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을 받았다. 마무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끝냈으나 기분은 뒤숭숭했다. 다음에 연락하겠노라 말은 했다지만 주완이 정말 연락을 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관계에서 고백은 가위질이다. 가위는 고백을 받은 이가 건네받을 최악의 흉기였다. 그래서 홍화는 고백 같은 건 절대 안 하리라 마음먹었었다. 거미줄처럼 손가락으로 툭 치면 끊어질 사이더라도 고백같이 무거운 짐만 올려놓지 않으면 일단은 무사할 테니.
주완은 무슨 용기가 샘솟아서 저에게 고백을 한 걸까. 무섭지 않냐던 질문에 오히려 속 시원하다던 주완이 대단해 보였다. 홍화는 겁먹어서 고백은커녕 좋아한다는 말을 연기로 꺼내는 것조차 전전긍긍했다.
백영의 앞에서 좋아한다고 고백할 날이 오긴 올까.
아끼는 후배의 고백을 듣고 몇 시간도 안 지났는데 제 걱정부터 들다니. 퍽 이기적이라며 홍화가 혀를 찼다.
그럼에도 머릿속에 떠다니는 건 주완의 아무렇지 않은 척, 서글픔을 숨기던 미소가 아니라 백영과 함박눈처럼 쌓아온 기억들뿐이다. 술에 진탕 취해서 보낸 첫날 밤이나, 서로 물어 죽일 듯이 으르렁거리며 싸운 일이나, 통화만으로 그리움을 달래던 그때와 어젯밤에 자기 전 서로 다리를 얽고 천천히 문지르며 속삭였던 말들 따위가. 평생 원수처럼 서로를 죽이려 들거나 없는 사람 취급하며 살 줄 알았는데, 침대에서 잘 자라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될지 누군들 짐작했으랴.
좋아한다, 좋아한다. 말이 물방울처럼 똑똑 떨어지다가 어느새 수돗물처럼 콸콸 흘러나오고, 홍화의 컵 같은 마음에 가득 차서 찰랑찰랑 흔들리며 이제 아래로 떨어져 내릴 일만 남았다. 넘쳐흐르면 입 밖으로 흘러나오겠지.
고백이.
치과와도 같은 두려움. 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홍화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머리 위의 가로등 불이 찬란했다. 부나방들이 근처에 모여들어 빛으로 돌진했다. 내일을 모르는 것들이 하는 눈먼 행위들.
홍화의 걸음이 멈춘 걸 안 것처럼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범인은 뻔할 뻔 자였다. 홍화가 망설임 없이 받았다.
―왜 이렇게 안 와. 어디야.
“이제 끝났어. 지금 가는 길이야. 저녁 먹었어?”
―대충. 뭐 먹었어?
“고기.”
순덕과 밥 먹을 때 스테이크를 썰 일은 드물어서 대충 고기라고 둘러댔다. 스테이크나 삼겹살이나 같은 고기긴 한지라 거짓은 아니었다.
―데리러 갈게.
“소화 안 돼서. 좀 걷다가 버스 타고 갈게.”
―집에 와서 운동해. 나랑.
홍화가 으, 하고 바로 학을 뗐다. 백영에게야 운동이지 홍화에게는 아직도 고문이었다. 덤벨은 여전히 무겁고 플랭크도 여전히 힘들었다. 뱃가죽과 온몸이 푸들푸들 떨릴 때까지 굴려대는데 그걸 어찌 운동이라 이름 붙일까. 고문이 맞았다.
“너 요새 한두 번씩 횟수 늘리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그 운동 말고. 오늘 너랑 잘 거야.
홍화가 도로 걸어가려다가 한 발을 뗀 채로 멈칫했다. 가로등 불이 빨갛게 익은 귓가 위로 쏟아졌다. 이런 말에 부끄러움 탈 시절은 옛적에 지났건만, 불시에 기습을 날려 속절없이 당했다.
―보고 싶어, 이홍화.
“…….”
―그러니까 빨리 와.
“……응.”
홍화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당장 택시부터 잡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인적이 드물고 지나가는 차도 드물었다. 정류장까지는 한 이십 분은 더 걸어가야 한다.
홍화는 막 뛰어가려다가 일단 쿵쾅대며 미친 듯이 뛰는 가슴부터 꾹 눌렀다. 언젠가 유백영의 입에서 보고 싶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아랫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유백영도 저와 같은 의미로 그리움을 느끼는 게 아닐까, 달콤한 착각이 가벼운 전율을 일으켰다.
이홍화는 유백영을 좋아한다.
아마,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도 유백영도 아마.
그게 마지막 한 방울이었다. 표면장력으로 끌어 담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컵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좋아해.”
유백영 앞에 서도 나올 수밖에 없는 한마디. 혀가 멋대로 움직여 말을 만들어낼 것이다. 더는 숨길 수 없는 진심이 유백영의 얼굴을 보면 버튼 눌린 장난감처럼, 처음으로 말을 배운 앵무새처럼 끊임없이 터져 나올 것이다.
“사랑해.”
넘쳐흐른 말처럼 마음을 숨기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홍화는 숨을 가쁘게 들이마시고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혔다. 부나방들이 죽을 줄도 모르고 빛에 몸을 던졌다. 홍화 역시 제 진심을 내던질 각오를 세우고 고개를 바로 했다. 자꾸만 사그라지려는 용기를 쥐어 짜내며 홍화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명색이 고백인데 빈손으로 가면 쓰나. 뭐라도 들고 가야 하는데 인생에 이런 이벤트를 계획해본 적이 없어서 촌스럽게 술만 생각이 난다. 나름 의미 있는 소주 두 병을 사 갈까 하다가도, 유백영의 비웃는 입꼬리를 떠올리고 소주 두 병은 그냥 많은 플랜 중 하나로 미뤘다.
제일 좋은 건 반지지만 결혼해달라고 프러포즈할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지금 연 곳도 마땅치 않다. 주문하고 기다렸다가는 밤의 기운에 힘입어 샘솟은 용기가 반지가 도착할 때까지 이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마음은 조급하고, 생각은 안 나고. 홍화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끙끙거렸다. 보고 싶다는 한마디에 마음은 이미 유백영 앞인데도 고백을 앞두고 손에 아무것도 없으니 걱정이 태산처럼 쌓여갔다.
“아.”
하늘의 도우심인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작은 꽃 가판대를 발견했다. 막 장사를 접으려는지 핸드폰으로 티브이를 보던 가게 주인이 몸을 일으키며 불을 끄려 하고 있었다. 홍화가 다급하게 “저기요!”를 외치며 뛰어갔다. 인생에 이렇게 속력을 낸 적은 순덕의 손에서 앨범을 되찾아오려고 몸을 날렸을 때뿐이었다.
백 미터가량을 미친 듯이 질주해서 가판대 앞에 섰다. <블로썸> 촬영 당시 공부했던 꽃들과 이름 모를 꽃들이 아직까지 산뜻하게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루 동안 바깥에서 시달렸을 텐데도 가판대의 빛이 밝아 아직 생생해 보였다.
“꽃다발, 헉, 하나만, 허억, 만들어주세요.”
홍화가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르며 간신히 주문했다. 혹시 끝나서 못 한다고 하면 웃돈이라도 얹어주려 했다.
“여자 친구 주려고? 그래, 어떤 꽃으로 만들어줄까요.”
홍화의 얼굴이 꽃들처럼 밝아졌다. 눈이 바쁘게 꽃을 살폈다. 화려한 노란 프리지어에 꽃잎 끝에 분홍빛이 도는 장미, 보라색 수국과 새하얀 카라 등, 장사 끝물인데도 꽃이 다양했다.
“장미…….”
고백에는 당연히 장미라고 외치려던 때, 하얀 꽃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밤바람에 꽃잎을 살랑살랑 흔들어가며 저를 데려가달라고 유혹하는 듯싶었다. 단아한 흰 꽃들을 보자 부케가 떠올랐고, 순덕의 장난 어린 말에 상상했던 유백영의 턱시도 입은 모습도 꼬리를 물고서 뒤따라왔다. 검은 턱시도에 흰 부케를 든 유백영이.
“저 혹시……. 부케처럼도 가능한가요.”
