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6)

2. 여름 지나 가을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

내내 걱정스러운 표정이던 아버지는 기어코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요새 입맛이 좀 없어서요. 여름이라 그런가 봐요.”

“잘 챙겨 먹어야지.”

“그럴게요.”

“그래. 얼른 먹자.”

각자의 앞에 놓인 삼계탕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젓가락을 들었다. 나는 말없이 닭의 뼈를 발라냈다. 곧 그릇 안에 고기가 수북이 쌓였지만 먹고픈 마음은 없었다. 아버지가 걱정할 테니 억지로라도 먹어야 할 텐데,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결국 나는 젓가락을 놓고 컵을 집었다.

“말복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많네요.”

가게 안을 둘러보며 화제를 돌렸다. 깍두기를 집으며 아버지가 대꾸했다.

“그만큼 유명한 맛집이니까 그렇지.”

“일부러 찾아보고 데려오신 거예요?”

“그래. 내 아들 생일인데 저녁으로 이 정도는 먹여야지.”

“고마워요, 아버지.”

“고마우면 좀 먹어라. 고사 지낼 일 있냐.”

계속 올리고 있었던 입꼬리가 떨렸다. 모르는 척 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난 자리인데 더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생일 축하한다, 겸아.”

이어진 아버지의 말에도 나는 그저 눈웃음으로 답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만나자고 한 이유는 알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생일을 챙기려는 건 아닐 것이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쭉 전화로 연락하셨던 분이니. 내 생일은 핑계고, 다른 용건이 있을 터였다.

예상대로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자 아버지가 본론을 꺼냈다.

“인호 결혼한다.”

“예.”

나는 감흥 없이 대꾸했다. 인호가 결혼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본인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일’ 이후 인호의 번호를 차단해 두었다. 내게 그 소식을 전한 건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그래도 네 동생인데. 정말 안 올 거냐.”

그러니까 이 자리는 축하가 아니라 설득의 자리였다. 몇 조각 먹지도 않은 고기가 목을 틀어막는 것 같았다.

“……그날 바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겸아.”

거짓말하지 말라거나, 정에 호소하는 대신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았다. 내 것과 똑같은 노란 눈이 나를 응시했다.

“인호 녀석 결혼도 그렇지만, 네가 걱정되어서 찾아와 봤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

“…….”

“너는 사자야. 사자는 무리를 지어야만 해.”

“……전 괜찮아요.”

“작게라도 네 프라이드를 만들어야지. 그만 고집부리거라.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는 너도 알지.”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외톨이 사자는 슬퍼서 죽을 수도 있어.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의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어쩌다 프라이드를 잃은 아기 사자가 울며 떠돌아다니는 이야기였다. 동화 속 사자는 결국 새로운 가족을 발견해서 행복해지지만, 책을 덮은 나는 안심하지 못했다. 나도 이 애처럼 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날 밤은 어머니들 사이에 끼어들어서 잤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말한 질문의 답은 그 동화책에도 적혀 있었다. 사자에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프라이드, 곧 가족이다. 꼬리가 무거워서 자주 넘어지곤 하던 꼬마였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그렇게 배워 왔다. 내게 질문을 던진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사자라면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진리인 것처럼 강조했다.

동화와 현실은 다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 꼴을 하고는 걱정하지 말라는 게 말이 되냐.”

소중한 가족을 먼저 떠난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프라이드를 버리고 다른 이에게 갔다. 어머니들, 아버지들, 형들, 누나들, 그리고 나까지 모두 포기하고서. 가족은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영원히 사랑해야 한다고 내게 가르쳐 주고서는.

내 현실도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다. 내가 함께 프라이드를 만들려 했던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누구도 붙잡을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한 이들은 모두 곰이었고, 독립적인 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 아니었다. 내가 곰밖에 사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날부터 각오해 왔던 이별은 차곡차곡 쌓였다. 혼자라는 사실을 버티기 힘들어 모든 것을 놓으려 했던 때도 있었지만. 엉엉 울던 동화책 속 아기 사자와 달리 나는 외로움에 익숙해졌다.

