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5/129)

제4장. 과유불급(過猶不及)-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아침이 밝자 단목장경이 자신의 뒤를 이어 가주를 맡고 있는 아들을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사람을 내보내야겠다.”

“누굴 말씀이십니까?”

“고칠과 고진명.”

아비의 말에 단목운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무사가 있었습니까?”

“우리 애들 말고, 잡혀 들어온 이들 말이다.”

“한도회의 이들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들 중 고칠이란 자와 고진명이란 자를 찾아 보내 주거라.”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아들의 물음에 단목장경이 짜증을 냈다.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거라.”

“하, 하오나 이유를 알아야…….”

아들의 말도 맞다. 가주가 이유를 모른대서야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할까 망설이던 단목장경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가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결코 좌시하지 않을 종자가 검마인 탓이다.

“묻지 말고 시킨 대로 하거라. 그리고 한도회와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

“아, 아버님.”

아비의 그늘에 가려 있다곤 해도 그 스스로의 능력으로 제하이십사강(臍下二十四强)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아들이다.

그렇기에 더욱이 함부로 강제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번 일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목숨은 살리고는 봐야 했으니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내 일 처리 방식이 예에 어긋나는 것도 안다. 하나, 그래야만 하는 일이니 그리만 알고 시킨 대로 일을 처리하거라.”

성격이 다혈질이고 까칠하긴 하지만 앞뒤 가림은 분명하던 부친이었다.

그렇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지 모르겠으나 일단 명은 따르겠습니다. 대신, 최악의 경우가 오기 전엔 알려 주셔야 합니다.”

판단이 빠른 아들의 말에 단목장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마.”

“그럼…….”

고개를 숙여 보인 아들이 나가자 단목장경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젠장맞을 인간. 하필…….”

누군가를 향한 불만이 가득 토해지고 있었다.

마땅치 않은 일을 처리하고 차를 마시던 단목장경은 아들의 방문을 다시 받았다.

“무슨 소리야? 몸이 성치 않다니?”

“고진명이란 어린놈은 단전이 망가졌고, 고칠이란 놈은 사지가 부러졌습니다.”

“아니, 왜?”

“그게 고문이 따른 탓에…….”

“이런, 지금 당장 가자. 가서 원상 복구시켜서 보내야 해!”

“예? 왜 그렇게까지…….”

“그럼 검마한테 그런 상태의 조카와 조카 손자를 보낼 생각이야!”

버럭 화를 내는 단목장경을 보며 가주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 누구요? 설마 마교의 그 검마 말씀이십니까?”

놀란 탓에 그만 발설하고 말았다. 어차피 늦은 거, 은폐를 포기한 단목장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제 그 인사가 다녀갔다.”

“그, 그자가 왜?”

“말했잖냐. 조카와 조카 손자라고.”

“그, 그럼!”

“서둘러라. 사실이 새어나가면 너와 네 아들이 그 꼴이 된다.”

단목장경의 말에 단목세가 가주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여봐라- 당장 약당의 당주를 불러라!”

부리나케 뛰어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단목장경의 표정이 어두웠다.

“옛날 성격 그대로면 그냥 지나갈 인사가 아닌데…….”

단목장경의 무거운 음성이 그의 근심과 함께 흘렀다.

* * *

“끄응…….”

정신이 들기 무섭게 후각을 파고드는 건 진한 약 향이었다.

“깨, 깨어났는가?”

반기는 음성에 고개를 돌리니 의원 복장의 노인이 보였다.

“여기는…….”

“약당일세. 특제 금창약에 내상고까지 써서 뼈는 잘 붙었을 게야. 상처들도 말끔히 아물었고. 자- 어서 이거나 먹게.”

노의원이 내미는 작은 상자를 바라보며 어렵게 일어나 앉은 고칠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혈단일세.”

“혈단이면……?”

“혈가의 영약이지.”

의원의 말에 고칠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이, 이걸 왜?”

