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을
: 어느 멋진 날
“어때요?”
호준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번쩍거리는 차 보닛 뚜껑을 두드렸다. 주 과장에게 똥차라는 비난을 받던 중고차가 사고로 완전히 박살 난 후, 호준은 본인의 성격대로 한참을 뜸을 들여 고르고 골라 마침내 번듯한 신형 SUV를 마련했다. 오늘 지훈을 데리고 첫 시승식을 할 참이었다.
“차 안이 엄청 넓어요.”
마치 자신이 차를 산 것처럼 신난 지훈은 호준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천연덕스럽게 조수석에 올라타서는 안전벨트까지 맸다.
“신경 써서 골랐거든요. 지훈 씨가 차 안에서 드러누워도 편하게요.”
호준의 말에 지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차 안에서 왜 드러누워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야릇한 상상은 혼자만의 것이었을까. 호준이 멋쩍어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 안을 둘러보던 지훈은 최신형 풀 옵션 스펙을 살펴보며 물었다.
“우와. 이거 몇 년 할부예요?”
“할부라뇨, 일시불로 끝냈죠.”
호준이 어깨를 펴며 으스대자 지훈은 순수하게 호준의 경제력에 감탄했다.
“언제 티끌 같은 월급을 알뜰살뜰히 모았어요? 사고 보상금으로는 이 옵션까지 안 될 텐데, 혹시…….”
앞차와의 간격이 가까워지자 자동으로 울리는 경고음을 들으며 지훈이 진지하게 물었다. 눈알이 빠르게 굴러가는 걸 보니 머릿속에서 차 모델과 옵션별 가격대를 계산 중인 듯했다. 걱정 많은 지훈이 상상력을 자유분방하게 발휘했다간 신장 한쪽을 팔았냐고 물어볼 것 같아서, 호준은 순순히 자금의 출처를 실토했다.
“주식 정리한 돈으로 보탰어요.”
“대박주 팔았어요? 언젠가 대박이 날 거라면서요.”
“그 전에 퇴직 연금을 수령할 것 같더라고요.”
지훈은 눈치가 둔한 편이지만, 돈에 관해서는 꽤 예민했다. 예전에 호준이 커피를 사 줄 때마다 회의비 지출이냐고 물었던 건 농담이 아니었다. 서울 소재의 대학에 진학한 후 집안에서 한동안 생활비를 보내 주지 않아서 꽤 고생했다던데, 아무래도 그때 생긴 버릇 같았다. 호준은 자신과 지내는 동안만큼은 지훈이 경제적인 걱정을 덜 하길 바랐지만, 지훈의 작고 귀여운 월급으로는 무리였다.
“한국인의 재테크는 역시 주식보다는 부동산이죠.”
“공무원이 부동산 투기를 하면 어떡합니까. 대책 세우라고 위에서 하도 쪼아 대서 맨날 야근하는데.”
호준은 부동산 얘기에 치를 떨었다. 사실 고위직이 아닌 이상 공무원이라고 해서 부동산으로 소소한 재미를 보지 말란 법은 없으나,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정호준은 그럴 리가 없었다.
“안 되겠네요. 그럼 내가 대신 해야겠다. 난 공무원이 아니니까.”
지훈이 혼자 중얼거리는 걸 듣던 호준은 대체 언제부터 지훈이 자신의 자산 포트폴리오까지 관리할 마음을 먹었는지 궁금해졌다.
지훈이 혼자 중얼거리는 걸 듣던 호준은 대체 언제부터 지훈이 자신의 자산 포트폴리오까지 관리할 마음을 먹었는지 궁금해졌다.
“왜 지훈 씨가 그걸 ‘대신’ 해요?”
“나라도 재산 증식해서 사무관님 먹여 살려야죠.
정호준 씨 이러다간 언제라도 잘릴 것 같다고요.”
지훈의 염려가 영 근거 없는 건 아니었다. 호준은 병가와 연차를 야무지게 쓰고 몇 주 만에 목발을 짚으며 복귀한 후, 가차 없이 다른 과로 인사이동 되었다. 사업 특성상 민원 폭탄인 걸로 악명 높은 데다, 심지어 사무실도 청사 외부의 임대 건물에 있었다. 누가 봐도 보복성 인사였다. 곽 과장과 그 뒤의 박 실장 때문인 걸 모두가 알았다. 하지만 호준 본인은 곽 과장이 이럴 줄 이미 알았다는 듯 혼자 태평했다.
“걱정하지 마요, 공무원은 그렇게 쉽게 안 잘려요.”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나중에 이상한 섬으로 발령 나서 위험한 일이라도 당하면 어떡해요? 그럴 거면 그냥 관둬요. 내가 사무관님 먹여 살릴게요.”
호준은 지훈이 자신이 이상한 섬으로 발령 나서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해당하는 시나리오까지 상상해 봤다는 걸 눈치챘다. 먹여 살린다는 거 보니까 이미 정호준 실직 시나리오까지 대비한 듯했다. 호준은 하루 종일 종알거리기도 바쁜 지훈이 작은 머리통으로 언제 그런 생각까지 하는지 신기했다.
“관둘 생각도 없고 멀리 가지도 않을 거지만, 지훈 씨가 그렇게 말해 주니까 든든해요.”
자기 딴엔 심각하게 걱정하며 말했는데 호준이 웃으면서 대꾸하자 지훈은 살짝 약이 올랐다.
“왜 웃어요!”
“지훈 씨가 나 평생 책임질 걱정 해 주는 거 너무 좋아서요.”
“참나, 누가 평생 책임진대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가 먹여 살리겠다고 하던 지훈이 괜히 열을 냈다. 책임진다고는 했지만, 평생 그런다고는 안 했다! 호준과 헤어질 생각은 딱히 없지만, 평생이라는 단어는 아직 지훈에게 부담스러웠다.
“그럼 나중에 나 버릴 거예요?”
지훈의 반응이 재밌었던 호준이 놀리듯 계속 물었다.
“몰라요. 사무관님 하는 거 봐서요.”
“평생 잘하면 평생 가는 거네요?”
“지금 본인이 되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감히 그럴 리가요. 지훈 씨 마음에 들려면 한참 멀었죠.”
사실 지훈은 호준에게 별 불만이 없었다. 연애 초에 불만이 생길 때마다 싫은 티를 팍팍 냈더니 요즘엔 알아서 척척 잘했다. 하지만 잘한다고 솔직하게 말해 주면 행여 호준이 초심을 잃고 기고만장해질까 봐 지훈은 칭찬을 아꼈다. 같이 일할 때도 호준이 지훈의 업무에 대해 직접 칭찬한 적은 없었으니, 순전히 호준의 인과응보였다. 물론 호준도 딱히 지훈의 칭찬을 바라는 것 같진 않았다.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요?”
지훈은 평소와 다른 차창 밖의 풍경을 보며 물었다.
“드라이브하면서 근처 저수지에 가려고요. 단풍 들면 산길이 예쁘거든요.”
결국 새 차 시승식을 빙자한 데이트였다. 지훈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호준은 지훈의 취향에 맞춰 계획을 더 철저하게 세워 왔는데, 지훈은 자신이 멋대로 엇나가는 것까지 호준이 계산에 넣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지훈은 호준의 커다란 손바닥 위에 놓인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지훈이 제멋대로 굴어도 충분할 정도로 넓은 손바닥이라 지훈은 크게 불만이 없었다.
“저수지요? 거기 뭐 재미난 거 있어요?”
