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 (3)
“도사님?”
조롱이 가득 실린 목소리가 불청객의 귓전을 때렸다.
불청객, 백무량은 그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며 우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은연중에 술과 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백무량의 시선이 객잔 내부로 향했다.
뒤이어 백무량은 무인의 숫자를 셈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주방에 있는 인기척까지 포함하면 다섯인가.
백무량은 가쁜 숨을 내뱉었다. 곤륜산 중턱부터 전력으로 달린 탓에 호흡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운산보의 무인들은 그것을 겁으로 받아들였다.
“하하, 이제 현실이 보이더냐?”
“곤륜파가 소싯적에나 구파일방이지, 낄낄!”
웃음을 터트린 무인이 백무량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꼬마야, 어르신한테 혼나고 싶지 않지 않으면 당장…….”
“당장, 뭐?”
“맹랑한 놈, 말대꾸하기는.”
우중의 얼굴을 본 무인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허어, 일이 줄었군.”
“이자에게 볼일이 있었나?”
“어른한테 말이 짧아서 되겠느냐?”
무인의 말에 백무량은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어른은 무슨, 그래 봐야 사파 잡놈이 아닌가?”
무인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뭐라고 하였느냐?”
“됐다. 적산이라는 놈은 어디에 있느냐?”
“이놈!”
분기탱천한 무인이 일순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에 힘이 제대로 실리기는커녕 무작정 휘두른 수준에 가까웠다. 소림 동자승의 주먹이 저것보다는 무거울 터였다.
백무량은 오른발을 채찍처럼 휘둘러 무인의 안쪽 정강이를 후려쳤다.
빠악!
무인의 자세가 흐트러지고 주먹의 타점이 위로 휘었다.
백무량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팔꿈치로 무인의 턱을 갈겼다.
턱에서 기이한 소리가 나더니, 무인이 게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눈이 돌아간 걸 봐서는 혼절 내지는 절명.
우중이 저도 모르게 무인의 맥을 짚었다.
“주, 죽었어?”
“……!”
그 광경을 본 무인들의 얼굴이 굳었다.
무림인이라도 저렇게 급소를 정확히 아는 놈은 드물었다.
하물며 그곳을 정확하게 타격하는 고수는…….
“우습게 보면 안 되겠군.”
누군가가 흘린 혼잣말에 모든 무인이 동조했다.
이에 주방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자까지 합세하여 총 네 명의 무인이 백무량에게 다가갔다.
백무량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투로(鬪路)를 가늠했다.
이긴다? 그것은 이미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싸워야 놓치는 이 없이 쓰러트릴 수 있을까.’
백무량은 감각을 끌어 올리며 패용하고 있던 검을 쥐었다.
“…….”
“…….”
방금까지만 해도 백무량의 외견을 보고 비웃던 무인들은 저마다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허점을 노린 타격이나 숨통을 끊는 일격.
그건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강호에 몸을 담고 있는 무인만이 가능한 냉정함이었다.
그들 중 가장 관록이 긴 무인이 백무량에게 선뜻 물었다.
“곤륜파에 너 같은 놈이 있던가?”
“고인(古人)을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가?”
백무량의 말에 무인이 움찔하여 태도를 고쳤다.
“……부족한 후배가 고명(高名)을 여쭈어도 될는지요?”
“구천검 백무량.”
백무량의 대답에 무인들은 웃음을 머금었다.
당연하지만 감탄이나 존경의 뜻은 아니었다.
“수십 년도 전에 뒈진 고인께서 아이가 되셨다라…….”
어린아이에게 희롱이나 당했다는 허탈함과 분노였다.
“놈!”
무인의 노호를 시작으로 네 명이 동시에 백무량에게 달려들었다.
백무량은 그들의 간격과 걸음을 살폈다. 동시에 달려들기는 했으되, 합격에 능한 자들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저들이 백무량을 모른다는 점이다.
‘이 점을 살려야 한다.’
백무량이 쥔 칼에서 시퍼런 광망이 번뜩이더니, 단숨에 한 무인의 양다리를 앗아 갔다.
“크악!”
내공이 실리지 않은 칼이 뼈를 양단하다니?
비명을 내지른 무인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핏발이 선 눈으로 백무량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백무량으로선 방심을 의도한 셈이었다.
