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22/52)

10.

로테르담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에 내린 션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쫓기다가 예상치도 못한 탈출에 성공해 버린 것처럼 갈 곳도 없고 방향도 잡을 수가 없다. 날은 그리 춥지 않았지만, 강바람이 싸늘하게 불었다.

뭔가 계획이 있어서 여기로 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출국 당일까지도 아무 계획도 없었고 심지어 짐조차 싸 놓지 않았다. 오브라이언으로 이직할 때 신세를 졌던 헤드 헌팅 업체와 다른 몇 곳의 회사에서 일자리를 제안했지만, 그 전화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이 너무 멀어서 그런 여유가 없었다.

션은 자신이 다른 사람처럼 직장에 다니고 주말이 되면 쉬고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월급을 받아 한 달의 생활을 꾸리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당연한 인생이었고, 며칠 전까지도 다른 인생의 목적이 있을지언정 삶은 꾸역꾸역 그런 식으로 이루어 왔는데 말이다.

그러나 추방령이 내려진 이상 살던 집에서 더 웅크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밖에서 SSB 요원이 문을 두드렸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옷가지를 대강 꾸려서 가방 두 개를 쌌다. 집은 잠가 놓고 그대로 나왔다. 세를 놓거나 처분을 해야 할 테지만, 그것에 대한 생각도 떠올리지 못했다.

SSB 요원이 그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었다. 정확히는 태워다 주었다기보다 연행한 것이다. 나갈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션은 그 자리에서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는 도시 중에 제일 비행기 시간이 가까운 곳을 골라 티켓을 샀다. 그러나 내리면서 그는 약간 후회했다. 몇십 시간을 비행하는 먼 곳이었다면 그 안에서라도 조금쯤은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아무 계획 없이 이곳에 내려 버렸고, 거리 한복판에서 갈 곳을 잃었다.

가방을 든 채로 멍청하게 두리번거리는데, 검은 머리의 주근깨 소년이 그를 불렀다. 그러나 션은 네덜란드어를 잘 알아듣지 못했으므로 정신감응을 섞고 나서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잘생긴 형! 숙소 찾아요?”

“그래. 그런 것 같다.”

“우리 집에 갈래요?”

그가 영어로 대답하자 소년이 영어로 되물었다.

“빈방 많아요. 사실 너무 많아서 고민이거든요. 방 무지 넓고, 케이블 TV 완비, DVD도 빌려드리구요. 아침 식사 있고, 따뜻한 물도 잘 나와요.”

아들인지 알바생인지는 몰라도 어린애가 이렇게 호객하는 것을 보니 뭔가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션은 신경 쓰지 않고 소년을 따라나섰다. 아무려면 어떤가. 어딘가로 들어가야 하니까 갈 뿐이고, 그는 이미 생활환경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소년은 종종걸음으로 그를 낡은 레지던스로 안내했다. 로비에서 퉁퉁한 남자가 그에게 열쇠를 건네주었다.

“아침 식사는 1층 안쪽의 식당에서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하고 있소.”

“예.”

션은 대충 대답하고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가, 아무래도 찝찝하여 계단으로 올라갔다.

방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그러나 션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창문도 열지 않고 곧바로 소파에 파묻혔다. TV를 켜자 소년이 말한 대로 채널만큼은 잘 갖추어져 있었다. 션은 채널을 대강 돌리다가 잠이 들었다.

삶의 무의미성은 시간마저 멈췄다. 혼자 처박힌 생활은 평온하고, 어두웠다. 그는 소파에 앉아서 해가 지면 잠이 들고, 해가 뜨면 눈을 떴다. 배가 고파지면 내려가서 식사를 하고, 냉장고에 구비되어 있는 맥주를 뜯었다.

처음으로 밖에 나간 것은 엘리엇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영국의 주가는 일제히 치솟았다. 션은 엘리엇의 주치의라는 사람이 기자회견 하는 것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여러 번 보았다. 일단 엘리엇은 큰 이상은 없다는 듯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원인을 지병에 따른 심장 발작이라고 거짓말로 발표하고 있으니 그 말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션은 그날 저녁에 맥주와 피자를 사다가 혼자 축하를 했다. 그래 봐야 허무할 뿐이라서 그건 이내 자책의 술이 되었지만 말이다.

