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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생-29화 (29/318)

<검신재생 29화>

29. 그럼 간단하네

능허는 어이가 없었다.

‘그 양반, 뻔뻔하네. 육십 먹은 노인네보다 더 뻔뻔한 거 같아.’

생긴 건 어린놈이 말이지.

아니, 진짜로 어린 애송이는 맞잖아? 하는 짓이 좀 심한 애늙은이 같다만.

능허의 생각처럼 천무백은 뻔뻔했다.

“태, 태룡방에서 오셨단 말씀입니까?”

문지기, 적랑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 순간이었다. 천무백의 눈이 부릅떠졌다.

“……!”

눈빛으로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저러할까.

적랑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지독한 살기. 곁에 있던 허성과 능허도 온몸이 저릿할 정도였다.

숱한 사선(死線)을 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살기였다.

‘도대체 주군은 어찌…….’

허성은 불가사의한 것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천무백을 쳐다봤다. 그의 시선이 다소 복잡했다면, 능허의 감정은 달랐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살기만으로도 흑심방주는커녕, 방주 할애비가 와도 제압하겠네.’

그 시선이 닿자 적랑은 고개를 숙였다.

“그, 대, 태룡방에서 누가 찾아왔다고 전하면 되겠습니까?”

쾅!

그때였다.

천무백은 절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정문을 크게 박차고 들어갔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능허와 허성마저 당황해 서로 시선을 마주할 정도였다.

“원래 청성표국 막내가 안하무인 개차반이었소?”

“그럴 리가. 근래 조금 퉁명스러워진 건 있어도, 기본 예의는 있는 주군이시오.”

“그럼 지금 저건 뭔데? 하는 짓이 영락없는 흑도의 건달인데…… 아!”

말 그대로 천무백은 지금 영락없는 흑도처럼 보였다.

그제야 능허와 허성은 천무백의 행동을 이해했다. 천무백이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그야말로 전각은 난리가 났다.

‘얼씨구, 많이도 온다.’

천무백은 몰려드는 흑도들을 보며 거침없이 휘적휘적 걸었다.

대문이 터져나가는 소리에 사람들이 몰렸다. 정작 천무백에게 달려드는 이는 없었다.

그들에게 묘한 느낌이 전해졌다.

거칠 것 없는 날것 자체의 분위기.

천무백은 이미 진즉 상단전을 개방하여 주위를 장악했다.

일부러 외기를 압박했다.

흑도들은 천무백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압박감에 주춤거리면서 감히 접근할 엄두를 못 냈다.

흑도는 전형적인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하다.

천무백에서 나는 위험한 향기에 다 주춤거리며 접근하지 못하자, 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수백에 이르는 험악한 인상의 흑도들이 천무백의 주위로 넓은 원을 형성했다.

천무백이 움직일 때마다 그 원이 뒤로 주춤주춤 밀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광경이었다.

천무백의 뒤를 따르던 허성과 능허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혈혈단신으로 와서 분위기 하나만으로 이런 대치상황을 만들어 낸 것.

그 사실만으로도 묘한 감흥에 뜨겁게 끓어올랐다.

대치가 깨진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간부회에 참가했던 간부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누구냐!”

천무백이 간부들을 슥 둘러봤다.

“……!”

순간 천무백의 시선이 닿자 간부들은 흠칫했다. 천무백이 일부러 눈빛에 내력을 담았던 터. 그 시선이 닿기만 해도 몸에 오슬오슬 한기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단지 그 짧은 시선만으로도 간부들은 느꼈다.

‘이거 만만치 않은 놈이다!’

그 와중에 태룡방에서 온 사람이란 사실이 전해졌다.

간부들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태룡방에서 오셨다고?”

“그래. 이 새끼들아.”

“태룡방에서 연락도 없이 갑자기 전령을 보낸 이유가 뭐요? 아니, 전령치고는 하는 짓이 너무 행패인데?”

천무백은 가장 앞에서 미간을 좁히며 따지는 간부를 바라봤다.

능허가 급히 뒤로 다가와 귓속말했다.

“부방주 강개입니다.”

몸은 홀쭉했으나 눈빛만큼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거, 눈빛 하나만큼은 천하제일고수나 다름없군.’

천무백은 저런 눈빛을 아주 잘 알았다.

‘사람을 수없이 많이 죽여 본 눈빛이지.’

딱히 그것에 감흥은 없다.

