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문엽 (5)
호광성에 평지풍파가 일고 있을 때.
곤륜산은 치열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미의 장문인인 정혜 신니가 찾아왔던 날이나, 강호십대고수인 위문엽을 제자로 들여도 변화가 없을 정도였다.
그저 향상심을 불태우는 열정.
매일매일 수련에 매진하는 도사들만이 가득했다.
“어떻게 세 단전을 엮는다는 거지?”
“태청신공을 유형화시킨다는 건 대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막힐 때면 언제나 백무량에게 가서 물었다.
지금이 아니면 물을 수가 없을 테니까.
어쩌다가 가끔 모두가 잠자리에 든 밤에 백무량의 처소를 찾아가는 제자도 있었다.
“사조님…… 깨어 계십니까?”
“안 잔다.”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서요.”
“들어와라.”
자다가 깨었음에도 백무량의 목소리엔 불쾌함 한 점 없었다.
이에 유성한이 문을 열고는 조심스럽게 예를 표했다.
평소 천방지축처럼 굴던 모습과는 크게 달라져, 제법 도사처럼 보였다.
“사조님께서 세 단전을 엮는 ‘천주’의 구결을 알려 주셨는데, 어떻게 합일하고 조화를 이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무론과는 수준이 다른 이야기니까.”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
각자 쓰임이 있어 나뉘었을진대 어찌 한 번에 엮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 사이에 있는 대맥까지 어찌 조화롭게 한단 말인가?
불가능하다는 상식이 팽배한 강호에 오직 유성백만이 답을 내놓았다.
“나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 봐라.”
“예, 사조님.”
유성한이 등을 보이고 앉으니 백무량도 숨을 숙하게 골랐다.
태청신공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자다.
너무 깊고 무거운 기운으로 건드렸다가는 제자가 쌓은 공력을 흡수할지도 모른다.
백무량은 신중히 기운을 골랐다. 태청신단을 비롯해 귀한 영단을 먹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기예였다.
스르륵…….
유성한의 명문혈과 지실혈을 통해 공력이 침입했다.
“으음…….”
위화감을 느낀 유성한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우물거렸다.
백무량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경고했다.
“입 벌리는 일 없이 집중해라.”
“…….”
유성한이 침묵으로 대답했다.
엄하긴 하지만 필요한 경고였다.
‘아무리 성한이가 몸을 타고났다고 한들, 아직은 나보다 한참 여리다.’
입을 헤벌리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태청신공을 운용하면 어떻게 될까?
최소한 주화입마다.
자신의 공력을 흡수하곤, 머지않아 자기 몸 안에서 밀어 내기 위해 몸부림칠 터였다.
백무량은 분심조화결을 이용해 유성한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가 공력을 움직일 테니, 너는 틀림없이 기억해라.]
“…….”
[아파도 참아야 한다.]
“……?!”
깜짝 놀란 것인지 유성한의 눈썹이 위로 들렸다.
그러나 백무량에겐 보이지 않았다.
콰르르르!
공력을 세차게 위로 움직였다.
단단하기로 따지자면 강호일절이라 불릴 만한 유성한이지만, 이렇게까지 거칠게 움직여서야 벽에 긁힐 수밖에 없었다.
유성한의 어깨가 오한으로 떨렸다.
“……윽.”
뒤이어 꽉 다문 잇새로 신음이 나왔다.
여기가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더 참아야 한다.]
역혈(逆血) 혹은 역천(逆天).
어느 쪽이든 좋았다.
백무량의 공력은 일반적인 운용 방향에서 역으로,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속도로 대맥을 질주했다.
주르륵.
유성한이 고통을 참다가 살을 씹었는지 핏물이 줄줄 새었다.
그 냄새를 맡은 백무량은 전음으로 간략하게 설명했다.
[나야 검해에서 의념으로 삼단전을 조율할 수 있었지만, 너 같은 경우에는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니…… 천무검성이 익혔던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구나.]