“그걸 내가 어찌 아누. 그저 내어주라 명을 받았으니 내줄밖에.”

“그런데 왜 두 개입니까?”

“하나는 자네 옆에 누워 있는 자의 것일세.”

노의원의 말에 그제야 곁을 돌아보았던 고칠이 놀란 음성을 토했다.

“진명아!”

“아는 이인가?”

“제 아들입니다. 어디가 어떻기에 이러고 있는 겁니까?”

“단전이 상했네. 뭐, 내상고를 쓰고 독하지 않은 내상약도 썼으니 상세는 많이 좋아졌을 거야. 거기에 혈단을 먹이면 단전은 회복이 될 걸세.”

그 말에 자신이 들고 있는 상자에 시선을 주는 고칠에게 노의원이 주의를 주었다.

“노파심에 말해두지만 혈단은 하나 이상 먹으면 소용이 없네. 평생 동안 단 한 번, 한 알에만 반응하니 쓸데없이 소모하는 일이 없길 바라네.”

“그, 그렇습니까?”

“그래. 그리고 영약이라는 말에 무슨 마교의 마신단 정도 되는 천고의 영약으로 오인할까 봐 말해두지만, 그 정도는 아니야. 평상시에 먹었다면 십 년 정도의 내공이 늘었을 정도, 지금은 상처를 입고 있으니 그걸 고치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걸세.”

“아, 알겠습니다.”

“왜, 실망이 되나?”

“아, 아닙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지요.”

“옳은 말일세. 그 정도도 영약으로 불리는 건 분명하니까.”

“그런데 왜 우리에게 이렇게 배려를 하는 겁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다만 치료가 끝나면 돌려보낸다는 소리는 들었네.”

“우릴 돌려보낸단 말입니까?”

“그렇게 들었네.”

“이유가 뭡니까?”

“자네가 모르는 걸 내가 어찌 아누. 모르나 본데 난 그저 의원일세. 병세 외에는 아는 게 없다는 말이지.”

그의 넋두리에 고칠이 물었다.

“그럼 이곳에서 그냥 나가는 겁니까?”

“일단은 몸을 추슬러야 하겠지. 그 뒤에 세가의 높은 분을 만나면 나가게 되겠지.”

“세가의 높은 분이라면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글쎄, 자네를 이곳으로 데려온 소가주일 수도 있고, 혈단을 내리신 가주일 수도 있겠지.”

“소가주가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왔단 말입니까?”

“그랬네.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지.”

“그가 왜… 역시 모르시겠죠?”

“잘 아는군.”

노의원의 답에 고칠은 더 이상의 물음이 소용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

혈단은 정말 영약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상처가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아물고, 그 흔적까지 사라졌다.

거기에 부러졌던 팔과 다리는 이전만큼 단단해졌다.

진명도 다르지 않았다.

망가졌던 단전은 혈단을 먹고 나서 완전히 복구되었다.

혈단의 약력이 효과를 발휘한 덕인지 오히려 망가지기 이전보다 튼튼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몸을 추스르자마자 일단의 무사들에 이끌려 단목세가의 가주인 혈파검 단목운정과 마주했다.

“몸은 어떤가?”

“괜찮습니다.”

“고의는 아니었네. 다소 격앙된 무사들이 과하게 손을 썼으니 이해하게.”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에 있었던 이들이다. 고문이 과한 것을 뭐라 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괘념치 않습니다. 더구나 상처만큼 돌려받았으니까요.”

제법 강단 있는 상대의 말에 단목운정은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니 다행이로군. 내 생각과는 다른 일들이 일어났기에 몇 가지 배려를 하려고 하네.”

“말씀하시지요.”

“이번 충돌이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더군. 석연치 않은 점도 보이고.”

“그 말은 이전에 드렸던 것으로 압니다.”

“그랬나? 하지만 불행히도 난 전해 듣지 못했네.”

듣지 못한 게 아니라 듣지 않았다.