아이에게 어른보다 뛰어난 힘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할 테니까.
“네, 이놈……!”
“잠깐!”
무인들의 움직임에 신중함이 더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모른다.
백무량이 가진 건 힘뿐만이 아니었다.
퉁!
백무량은 다리가 잘린 무인의 머리를 짓누르며 탁자 위에 올라섰다.
객잔 한복판, 그것도 세 무인 사이의 정중앙이라.
무인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오만하기는!”
검과 도, 창 모두 백무량을 향해 내질러졌다.
그걸 본 백무량은 술잔 하나를 걷어찼다. 산산이 부서진 술잔이 도를 든 사내에게 날아갔다.
“흥!”
코웃음을 친 사내가 도를 팔(八) 자로 휘두르며 파편을 쳐 냈다. 이딴 잔재주로 되겠냐는 짜증이 담긴 일 초였다.
하지만 그 일 초가 합격을 모두 망쳤다.
“……!”
“이런!”
허공을 휘젓는 도를 피하려던 창이 검과 맞물렸다. 그러다 결국 창의 끈 뭉치에 칼이 얽히고 만 것이다.
그 광경을 본 백무량은 짙게 비죽거렸다.
소싯적, 강호행을 하며 쌓았던 경험.
그것이야말로 힘보다 강한 무기였다.
“삼류들.”
백무량은 창날을 발꿈치로 내리찍었다.
콰지직!
창날이 휘어지며 탁자가 부서졌다. 위기에 처한 두 무인은 서둘러 무기를 놓았지만, 손아귀가 찢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나 손아귀를 찢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저놈들한테 제대로 된 정보를 얻으려면 더욱 두들겨야 했다.
‘확실하게 제압한다.’
백무량은 두 무인의 가슴팍을 연달아 후려쳤다.
가죽 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객잔 내부에 울렸다.
“곤륜에서 이런 괴물을 키우고 있었다니……!”
“말도 안 돼!”
두 무인의 입가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깊은 내상으로 인해 공력을 끌어 올리긴커녕 움직이기도 힘들 상처였다.
백무량의 시선이 도를 든 사내에게 향했다.
“승복하겠나?”
백무량의 말에 사내는 도를 손에서 놓았다.
“하, 하겠다.”
“저놈과 함께 있었던 무인은 어떻게 되었지?”
“운산보 곤륜 지부에 끌려갔다. 적 선배도 거기 계실 것이다.”
“백선신검은 찾았나?”
“아, 아직 모른다.”
사내의 태도에 한 점의 거짓도 없어 보였다.
‘백선신검의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건 진짜인 모양인데.’
턱을 매만지던 백무량이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객잔 주인은 어디로 갔지?”
사내가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야 곤륜 지부에…….”
“거짓말이군.”
백무량은 객잔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감각을 떠올렸다.
술과 피 냄새.
그리고 주방에 있었던 무인 하나. 이자의 위치가 처음부터 수상했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백무량이 입술을 달싹였다.
“의원, 적당히 하고 주방에 가서 뭐가 있는지 살펴보시오.”
“……끄응.”
백무량의 말에 기절한 척하고 있던 우중이 몸을 벌떡 일으켜 주방으로 움직였다.
결과야 뻔했다.
“흐억!”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목소리가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곤륜산 주변에서 감히 양민을 건드리다니.
백무량은 세 무인에게 짙은 살기를 흩뿌렸다.
“곤륜 지부가 염라국이라도 되나 보지?”
“그, 그건…….”
백무량이 칼을 들었다.
“너희도 곤륜 지부로 보내 주마.”
스릉!
칼이 다섯 무인의 목숨을 앗아 갔다.
***
운산보 곤륜 지부에서 무인의 심문을 마친 뒤.
객잔으로 되돌아간 적산은 혀를 강하게 찼다.
“어디서 또 오지랖 넓은 협객께서 나선 모양이군.”
겨우 서너 시진을 비웠을 뿐인데, 부하가 모두 시체가 되어 나뒹구는 꼬락서니 하고는.
“거, 뒈지기 전에 실력 좀 키우라니까. 놈팽이 새끼들.”
가래침을 뱉은 적산은 손바닥을 휘둘러 날파리를 흩었다.
상처를 들여다본 적산의 미간이 짜증으로 좁아졌다.
“개 썅, 이딴 걸 보고 어떻게 알아?”
