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3)
“동병상련?”
무명이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느냐?”
“나도 아픔을 겪었으니까.”
담담하게 대답한 송현은 오른팔 소매를 걷어붙였다.
어깨 내부에서 검지까지 이르는 수양명대장경.
오른팔 경맥에 마종(魔種)의 흔적이 눌어붙어 있다.
“백련교의 좌호법에게 당한 것이다. 근래 북녘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마교지.”
“칠성교가 아니라 백련교……?”
“마교가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
“…….”
무명이 잠시 침묵에 잠긴 동안, 송현은 소고(小考)를 중얼거렸다.
“비록 사문에서 자리를 내려놓은 몸이라지만, 천하가 혼란해질 것을 알면서도 은거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야.”
자조하듯 끌끌 웃고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놈처럼 귀신이 될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위로 고개를 들이밀고 있으니 말이야.”
“아까부터 놈놈거리는데, 내 배분이 얼마나 높은 줄은 아느냐?”
“귀신이 귀신이지, 무슨 배분이냐!”
송현은 허튼소리 말라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주변에 은은히 감도는 태청신공의 경력.
귀기가 깎여 나가는 것을 본 무명이 몸을 움츠렸다.
“괴팍하기는 산세 험한 곳에서 지낸 도사가 제일이라더니만, 그 말이 참이구나.”
“……후우.”
마음을 가라앉힌 송현이 본제를 꺼냈다.
“이런 곳 말고, 함께 후인을 기다릴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따라올 테냐?”
“후인이라니?”
“네가 이를 갈고 있는 칠성교, 그리고 백련교. 이 두 마교를 비롯한 옛 마교가 언젠가 한데 모이게 된다.”
“……뭐!?”
무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핏발이 가득 선 눈에 귀기와 살기가 가득하여, 주변의 나무가 시커멓게 물들었다.
그가 죽기 전 품은 원념일 것이리라.
송현은 원념과 귀기가 만들어 낸 인력에 저항하기 위해 등 아래의 지실혈에 공력을 실었다.
그러는 와중에 무명의 내력을 조금이나마 읽어 냈다.
‘역시 잘못 본 것이 아니었구나.’
귀기 사이에 선연하게 자리하고 있는 묵(黙)의 기운.
소림사나 아미파와는 다른, 무명이 독자적으로 체득한 불가의 기운이 불안정하게 뒤섞여 있었다.
천하를 명정(明正)하게 밝히는 불가의 심공이라!
“참으로 안타깝다!”
송현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네 무학이 아미파에 이어졌다면, 하다못해 선량한 사람에게 남겼다면 천하가 달라졌을 것을!”
“그러기 위해 여기 남은 것이다!”
무명이 낮은 목소리로 미련과 후회를 토했다.
“내 실수와 같잖은 오만을 되돌리고자 이곳에 남았다. 머지않았어. 조금만 더 음기를 취한다면, 누군가에게 아미복호검을 가르칠 정도로 남아 있을 수 있을 거다!”
송현을 바라보는 눈에 간절함이 담겼다.
급기야는 두 무릎을 꿇고는 머리를 땅에 박았다.
“방해하지 마라. 너만 한 도사라면 내가 무슨 마음으로 버텨 왔는지 알지 않느냐……!”
억울하게 죽었을 귀신.
죽은 아미파의 무인이 산 곤륜파의 도사에게 간청하고 있었다.
실전될지도 모를 자기 무학을 누군가에겐 가르쳐야 하지 않냐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고 있었다.
송현은 그것을 부드러운 눈으로 보았다.
“내가 언제 자네를 해코지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고개를 들게. 내 긴히 할 말이 있으니까.”
송현의 말에 무명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까치발을 든 모습이 무척 경계심이 깊어 보였다.
그걸 보고서 농담하듯 말했다.
“그래 봐야 아미산. 내 보신경이 자네를 놓칠 성싶나?”
“내가 생자(生者)였다면 능히 떨쳐 냈겠지.”
“고집 하나는 대단히 센 귀신이로다.”
“해코지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니, 나는 나대로 진실을 말했을 뿐이다.”
언제 머리를 박았냐는 듯, 무명이 당당히 어깨를 편 채 송현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 행동을 본 송현은 자신의 그림을 매만졌다.
무명의 표정이 다시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거짓을 고한 것이냐?”