“보통 어르신들이 낚시를 많이 하시는데, 그냥 드라이브만 해도 좋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호준은 국도변의 허름한 오리탕집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소박한 외관과 달리 주차된 차가 꽤 많은 걸 보니 유명한 맛집 같았다. 오늘은 오리탕을 먹는 건가? 지훈이 오리고기와 미나리의 향긋한 냄새를 떠올리며 설레는 동안 호준은 지훈을 차에 두고는 혼자 식당에 들어갔다.
그러더니 굉장히 뿌듯한 표정으로 서류 봉투를 하나 손에 들고서는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오리탕을 먹는 계획은 아닌 듯했다.
“그게 뭐예요?”
지훈은 약간 실망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봐도 서류 봉투에 들어 있는 게 오리고기는 아니었다.
“식당 사장님께 부탁드린 일이 있어서요.”
“뭘 부탁했는데요?”
“지역 주민 협조가 필요한 공익사업이라고 해 두죠.”
“설마 공무원이 뇌물 받아요?”
지훈이 호준을 수상쩍게 바라보자, 호준이 해명했다.
“뇌물이라뇨. 식당 사장님은 제가 공무원인 줄도 모릅니다.”
“뇌물이 아니면 뭘 받은 건데요?”
“공익을 위해 지역 주민의 대가성 없는 선의의 협조를 받았어요.”
호준이 저답지 않게 얼렁뚱땅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보통은 매사 정확하게 대답하는 편인 호준이 일부러 얼버무린다는 건 지훈에게 말하기 싫단 뜻이었다. 나름대로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호준이 말해 줄 것 같지 않아 지훈은 더 캐묻지 않았다.
“지훈 씨, 이 서류 좀 글러브 박스에 넣어 줄래요?”
호준이 시동을 걸며 지훈에게 서류 봉투를 건넸다. 지훈은 조수석 앞에 있는 박스를 열어서 서류 봉투를 넣으려다 말고, 눈에 아주 익은 물건을 발견했다.
“정호준 씨, 차 어제저녁에 뽑았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왜요?”
“근데 어떻게 벌써 콘돔이랑 젤이 들어 있어요? 이거 사이즈가 딱 사무관님 건데요? 초박형, 돌기형, 뭐 종류별로 다 있네.”
“크흠.”
지훈이 굳이 손으로 집어 들며 유심히 관찰하자, 호준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호준이 선호하는 특정 브랜드의 특대 사이즈 콘돔은 직원이 서비스로 넣어 주기엔 꽤 어려운 물건이었다.
“차를 사자마자 제일 먼저 준비한 게 콘돔이에요?
이야, 정호준 씨 정말 대단하네요. 부동산 투기도 안 하고 뇌물도 안 받지만, 카섹스는 하는구나. 공무원의 풍기 문란은 괜찮은가 봐요?”
지훈이 대놓고 놀리자 호준도 뻔뻔하게 나왔다.
“차에서 하는 건 안 걸리면 장땡이거든요. 지훈 씨랑 다니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준비해 둬야죠.”
“이런 거 준비했으면 미리 알려 주지 그랬어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지훈은 자신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콘돔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글러브 박스에 마저 넣었다. 보니까 지훈의 것은 아니고 호준이 평소에 쓰는 종류였다.
호준은 내심 안도했다. 아까 차에서 왜 드러눕느냐며 딴청을 피우길래 걱정을 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김지훈이었다.
“그건 또 언제 챙겼어요?”
“호준 씨가 차에 콘돔 챙길 때 나도 내 주머니에 챙겼나 보죠.”
호준은 지훈을 보며 가슴이 뜨겁게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이런 쪽으로는 지훈과 이견이 생긴 적이 거의 없었다. 자신이 지훈을 욕망하는 만큼 지훈도 자신을 원한다는 점이 정말로 좋았다. 새삼스럽게 지훈에 대한 사랑이 샘솟았다.
“콘돔이 두 배니까 두 배로 할 수 있겠어요.”
호준이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말했다. 늘어난 콘돔 개수만큼 오늘 지훈에게 사랑을 두 배로 퍼부어 줄 작정이었다.
“이 많은 걸 오늘 다 쓸 작정이에요?”
“지훈 씨가 기절만 안 하면 저는 가능해요.”
기절이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한 지훈이 발끈했다.
“나 기절 안 하는데요? 요즘 체력 좋다고요.”
지훈은 호준과 살기 시작한 후로 정말로 운동을 꾸준히 했고, 이제 섹스 도중에 무턱대고 자겠다고 선언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근력을 키운다는 핑계로 호준의 단백질 셰이크도 종종 뺏어 먹었는데, 호준은 성공적인 섹스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그런 지훈을 내버려 두었다.
“그래도 가끔 도중에 그만하자고 하잖아요.”
호준이 그동안 못내 아쉬웠던 걸 언급하자, 지훈도 굳이 반박했다.
“그건 다음 날 출근해서 일을 못 하겠으니까 그런 거죠. 윤 사무관님이 내가 졸 때마다 왜 수상하게 보는지 이제 알았다고요.”
“오늘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내일은 출근 안 하니까 장어구이 먹고 힘내면 돼요.”
호준의 차는 국도변의 한 민물 장어구이 식당에 도착했다. 원 없이 섹스를 하려면 결국 지훈을 제대로 먹여야 한다는 계산 끝에 통장 대출혈을 감행한 것이다.
“이러다 콘돔 모자라는 거 아니에요?”
식당 안의 활력 넘치는 장어 그림을 보던 지훈이 중얼거렸다. 오리고기를 못 먹는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었다. 장어도 스태미나에 훌륭한 음식이니까. 물론 장어를 자신만 먹는 게 아니라 호준도 같이 먹을 테니, 호준 역시 힘이 넘칠 터였다. 평소에도 은근히 버거운데, 과연 장어 버프를 받은 호준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 정력의 밸런스를 맞추려면 역시 내가 좀 더 먹어야겠지? 지훈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먹겠다는 다짐을 했다.
* * *
성인 남자 둘이서 오로지 장어구이만 조졌다. 지갑은 텅 비었지만, 위장은 든든하게 채워진 시간이었다. 장어구이 식당 사장님은 호준과 지훈의 주문량을 보더니 직접 달려와서는 장어를 손수 구워 주고 서비스로 잔치국수까지 제공했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편견 없는 사장님이 좋은 시간 보내라며 격려까지 하자 지훈이 민망해했다. 넉살 좋은 호준은 기운 넘치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대답했다가, 식당 출입구를 나서자마자 지훈에게 등짝을 맞았다.
호준은 장어구이 식당 사장과도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 이번에도 수상한 서류 봉투를 건네받았다.
“아는 분이에요?”
“오늘 두 번째로 뵈었어요. 저번엔 이거 부탁하려고 잠깐 들렀고요. 맛있어 보여서 이번엔 지훈 씨랑 같이 오려고 했죠.”
호준이 서류 봉투를 글러브 박스 안에 넣으며 말했다.
“근데 사장님이 우리 커플인 거 아시나 봐요.”
“매출이 그 정도 나왔으면 손님이 게이든 외계인이든 신경 안 쓸걸요.”
호준은 방금 결제한 카드 영수증을 떠올렸다. 물론 통장 잔액에 자신이 있으니까 지훈을 데려온 거지만, 오금이 저리는 금액인 것도 확실했다. 유달리 환했던 사장님의 미소는 어쩌면 두둑한 매출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지훈은 호준이 주차장에서 차를 후진하느라 한쪽 팔을 카 시트 뒤에 걸치고 한 손으로만 핸들을 돌리는 모습을 보았다. 새 차에는 후방 카메라가 있는데도, 굳이 후진하려고 뒤를 돌아보는 호준에게 아무래도 속셈이 있어 보였다.
