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열아홉, 겨울
하늘이 회색이었다. 일기 예보에서는 비까지는 아니고 날이 흐릴 거라고 했다. 이명은 검은 구름이 꾸물거리며 몸을 부풀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물을 잔뜩 안고 있으면서도 비를 한 방울도 뿌리지 못하는 답답한 하늘이 단순한 자연 현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제 기분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날씨였기 때문이다.
온종일 보고 있을 수 있는 하늘이지만 이명은 창밖으로부터 일부러 고개를 돌렸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의식한 탓이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에도 집중한 적이 없었지만 오늘만은 달라야 할 것 같았다. 마지막은 늘 특혜를 입기 마련이다.
“다들 그동안 공부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교실 바깥에서 기다리는 학부모들을 의식한 담임의 덕담은 그날따라 다정한 듯이 들렸다. 그런다고 해서 본질적인 무관심함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담임은 늘 이명에게 필요 이상으로 상냥하게 대했는데도 이명은 그의 목소리에서 온기를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명은 따뜻하고 밝은 사람들을 좋아했다. 세상에는 천성적으로 성격이 밝아서 주변마저 환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담임처럼 꾸며 낸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닌, 기질적으로 상냥한 사람들이.
마지막 종례라 집중할 법도 한데 몽상은 계속되었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과 동생이 안겨 준 꽃다발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지만 생각은 다른 곳으로 내달렸다.
“한 번 더 준비하는 사람들은 너무 기죽지 말고.”
손끝에 벨벳 같은 질감의 졸업장 케이스가 만져졌다. 검지로 금색 자수를 쓸어 보자 그 질감만큼 이질감이 들었다. 이 문서는 이명이 교과 과정에 따라 학업을 마쳤다는 증명이라는데, 과연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난 배운 게 없는데…….’
무언가를 끝마쳤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엔 과정이 너무 지지부진하지 않았나. 교과서에 적힌 지식도, 평생 동안 기억할 스승도, 학교의 규율도, 학생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작은 사회도, 이명에게는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학교에서 주는 모든 것을 마지못해 입에 넣었지만 한 가지도 씹어 넘기지 못했던 것이다.
지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선생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은 개인으로서 낯설었고 사회로는 두려웠다. 학교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가져 본 적이 없으니 끝났다고 해서 섭섭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대학 가는 놈들은…… 어? 안 죽을 정도로만 마셔!”
기분이 습한 날씨처럼 축 가라앉은 이유는 학교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마음 밑바닥을 묵직하게 채운 서운함의 원인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강건한 책임감, 순수한 선의, 따스한 동정심 같은 추상적인 개념과 관련이 있었다. 또한 어두운 사람이 빛나는 무언가에 끌리는 심리와 성치 못한 사람이 강하고 멀쩡한 것에 끌리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쏟아진 미소처럼 단순한 것들로부터.
눈을 뜨고 있는데도 넓은 운동장을 배경으로 달리는 뒷모습이 시야에 아른거렸다. 넓은 어깨를 감싼 흰색 티셔츠가 바람에 펄럭거리는 자취가 보였다. 여름 냄새에 둘러싸인 채 옆구리에 축구공을 끼고 어딘가를 향해 손짓하는 모습도 떠올랐다. 공을 공중에 띄운 뒤 힘껏 차고서 그쪽으로 달려 나가던 진지한 얼굴도. 그리고 무엇보다 환한 미소가 기억났다. 보는 사람이 두근거리다 못해 마음이 조각조각 부서지는 비참함마저 느낄 정도로, 그 애는 해사하게 웃었다.
이제는 다 끝이었다.
“자, 반장.”
이명은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교실 중앙에서 훤칠한 소년이 일어서자 음침하던 교실이 환해졌다. 장신의 소년은 교탁을 바라보고 꼿꼿하게 섰다. 뒷문 밖에 서 있는 학부모들이 ‘쟤가 반장이구나’라고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렷.”