엘리엇은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까. 과거에 그는 기억을 잃었었다고 했다. 플래시백이 일어났다면 자신에 대한 기억까지도 잊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션은 하루는 그가 모든 걸 다 잊어버리기를 바랐고, 또 하루는 자신이 저지른 짓만 잊고 같이 있었던 시간은 전부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역시 전부 기억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만나지 못한다면, 그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겨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그렇지만 틀림없이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션은 술을 마셨다. 취하지 않도록 늘 신중하게 주량을 조절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는 혼자 있었고, 이제는 지켜야 할 것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도 말이다.

* * *

“아.”

어느 날 소파에서 눈을 떴는데 호객꾼 소년이 션의 몸 위에 올라타 있었다. 션은 흐린 눈으로 소년이 헐떡거리면서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현관, 열어 놨었나?”

“그건, 아닌데, 일주일째 한 번도 안 나오시니까 걱정이 되어서……. 아, 형, 아!”

서지도 않은 션의 몸에 몸을 비비면서 소년이 헐떡거렸다. 고개를 숙여 키스해 오려고 해서 그는 소년의 팔을 붙잡았다. 갈색 눈동자가 기쁨과 욕정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션은 폭력적인 기분이 되었다. 몸이고 뭐고 그냥 원하는 사람들에게 내던져 버릴까 생각하다가 그만둔 것은 마지막으로 안았던 것이 엘리엇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감촉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앞으로 다시 그 맑은 빛깔을 들이마시는 일도 없겠지만, 타인과 뒤섞여 더러워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안달이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소년을 끌고 나가 현관 밖으로 내던지고 문을 닫아걸었다. 중화조차 시키지 않고 쫓아낸 탓에 밖에서는 소란이 꽤 오래 일었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시 TV를 켜고 냉장고를 열었다가 술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한 번 정도는 밖에 나가야 할 것 같았다. 호객으로 들은 말과 달리 그리 뜨거운 물이 잘 나오지 않는 욕실에서 대강 몸을 씻고, 그는 아직도 닫힌 채인 가방을 열어 아무 옷이나 끌어내었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옷과 속옷 같은 것이 바닥에 흩어졌지만, 션은 그걸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섰다.

복도에서 아직도 소년이 벌벌 떨고 있었다. 션은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밖으로 나섰다. 햇빛을 몹시 오랜만에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신 눈을 가리고 갈 곳 없이 거리를 헤매다가 그는 조그만 시립 도서관과 마주쳤다. 거기로 들어간 것은 정말 충동적인 일이었다. 조용히, 사람이 없는 곳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딱히 읽을 만한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간행물실로 들어간 것은 CE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면 혹시나 엘리엇의 이야기가 한 줄이라도 나왔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있었다. 정확히는 엘리엇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헤리퍼드 공작가의 전력 공급 정책에 관한 분석 기사가 실린 경제 잡지였다. 션은 그것을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었다. 레일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는 엘리엇의 말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는 헤리퍼드 공작으로 살아가는 방법밖에 모른다고 했으니 그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햇빛과 바깥바람, 단정한 인쇄의 활자들은 잠들어 있던 션의 뇌세포를 깨웠다. 그날이 되어서야 그는 자신이 이제 엘리엇의 이름을 전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는 지위가 높은 사람이다. 비록 사진 한 장 구하지 못해도,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는 인터넷을 서치하고 오래된 신문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는 오브라이언에서 동료들이 말하던 믿기지 않는 낭설이 대부분이었다. 10세기부터 이어지는 가계도와 길게 늘어진 작위 목록을 제외하면 알려져 있는 사실은 국교회 신자라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30년 넘은 종이 신문들은 그것보다 훨씬 믿을 만했다. 션은 엘리엇의 출생 소식이 런던 타임스에 실렸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대부분의 메이저 일간지에서도 헤리퍼드 공작가에 외아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1면에 싣고 있었다.

