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천재 위의 천재. -01
‘이때도 예쁘긴 하네.’
넋을 잃었던 정현과 달리 반호진의 신색은 담담했다.
중원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세 명의 여인을 보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 모습을 힐끔거리던 오중건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색을 안 하려는 게 아니라 삼봉에 진짜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어서였다.
“사백님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으세요?”
“나도 감탄하고 있어.”
“전혀 아니신데요? 되게 무덤덤하세요. 제가 보기에는 잘 그린 그림이나 잘 쓴 글을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럼 너처럼 헐떡여야 해?”
“제, 제가 언제 헐떡였다고 그러세요?!”
정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따지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당황해서였다.
그래서인지 정현의 머리가 다시 한번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를 돌아봐. 네가 삼봉을 어떤 눈빛으로 쳐다봤는지.”
“너무하세요…….”
차마 반박할 여지가 없는 말에 정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까지 축 늘어뜨리며 누가 봐도 측은함을 불러일으켰지만 반호진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애초에 그는 사질들을 강하게 키우자는 주의였다.
열다섯이면 장가도 갈 수 있는 나이였다.
“반 공자가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후기지수들의 실력이요.”
자연스럽게 찌그러지는 정현을 대신에 오중건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그의 질문이 의미심장했다.
단순히 실력을 묻는 어조가 아니었다.
“훌륭하군요.”
“그렇습니까?”
“예. 다들 명문세가 출신이 아닙니까. 기초가 다들 탄탄하네요.”
“사룡은 어떻습니까?”
“저보다는 대사형께 묻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능구렁이처럼 속내를 드러내게 만들려는 오중건의 속셈을 반호진은 자연스럽게 법무에게로 넘겨 버렸다.
그러자 오중건이 흠칫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대답을 회피할 줄은 몰라서였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기재들인 것 같습니다.”
“흠흠! 그렇지요. 사실 저기 있는 이들 중 반 이상이 각 가문의 수장이 될 터이니.”
정석 같은 법무의 대답에 오중건이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원한 상황은 이게 아니어서였다.
한편 이쪽과 마찬가지로 후기지수들 역시 이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소림사의 대제자인 법무와 개방의 후개가 함께 있기에 자연스레 시선이 모인 것이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
“혼자만 머리카락이 있네?”
“검도 차고 있어. 다른 문파의 제자인가?”
“근데 분위기가 되게 화기애애하지 않아?”
비무를 하는 데 정신이 없는 사내들과 달리 여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조용히 말을 주고받았다.
법무와 오중건이 있는 곳을 힐끔거리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모두의 시선이 반호진에게 닿았다.
오중건이야 개방의 제자니 머리카락이 있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반호진은 달라서였다.
“내 말이. 위치도 딱 법무 대사님과 이대제자 사이잖아. 대화도 되게 편하게 주고받고.”
“속가제자인가? 배분이 일대제자면 이대제자가 저렇게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말이 되잖아.”
“그런 것치고는 나이가 너무 어린데. 설사 속가제자라고 해도 법무 대사님과 저렇게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나?”
여인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삼봉이라 불리는 세 명의 여성들도 있었다.
“언니, 저 사람 꽤 잘생기지 않았어요?”
“난 잘 모르겠는데.”
“언니는 오라버니가 미남이라서 역시 기준이 높은 거 같아요.”
제갈세가의 금지옥엽인 제갈혜정이 남궁소연의 대답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무리 남궁세가의 장중보옥이라지만 눈이 너무 높은 거 같아서였다.
“꼭 그런 건 아닌데. 취향 차이지 않을까? 근데 누굴까?”
“저도 궁금해요. 보통 신분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소림사의 제자일까? 소림사에도 검술이랑 도법이 있잖아.”
남궁소연이 눈을 반짝였다.
드물기는 하지만 소림사에서도 뛰어난 실력의 검객과 도객이 나오기는 했다.
그렇기에 남궁소연은 저 남자가 그 경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있기는 한데 익히기가 어려워서 보통은 전수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만큼 재능이 대단하다는 뜻 아닐까?”
“흐음.”
제갈혜정이 두 눈을 좁혔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신기제갈이라 불리는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이가 제갈혜정이었다.
똑똑한 걸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기에 제갈혜정은 날카로운 눈으로 약관 안팎으로 보이는 남자를 살펴봤다.
“그리고 후개께서 저곳에 간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맞아요. 사실 이번에 합류한 것도 우연히 마주친 느낌은 아니었으니까요.”
“누굴까.”
제갈혜정만큼이나 남궁소연 역시 궁금한 눈빛으로 청년을 살펴봤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가 알 수 있는 건 극히 드물었다.
단순히 바라보는 걸로 알아내는 건 한계가 있어서였다.
그런데 그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은 또 있었다.
“맞겠지?”
“아무래도.”
“근데 딱히 특별해 보이지 않는데?”
백도무림 최고의 후기지수라 불리는 사룡(四龍) 중 수좌로 꼽히는 남궁광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가 부친에게 들은 말과는 너무나 달라서였다.
그리고 그건 친구라 할 수 있는 제갈기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해 들은 것과 달리 청년에게서 딱히 특출한 게 보이지 않았다.
“반박귀진일 수도 있지.”
“아무나 가능한 경지가 아냐. 반박귀진은.”
“아니면 무위가 잘 드러나지 않는 무공일 수도 있고. 사실 소림사의 검법에 대해서는 잘 안 알려졌잖아? 속가제자들이 익히는 검공들 말고 칠십이종절예에 비견되는 것들은.”
