존 세력이 있다면 그들의 허락 없이 맘대로 세울 수 없었다.
하남성의 낙양은 개방에서 오랫동안 총타를 세우길 원했던 장소였다.
“이 정도면 백리세가에서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성의를 보이지 않았나요? 원래 우리가 주려던 성의보다 훨씬 넘어선 것이에요.”
백리희는 살짝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남하림을 넌지시 보았다.
“흠, 꽤 인심을 쓴 것 같네요. 좋아요. 백리세가에서 간절히 주고 싶다고 하니 받아야겠죠.”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요? 빼앗아가듯 했으면서.”
“그럼 도로 가지고 가시든지.”
백리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진짜 이 인간은…… 사람을 살살 긁는 데 특별한 재주가 있네.’
인귀항은 안절부절못했다.
‘부가주님께서 이렇게 말리시다니.’
백리희를 모시는 동안 그녀가 당황하며 끌려가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반면 특외부의 네 명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이미 구공은 천하무적의 경지에 오른 것 같아.’
‘그러게. 이제 반 시진만 대화해도 속에서 열불이 날 거야.’
“아, 잠시…….”
그때, 남하림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필기도구를 찾아 들고 왔다.
차악.
탁자 위에 종이가 길게 펼쳐졌다.
“이게 뭔가요?”
“방금 한 말 있잖아요. 낙양에 총타를 세우게 해주겠다는 말. 적으세요.”
“이렇게까지요?”
“물론 부가주님을 믿죠. 근데 앞날은 모르는 일이니까. 사람 일이라는 게 한 치 앞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거 아니겠어요?”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그가 갑이었다.
남하림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남 대협도 한 장 적어주세요.”
“뭘요?”
“개방에서 책임지고 초상화 속 인물을 잡아줬으면 해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아니라는 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우린 비밀리에 초상화 속 인물만 찾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면 잡는 건 백리세가의 몫이죠.”
“……알겠어요. 찾아주는 것으로만 하죠.”
“좋소이다. 서로 인장 찍죠.”
남하림과 백리희는 마주 보고 종이 위에 글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콰아아앙!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떨어졌다.
‘허어…… 대체…… 이놈.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모르겠어.’
장두철은 두 손으로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찌리리릿!
짧은 순간이지만 두 팔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만일 상대가 공격을 멈추지 않고 바로 이어서 초식을 펼쳤다면 완전히 당했을 것이었다.
“크하하하! 이놈,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냐?”
하지만 장두철은 오히려 상대를 도발하는 듯 소리쳤다.
“사부, 그만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연세에 무리하시면 많이 다쳐요.”
“이놈이……! 이 사부가 바로 항걸이야, 항걸! 네놈이 나를 이기려면 아직 몇 년 더 멀었어! 자, 얼렁 한 번 더 펼쳐봐라.”
“이것도 진짜 살살 펼친 건데…… 육 성 공력으로 펼치면 사부 진짜 기절하실 수도 있어요.”
‘뭐어? 방금 공격이 오 성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방금 남하림의 강룡십팔장의 진룡귀매 초식은 예전 자신의 구 성에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상무우 이 자식은 요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천강신인 상무우에게 외공만 단련한 것이 아니라, 분명 자신이 모르는 다른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런, 설마……!’
갑자기 드는 생각.
오래전 어렴풋이 상무우가 했던 말이 있었다.
“나는 사람의 모든 신체 내부와 외부가 일체가 되는, 진정한 금강의 몸을 만들 것이네.”
그때는 말도 안 된다며 흘려들었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남하림을 보니 그가 말한 게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참, 네놈 백리세가에서 중요한 것을 받았다며? 영충도 좋아하더군.”
“그 정도야 애들 장난이죠. 똑똑한 척하는 애들이 더 멍청한 법이니까요.”
“크크크, 네 말이 맞다. 그럼 다시 들어와 봐라! 이번에는 이 사부가 제대로 막아주마.”
“그러죠.”
쿠우우우루루루-
번쩍!
또 한 번 천둥 소리와 함께 뇌전이 터졌다.