당연하지만 유성한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이 고통이 빨리 끝나거나 고함이라도 속 시원하게 질렀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다만 백무량이 운용하는 행로만은 머릿속에 똑똑히 담았다.
[어찌 보면 무식하지만, 네 가문의 선대인 천무검성처럼 튼튼한 몸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
덜덜덜.
거듭된 고통과 오한이 유성한의 어깨를 파르르 떨리게 했다.
하지만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지는 않았다.
타고난 체력과 신체가 가까스로 버티는 것일 텐데.
[이렇게 되면 한 번에 진행해도 되겠는데?]
“……!!”
백무량의 전음에 유성한이 눈을 부릅떴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등에 맞닿은 손바닥엔 강한 인력(引力)이 담겨 있었다.
발가락 하나 꿈틀거릴 수 없을 정도로.
[끝까지 인내하고 외울 수 있다면, 종휘를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그 정도면 마교도와 싸워도 되겠지.]
“…….”
고통으로 신음하던 소리가 멈췄다.
시련에서 벗어나려고 아등바등하던 눈빛도 천으로 닦아 낸 것처럼 명정해졌다.
그 기색은 백무량도 알 수 있을 만큼 극적이었다.
[좋다, 네 각오가 너무 갸륵하구나.]
공력이 다시 세차게 가속하기 시작하고.
세 시진이 지나고 나서야 백무량은 등에서 손을 떼었다.
“……후우.”
호흡을 고르는 것만으로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자신과 다르게 유성한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 위태했다.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겨우 열다섯 살인 소년이 보일 수 있는 기개가 아니었다.
‘이런 면에선 정말 유 선배를 닮았구나.’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에는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던 무인.
천무검성 유성백이 앞서 걸었던 길을 유성한이 뒤따라가는 것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것도 그보다 수십 배는 빠르게 말이다.
***
“뭐가 저렇게 세졌지?”
유성한이 하룻밤 사이에 달라졌다.
공력을 운용하는 속도부터 시작해서 몸을 움직이는 몸놀림까지 고수에 가까웠다.
무공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성한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영약이라도 우리 몰래 먹은 거냐?”
평소 함께 어울리던 또래가 물었으나 유성한은 그저 피식 웃고 말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주 큰 고통 뒤에 얻을 수 있었지.”
“뭘 얻었는데?”
“사조님의 가르침?”
“……우와!”
친구가 감탄하는 모습에 유성한이 헤헤 웃었다.
각오와 기개가 남다르다곤 하나 아직은 소년.
입이 무거울 나이가 아니었다.
이를 뒤늦게 들은 현종휘가 턱을 매만졌다.
“나한테는 그대로 정진하면 된다더니…….”
솔직히 조금은 서운했다.
백무량이 바쁘고 고된 운명을 지고 있다는 건 알지만, 자신과 예전부터 알고 지내지 않았나?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유성한이 하룻밤 만에 발전한 만큼 구천화우검을 배우고 싶었다.
백련교주를 쓰러뜨렸다던 호천풍연의 파생초, 천간투.
‘그걸 배운다면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까?’
현종휘가 기대를 품고서 묻자, 백무량이 고개를 내저었다.
“가르쳐 줄 수 없어.”
“왜, 왜요?”
“천간투를 비롯해서 비류폭이나 광풍첩은 내가 독자적으로 만든 초식이야. 그걸 너한테 억지로 끼워 맞출 수도 없고, 오히려 그게 발전을 가로막는 게 되어 버려.”
“…….”
“섭섭하냐?”
“아뇨!”
자기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대답하니 백무량이 피식 웃었다.
“섭섭하겠지. 옆에 있는 성한이가 갑자기 저렇게 강해졌는데, 나한테는 뭐 안 가르쳐 주나 하고 말이야.”
“……예, 솔직히 그랬어요.”
“종휘야.”
백무량은 곤륜산을 중심으로 크게 휘도는 구름을 보았다.