그 신문에는 사진도 실려 있었는데, 웃고 있는 선대 공작이 직접 작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에 이상한 기분도 들었다. 그는 엘리엇의 외조부에 해당한다는 콘월 공작의 초상화도 볼 수 있었다. 엄격해 보이는 공작의 얼굴에서 엘리엇의 흔적을 찾아내고 션은 혼자서 웃었다. 그는 부친보다 외조부를 많이 닮아 있었다.

이곳에서도 엘리엇의 과거를 뒤져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러는 시간 동안만은 몹시 즐거워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다시 만나지 않겠노라고 맹세했지만, 혼자서 멀리에서 생각하는 일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그는 로테르담에 있는 헌책방 거리를 헤맸다. 30년이 넘은 영국 신문을 찾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주간지 쪽은 더 찾기 쉬웠고, 예상외로 일간지 축쇄판도 어렵지 않게 나왔다. 상원의 연감 같은 것도 있었다.

그는 4살의 엘리엇이 동갑내기 리암과 5살인 알버트와 함께 그림책과 목마가 있는 놀이방에서 뒹굴고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블루베리 잼을 양손과 입에 다 묻히고 있는 어린이 티 파티 사진도 있었다.

리암의 말대로 사진과 사적인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5살 이후로는 끊기다시피 했다. 그러나 션은 그의 과거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튼에 입학했을 때도, 케임브리지를 졸업할 때도 신문에 짧게 기사가 실렸고, 기숙사에서 알버트와 룸메이트로 생활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선대 공작이 죽은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엘리엇은 외아들이었으므로 별다른 이야깃거리도 없이 순조롭게 작위를 계승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사진 한 장 내보내지 못하게 하는 폐쇄적인 공작의 성격에 대해서 불만을 말하는 언론이 일부 있었을 뿐이다.

션이 알지 못했을 뿐이지, 여기저기에 제법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오래된 기록들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도 그를 만족시킬 만큼 많지는 않았다.

결국 그는 다시 침잠했다. 엘리엇이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하고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소식 이후로 TV에서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션은 술을 샀다. 맥주의 도수가 부족해지기까지는 금방이었다.

* * *

벨 소리가 울렸다. 션은 잠결에 그 소리를 들었지만, 찾아올 사람이 있을 리 없으므로 신경을 껐다. 그러나 벨 소리가 몇 번을 더 연이어 울리는 바람에 잠은 완전히 달아나고 말았다. 방문객은 이번에는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션은 내버려 두면 조금 있다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온 뒤로 그를 찾는 사람은 호객꾼 소년 하나뿐이다. 완전히 매혹시킨 것이 아니라 잠결에 살짝 영향을 받은 것에 불과한데도 소년은 끈질겼다. 무슨 일만 생기면 고개를 들이밀었고, 자발적으로 심부름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것뿐이라면 참을 만했겠지만, 이런 생활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하려 드는 것은 몹시 짜증스러웠다.

그것이 악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제 나름 순수한 애정이라는 것이 더더욱 션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결국은 유도된 감정에 불과하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거기에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오늘에야말로 공포심을 심어줘서 쫓아내 버리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필요한 게 없다고 몇 번을…….”

그리고 션은 말을 잃었다. 그럴 리가 없다. 이런 곳에 엘리엇이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이 혹시 약이라도 했었나. 약간의 GFG를 발하여 자기 정신을 점검했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그러니 결국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엘리엇 씨, 어떻게…….”

“오랜만일세.”

“어떻게 이런 곳까지……. 아니, 그건 물을 필요도 없군요.”

엘리엇이 미소를 지었다. 션은 역시 믿기지 않아서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머리를 짚었다. 그리고 준형을 바라보고, 다시 엘리엇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한번 얼굴을 문지른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엘리엇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에 눈이 부셨다. 간신히 포기라는 말을 이해하려 애쓰던 심장이 갑작스럽게 넋을 놓고 뛰기 시작했다.

“다시 만나지 않는 게 옳은 일인 줄 알았는데요.”