“설마, 자네 같은 귀신은 이런 귀물 없이도 쓰러트릴 수 있는데 굳이 꺼냈겠는가?”
“하면……?”
“나는 자네에게 제의를 하나 하고자 하네.”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실낱같은 굵기의 기운이 송현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기운은 상처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지만, 송현의 몸은 그렇지 않았다.
“쿨럭!”
피를 한 됫박이나 토하는 송현.
그것을 본 무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주 먼 옛날, 아미파의 고승에게서 보았던 광경이었다.
“이, 이봐! 후배!”
“……왜 내가 자네 후배야.”
“무슨 짓을 한 건가!”
무명의 외침에 송현을 향한 염려와 적잖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천벌이라니!”
천벌 혹은 신벌(神罰).
고등한 공부를 마친 승려나 도사가 천의를 거스르려고 할 때 하늘은 마땅한 벌을 내린다.
자기에게 하려는 제의가 바로 그것일 터.
무명이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마주한 지 겨우 일다경도 채 되지 않았지만, 잠깐이나마 믿었기에 배신감이 들었다.
이에 송현은 잔뜩 쉬어 버린 목소리로 그를 타일렀다.
“끝까지 듣게.”
“천의를 저버린 도사에게 더 들을 건 없어!”
“칠성교주와 싸운 자네라면 알 거야, 그들이 숭앙하는 존재, 마물 말이야.”
“……!”
그것을 어떻게 아냐는 듯, 눈을 부릅뜨는 무명.
그 모습을 본 송현은 마른기침하며 입안의 피를 뱉어 냈다. 그러지 않고서야 말을 잇기조차 어려웠다.
“곤륜은…… 잊지 않았어.”
“나, 나는…….”
“알아. 그걸 말하기는커녕 귀기로 몸을 유지하기조차 어렵겠지. 무학을 전하기만 한다면 성공이라고 여겼을 테고.”
“…….”
무명이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다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방자하게 굴던 모습과는 달리 송현을 존중하려는 태도가 엿보였다.
송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그럼 잘 듣기만 하게.”
장구한 이야기였다.
지금 존재하는 도문, 시간에 따라 멸문해 버린 도문의 시초가 모두 모여서 사교, 마물과 맞서 싸웠던 기록.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도문이 과거를 잊었다.
설마 마물이 봉인에서 풀리겠냐는 방심이 문제였다.
“……우리 곤륜은 개파조사께서 심상으로 만드신 ‘검해’로 인하여 잊지 않을 수 있었다네. 그걸로 알았지, 사교가 부활하고 마물이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걸 왜 나에게 말하는 거냐? 나는 곤륜파의 도사가 아닌데.”
왜 천벌을 각오하고서 말했느냐.
그 물음에 송현은 사문의 뼈아픈 과거를 꺼냈다.
“곤륜 혼자서는 안 된다.”
“……?”
“사교가 이번에만 부활하는 것 같으냐? 아니다. 여태까지 그들은 다른 이름을 빌리고, 때로는 마물의 도움 없이 자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발호했지.”
“그놈들 중 하나가 칠성교란 말이구나.”
“칠성교주와 직접 싸워 본 너라면 알겠지, 그놈이 어떤 악신의 힘을 빌리는지.”
무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송현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곤륜의 옛 선배도 그를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계시지.”
“기회? 나처럼 귀신이 되었단 것이냐?”
“아니.”
송현은 왼손에 쥔 그림 ‘백연곡’을 가리켰다.
“본래 검해의 파도를 통해 가르침만 받을 수 있지만, 이 그림으로 검해에 계신 선배들과 소통을 한두 번 했었지.”
“죽은 사람과 대화하지 않나, 천벌을 맞질 않나…… 도문에 몸담은 도사가 할 짓은 아니구나.”
“어허! 곤륜에서 완전히 하산하고 나서 벌인 일이니, 오해하진 마라.”
“그래서 요점은 뭐냐?”
“곤륜뿐만 아니라 다른 문파의 무학을 검해에 들이고 싶다.”
“뭐라고?”
무명이 쌍심지를 켰다.
마교와 함께 싸운다는 동질감이 다시 적대감으로 바뀌려는 순간.
송현은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이건 자네가 귀신이라서 하는 제안이네.”
“그게 무슨…….”