“이건 말이다. 내 사부셨던 태청선 주자령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
“저 구름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아주 천천히 움직인단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면 산짐승이 살 수가 없고, 초목을 썩게 할 것이야.”
이런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백무량은 아주 예전에 주자령이 자신에게 베풀었던 가르침을 그대로 현종휘에게 공유했다.
“정종의 무공 또한 그래. 천 근의 무게가 담긴 검은 허투루 휘둘러서도 안 되고, 무작정 빨리 펼쳐서도 안 된다. 조금씩 가다듬고…… 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야.”
“…….”
“하하, 얼굴을 보니 이해한 것처럼 보이진 않네.”
백무량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사실 나도 그 말을 듣고 이해가 안 갔어. 사문의 가르침은 너무 답답하다고 강호로 뛰쳐나갔거든.”
그 말에 현종휘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사조님이요?”
“그랬다니까. 사부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나갔어. 아주 몹쓸 놈이었지.”
“지금도…… 아, 농담이에요, 하하.”
“방금 맞을 뻔한 거 알지?”
백무량은 현종휘와 담소를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옛이야기, 무학, 곤륜파, 마교, 고대의 마물.
현종휘는 백무량의 이야기를 설화처럼 받아들였다.
강호 경험이 적은 그로서는 너무나도 거대한 이야기였다.
“그럼 대체 그놈들은 언제부터 암약한 거예요?”
“나도 잘 모르지. 하지만 이번에 막지 못하면 아마 완전히 부활할 거야.”
“마물이요? 사조님이라면 이길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
백무량은 순간 얼버무렸다.
확실하게 이긴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모든 도문과 불가가 뭉쳐서 싸웠지만, 몰아내는 게 전부였던 놈을…… 내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구나.]
심천검의 목소리가 평소처럼 밝지만은 않았다.
[나도 마주하지 못한 놈이다. 이럴 때 망검이 있었다면 속 시원하게 말했을 텐데, 허허. 그 미친 노인네가 생각날 때가 오는구나.]
[…….]
마물의 무서움을 아는 백무량과 망령들은 침묵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현종휘는 웃기만 했다.
그 간극을 본 백무량이 속으로 다짐했다.
‘저 웃음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전히 확신은 없었다.
다만 이정표는 세웠다.
적어도 밀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마물을 몰아세울 것이다.
일찍이 옛 선배들이 후인을 위해서 몰아냈듯이.
백무량은 현종휘에게 억지로 웃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간만에 구천화우검이나 봐줄까?”
“좋죠!”
현종휘가 희희낙락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은 자기만의 초식을 만들 수 없었지만, 반평생 동경해 왔던 백무량처럼 강해질 생각이었다.
두 도사는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
피로 물든 제단.
정확하게는 여러 사어가 피로 적힌 제단이었다.
현시대에서 이렇게까지 제단을 구축할 수 있는 마인은 오직 하나.
“이 정도면 제단의 준비는 끝났다.”
천마신교의 후예, 청노가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 냈다.
“산 제물이 하나 더 필요해.”
“그런가?”
칠성교주는 제단 옆에 매달린 네 명을 무감정하게 훑었다.
강호십대고수라고 불리는 상승 고수들.
그들 중 넷이 목숨을 겨우 유지한 채 매달려 있었다.
“열흘이면 충분하겠군.”
“그래도 길을 충분히 열려면 시간은 더 걸릴 거다.”
“아무렴 상관없어. 지금까지 기다려 온 천몇백 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니까.”
그 말에 네 명 모두 몸을 흠칫 떨었다.
칠성교주가 얼마나 강한 줄 알기에, 무엇보다…… 제단을 짓고 나서 벌어질 일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차라리 자진하였다면…….’
‘원망스럽구나!’
‘이런 식으로 죽는다면 선대 장문인을 무슨 낯으로 뵌단 말인가!’
각자 망념을 떠올리자 제단에 기기묘묘한 빛이 떠올랐다.
그렇게 사교의 대계는 조금씩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