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2)
***
재능.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선망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술자리에서 아무런 개소리나 주절거리며 갑론을박이 가능하단 이야기다.
“무공의 이치를 한눈에 보고 깨닫는 눈이 중요하지!”
“아니지, 이 사람아, 그것을 보면 뭐 하나? 수련할 때는 오로지 근기가 필요한 법이라네.”
“허허, 태어난 곳이야말로 재능일세. 천무성이든 천괴성이든 거지면 기를 펴기도 전에 죽는 곳이 무림임을 모르는가?”
그러나 그 주정뱅이들도 입을 모아서 말하는 것이 있다.
집념.
아무리 대단한 신공을 지니고, 재능을 가졌다 한들 최고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유명무실한 것이다.
꽃봉오리에서 끝나느냐 개화하느냐가 그것에 달려 있었다.
그런 점에서 칠 년 전의 현종휘는 여러모로 유약한 아이였다.
“칼날로 찌르면…… 사람이 아파하잖아요…….”
“당연히 죽으라고 찌르는 게 아니더냐? 운산보 놈들한테 돌도 던져 봤다면서?”
“그거야…… 할아버지한테 해코지하려고 하니…….”
“무림에서 마주치는 놈들 다 쓰레기들이고, 마인일 텐데?”
“…….”
고수가 되고는 싶으나 사람을 해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어린 현종휘의 모순이었다. 열의가 생기래야 생길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그 성정이 변화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삼 년.
백무량이 사대사행을 돌파하고, 백련교 좌호법과 싸우고, 심지어는 백련교주에게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이제는 나약한 소리 하지 않을게요.”
싸워야 할 이유를 자신이 아니라 남에게 찾은 셈이다.
하지만 현종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현종휘의 삶에서 현노윤과 백무량은 누구보다도 소중했으니까.
그때가 돼서야 자기가 약했다고 자책할 수 없다며, 수련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변화한 성정을 통해 재능이 개화하기까지 사 년.
열일곱, 청운검협이라 불리는 현종휘는 구천검 백무량과 비교해도 뛰어난 오성을 지닌 협객이 되었다.
[네 비무를 보면서 무공을 파훼하려는 시도가 아주 귀엽지 않느냐?]
‘남들한테 저런 모습을 보여선 안 될 텐데요.’
백무량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현종휘가 자신에게 그러는 것이야 상관없지만, 자기 무공을 목숨처럼 여기는 무림인에게는 도둑놈처럼 보일 터였다.
최악의 경우에는 질투에 눈먼 무인에게 암살을 당할 수도 있다.
‘이번 비무가 끝나면 충고라도 해 둬야겠지요?’
[꼭 재능 있는 후배들이 그걸 드러내지 못해서 안달이기 마련이지.]
백무량은 심천검의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진자충의 검을 손등으로 받아 냈다.
공력에 뒤섞인 금빛의 기파.
보타문의 금강에 진자충의 검격이 속절없이 밀려 났다.
“크윽……!”
침음성을 흘린 진자충이 적우염천과 풍삼퇴를 펼치며 역공을 노렸지만, 백무량에겐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것을 흘리고 격파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빠악!
주먹에 기해혈을 얻어맞고 나서야 진자충이 패배를 시인했다.
“내가 졌네…….”
맨손의 검객한테 무력하게 패배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창피했던 걸까?
진자충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사람들이 자네를 두고 선자니, 곤륜신검이니 칭하는지 이제야 알겠군. 솔직히 말해서 반칙 아닌가?”
“반칙이라면 백련교주를 숨긴 사파나, 끼리끼리 동맹을 맺은 마교 놈들이 더 그렇겠지요.”
“그건, 그렇군.”
“방금은 제가 너무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그 말에 진자충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았다면, 나도 진심을 다해서 살초를 펼치진 않았겠지. 원래 쓴 약이 더 낫다고 하지 않나.”
“어땠습니까?”
“굴욕적이었네.”
