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6화 (6/468)

제 3장. 달라달라. -02

반호진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꼭 그나 법무 혹은 후기지수들만 강해져야 할 필요는 없었다.

원래부터 강했던 이들을 더 강하게 만들면 먼 훗날 천하사패와의 전쟁 때 판도가 달라질 것이었다.

어쩌면 천하사패가 중원 정복의 야욕을 섣불리 드러내지 못할 수도 있었고.

최소한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확실하게 줄이는 건 가능할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반호진은 반성했다.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만 가려고 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말이다.

‘손자병법에서도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거라고 했었지.’

중원을 정복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의 고수가 강호에 있다면 제아무리 욕심이 나더라도 선뜻 칼을 뽑지는 못할 터였다.

새외무림이 보기에 중원무림이 만만해 보였기에 침공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반호진이 있는 이상, 미래를 아는 이상 지난 생처럼 미래가 흘러가지는 않을 터였다.

“외우고 싶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만.”

“보지 않아도 매일 듣고 있습니다. 지금도 들려오고 있고요.”

“그래도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르지.”

“틈틈이 읽겠습니다.”

“흐음.”

담현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생각이 많이 성숙해지기는 했으나 아까 전에 말한 대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었다.

그러나 속가제자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랄 수도 없기에 담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 방에 불경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지금 꺼내 오겠습니다.”

“변명용으로 챙겨 둔 건 아니고?”

“그런 의미도 조금은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 기억력이 남다른 걸 사부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잘 알지. 얼마나 영악한지도. 그래서 더 신뢰가 안 간다는 거다.”

근엄한 담현의 눈빛에도 반호진은 긴장하지 않았다.

육체는 스무 살일지 몰라도 그의 정신은 서른이 넘었기에 여유롭게 웃으며 담현의 시선을 흘려 넘겼다.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읊어 보이겠습니다.”

“됐다. 강제로 할 나이는 지났지. 이제는 무공도 자신만의 무도(武道)를 찾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내 욕심이었지. 불문과 크게 연관이 없는 아이를 데려온 것이니, 이 또한 내 업보겠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 역시 소림의 제자입니다. 그걸 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그런데 잠깐 보니 새로운 보법을 수련하는 거 같던데?”

담현이 화제를 돌렸다.

더 이상 이 주제로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새로 떠오른 게 있어 연습하는 중이었습니다. 나한신법(羅漢身法)이나 나한보(羅漢步)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다른 무공을 배울 수 없으니 저 나름대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완성도가 상당해 보이던데?”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완성되면 보여 드리겠습니다.”

“경신술도 중요하지만 달마삼검에 집중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담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칫 잘못하면 강요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어서였다.

물론 나한신법이나 나한보가 달마삼검과 비교하면 현격히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욱이 속가제자에게는 두 무공 다 전부 알려 주는 게 아니었기에 더더욱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달마삼검에 소홀히 하지는 않으니까요. 남은 시간을 더 쪼개서 연구하는 중입니다. 잠도 줄이고 있고요.”

“진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제가 게을러졌다는 소문요?”

“아느냐?”

“저도 귀가 있으니까요.”

반호진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남들의 말에는, 소문에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기색이었다.

그게 담현에게는 생소하게 들려왔다.

약관이 되었다고 해서 이런 류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건 아니어서였다.

“심적으로도 많이 강해졌구나.”

“약하면 잡아먹히는 게 세상이지 않습니까. 이곳이 사찰이라고 하나,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요.”

“흐음.”

담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얼굴로 침음을 흘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늘 그렇듯이 저는 제 갈 길을 갈 테니까요.”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찾아오거라. 그렇다고 꼭 이유가 있어야지만 찾아오지는 말고. 아무리 바빠도 찾아온 제자의 얼굴을 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알겠습니다.”

타박 아닌 타박에 반호진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담현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러는 것도 이해가 가서였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자주 사부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담현이 강해지는 만큼 중원무림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니까.

‘그것 말고도 사부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고.’

아직도 반호진의 기억에는 생생히 남아 있었다.

중원무림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바친 담현의 모습이 말이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이번에는 담현도 절대 죽게 만들지 않겠다고 말이다.

‘사부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 누구도.’

지난 생에서는 반호진도 죽었지만 그 전에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반호진에게 있어 가족이나 다름없는 이들도 많았었다.

때문에 이번 생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만들 작정이었다.

***

“하하, 이거 너무 불쑥 찾아와서 놀라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잠시 쉬는 시간이었던지라.”

담현이 돌아가고 얼마 안 가서 또 손님이 찾아왔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호진은 놀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만약 이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근시일 내에 반호진이 직접 찾아갔을 터였다.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아시겠지만 본사에는 차만 있습니다. 손님이 오셔도 곡차는 없습니다. 필요할 때가 있어 만들기는 하지만 제가 그걸 받을 만한 신분은 아닌지라.”