소년은 살짝 잠긴 목소리로 내뱉더니 긴장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와 같은 반이었던 2년 동안 그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명은 소년이 졸업을 아쉬워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경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 아이는 이명이 한 번도 갖지 못한 것들, 이를테면 정든 교정과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 존경하는 선생님 같은 것들을 잔뜩 향유했으니까.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책걸상을 밀며 요란스럽게 일어났다. 보통 때와 다름없이 서로 말을 건네기도 하고 감상에 잠겨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을 내뱉기도 했다.
이명은 감상적인 기분이 들어서 선뜻 일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리에 버티고 앉아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근처에 앉은 애들에게 인사라도 해 볼까 했지만, 다들 빠르게 어디론가 가 버렸다. 마지막 날도 첫날과 똑같았다. 무리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에게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괜찮아. 인사하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이명은 심호흡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찰나, 앞문이 열리며 학부모 무리가 교실로 우르르 들어왔다. 그 소란은 이명을 자연스럽게 다시 자리에 앉게 했다.
‘하……. 그냥 가서 말 걸면 되지, 바보같이 앉긴 왜 앉아!’
주먹으로 이마를 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명은 하릴없이 텅 빈 서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정리하는 척하며 앞쪽을 살폈다.
분위기는 아주 어수선했다. 교탁 쪽은 시끌시끌했고 애들은 제각기 떠들거나 자기 부모에게 손을 흔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담임은 갑자기 공손한 인격자로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와 인사하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어른 중에는 엄마도 있었다. 그녀는 신문사로부터 선물로 받은 육포 세트를 들고 서 있다가 이명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어 보였다.
가장 앞에서 담임과 이야기하던 키 크고 안경을 쓴 여자가 교실 중간을 향해 손짓하자, 한선호가 벌떡 일어나 그쪽으로 걸어갔다. 반장 엄마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선호가 교탁 앞에서 고개를 꾸벅 숙이자 담임이 그의 어깨를 감싸며 웃는 낯으로 뭐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모자에게 흐뭇한 시선을 보내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반장과 그를 신뢰하는 담임, 그리고 얼굴에 미소를 띤 학부모들. 그것은 공익 광고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이명은 한선호의 자리에 자신이 서 있는 그림을 상상해 보았다. 쭈뼛거리는 태도와 굳은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리라. 그러면 엄마는 ‘애가 숫기가 없어요’나 ‘성격이 내성적이에요’처럼 늘 꺼내는 레퍼토리로 변명할 테다. 저 앞에서 한선호가 물속의 고기처럼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을 이명은 절대로 흉내 내지도 못할 것이다.
질시인지 선망인지 모를 모호한 감정이 이명을 자리에서 일으켰다. 그는 가방을 등에 메고 한 번도 속해 있지 않았던 세계로부터 등을 돌렸다.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가 발목을 감고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자꾸만 뒤돌아서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싶었다. 막상 할 말도 없으면서, 우스운 일이었다. 어쩌면 용기 없는 사람에게 욕망은 그 자체로 고통이 아닐까. 물기를 가득 품고서 쏟아 내지 못하는 비구름처럼 이명은 축축한 걸음을 힘겹게 옮겼다.
뒷문 밖에는 한 살 터울인 동생, 정이 양손을 패딩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아빠와 나란히 서 있었다.
“어이, 사회인! 기분이 어때?”
정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명은 기분이 상당히 우울했고, 졸업했다고 해서 이전과 달라진 점을 아무것도 체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에게 그럭저럭 재치 있는 대답을 해 줘야 한다는 책임을 느꼈다.
“학생은 말해 줘도 모를걸.”
“뭐야, 알려 줘!”
“……메롱.”
혓바닥을 슬쩍 내밀자 정이 주먹으로 어깨를 쳤다.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펀치였다. 아빠가 그들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멋쩍게 웃었다.
“이명, 3년 동안 고생했다.”
이명은 아빠가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아이는 뛰어놀고 학생은 공부해야 한다고 믿는 남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은 그를 늘 실망시켰지만, 이번에 가져온 고등학교 졸업장은 어떤 대회 수상 실적보다도 아빠를 만족시킨 것 같았다. 이 졸업으로 인해 득 볼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뭐 먹으러 갈까?”
“음…….”
이명은 말없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 땐 졸업식 하면 짜장면이었는데 말이야. 요즘은 뭣들을 먹나…….”