내게 마지막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분명 이 사람일 거라고 믿었던 존재. 이 사람을 잃어버린다면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거라고 믿었던 존재.

그의 뒷모습을 보고 난 후에도 나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다.

“최근에 만났다던 곰은…….”

어디까지 알고 오신 건지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폈다. 인호에게 들으셨으려나.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또 예전처럼 내가 무너질까 봐 걱정되셨을까. 그래서, 성인이 되어 프라이드를 나간 자녀에게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자들의 방식까지 어기고 나를 만나러 오신 거였나.

돌려줄 수 있는 건 억지웃음뿐이었다.

“아버지. 저는 이대로도 괜찮아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찌어찌 살 수는 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잘 지내려고 노력할 생각이었다. 언제 지워질지는 모르겠지만. 언제쯤 진짜로 괜찮아질지는 모르겠지만.

별다른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목이 말랐다. 나는 다시 컵을 들었다. 미지근한 물로 입 안을 축이고 나서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인호 결혼식이 언제라고 하셨죠?”

“겸아.”

“짐작하고 오셨겠지만, 저 인호와는 두 번 다시 안 볼 생각입니다. 그래도 아버지께 신세 졌던 게 있으니, 그 빚은 갚아야겠죠. 길게는 안 있을 겁니다. 얼굴만 잠깐 비추고 돌아갈게요. 그편이 인호도 편할 거고요.”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옆으로 눕힌 귀에서 불편한 심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이상 나를 훈계하거나 설득하려 하지는 않았다. 주름진 아버지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도 잠시 말을 멈추고 아버지를 마주 보았다. 아버지는 내가 속했던 프라이드의 아버지들 중 나와 가장 닮은 분이었다. 프라이드에서는 모든 구성원을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나는 남몰래 아버지를 특별하게 여겼다. 이 사람이 내 진짜 아버지일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프라이드를 떠난 뒤에도 인연을 끊지 않고 연락을 이어 갔다. 프라이드의 규칙은 그게 아님을 알면서도 놓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를 떠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와는 피가 섞이지 않은 호랑이 동생도 내 동생처럼 귀여워하면서 돌봐 주었다. 내게는 모두가 가족이었다. 힘들 때면 서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들.

그건 사자의 사고방식이었다.

“아버지. 전 다시는 누구와도 프라이드를 못 만들어요.”

사자로서 살고 싶지 않았던 나도 결국은 뿌리부터 사자였다. 나는 호랑이도, 곰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모든 노력은 다른 종에겐 그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또는 마음대로 이용하기 쉬운 빈틈으로 비치거나.

곰이고 싶지 않았던 곰을 만나면서 이런 내게도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결국은 사자이듯이 원재도 결국은 곰이었다. 나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용서하지 않을 것처럼 돌아서던 원재를 보면서 깨달았다. 내가 원재의 신념을 거스른다면, 원재는 언제든 나를 떠나갈 수 있음을.

사자인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전부 바쳐서라도 ‘내 사람’을 지키는 것이지만.

곰인 원재에게는 그게 아니었다.

타고난 근원을 부정하고 벗어나려 했던 우리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사자와 곰은 같을 수 없다. 아무리 사랑해도 둘은 다른 존재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라 여겼던 상대의 뒷모습을 보며 뼈아프게 실감한 순간. 나는 그간 부정했던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제 인생의 마지막 사람을 잃었거든요.”

이제 더는 누군가를 사랑할 자신이 없다.

반도 먹지 않은 삼계탕을 앞에 두고 아버지와 나는 오랫동안 침묵에 잠겼다. 가게를 북적북적하게 채웠던 사람들이 떠나고 어느덧 사방이 한산해졌을 무렵.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만 가자.”

“네.”

나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계산하려는 아버지를 저지하고 카드를 꺼냈다. 아버지는 나를 막지 않았다. 가게 밖으로 나온 아버지가 긴 한숨을 쉬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겸아. 서은겸.”

어느새 나보다 작아진 아버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와 같은 색의, 맑은 호박색 눈이 나를 담았다.

“힘들면 억지로 괜찮아지지 않아도 된다.”