이유야 어쨌건 한도회 따위가 대든다기에 밟아버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랬군요.”

상대의 말을 믿어서 수긍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네. 해서 이제라도 바로잡았으면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지금이라도 바로잡는다면 좋은 일이겠지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자네의 지위가 당주라고?”

단목운정의 물음에 고칠이 답했다.

“예. 방위당의 당주를 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위 인사라 보아도 무방하겠지.”

“그렇다고 하기엔…….”

“아아, 당주면 되었네. 내 뜻을 한도회주에게 전하기엔 충분할 테니까.”

“그거라면… 말씀하십시오.”

“이쪽도 피해를 보고 그쪽도 피해를 보았네. 이쯤에서 그만두었으면 한다고 전해주게.”

“그냥 없었던 일로 하자는 말씀입니까?”

“그러네. 그쪽의 피해가 좀 더 크겠지만, 오해를 깨닫고 우리가 먼저 화해를 청한 것으로 한다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겠나.”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닌 듯합니다. 하지만 말씀은 전해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되었네. 자네 아들과 함께 돌아가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고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왜 저희들입니까?”

“그냥, 어쩌다 보니 선택되었을 뿐이네.”

“그냥입니까?”

“그래. 그냥일세.”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상대가 말을 해주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결국 고칠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하는 수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물러난 고칠은 약당에서 기다리던 고진명과 함께 한도회로 돌아갈 수 있었다.

* * *

마침 구출 작전을 위해 준비를 마쳤던 한도회는 고칠과 고진명의 귀환에 모든 걸 멈추었다.

“혈가의 가주가 그리 말했단 말인가?”

자신의 설명을 모두 들은 한도회주, 예자문의 물음에 고칠이 답했다.

“예, 회주님. 분명히 그리 말했습니다.”

“세상에 혈가가 먼저 화해를 청했다? 그들의 성격상 그럴 리가……. 혹시 그들이 누구, 다른 세력과 전쟁이라도 벌이려는 낌새는 없었고?”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긴 혈가가 그렇게 허술하게 정보를 관리하진 않겠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강태명의 의문에 한도회주의 시선이 군사인 설지평에게 향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송구한 말씀이오나 앞뒤 가릴 처지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너무 노골적이잖아.”

예자문의 퉁명에 설지평이 미소를 지었다.

“괜한 사설은 판단만 흐립니다.”

“뭐, 그렇긴 하지만……. 그럼 받아들여야 하나?”

“그러지 않으면 우린 망합니다.”

또다시 이어진 설지평의 노골적인 말에 검미를 찌푸린 예자문이 강태명에게 물었다.

“타각주의 생각은?”

“타각의 절반이 날아간 상태입니다. 전쟁을 지속한다면 결과는 비참할 겁니다.”

“흠… 그거야 그렇겠지. 그럼 결국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건가…….”

그걸 몰라 자꾸 묻는 게 아니다.

너무 덥석 물기엔 위신도 우습고, 상대의 의도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생각을 정리하고자 주변에 묻는 것이다.

“결과는 이미 나와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문제는 그들의 의도겠지요.”

잠자코 듣고만 있던 좌호법 칠파도 묵광겸의 말에 우호법 육웅도 조극동이 동조하고 나섰다.

“맞습니다. 혈가 놈들이 그렇게 순순히 나왔을 때는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하겠죠. 잘못해서 우리의 뒤통수를 노린다면 더 우습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끝장을 보는 것이 낫습니다.”

수치를 당하느니 죽음을 택하자며 반격을 가장 강력히 주장했던 이가 바로 육웅도 조극동이다.

직선적이고 호전적인 조극동의 성격이 그의 말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우호법은 그 성질 좀 죽이시게.”

말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던지 그의 친우이기도 한 칠파도 묵광겸이 제지를 하고 나섰다.

“뭐, 내 말이 틀린 것도 아닌데.”

“그래도 말을 가려서 해야지. 지금 싸우자고 할 때는 아니지 않은가.”