“리암과 아일라가 자네에게 각서를 쓰게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만, 그건 내가 만나러 오는 것에는 해당이 없을 게 아닌가. 들어가게 해 주지 않을 텐가?”

“들어오실 만한 곳이 못 됩니다. 그리고 당신과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사죄가 필요한 거라면…….”

그는 애써 대답했다. 또다시 그에게 사죄를 하고,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픔조차 마비되어 가던 전신에 생생한 통증이 다시 달린다. 그러나 엘리엇의 목소리가 그를 부드럽게 불러와 시선을 외면하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았다.

“션. 나는 그날 하려던 이야기의 절반도 하지 못했다네.”

“제발, 엘리엇.”

션은 견딜 수 없는 기분으로 엘리엇에게 부탁의 말을 던졌지만, 엘리엇이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묻는 말에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을 어떻게 거역할 수 있겠는가.

집 안 꼴은 정말로 엉망이었다. 션은 그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옷 가방조차도 제대로 풀지 않고 셔츠나 속옷이 필요할 때마다 끌어냈을 뿐이라서 바닥에 짐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언제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햄버거 껍질이며 일회용 도시락, 포크나 맥주병이 산처럼 쌓였다. 션은 집 안에서 쓰레기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마치 지금까지 시각도 후각도 모조리 멀어 있다가 갑자기 되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것을 엘리엇에게 보이다니. 수치심에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얼굴은 도대체 어떤 꼴일까. 마지막으로 세수를 한 것은 적어도 이틀 이상 이전이다. 거기다가 웃통까지 까고 있다. 그냥 창문으로 뛰어내릴까. 4층이면 운이 나쁘면 죽지도 못하겠지.

션은 침착하게 미친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같이 잠든 날조차도 눈곱 낀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중간에 일어나 세수를 할 정도로 신경을 써 왔는데 이 한 방에 모든 것을 날렸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지만 입을 만한 거라고는 언제 벗었는지도 모르는 추저분한 셔츠밖에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TV를 끄자마자 얇은 벽을 타고 윗집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엇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런 장소로 부르고 싶었던 건 아니다. 션은 하다못해 태연한 얼굴을 하려고 애썼다. 정말로 최악이었다.

“추레한 것은 참아 주십시오. 당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까요.”

“아닐세.”

엘리엇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션은 그것이 그가 무신경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무심결에 준형을 쳐다본다. 그를 동반했다는 것은 역시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일까.

션의 시선을 눈치챈 듯 엘리엇이 말했다.

“준, 자리를 비켜 주게나.”

“안 돼.”

“준.”

“내가 뭣 때문에 여기까지 따라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기척 죽이고 있을 테니까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이야기해.”

“준, 물러가 있어.”

“바로 밖에 있을 거야.”

“그렇게 하게.”

션은 준형의 앞에서 엘리엇과 이야기할 자신이 별로 없었지만, 단둘이 되자 그건 그것대로 초조해졌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션은 그의 다리만 내려다보았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것을 보면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걸까.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 생각은 몹시도 아득하게 션의 머릿속을 점령했다.

엘리엇이 말했다.

“술을 많이 마시는가 보군.”

“예에, 뭐. 요즘에 늘었습니다.”

“무리한 게 아닌가? 안색이 좋지 않은데.”

션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은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은가. 그저 좀 우울한 것뿐이다.

“저 같은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엘리엇 씨야말로……. 몸은, 괜찮으십니까?”

“아무렇지도 않다네.”

“하지만…….”

“플래시백 때문이라네. 한때 사지가 마비되었던 적이 있으니까. 실제로 다리 근육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까 곧 회복될 걸세.”

깊고 깊은 한숨 끝에 중얼거린 말에 엘리엇이 평담하게 대답했다.

“제 탓이로군요.”

“객관적으로 봐서 그렇긴 하지.”

“……정말로, 변하신 데가 없군요.”

딱히 질책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네 탓이 아니라고 달래 주지도 않는 담담한 목소리에 션은 울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 사람은 이렇게도 흔들리지를 않을까.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는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사랑스러워 미치겠는 동시에, 원망스러워 죽이고 싶다.