진자충은 딱 잘라 말하며 칠성교주의 존재를 떠올렸다.
너무나도 까마득했다.
저런 백무량을 아무렇지 않게 꺾었다는 강함이라니.
그 생각을 하니 저절로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먼저 쉬러 가 보겠네. 비무는 적당히 하고 내일 보세.”
“들어가십시오.”
백무량의 시선이 현종휘에게 향했다.
짧은 비무였지만 많은 것을 보았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
저 미소를 꺾을 생각에 저도 모르게 흐흐 소리가 나왔다.
[너야말로 악취미구나. 사제를 이기는 재미에 푹 빠져서는.]
‘시끄럽습니다, 선배.’
이러려고 무공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던가?
사형과 얽힐 때면 몰라도 백무량은 자신이 도사라는 자각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았다.
“……이런.”
백무량답지 않게 말꼬리가 늘어졌다.
노을로 누랬던 하늘이 어느새 검게 물든 탓이었다.
[너와 나 정도면 몰라도 이런 어둠 속에서 비무를 했다가는 크게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러니 사제의 미소를 꺾으려는 짓은 다음에 하여라.]
‘예, 예, 저도 압니다.’
백무량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현종휘를 보았다.
“날이 이래서야 비무는 다음으로 미뤄야겠구나.”
“…….”
현종휘가 침묵했다. 뭔가 아쉬워하는 기색이었기에 백무량의 뒷말에 나긋한 어조가 담겼다.
“너와 나, 둘 중 누가 다쳐도 우리 문에는 큰 재액이나 마찬가지이니…….”
“저는 상관없어요, 대사형.”
현종휘가 똑바른 시선으로 백무량을 보았다.
“대사형은 두려우십니까?”
“……허.”
백무량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자신을 상대했던 무인이나 마인의 심정이 이러했던가?
처지가 바뀐 것 같았다.
[끌끌, 보고 배울 선배가 너밖에 없으니 그런 게다.]
‘제가 진짜 한 방 먹었습니다.’
[그럼 어찌할 생각이더냐? 네 사제는 이미 마음속에서 검을 쥐고 있는데.]
백무량의 시선이 다시 하늘로 향했다.
검게 물든 하늘, 여름이 부쩍 가까워진 더운 바람에 흔들리는 침엽수…….
그 사이에서 알알이 박힌 별빛이 보였다. 별빛 옆에는 달빛이 있어 땅을 환히 비춰 주는 듯했다.
“그래, 무인에게 있어 이 정도면 충분한 불빛이다.”
백무량은 시선을 하늘에서 거두었다.
어느덧 연무장에는 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날이 어두워서야, 백무량과 현종휘도 처소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 둘은 일반적인 상리(常理) 바깥에 있었다. 미쳤다고 해도 좋았다.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미친 듯이 두드리고, 궁리해서야 고수에 오를 수 있는 법이니까.
둘은 그것을 일찍이 이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일찍이 죽어 귀신이 된 선배와 함께하고 있으니.’
백무량은 끅끅 웃었다. 심천검이 불평하는 소리를 중얼거렸지만, 귀에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정면에 있는 현종휘만을 보았다.
“준비는 되었느냐?”
“늘 하고 있었지요.”
“말은 거창하구나.”
백무량의 말에 엄중한 한기가 맺혔다. 괜한 허세를 부렸다간 깔아뭉개겠다는 의도가 서린 충고였다.
하지만 현종휘는 진심을 다한 대답이었다.
처음 만난, 칠 년 전부터.
현종휘는 늘 백무량의 등을 보았다. 압도적인 거리와 격차를 앞에 두고서 발버둥 쳤지만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지금은 어떠할까?’
가슴이 쿵쾅거리는 듯했다. 백무량에게 사 년의 시간을 증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종휘에게 있어 백무량은 엄한 사부였고, 까마득한 선배였으니까.