“뭐야, 아빤. 몇십 년 전 얘기를……. 뷔페 가요, 뷔페.”
“뷔페?”
“응. 킹크랩 무한 리필 되는 해물 뷔페. 오빠도 괜찮지?”
이명이 뭐라고 답하기 전에 엄마가 앞문에서 나왔다. 마치 자신이 졸업하기라도 한 듯 후련하다는 표정이었다.
“고생했다, 우리 아들!”
엄마의 말 뒤에는 ‘그러니 이제 바둑에 전념하자’라는 문장이 숨겨져 있었다. 엄마는 특별한 재능은 그에 걸맞은 방식으로 서포트해야 한다고 믿는 여자였다. 그녀에게 이명의 고등학교 졸업장은 이제 아들이 학교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도 된다는 증명서나 다름없었다.
이 졸업을 만족스러워하는 사람이 둘이나 된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여보, 정이가 해물 뷔페 가자는데.”
“웬 뷔페? 그거 어디 있는데? 명이 졸업식인데, 애 먹고 싶은 거 먹여야지.”
“전 다 괜찮아요.”
가족들이 무엇을 먹을지 상의하며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이명은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인사하고 싶었는데.’
말 걸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지금껏 마음이 드러나지 않도록 꼭꼭 숨겨 왔다. 어차피 포기하는 건 숨 쉬듯이 자연스러웠고 멀리서 지켜보는 건 익숙했다. 그렇기는 해도…….
‘마지막으로 꼭 인사하고 싶었는데.’
가족들에게서 조금씩 뒤처지며 5반 교실을 곁눈질했지만 그가 찾는 사람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다시는 볼 일 없을 텐데…….’
바보 같긴. 종례 끝나자마자 자리로 걸어가서 졸업 축하한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한마디 했으면 됐을 텐데. 아쉬움이 쿠르르릉 몸을 부풀리며 마음속을 뒤덮었다. 그러나 스스로 회초리질 해 봐야 때늦은 자책일 뿐이다. 이제 정말 끝이니까.
“오빠, 표정이 안 좋네. 많이 아쉬워?”
삐걱거리는 나무 층계를 내려가는 동안 정이 물었다.
“그럼 3년 동안 다닌 학굔데, 명이도 아쉽겠지.”
아빠가 자신 있게 오답을 말했다.
“아쉽기는, 학교 좋아하는 애가 어디 있어? 얘가 얼마나 학교 가기 싫다고 노래를 불러 댔는데. 작년부터야 좀 괜찮아졌다지만.”
“학교가 뭐 가기 싫다고 안 갈 수 있는 곳인가? 당신은 그 이상한 사고방식이 있어.”
“어머, 이 사람 봐. 그게 뭐가 이상해?”
또 시작이네. 정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더니 엄마와 아빠 사이를 비집고 들며 양팔에 팔짱을 꼈다.
“저기요? 이렇게 좋은 날 싸우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밥은 먹고 합시다, 네?”
그녀가 자연스럽게 부모의 입을 다물게 하고선 성큼성큼 끌고 가 버리자, 이명은 졸지에 혼자 남았다. 그는 쓸쓸한 기분으로 인적 드문 1층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슬쩍 들여다본 1학년 교실들은 텅 비어 있었다. 게시판과 벽은 깨끗했고 1년 동안 생활했을 아이들의 흔적이라곤 책상에 남은 낙서 정도밖에 없었다.
그 또한 한때 이곳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이제는 어떤 추억도 남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고1은 그의 인생 최악의 시절이었다. 건강은 어느 때보다도 안 좋았고 때늦은 사춘기 때문에 멘탈이 불안정했다. 집안에선 부부 싸움이 끊이질 않았으며 정이 가출하는 일까지 있었을 정도로 분위기가 안 좋았다. 당연히 기력에 있어서도 슬럼프가 심했다. 대회에선 실수를 연발했고 연습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다 고2 때부터는 전부 달라졌다. 거짓말처럼 모든 게 좋아졌던 것이다. 그 계기를 떠올린 이명은 복도가 무너지도록 깊은 한숨을 지었다.