겨우 꽃다발을 주문하면서도 낯이 붉게 달아올랐다. 홍화가 버벅대며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들은 주인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가능하죠. 근데 결혼식에 쓸 건 아니죠?”
“네.”
“그럼 장미 괜찮아요? 단아한 것도 좋은데, 결혼식에 쓸 거 아니면 조금 화려하게 가도 괜찮아.”
“사장님의 안목만 믿습니다.”
심미안이 있었다면 저가 직접 골랐을 테지만, 그 분야에서 전문가인 사장을 믿는 게 낫다는 판단에 홍화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주인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 웃으며 분홍빛 도는 장미와 크림색 장미를 쏙쏙 뽑아 들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의 손길처럼 유려하게 꽃을 다듬고 손을 보더니 순식간에 꽃다발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어차피 오늘 장사 끝이라 다른 때보다 많이 넣었어요. 가격은 정가만 받을게.”
주인이 단단한 줄기들을 하얀 리본으로 돌돌 말아 정말 부케처럼 보이는 풍성한 꽃다발을 안겨줬다. 장미 향이 그득해 홍화가 잠시 꽃다발을 코끝에 가져다 대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주인이 그런 홍화를 흐뭇하게 쳐다봤다.
“누군지 몰라도 정말 좋겠네. 이렇게 잘생긴 청년에게 꽃다발도 받고.”
“좋아……할까요?”
홍화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무슨 답을 주랴마는, 푸근하게 웃은 주인이 그럼, 그럼 하며 고개를 크게 주억였다.
“당연하지. 처음 만나는 사람도 그쪽이 고백하면 좋다고 받아줄 거예요. 용기를 가져요.”
주먹까지 쥐어 보이며 가게 주인이 파이팅을 외쳤다. 홍화도 덩달아 주먹을 쥐고 똑같이 파이팅을 외쳤다. 주완처럼 시뮬레이션이라도 그려봐야 하는데, 가게 주인의 응원 덕택인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우물물처럼 샘솟고 해피엔딩만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희망이 비 맞은 죽순처럼 무럭무럭 자라났다.
“잠깐만 기다려요. 장사 마감한다고 거스름돈을 저쪽에다 놨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홍화는 꽃다발을 바라보며 헤죽헤죽 웃었다. 백영이 꽃다발을 받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웃을까, 곤란한 듯 찌푸릴까, 뭘 이런 걸 다 준비했냐며 귀 끝을 붉힐까. 아침마다 그러하듯 뺨에 이마에 코끝에 뽀뽀를 퍼부을까, 아니면 꽉 껴안고 제 이름이 세상에 전부인 것처럼 속삭일까. 경멸이나 혐오 어린 표정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다음 뉴스입니다. 영화배우 유백영 씨가…….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티브이 대용으로 켜놓은 핸드폰에서 익숙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 흘러나왔다. 홍화가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 작은 화면에 유백영와 배소희의 사진이 떠 있었다. 예전에 보고 싶지 않아도 줄기차게 나오던 영상이었다. 지난 뉴스인가 보지. 홍화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른나무 소속 배소희 씨와의 열애설에 대해 ‘최근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조심스럽게 만남을 시작했다’며 사실상 열애를 인정했습니다. 유백영 씨의 소속사 스페시아 엔터테인먼트는 오늘 보도 자료를 통해 ‘두 사람의 오랜 우정이 사랑으로 결실을 맺었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홍화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화면에는 여전히 플래시 세례를 받는 백영과 영화 시사회에 나온 배소희의 자료 영상을 따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보다는 밑에 뜬 속보 같은 자막과 앵커의 높고 낭랑한 목소리가 홍화의 귀를 꿰뚫었다.
―소속사는 이어 ‘이전에도 열애설에 휩싸이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보듬는 친구 사이였음을 분명히 밝히며, 이제 막 연인으로 발전한 둘을 예쁘게 봐달라’고 덧붙였습니다. 배소희 씨는 3년 전 스페시아 엔터테인먼트에서 이른나무로 옮겼으며, 유백영 씨와는 같은 소속사 때부터 친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꽃다발을 쥐었던 손이 아래로 툭 떨어져 내렸다. 두 번째 열애설이 터졌다. 처음보다 강렬했고, 거기다 소속사가 나서서 도장까지 쾅쾅 찍어줬다.
유백영과 배소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둘의 예쁜 사랑을 지켜보겠다는 네티즌들의 응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둘이 결국 사귀나 보네. 이래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니까.”
거스름돈을 들고 돌아온 주인이 뉴스를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홍화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 뉴스만 뚫어지라 보았다. 화면 안에서 웃고 있는 유백영을. 방금까지만 해도 저에게 보고 싶다고 속삭이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어머, 이봐요. 괜찮아요? 얼굴이 너무 창백한데.”
낯빛이 시체처럼 하얘진 홍화를 보고 주인이 걱정스레 쳐다봤다. 홍화가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주인을 올려다봤다. 눈동자가 곧 부풀어서 터질 것처럼 잘게 떨렸다가, 깜박하고 나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가라앉았다.
“거스름돈…….”
“안 주셔도 됩니다.”
당장에라도 던져버리고 싶은 꽃다발을 손에 꼭 쥐었다. 떨떠름해 하는 주인에게 연기하듯 방긋 웃어 보이고, 홍화가 몸을 돌려 터벅터벅 가판대를 떠났다.
처음 유백영의 열애설을 들었을 때는 그저 충격이 앞섰다. 머리와 가슴이 지끈지끈 아파 어디가 더 아픈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텅 비었다. 가슴을 가득 채웠던 물 같던 감정이 한꺼번에 썰물처럼 쓸려나가 모래조차도 남지 않은 무無와도 같았다.
홍화는 정처 없이 걸었다. 유백영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었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도 아니었다. 목적지가 사라져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의식 없이 걷는다는 표현이 옳았다.
저번에도 갈 곳을 잃고 헤매다가 정류장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오늘도 그럴까. 똑같은 짓거리를 똑같이 반복할까.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초라하고 비참했다. 그나마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 이미 다 쏟아버려서 안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떻든 질질 짜며 걸어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유백영은 배우야. 네 앞에서 거짓말하는 거,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입술에 침 한 방울 안 바르고 연기할 배우라고.」
유백영 연기 잘하는 거야 전 국민이 다 알지. 어린 나이에 상을 휩쓴 배우인데 그 정도 연기는 애기 손에서 사탕 빼앗듯이 쉽겠지. 제 앞에서 보인, 달콤한 착각을 일으킬 행동도 감독과 대본이 만들어낸 연기일 테지. 유백영 감독에, 유백영이 집필한.
정치 뉴스를 덮으려는 쇼라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라고. 유백영은 제 말만 믿으라고 귀를 막고 눈을 가리려 했다. 뭘 믿으라는 건지 믿음이라고는 쥐뿔만큼도 주지 않고서.
유백영은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다. 과연 누가 거짓말쟁이일까. 저를 믿으라고 여우처럼 꾀던 유백영이, 아니면.
「지금이야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그러다가 결혼한 커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걸음이 멎었다. 가로등 불에 툭 하고 뭔가 부딪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날개가 찢긴 커다란 나방 한 마리가 아래로 추락해 홍화의 뺨에 분진을 남기고 운동화 옆에 떨어졌다. 날개를 파르르 떨어보지만 끝내 다시 날아오르지 못했다.
내일이 없는 것들이 저지르는 무모한 짓들.
홍화는 뺨을 손등으로 쓱 닦아냈다. 머릿속에서 김강수가 무심코 던진 말이 메아리쳤다. 불현듯 손이 묵직했다. 쇳덩이처럼 무거워 팔을 들어봤다. 좀 전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살아서 향을 뿜던 꽃들이 시들기 직전처럼 흐물흐물했다.
흰 부케. 검은 턱시도를 입은 유백영과 잘 어울릴.
하하,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가 막힌 망상이었다. 유백영에게 꽃을 주고 마음을 고백하겠다고. 지나가던 개도 배를 까뒤집으며 비웃을 판타지였다.
듣는 이 없는 웃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다가 뚝 멎었다. 홍화는 묵묵히 부케를 내려다봤다. 흰 부케를 들고 웃을 이는 이홍화도, 유백영도 아니었다.