애당초 강호에 칼을 차고 다닌다는 사실이 피를 묻힐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나 흑도에서의 저런 눈빛은 조금 다르다.

‘어디 한번 볼까?’

천무백이 다시 한번 상단전을 이용해 주위 외기에 의지대로 간섭했다.

강개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강개는 순간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에 전신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는 당황한 눈치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은 께름칙하게 여기던 다른 간부들의 표정이 일순 편해 보였다.

그 사실에 강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 작자, 나한테만 기운을 쏘아 보내고 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만 수백이다.

그중에 한명에게만 집중해서 살기를 쏘아 보낸다?

‘고수, 엄청난 고수!’

살기로 번들거리던 강개의 눈빛이 급속도로 힘을 잃었다.

천무백은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이군.’

흑도들의 특성중 하나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호에서 살아남기 위해 흑도는 대부분 저런 성향이 짙었다. 강개는 그중에서도 더했다. 하면 강개가 죽인 사람 중에 비단 강호인들만 있을까.

양민들을 수탈하는 게 흑도니, 수틀리면 강호와 상관없는 양민들도 숱하게 죽였으리라.

이미 오기 전에 사전 조사를 했다. 예상대로 양민들에 대한 수탈이 극에 달했다.

때문에 천무백은 이들을 상대하면서 거리낌이 없었다.

“강개야.”

“뭐, 뭐요.”

“눈빛에 힘 빼라. 안 그러면 눈알을 뽑아 버린다.”

“허어!”

강개는 입술을 깨물었다. 주위엔 간부들뿐만 아니라 말단까지 다 보고 있었다.

그는 와중에 손가락을 쥐었다 펴면서 허리춤의 검집을 매만졌다.

“얘기 좀 해 주시지요. 태룡방에서 왔으면, 본인 소개쯤은 해 줘야 우리도 대접해 드릴 것 아니요? 나는 흑심방 부방주 강개요.”

“내가 찾는 건 흑심방주다.”

“방주께 보고 드리려면, 적어도 누가 왔다고 얘기해야지 않겠소?”

그때였다.

“거, 방주 새끼 얼굴 보기 더럽게 힘드네. 야, 흑심방주야! 겁쟁이처럼 숨어 있지 말고 그 더러운 면상 좀 보자!”

천무백이 내력을 실어 외치자 전각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고강한 내력이었다.

강개와 간부들의 표정이 일순 새하얘졌다.

‘이런 미친놈!’

‘안하무인이 극에 달했구나!’

‘시발! 태룡방 흑도면 저 정도로 싹수도 없어야 흑도 소리를 듣는 거냐?’

흑도인 흑심방 간부들마저도 치를 떨 정도,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하나 이것은 천무백의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다.

애당초 흑도에서 저런 건 나쁜 게 아니었다. 힘을 가졌다면 그만한 행패를 부릴 수 있다. 이것을 오히려 흑도답고, 남자답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였으니까.

천무백의 사자후에 전각에서 반응이 일었다.

바로 흑심방주가 튀어나왔다.

“태룡방에서 왔다고?”

“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쳐 알아듣는 것인지. 하여튼 무식한 것들이 티를 내요. 일일이 한 명씩 귀에다 말해 줘야 알아듣겠냐?”

“…….”

순간 천무백은 흑심방주의 눈빛을 읽었다.

‘이야. 이거 감 좋은 놈인데?’

이거 만만한 놈이 아니다.

천무백이 재빠르게 흑심방주를 훑었다.

‘가진바 내력은 완세검 정도인가? 약간 더 나을지도 모르지. 손에 상처를 보면, 싸움 경험도 빠삭하고. 흐음.’

솔직히 말해 천무백은 조금 감탄했다.

‘이 정도면 과거 태룡방 수준인데?’

태룡방은 천무백의 기억에도 남을 정도로 인상적인 흑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교와 정도무림이 치열하게 싸울 때, 급격하게 세력을 불린 흑도였다. 단단하게 뭉친 흑도는 마교와 정파무림 사이에서 줄을 타며 세력을 키웠고, 정마대전이 끝난 후에는 정도무림이 함부로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그들은 단지 흑도라고 보기엔 어려운, 엄연히 강호의 거대문파로 봐야 했다.

한데 지금의 흑심방이, 천무백의 기억에 있는 태룡방보다는 못하더라도 거의 그 수준에 근접해 있었다.

‘이런 놈이 방주 자리에 있으니까 그렇지.’