“정녕 아미파의 후인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내릴 수 있겠나? 잘 생각해 보게. 귀기가 쌓일수록 불가의 무공은 펼치기 힘들고, 정신은 어지러워지고 있을 것이야.”
“……그건.”
“기껏해야 일이 년 정도겠지.”
“…….”
무명은 차마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자기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귀기에 점차 잠식되어 가는 정신을, 잊어 가는 과거의 기억을.
다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자그맣게 입을 여는 무명의 목소리에 오랫동안 눌러앉은 고통이 있었다.
“제정신을 유지한 채……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거냐? 제자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만큼?”
“기억은 잃을지도 모른다.”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지금도 잃고 있지 않나?”
송현은 무명의 현실을 정확하게 짚고서 말했다.
“목숨을 걸려거든 미래에 걸어라. 이곳에 묶여서 이지를 잃느니 검해에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거다.”
“…….”
무명이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아미산의 정상으로 눈길을 돌렸다.
송현은 그것을 묵묵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가 이곳에 묶인 것은 아쉬움 때문만은 아닐 터.
오랫동안 이루지 못한 인연의 끈, 그리고 아미파에 정식으로 입문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세월과 허무한 죽음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누가 그를 이해해 주겠는가.’
무명이 활동하던 시기에서 수백 년이 흘렀다.
이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고는 없다.
그의 기록 또한 아미파에 아미복호경을 돌려준 양민일 뿐.
‘독자적으로 만들어 익혔을 아미복호검을 아미파에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
그렇지만 하늘은 정(情)을 알지 못한다.
그저 묵묵히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추운 겨울에 아이가 얼어 죽든, 곤륜파가 마교의 계보에 의해 멸문하거나 스러지든…… 하늘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무명의 삶이라고 다를까?
다르지 않으리라. 여동빈이 일세의 마룡을 베었듯, 언젠가 한 영웅이 귀신이 된 무명을 벨 것이다.
‘모르지는 않겠지. 다만…….’
결정할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송현은 무명이 용기를 낼 때까지 망연히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어두워지자 자기 색을 밝히는 별들.
그 숫자만큼이나 후회가 들었다.
천의나 대의를 잇겠다는 마음으로 두고 온 사문의 제자와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홀로 남을 아이는 고통 속에서 수십 년을 보낼 걸 알면서도…….’
홀로 남을 아이의 이름이 바로 현노윤.
이제 막 도경을 떼기 시작한 현노윤의 미래를 천문으로 보았었다.
희박한 빛, 반쯤 낡아 버린 색채.
험난한 인생사를 보낼 운명을 두고서 떠나왔다.
그것이 몹시 안쓰럽고 목이 멨다. 혹여나 선배들을 원망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미 하산한 이상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송현이 마음을 정리하는 사이, 무명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뒤이어 아미파를 향하던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함께하겠다.”
“확실한가?”
“그래.”
이 대화를 끝으로 송현과 무명은 그림을 통해 검해로 향했다.
곤륜파는 홀연히 떠난 전대 장문인의 의문사에 비분강개했고, 아미파는 귀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둘은 백련교의 난을 지켜보며 분노하고, 백무량의 죽음에 놀라워했다.
“죽어서는 안 되는 후배거늘.”
“어째서 곤륜파만……!”
하늘을 향한 분노와 자신을 향한 무력감.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엷어졌다.
생전의 기억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를 어쩐단 말이냐! 잊어서는 안 되거늘!”
송현과 무명이 공포에 떨 때 심천검이 말하기를.
“그냥 적응하는 것이 좋을 거야.”
“하지만…….”
“이곳은 그런 곳이다.”
그 말대로 송현과 무명은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있었다.
생전에 펼칠 수 없었던 진법과 무공.
특히 무명의 아미복호검은 일취월장하여 완성(完成)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하지만 잃은 기억에 대한 공허함도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같은데.”
송현, 아니 백노는 노인이 된 현노윤을 보고서도 누구인지 떠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무명협행을 보고서 생전의 기억을 떠올린 ‘송현’이 눈을 떴다.
[후배야, 아니 무량아.]
‘말씀하십시오.’
[현 장문인에게…… 송 선배가 말없이 떠나서 미안했다고 전해 줄 수 있겠느냐?]
‘……그리하겠습니다.’
[고맙다. 정말로, 고맙다.]
검해에서 언제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송현이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