“하아…….”
바깥의 날씨처럼 어두운 기분이 가슴을 옥죄었다. 마지막 인사를 못 한 게 이렇게 아쉬울 줄은 몰랐다.
‘남들에겐 쉬운 게 나한텐 왜 다 어려울까.’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괜히 발로 차며 걸었다. 어차피 인사를 하든 안 하든 끝인데, 왜 이렇게 신경 쓰일까. 좋은 대학에 진학한 그 애와는 이제 접점도 없고 우연히 마주칠 일도 없을 텐데. 그렇다면 말 몇 마디 더 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합리화를 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짝사랑이었다. 그는 숫기 없고 내성적인 자신이 바라보기 미안할 정도로 완벽한 소년이었으니까. 같이 달리지도 못하는 이명에게 그를 좋아할 자격이 있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둘 다 남자아이들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묻어 둔 감정은 영원히 묻혀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우리 아들 천천히도 온다. 양반이네.”
“그러게, 당신 닮아서 애가 참 느긋해.”
“어째 뼈가 있는 것처럼 들리네.”
이명이 가족들과 합류했을 때 즈음, 나무 층계에서 굉음이 들리면서 외투를 두껍게 입은 남학생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다른 반의 졸업식도 이제 막 끝난 모양이었다. 이명 가족은 저마다 품에 꽃을 안은 남학생들에 밀려 함께 운동장으로 쓸려 나왔다.
“그래도 학교 앞에서 기념사진은 찍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 아빠가 오랜만에 맞는 말 했다. 명이 너 거기 서 봐.”
이명은 두 손으로 꽃다발을 들고 어색하게 서서 렌즈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표정을 좀 피라고 했지만 그럴수록 얼굴이 더 딱딱하게 굳었다. 그다음에 정과 둘이서 사진을 몇 장 찍었고, 아빠가 모르는 학생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가족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나, 둘, 셋! 웃으세요!”
찰칵.
아무래도 사진은 잘 안 나올 것 같았다. 하필 그때 비구름이 햇빛을 가려 운동장에 그늘이 짙게 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요, 확인해 보세요!”
“고마워요. 어디 한번……. 음, 명이 표정이 너무 안 좋네. 졸업식이 아니고 무슨 장례식 같다. 한 장만 다시 찍어 줄래요?”
“아, 네…….”
아빠가 옆에 서더니 이명의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끌어 올렸다.
“평생에 한 번 있는 순간인데 웃어야지, 명아.”
이명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검은 구름이 종례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구름이 뭉개지며 공간이 찢기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툭, 콧등에 물이 떨어졌다.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재빨리 정면을 보았다. 명색이 졸업식 사진인데, 먹구름이 일가족을 집어삼키는 순간을 포착한 것처럼 보일 것 같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조금 나왔다.
아빠가 달려가 핸드폰을 가져오더니, 아까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툭, 툭. 빗물이 뺨을 때렸다. 이명은 또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 비 온다. 아빠! 비 와요!”
“응? 한겨울에 눈도 아니고 웬 비가…….”
묵직한 빗방울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에 띄게 굵어졌다.
허둥대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운동장을 꽉 메운 인파가 흩어지며 누구는 모자를 뒤집어썼고, 누구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고, 누구는 건물로 다시 들어갔고, 누구는 차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그 와중에도 여유롭게 우산을 꺼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명의 엄마가 그중 하나였다.
“자, 명이랑 정이는 이리 와. 여보, 당신은 차 가져와. 애들하고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러면 되겠다. 10분만 기다리고 있어!”
아빠가 외투를 머리 위로 뒤집어쓰며 정문을 향해 뛰쳐나갔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니? 졸업식인데 웬 날씨가…….”
“으,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따뜻하게 입고 올걸. 오빠, 뭐 해? 이리 와.”
정이 얼른 우산 아래로 들어오라고 재촉했지만 이명은 목을 한껏 뒤로 꺾고서 홀린 듯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구름이 물기를 한계까지 머금고 있다가 참다못해 비를 쏟아 내는 모습을.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진 빗물이 머리카락을 적시다 관자놀이를 타고 뺨 위로 흘러내렸다. 축축한 감각에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평생에 한 번 있는 순간.’