“…….”

“다음에 또 밥이나 먹자.”

어깨를 붙든 아버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고 나는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제법 늦은 시각임에도 도로는 혼잡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10시가 넘어 있었다.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넥타이를 풀었다. 한 것도 없는데 피곤했다. 이대로 쓰러져 잠들었다가 내일이 되면 깨어나고 싶었다. 오늘처럼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 후에.

씻고 나온 뒤에도 생일은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백 건 넘게 쌓여 있었다. 아침부터 핸드폰을 울리며 날아든 생일 축하 메시지였다. 대부분 광고 문자였고 거래처 사람들의 안부 메시지도 있었다. 하나하나 읽으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수신함의 맨 끝에 묻혀 있었던 메시지를 발견했을 때, 나는 무의식중에 숨을 삼켰다.

생일 축하해.

 오늘 잠깐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원재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시간을 보니 자정이 넘자마자 곧바로 보낸 것 같았다. 담담한 생일 축하 밑에 이어진 문장을 믿을 수 없었다. 몇 개월 만에 보는 메시지인데, 만나자는 제안까지 붙어 있다니.

‘이걸 왜 이제야 봤지?’

이미 오늘은 몇 시간 남지 않았다. 하루 종일 내 답을 기다렸을 원재를 상상하니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문자보다 전화가 빠르겠지.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가, 나는 손을 멈추었다.

뭐라고 말할까.

이대로 연락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내일 만나자고? 축하해 줘서 고맙다고, 너는 잘 지냈냐고?

과연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메시지만으로도 빠르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을까. 원재의 숨소리만 들어도 무너질 것 같은데.

천천히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기다릴 원재에게 고맙다고 답을 보내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랬다가 다른 메시지가 또 날아오거나 전화가 걸려 올지도 몰랐다.

이렇게 애가 타는 건 나 혼자일 뿐이고. 원재는 이제 괜찮아졌다면. 다 잊었다면. 기다리겠다던 약속의 유효 기간이 끝났다는 의미로 먼저 연락을 보낸 거라면. 그렇다면 나도 원재를 태연하게 대해야만 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데.

멋지게 연기를 해 낼 자신이 없었다.

“……아직인가 봐.”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할까.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워야 예전처럼 널 대할 수 있을까.

“겨우 조금 버틸 만해졌는데. 왜 또…….”

허물어지는 상체를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머릿속을 맴도는 원재를 밀어내려 애쓰며, 눈을 감은 채로 한참을 기다렸다. 무심하게 흐른 시간이 자정을 넘겨 새로운 날을 맞이할 때까지.

특별한 하루가 끝나고 평범한 날이 돌아오자 모든 게 원상 복구되었다. 원재는 두 번 다시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나는 괜찮아지지 않았다.

익숙한 뒷모습을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원재가 왜 여기 있지?’

비슷하게 생긴 다른 곰을 보고 착각했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헤어져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꿈에 나왔던 뒷모습을 못 알아볼 수는 없었다. 키 작은 토끼들 틈바구니에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곰은 원재가 맞았다. 결혼식을 보러 온 건지 정장도 갖춰 입은 모습이었다.

아주 잠깐, 우연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열리는 다른 사람의 결혼식을 우연히 보러 온 거라고. 아무리 원재가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호의 결혼을 축하하러 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내 가설은 금방 무너졌다. 내가 알기론 인호의 결혼이 오늘 이곳에서 첫 번째로 열리는 예식이었다.

그럼 왜 원재가 여기 있는 걸까.

못 본 척 돌아서려는 마음과 당장 달려가서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다. 그 사이에서 설렘이 피어올랐다. 혹시 나를 보러 온 건 아닐까. 상식적으로 내가 이곳에 올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인호의 형인 내가 올 거라고 생각해서, 나를 만나러 온 것은 아닐까.

홀을 가로질러 원재에게 다가가는 시간이 영원처럼 길었다. 원재의 등에 손을 올리기 전, 나는 숨을 참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김원재 씨.”