“그렇게 후진하면 누가 멋있다고 할 줄 알아요?”
“후방 카메라가 아직 적응 안 돼서요. 예전보다 차체가 커서 감이 안 잡혀요.”
호준이 무심하게 말하자 지훈은 머쓱해졌다. 하긴, 예전 차는 꽤 앙증맞았으니 중형 SUV는 적응이 안 될 법도 했다. 지훈이 호준의 핑계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후진을 마치고 기어를 바꾸던 호준이 지훈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실은 일부러 뒤 보면서 후진한 거 맞아요. 이런 거 하면 멋있다면 서요.”
호준의 장난에 낚인 걸 깨달은 지훈이 분통을 터뜨렸다.
“와, 진짜 어이없다. 왜 아닌 척해요?”
“멋있으면 그냥 멋있는 거지, 왜 말을 돌려서 해요.”
“그런 말 쉽게 해 주면 버릇 잘못 든다고요!”
“하지만 지훈 씨가 그렇게 말해 줄 때마다 엄청 기분 좋거든요. 버릇 안 나빠질 테니까 맨날 말해 주면 안되요?"
요즘 들어 호준의 어리광이 늘었다고 느끼는 게 지훈의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교통사고 이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호준은 지훈에게 종종 칭얼거리곤 했다.
호준은 매사에 신중한 사람이라, 좋아하는 사람한테도 속내를 터놓고 마음을 기대는 게 너무 느릴 뿐이었다. 가정사가 평탄하진 않다 보니 타인에게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엔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지훈은 그런 호준을 끈기 있게 기다려 줄 작정이었다. 몇 달 같이 지내는 동안 성질 급한 지훈도 호준의 느린 템포에 꽤 익숙해져 있었다. 호준이 서서히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답답하기보다는 즐겁게 느껴졌다.
“알았어요. 후진할 때 잘생긴 정호준 씨.”
지훈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을 기어이 들은 호준은 광대가 터질 듯 미소 지었다.
“후진할 때만 잘생겼어요?”
“전진할 때도 잘생겼어요.”
“우회전할 때도 잘생겨 보도록 할게요.”
“근데 지금 좌회전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앗!”
지훈의 말이 맞았다. 도로 표지판은 저수지에 가려면 좌회전을 해야 한다고 가리켰다. 하지만 이미 차선을 잘못 들어온 바람에 호준은 꼼짝없이 우회전해야 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거예요?”
“몰라요.”
호준의 대책 없는 대답에 지훈이 경악했다. 항상 앞날을 대비하는 계획 변태 정호준의 입에서 나온 것치고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뭐라고요?”
“뭐, 가다 보면 길이 있겠죠.”
지훈과 한가롭게 농담이나 따먹다가 길을 잘못 들어선 호준은, 사고 친 것치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비게이션이 안 돼요. 휴대폰 데이터 신호도 안 잡히고요!”
조수석에 있던 지훈만 마음이 급해져 차에 내장된 내비게이션과 휴대폰을 총동원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달릴수록 산속의 시골길은 점점 좁아지고 통신 신호는 점점 약해졌다. 그사이 해가 저물어 사위는 어두워져 갔다.
“그냥 왔던 길로 돌아 나가면 안 돼요?”
“길이 좁아서 유턴할 곳을 찾아보고 있어요. 그런데 적당한 곳이 안 보이네요.”
어둠 속에서 좁은 차도만 이어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길을 잘못 든 상황이었다. 지훈이 안절부절못하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도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안 오니까, 적당한 데에서 그냥 돌아 봐요.”
“그런데 지훈 씨,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안 온다는 사실이 무섭지 않아요? 지금 뒤에 오는 차도 없는데.”
“헉!”
호준의 말에 지훈은 정말로 겁먹었다. 저수지에 가서 산책을 좀 하다가 장어의 기운에 힘입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했던 드라이브는 졸지에 공포 체험이 되어 버렸다.
“이러다 다른 차원으로 가면 어쩌죠? 영영 못 돌아가면 어떡해요?”
새카만 창밖을 바라보던 지훈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엉뚱한 소리를 시작했다. 지훈의 상상력이 이상한 데로 튀기 전에 호준은 지훈을 안심시키려 했다.
“만약에 정말로 다른 차원으로 가더라도, 지훈 씨랑 같이 있으니까 빠져나올 수 있을 거예요.”
“영원히 못 빠져나오면 어떡해요? 지금 되돌아 나오는 차가 없잖아요!”
“그럼 둘이서 거기서 살면 되죠. 다른 차원이면 야근은 없을 테니 지금보다 살 만하지 않을까요?”
호준이 쓸데없는 소릴 하자 지훈이 그런 호준을 잠깐 흘겨보았다. 하지만 곧 무슨 생각이 든 건지 발을 동동 구르던 걸 멈추고는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어 앉았다.
“하긴, 정호준이랑 지구 반대편에서도 걱정 없이 잘 다녔으니까, 다른 차원에 가도 괜찮겠죠.”
“나만 믿어요.”
지훈은 호준의 말대로 걱정을 조금 내려놓고는 검은 창밖만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 엉뚱한 걱정은 멈춘 것 같다만, 지훈이 입을 얌전히 다물고 있으니 호준은 되레 걱정됐다. 차가 으슥한 오솔길로 접어들자, 호준은 돌연 길가에 차를 세웠다.
“내려요. 지훈 씨.”
“왜요?”
“보여 줄 게 있어요.”
그 말에 지훈은 창밖을 보았다. 불빛 한 점 없는 산속은 어둡기만 했다. 뭘 보려 해도 보이는 게 없었다.
지훈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일단 호준을 따라나섰다. 호준은 별다른 말 없이 휴대폰의 불빛으로 주변을 비추며 풀숲을 잠시 헤쳐 갔다. 숲 속은 지훈과 호준이 낙엽을 밟는 소리 사이에 풀벌레 우는 소리만 들려올 뿐 인적 하나 없이 적막했다.
곧 나무가 없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호준이 설명하기도 전에 지훈은 이곳이 저수지의 반대편이라는 걸 알았다. 멀리서 불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원래 이쪽으로 오려고 했어요. 저쪽은 낚시하는 사람이 꽤 있거든요.”
지훈은 호준이 뒤에서 다가오는 걸 느끼고 곧바로 몸을 기댔다. 등 뒤로 호준의 단단하고 따듯한 몸이 느껴졌다. 인적이 없으니 주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지훈은 호준이 왜 이곳으로 온 건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아까 좌회전 안 했다고 놀라는 바람에 농담 좀 했는데, 지훈 씨가 너무 걱정해서 미안했어요.”
“일부러 그런 것 같더라고요.”
사실 처음엔 정말로 놀랐는데, 호준이 너무 태평해서 지훈도 곧 눈치챘다. 과속 위반 카메라 위치까지 고려해서 도착 예상 시간을 계산하는 계획 변태 정호준이 실수로 차선을 잘못 들어설 리가 없으니까. 호준과 있으면 지구 반대편이든, 다른 차원이든, 아주 외딴 곳이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호준은 언제든 침착하게 가야 할 길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믿고 따라가면 그만이다.
“지훈 씨가 나랑 있는 동안은 아무 걱정 안 했으면 좋겠어요.”
호준이 지훈의 귓가에 속삭였다. 주변이 적막한 가운데 들려오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너무 달콤해서, 지훈은 그것만으로도 조금 아찔해졌다.
“알아요. 걱정할 필요 없는 거. 그런데도 자꾸 걱정되거든요.”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요?”
“아뇨. 너무 좋아하니까 그렇죠.”