“……. ……씨발.”
홍화가 왔던 길을 홱 돌아섰다. 이제야 길이 보였다. 눈뿐만 아니라 머릿속에도 길이 그려졌다.
고백은 가위질이다. 고백받는 이에게 흉기를 건네는 어리석은 짓이다. 그 사람이 흉기로 관계를 끊을지 휘두르지 않을지 결정권을 주고 조마조마하게 가슴 졸이는 어리석은 짓이다.
저는 아직 유백영에게 흉기를 건네지 않았다.
홍화는 꽃다발이 검 손잡이라도 된 듯이 꾹 쥐었다. 물은 흘러넘칠 만큼 흘러 이제 잔잔했다. 승산은 있었다.
∞ ∞ ∞
뭐라 말을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단순히 유백영을 보고 싶었다. 묻고 싶지도 않았다. 손에 든 짐짝을 축하한다고 넘겨주고, 그간 몸 섞은 정이 있으니 마지막 인사나 하고 오자 정도의 감상이었다.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도 연기에 불과했으니 유백영과 이홍화 사이에 정리할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유백영의 집에서 챙겨 올 짐도 없었다. 몇 안 되는 옷가지는 유백영의 냄새가 묻어 모두 버릴 작정이었고, 속옷이나 나머지 자질구레한 것들은 모조리 유백영이 사줘 제 것이 아니었다.
관계며 짐이며 죄다 버릴 각오로 오긴 했으나 현관문을 앞에 두고는 홍화도 멈칫했다. 그간 눈물도 분노도 없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있던 얼굴이 울듯이 일그러졌다. 입술을 꽉 깨물었더니 아랫입술이 따끔하게 찢기고 핏물이 올라왔다.
그냥 모른 체하면.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손에 든 꽃다발이 묵직했다. 희고 분홍빛 도는 꽃들이 현실을 알라며 비웃었다. 이미 끝난 관계를 붙들고 미련하게 뭣 하는 짓이냐고, 그렇다고 유백영이 널 조금이라도 봐줄 거 같냐고 비웃음 지었다. 어렸던 어느 날, 문틈으로 엿본 엄마처럼 차갑고 냉정한 표정을 꽃들이 짓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홍화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익숙해진, 이제 잊어야 하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유백영이 뭐 하고 있을까 오면서 아주 잠깐 생각하긴 했었다. 통화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홍화가 온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핸드폰을 귀에서 떼지 않았다. 유백영의 목소리 크기가 점점 높아졌다. 영어라 홍화는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격앙된 어조라는 것 외엔.
홍화는 가만히 서 있었다. 어차피 꽃다발만 주고 갈 거라 신발을 벗을 필요가 없었다. 유백영이 절 발견하기만을 바라며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매달리고, 긁어댔고, 하루는 업혔던 그 등. 따스하고 넓었던 등을.
무슨 인사가 좋을까. 잘 있으라고 깔끔하게 한마디만 던지면 될까. 그간 고마웠다는 인사가 나을까. 고맙다니. 뭐가 고맙다고. 먹여주고 재워줘서 고맙다고. 그간 돈 한 푼 안 들이고 유백영 덕에 평생 살아보기 힘들었을 좋은 집에서 먹고 자고 쉬었으니 그건 고마운 점이었다.
홍화가 핏 코웃음 치며 자조했다. 작은 소리였는데도, 그 소리 덕에 백영이 돌아봤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다. 눈빛도 사람 하나 때려잡을 정도로 사나웠다가, 홍화를 보고 서서히 누그러졌다. 핸드폰 너머로 상대방이 시끄럽게 소릴 질렀다. 백영이 전화를 뚝 끊고 홍화에게 다가왔다.
“이홍화, 너…….”
“이거 받아.”
무거운 꽃다발부터 건넸다. 유백영이 꽃다발을 내려다봤다. 홍화가 한 번 더 품에 밀어 넣자 반 억지로 받아 들었다. 짐이 사라지자 어깨가 가벼워졌다. 홍화가 다른 손으로 저린 어깨를 주물렀다. 손아귀에 힘을 주고 눌러도 딱딱한 어깨는 풀어질 줄 몰랐다.
“그간 고마워서.”
“무슨 의미야.”
다른 때는 단어 하나만 말해도 잘 알아듣더니. 홍화가 백영을 올려다봤다. 모르는 눈빛이 아니었다. 알고도 되물은 것이었다. 캐묻고 해명을 받아내려고.
“예전에 배소희 씨하고 드라마 찍었을 때 네 안부 묻더라. 이제야 전해주네.”
하아, 하고 백영의 한숨이 한도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홍화는 그런 백영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침묵을 메울 듯이 백영이 손에 쥔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었다.
“내가 그 씨발 개 같은 소문…,”
“전화 안 받냐?”
버튼을 누른 듯 벨 소리가 뚝 끊겼다. 홍화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깨만 으쓱했다. 오기 전에 머릿속이 캄캄했는데, 백영을 보고 나니 대본을 읽은 듯 어떻게 행동하라고 지시가 내려온 것만 같았다. 그 대본엔 우는 장면도, 웃는 장면도, 옷자락을 잡고 매달리는 장면도 없었다.
“믿지 말라고 말했잖아.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이홍화.”
백영이 마른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또 한숨지었다. 피곤한 듯이 눈가를 꾹꾹 누르기도 하고, 홍화를 위로할 듯이 손을 뻗기도 했다. 뻗은 손이 제 몸에 닿기 전에 홍화가 백영의 손목을 툭 쳐냈다. 손이 옆으로 치워지자 백영이 반쯤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뭐?”
“네 소문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네가 다른 사람하고 뭔 짓을 했든 나랑 관계있나.”
자각이 뒤늦게 이루어질 때가 있다. 지금이 그랬다. 밤을 보내고 입을 맞추고 손을 잡고 공간을 나누지만 둘 사이엔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도 연인도 뭣도 아니었다.
거미줄 같은 관계의 종말은 홍화가 고했다. 얇디얇은 줄은 손가락을 걸 필요도 없이 말 한마디면 톡 끊길 것이다. 홍화는 지끈거리는 가슴을 모른 체했다. 통증도 모른 체하면 없어질 거라고 믿고 싶었다.
“무슨 개소리야. 상관이 왜 없어.”
“우리가 무슨 사인데.”
백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처음 만난 그때, 가로등 불에 홍화의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 보며 품평하던 그때처럼 비열하고 싸늘하게. 분노와 비스름한 빛이었다.
“이홍화 너야말로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입으로…….”
전화벨이 다시 울었다. 당장 받으라고 신경질적이었다. 몇 초 안 가 뚝 끊겼다. 전원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이 와중에도.
“네 입으로 좋아한다고 말했으면서 우리가 무슨 사이냐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 말을 믿으라고 지금?”
“연기를 믿어? 네 입으로도 그랬잖아. 연기해보라며. 그래서 해줬잖아.”
“……아무리 봐도 네가 그 개 같은 스캔들을 믿어서 그런 거 같은데. 그거 사실 아니야. 이딴 일 한두 번 겪어? 정치에서 씨발스러운 짓거리할 때마다 연예인들 총알받이 되는 거 너도 모르는 거 아니잖아. 저번에 분명 말했는데 이홍화, 그때 기억은 얻다 팔아먹었어. 울며불며 난리 쳤으면서 왜 똑같은 짓을 또 하려고 해. 거기다 그 여자는…….”
“무슨 착각을 하는 거야.”
“…….”
“네가 배소희하고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못 들었어?”
“……착각……. 하, 착각.”
목소리가 낮아졌다. 눈을 꾹 감고 백영이 심호흡했다. 핏줄과 힘줄이 목울대를 지나 목선에 도드라졌다. 입술이 하얗게 질리도록 깨물었다가 백영이 눈을 떴다.
“좋아. 착각이라고 하자. 그래서 이홍화 지금 네 진심은 뭔데. 그게 연기였다면 지금이라도 말해. 네 마음이 뭔지.”
하, 하고 이번엔 홍화가 한숨같이 웃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유백영은 제 마음을 캐묻기 바빴다. 본인이 쥔 패는 여전히 단 한 장도 뒤집어 보여주지 않는다. 끝까지 지독하게 이기적이었다.