“그거야…….”

호전적이라고 해서 막무가내로 죽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살길이 생겼으니 조극동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하여간 저놈의 성질하곤……. 일단 저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뒤는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상황을 정리하는 묵광겸의 말에 예자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뿐이겠지.”

“예.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으니까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군사가 툭하니 끼어들었다.

“지금 제정신입니까? 뭘 재고 따집니까? 혈가가 물러나겠다는데 가서 고맙다고 할 판이구만.”

군사 설지평의 노골적인 표현에 예자문이 못마땅한 음성을 토했다.

“야- 지평아.”

“왜요?”

“네가 내 친구만 아니었으면 벌써 치도곤 냈다.”

“나도 회주가 친구만 아니었으면 벌써 때려치우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이익!”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강태명이 결론을 내렸다.

“회주님과 군사, 그리고 두 분 호법께서도 뜻을 같이하시니 일단 혈가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하죠. 그럼 누굴 보내 그걸 전할까요?”

강태명의 물음에 군사를 노려보던 예자문이 고칠을 바라보았다.

“문제를 안고 온 사람이 해결을 하지.”

예자문의 시선을 받은 고칠이 고개를 숙였다.

“명!”

그렇게 진명의 수행을 받은 고칠은 다시 혈가로 향했다.

* * *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다시 혈가로 떠난 고칠을 대신해 소식을 갖고 객잔을 찾은 강태명은 고길 부부에게 고칠과 고진명의 무사 귀환을 알렸다.

“다행이군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짧게 답하는 고길과 달리 유 씨는 부처로 시작해서 각종 천지신명의 이름을 모조리 불러대며 감사해했다.

그런 아내를 일별한 고길이 물었다.

“한데, 이놈은 어딜 가고 사돈이……?”

“아직 일이 모두 끝난 것이 아니라 임무를 받고 나갔습니다.”

“임무! 구사일생 돌아온 아이를 다시 내보냈단 말씀이오?”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위험한 일도 아니고 사절로 갔으니 신변에 이상이 생길 일도 없습니다.”

강태명의 재빠른 설명에 벌떡 일어섰던 고길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돌아오려면 수삼 일은 더 걸릴 겁니다. 이제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요. 내 그놈이 돌아오면 보고 가리다.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며칠 더 못 기다릴 일도 아니라오.”

“그럼 그리하시겠습니까?”

“그리하리다.”

고길의 답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강태명이 돌아갔다.

“하늘이 도왔구려.”

그제야 탄식을 터트리며 유 씨와 함께 기뻐하는 형의 모습에 고덕은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 * *

단목세가의 심처, 잔뜩 긴장한 단목세가의 가주 단목운정이 수뇌들과 의논을 나누고 있었다.

“사라졌다?”

“예. 분명 백운산 인근에 들어섰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만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우리 권역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절이 사라졌다, 그 말을 하는 것인가?”

“송구합니다, 가주님.”

세가의 정보를 담당하는 비각의 각주가 고개를 숙이자 단목운정이 검미를 찌푸린 채 물었다.

“사라진 사절의 신분은?”

“일전에 가주님의 명으로 풀어주었던 자들입니다.”

“뭐! 누구?”

“일전에 풀어주셨던… 왜 그러십니까?”

“그들이 왜 다시 와?”

“이미 우리와 의견을 나눈 이들이니 마무리 짓는 사람으로도 제격이라 판단한 모양 아니겠습니까?”

군사인 사촌 동생의 말에 단목운정은 안절부절못했다.

“그, 그거야…….”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그 말은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젠장, 다른 놈을 사절로 쓰는 건데.”

“예?”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찾아. 찾는 게 급해. 애들 풀고 사방을 탐문해. 필요하다면 혈검대를 풀어도 좋아.”

“혀, 혈검대를 말입니까?”

“그래. 지금은 세가의 정예니 뭐니 하면서 꿍쳐 둘 상황이 아니야. 즉시 시행해.”