지훈의 말에 호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지훈이 좋아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새삼스럽게 좋았다. 호준은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지훈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그래서 말인데, 정호준 씨도 나한테 좀 더 기댔으면 좋겠어요.”
“……무슨 뜻이에요?”
귓가에 닿는 호준의 숨결을 느끼며 지훈이 말했다.
“가끔 보면 사무관님은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려는 거 같아요. 나한테 해 주려고만 하고. 나도 뭔가를 해 주고 싶은데 사무관님은 알아서 다 해 버리니까 가끔은 사무관님한테 내가 필요 없는 것 같잖아요.”
지훈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줄 몰랐던 터라 호준은 놀랐다.
“난 지훈 씨가 내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돼요. 그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어요. 나랑 있을 땐 지훈 씨가 편안했으면 좋겠고요.”
“하지만 한쪽만 편하면 관계가 오래 못 가거든요. 나도 정호준이라는 사람이 너무 좋고, 오랫동안 같이 잘 지내고 싶어요. 그러니까 내가 호준 씨한테 잘해 주고 싶은 마음도 받아 줘요. 나 믿어 주고, 투정도 부리고, 가끔은 성질내도 괜찮아요. 나도 정호준 씨가 나랑 있을 때 더 편했으면 좋겠거든요. 이제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단계는 아니잖아요.”
호준은 갑자기 목이 메었다. 지훈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번에도 지훈은 훌쩍 앞서갔지만, 이젠 앞에서 손을 내밀며 호준의 느린 걸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준도 지훈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성큼 내디뎌도 괜찮다는 걸 이젠 알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던 호준은 그냥 지훈을 와락 끌어안아 버렸다.
“그렇게 말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지훈 씨 말대로 할게요.”
지훈도 자신에게 완전히 몸을 기댄 호준을 가만히 토닥였다. 그러다가 몸을 잠깐 떼어 내더니 돌아서서 호준을 마주 보며 싱긋 웃었다. 양 볼에 보조개가 가득했다.
“나 방금 멋있었던 거 같은데, 어때요?”
도무지 감동할 틈을 안 주는 지훈이었다. 아까의 진지함은 어디로 간 건지, 어느새 눈가에 장난기가 득실거렸다.
“완전 멋있었어요. 김지훈한테 또 반했어요.”
물론 호준은 한술 더 떴다.
“큰일 났다, 진짜. 정호준 씨 나 너무 많이 좋아해서 어떡해요.”
“어떡하긴요. 지훈 씨가 잘나서 그런 거니까, 지훈 씨가 다 받아 줘야죠.”
“이것참! 잘난 내가 받아 줘야지! 이리 와요!”
지훈은 호준의 온 마음을 다 받아 줄 기세로 팔을 번쩍 벌렸다. 호준은 기꺼이 그 품에 안겼다.
호준은 지훈에게 마음 편히 몸을 기댔다. 호준은 문득 지훈이 그렇게까지 작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 훤칠한 체격뿐만 아니라 마음도 그러했다. 그동안 자신의 눈에만 너무 작고 귀엽게 보였을 뿐, 지훈은 사실 자신이 온전히 기대어도 끄떡없을 정도로 단단한 사람이었다.
지훈도 자신에게 안겨 온 호준의 큼직한 등을 토닥이며 꼭 끌어안아 주었다. 물론 그 손길이 끈적하게 변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훈 씨. 그렇게 만지면 저 곤란해져요…….”
호준이 수줍게 중얼거렸지만, 지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호준의 윗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따끈한 복근을 더듬던 지훈의 기다란 손가락은 곧 호준의 탄탄한 가슴 근육에 닿았다. 지훈은 흑심을 가득 담아 호준의 가슴을 아래서부터 조몰락거리며 유두까지 훑었다.
“곤란하라고 만지는 건데요.”
지훈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다른 손으로 호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지훈은 호준의 성기가 좁은 바지 안에서 단단하게 부푼 걸 느꼈다. 물론 지훈의 것도 마찬가지였다.
“지훈 씨 밖에서 이러는 거 싫어하잖아요.”
“여기는 벌레밖에 없잖아요. 이러려고 일부러 사람 없는 쪽으로 온 거 아니에요?”
지훈이 호준의 유륜 주변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다가 말랑말랑한 유두 끝을 꾹꾹 눌러 대며 속삭였다. 외투 속 두꺼운 옷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겉으로 보기엔 둘은 그저 포옹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호준은 자극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고 이를 악물어야 했다.
“지훈 씨가 먼저 이럴 줄 몰랐어요.”
“아까 장어를 너무 먹었더니 어쩔 수가 없네요…….”
한번 발동 걸리기 시작하니, 몸에 차오르는 열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사정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지훈은 곧장 호준의 턱을 붙잡고 입을 맞췄다. 맞닿은 볼은 차가웠지만, 입안은 더웠다. 지훈이 혀로 호준의 입술을 쓸며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입술을 벌렸다. 호준이 살짝 벌린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지훈의 말캉한 혀가 호준의 뜨거운 입안을 핥았다.
호준은 열기가 넘쳐나는 지훈의 바지 뒤쪽으로 대뜸 손을 밀어 넣었다. 지훈의 보드라운 엉덩이를 움켜쥐며 양손으로 붙잡아 들었다. 지훈은 냉큼 호준의 허리께로 다리를 들어 올려 호준에게 매달렸다. 두 팔을 호준의 목에 감고 옷자락 너머로 크고 단단한 존재를 느끼며 몸을 바짝 붙였다.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고 호흡을 나누는 와중에 정신을 차려 보니 두 사람은 호준의 차 안에 들어와 있었다. 호준이 조수석에 앉은 지훈의 몸을 거의 덮어 버릴 듯 올라타서는 지훈의 입술을 흡입하듯 빨아들였다. 지훈은 이대로 집어삼켜져도 좋다고 생각하며 호준의 옷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호준의 허리를 더듬으며 호준과 자신 사이의 남은 빈틈도 없애 버렸다. 바깥의 찬 기운이 감돌았던 차 안이 다시 열기로 달아올랐다.
“정호준 씨, 왜 이렇게 뜨거워요.”
지훈이 귓가에 대고 더운 숨을 불어넣으며 묻자 호준이 지훈의 목덜미를 빨아 대며 말했다.
“나도 기운이 넘쳐서요.”
지훈은 손을 뻗어 호준의 아랫도리를 더듬었다. 옷 위로 드러나는 윤곽은 뜨겁고 단단했다. 지훈은 일부러 호준의 바지를 벗기진 않고 겉으로 쓰다듬기만 했다. 손가락으로 성기의 윤곽에 살짝 힘을 주고 누르며 자극하자 호준이 그르렁대는 신음을 뱉었다.
“흐읏…….”
지훈은 호준의 귓바퀴를 핥으며 노골적인 혀의 움직임을 그대로 불어넣었다. 그에 반응하듯 호준의 성기가 더 단단해졌다.
호준이 지훈의 옷 안에 손을 넣고 더듬으며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윗옷을 걷어 올리고 지훈의 유두를 대뜸 입안에 머금었다. 입술 끝으로 살짝 유두 끝을 스치듯 간지럽히더니 입안에 쏙 넣어서는 혀끝으로 꾹꾹 눌러 댔다.
"아으읏!간지러워요......"
지훈의 하얀 속살 속 유두가 붉게 물들어서는 타액에 젖어 번들거렸다. 호준이 쪽쪽 빨아 당겨서 잔뜩 일어선 채로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호준은 그 유두 끝을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가 떼면서 입술을 반대편 유두로 가져갔다. 혀로 한참이나 딱딱해진 유두 끝을 희롱했다. 계속 느껴지는 자극에 지훈이 허리를 비틀었지만, 두 사람이 겨우 안겨 있을 정도의 공간에서는 작은 움직임도 버겁게 느껴졌다. 호준은 잠깐 입술을 떼며 조수석의 시트를 뒤로 눕혔다.