“없어, 그딴 거.”
“…….”
“뭘 상상했어, 유백영. 설마 내가 널 좋아할 거라고 착각했어? 왜? 어떤 점에서? 내가 너 따위를 왜 좋아해.”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유백영이 팔을 휘둘렀고, 홍화가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벽에 퍽, 뭔가가 처박히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 핸드폰 액정이 박살 난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말해봐.”
목소리가 음산할 정도로 낮아졌다. 홍화가 주춤했다가 백영의 손에 들린 꽃다발을 내려다봤다. 하얗고 아름다운 꽃들. 신부의 손에 들려야 할.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 차분하게 대처하자던 각오가 사라졌다. 울컥하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질척한 감정들이 솟구쳤다. 주먹을 꽉 쥐게 만들고, 욕지거리가 치밀게 하는 그런 감정들이.
“못 들었어? 내가 널 왜 좋아해. 네가 뭐라고 좋아해. 걸핏하면 욕하고 강요했던 거 까맣게 잊으셨나? 그런 널 내가 왜 좋아해야 하는지 그것부터 설명해봐.”
“이홍화.”
잇새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샜다. 홍화는 겁먹지 않았다. 분노가 무서움도 눌렀다. 유백영이 미웠다. 할 수만 있다면 제가 겪는 고통만큼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다.
“네가 돌았지.”
전화벨이 울렸다. 유백영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싶었다. 그림자가 홍화의 머리 위로 드리웠다. 홍화도 더는 두려움도 뭣도 없었다. 화가 난 유백영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더라도 저 또한 이를 세워 물어뜯을 것이었다.
“다시 한번 물을 테니 잘 대답해. 네 진심이 뭐야, 이홍화.”
끝에 끝까지. 누가 누구에게 진심을 물어야 하는데. 화가 지나치면 도리어 감정이 담겨야 할 그릇이 텅 비게 된다. 뚝, 하고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기는 느낌이 났다. 연기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자신이 사라지고 연기하는 인물만 남는 것처럼.
“난 네가 존나 싫어, 유백영. 끔찍해. 진저리나. 만난 첫날부터 그랬어. 기억은 나? 그날. 나한테 왜 중간에 연기 그만뒀냐고 물었지. 너 때문이었어. 너하고 섹스한 게 너무 끔찍해서 돌아버릴 것 같아서 그만뒀어. 그게 섹스긴 한가? 씨발 강간이지. 널 다시 만난 그 날도 끔찍했고 너하고 살 맞댄 모든 날들이 증오스러워. 네가 싫어. 네가 좆같아. 네 면상, 네 존재, 너 그 자체가 씨발 다 좆같다고!”
소리치고 있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홍화는 몰랐다. 이홍화인지, 아니면 다른 인물인지.
“손대지 마. 닿지 마. 내 옆에서 숨도 쉬지 마. 제발 꺼져. 내 인생에서, 내 삶에서 꺼져. 다시는 내 앞에 얼굴 들이밀 생각하지 마. 널 보면 토할 것 같아. 널 보면 내 인생도 역겨워.”
꽃다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꽃잎들이 발치에 흩어졌다. 유백영이 그 위를 짓밟았다. 숨 쉬지 않고 쏟아낸 이홍화의 멱살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벽으로 밀었다. 홍화의 뒤꿈치가 허공으로 들리며 뒤통수와 등이 철문에 부딪혔다. 쿵, 소리가 났고, 유백영의 얼굴이 코앞에 놓였다.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홍화가 보지 않았다.
“왜, 또 힘으로 하려고? 그게 네 특기지, 유백영. 힘으로 제압하고 사람 굴려대는 거.”
홍화가 이죽댔다. 백영의 손을 쥐고 말리지도 않았다. 숨이 턱턱 막혀 말이 끊겨 나왔다. 차라리 이대로 죽었으면 싶었다. 유백영이 절 죽여줬으면 좋겠다. 목을 조르든 칼로 찌르든 그 손으로 이 목숨을 끊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유백영도 안 볼 테고, 이 세상에서 절 괴롭히는 모든 것들에 안녕을 고할 수 있을 텐데.
너무너무 힘들어서.
백영이 멈칫했다. 홍화의 멱살을 감아쥔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 홍화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제가 연기하는 인물을 모르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백영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그게…… 네 진심이라고.”
꽃잎이 투두둑 떨어졌다.
“몇 번 말해.”
벨 소리가 둘 사이를 갈랐다. 백영은 그저 묵묵히 서 있었다. 다리 없는 낭떠러지가 둘 사이를 갈랐다.
최악의 끝이었다.
“다시는 보지 말자.”
드디어 마지막 인사였다. 분노가 일으킨 용기도 죄다 주워 썼다. 홍화가 문고리를 잡고 비틀었다. 문 열리는 소리. 홍화는 그 소리가 고맙고도 미친 듯이 싫었다.
“후회할 거야, 이홍화.”
홍화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유백영이 있는 공간을 벗어났는데도 숨 막히는 공기가 뒤따라왔다. 도망치는 사람처럼 허우적대도 모든 공간이 공기 없는 물속이었다.
홍화가 가쁜 숨을 쉬며 무릎을 쥐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가로등 아래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나 뛰어왔는지, 유백영이 있는 곳에서 제법 멀리 뛰쳐나왔다.
이제 유백영이 옆에 없는데도 막힌 숨은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기를 한껏 들이마셔도 가슴은 터질 것처럼 부풀기만 하고 폐는 쪼그라들어 펴지질 않았다. 기도를 뚫으려고 홍화가 주먹을 쥐고 가슴을 퍽퍽 소리가 터지도록 세게 두드렸다. 암만 두드려도 숨은 터지질 않았다.
“왜.”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다. 가슴을 더욱 세게 두드리자 드디어 숨통이 열리며 동시에 구역질도 같이 올라왔다. 식도를 뜨겁게 달구더니 입 밖으로 토사물이 넘어왔다. 홍화가 고개를 숙이고 주르륵 뱉어냈다.
쿨럭거리며 위장을 뒤집어 탈탈 털어내듯 다 토해냈다. 기껏 열었던 숨통이 다시 막혀서 눈물이 눈가에 그득히 고였다. 속눈썹이 젖어들고, 기어이 지저분한 바닥 위로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순식간에 뺨이며 턱이며 코끝이며 눈물이 바닥만큼 지저분하게 길을 만들고 적셨다.
“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다 말라비틀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 남은 양이 아주 깊숙한 곳에 고여 있었다.
홍화가 죽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운동화 밑창에 하얀 꽃잎이 들러붙었다가, 젖은 바닥에 미끄러지듯 떨어져 나갔다.
∞ ∞ ∞
홍화는 현관 앞에 둔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텅 빈 방을 둘러봤다. 그간 책상이나 옷에 가려졌던 구석에 검은 곰팡이가 넝쿨처럼 피어있었다. 빠진 건 없는지 마지막으로 한번 둘러보고 현관을 나서려다가, 꼭 뭔가를 남기고 가는 느낌에 돌아봤다. 빛줄기 아래 뿌연 먼지만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짐 더 없어요?”
현관에서 김강수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며 홍화를 쳐다봤다. 홍화가 멍하니 이부자리를 놨던 곳을 바라보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게 끝이에요.”
“그럼 빨리 갈까요. 형님이 배고프다고 난리예요.”
순덕에게 등쌀 좀 긁힌 모양인지 김강수가 홍화를 재촉했다. 홍화는 신발 뒤축을 구겨 신고도 좀처럼 발을 떼지 못했다. 뭔가를 두고 가는 찝찝함이 왜 계속 남는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계단을 올라갔다. 트럭 운전대를 잡고 트로트를 열창 중이던 순덕이 홍화를 보고 얼른 타라며 손짓했다. 남자 셋이 타기엔 트럭 앞자리가 좁은지라 홍화가 자연스레 짐칸에 타려고 했다.
“홍화야, 네가 새집 가는 길 알려줘야 하는데 어디 가? 김강수 네가 뒤에 타.”
“너무하십니다, 형님. 저 열심히 일했는데.”
“탕수육 얻어먹기가 어디 쉬운 줄 아냐. 얼른.”
