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2)
도사를 자처한 자가 왜 가면을 쓰는지, 대주천복마검을 아는 이유가 무엇인지…….
백무량은 양청교에게 칠성교의 특성과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마교에 대한 건 많은 사람이 아는 게 좋아.’
정보를 한번 정돈하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서책에서 읽었을 뿐 백무량이 제대로 안다고 할 순 없으니까.
모든 설명을 들은 양청교가 뜻밖의 질문을 꺼냈다.
“칠성교에 입교하는 건 자의인가, 타의인가?”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다.
백무량은 턱을 매만졌다.
“글쎄…… 아무래도 마교이니까 타의겠지? 예컨대 사람을 잡아가서 말이야.”
“난 자의라고 생각하네.”
양청교가 가볍게 주먹을 휘두른다.
바람이 양청교의 팔뚝을 휘감고 비틀리는 소리가 울렸다.
무학이라곤 단 하나도 담기지 않은 주먹질이라.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백무량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걸 본 양청교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자네는 내가 무슨 한심한 짓을 하나 생각했겠지?”
“솔직하게, 그래.”
“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이런 주먹도 선망한다네. 무인에게 자유로움이 있고, 강함이 있다고 믿지. 강호는 강자존과 명분이라는 허술한 말에 묶여 있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양청교의 음색이 사뭇 진지했다.
백무량이 보기에는 두 가지였다.
자신이 경험했거나, 혹은 가까운 사람이 그랬거나.
어느 쪽이든 자신이 알 바는 아니다. 백무량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나저나 장문인께서 나랑 친해지라고 보냈댔지?”
“그렇네.”
“자네는 강한가?”
“……이런, 직격타군.”
양청교가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근육의 움직임이 피부에서 도드라진다. 육체적으로 타고났다는 방증이었다.
백무량은 한쪽 입술을 비틀었다.
“고 선배와 비교하자면 어떤가?”
“지금이라면 내가 더 강하지. 좌호법과 싸우다가 많이 다치셨거든.”
“다치지 않았을 땐?”
“사형이 워낙 바쁘다 보니 검을 마주할 기회가 몇 없었다네. 내가 여기서 강하다고 해 봐야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뭐, 아예 못 이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네.”
고성진을 추키면서도 자기를 챙기는 모습.
백무량은 양청교의 자신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는 사이에 양청교가 물었다.
“소문대로 호승심이 뛰어나군. 비무라도 할 생각인가?”
“설마. 칠성교가 근처에 있을지 모르는데 길 한복판에서 싸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
“그럼 그냥 날 놀려 먹으려고 물은 거군.”
“……흐흐.”
백무량은 가볍게 웃었다. 사실, 비무가 동하기는 했다.
사대사행.
청성파의 성지에서 얻은 선기와 깨달음은 백무량에게 있어 엄청난 기연이었다. 그 이후로 다른 도문을 괄시하던 마음을 지웠다.
특히 공동파의 경우에는…… 고성진을 연이어 꺾으면서 내심 무시하고 있었다.
‘동행하면서 무공을 조금씩 교류하고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군.’
백무량이 양청교를 곁눈질했다.
길을 같이한 지 겨우 두 시진밖에 되지 않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후기지수였다.
그때 양청교가 말을 걸어왔다.
“불쾌해할까 봐 묻질 않았는데…… 마인과 싸운 경험담을 말해 줄 수 있나?”
“내가 왜 불쾌해?”
“자기가 심심하다고 남 이야기를 구걸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 정도로 속이 좁진 않아. 게다가 마인을 죽인 이야기잖나. 언젠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그 말에 양청교가 씩 웃었다.
백무량은 저도 모르게 자신과 그의 얼굴을 비교했다.
‘별호가 옥기린이라더니, 기생오라비 같군.’
속으로 불만을 툴툴거린 백무량이 검해와 운룡을 제외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야기꾼의 재주는 없는지라 여러 곳에서 툭툭 끊어졌지만, 양청교가 참을성 있게 들어 주었다.
그러다 사천당가에서 양청교가 깜짝 놀랐다.
