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 (4)
나흘 동안 요현은 만금상단 주위를 감시하면서 선기의 정체를 조사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쉬잇, 쉿.”
요현이 오른손에 쥔 가면.
그곳에 만금상단 하인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얼굴을 잃은 남자가 버둥거리는 모습이 무척 기괴했다.
천면호의 술법, 탈혼(奪魂).
얼굴을 가면에 훔쳐서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거나 기억을 읽을 수 있다.
요현이 가면을 얼굴에 꾹 눌러쓰자 건물의 대략적인 구조와 하인의 기억이 떠올랐다.
단기간에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이게 무슨…….”
아무것도 모르는 채 돌아다녔다가는 지하에 떨어지기 십상이다.
만금상단의 구조에 저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어느 도둑도 만금상단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시도한 모두가 실패한 것이겠지.
“그 기록을 내가 깬단 말이지?”
요현은 까르르 웃었다.
유아에 가까운 칠성교주, 괴성과는 다르게 그녀는 흥밋거리에 민감했다.
정확하게는 남이 쌓아 올린 것을 부수는 걸 좋아했다.
‘상왕을 납치하고 나면 저런 건물은 불태워야지.’
만금상단이 가진 전설? 그들의 중요도?
알 바 아니다.
요현은 만금상단이 사라지고 찾아올 혼란이 궁금했다.
만금상단의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놈들이 어떤 재미를 가져다줄지, 기다리기가 힘겨웠다.
“그래도 성급하게 움직이면 안 돼.”
요현의 시선이 만금상단 본채로 향했다.
저곳 어딘가에 있을 선기의 주인, 곤륜신성 백무량.
그가 아니라면 어떤 고수일지라도 이목을 숨긴 채 침투할 수 있었다.
‘탈혼은 선기와 만나면 풀리는 게 제일 흠이야.’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선기를 쌓았는지, 요현은 알지 못했다.
다만 백무량이 비범하다는 것만 추측할 뿐이었다.
‘저놈이 내일이면 떠나니까, 그때까지만.’
요현은 조용히 숨을 죽인 채 몸을 웅크렸다.
침투할 때 가장 제격일 얼굴, 문지기를 주시한 채.
***
다음 날.
백무량이 만금상단 정문으로 나가고, 금모도왕 남천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요현은 눈을 빛냈다.
‘금모도왕에게는 내 정체를 꿰뚫어 볼 기예가 없어.’
일이 생각보다 쉬워졌다. 요현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이제는 만금상단이 감나무처럼 보였다.
감이 완전히 익어서, 장대로 수확할 일만 남은 감나무.
열매를 따서 한 입 콱 씹으면 단물이 줄줄 나올 것 같았다.
요현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빨리 밤이 왔으면 좋겠네.”
요현의 입가에서 침이 줄줄 샜다. 천면호 또한 몸이 달았는지 요현을 재촉했다.
[어서, 어서……!]
“세 시진만 기다려.”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요현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양의 요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고통은 완전히 사라지고, 환희만이 감돈다.
“으흐흐.”
요현은 하인의 가면을 벗고는 새로운 가면을 꺼냈다.
그렇게 두 시진 뒤에 문지기를 습격했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 몸을 웅크렸다.
참으로 오랜 인내였다.
요현은 문지기의 가면을 꾹 눌러썼다.
“이제 가 볼까!”
정문을 지나, 일 층 계단에 올라선다.
문지기의 가면을 쓴 요현은 기억을 최대한 끌어냈다.
아차 하는 순간 함정에 말려드는 장치가 계단에만 다섯 가지였다.
그렇게 이 층, 삼 층.
조원양이 거주하는 곳에 가까워질수록 요현은 본능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천면호가 보내는 살의가 가면 아래에서 진동했다.
‘이제, 조금만, 한두 걸음이면…….’
상왕 조원양의 처소다.
요현이 복도 한가운데에 서서 손을 쑥 내밀자, 벽이 갈라지며 숨겨져 있던 문이 나타났다.
전혀 상정하지 않았던 적 또한.
쩌억!
난데없는 주먹질에 요현의 목이 돌아갔다.
목뼈가 부러지면서 정신이 끊어졌다.
즉사하지 않은 건 천면호의 재생 능력 덕분이었다.
목뼈를 재생한 요현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본능적인 공포가 전신을 짓눌렀다.
바로 그때, 그녀의 귓전에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데없이 끈질기군.”
고저가 불분명한 목소리였다.