김강수가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홍화가 조수석 문을 열고 김강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주소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면 되죠. 저보다 훨씬 열심히 일하셨는데 편하게 가세요. 전 그냥 택시 타고 갈게요.”
김강수의 어깨가 의기양양하게 솟았다. 순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김강수에게 턱짓했다. 김강수가 주인에게 허락받은 커다란 개처럼 조수석에 날래게 올라탔다.
“그럼 홍화 네가 먼저 가 있어. 도착하면 연락할게.”
“예. 혹시 먼저 도착하실 수도 있으니 비밀번호 문자로 보내놓을게요.”
순덕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차창을 올렸다. 트럭이 덜컹거리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반지하에서 나름 오래 지냈는데도 트럭 뒤에 실린 짐이 초라할 정도로 적었다.
홍화는 바로 큰길로 나가지 않고 가만히 낡은 빌라를 쳐다봤다. 그간 여기서 머물며 겪은 많은 일들이 바로 어젯밤 본 영화필름처럼 색을 입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극단에 다시 들어간 일이며, 기적적으로 <라스트로드>에 캐스팅된 일, 촬영을 하고, 스토커에게 시달리고, 화보를 찍었던 일들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
홍화의 표정이 또다시 멍하니 풀어졌다.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갈 듯 홍화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시선이 이제는 방범창이 가린 반지하 방 창문에 꽂혔다.
「이홍화.」
홍화가 눈에 띄게 움찔하며 뒤돌아봤다. 누군가 바로 옆에서 속삭인 것만 같아 손바닥으로 귓가를 벅벅 문질렀다. 핏빛이 돌 만큼 꾹꾹 문지르고 도망치듯이 몸을 돌렸다. 잠깐 뒤돌아봤으나, 찰나에 불과할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홍화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다가 종래에는 뛰듯이 바뀌었다.
순덕의 도움으로 좋은 방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다 월세도 저렴했다. 순덕이 이게 다 제 덕이라며, 제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진다고 콧대를 높였다. 큰 도움을 준 건 사실이라 홍화가 어화둥둥 순덕을 찬양하며 그 덕을 기리고자 한 상 푸짐하게 주문했다.
“이야, 이홍화, 역시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야. 내가 양장피에 고량주 좋아하는 건 또 어째 알고.”
극단 출신 중에 술 싫어하는 사람은 이홍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홍화가 배시시 웃으며 순덕의 빈 잔을 채웠다. 김강수도 잔을 내미는 걸 순덕이 막았다.
“넌 마시지 마. 이따가 운전해.”
“아니 형님, 저도 고량주 좋아하는데…….”
“넌 탕수육이나 먹어. 자, 술은 홍화가 받고. 새집으로 이사 온 거 축하해. 전에 살던 집은 정말 아니더라.”
순덕이 손수 탕수육을 집어 입에 넣어주자 김강수가 얌전히 입을 닫았다. 김강수의 입을 다물게 하고서 순덕이 홍화의 잔도 채웠다.
홍화는 술을 받고서 상 위에만 올려놨다.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집에 뭔가 두고 온 느낌이 들었던 것처럼, 목구멍도 뭔가 콱 틀어막은 기분이라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순덕과 김강수가 권하는 음식도 작게 베어 물고 앞접시에 내려놓기만 했다.
“뭐 해? 술도 안 마시고, 음식도 안 먹고.”
“다이어트해야 해서요. 카메라로 보니까 부어 보이데.”
“아이고, 네가 살쪘으면 나랑 김강수는 나가 죽어야 해. 걱정 말고 먹어. 넌 살 좀 쪄야 해.”
순덕이 홍화의 팔뚝을 조물조물 매만지며 앞접시에 자장면을 왕창 떠서 덜어줬다. 홍화는 고맙다고 인사하고서도 몇 가닥 먹는 척했다. 이마저도 안 넘어가 겨우겨우 꿀꺽 삼켰다.
토할 것 같다. 혀 위에서 헛도는 면이나, 음식 냄새나, 심지어 술 냄새마저 거슬린다.
“홍화 씨, 무슨 고민 있어요?”
“아뇨. 없어요. 제가 고민할 게 뭐 있겠어요. 좋은 집으로 이사도 했지, 드라마도 잘 되고 있지, 형하고 김강수 씨처럼 좋은 사람들도 만났는데.”
홍화가 주절주절 떠들었다. 순덕이 홍화의 안색을 흘긋 살피며 술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김강수와 주고받은 시선이 의미심장했으나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침묵이 맴도는 분위기를 깰 겸 다른 소재를 던졌다.
“이홍화, 너 접때 나한테서 빼앗아 간 앨범 어디다 뒀어. 나 그거 환불 안 할 거야. 빨리 내놔.”
「우울하다며. 신나는 노래라도 들어야지.」
홍화가 손바닥으로 입을 꾹 눌렀다. 빈속에 기름진 음식이 부대끼는지 자꾸만 욕지기가 올라왔다. 눈을 꾹 감았다가 뜨고서 텁텁한 입안에 술을 털어 넣었다. 진한 알코올 냄새가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려면 당장 독한 술이 필요했다.
“버렸어요.”
“아니, 내 돈 주고 산 건데 네가 왜 버려!”
“환불해준다니까 그러네. 형 나 부끄럽게 하려고 일부러 산 거죠?”
“아니라고. 나 원래 트로트 좋아한다고. 앨범 판매량 높여주겠다는데 왜 그렇게 난리야.”
“지우고 싶은 과거라서요. 부끄럽잖아요.”
“그게 왜 부끄러워? 노래도 신나고 의상도 잘 어울리더만. 구성진 건 없어도 기본 노래 실력은 좋던데.”
“칭찬해도 안 돼요.”
쳇, 하고 순덕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홍화가 말없이 순덕의 잔만 채웠다. 순덕이 술로 쓰린 속을 달래듯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독할 텐데도 소주 마신 듯이 크, 하는 코를 울리고만 말았다.
“이홍화, 그렇게 안 생겨서 가끔 보면 참 독해.”
“앨범 하나 뺏었다고 독하다는 소리 하는 건 아니죠?”
“그것만 가지고 독하다고 하겠냐. 그냥 전반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감독이 너 한번 좆 되어봐라 하고 굴리는데도 이 악물고 덤벼, 새벽에 촬영해도 다 준비하고 한 시간씩 일찍 나와……. 김강수, 너 그거 기억나냐. 엄청 긴 대사 있었잖아. 나라면 중간에 혀 깨물어서 감독한테 욕 처먹었을 텐데 이홍화는 한 번에 해냈잖아. 대체 원천이 뭐냐? 왜 그렇게 잘해?”
“나만 그런가. 다들 그 정도는 하잖아요.”
홍화가 순덕의 칭찬도 덤덤하게 넘겼다. 순덕의 입에서 나오는 표현이 저를 가리키는 것 같지 않았다.
“이거 일등 해놓고 지는 교과서로만 공부했다고 구라 칠 놈이네. 그런 놈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홍화는 싱겁게 웃기만 했다. 절박했다고, 이것 외엔 매달릴 게 없었다고 그들 앞에서 밝힐 수야 없었다. 정상에 오르고 싶은 욕심이야 다들 똑같이 품고 뛰어드는 곳이었다. 배경이 안 되면 능력이, 능력이 안 되면 노력이라도 퍼부어야 했다. 배경은 아예 없고, 능력은 잘 모르겠으니 할 수 있는 건 죽도록 노력하고 몸이 부서지라 부딪치는 방법뿐이었다.
푸짐하게 시켰는데 음식이 금세 동이 났다. 술 못 마시게 했다고 김강수가 툴툴대며 안주만 신나게 먹어치운 덕택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술자리는 일찍 파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이사까지 해치워 피곤이 머리꼭지까지 차오른 홍화에겐 좋은 일이었다.
“짐 정리하는 거 안 도와줘도 돼?”
“천천히 하려고요. 하나씩 꺼내다 보면 언젠가 다 꺼내지 않을까요.”
순덕이 그래도 얻어먹었는데, 하며 현관에서 뭉그적거렸다. 홍화가 괜찮다며 빙긋 웃었다.
“형님, 홍화 씨 쓰러지겠어요. 방해하지 말고 어서 갑시다.”