“당문영? 독연화랑 만났단 말인가?”
“곤륜파에 도움을 청하러 왔었지.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은 거의 여동생처럼 여기고 있어.”
양청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문대로 아름다운가?”
“그게 무슨 소용이야, 무인이면 강해야지. 섣불리 다가가다 독에 당해도 난 몰라.”
“…….”
양청교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백무량을 쳐다보았다.
물론, 백무량은 그것을 쥐뿔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사천당가로 침입했는데…….”
구환신수와의 조우, 두 마인과의 싸움!
후기지수라면 누구든 꿈꾸는 이야기가 백무량의 입가에서 줄줄 나왔다.
양청교로선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구환신수가 그렇게 괴팍하다던데, 사실인가?”
“내가 본 무인 중에선 제일.”
“허어……. 부럽군.”
양청교의 말에 백무량이 질색했다.
평화로운 시대에 살아서 그런지 마교가 날뛴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듯했다.
“뭐가 부러워. 그런 일이 없어야지.”
“하지만 무공을 배우고 쓸 일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잖나.”
“없어야 해.”
백무량은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힘 좀 강하다고 자랑질이나 할 거면 왜 무공을 배워? 산골에서 나무나 베는 게 낫지.”
“……크흠, 흠.”
“그리고, 옥기린 자네는 사람을 베어 봤나?”
“아니.”
“그랬군. 그러니까 그렇게 정신 빠진 소리나 하지.”
백무량은 차가운 목소리로 양청교를 나무랐다.
“목숨을 뺏으면 수십 년의 일생을 없애는 거나 마찬가지야. 무공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단순한 살육이지.”
“…….”
“마교를 죽인다는 건 그런 짓을 행하고 다니는 악인을 막기 위함이지, 공을 세우거나 명예를 세우려는 게 아니야. 이해했나?”
“알겠네.”
양청교의 표정이 왠지 시무룩했다.
그걸 본 백무량은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사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산에서 있다 보면 온갖 생각이 떠오르기는 하지.’
백무량이 괜히 사형에게 영웅담을 들었겠는가.
도가의 영산에 있다 보면 마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성장하게 되고, 영웅이 되고 싶단 마음도 샘솟기 마련이다.
어렸던 백무량이 그러했듯, 양청교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내가 괜히 진지했나.’
하지만 양청교의 태도가 지금까지 너무 가볍지 않았나.
백무량은 아무런 말도 붙이지 않은 채 걸었다.
양청교가 중간중간 눈치를 보긴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러다가 도착한 곳.
한중현(縣).
네 개의 수로와 관도가 겹쳐서 섬서의 중심인 서안 다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장소였다.
“오늘은 여기서 묵지. 야영했다가는 칠성교가 급습해 올 거야.”
“그러지.”
짧게 대답하는 양청교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자신만만했다.
백무량은 그걸 의아하게 여기면서 문을 통과했다.
따스한 공기가 백무량을 반겼다.
빈곤한 청해성과는 다르게 섬서성은 물길이 많아 농사하기가 좋고, 사람의 왕래가 잦아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했다.
‘종휘가 좋아할 게 많네.’
아이라면 절대 지나치지 못할 간식들.
달콤한 사탕수수 냄새가 백무량의 코를 간질였다. 양청교도 제법 좋아하는 건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사람 사는 분위기가 나네.”
“칠성교가 골목에서 급습하지 못하겠군.”
양청교가 시장을 볼 때, 백무량은 골목과 벽을 본다.
그 시선의 차이가 양청교에겐 꽤나 놀라웠다.
“……자네, 아저씨 같다는 말 듣지 않나?”
“칠성교와 싸운 게 두세 시진 전인데 꽃밭에 있으면 안 되지.”
“재미없기는.”
백무량은 피식 웃었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철없는 후기지수다웠다.
그때 멀리서 한 남자가 양청교에게 다가왔다.
“양 소협! 섬서에 찾아오신다고 들었습니다!”
“오, 어르신!”
양청교와 남자가 서로 포권했다.