뒤이어 요현의 몸이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다.
멱살을 붙잡힌 걸까?
요현이 눈을 뜨기가 무섭게 복부에 둔중한 충격이 느껴졌다. 침투경의 묘리가 장기를 뒤흔들고, 시신경을 끊었다.
시야가 트이려면 적어도 일다경은 필요하다.
‘재생되는 걸 기다리다가는 죽을 거야.’
판단을 마친 요현은 오른팔을 휘둘렀다.
천면호의 요기가 담긴 쇄혼장(碎魂掌). 격중한다면 상반신과 함께 복도 전체가 무너질 대력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잡아챘다.
‘단순히 나보다 내력이 심후해서?’
아니었다. 이건 본질적인 문제였다.
정체를 알아차린 요현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너, 아직…… 가지 않았…….”
쩌억!
상대가 짧게 끊어 친 팔꿈치가 요현의 명치를 강타했다. 피거품이 한순간 끓어오르고, 요기가 역류했다.
이 장을 넘게 날아간 요현이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시도에 불과했다.
빠악!
요현이 상체를 드는 것과 동시에 상대의 통천각(通天脚)이 머리통을 걷어찬 까닭이다.
목이 뜯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요현을 비참하게 했다.
흐릿하게 느껴지는 선기는 상대의 정체를 확실하게 했다.
“곤륜신성!”
비명에 가까운 요현의 외침.
백무량은 콧김을 내뿜으며 태청신공을 운용했다.
“그 가면을 부수면 어떻게 되는지 볼까?”
“어떻게 안 거냐!”
산발이 된 요현이 보랏빛 안광을 드러냈다. 반쯤 갈라진 가면에서 기괴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백무량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가면을 부수면 과연 사술이 풀릴까?’
요현에게 얼굴을 뺏긴 문지기가 바로 이번 급습의 미끼이자 핵심이었다.
***
약 세 시진 전.
백무량은 남천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 교대를 마치고 문지기를 찾아갔다.
아주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칠성교가 주변에 숨어 있다니요?”
문지기가 깜짝 놀라서 눈알을 굴렸다. 백무량은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기감에는 아예 잡히지 않았고, 오직 선기로만 알아차릴 수 있었던 존재감이다.
‘이 대화를 듣는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
백무량은 문지기에게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조용히.”
“지, 지금 당장 상왕께 알려야 합니다!”
“말하면 달아나겠지. 난 호위로서 그놈을 죽여야겠소.”
그 말에 문지기가 잃었던 침착함을 되찾았다.
“……으음, 지금 생각해 보니 하인 하나가 하루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게 며칠 전이었습니다.”
“어쩌다가 그랬소?”
“기억이 불분명하답니다. 집에 들어간 것도 아니라는데, 옷이 많이 더러웠지요. 어딘가에서 구른 것처럼 말입니다.”
“어디서 사라졌는지는 알아냈소?”
“만금상단 뒤쪽의 골목이었습니다.”
“…….”
백무량은 말없이 턱을 매만졌다. 고민이 제법 깊었다.
‘사형의 서책에 적혀 있기를, 신과 동화되는 마교라고 했던가?’
그들의 무공은 무인이 익히는 것과는 다르다.
그 차이를 알아야만 칠성교도와 싸울 수 있다.
백무량은 고민을 잠시 멈추고 문지기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하인에게 손을 댄 게 아닌가 싶소.”
“그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어떤 방식으로 침입해 올지 모르니, 나도 확답은 어렵소. 하지만 기다리면 침입해 올 거란 건 자명하지.”
백무량은 문지기의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도와주시오. 단둘이라면 비밀을 유지한 채, 함정을 팔 수 있을 거요.”
“……?”
“나흘 전에 상왕의 처소로 곧바로 올라온 적이 있지 않았소?”
조원양과 백무량이 대화를 마친 그때, 문지기가 문 뒤편에서 나타났었다.
그 말인즉 만금상단 내부에 조원양의 처소로 곧바로 향하는 길이 존재한다는 뜻.
백무량의 집요한 시선에 문지기가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꼭 아셔야겠습니까?”
“약점을 찌르려면, 적보다 더 많은 걸 알아야 하는 법이오.”
“그야, 그렇지만.”
문지기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이자, 백무량은 그의 의표를 찔렀다.
“조부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언제부터 아셨소?”