지훈의 몸이 뒤로 기울어지자 호준이 그 위로 올라탔다. 하반신이 좁은 공간 사이에 밀착되어, 호준의 단단한 성기가 지훈의 허벅지로 바로 느껴졌다.
지훈이 호준의 바지 버클을 다급하게 열었다. 그러곤 자신의 바지 버클도 열고 속옷 안에서 젖은 성기를 꺼냈다. 이미 좁은 장소에 꽉 들어찬 몸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마찰되었다. 성기를 타고 흐르는 체액이 벌써 진득했다. 공기가 너무 더웠다.
“아아……. 빨리 안에다 싸 줘요.”
성기끼리 마찰하는 기분 좋은 감촉에 지훈이 기분 좋게 신음을 내질렀다. 차 안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 리가 없으니 신음을 참을 필요가 없었다.
“지훈아. 그렇게 말하면 바로 쑤셔 넣고 싶잖아.”
호준도 지금 당장 지훈의 안에 박아 넣고 흔들어 싸고 싶었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욕구를 참으려 호준은 심호흡을 해야 했다. 대신 허리를 일부러 짓눌러 지훈의 성기를 자신의 성기와 거칠게 마찰시켰다. 마치 피스톤질을 하듯이 허리를 흔들며 비벼 대자 지훈이 거칠게 신음했다.
“크으읏! 하윽.”
차 안에 고이는 신음은 더 선명하게 고막을 울렸다. 호준이 조수석 시트를 뒤로 더 젖혔다. 완전히 드러눕게 되자 지훈이 깜짝 놀랐다.
“하읏. 이렇게까지 젖혀져요?”
“내가 말했잖아. 지훈이 드러누워도 된다고.”
“진짜 내가 못살아…….”
호준이 거짓말은 절대로 안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지훈이 카 시트 위에 완전히 누웠다. 호준이 잠깐 몸을 세워 지훈의 바지를 벗기려 했다. 하지만 공간이 좁아 지훈의 청바지가 잘 벗겨지지 않았다. 그걸 본 지훈이 짜증을 냈다.
“아, 그냥 넣어요. 빨리…….”
어지간하면 끝까지 벗기려 할 텐데, 호준도 안 되겠던지 지훈의 다리를 운전석 쪽으로 돌렸다. 지훈의 보드라운 엉덩이와 허벅지가 호준의 눈앞에 드러났다. 바지를 허벅지에 걸친 채로 엉덩이만 드러내서 평소보다 더 자극적이었다.
호준은 지훈의 엉덩이 위에 자신의 성기를 잠깐 올려놓고는 일부러 성기를 문질렀다. 성기에서 흘러나온 체액으로 지훈의 엉덩이가 번들거렸다. 엉덩이 골 사이로 넣을 듯 말 듯 하면서 비벼 대자 지훈이 고개를 살짝 들고 호준을 흘겨봤다.
당장 넣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좁은 차 안에서 지훈한테 그대로 걷어차일 것 같았다. 하지만 반쯤 눈을 내리깔고 호준을 바라보며 웃는 지훈은 마치 호준을 유혹하는 사이렌 같았다. 다 알고 있으니 그냥 마음껏 하라고 속삭이듯 호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호준은 그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호준은 손가락에 콘돔을 씌워 젤을 바른 후 지훈의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급하게 벌어지는 입구 때문에 통증을 느낀 지훈이 시트에 고개를 파묻었다.
“아으으응…….”
“지훈아, 조금만…….”
호준이 손가락 두 개를 넣어 입구를 서서히 벌리며, 엄지손가락으로는 회음부와 고환 쪽도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힘을 줘서 내벽을 꾸욱 누르자 지훈의 성기가 더 발기했다.
“아읏…… 아아!”
좁은 차 안에 지훈의 신음이 가득 울렸다. 숨결 사이사이의 호흡까지 귀에 울렸다. 낯설고 불편한 장소가 주는 긴장감이 호준을 더 들뜨게 했다. 지훈도 마찬가지인 듯 평소보다 신음이 짙었다.
호준의 성기에 피가 잔뜩 몰렸다. 손가락을 세 개까지 넣자 내벽에 자극을 받은 지훈이 허리를 움찔거렸다. 이미 지훈의 내부는 충분히 뜨겁고 축축하고 부드러웠다. 호준은 더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손가락을 빼내고 콘돔을 씌운 성기를 지훈에게 넣었다. 지훈의 입구가 힘겹게 벌어지며 호준의 성기를 그대로 삼켰다.
“아아아아!”
“크흣.”
둘은 거의 동시에 신음을 뱉었다.
“아, 지훈아. 너무 조여. 힘 좀 빼 봐.”
“아, 안 돼요. 지금 자세가 너무…….”
지훈은 이미 한계였다. 호준은 잠깐 망설이다가 그냥 그대로 성기를 더 밀어 넣었다. 호준의 허리가 반동하자 차체가 덜컹거렸다. 그 진동이 지훈에게까지 전해졌다.
“아아! 처, 천천히. 지금 안에 터질 거 같아.”
식은땀을 흘리는 지훈은 이미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호준은 허리를 숙여 더 깊숙한 곳까지 찔러 넣으며 지훈의 턱과 입 주변에 입을 맞췄다.
“지훈아, 지금 너무 좋아.”
“아으읏…….”
지훈은 여력이 없었는지 대답 대신 신음만 뱉었다. 그 와중에도 다가오는 호준의 입술에 고개를 돌려 입을 맞춰 주었다.
호준이 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은 채로 가만히 숨을 골랐다. 성기가 조이는 압박감에, 허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좁은 공간 속에 몸이 달라붙어 있어, 지훈의 빠른 호흡과 맥박이 느껴졌다.
“나도 너무 좋아요…….”
홍조를 띤 채 잔뜩 달아오른 지훈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자극적이었다.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헐떡이면서도 흥분감에 볼을 붉히는 지훈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호준은 사정해 버릴 것 같았다. 몇 번이고 몸을 섞었지만 할 때마다 지독하게 탐하고 싶었다.
호준은 지훈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지훈이 주는 진득한 살 냄새를 가득 느꼈다. 땀에 젖어 축축해진 피부에서 솟아나는 지훈의 냄새는 호준을 삼켜 버릴 듯했다.
“아앗! 하윽!”
정신 차리고 보니 허리를 움직여 가며 지훈의 안을 쑤셔 대고 있었다. 내장 끝까지 닿을 기세로 호준은 거칠게 밀어 넣었다. 격렬한 허리 짓에 차체가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지훈은 자신의 성기를 카 시트에 문질러 대며 흥분하고 있었다. 호준이 찔러 댈수록 지훈의 내부가 더 움찔거리며 조여 왔다. 호준은 성기를 감쌀 듯하면서 쓸려 내려가는 내벽의 마찰감에 이를 악물었다.
좁아서 허리를 더 들 수가 없었다. 호준은 그 자세에서 지훈의 팔만 끌어당겨 팔목에 입을 맞췄다. 지훈의 세찬 맥박이 느껴졌다. 그 맥박보다 더 빠르게 허리를 쳐올리며 호준은 지훈의 안으로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자신의 심장도 터질 것 같았다. 자신의 아래에서 흔들리며 움직임에 맞춰 내지르는 지훈의 신음이 귓가를 울렸다.