“그렇긴 하지.”
남궁광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천하제일검가라 불리는 곳이 남궁세가이니만큼 검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렇기에 반대로 소림사가 가지고 있는 검법에 대해서도 다른 가문들에 비해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렇게 궁금해하는 것이고.
“어떻게 할 거야?”
“이럴 때 방법은 딱 하나뿐이지. 직접 부딪쳐 볼 수밖에.”
“역시 대담하다니까.”
“너도 궁금하잖아?”
“그래서 난 널 응원하고 있어.”
제갈기정이 능글맞게 웃자 남궁광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확히 반호진이 있는 곳을 향해 이동했던 것이다.
“어?”
“뭐지?”
“왜 절로 가는 거야?”
갑작스러운 남궁광의 행보에 비무하던 이들을 제외한 모두가 웅성거렸다.
뜬금없이 법무와 오중건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니 다들 의아했던 것이다.
그러나 몇몇은 남궁광의 속내를 알아차리고는 눈을 빛냈다.
“안녕하십니까. 남궁세가의 남궁광이라고 합니다.”
성큼성큼 걸어온 남궁광은 법무와 오중건에게 살짝 묵례한 후 반호진과 정현을 번갈아 바라보며 먼저 인사했다.
그러자 정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룡 중 한 명이자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이렇게 먼저 인사해 올 줄은 몰라서였다.
그래서인지 정현은 허둥지둥하며 황급히 합장을 했다.
“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림의 이대제자 정현입니다!”
“저야말로 반갑습니다.”
“속가제자인 반호진입니다.”
안절부절못하는 정현과 달리 반호진은 담담했다.
남궁세가라는 후광은 그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였다.
분명 대단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정현처럼 놀라거나 들뜰 필요는 없었다.
신분으로 따지자면 그리 꿀릴 것도 없었고 말이다.
“혹 방장님의 막내 제자가 아니신지요?”
“맞습니다.”
정중하되 당당한 남궁광의 물음에 반호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놀랄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법무와 오중건이 놀랐다.
설마하니 반호진에 대해서 남궁광이 알고 있을 줄은 몰라서였다.
스윽.
그래서 법무는 자기도 모르게 오중건을 쳐다봤다.
혹시나 출처가 개방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전 아닙니다!
때마침 법무를 쳐다보면 오중건이 다급하게 전음을 보냈다.
안 그래도 법무가 자신을 의심할 줄 알았기에 오중건은 정말 결백하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반호진에 대해서는 조금도 누설한 게 없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런 오중건의 표정과 대답에도 법무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정말 아닙니다! 남궁세가에서 저에게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는 법무를 향해 오중건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자신은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말이다.
“실례가 안 된다면 비무를 청해도 되겠습니까? 저 역시 검객으로서 소림의 검이 예전부터 궁금했었거든요.”
오중건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남궁광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예 빠져나갈 여지를 두지 않게 말이다.
그 모습에 반호진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정중하지만 그 안에 굳게 자리 잡은 오만함이 그의 눈에는 보여서였다.
“이 자리가 불편하시다면 자리를 옮겨도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본사에 찾아온 손님들을 차별 대우할 수는 없지요. 이곳에서 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청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궁광이 잘생긴 외모만큼이나 멋들어지게 포권을 했다.
정중하다 못해 깍듯하게 느껴지는 포권에 멀리서 나지막한 탄성이 들려왔다.
이곳을 지켜보던 여인들이 남궁광의 모습에 비명 같은 탄성을 터트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정현이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시작하죠.”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내공으로 남궁광과 반호진의 대화를 전부 다 들은 제갈기정이 먼저 앞마당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했다.
비무를 하고 있던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공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분 나빠 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사룡의 일인인 남궁광과 소림사에서 신분이 상당해 보이는 반호진이 비무를 한다고 하자 오히려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그럼 시작할까요.”
“예.”
묘한 기대감이 서린 남궁광의 시선을 흘려 넘기며 반호진이 여유롭게 대답했다.
긴장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자 남궁광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분명 자신에 대해 모르지 않을 텐데 저렇게 여유를 부리니 기분이 살짝 언짢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신선했다.
천룡(天龍)이라는 별호를 얻은 후 그 어떤 후기지수도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기에 남궁광은 신기함 반 놀람 반의 눈빛으로 반호진을 바라봤다.
“제가 비무를 청했으니, 먼저 가겠습니다.”
“그러시죠.”
어느 순간부터 남궁광은 비무를 하면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후기지수들과의 비무에서는 그가 늘 강자의 위치였기에 대부분 선수를 양보했다.
하지만 이번은 그가 먼저 비무를 청했기에 남궁광은 정말 오랜만에 먼저 검을 뽑았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기대했다.
부디 반호진이 예상 밖의 무위를 보여 주기를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승리는 그의 것이었다.
쌔애액!
‘이 녀석도 여전하네.’
물 흐르듯이 발검과 동시에 심장을 파고드는 검극을 보며 반호진이 옅게 웃었다.
십 년 후의 성격이나 지금의 성격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근데 이놈은 알까나.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몇 년 후 추월당한다는 것을.’
히죽 웃은 반호진은 검을 뽑았다.
어느새 남궁광의 검은 그의 지척까지 쇄도한 상태였다.
한데 반호진의 검은 아직도 검갑에서 다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 모습에 남궁광의 두 눈에 실망이 서렸다.
따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