백무량은 양청교의 표정을 보고 직감했다.
‘문을 통과할 때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이거였군.’
공동파의 속가제자가 한중에 있었던 것이다.
남자와 인사를 나눈 양청교가 백무량에게 따라오라는 듯 턱짓했다.
자길 나무랐던 것에 대한 복수인 걸까?
백무량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내저었다.
행동이 너무 어려서 귀엽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뭐, 어쨌든 좋은 곳에 머무르면 좋지.’
그렇게 양청교를 따라 걸어가려는데, 펑퍼짐한 옷을 입은 남자가 백무량에게 달려왔다.
“대……대협!”
“누구시오?”
“만금상단에 속한 정우백이라고 합니다! 윤이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윤이라.
백무량은 조윤의 이름을 떠올렸다.
“윤이라면 조윤 말입니까?”
“하하, 막역한 후배지요! 청해성에 물건을 대는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한데 저 사람들은 누굽니까?”
정우백의 시선이 양청교와 속가제자에게 향했다.
한데 정우백과 시선이 마주친 속가제자가 잔뜩 긴장한 모양새였다.
백무량은 눈치껏 상황을 알아차렸다.
“저기 저 도사는 공동파의 도사 양청교이고, 옆에 계신 ‘분’은 공동파의 속가제자시오.”
“아하!”
정우백은 백무량이 말하려는 바를 알아차렸다.
평소 어떤 관계이든 이 자리에선 다른 신분으로서 예의를 차려 달라는 뜻이었다.
후기지수의 처세가 아니다. 조윤에게 들었던 것보다 속이 깊은 도사다.
정우백의 눈빛이 달라졌다.
“상인 정우백이가 공동파의 도사님과 속가제자를 뵈오!”
“옥기린 양청교입니다.”
“소, 속가의 헌상흉이오.”
양청교는 이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껄껄 웃었고, 헌상흉은 소피가 마려운 사람처럼 버둥거렸다.
그때 양청교가 백무량을 놀리려는 듯 헤죽거렸다.
“나는 속가의 어르신께서 마중을 나왔는데, 자네는 상인인가? 아직 곤륜파의 명성이 중심까지 미치지 못한 모양일세!
“딸꾹!”
헌상흉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을 본 백무량이 양청교에게 물었다.
“만금상단을 모르나?”
“음, 잘 모르네. 사실 산에서 내려온 것도 이번이 두 번째고…… 감숙성에서 나온 건 처음이거든.”
“그렇군. 그래서였어.”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양청교의 말에 백무량은 말없이 헌상흉을 쳐다보았다.
대접할 사람이 눈치가 너무 없어서 고통받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무엇보다 만금상단에 속한 상인이 어디 평범하던가?
‘나와 자길 모욕한 걸로 옥기린을 꾸짖을 순 없으니, 우리가 가고 나서 저 사람을 조지겠군.’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헌상흉은 눈치 없는 후기지수를 대접한 죄밖에 없으니까.
백무량이 두 손을 모아 올리자, 그가 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예의를 표했다.
“여기서 갈라지고, 내일 진시(辰時 : 7~9시)에 만나지.”
“그리하세!”
백무량과 양청교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서로가 안 보일 때쯤, 백무량은 정우백에게 말했다.
“나중에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자도 저 나름대로 고충이 있을 테니까.”
“제가 저 사람에게 받을 게 있어서 말입니다.”
정우백의 목소리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이번 일은 그때를 위해서 아껴 두는 편이 좋겠군요.”
‘이 사람한텐 절대로 빚을 져선 안 되겠군.’
백무량은 고개를 내저었다.
한편으로는 믿음이 가기도 했다.
저렇게 철저하다면 능력이 뒤떨어질 일은 없다는 뜻이니까.
“자, 여기입니다.”
“오.”
과연 백무량의 생각이 옳았던 걸까?
백무량은 삼 층으로 이루어진 전각 앞에서 눈을 끔뻑였다.
‘내일 옥기린을 놀릴 때 좋겠는데.’
자기도 모르게 정우백 같은 생각을 한 백무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