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7)
강호의 저잣거리에 떠도는 심법은 수십에서 수백, 잡다한 개론과 서적을 포함한다면 수천.
수많은 선택 속에서 무인들은 안전하기보다는 빠른 것을 원한다.
언제 뺏길지 모르는 목숨이니 빠르게 강해져서 후일을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니까.
하지만 구파일방, 정종의 무공은 다르다.
‘느리지만 무겁고, 유연함은 없을지언정 정직하다.’
무인 대부분은 심법의 구결을 이해하지 않고, 억지로 운용하다가 몸을 망가뜨린다.
백무량과 마주한 어떤 낭인은 하지의 기맥과 대맥이 단절된 채로 내공을 억지로 운용하고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몸에 담고 있던 셈이다.
그러나 태청신공은 어떠한가.
백무량은 유성한에게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남겼다.
“호흡을 코로 깊게 들이쉬고 내쉬거라. 고통이 있어도 입을 열어선 안 되며, 참아야 한다.”
유성한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무량은 천천히 호흡하며 유성한의 전신을 훑었다. 가냘프고 유약한 몸에 비해 대맥은 제법 강건했다.
‘어린 시절, 많은 영약을 먹여서 그런 거겠지.’
백무량의 눈이 가늘어진다.
대맥 아래, 하지의 세맥에 쌓인 내공 덩어리가 고름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주 먼 옛날, 대맥과 하지가 단절되었던 낭인처럼.
‘이런 상태에서 무공을 익히라 닦달했으니 약해질 수밖에 없지.’
하물며 오른쪽 어깨에 쌓인 귀기와 살기는 어떠한가.
한숨을 내쉴 뻔한 것을 억지로 삼킨다.
유성한의 전신을 살피는 도중이란 걸 잊어버릴 정도로 충격적인 몸 상태였다.
자기는 재능이 없다고 한탄했지만, 오히려 반대다.
어린 시절 유성한을 학대했던 행동이 근골의 발달을 방해하고 근육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보타문이 모르고 있었을까?’
검후를 세대마다 배출했던 보타문이 유성한의 세맥에 쌓인 화약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답은 두 가지.
치료하지 못했거나, 안 했거나.
백무량은 비구니가 드러냈던 씁쓸하고, 복잡했던 미소를 떠올렸다.
‘전자겠지.’
불가의 무공이 어떤 방식인지, 백무량은 알지 못했다.
특히 보타문은 소림사보다도 비밀스러운 면이 깊었다.
그에 비해 곤륜파의 태청신공은 자유로웠다.
쿠르르…….
백무량의 내력이 유성한의 등을 타고 쏟아졌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유성한이 몸을 움찔거린다. 뒤이어 찾아오는 청량함과 해방감이 유성한의 긴장감을 풀었다.
처음에는 십이정경(十二正經).
수족에 쌓인 내공을 옮기기 위해 백무량이 정신을 집중했다.
“끄으음…….”
유성한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른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내공이 좁다란 통로를 역행하는 셈이니, 고통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핏줄을 세침으로 찔리는 것처럼 느껴질 터였다.
그럼에도 백무량의 운용에는 거침이 없었다.
‘몸을 강건한 상태로 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
오른쪽 어깨에 자리한 귀기와 살기.
그것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선기를 전력으로 운용해서 부딪쳐야 하는데, 그릇이 불안정한 상태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체내에 불안정하게 쌓인 기운을 없애고, 호흡과 마음을 정돈한다.
그것부터 시작한다면 귀기와 살기 또한 수그러들 터.
백무량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렇게 반 시진.
기진맥진한 백무량이 등에서 손을 떼자, 유성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와!”
유성한으로서는 신기한 일이었다.
뻘겋게 부어오르곤 했던 손마디가 날아갈 듯이 가볍고, 흐리멍덩한 시야가 맑았으니까.
마보세를 취한 유성한이 주먹을 강하게 내질렀다.
파앙!