“아, 알겠습니다.”

이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주의 서슬에 눌린 군사와 수뇌들이 대전을 비우자, 단목운정은 서둘러 태상가주전을 찾았다.

“이런! 무슨 일이 이따위로…….”

“어찌합니까? 아버님.”

“일단 최선을 다해 찾아라. 시늉만이 아니라 정말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미 그리 조치를 취했습니다. 필요하다면 혈검대도 풀라고 명을 내려놓았습니다.”

“잘했다. 일단 무조건 찾아야 한다.”

“만에 하나 찾지 못한다면……?”

“설득해야겠지.”

“믿어줄까요?”

걱정스런 아들의 물음에 단목장경이 무거운 음성으로 답했다.

“믿도록 노력할 수밖에.”

“차라리 기다렸다 기습을 하면……?”

“그런 생각은 세가가 피바다로 변하는 게 싫다면 생각도 말아라.”

“그가 아무리 검마라 하나 아버님과 저, 그리고 장로들이 힘을 합하면 어찌 되지 않겠습니까?”

“절대로 아니 된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무방비에서 당하느니 차라리 준비를 갖추는 것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아들을 바라보던 단목장경이 고개를 저었다.

“사파의 거두였던 사황성을 기억하느냐?”

“사패련과 함께 사파의 양대 산맥이 아니었습니까?”

“기억하는구나.”

“워낙에 유명했던 곳이니까요.”

“그렇지.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네가 기억할 정도로 유명했지. 그 유명세만큼 강했던 곳이고. 성주도 대단한 자였다.”

“유마(劉魔)를 말씀하시는군요.”

“그래. 불행한 인사였다. 한데, 그와 사황성이 어찌 사라졌는지는 알고 있느냐?”

“그것은 불가사의로 남은 일이 아닙니까?”

“불가사의… 그렇지. 그렇게 불렸었지.”

“혹시 어찌 된 일인지 아시는 겁니까?”

“교주가 취중에 내뱉은 말이었다. 마(魔) 자는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고. 천마신교도가 아닌 놈이 마 자를 쓰면 그리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럼 마교가……?”

“그래. 그것도 검마 혼자의 작품이었다는구나.”

“그, 그럴 수가…….”

“믿기진 않았지만, 교주가 취한 척 일부러 흘린 경고였지만 거짓은 아닌 듯했다.”

“하긴 교주가 거짓을 말할 인사는 아니지요…….”

“그래. 문제는 지금의 우리도 석년의 사황성과 그다지 세가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의 유마가 화경이었듯 나도 화경이고.”

“그 말씀은 설마…….”

“그날 검마가 그러더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부친의 말에 단목운정은 놀란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 * *

혈가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 수색했다.

막바지엔 혈가 최고의 정예인 혈검대를 이끈 단목운정이 직접 주변을 훑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단서조차 찾지 못한 혈가는 사절의 실종을 한도회에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

양측은 이전의 은거기인이 불쑥 튀어나온 것과 마찬가지의 일로 판단하고 신중하게 접근했지만, 고덕은 그렇지 않았다.

고칠 부자의 실종 소식을 전해들은 고길이 주저앉고 유 씨가 기절한 그날 밤, 곧바로 혈가로 들이닥친 것이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짓인가?”

느닷없는 음성이었지만,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던 단목장경은 담담한 표정으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오시리라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일단 앉아서 내 말을 들어보시오.”

“변명이라면 들을 생각 없다.”

차가운 고덕, 검마의 반응에 단목장경의 곁에서 함께 기다렸던 단목운정이 나섰다.

“단목세가의 가주입니다. 일단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가주까지 나섰다는 것에서 이들의 마음가짐을 읽은 고덕이 달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말해.”

앉을 생각은 없어 보이는 상대에게 단목운정은 지난 과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예.”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건 아니겠지.”

“정말입니다.”

“천하의 혈가에서 겨우 상승의 일류와 이류에 턱걸이한 무사가 납치된 흔적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보나?”