오로지 둘만의 공간이었다. 둘의 신음과 숨으로 차 안이 가득 찼다. 둘의 체온만으로 이미 너무 뜨거웠다.
차창에 뿌옇게 김이 서려 있었다. 둘의 움직임에 맞춰 차가 흔들렸다. 호준은 이대로 지훈의 안에 완전히 잠기고 싶었다. 영원히 한 몸인 것처럼 이렇게 뒤엉켜 있고 싶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아아앗!”
지훈이 허리를 튕기며 카 시트 위에 그대로 사정해 버렸다. 희고 끈적한 정액이 흩뿌려졌다. 지훈이 신음하며 몸을 파르르 떨자 그 감각이 호준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왔다.
호준은 지훈의 안을 거칠게 쑤시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몰아붙였다. 지훈은 몸이 뒤로 밀려가자 호준의 어깨를 퍽퍽 때렸지만, 호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아아앗!”
지훈이 차체에 머리가 부딪칠 정도가 되자, 호준이 안 되겠는지 숨을 고르며 지훈의 허리를 양손으로 대뜸 붙잡고 자신의 쪽으로 확 끌어당겨서는 다시 몰아붙였다.
“아아! 아! 아! 아앗!”
사정 후에도 내부에서 계속되는 강렬한 자극에 지훈은 자지러질 듯 헐떡였다. 몸을 지탱하느라 붙잡은 카 시트에 손톱자국이 남았다.
“하으읏…….”
호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침내 움직임을 멈췄다. 내부에 성기를 파묻은 채로 여러 번 세차게 사정하며 지훈의 위로 몸을 겹쳤다. 살갗에서는 땀이 흘러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지훈을 끌어안았다. 안긴 채로 지훈도 가쁜 숨을 크게 내쉬었다. 두 사람의 더운 숨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빼기 싫어, 지훈아…….”
호준이 지훈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훈이 피식 웃는 바람에 콧바람이 호준의 팔에 닿았다.
“그러다 정호준 거 차에 다 흐르겠네요. 새 차인데.”
“이미 지훈이 때문에 더러워졌는데, 뭘.”
조수석 시트 위에다 사정해 버린 지훈은 민망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신도 콘돔을 낄 걸 그랬다며, 남의 콘돔만 챙긴 자신의 정신머리를 잠깐 탓했다.
“더러워져서 어떡해요?”
“어쩌긴. 닦으면 되지.”
“냄새는 어떡할 건데요.”
지훈이 처음 탑승할 때만 해도 새 차 냄새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제 차 안은 질척한 땀 냄새와 정액 냄새로 가득 차 버렸다. 환기를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지훈이 냄샌데, 탈 때마다 흥분되고 좋지 않을까?”
“정호준 미쳤다, 진짜. 차 탈 때마다 발정 나려고 작정을 했어요?”
섹스할 때마다 살짝 돌아 버리는 저 인간이 평소엔 어떻게 다 참고 점잔 빼고 사는지, 지훈은 의문이었다.
“운전하다 지훈이 냄새 맡고 발정 나면 어쩌지?”
“꾹 참았다가 나한테 싸요.”
“그러려면 엄청 많이 싸야겠네.”
호준의 농담에 지훈이 어이없어서 웃는 사이, 호준은 아쉬운 마음으로 성기를 빼내고 몸을 돌려 운전석에 앉았다. 창문을 살짝 열어 환기를 시키더니 부지런히 뒤처리를 했다.
차 내부에 늦가을 숲 속의 찬 공기가 감돌자 코끝이 시원해졌다. 두 사람 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달아올랐던 열기를 식히면서 각자 자리에 앉아 엉망이 된 옷매무새를 대충 추슬렀다.
“진지하게 물어보는데요. 다 기억하죠, 사무관님?”
“뭘요?”
지훈의 질문에 호준이 딴청을 피웠다.
“섹스할 때 헛소리하는 거요.”
“지훈 씨가 무슨 말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요.”
호준은 거의 1년이 다 되도록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엔 진짜 기억을 못 했다. 하지만 지훈과 거의 매일같이 관계하다 보니 섹스 중에 정신은 놓을지언정, 인지는 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한 짓이 너무 부끄러워서, 제정신일 땐 계속 모르는 척할 뿐이다.
“그럼 정호준 씨가 섹스할 때 나한테 전 재산 넘긴다고 한 것도 기억 못 하겠네요?”
“기억 안 나니까 무효입니다.”
떠보려고 한 지훈의 거짓말에 호준이 그리 쉽게 넘어가진 않았다.
“아, 뭐야. 다 기억하잖아. 안 되겠다.”
지훈이 중얼대며 운전석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다시 흥분시켜서, 자백을 받아 내야겠어요.”
“뭐라고요?”
호준이 당황하는 사이 지훈이 호준의 바지춤을 대뜸 붙잡았다. 정사의 흔적을 꼼꼼하게 닦아 냈지만, 아직 그 열기가 가시지는 않았다.
“장어의 기운이 아직 불끈불끈하네요. 정호준 씨.”
“지훈 씨도 만만치 않은데요.”
자신에게 몸을 기울이는 지훈을 확 끌어당기며 호준이 말했다.
“내가 장어의 기운을 한번 맛봐야겠어요.”
지훈이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호준의 바지 버클을 다시 열었다. 속옷 안에 있던 호준의 커다란 성기를 서슴없이 꺼냈다. 자기 것인 양 다루는 폼이 아주 자신만만했다. 호준의 신체지만 실소유주는 사실상 지훈이었다. 지훈은 자신의 소유물을 대뜸 입에 머금었다.
“으읏!”
갑자기 성기에 닿는 축축한 감촉에 호준이 신음을 뱉으며 긴장했다. 지훈의 요망한 혀가 호준의 성기를 감싸고 선단을 부드럽게 핥아 대자 곧바로 성기에 피가 몰렸다. 말랑하던 성기가 곧바로 단단해지면서 지훈의 입안에서 금세 부풀어 올랐다. 지훈은 입을 더 벌려서 머금어야 했다.
“아아…….”
호준이 자신의 눈앞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지훈의 머리카락을 가만 바라보다가 한 손에 움켜쥐었다. 지훈을 끌어안고 싶었지만 차 안이 좁아서 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앉은 채로 지훈의 펠라티오를 꼼짝없이 받는 수밖에. 몸을 잘못 움직여 지훈의 머리에 핸들이 닿을까 봐 계속 신경 쓰였다.
하지만 성기가 지훈의 입안에서 빨리는 자극이 너무 강렬해서 호준은 이따금 신음을 내뱉으며 이를 악물어야 했다. 참지 않았다간 지훈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자신의 마음대로 휘저어 버릴 것 같았다.
호준은 지훈이 입으로 해 주는 걸 좋아했지만, 지훈의 입장에서는 호준의 성기를 입에 넣는 일이 꽤 힘들어서 그냥 자기 내킬 때만 해 주곤 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크흡……. 아, 지훈아…….”
지훈은 호준의 성기 끝을 혀끝으로 꾸욱 누르면서 기둥을 입술로 빨아들였다. 타액이 넘어가는 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지훈은 호준의 성기를 부드럽게 핥아 내리면서 왕복 운동을 반복했다. 지훈이 흡입할 때마다 호준은 허리를 비틀었다. 지훈의 머리카락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으윽!”
“우읍!”
지훈이 호준의 선단 끝을 장난치듯 잇새로 살짝 깨물자 호준이 못 참고 입안에서 허리를 쳐올렸다. 지훈의 목 깊숙한 곳까지 호준의 성기가 닿았다. 호준이 거칠게 호흡하며 감촉이 다른 안쪽 깊은 곳에 자신의 성기를 문질러 댔다.
