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117화 (117/318)

<검신재생 117화>

117. 두 개의 단전

“대체 어째서냐? 네놈이 먹은 건 만년월단(萬年月團)이다! 만년월단을 먹어놓고, 어찌 멀쩡할 수 있단 말이느냐!”

칠면염라의 목소리는 여느 때 보다 날카로웠다.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기색이 뚝뚝 묻어났다.

“아하, 이게 그 유명한 만년월단이었어?”

천무백이 감탄을 터뜨렸다. 어쩐지. 느껴지는 극음지기가 보통이 아니라더니.

만년월단.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달빛을 받은 수많은 영약을 한데 뭉쳐 음기를 축적해 낸 희대의 영약이다.

사실 그걸 영약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극음지기의 정수다. 어떤 누구도 소화해 내지 못한다. 소화할 수 없으니 영약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사실 독에 가깝다.

지금까지 칠면염라가 제갈설아에게 먹인 것과는 전혀 다르다.

만년월단을 쪼개고 또 쪼개서, 사람이 섭취할 수 있게 만든 백년월단이었다.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게 바로 만년월단이다.

먹으면, 죽는다.

아니, 온몸이 얼어붙는다.

한데 천무백은 멀쩡했다. 물론 얼굴에 핏기가 모두 가시고 머리카락도 새하얗게 변해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가진 상식을 벗어나는 상황에 칠면염라는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그의 양손이 새의 발톱처럼 손가락을 구부린 채 심장을 뜯어낼 기세로 육박했다.

후웅!

양손에 시뻘건 화염이 출렁였다.

천무백은 그대로 일장을 날렸다.

꽈앙!

“우억!”

파스스스스!

새하얀 수증기가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가득 찼다.

천무백의 양손에서 극강에 달한 한기가 쏟아졌다. 극음지기와 극양지기가 부딪치는 순간, 한겨울 속 온천물이라도 터진 듯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칠면염라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만년월단을 완전히 소화해 냈단 말이냐? 그럴 수는 없다! 고작 반각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무리 천신지체라고 해도……!”

“천신지체는 개뿔.”

천무백이 피식 웃고는 곧장 쏜살같이 쏘아졌다.

그 매서운 기세에 칠면염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너 정체가 뭐야! 어찌 이리 빠를 수가!”

그 상황에서도 칠면염라가 천무백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칠면염라의 수준이 아득히 높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나 그뿐이었다.

반응은 하되 막을 수는 없었다.

“우욱!”

뼛속까지 침투하는 극한의 한기에 칠면염라는 비틀거렸다.

“이 개 같은!”

당장이라도 천무백을 찢어 죽일 듯 소리쳤지만, 그는 좀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칠면염라는 몇 번이고 천무백과 부딪쳤다. 천무백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있는 힘껏 만년월단이 가진 극음의 한기를 마구 쏟아 냈다.

칠면염라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수록 그가 가진 극양지기가 한기를 쫓아내기 위해 더 화려하게 타올랐다.

문제는 그럴수록 칠면염라의 얼굴이 녹아내리는 듯한 현상이 더 심해졌다.

칠면염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네놈, 알고 있는 것이냐?”

아무리 봐도 자신이 지닌 약점을 노리는 듯한 모양새.

그는 믿기지 않는 기색으로 소리쳤다. 고작 저 애송이가 자신이 누군지 알고, 가진 문제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안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하나 이어지는 천무백의 대답에 그는 심장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류칠종의 화종(火宗)이잖아?”

빙글거리는 웃음.

대답을 듣는 순간 칠면염라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 알, 알고 있었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둘러싼 극양지기는 더 미친 듯이 타올랐다.

역설적으로 그럴수록 칠면염라는 몸이 점점 굳어졌다.

“일찍이 예상했지. 시신 중에 화인(火印)이 남아 있었으니까.”

미세하지만 확실한 흔적.

천무백은 시신에 남은 화인을 보고 마류칠종의 화종의 마인이 이번 일에 관계되었음을 예측했다.

이곳에 와서 제갈설아에게 백년월단을 먹여 빙정으로 만드는 것을 보며 확신했다.

정마대전 때도 적지 않은 나이였던 칠면염라였다.

“칠면염라 마조응, 이미 구순은 족히 넘지 않으셨나?”

“……아. 아!”

정체와 나이마저 안다는 사실에 칠면염라는 비틀거렸다.

그의 입에서 왈칵 시커먼 피가 한움큼 토해졌다.

머리카락이 불에 타 버리는 건지, 아니면 피부가 녹아내리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급격한 노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화종 무공의 특성이지.”