홍화의 상태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란 걸 알아차린 김강수가 순덕을 채근했다. 순덕이 아랫입술을 삐죽이며 일어섰다.
“너무 마음 쓰지 마.”
“……예?”
“아니, 그냥……. 그렇다고. 우리 간다.”
순덕이 헛말 했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덧붙이고 문을 열었다. 가기 전에 홍화를 흘긋 보며 입술을 달싹이긴 했으나 홍화는 눈을 느리게 깜박이느라 보지 못했다.
사람 둘이 빠지니 집이 휑하니 비어 보였다. 짐을 풀지 않았으니 텅 비었다는 표현에 잘못은 없으나 홀로 남으니 텅 빈 집이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터처럼 공허했다.
그릇이 놓인 상을 보다가 홍화가 화장실로 급히 뛰어갔다. 그간 꾹꾹 억누른 토기가 기어이 목구멍 위로 치밀었다.
변기를 붙잡고 게워냈다. 먹은 게 적어 멀건 술과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만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귀가 먹먹해지는 압력에 눈가가 벌게지다가 물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손등으로 무심하게 쓱쓱 닦아내고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수건으로 대충 문지르고서 나왔다. 그릇을 치우고 이불을 펼친 다음 잠을 자야 했다. 내일도 촬영이 있으니 단 한 시간이라도 푹 자두는 게 중요했다.
홍화는 그릇으로 손을 뻗다가 팔을 아래로 내렸다. 짐을 옮길 때는 번쩍번쩍 들었는데, 지금은 그릇 들 힘도 없었다. 손끝까지 무기력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 쉬어도 되지 않을까.
이불을 펼치는 것도 고된 노동이다. 홍화는 밥상을 구석에 밀어두고 바닥에 누웠다. 천장만 멀뚱멀뚱 보다가 억지로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아 모로 누웠다가, 반대로 누웠다가 자세를 바꿔봤지만 소용없었다.
사흘.
사흘이 지났다. 고작 사흘이었다.
첫날엔 아무렇지도 않았다. 가로등 아래 다 게워냈을 때 유백영에 대한 감정도 다 토해낸 것처럼,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멀쩡했다. 이사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방을 구하자마자 이사를 결정했다. 계약 중간에 나가는 거라 부수적인 비용이 많이 들었으나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돈이 얼마가 들든 반지하 방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유백영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차단도 했고, 삭제도 했으나 다른 번호로 전화도, 문자도 오지 않았다. 딱 그 정도 사이였다고, 저가 말한 대로 아무것도 아닌 사이라고 소리 죽인 핸드폰이 대신 알려줬다.
첫째 날은 곯아떨어졌다. 내일 일을 생각하면서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랐다. 눈을 뜨니 내일이 오늘이란 이름을 달고 와 있었고, 홍화는 오늘을 버텨냈다. 자꾸만 뭔가를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찾을 수 없는 곳에 놓고 온 찜찜한 기분이 마음 언저리에 남아 미묘하게 불안한 것치고는 하루를 잘 보냈다.
다음 날엔 잠이 도망갔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새벽이 되어 간신히 잠들었으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고 눈을 떴다.
그리고 삼 일. 다시 오늘이었다. 홍화는 도로 반듯하게 누워 가슴에 손을 모으고 천장을 바라봤다. 익숙하지 않은 모양의 전등이 홍화를 내려다봤다. 네모난 유리창 너머로 빛이 산란했다.
불을 켜서 잠이 안 오는 걸까.
하지만 불을 끌 힘이 없다. 홍화는 다시 눈을 감았다. 빛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핑계를 붙였다. 정말 빛 탓인지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이 부셨고, 그래서 조금 눈물이 흘렀다.
∞ ∞ ∞
집이 고요했다. 적막이었다. 초침 소리, 물방울이 수도꼭지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며 부서지는 소리, 가끔씩 웅웅거리는 기기들의 소음도 백영의 귀에 닿지 않았다. 마치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이, 심지어 백영마저도 물속에 잠긴 듯했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핸드폰도 이제 조용했다. 널브러진 잔해가 바닥에 토막 난 시체처럼 늘어져 있었다.
백영은 소파에 앉아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가볍게 깍지를 낀 채 눈을 내리깔았다. 한숨도 자지 못해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통만이 멀쩡하니 맑은 정신에 먹구름처럼 끼어있었다. 졸리지도 않았다. 당장 뛰쳐나가 하루 종일 누군가를 패고 돌아와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온몸의 근육이 바짝 약이 올랐다.
왜.
라는 질문만 긴긴밤 머릿속을 떠다녔다. 답이 없는 문제였다. 답을 해줄 이는 거짓말만 일삼아 그게 설령 답이라 하더라도 믿을 수 없었다.
왜.
이홍화가 던지고 간 말들이 질문에 꼬리표처럼 뒤따라왔다. 하나같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항상 거짓말만 뱉던 거짓말쟁이가 역겹다는 말만큼은 진실처럼 토해냈다.
진심이었을까. 진심이었겠지. 양치기 소년도 단 한 번은 진실을 말했는데 이홍화라고 언제나 거짓말만 하진 않겠지. 둘이 처음 보낸 그 밤이 저에게는 승리의 날이었으나 이홍화에겐 실패이자 악몽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었다.
다만.
백영이 엄지로 이마 옆을 꾹 눌렀다. 두통이 다시금 몰려왔다. 두개골 위에 얇고 차가운 철판을 깔고 망치로 거세게 두드리듯이, 뇌가 맥박 치며 팽창하듯이 아파왔다.
물이라도 마시면 좀 나을까. 해답을 미뤄두고 주방으로 향했다. 물 한 모금 마시려는데 뒤에서 느껴질 리 없는 시선이 느껴졌다. 백영이 뒤돌아봤다.
「넌 왜 안 먹어?」
식탁에 앉은 이홍화가 물었다. 입가에 크림이 묻어서 닦아주려고 손을 뻗었다. 고개를 뒤로 빼 피하려는 걸 끝까지 쫓아가니 머뭇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손가락으로 크림을 닦아내고, 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이리 칠칠치 못하게 묻히고 먹는지 궁금해 맛을 봤다. 느끼하고 기름진 크림 덩어리를 이홍화는 맛있다며 잘도 먹었다.
「지는 안 먹을 거면서 왜 만들었대.」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대면서도 뺨은 발그스레했다. 뺨에도 크림이 묻어있음 좋겠다. 그걸 핑계로 만져볼 수 있게. 하얀색이 아니라 분홍빛이 손끝에 묻어나오지 않을까.
컵을 들고 멍하니 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쓸데없는 기억에 사로잡힌 걸 보니 잠이 부족하긴 한 모양이었다. 물 마실 생각이 싹 사라져 컵을 내려놓고 거실로 돌아갔다.
고요하기만 한 집 안이 어색했다. 음악도 다른 소리 없이도 잘만 지내던 장소가 진동을 일으킬 공기마저 사라진 우주 같다. 적막을 내쫓으려고 잘 보지도 않는 티브이 전원을 켰다. 한창 뉴스가 진행 중이었다. 앵커의 단조로운 목소리도 빈집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뉴스 재미없어.」
소파에서 뒹굴거리던 이홍화가 리모컨을 잡았다. 몇 번 틱틱 누르더니 영화를 방송하는 채널이 나오자 리모컨을 내려놨다. 뉴스가 나올 때는 영 심드렁하다가 영화가 나오자 자세를 고쳐 앉고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나 저 영화 못 본 건데. 윤진 누나가 되게 재미있댔어. 봤어?」
판타지 영화인지 이상한 옷을 입은 이상한 남자가 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제 취향은 아니었다. 아니, 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더니 홍화가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같이 보자.」
희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소년처럼 해맑게도 웃었다. 저딴 영화에 시간을 버리느니 책이라도 한 장 읽는 게 나을 텐데, 올려다보는 눈이 하도 간절해 못 이기는 척 옆에 앉았다. 좀 떨어져 앉은 이홍화를 굴려 제 품에 안고서 재미없는 영화를 봤다. 예상대로 영화는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품에 이홍화가 있어서 중간에 일어서지 않았다.
―……은 연예계 소식입니다. 유백영 씨와 배소희 씨의 핑크빛 연애 소식에 연예계가 들썩이고 있는데요.