“아! 아프다고요!”
못 참고 입을 뗀 지훈이 호준을 노려보았다. 정신을 차린 호준은 미안하다고 말하려다 말고, 지훈의 얼굴을 보더니 그대로 턱을 붙잡았다. 살짝 벌어진 입가에서 흘러내린 타액을 혀로 핥으면서 지훈의 입술까지 삼켜 버렸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당황하면서도 지훈은 호준이 전해 주는 감각에 전율하며 호준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타액으로 미끈거리는 호준의 성기를 한 손으로 쥐고 손가락 끝으로 부드럽게 문질렀다. 호준이 더운 숨을 지훈의 입안에 불어넣었다.
지훈은 호준과 키스하느라 발기한 자신의 성기를 호준의 허벅지에 문지르며 그 위에 올라탔다. 좌석이 좁아서 몸이 딱 달라붙었다. 호준이 지훈의 허리를 붙잡고 좌석을 뒤로 젖히면서 공간을 만들자, 지훈은 호준에게 달라붙은 채로 엎드렸다.
“근데 사무관님. 나 지금 도저히 못 넣겠는데…….”
자기가 먼저 달려들어 놓고는, 지훈이 호준의 볼과 목덜미에 키스해 대며 중얼거렸다. 지훈의 단단한 성기가 옷자락 위로 드러난 호준의 성기와 맞부딪쳤다. 허리 아래로 서로의 단단함과 뜨거움이 느껴졌지만, 두 사람 간에 오고 가는 대화는 꽤 현실적이었다.
“아까 무리했어요?”
지훈이 고개만 끄덕이면서 호준의 성기를 빨아들이던 그 감각 그대로 호준의 귓바퀴를 핥았다. 호준이 거친 숨을 내쉬면서 지훈의 바지 안에 손을 넣어 비문 쪽을 더듬었다.
“아프면 말하지 그랬어요.”
“아까는 너무 좋아서…….”
하는 동안 알았으면 진작 그만하라고 했을 것이다. 지훈도 호준이 사정을 끝낸 후부터 통증을 느껴서 어쩔 수 없었다.
지훈의 아래쪽이 잔뜩 부풀어 올라서 성기 삽입은 무리였다. 굳이 하려면 하겠지만, 둘 다 무리해 가면서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지훈아, 잠깐만.”
호준은 지훈의 허리를 톡톡 치며 살짝 들어 올렸다. 그 바람에 지훈의 머리가 차체에 살짝 부딪혔다.
“앗, 쓰읍.”
지훈이 아프다며 엄살을 부리자 호준이 팔을 뻗어 지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래는 잔뜩 성이 났는데, 혹이 난 정수리를 만져 주는 손길은 너무 다정했다. 그 괴리감에 지훈이 그만 웃어 버렸다.
“왜 웃어요?”
“그냥. 너무 좋아서요.”
지훈은 자기가 말해 놓고는 정말 그런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다시 숙여 호준의 입술과 양 볼, 코와 이마까지 온 얼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 호준을 좋아하게 된 후로, 지훈은 그 사실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었다. 호준은 그 결정을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 더더욱 좋았다.
지훈은 호준이 바지를 내려 자신의 성기를 호준의 것과 맞잡는 것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사랑해요.”
서로의 성기를 비벼 가면서 할 말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호준의 손안에 잡힌 자신의 성기를 보며 지훈은 그 손을 마저 맞잡았다. 손안에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서로의 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체액으로 기둥과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갔다. 몸에서 열기가 확 오르면서 몸이 더워졌다.
“지훈아. 나도, 나도 사랑해……. 아흑.”
손을 맞잡은 채로 둘은 허리를 들썩이며 성기를 더 빠르게 마찰시켰다. 단단하게 발기한 서로의 것이 부푸는 걸 느끼면서 지훈은 이를 악물었다. 호준도 마찬가지였다. 신음을 뱉을 때마다 숨결이 서로에게 닿았다. 살이 닿은 곳이 너무 뜨거웠다.
“아아앗!”
지훈이 먼저 사정했다. 지훈과 호준의 손에 진득한 정액이 흘러내렸다. 호준은 지훈의 성기를 더 붙잡고 끝까지 정액을 짜냈다. 발갛게 달아오른 지훈의 성기는 호준의 손길에 몸서리를 쳤다.
“아으읏, 그, 그만해요…….”
하지만 호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기의 선단 끝을 손바닥 안에서 더 비벼 댔다. 지훈이 먼저 사정할 때마다 호준이 자주 하는 장난이었지만, 지훈은 매번 미칠 것 같았다.
안 되겠는지 지훈이 자신의 성기를 거칠게 빼내고는 호준의 위에 완전히 엎드려 버렸다.
“그만하라니까. 진짜.”
지훈이 성질을 내면서 호준의 성기를 꽉 잡아 버렸다. 그러고는 빠르게 훑었다.
“아으읏, 아아! 지훈아! 아앗, 자, 잠깐만!”
지훈이 작정하고 꽉 쥔 채로 세차게 흔들자, 호준이 갑작스러운 자극에 허리를 튕겼다. 압박감이 엄청났다. 호준이 이를 악물면서 신음했지만, 지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준의 성기를 더 쥐어짜듯 붙잡고 흔들었다.
“크읏!”
호준이 거칠게 신음하며 허리를 크게 들썩였다. 사출된 정액이 호준의 배와 지훈의 옷에 튀었다. 지훈은 기둥을 계속 훑으면서 선단을 간질였다. 호준의 굵은 성기가 진한 정액을 끊임없이 토해 냈다. 두 사람의 정액 냄새로 온 차 안이 가득 찼다.
방금 사정을 했는데도 성기는 여전히 단단했다. 지훈은 정액으로 더럽혀진 손으로 계속 호준의 성기를 쥐고 있었다.
“호준 씨, 이거 왜 이래요?”
지훈 때문에 완전히 탈진해 버린 호준이 눈을 반쯤 뜬 채로 지훈을 흘겨보았다.
“지훈 씨가 잡고 있으니까 그렇죠.”
“한 번 더 할까요?”
지훈이 손으로 다시 호준의 성기를 훑으며 유혹하듯 속삭였지만, 호준은 대답 대신 휴지를 뽑아 들었다.
“뒷좌석으로 옮겨요.”
“왜요? 여기 너무 좁아요?”
호준은 정액을 닦아 낸 손을 지훈의 바지 안에 집어넣더니 사타구니를 지나 허벅지 안쪽을 지분거렸다.
“꼭 뒤에만 넣으란 법은 없거든요. 성기만 넣으란 법도 없고.”
호준의 굵은 손가락이 지훈의 예민한 안쪽 피부를 건드리자 지훈의 몸에 다시 열이 올랐다.
“아응……. 근데 지금 옷이 이래 가지고 뒷좌석으로 어떻게 가요.”
“뭐 어때요. 밖에 아무도 없는데. 보려면 아까부터 차 흔들리는 것도 봤겠죠.”
호준이 대뜸 차 문을 열었다. 차 밖은 새카맣게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차 밖에 있었더라도 둘의 모습을 보진 못했을 것이다. 호준은 자신의 허벅지에 올라탄 그대로 지훈을 들어 올려 밖으로 나갔다. 바지가 반쯤 벗겨진 채로 지훈은 얼떨결에 호준의 목에 팔을 감으며 안겨 버렸다.
“지금 뭐 하는…….”
“쉿.”
호준이 그대로 뒷좌석 문을 열고 지훈을 앉혔다. 지훈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면서 호준이 들어와 문을 닫는 것까지 지켜보았다.