천무백은 마류칠종의 화종을 아주 잘 알았다.

알 수밖에 없다.

정마대전 당시 지겹게도 싸운 놈들이 바로 화종 놈들이었다.

일종의 선봉 역할을 이들이 맡았으니까.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서장과 인접한 곤륜산을 통째로 태워 버린 사건.’

그게 바로 정마대전의 시작이었다.

“빙정을 만들어서 극양지기를 막아 노화를 늦추려는 속셈이야, 네놈들의 추악한 노욕으로 유명한 거 아니더냐.”

이유마저 천무백이 들춰내자 칠면염라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천무백은 일부러 그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검을 들어 심장을 찌르지도, 머리를 쪼개지도 않았다.

그저 몸속에 들어온 만년월단의 극음지기만을 쏟아 냈다.

애석하게도 칠면염라에게 가장 치명적이고 확실한 공격임이 증명됐다. 칠면염라는 아무런 수도 못 쓰고 비틀거렸다.

“으아아아!”

극양과 극음은 공존할 수 없었다. 극양지기는 몸속에 파고든 극음지기를 태우기 위해 더 활활 타올랐다. 무언가 타려면 탈 수 있는 가연물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선천지기였다.

젊은 시절, 샘처럼 마구 솟구치는 선천지기가 아니라, 이제는 간신히 노화를 막을 정도에 불과한 선천지기를 연료 삼아 화려하게 타올랐다.

그럴수록 칠면염라의 몸은 빠르게 무너져갔다.

급히 가부좌를 틀어 내공을 다스리려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껏 여자를 납치해 빙정으로 만들어 간신히 연명해 오고, 천무백이 막아 왔던 노화의 제방을 무너뜨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황화에 세워진 제방이 홍수에 무너지듯, 칠면염라의 몸은 크게 무너져내렸다.

“으, 으으으!”

천무백은 그런 칠면염라를 내버려 뒀다.

어차피 당장 죽지는 않는다. 칠면염라가 괜히 칠면염라겠는가.

저대로 모든 내공을 소진할 때쯤, 천무백은 칠면염라를 제압해 정보를 캐낼 속셈이었다.

‘혈귀곡, 그저 암종 출신으로만 이뤄진 단체냐. 아니면 저 화종 녀석들까지 합류했는가.’

반드시 알아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하여 천무백이 여기까지 굳이 일부러 납치까지 당해가면서 온 게 아닌가.

천무백은 칠면염라가 제 몸을 건사하기 위해 운기행공에 빠지는 걸 지켜본 뒤, 제갈설아를 바라봤다.

“아직 늦진 않았군.”

제갈설아의 상태를 확인한 천무백은 곧장 뒤로 돌아가 등에 손을 올렸다.

“걱정하지 마시오, 아직 골수까지 한기가 스며들진 않았으니까.”

골수까지 파고들었으면 천하의 천무백이어도 영 손을 쓰기 힘들다.

천무백은 마치 추궁과혈하듯 제갈설아의 몸 이곳저곳을 두들겼다.

툭, 툭!

“……!”

제갈설아는 점점 사라졌던 감각이 돌아옴을 느꼈다.

그럴수록 몸을 두들기는 천무백의 손이 느껴졌다. 등뿐만 아니라 온몸을 두들기는 손이었다. 전신의 혈도를 두들겨 깨우고, 기경팔맥을 질주하며 전신을 얼려 버리던 한기를 몰아냈다.

“으음!”

제갈설아의 굳게 닫힌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천무백의 행동이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는 신음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천무백이 다짜고짜 제갈설아의 몸을 두들기고 주무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천무백의 손길은 그야말로 세심했다.

마치 제갈설아의 내부를 관조하듯, 그는 한기가 치미는 곳을 두들기고 막으며 선천지기를 끌어냈다. 그러면서 동시에 경천혼공이 만들어 내는 상단전의 공력을 밀어 넣었다.

제갈설아가 먹은 게 만년월단의 극음지기라면 모를까.

백년월단의 음기였다. 맑고 깨끗하다 못해 정순한 경천혼공을 어찌 이겨 내겠는가.

천무백은 하나씩, 천천히 제갈설아의 전신에 스며든 한기를 밀어냈다.

“어, 어, 어떻, 게 하, 하시는?”

“쉿. 아무 말 하지 마!”

한기를 밀어낸다고 한들, 그걸 외부로 발출할 수는 없다.

잠깐이나마 제갈설아의 몸을 이루고 있던 기운이었다.

그걸 밖으로 몰아내는 순간, 제갈설아의 몸은 균형을 잃게 된다.