곤륜파의 무학을 궁리한다고 한들 백무량의 시간을 앞설 순 없었다. 그래서, 더욱 간절하게 파헤쳤다.
‘창룡비검과의 비무를 먼저 보길 잘했어.’
곤륜파의 무공에서 앞설 수 없다면, 백무량의 무공을 파훼한다.
현종휘는 눈을 크게 떴다. 재능의 총화가 갈고닦인 눈이 마치 야명주처럼 번쩍이는 듯했다.
그것을 본 백무량의 입가가 가늘게 열렸다.
“삼 초식을 양보하겠다.”
“제자 현종휘가 사조님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허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종휘의 신형이 어둠에 녹아내렸다.
***
한밤중에 현노윤은 상체를 일으켰다.
꿈을 꾸었다. 아주 작은 조각밖에 남지 않았지만,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나비라…….”
두 나비가 서로를 향해 계속해서 날아드는 꿈.
현노윤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 너머에서 꿈이 이어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카앙, 캉!
쇳조각 둘이 부딪쳐 불똥을 일으킨다. 짧게 부딪치기도, 길게 마주치며 긴 곡선을 그리기도 했다.
고요하고 적막한 어둠, 하늘 아래에.
두 나비가 서로를 밀어 내기 위한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왼쪽은 노련하고, 오른쪽은 천재로구나.”
언뜻 보면 오른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구도였다. 아니, 일찍이 밀려났어야 했다.
그것을 막아 낸 것은 연속된 임기응변.
노련한 나비가 춤을 추는데, 그때마다 본능적으로 ‘길’을 찾았다.
흘려 내거나 역으로 공격할 수 있는 간격을 재고서는 급습했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건곤일척이라.
현노윤은 마루에 앉아 그것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무공을 모르는 몸이라지만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그렇구나. 저것은…….”
천하에 어둠이 내려앉았을지언정 현노윤은 곤륜의 궤적을 알았다.
그것도 극치(極致)에 이른 검격이라면 더더욱.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벅차오르는 감동이 노구를 가득 채웠다.
“나비가 아니라 용이로구나.”
현노윤은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어둠을 바라보았다.
한때는, 그러니까 백무량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과거가 저러했다.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가시를 세우고 남을 의심하며 살았다.
그러나, 두 운룡(雲龍)이 자아내는 검무를 보라.
“여한이 없다, 여한이…….”
천하가 어둡다 한들 두 운룡의 비무는 곤륜산 전역을 밝힐 정도로 치열하고, 아름답다.
현노윤은 지금 이 순간을 완전히 기억하겠다는 듯 눈에 힘을 가득 주었다.
***
현노윤이 지켜보는 비무 속에서 백무량과 현종휘는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검이 얽혀 불똥이 튈 때면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하하.”
현종휘가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야말로 빛나는 재능의 총화.
아무리 위협적인 검로를 펼쳐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받아 내고, 수구혈이나 내관혈을 노렸다.
곡지혈을 노리던 일 검은 또 어떻던가!
백무량은 현종휘의 움직임에서 조금씩 영감을 얻기 시작했다.
‘선배가 보기에 어떻습니까?’
[자유롭고, 표홀하다. 곤륜의 무학에 저런 묘리가 있는 줄은 몰랐구나. 나조차 상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건곤일척을 계속 이루어 낼 줄이야.]
심천검은 진심으로 극찬을 쏟아 냈다.
애초에 백무량과 현종휘는 보는 경지가 다르고, 검의의 무게가 다르다.
단숨에 끝났을 비무를 억지로 끌어가고 있는 것 자체가 현종휘의 재능인 셈이다.
상단전의 창문이라고 할 수 있는 눈에서 은하와 같은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와 검을 마주하는 백무량 또한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진귀한 광경이로다.]
나이와 항렬이 까마득하게 차이 나는 두 사형제의 비무.
그 안에서 서로의 무공을 목도하고, 성장하는 모습이라.
심천검은 백무량이 참으로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