“이 차, 뒷좌석이 꽤 넓거든요.”
호준은 씨익 웃으며 지훈의 바지를 속옷과 함께 훌러덩 벗겨 버렸다.
“정호준 씨, 설마 차 살 때 나랑 섹스할 생각밖에 안 했어요?”
그렇게 물으면서도 지훈은 훤히 드러난 맨다리로 호준의 허리를 감았다. 호준이 그대로 지훈의 위에 올라탔다.
“몰랐어, 지훈아? 나는 온종일 너랑 섹스할 생각만 하는 거.”
호준이 다정하게 속삭이며 지훈에게 입을 맞추었다. 맞닿은 입술이 너무 달았다.
* * *
호준과 지훈은 차 트렁크를 활짝 열어 둔 채, 뒤에 걸터앉아 새벽의 어스름이 밝아 오는 걸 바라보았다. 차 안을 환기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새벽바람을 쐬면서 잠을 깨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삽입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지훈의 안색은 꽤 초췌했다. 호준은 은근한 죄책감을 느끼며 지훈의 어깨에 자신의 외투를 걸쳐 주었다.
“지훈 씨, 오늘 무리했어요.”
어깨를 감싸는 호준의 손가락을 본 지훈이 질겁하며 차체에 몸을 기댔다.
“그러게요. 이제 정호준 손가락만 보면 미칠 것 같아…….”
지난밤 내내 지훈은 호준의 손가락에 앞뒤로 완전히 농락당하고 말았다. 호준의 비기는 남다른 대물이라고 생각했던 지훈은 오늘부로 생각을 완전히 고쳐먹었다. 손가락이 더했다. 삽입은 많이 못 했지만, 사정은 평소보다 더 많이 했다. 장어를 열심히 먹었다 해도 그렇게까지 싸질러 대면 소용이 없다.
“오늘 별로였어요?”
지훈의 눈치를 살피며 호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뻔뻔하게 지훈의 온몸을 지분거리며 농락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신한 태도였다. 지훈은 호준의 손가락을 자신의 허벅지에 올리고는 소중히 쓰다듬었다.
“너무 좋아서 이대로 죽었으면 싶었어요.”
“이제 자제해야겠어요. 지훈 씨 죽으면 안 되니까.”
“괜찮아요. 나만 죽진 않을 테니까. 자제 같은 소리 하지 마요.”
지훈이 호준을 올려다보면서 씨익 웃었다. 호준은 물귀신 같은 애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나도 오늘 좋았어요. 지훈 씨가 입으로 많이 해 줘서.”
“그렇게 좋았어요?”
지훈이 놀리듯 묻자 호준이 쑥스럽게 얼굴만 붉혔다. 눈빛이 유달리 반짝거리는 걸 보니 진심 오백 퍼센트였다.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삽입은 거의 못 했지만, 대신 낯선 공간에서 이런저런 다른 재미를 느껴서 오히려 더 즐거웠던 밤이었다.
“참, 지훈 씨한테 줄 게 있어요.”
자신의 손가락을 매만지는 지훈의 손길을 가만히 느끼던 호준이 문득 벌떡 일어나서 운전석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앞좌석 바닥에 떨어져 있던 지훈의 속옷을 찾아서는 지훈에게 건넸다. 그냥 맨살에 청바지만 껴입고 있었던 지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의 속옷을 공손히 받아 들었다.
“……고마워요. 어차피 내 거지만.”
“그건 그냥 찾은 김에 갖다 준 거고요. 잠시만요.”
호준은 운전석 옆자리 콘솔을 열더니, 뭔가를 꺼내 지훈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거 받아요.”
지훈은 차 보조키를 받아 들며 고개를 갸웃했다.
“집에 가는 길엔 내가 운전하라고요?”
“그게 아니라…… 그냥 이 차를 아예 지훈 씨랑 같이 쓰면 좋을 것 같아서요. 지훈 씨가 쓰고 싶을 때마다 운전해요. 나한테 매번 키 빌리지 말고. 지훈 씨도 차 필요하잖아요.”
“…….”
지훈은 졸린 눈으로 차 키와 호준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지훈이 개인적인 용무를 보려면 종종 차가 필요한 건 사실이었지만, 이제까지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았던 건 호준과 동행하거나 이미 호준에게 차를 빌려 써 왔기 때문이었다. 차주가 아예 대놓고 같이 쓰자고 하는데, 지훈이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호준도 매번 지훈에게 빌려주느니, 아예 차 키를 쥐여 주는 편이 더 편할 수 있었다.
결국 지훈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자신에게도 좀 기대 달라는 말에 호준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 몰랐던 지훈은 눈만 깜박였다.
“난 지금도 괜찮은데요. 혹시 어제 말한 것 때문에 그런 거면…….”
“그냥 그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새 차 살 때부터 이번에는 지훈 씨랑 같이 쓰고 싶었거든요. 혹시 부담스러워요?”
“아뇨, 개꿀인데요? 잘 쓸게요!”
지훈이 씨익 웃으면서 냉큼 보조키를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호준의 큰 계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차를 지훈에게 넘겼으니, 다음엔 적금 통장을 넘길지도 모른다. 그럼 그다음엔 뭘까, 설마 집문서? 아무래도 이렇게 몇 년 동안 공동 재산을 하나둘씩 늘려 지훈을 경제적으로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다음 결혼하자고 할 게 틀림없었다. 호준이 몰래 작성해 뒀을 것만 같은 ‘청혼 5개년 계획’ 보고서를 본 건 아니지만, 분명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지훈 씨, 혼자 무슨 생각 해요? 차 있으니까 이제 나 버리고 어디 놀러 가려고요?”
지훈이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호준이 걱정스레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차 키 들고 튀려고 했는데!”
“안 돼요. 멀리 갈 거면, 나도 데려가요.”
지훈이 자신을 와락 끌어안으며 그답지 않게 어리광 피우는 호준을 빤히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호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머리카락이 엉망인데도 호준은 잘생기다 못해 이제 귀엽기까지 했다. 잘생긴 건 한철이지만 귀여운 건 평생 간다고 누가 그랬더라? 이러다간 앞으로도 계속 이 남자가 귀여울 것 같았다. 자기 차인데도 자신을 막기는커녕 데려가 달라고 부탁까지 하는 이 남자가, 지훈은 너무 좋았다. 절대 순진한 사람이 아닌데, 오로지 자신에게만 허술한 점도 좋았다.
“농담이에요. 집 앞 슈퍼 갈 때도 데려갈 거예요.”
지훈은 집 앞 슈퍼가 아니라 세상 어디라도 이 남자와 함께 가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좋아할 생각은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지훈은 호준과의 미래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제 그 사실이 두렵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이 남자가 곁에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평생이란 말이, 지훈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왔다.
“정호준 씨. 내가 가면 따라올 거예요? 어디든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지훈의 섬세하고 다정한 손길을 느끼며, 호준은 지훈의 물음에 기꺼이 답했다.
“그럼요. 지훈 씨가 어딜 가든 따라갈게요.”
호준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듣는 순간, 지훈의 가슴속에서는 어떤 결심이 떠올랐다. 세상 어디든 자신을 따라오겠다는 이 남자를 제대로 책임지려면, 말만으로는 안 되는 법이다.
하지만 바로 호준에게 말하려다 말고, 지훈은 일단 입을 다물었다. 호준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을 테니 자신도 신중하게 생각을 가다듬고 싶었다. 호준이 자신보다 더 신중할 테니, 지훈도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지훈은 가지런히 정돈된 호준의 머리카락 사이로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