“그래서 저희도 어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문제는 그 정도로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 이들이 누군가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지?”

“이번 일의 시작부터 의심을 살 곳이 있었습니다.”

“그 은거기인 말인가?”

“예. 한도회가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면 분명히 양측의 분쟁을 유도한 것입니다.”

“그거야 강호에 살면 세 살짜리 아이들도 알 수 있는 것이고. 진짜 하고픈 말은 뭔가?”

“저희가 걱정하는 문제는 왜 그랬냐가 아니라 왜 한도회였냐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고덕이 관심을 보이자 가주가 아닌 단목장경이 나섰다.

“혈가에 침투한 이들이 빼내간 물건은 가주의 신물이었소.”

“그럼 한도회가 운영하는 표국이 운송 중이었다는 것이……?”

“맞소. 타협할 수도, 확인시켜 줄 수도 없는 물건이었소.”

가주의 신물이라면 가문의 자존심이다. 당연히 도난 사실조차 숨기고 싶어 했을 것이다.

“어떻게 관리했기에 그런 걸 도둑맞나?”

“제가 직접 관리했습니다.”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단목운정의 모습에 고덕의 얼굴에 의외란 표정이 떠올랐다.

“자네가?”

“예. 보시기엔 아직 한참 모자라겠습니다만 그래도 제하이십사강에 혈파검이란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접니다. 그런 제가 잠을 자는 동안 빼간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 말은 적어도 화경에 이른 자의 소행이라는 말인가?”

“아니면 천하신투 정도의 솜씨겠지요.”

“그자가 아직도 현업에서 뛰나?”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직 거처를 알아내진 못했습니다.”

심중을 두었으니 찾아보았을 것이다. 더구나 복수를 미룰 인사들이 아닌 혈가이니 그 추적은 집요했을 터.

“꽁꽁 숨은 모양이로군.”

“적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그가 아닐 때입니다.”

“그가 아닐 때라…….”

“예. 노림수가 깊고, 화경의 고수를 보유할 정도로 세력은 큽니다. 이 경우엔 그들의 목표가 한도회나 저희 혈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단목운정의 말에 검미를 꿈틀거린 고덕이 물었다.

“그 말은……?”

“맞습니다. 검마, 바로 대협을 노린 겁니다.”

그 말에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고덕의 시선이 단목장경에게 향했다.

“모면하기 위한 거짓이라면…….”

“내 목을 걸겠소.”

“그걸로 끝나지 않을 거야.”

“수긍하리다.”

단목장경의 답에 고덕의 고심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지금의 결론을 내리기 위해 군사전에 검마의 관련 사실을 알려야 했다.

결국 머리 좋은 군사전 석학들은 사흘 밤을 꼬박 지새우고 지금 단목운정이 말한 가설을 제시했다.

“일단 위치를 알려 주어야겠어.”

“아예 사람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실력은 상관없어. 말귀를 빨리 알아듣고, 머리 회전이 빠른 놈을 붙여 줘.”

“미리 준비해두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말을 남기고 나갔던 단목운정이 잠시 후, 한 젊은 청년을 데리고 돌아왔다.

“누구?”

“제 아들입니다.”

“혹시 소가주?”

“예.”

예상외의 인물을 붙여 줌에 고덕이 물었다.

“의도가 뭐야?”

“우리 측은 정말로 진실되다는 것이오.”

“흠… 좋아. 일단은 믿지.”

“감사합니다, 대협.”

단목운정의 인사에 손사래를 친 고덕의 시선이 조용히 서 있는 소가주, 단목하진에게 향했다.

“지금 움직일 수 있겠나?”

“말씀만 하십시오.”

“그럼 가지.”

그 말을 끝으로 미련 없이 일어나 전각을 나서는 고덕의 뒤를 단목하진이 따라붙었다.

그렇게 마교가 감춰두었던 사나운 사냥꾼 검마가 세상으로 풀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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