천무백의 눈이 흑심방주를 훑었다.

뱀처럼 사특한 빛이 가득한 눈동자. 사람들의 호흡 사이에 몸을 움직여 본능적으로 시선을 끌어들이는 존재감. 이런 건 타고나야 했다.

강개와는 달리 그는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쉴 새 없이 굴렸다. 그 눈에 담긴 건 의심이었다. 천무백의 존재 자체를 의심했다. 특히 그의 시선이 뒤에 있던 능허에게 닿았을 때, 의심의 빛은 더욱 뚜렷해졌다.

한마디로 의심 많고 머리 좋고, 잔머리까지 굴릴 줄 아는 놈이다.

이런 놈이니 흑심방을 이만큼 키워 냈으리라.

‘그리고 연화루를 제대로 먹고자 노렸으면…….’

아무래도 연화루를 노렸던 건 등초 혼자만의 생각이었으리라.

만일 흑심방주가 직접 연화루를 노렸다면, 그렇게 허술하게 일을 꾸미진 않았을 것이다.

하니 천무백은 더욱 경계심을 높였다.

‘진즉 처리해야 할 놈이군.’

저런 자를 몇 번이고 상대해 봤다.

아직은 약한 것 같아도, 저런 자를 내버려 두면 언젠가 자신의 목에 위험한 비수가 되어 겨눠지리라.

그건 숱한 전생의 경험이었다.

천무백은 여기서 저 흑심방주를 처리해야 하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태룡방에서 오셨다고? 하면 표식이라도 보여 주시지?”

“없다.”

“허. 태룡방의 전령이면 표식이 있을 터인데?”

“전령이 아니니까.”

“전령이 아니라고? 무슨 태룡방에서 간부라도 되시나이까?”

흑심방주가 이죽거렸다.

주위가 술렁였다. 흑심방주는 천무백이 장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말 몇 마디로 그 분위기를 흔들 정도의 강단을 지녔다.

그것이, 흑심방을 일으킨 원동력이었고.

곧, 흑심방주 죽음의 이유였다.

“말 많네.”

스걱!

너무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면 사람들의 사고는 정지한다.

지금이 그랬다.

‘……?’

아무도 보지 못했다.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오는 순간 빛이 번쩍였고, 그 순간에 흑심방주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지독한 침묵이 전각 앞을 가득 메웠다.

철컥.

무심한 얼굴로 검을 다시 검집에 넣는 천무백.

‘나쁘지 않군.’

천무백은 손끝에서 고양감을 느꼈다.

조금 전 발검.

전생에 천무백의 장기 중 하나였던 발검술이었다.

비록 그때의 수준엔 못 미쳤지만, 그대로 제법 감을 되찾았다.

그간 수련과 경천혼공의 성과였다.

천무백이 그렇게 본인의 성과에 나름 만족하는 사이.

흑심방은 그야말로 공황에 빠졌다.

그들을 쳐다보며 천무백이 말했다.

“지금부터 흑심방은 태룡방에서 직접 운영한다.”

“……!”

“방주를 죽인 나, 귀검사랑이 흑심방을 접수한다.”

“귀검사랑?”

“그 태룡방 귀검사랑이라고?”

귀검사랑은 태룡방에서 제법 유명한 인물의 별호다. 천무백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을 별호이니, 제법 한가락 하던 인물이다.

물론 40년하고도 그 전의 인물인지라 흑심방 간부들의 얼굴엔 의심의 기색이 한가락 떠올랐으나…….

“스승의 뒤를 이어 귀검사랑의 별호를 이었다. 혹여 그것이 의심스러운 자는 나와라.”

천무백이 내력을 실어 쩌렁쩌렁 외치자 간부들은 메마른 입술을 끔뻑였다.

흑심방주의 목이 단칼에 잘렸다.

그만한 가공할 무력의 소유자에게 어떻게 덤벼들겠는가.

하지만 부방주 강개가 나섰다.

“태룡방이 흑도제일문이나, 흑심방은 흑심방의 규율이 있소!”

“흑도 중에 가장 강한 놈이 대가리를 차지하는 건 흑도의 균율이 아니던가?”

“전 간부 중 전원이 동의해야 방주로 선정되오!”

“그래?”

천무백이 씩 웃었다.

순간 그 어느 때보다 숨 막히는 정적이 가라앉았다.

“그럼 간단하네.”

천무백의 입이 열렸다.

“반대하는 놈들을 다 죽이면 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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