소매가 뒤로 밀려 나가며 옷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졌다.
풍압이 일어날 만큼 강맹함으로 가득한 주먹질이다.
백무량은 반쯤 감긴 눈으로 유성한의 일 권을 지켜보았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나는 아예 안 보이냐?”
“아저…… 아니, 형!”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라.
백무량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 이제는 형으로 보이냐?”
“물론이죠!”
유성한이 밝은 표정으로 백무량을 일으켰다.
꽈악.
유성한에게서 느껴지는 악력에 백무량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세맥에 쌓여 있던 내공을 풀어놓으니, 꽉 눌려 있던 용력이 제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보다 너무 센데?’
과연 천무검성의 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유성한이 그 말로 인해 입은 상처가 너무나도 깊으니까.
언젠가, 그것을 듣고도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 강건해질 날이 오겠거니.
백무량은 고개를 내저었다. 복잡한 생각을 품고 있기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몸이 가뿐하냐?”
“네…… 이런 적이 없었을 정도로요!”
유성한은 신기하다는 듯이 허공에 주먹을 날리고, 땅바닥을 진각으로 밟았다.
그때마다 타고난 용력과 단전에 안착한 내공이 허공을 가르고, 대지를 할퀴었다.
그야말로 원석이었다.
잘 다듬기만 하면, 자기 스스로 빛을 낼 원석.
‘곤륜파로 입문시키면, 종휘에 이은 두 번째 고수가 되겠는데?’
백무량은 히죽 웃었다.
유성한의 주먹질을 보니 흡족하고, 배가 불렀다.
어린 시절, 자신을 보던 주자령의 웃음이 이러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다시 앉아라.”
“네?”
“내공을 안착시켰으니, 이제는 네 마음을 정돈할 차례이지 않으냐.”
백무량의 낮은 목소리에 유성한이 두 손을 모았다.
혹시나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물기 젖은 시선이 백무량에게 향했다.
‘확실히 달라지긴 했구나.’
처음 본 유성한은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길길이 날뛰던 승냥이에 불과했거늘.
백무량은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얼른 앉지 않고 무얼 하느냐.”
애써 엄격한 표정을 지어내면서, 사부로서의 위엄을 꿋꿋하게 유지했다.
한데 문제가 있었다.
‘무공이라면 몰라도, 도학은 어떻게 가르치면 될까?’
상대를 깎아내리는 거면 몰라도, 설법에는 통 재주가 없었다.
최근에는 현종휘에게 이런 비판을 듣지 않았던가!
-사조님의 설법은 흙냄새가 나요.
-그게 무슨 말이냐?
-음, 퀴퀴하다고 해야 하나…… 늙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잔소리처럼 들린다.
사실상 최악이라는 뜻을 돌려서 말한 셈이다.
백무량은 어쩔 수 없이 옛 기억을 떠올렸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사형에게 들은 선문답이 몇 개 있단다.”
“선문답요?”
유성한이 질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백무량은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
“그 표정을 보니, 역지사지라는 말이 떠올라서 말이야.”
맨 처음, 주백천이 선문답을 해석해 준다고 하였을 때 백무량은 몸을 비틀며 듣기 싫다고 했었다.
그 모습이 유성한에게 고스란히 보였다.
안 웃고 넘어갈 수가 없다. 백무량은 난처한 표정을 짓던 주백천을 떠올리며 낄낄 웃었다.
그때 유성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듣고 넘어가면 안 돼요? 저도 선문답이라면 충분히 많이 듣기도 해서…….”
“그냥 재미가 없다고 하지 그러냐.”
백무량의 말에 유성한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예, 솔직하게 그래요.”
“가끔은 정직하면 안 될 때가 있는 법이지. 그 말이 내 자존심을 건드렸어.”
어차피 무슨 대답을 하든 말할 생각이었다며, 백무량이 짓궂은 표정을 짓자 유성한이 표정을 구겼다.
솔직히, 자존심이 건드려졌다는 건 진심이었다.