자칫 치명적인 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신 음기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경천혼공의 따스한 기운을 제갈설아의 몸에 밀어 넣었다. 기존의 극음지기가 자리 잡은 곳에 경천혼공의 정순한 기가 자리를 잡았다.

“으음!”

시간이 흐를수록 제갈설아는 이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서리가 내려앉은 머리칼과 눈썹은 원래의 흑단 같은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던 숨소리는 점점 선명해지고 차분해졌다. 몸에선 서서히 온기가 느껴졌다. 핏기가 가셔 창백하게 질렸던 얼굴에 분홍빛 홍조가 서서히 올라왔다.

‘됐다.’

어느 정도 일을 해결한 천무백은 제갈설아에게 말했다.

“손을 놓을 테니, 곧장 운기행공하시오. 몸에 들어온 기운을 갈무리해서 균형을 찾으시오.”

한숨 돌렸다.

제갈설아는 곧 회복할 수 있으리라.

하나 천무백은 본인의 몸을 보고 미간을 살짝 좁혔다.

사실 그의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다.

누가 보면 당장이라도 얼어 죽을 것 같을 듯한 모양새였다.

칠면염라는 천무백이 만년월단의 기운을 완전히 흡수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해였다.

천하의 천무백이어도 그만한 기운을 반각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흡수할 순 없었다.

그건 경천혼공이란 희대의 심법이 있어도 불가능했다.

천무백은 모든 신경을 배꼽 부근에 집중했다.

경천혼공의 따스한 기운이 기경팔맥을 질주하며 하단전에 접근했다.

꿈틀!

“크읍!”

천무백이 불쑥 솟구치는 신음을 씹어 삼켰다.

하단전에는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극음지기.

천무백은 만년월단의 기운을 흡수한 게 아니었다. 당장 그만한 기운을 받아들이면 몸의 균형이 완벽하게 무너진다. 제아무리 대자연의 기운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상단전이어도, 이만한 극음지기를 버텨 낼 순 없다.

하여 천무백은 결정을 내렸다.

‘하단전!’

지금껏 일부러 신경도 쓰지 않던 하단전에 억지로 극음지기를 밀어 넣었다.

‘이 선택이 어찌 될 줄은 모르겠구나…….’

분명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긴 했다.

하나 강호중원에서 만년월단같은 극음지기를 손에 넣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여기 칠면염라가 화종의 비법으로 만들어 낸 것이니까.

흡수하지 못한다면 제 몸을 잡아먹는 독약이지만, 내 것으로만 만든다면 엄청난 내공을 얻을 수 있는 영약인 셈이다.

경천혼공의 기운이 침범하자, 하단전의 극음지기가 거세게 꿈틀거렸다.

순간 오장육부로 퍼져나가는 한기에 천무백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길들이지 않는 맹수가 뱃속에서 으르렁거리는 기분이었다.

천무백은 곧장 가부좌를 틀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극음지기가 하단전을 완전히 잡아먹고 결국 몸을 집어삼킬 것이다.

그러기 전에 완전히 진정시켜서 천무백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될지는 모르겠다만…….’

천무백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들어본 적도, 실제로 했다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상단전을 개통한 사람조차 강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하단전을 동시에 개통한다니!

천무백은 침착하게 경천혼공을 밀어 넣었다. 맑다 못해 정순하기 짝이 없는 경천혼공은 반항하는 극음지기를 희석하며 하단전에 스며들었다.

상단전으로 하단전을 제압한다.

지금껏 강호에 없던 괴사가 천무백의 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쿠구궁!

과연 극음지기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미친 듯이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덕택에 천무백의 몸이 푸들푸들 떨렸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에 이가 절로 딱딱 부딪쳤다.

그때였다. 지독한 고통과 한기가 뇌리를 파고드는 순간.

그간 상념처럼 떠다니던 선근경의 구절이 불쑥 머릿속에서 선명해졌다.

천무백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선근경의 구절을 외웠다.

“……!”

극음지기와 끝없이 맞서 싸우던 경천혼공의 움직임이 묘해졌다.

반항하는 극음지기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극음지기는 이 기회를 살리겠다는 듯이 맹렬하게 경천혼공을 몰아냈다.

하나 그건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경천혼공은 무한한 포용력을 보여줬다. 반항하는 극음지기를 그대로 감쌌다.

마치 그건…….

‘아아! 선기로구나!’

선근경을 외우며 뚜렷해진 선기.

천무백의 눈이 번뜩였다.

상단전의 경천혼공, 하단전의 극음지기,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선근경의 선기(仙氣).

이 순간.

천무백은 강호 역사상 그 누구도 밟지 못한 영역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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