무공의 연원을 알아보지도 못하게 마구잡이로 상처를 헤집어 놓은 걸 보면 적어도 구파일방은 아니었다.
특히 곤륜파라면…….
도사라는 것들이 시체를 이렇게 훼손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적산은 탁자에 생긴 흔적을 더듬거리다가, 주먹으로 벽을 쳤다.
“시팔.”
욕을 중얼거린 적산은 주방에서 화주 한 병을 꺼내 부하의 시체 위에 적당히 뿌려 대고, 남은 술은 단숨에 마셨다.
쨍강!
술병을 내던진 그는 객잔을 나섰다.
발아래를 적신 핏물이 질척거렸다.
***
같은 시각.
우중과 함께 곤륜산으로 돌아간 백무량은 현노윤을 따로 불러냈다.
“사실 저 의원은 길을 잃은 게 아니다.”
우중을 쫓아온 색마부터 시작하여, 객잔에서 있었던 일까지.
백무량은 현노윤에게 하루 동안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으음.”
모든 이야기를 들은 현노윤은 침음을 흘리며 백무량을 바라보았다.
어려진 사조를 바라보는 시선에 작지만 노기가 서려 있었다.
“저희가 그리 못 미더우셨던 겁니까?”
“그럴 리가.”
“사조께선 아무런 말도 없이 위험에 뛰어들 위치가 아니십니다!”
“위치라? 내가 곤륜파를 부흥시키길 바라는 게냐?”
백무량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현노윤의 노기를 받아쳤다.
그러나 노기는 잦아들지 않았다. 도리어 백무량의 무덤덤함을 먹어 치우고 부풀었다.
“제가 그런 속물이었다면 얼마나 편했겠습니까!”
“…….”
백무량이 침묵하는 동안 현노윤이 숨을 가다듬었다.
노기가 가라앉은 자리에 깊은 회한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운산보가 십구 년 전부터 청해를 삼키고, 곤륜산맥 근처에서 양민을 죽이는 행패를 벌이고 있습니다.”
“…….”
“저 혼자만으론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걸까.
현노윤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과거에 겪었을 실패의 시간이 그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그건 백무량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불과 보름 이전만 하더라도 백무량은 곤륜파의 고수였으며, 구파일방의 당당한 일원이었으니까.
약자로서 생활해 본 적은 없었다.
청해가 사파에게 점령당하는 꼴 또한 경험한 적 없었다.
‘지난 칠십여 년 동안 아니, 현 장문인이 보았을 청해는 어땠겠는가?’
현노윤이 풍화된 바위와 같은 얼굴이 된 까닭은 거기에 있으리라.
‘내가 실언을 했구나.’
백무량은 현노윤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고통을 견디기만 한 게 아니었다. 이겨 내기 위한 노력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 지치고, 뜻이 꺾여서 풍화된 바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었을 세월이었을 터였다.
‘구천화우검을 보고 곧바로 인정한 까닭이 있었구나.’
백무량의 부활은 곧 새로운 희망이니, 부정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백무량이 깊은 한숨을 내쉬는 동안 현노윤의 말이 이어졌다.
“사조님의 위치는 곤륜파의 고수이기에 중한 게 아닙니다. 어쩌면 운산보에게 세세토록 고통받을지도 모르는 청해의 양민을 위함입니다.”
“…….”
백무량이 침묵한 채 경청하고 있자, 현노윤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번졌다.
‘사조님을 가르치려 들다니.’
장문인의 위치에 있다 보니 잔소리만 늘고 만다.
현노윤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어울리지도 않는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운산보를 밀어내고 나면 곤륜파가 부흥하겠지요. 무림맹의 눈을 가린 악한이 누구인지도 알게 될 겁니다.”
“미안하구나.”
현노윤이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예?”
“앞으로는 숨기지 않으마. 함께해 보자꾸나.”
“예.”
현노윤이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백무량은 그 모습을 보며 현노윤이라는 사람을 이해했다.
백련교에 멸문당한 곤륜파의 명맥을 이은 도사.
운산보에 고통받는 양민을 위해 노력하다 늙어 버린 노인.
현노윤은 백무량이 지금까지 봐 온 도사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격자였다.
“다만, 지금은 너무 일러.”
그렇기에 백무량의 목소리는 차가워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