화면이 바뀌었다. 등신처럼 웃는 제 얼굴과 배소희의 얼굴을 번갈아 내보내며 거짓을 떠들었다. 둘의 사랑을 응원한다는 미친 말에 어이가 없어 웃다가 전원을 껐다.
저딴 개소리를 왜 믿지.
그간 보여준 행동만으로는 부족했나. 다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 정도면 껍질을 까서 안에서 꿈틀대는 내장까지 죄다 보여준 수준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못 믿다니 어이가 없다. 본인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니 다른 이에게도, 심지어 저에게도 믿음이 쥐꼬리 같은가. 아니, 쥐꼬리만 한 믿음이라도 있을까. 그딴 게 없었으니 여론의 개 같은 농간을 홀딱 믿고 폭언을 퍼붓고 뛰쳐나갔겠지.
멍청하기 짝이 없다. 믿을 거 못 믿을 거 구분도 못 하고 미욱스럽게 구는 이홍화가 짜증난다. 짜증나서 미쳐버릴 것 같고, 이딴 일에 역정을 내는 자신에게도 넌더리가 난다.
그럼에도.
“씨발.”
백영이 욕을 짓씹으며 머리를 헝클었다. 소파에서 등신짓만 일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이홍화가 가랑잎 굴러가는 걸 본 소년처럼 배를 잡고 웃었다. 눈꼬리에 맺힌 눈물, 푸른빛이 깃든 눈동자, 그딴 것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멍청한 이홍화.
믿지 말라고 그리 말했는데도 거짓을 믿고, 후배라는 새끼한테 홀려 좆같은 퀴어 드라마를 찍고, 어수룩한 매니저를 친형처럼 신뢰하고, 죽을지도 모르는데 스토커에게 달려드는 무식함과 한겨울에도 얼음물에 뛰어드는 무모함, 사진사에게 모욕을 당하고도 꿋꿋하게 기어들어 가겠다는 아둔함을 지녔고,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된 개새끼에게 속아서 클럽에 철딱서니 없이 찾아가 목숨을 위협당하고, 더 나아가 겁도 없이 처음 만난 저와 몸을 섞었다.
멍청하고 우둔하고 미련하고 못난 이홍화.
“……하.”
그런 이홍화를 바깥에 홀로 풀어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눈에 빤히 보였다. 분명 어느 좁은 단칸방에서 고독사나 아사 등의 비참한 최후를 맞겠지. 온갖 질 안 좋은 놈들이 꼬여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부서질 때쯤 버리겠지. 잘 걷다가도 머리 위로 간판이 떨어지고, 밟아도 전선 떨어진 물웅덩이를 밟을 이홍화였다. 혼자 둬서는 안 된다.
백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멍청하다고 그렇게 욕하던 홍화가 소파에서, 주방에서, 침실에서, 그리고 눈앞에서 일렁였다. 어느 구석을 보더라도 이홍화가 살아 숨 쉬었다.
이홍화는 멍청해서 제자리가 어딘지 모른다. 누가 알려주지 않고는 영원히 귀 닫고 웅크리고 살아가겠지. 그런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백영은 당장 뛰쳐나가려다가 현관 앞에 우뚝 멈춰 섰다. 흰 꽃잎들이 현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끝이 갈색으로 변한 꽃잎들이 신발과 현관을 지저분하게 물들였다.
이홍화가 돌아오기 전에 정리 좀 해야 할 텐데.
백영은 꽃다발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허리를 굽혀 주워 들었다. 떨어진 꽃잎들은 지저분하지만 꽃다발 안의 꽃들은 아직 향도 빛깔도 살아있었다.
장미 향이 코끝을 찌르자 지긋지긋한 두통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옅지만 확실한 향. 이홍화가 떠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주변 정리.”
두통이 어느 정도 가시자 이제야 머리가 조금씩 돌아갔다. 이홍화를 도로 제자리에 박아놓으려면 어디를 깨끗하게 정리해야 하는지 맑아진 머릿속에서 길이 보였다.
백영은 테이블에 꽃다발을 내려놓고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고개를 좌우로 느리고 깊게 까닥이며 팔을 길게 뻗자 밤새 굳어있던 근육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났다.
잡아 와야지.
데려와서 제 보금자리가 여기라고 알려줘야지.
사냥을 준비하는 짐승처럼 백영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장미 향이 코끝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 향이 가시기 전에 이홍화를 데려오고 싶었다.
감았던 눈을 뜨며 백영이 소파를 쳐다봤다. 한참 티브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홍화가 백영을 보며 배시시 웃는 신기루가 꽃향기와 달리 또렷했다.
∞ ∞ ∞
스페시아 엔터테인먼트 사장 서해운은 이제는 만성이 될 것 같은 두통을 느끼며 엄지와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주름 생길까 봐 미간을 구기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눈앞의 꼴을 보니 주름이고 나발이고 미간이 안 구겨지면 보살이었다.
분명 하루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애인과 함께 눈을 떴고, 아침 식사를 같이하고 잘 다녀오라는 굿바이 키스를 받았고, 건물 1층에서 산 커피의 향과 맛도 완벽했다. 오는 길에 깜박한 서류가 있어 사랑스러운 애인도 볼 겸 영상 통화를 하며 가져다 달라 부탁하고, 그 김에 애인과 점심도 같이할 생각에 기분은 분명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최근 스캔들이나 정치계 뉴스 덮으랍시고 위에서 압박이 들어와 골머리를 썩이고는 있다지만 그거야 사회생활 하면서 없으면 섭섭한 작은 고민거리였다.
안경을 벗고 눈 사이를 꾹꾹 누르던 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잘못 본 거길 바랐지만 눈앞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들어가기 전에 비서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저를 쳐다봤을 때 알아채야 했거늘.
“조카 안 반가워? 표정이 왜 그렇게 썩었어.”
긴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척하니 올려놓고 백영이 싱긋 웃었다. 미소만으로 명화에서 뿜어 나올 법한 고상한 기운을 풍기는, 그야말로 연예인 아니면 할 것 없는 외모라지만 사장은 유백영의 겉껍데기 안에 숨은 흉포하고 흉악한 본성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녀석이 게거품 물고 날뛸 날이 오리라는 거야 예상한 바이나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전화도 안 받고, 집에 처박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듣고 얌전하게 자숙하나 좋아했더니.
유백영에게 자숙이란 말이 가당키나 한가.
사장의 시선이 유백영에게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책상 앞에 놓인 자개 명패에 제 이름은 온데간데없고 유백영 석 자가 박혀 있었다. 제 명패는 두 조각내고서 책상 옆 쓰레기통에 처박아뒀다.
사장은 깊게 심호흡했다. 되바라진 조카를 엎어놓고 엉덩이를 실컷 때려줬으면 원이 없겠지만, 저 덩치를 엎어놓고 때릴 엄두는 나지 않았다. 철없는 어린애의 철없는 반항으로 볼 수밖에.
“왜 또 지랄이야.”
사장이 욕을 하건 말건 백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넥타이만 풀었다. 어디 상갓집이라도 다녀온 양, 혹은 갈 것처럼 위아래로 검은 정장을 빼입고 넥타이도 까맣다.
넥타이를 풀어 주머니에 쑤셔 넣은 백영이 핸드폰을 꺼냈다. 전에 있던 핸드폰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기종이 달랐다.
“회사 받으러 왔지. 양도 계약서 준비했어? 변호사만 부르면 되나.”
“하…….”
사장이 허공에 한숨을 뿜었다. 사회생활이 엿 같다는 진리는 돈이 썩어 넘쳐나는 사장에게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다른 일이야 제 손안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지만 조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었다. 반대쪽으로 던졌는데 난데없이 진로를 틀어 제 얼굴을 후려칠 수도 있음이었다.
“우리 조카, 정신 나갔니?”
사장이 부드럽게 물었다. 혹시라도 백영이 제정신이 아님을 인정하면 괜찮은 정신병원을 연결해줄 용의가 있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유백영이 제 뒤통수를 치고 회사에 손을 뻗으면 정신병원은 치료 위주가 아닌 강제성을 띤 곳으로 정해질 것이다.