“괜찮습니다. 밖에 나가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데요. 그리고 절에서 술 냄새를 풍길 수는 없지요.”

오중건이 손사래를 쳤다.

개방의 제자답게 누구보다 술을 좋아하는 그이지만 그래도 때와 장소는 가렸다.

게다가 그저 그런 사찰도 아니고 무림에서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사였다.

술이 아무리 좋아도 소림사에서는 아니었다.

“풍기는 분도 계시긴 합니다.”

“하하하. 제 사부님이 그중 한 명이긴 하죠. 하지만 사부님께서도 소림사에서는 선을 지키십니다. 만취는 하지 않으니까요. 사실 안 취해 계신 날이 없기도 하고.”

어찌 보면 사부를 욕하는 것이었으나 오중건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게 사실이었기에 거리낄 게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와 사부의 사이가 좋다는 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본사에서 곡차를 찾으시지는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지킬 건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방이 되게 검소하네요.”

오중건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찬찬히 방 안을 살폈다.

아무리 소림사라고 하나 그래도 지나치게 검소했다.

정말 필요한 살림살이만 있는 모습에 오중건은 반호진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어제도 또래와 완전 달랐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반호진의 나이는 남궁광과 동갑인 스무 살이었다.

한창 혈기가 넘치다 못해 들끓는 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빛과 말투를 보면 절대 약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또래와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소림사에 이런 잠룡이 똬리를 틀고 있을 줄이야.’

성격도 성격이지만 역시 오중건을 가장 놀라게 만든 건 실력이었다.

오만하다는 말이 있기는 했으나 남궁광의 실력은 진짜였다.

그리고 남궁광의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이면 오만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반호진이 이상한 경우였다.

‘다행히 성격은 무난한 거 같군. 게으르다는 소문은 헛소문인 거 같고.’

어제 보기는 했으나 실질적으로 대화를 나눈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중건은 직접 찾아왔다.

반호진이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한데 역시나 다른 사람들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부유하게 살지 않아서 그런지 소림사의 생활이 맞더라고요.”

“그건 참 흔치 않은 경우인데 말이지요.”

“저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어떻게 보면 그래서 소림과 연이 닿은 것일지도 모르고요.”

반호진은 대답하며 차를 들이켰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피식 웃었다.

어째서 오중건이 자신을 찾아왔는지 반호진은 알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근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나이는 열 살 넘게 어려도 오중건은 예의를 지켰다.

배분으로 따지면 반호진과 그리 차이 나지 않아서였다.

더욱이 그조차도 무경이 가늠되지 않는 무인이 반호진이었기에 오중건은 그에 맞게 예우해 주었다.

거기다 자신에게 예의를 지키는 반호진의 모습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사질들을 통해 이런저런 연락이 오기는 합니다.”

“그중에 사천당가, 모용세가, 화산파도 있지 않습니까?”

오중건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물었다.

마치 자신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누가 봐도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으나 반호진의 평정심을 흔들 수는 없었다.

“연락은 받았습니다. 세 곳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요.”

“어제의 결과가 그만큼 충격적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필요했던 비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에게 말이지요.”

“저에게도 말입니까?”

“예.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지요. 쓸데없이 부피만 키우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만 친구가 많아서 나쁠 건 없습니다.”

오중건이 에둘러 말하며 반호진의 표정을 살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반호진의 표정은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의 조언에도 담담히 차만 들이켰다.

“확실히 친구가 많아서 나쁠 건 없지요. 그런데 지금과 같은 갑작스러운 관심은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부담이 아니라 불편한 게 사실이지요. 저도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이고요. 사실 거절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하하.”

살짝 무거워진 듯한 분위기에 오중건이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새삼 깨달았다.

반호진이 만만치 않은 성격이라는 것을 말이다.

“저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저에게 말입니까?”

“예.”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반호진의 말에 오중건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렇게 대뜸 말을 꺼낼 줄은 몰라서였다.

“하하, 그렇게 말하시니 조금 무섭네요. 다른 분도 아니고 반 공자가 그리 말하니까요.”

“별거 아닙니다. 후개께서 충분히 답변하실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저에게 대해서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

역시나 정면으로 밀고 들어오는 듯한 질문에 오중건의 말문이 막혔다.

지금의 말은 어제의 상황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중건은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

“순수하게 궁금해서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오중건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모르고 있었다면 모를까 알고 있는데 사과하지 않을 정도로 오중건은 철면피가 아니었다.

물론 안 해도 되는 인물이었다면 역시 사과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반호진은 달랐다.

“저는 사과를 받으려고 한 말이 아닌데 말이죠. 그래도 사과를 하시니 일단 받기는 하겠습니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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