움찔 놀란 원재가 뒤를 돌아보았다. 무뚝뚝한 표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나를 보고 커진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것 같았다. 당혹감이 번져 가는 얼굴이 씁쓸했다. 원재에게 나는 벌써 이토록 환영받지 못할 존재가 되었나.

그제야 내가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인호의 결혼 상대는 과거 원재가 짝사랑했던 이였다.

원재는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을 보러 온 것 같았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요?”

차마 원재를 계속 바라볼 수 없었다. 나는 태연한 척 원재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나를 훑는 시선이 따가웠다. 어쩔 수 없이 원재를 돌아보았다.

“옷 처음 보는 거네. 새로 샀어요?”

무슨 자신감으로 원재가 나를 보러 온 거라고 생각했을까.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나 때문에 남의 결혼식에 새 옷까지 차려입고 참석할 리가 없는데. 제아무리 인호가 껄끄러워도 원재가 짝사랑했던 상대는 원재의 학교 후배였다고 하니 축하 정도는 하러 올 수 있을 터였다.

아직 미련이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럼 나중에 봐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을 건넸다. 단 한 번도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원재는 그저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내가 자신의 앞에 있는 게 싫은 것처럼 보였다.

재회하자마자 되살아난 두근거림이 차츰 조각났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포기할 걸 그랬지. 원재가 이 정도로 나를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더 괴롭히지 말고 눈앞에서 사라져 주는 게 나을 듯했다. 여전히 답이 없는 원재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걸로 마지막이겠지. 다시 보더라도 이젠 정말 아무런 관계도 될 수 없겠지. 막연히 예상했던 끝은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그저 가슴만 욱신욱신 조일 뿐이었다.

원재는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았다. 홀로 바깥에 남아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누군가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누르자 천천히 문이 닫혔다. 나는 원재를 응시했다. 서서히 사라지는 문틈으로 원재가 고개를 푹 숙였다.

문이 닫히기 직전.

“…….”

원재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보였다.

재빨리 열림 버튼을 눌렀지만 엘리베이터는 이미 움직인 뒤였다. 나는 황급히 2층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계단을 찾아 달려가면서도 내가 본 장면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돌아서는 나를 보고도 원재는 울지 않았다. 믿었던 회사에서 차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랬다.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상대에게 차여서 엉망으로 취했던 날조차. 괴로움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참고 견디는 사람이었다. 절대 남들 앞에서 무너지는 일 없는 강한 사람이었다. 침대에서 괴롭힐 때 외에는 연인인 내게도 우는 얼굴을 보이지 않고 단단히 버티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원재였는데.

‘말도 안 돼.’

서둘러 내려간 계단의 끝에 걸음을 옮기는 원재가 보였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원재는 울고 있었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고 있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달려갔다.

“김원재 씨.”

팔목을 붙들고 끌어당기자 원재가 나를 돌아보았다. 심장이 멎는 듯해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눈물 고인 원재의 눈이 전에 없이 흔들렸다.

“왜 울어요.”

원재는 답하지 않았다. 눈가를 계속해서 적시며 조용히 흐느꼈다. 나는 원재의 볼을 감쌌다.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냈다. 내게 얼굴을 맡긴 채 원재는 가만히 어깨를 들썩였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모습으로, 이유 모를 눈물을 떨어뜨리며.

손끝을 적신 눈물이 손바닥까지 번졌다. 원재가 눈을 깜빡이자 속눈썹이 까맣게 젖어 들었다. 마디를 타고 흐르는 눈물의 감촉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벅차오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원재야.”

그렇구나.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 괜찮아지려고, 더는 괴로워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참았는데.

“나를 기다렸어?”

굳건했던 원재를 무너뜨린 상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감정이 희미해질 때까지 돌아보지 않으려 했던 내 결심도. 우리의 첫 만남이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가 왜 헤어져 있었는지도.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건, 나는 또다시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

“기다렸어.”

단지 나와 재회했다는 이유만으로 눈물을 보이는.

“계속 기다렸어.”

오래 간직했을 고백을 힘겹게 건네며 울어 버리는 이 남자를.

나를 기다려 준 나만의 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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