영구적인 장애를 입혔을지도 모르는데도 그는 딱히 자신을 증오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 식으로라도 마음에 새겨졌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션은 몇 번이나 생각했었고, 그것조차 실패였다는 사실에 몹시 절망감이 들었다.

“무슨 말씀을 하러 오셨는지 몰라도……. 빨리 끝내 주십시오. 엘리엇 씨는 아무렇지도 않으시겠지만, 이게 제게 얼마나……. 고문 같은 기분인지 헤아리신다면.”

“자네는 나와 다시 만난 것이 괴로운가?”

엘리엇이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괴롭습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가……. 자네가, 마음이 변했다면 그것으로 됐네만…….”

“확인 사살을 하러 오셨습니까? 제가 당신을 생각하는 것조차도 용서할 수가 없어서, 당신에게 결코 전달되지 않을 환상에 잠겨 있는 것조차도 참을 수 없어서요? 하긴, 당신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제가 그리워할 자격이나 있겠습니까?”

션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가해자이고, 그는 피해자이다. 언성을 높일 입장이 안 된다. 두 번 다시 엘리엇의 앞에서 이런 식으로 흥분하거나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지만, 좀처럼 감정을 자제할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을 억눌러 넣었다. 이러지 말자. 흥분은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GFG는 엘리엇을 다치게 할 것이다. 그는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애썼다. 엘리엇이 만나러 와 주었다. 그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듣는 말이 증오와 원망이라도 천상의 것처럼 행복할 텐데, 이런 투정을 부려서 어쩔 텐가.

그는 다시 털썩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도 몇 번이나 표정을 없애기 위해 얼굴을 문대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마치 제가 원망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군요. 주제넘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무엇이든 경청하겠습니다.”

“나는 사과를 받으러 온 게 아니라네. 자네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왔네.”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무얼 더 말씀드리기를 원합니까? 당신이 갖고 싶어서 미칠 거 같다는 거? 돌아 버렸다는 거?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다고 해서 당신이 제 것이 될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절 내버려 두십시오.”

“……자네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농담이시죠?”

션은 헛웃음을 쳤다. 눈 안쪽이 뜨거워졌다.

수많은 사랑의 감정을 겪었다. 조그만 호의가 강제적으로 오가는 사이에 산꼭대기에서부터 굴러떨어지는 눈덩이처럼 부피를 불려 격정적인 열정에 휩쓸린 적이 있다. 우연히 피부를 맞댄 사람이 자신에게 미쳐서 그것을 일평생 책임지리라고 생각하고, 퍼부어지는 사랑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며 애정을 깊게 했던 일도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것은 아니었다. 진짜도 아니었다. 그런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제정신을 차리고 “이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면 끝나 버리는, 만들어진 감정에 불과하다. 그에게 향해지는 모든 욕망과 미움이 그러하듯이 사랑 역시 션 자신의 것이었던 적은 없다.

오로지 엘리엇만 제외하고.

어떤 동조도, 공감도 일어나지 않고 무슨 수를 써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일 수 없는 이 무색의 영혼만 제외하고 말이다.

“틀립니다, 엘리엇.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 같은 건 이미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당신을 알게 된 뒤로 완전히 삶이 변해 버렸어요. 당신을 알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고 살 만했던 세상이었는데, 당신을 알고 나서는, 당신이 없는 곳에서는 숨조차도 제대로 쉴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는 웃으려고 애썼지만, 울 것 같았다. 착각도, 환각도 없이 맑게 눈앞에 존재하는 이 사람을 끌어안으면, 자신이 GFG의 덩어리가 아니라 사람인 것 같았다. 그를 향하는 마음만은 오로지 션 맥케인이라는 인간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강제적으로 확대된 것도, 전염된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마음이 이렇게도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 순수한 채로도 영혼까지 빼앗기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왜 나 혼자일까. 왜 이 마음은 공유될 수 없는 것일까. 그는 진짜 절망도 처음으로 알았다. 그의 인생은 엘리엇을 알기 전에도 좋은 일이라고는 거의 없었지만, 그는 그저 상황을 따라 흘러가면서 그것을 참고 견뎠을 뿐이지 적극적으로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무엇인가를 탐낸 일이 없다. 애정을 가지고 있을 때조차도 늘 타인을 가련히 여기는 이상으로 불쌍한 자신을 늘 의식해 왔다. 그가 타인을 생각하는 감정에는 늘 자기 자신과 자신의 GFG에 대한 자각이 개입되어 있었다.