강렬한 빛이 쏟아지면서 강한 기가 장두철을 덮쳤다.
‘허어어억! 막으려면 극성으로 펼쳐야 한다!’
장두철이 남하림의 강룡파세(降龍破世) 초식을 향해 염천멸사(炎天滅死)를 극성으로 펼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두 마리의 강룡이 서로 부딪혔다.
‘커어억, 나쁜…… 놈……!’
장두철은 그대로 몸이 떠올라 뒤로 날아가면서 정신을 잃었다.
* * *
‘후후후.’
오종은 계약서가 무척 만족스러웠다.
무려 낙양에 총타를 세우는 걸 허락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추개 영충마저도 그 사실에 만족했는지 얼굴에 웃음이 환했다.
“허허허, 부가주께서 너무 큰 선물을 준 듯하구려.”
“아닙니다. 남 대협께 깨우침을 받았어요. 하마터면 큰 실례를 할 뻔했습니다.”
“허허허, 큰 실례라니. 아니외다. 본 방에서 최선을 다해 그자가 어디에 있는지 찾도록 하겠소이다.”
“네. 감사드립니다.”
“하림은 부가주께서 쉬는 곳까지 편히 모시도록 해라.”
백리희가 방주전 밖으로 나왔다.
남하림도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덜컹.
인귀당은 걸화당 앞에서 대기하던 마차의 문을 열었다. 바로 올라타야 했지만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부가주님, 타시지요.”
“아니에요. 걸어서 가죠.”
“객잔까지 거리가 있습니다. 걷기에 힘들지 않겠습니까?”
“일반인도 아니고 나도 무공을 익힌 사람인데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걸어서 가겠어요.”
하지만 백리희는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멈춰 섰다.
“잠깐만.”
“무슨 일이시죠?”
“마차 안 타실 거면, 내가 타면 안 됩니까?”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안 돼요. 마차는 손대지 마세요.”
“에잉…… 알았어요. 부가주께서 안 타고 가신다고 하니 아까워서 한 말입니다.”
“내가 마차를 타고 가든 말든 남 대협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셨음 좋겠네요.”
“그렇게 합죠.”
스윽.
남하림은 그녀를 스쳐 지나가면서 앞으로 나섰다.
“이봐요. 어디 가는 거예요?”
“객잔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딘지 아세요?”
“당연히 잘 알죠. 개봉에서 오 년이나 박혀 있었는데. 따라 오기나 하세요.”
백리희는 앞서 걷는 남하림의 뒤로 바짝 붙어서기 위해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
휘리릭.
백리희는 신법을 펼쳤다.
하지만 여전히 뒤를 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개방의 무공에 대해서 높게 생각하지 않았고, 백리세가의 무공에 대해 큰 자부심이 있었다.
개방의 후기지수 걸협오성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 생각했다.
‘대체 뭐야, 저 사람.’
그사이에도 점점 거리가 벌어지며, 남하림의 모습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 * *
중원은 조용했다.
하지만 오직 한 곳. 개방은 눈은 쉬지 않고 중원을 주시했다.
‘찾았다. 저자다.’
시장 한편 구석에 앉아 있던 거지의 눈빛이 변했다.
스윽-
바닥에 깔려 있는 거죽더미를 살짝 들어 보았다.
한 장의 초상화가 나타났다.
툭.
그가 옆에 나란히 앉은 동료 거지를 건드렸다.
“연락하게. 난 뒤를 따르겠네.”
“알겠네.”
파드드득-
걸비천하 창가에 전서구가 내려앉았다.
전서걸비 해작은 푸른색의 줄로 묶여 있는 전서통을 풀었다.
늘 하던 것처럼 엄지손가락 마디 정도의 뚜껑을 열며 손바닥에 통을 툭툭 쳤다.
쏙.
전서통에서 둥글게 만 전서가 빠져나왔다.
멈칫.
전서의 내용을 한 번 더 읽었다.
“찾았다.”
해작은 전서를 들고 곧장 삼장로 몽공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