“정신이 나갔으면 여기 내 명패가 아니라 안소형 대가리가 놓여있었겠지. 삼촌도 참, 아직까지 날 몰라?”
백영이 하하하, 경쾌하게 웃었다. 사장의 눈가가 꿈틀했다. 주먹에도 힘줄이 불끈 돋았다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입술도 꽉 다물렸다가 유연하게 풀리며 위로 올라갔다. 이보다 개 같은 상황에도 표정 관리가 어렵지 않았건만 안소형 이야기에 아주 잠시 평정을 잃었다.
“이홍화하고 네 대가리로 회사 외관 장식하기 전에 본론이나 말해.”
“죽일 거면 미리 말해. 내 손으로 죽이고 나도 알아서 죽어줄 테니까.”
둘 중 한 명만 덩그러니 남는 것보단 둘 다 깔끔하게 죽는 편이 낫지 않냐며 백영이 피식거렸다. 미친놈, 하며 사장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약속했잖아. 개 같은 스캔들 눈감아주면 회사 주기로. 한 입으로 두말해? 불알 떼, 삼촌.”
“회사가 무슨 장난감인 줄 알아? 어디서 생떼야.”
“그럼 씨발 스캔들 내기 전에 나한테 알려준다는 개 같은 소리부터 지켰어야지. 삼촌이야말로 제정신이야? 노망났어? 본인이 한 말 다 까먹으셨나. 피해 보상받을 거니까 회사 내놔.”
“그건 터진 날 내가 말하지 않았냐. 그쪽이 예고 없이 먼저 터트렸다고. 막을 새 없었다고.”
“믿을 소리를 해. 삼촌이 모르면 누가 아는데. 이 회사 사장 성질이 얼마나 더럽고 개 같은지 이 판에서 모르는 인간이 없는데 어떤 미친놈이 삼촌한테 알리지 않고 터트려. 어떤 새끼인지 데려와. 간이 씨발 배 밖으로 나온 거 같은데 이참에 아예 떼서 죽여버리게.”
이를 가느라 잇새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샜다. 사장은 고개를 비틀고 폭발 직전인 백영을 빤히 쳐다봤다. 잘 달래야 할지, 밟아버릴지 잠시 고민했다. 성질 같아선 밟고 싶지만 유백영이 밟는다고 밟혀주랴. 지뢰 같은 놈이라 다 죽자고 달려들 게 뻔했다. 방법은 하나뿐이나 안소형을 들먹여 사장도 속이 꼬였다. 왜 저러는지 이유 역시 하나라 사장이 비식거렸다.
“왜, 이홍화가 너 좆같대?”
백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거워서 장정 몇이 같이 들어야 하는 책상이 유백영의 발에 밀려 명패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조카는 애초에 회사에는 관심도 없었다. 제 분풀이하려고 여기까지 발걸음 한 거지.
백영이 성큼성큼 다가와 사장의 멱살을 그러쥐었다. 눈빛이 혈육만 아니었다면 갈기갈기 찢었을 정도로 살기등등했다. 적어도 주먹질 정도는 할 줄 알았건만 아직 이성은 남았는지 멱살만 쥐고 있을 뿐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다.
“이러면 이홍화가 좋다고 돌아오겠군.”
갈색 눈이 가늘어졌다. 색이 옅어져 흡사 금빛이 돌더니 멱살을 놓고 주먹을 날렸다. 저놈의 성질머리, 누가 핏줄 아니랄까 봐 외가랑 똑 닮았다. 사장도 백영과 비슷한 나이 때는 저렇게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 때가 많았다.
아마 유백영은 머릿속의 폭탄이 터진 나머지 누구에게 싸움을 배웠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퍽 소리가 간격이 거의 없다시피 두 번 터져 나왔고, 결국 사이좋게 한 대씩 주고받았다. 사장은 얼굴을 맞아 안경이 날아갔고, 백영은 명치를 얻어맞아 책상 쪽으로 물러났다.
쿨럭거리며 잔기침을 토해내면서도 백영이 사장을 노려봤다. 사장은 얼얼한 입가를 엄지로 쓱 닦아냈다. 빗맞았는데도 핏물이 묻어나왔다.
그래도 배우라고 얼굴은 피해서 쳐줬건만 고마움도 모르고.
“나 지금 형 죽이고 싶은데.”
기분이 엄청 좋거나, 굉장히 나쁠 때만 나오는 호칭이었다. 진심이 그러한지 손이 사장 목이라도 움켜쥘 듯이 움찔움찔했다.
저가 먼저 안소형의 대가리를 놓네 어쩌네 개소리를 지껄여놓고 이홍화 한번 언급했다고 손윗사람을 후려 패는 패륜을 저질렀다. 따끔하게 혼을 내야 하나 제 거 떠났다고 미쳐 날뛰는 유백영 귀에 어디 들리기나 할까. 쇠귀에 경 읽기요, 말귀에 염불이라. 밥을 먹어도 수 곱절은 더 먹은 어른이 참아야지 어쩔까.
“아서라. 정신 차려. 개 같은 성질 좀 죽이고. 너 그러다가 정말 교도소행이야. 누나가 돈 써도 정신병원행인데 남은 평생 흰 방에서 썩을래? 거기 갇히면 앞으로 이홍화 못 봐. 영원히.”
“…….”
이홍화는 독도 되고 약도 된다. 못 본다는 소리에 움찔거리던 손가락이 느슨하게 늘어졌다. 백영이 얼얼한 배를 쓱쓱 문지르고 진정하듯 심호흡했다. 감았던 눈을 뜨자 아직도 맛은 갔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눈빛이 멀쩡하게 돌아왔다.
휴전을 알리듯이 똑똑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사장이 백영에게 눈짓하고 문을 열었다. 여전히 눈에 띄게 불안해하는 비서 뒤로 선해 보이는 청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사장을 쳐다봤다.
난데없는 등장에 놀라서 사장이 움칫한 사이 안소형이 뽀르르 달려왔다. 다람쥐 뺨치게 재빨라 사장도 비서도 미처 막지 못했다. 입가에 묻은 붉은 핏물을 보고 안소형의 눈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질 만큼 크게 벌어졌다. 입도 헤 벌어졌다가 고개를 홱 돌리며 백영을 쳐다봤다.
“그쪽이 지금…….”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낮다. 화가 났다는 증거라 사장은 일단 비서가 이 개판을 보지 못하도록 문부터 닫고 백영과 소형 사이를 막아섰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기엔 상황이 적합하지 않았다. 저놈이 지금 스캔들 때문에 제 애인 도망가서 미쳐 날뛴다고 한 줄로 정리하기에는 그 뒤의 배경이 어찌 돌아가는지 캐물을 성격이었다.
사장이 진땀을 뻘뻘 흘리는 꼴을 지켜보며 백영이 푸핫, 하고 다 알도록 비웃었다.
“보기 좋으십니다, 사장님. 회춘하기 좋겠네.”
저 개새끼가. 안소형을 윗방아기 취급하는 발언에 사장이 살벌하게 노려봐도 백영은 코웃음만 쳤다. 사장을 죽이고픈 마음은 가라앉았는지 구겨진 옷자락만 툭툭 털고 둘을 지나쳤다.
여기서 끝낼 리가 없는데. 그간의 행적치고 백영이 너무 얌전히 물러나 사장이 의아한 눈초리로 널찍한 등을 바라봤다. 아니나 달러, 백영이 문고리를 잡고 아, 맞다 하며 운을 띄웠다. 돌아본 눈매가 손톱 끝처럼 둥글게 휘어 있었다.
“본론을 깜박할 뻔했네. ……사장님, 사람 보는 눈 참 없데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도 혈육이니까 미리 알려주는 겁니다.”
수수께끼 같은 말만 던지고 백영이 사장실을 벗어났다. 애인이 없으면 잡아다가 고문을 해서라도 속뜻을 알아냈을 텐데, 무슨 일이냐고 걱정스레 올려다보는 눈빛을 보아하니 급한 불은 이쪽이다.
하긴, 세상에 무슨 일이 터져도 이보다 중한 것이 있으랴. 목하 열애 중인 사장이 위로를 구하듯 안소형을 폭 껴안았다. 안소형이 물음표를 잔뜩 띄우고서도 사장의 넓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