그러나 엘리엇을 향해서는 그럴 수 없었다. 그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애가 타고 미칠 것 같아서, 모든 것을 다 부숴 버리고 싶기도 하고 그를 미워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떠올릴 여유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기껏해야 엘리엇의 눈에 자신이 곱게 비치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런 것 정도가 전부였고, 그것만으로도 머릿속까지 전부 까매지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된 것은 나 혼자뿐이죠. 눈을 뜨고부터 잠들 때까지 하루 종일 당신만 생각하고, 당신이 조금은 나를 생각해 줄까 애를 태우고, 그게 얼마나 돌아 버릴 것 같은 기분인 줄 아십니까?”

엘리엇이 알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릇된 원망이었지만, 부딪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어리석고 이기적이게도.

“당신의 마음속에는 내가 한 조각도 없는데. 당신이 내 말에 응해 주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 줬던 것처럼 다른 사람과 끌어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언젠가 당신의 입술을 맛보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일 푼이라도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남자를 다 죽여 버리고 싶어집니다. 혹시 거기 있는 여자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내일지도 모르니까 길거리에 지나가는 여자들을 모두 홀려서 당신에게서 떼어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션.”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아니, 누구라도 나보다 당신을 잘 알 거라는 생각이 매시간 매분 절 미치게 합니다, 엘리엇 씨. 당신에게 그런 대상이 되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심지어 저는 다른 사람이 당신의 시야에 들어가 있다는 것조차도, 당신과 같은 공기를 들이켜고, 말을 나누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것만으로도 돌아 버릴 것 같은 기분이란 말입니다.”

“알고 있네.”

션은 그가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끔찍한 생각을 엘리엇이 이해할 리 없다.

“아뇨.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오히려 이해하고 있는 건 당신의 아내 쪽인 것 같군요. 저는 당신을 해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후회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심지어 지금, 당신이 저 때문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쁨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션…….”

“잊혀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GFG를 사용하면, 엘리엇은 확실히 죽을 것이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도, 타인의 것도 되지 않은 채로. 이 손안에서 그를 죽이고 마지막 숨결을 빨아들인다면 분명히 행복하리라. 그리고 그 행복함 속에서 죽어 버린다면 그것이 영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주먹을 꾹 쥐었다.

“당신의 아내가 저더러 미쳤다고 하더군요. 저도 압니다. 이런 마음이 당신에게 폐가 된다는 것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도요. 전 지금도 정말로, 죽을힘을 다해서 참으려고 애쓰고 있는 겁니다. 당신을 죽게 하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당신이 아예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당신을 불행하게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없는 사람처럼 내버려 두세요. 그럼 당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죽어 없어질 테니까.”

“션, 이제 그런 말은 그만하게.”

엘리엇이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션은 격정에 휩싸인 나머지 그가 다가오는 것도 몰랐기 때문에 흠칫 몸을 굳혔다. 엘리엇 쪽에서 닿아 온 접촉은 그의 숨마저 멎게 만들었다.

“그게 자네의 진심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네. 자네가 가르쳐 주지 않았나.”

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 안이 쓰렸다. 이래서는 마치 그가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예전에 말일세. 내가 자네에게 헤어지자고 했을 때.”

“엘리엇 씨, 이제 제발 그만해요.”

“끝까지 듣게.”

그의 손이 가볍게 션의 입가를 막았다.

“그때의 나는 내가 자네를 좋아한다든가, 자네가 나를 사랑한다든가 하는 것을 떠나서 그렇게 하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했네. 왜냐하면, 아무리 해도 자네와 행복해지는 미래를 그릴 수 없었고, 자네는 행복해져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지.”