이명은 교실에 무언가 놔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 나 사물함에 우산 있어요.”
“그래? 다녀올래?”
“금방 갔다 올게요.”
이명은 어디서 났는지 모를 용기를 안고서 정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결심을 하고 나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 뭔……. 눈이나 오지 비가 오고 지랄이냐.”
남학생들이 욕하며 옆을 뛰어갔다. 이명은 툭툭 떨어지는 빗줄기를 정수리와 어깨에 맞으며 걸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구령대를 지났다. 정문의 신발장을 통과해 보건실이 있는 복도를 걸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층계를 거꾸로 올라갔다. 그는 특별한 추억이 있다고 하기엔 어려운 장소들을 지나며 조바심을 느꼈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3학년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간간이 교원이 한두 명씩 지나갔지만 교복 차림인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죄다 운동장으로 나간 것 같았다.
‘너무 늦었나…….’
실망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명은 뭐든지 느렸다. 그래서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많이 필요했다. 바둑 경기에선 제한 시간이 모자랐던 적이 없었지만 현실에서는 늘 때를 놓치고 말았다.
‘내가 그렇지 뭐.’
이명은 한 손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며 아무도 없는 2반 교실을 터벅터벅 지나쳤다. 원래 우산을 가져오겠다는 건 핑계였지만 이제는 진짜 목적이 되어 버렸다.
3반, 4반을 지나 5반 교실이 가까워졌다. 익숙한 모양의 팻말 아래 뒷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간 녀석이 졸업하는 마당에 열어 놓고 뛰쳐나간 모양이었다. 텅 빈 교실을 상상하자 냉소적인 웃음이 나왔다.
‘하하, 기분인데 그 자리에나 한번 앉아 볼까…….’
교실 한가운데, 어느 위치에서든 잘 보이는 자리는 어디서든 눈에 띄는 소년과 잘 어울렸다. 구태여 그 자리에 앉지 않았더라도 어디서든 돋보였을 테지만.
한숨을 쉬며 뒷문을 터벅터벅 통과한 이명은 몇 걸음 가기 전에 우뚝 멈추었다.
“엇……!”
그리고 비현실적인 광경에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불 꺼진 교실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대낮이었지만 잿빛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어두침침했다. 그런 교실 한중간에 한 남학생이 곧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상상 속에서나 그리던 뒷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만 있는데, 그가 인기척을 느끼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검게 그늘진 눈이 크게 떠졌다.
살짝 비친 햇빛이 제법 남자 티가 나는 소년의 얼굴을 비쳤다가 금세 사라졌다.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던 눈동자도 다시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다.
바깥에서 천둥이 치고 있었다. 이명의 심장은 그 소리 못지않게 요란하게 박동했다. 머리카락 끝에 매달린 빗방울이 침묵을 어지럽히며 바닥에 툭, 툭 떨어졌다. 쏴아아아, 바깥에는 비가 쏟아지는데 이명의 입 안은 말라 갔다.
소년의 얼굴을 본 순간 깨달았다.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숨길 수는 있어도 부인할 수는 없는 그의 일부, 현재 진행형인 생생한 감정이었다.
마지막 기회가 눈앞에 있었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기회. 소년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의 앞길을 축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그리고…… 기를 쓰고 감추었던 진심을 열어 보일 기회.
꽈광!
천둥이 울렸다. 하늘이 쪼개졌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굉음은 이명에게 불가사의한 용기를 주었다. 한 번도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지만,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기…….”
“명이야.”
그들은 동시에 서로를 불렀고 그 때문에 동시에 조용해졌다.
번개가 번쩍 치는 순간 소년의 얼굴이 창백한 백색으로 뒤덮였다. 한선호는 캄캄한 눈동자를 살짝 들어 이명을 바라보았다. 본인이야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겠지만 짝사랑하는 사람을 감전시키는 시선이었다. 이명의 용기는 10초 만에 날개가 꺾여 빗물 웅덩이에 처박히고 말았다.
“졸업 축하해, 명이야.”