문지기의 표정이 무심해졌다. 지금까지 백무량에게 다채로운 감정을 보이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백무량은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상왕께서는 나를 빈객(賓客)으로 맞아 주셨소. 상인이라면 상대에 맞춰서 대접을 하고, 격에 맞추기 마련이오. 평범한 문지기가 나를 전담한다? 그건 상왕답지 않소.”
하물며 문지기의 입담은 평범한 사람과는 궤가 달랐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대화, 백무량의 흥미를 끄는 화제.
이야기를 쉼 없이 이어 가는 기술은 문지기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게 아닌 이상 불가능했다.
‘송 노야한테 배웠던 지식이 큰 도움이 되었지.’
백무량 또한 마찬가지였다.
송우현은 무인이 무공만 잘해선 안 된다며, 권모술수를 알아차리거나 상대방의 신분을 가늠하는 눈썰미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나.
백무량의 입술이 가늘게 열렸다.
“무엇보다 상왕께서 자기 처소로 직행하는 통로를…… 평범한 문지기한테 알려 줄 리가 없지 않소.”
천하의 돈을 쥐고 있다는 남자, 상왕 조원양.
그의 목숨 줄과도 같은 비밀 통로를 알려 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백무량은 가볍게 씩 웃었다.
“그냥 피붙이로도 안 되겠고, 신뢰하는 후계자가 아닌 이상 알려 주지 않을 거요, 나라면.”
“……과연.”
문지기, 아니 만금상단의 후계자가 빙긋 웃었다.
무심했던 표정이 한순간에 개어지는 모습에 백무량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앞선 표정을 보지 않았다면 완전히 진심으로 볼 만한 미소였다.
“내 말이 틀렸소?”
“몇 가지는 그렇고, 한 가지는 아니오.”
“그게 무엇이었소?”
“상왕께선 내 조부가 아니오. 뭐, 복잡한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합시다.”
만금상단의 후계자가 자기 이름을 밝혔다.
“금환(金環). 그게 내 이름이오.”
“이름을 듣고 나서 할 말이 이거라서, 미안하지만…… 미끼가 되어 주시오.”
백무량의 말에 금환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만 지켜 준다면.”
“기꺼이, 그러겠소.”
백무량과 금환은 짧게 우의를 다지고는 서로 멀어졌다.
다만 백무량은 한 가지를 예상하지 못했다.
‘얼굴을 가면에 빼앗는 사술이라니……!’
가면을 부수고 생각하는 것이 빠르리라, 백무량의 주먹이 요현의 얼굴을 후려쳤다.
이것이 바로 이번 급습의 전말이었다.
***
쩌억!
백무량의 주먹이 요현을 후려쳤다.
얼굴과 명치, 간이 위치한 왼쪽 복부.
소청권의 우청격이 연속으로 꽂혔다.
선기가 깃든 내공이 요현의 요기를 흩뜨렸다. 호신강기 따위는 소용이 없었다.
“으윽, 윽……!”
요현이 신음을 흘렸다. 백무량은 귀를 의심했다.
‘목소리 사이에 이상한 잡음이 들리지 않았나?’
백무량의 귀는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요현의 입가에서 천면호의 정신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가면이 조금씩 부서지면서 나타나는 부작용.
신과의 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탓이다.
백무량은 그 현상을 긍정적으로 이해했다.
‘조금만 더 부수면 금환의 정신이 돌아오겠지.’
“자, 잠깐…… 그만……!”
요현의 절규에도 백무량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단지 요현의 멱살을 쥐고 들어 올렸다.
빠악!
운룡비뢰장이 요현의 복부에 꽂혔다.
삼십 년 내공이 물밀 듯이 장기를 헤집는다. 범인이었다면 일격사할 충격이었다.
“커헉……!”
그럼에도 요현은 핏물을 뱉어 낼 뿐 죽지는 않았다.
백무량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만큼 맞고도 버티는 걸 보면 요현이 칠성교에서 높은 지위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네놈은 누구냐?”
“크흑, 흐…….”
슬픔과 분노가 반쯤 섞인 듯한 울먹임.
요현이 손을 늘어뜨렸다.
백무량은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죽고 싶은 게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칼은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협소한 공간에서 백선신검으로 구천화우검을 펼쳤다간 건물이 무너질 거야.’
여유라면 여유였다.
굳이 검을 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면, 높은 지위의 칠성교도를 생포하는 셈이니까.
“대답하지 않겠다면, 무림맹에 데려가겠다.”
백무량이 요현의 훈혈에 손을 가져가던 그때.
쿠구궁!
대검이 만금상단의 외벽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