“…….”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엘리엇 씨.”

“나는 행복을 공리적으로 계산한다네. 나 자신은 행복 같은 감정을 깊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밖에 남을 배려하지 못해. 그러니 그날 자네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안 될 일이었네. 설령 나와 자네 사이에 가능성이 있다 할지라도 그건 아마 자네의 끝없는 인내심 위에 세워진 것일 터이고, 그렇게 해서 느낀다는 내 행복이라는 것은 너무 얄팍해서 그리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네. 반면, 자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생의 행복을 쌓아 올린다면 그 가치는 매우 큰 것일 테고, 그건 아마 내가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했던 일 중에 가장 기쁜 일이 되었을 거라네.”

션은 이제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병원에서 그의 뺨에 키스하고 작별 인사 하면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기꺼이 각서를 쓰고, 리암이 건네는 수표를 받은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 것이 엘리엇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한다면, 자신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헤어지는 것이라도. 조금씩 죽어 가는 것이라도.

모순된 감정이 그의 안에서 두 개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회오리쳤다. 션은 눈을 꽉 감았다. 부정한 생각을 없애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의 GFG는 분명히 그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치는데도 불구하고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았다. 깨끗하고 좋은 마음만, 사랑하는 마음만을 키우고 이런 혐오스러운 감정은 내리누르고 싶은데, 그 둘은 마치 연결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함께 부풀어 커지고 만다.

엘리엇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비정상이지.”

션은 눈을 뜨고 멍하게 엘리엇을 바라보았다. 소유욕과 정욕, 광적인 집착과 파괴적인 정복욕이 뒤섞여 근본부터 질척하고 더러운 밑바닥까지도 그의 입을 통해 나오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된다. 그는 엘리엇이 자신을 용납했음을 알았다. 온화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션을 인정했다.

“엘리엇 씨…….”

“그래서, 어차피 다른 사람과는 행복해질 수 없다면……. 그렇다면.”

엘리엇이 미소했다. 벌써 여러 차례 보아 왔던 그 미소만으로도 션은 머리끝까지 화기가 치솟는 것을 느낄 만큼 피가 휘도는 것을 느꼈다. 그는 넋을 잃고 엘리엇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 가능성이 이명을 일으켰다.

“내가, 자네를 가져도 될까?”

헤어진다 하더라도 못난 모습만은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도저히 자제할 수가 없었다. 션은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이 눈을 뜨겁게 만들었다.

“후회, 하실 겁니다. 저는 언젠가 또 당신에게 똑같은 짓을 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저 자신을 압니다. 아마 틀림없이 참아 내지 못할 겁니다.”

“그때는, 실패하지 말도록 하게나.”

엘리엇이 팔을 끌어당겼다. 션은 새파랗게 깊은 눈동자를 감히 마주 볼 수가 없어서 눈을 내리깔았다. 애써 참았던 눈물이 눈꺼풀에 밀려서 뺨으로 흘러내렸다. 엘리엇의 손끝이 그의 뺨과 눈가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완전히 사로잡아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어. 나를 갖고, 자네의 행복을 위해서 사용하게. 그리고 그 행복을 나에게도 동조시키면 돼. 그러면 나 역시 행복하지 않겠는가?”

“엘리엇……!”

션은 그를 붙잡아 밀어내려고 했지만, 도리어 힘없이 당겨져 엘리엇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저항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몸을 내맡겼다. 흐느낌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를 달래려는 듯이 엘리엇이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키스를 떨어뜨렸다.

“나는 처음부터 자네를 용서하고 있었다네.”

션은 엘리엇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엘리엇이 만드는 서늘하고 선려한 세상 속에 있기에 눈물을 흘려 심장 깊은 곳까지 눌어붙은 흙탕 죽을 씻어 내리면서 자신은 조금씩 깨끗해진다. 그래서 이것도 못나고 추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가 약간 난처한 듯이 션의 머리칼을 다정스레 어루만졌다.

거기에는 단 한 번도 그를 보살피지 않았던 신의 손길이 묻어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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