주백천에게 들었던 선문답은 지루하지 않았으니까.
‘그걸 내가 고스란히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백무량은 주백천의 어조를 떠올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밥 광주리 옆에서 굶어 죽은 사람, 강변에서 목말라 죽은 사람.”
“……?”
“이 말을 들으니 무슨 생각이 들더냐?”
“바보 같아요.”
“하면 지금 네 몸은 어떠냐?”
“가볍고, 편안하죠.”
“행복하더냐?”
“…….”
유성한이 잠시 침묵했다. 흘러간 과거를 떠올리는 듯했다.
그걸 본 백무량이 고개를 내저었다.
“몸이 나아졌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좋죠, 좋은데…… 이걸로 행복할 순 없는 거잖아요.”
“그래, 만족할 수가 없는 거지.”
“…….”
유성한이 생각에 잠긴 동안, 백무량은 옛 과거를 떠올렸다.
‘나보단 낫네.’
처음 저 말을 사형에게 들었을 때, 자신은 분노했으니까.
부모를 다 잃은 고아가 행복을 어떻게 찾냐며 대들었었다.
이에 주백천이 말을 이었다.
하나의 선문답으로 얻을 수 없는 답을, 이것으로 얻었다.
“천무검성의 후인으로서 행복할 수 없으니까. 몸이 나아진 거로 만족할 수 없는 거야.”
“……!”
유성한의 눈동자가 백무량에게 향했다.
분노, 짜증, 슬픔 같은 것이 모두 뒤섞인 시선.
백무량은 그 시선과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남들이 너에게 천무검성을 기대했다지만, 그게 유성한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게 무슨…….”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면,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
백무량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그냥 말뿐이야.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남기는 법이지. 애초에 천무검성의 명성을 네가 짊어질 이유가 있을까?”
“저는, 전…….”
무언가를 말하려던 유성한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목이 메어선지, 감정이 북받친 건지 알기가 어려웠다.
‘최대한 가르치려고 들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어땠을까?’
간단하게 말해서.
천무검성 유성백은 죽었다. 그게 전부인 이야기다.
그러나 남들은 그의 후인들에게 새로운 유성백을 멋대로 기대한다.
뛰어난 사람이 위대했을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핏줄로 이어 가리라고 여긴다.
백무량은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고아 주제에 장문인의 적전제자라고? 어디 얼마나 뛰어난지 보자.
태청선 주자령.
강호십대고수의 제자로서 지낸다는 건 너무나도 가슴 벅찬 일이지만, 어둠도 있었다.
동문의 시기와 질투, 멋대로 기대하는 시선들.
그것이 싫어서 학도사인 사형에게 갔다.
도경을 배우는 것뿐이라면 자신보다 쉬울 거라면서, 투정을 받아 줄 여유가 있으리라 여겼다.
그 이기적인 행동을 받아 준 것이 바로 주백천이었다.
‘그때 들은 선문답을 이 아이에게 하게 되다니.’
얼마나 공교로운가.
사형의 안배를 찾으러 온 곳, 보타문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아이를 만나고.
그 아이에게 사형의 가르침을 되풀이한다.
‘이곳에 없는 건 사형뿐이구나.’
백무량은 저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과분한 어린 시절이었다.
재능이 넘친다며 칭찬해 주던 사부와 이기적인 아이를 돌봐 주던 사형.
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 생각을 하기만 해도 미증유의 공포가 치민다.
‘어디서 산적질이나 하다가 비명횡사했겠지, 뭐.’
백무량은 희미하게 웃었다.
어느새 답을 찾았는지 유성한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형, 아니, 사부님 덕분에 앞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부님?’
아저씨랬다가, 형이랬다가…… 이제는 사부라.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아이다.
백무량은 피식 웃고는 유성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손등의 운룡에서 나온 빛이 칠성교에 의해 새겨진 반점을 서서히 지워 가기 시작했다.
“……!”
백무량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제야, 손등에 새겨진 운룡이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