먼저 침묵을 깬 건 그였다. 오늘 학교에서 수도 없이 남발되며 껍데기만 남은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니 진정성이 담긴 것처럼 들렸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멋진 말이었다.
“……고마워.”
“넌 앞으로…… 기사 하는 거야?”
“응? 응.”
“하긴, 지금도 기사지?”
“응.”
평범한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의욕적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말재주가 없다 보니 기어이 대화를 끊고 말았다.
“너, 너는?”
“응?”
“너는…… 앞으로 뭐 할 거야?”
피식. 입가에 머물던 작은 미소가 눈꼬리를 아래로 휘게 하는 순진한 웃음으로 번졌다.
“글쎄. 정치 외교학과 나와서 뭐 할지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 선배들 말로는 굶어 죽기 딱 좋대.”
“축하해.”
내뱉고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처럼 들렸다. 이명은 서둘러 덧붙였다.
“그러니까 내 말은, 굶어 죽는 거 말고…… 대입, 축하한다고. 아, 아니. 졸업도 축하해. 그…… 대학교 졸업 말고 고등학교 졸업 말이야.”
이명은 머리가 새하얘진 기분으로 입을 다물었다. 엉망이었다. 끔찍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는 버둥거릴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교실이 어두워서 망정이지, 불이라도 켜져 있었으면 얼굴이 빨개진 걸 한선호가 보고서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래. 고마워, 명이야.”
온 힘을 끌어모아 애쓴 보람도 없이 대화는 끝나고 말았다. 한선호와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행운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한동안 감돌다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났다. 한선호는 배낭을 메고 의자를 책상 안으로 밀어 넣더니 이명을 향해 걸어왔다.
뚜벅뚜벅, 어두운 실루엣이 점점 가까워지다가 손을 뻗으면 손가락 끝이 겨우 닿을 법한 거리에서 멈추었다. 친구도 무엇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이명과 한선호의 관계를 닮은 거리를 두고 시선이 마주쳤지만 잠깐이었다.
한선호는 이명을 그대로 지나쳤다. 느릿한 발소리는 점차 멀어지다가 뒷문 앞에서 또 한 번 멈추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그 시간은 한없이 늘어져서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한선호는 손을 문틀에 얹더니 몸을 이명이 서 있는 방향으로 살짝 돌렸다.
“난 뭘 놓고 왔길래 다시 왔어. 졸업식이라 정신이 없네.”
“어? 나…… 도.”
이명은 그의 눈을 보지 않으며 제 사물함을 가리켰다.
“밖에 비 오는 거 알아? 우산을 사물함에 놓고 갔더라고.”
괜히 찔려서 사물함을 활짝 열어 보였다. 우산 때문에 교실에 다시 왔다는 증거를 보여 주려고 했는데, 당황스럽게도 사물함은 텅 비어 있었다.
“어? 어……! 분명히 여기…….”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한선호가 손가락으로 이명의 뒤편을 가리켰다.
“너 13번이잖아, 명이야.”
‘이런, 바보!’
이명은 ‘10번’이라고 적힌 사물함 문을 재빨리 닫았다. 한 칸 오른쪽 사물함을 열자 덩그러니 놓인 3단 우산이 보였다. 이명은 우산을 성급하게 꺼내, 시선으로 터뜨릴 수 있다는 듯이 쏘아보았다.
한선호가 제 표정을 보지 않았으면, 허둥거리다 더 한심한 짓을 하기 전에 차라리 빨리 가 버렸으면!
그러나 한선호는 한동안 문 앞에 선 채로 가만히 있었다. 이명은 그동안 그의 얼굴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실내화 끝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무 의미 없는 잡담조차 똑바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잠시라도 고백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게 우스울 뿐이었다.
“아까 할 말 있어서 나 부르지 않았어?”
나직한 음성은 부드러웠지만 이명은 그 때문에 팔에 소름이 돋았다. 의도적으로 피했던 시선을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개처럼 아무 꾸밈 없는 한선호의 눈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저 눈빛이 어떻게 변할까.’
아무리 성격 좋은 녀석이지만 남자가 좋아한다는데 표정 관리가 쉽게 되지는 않으리라. 어쩌면 한 대 맞을지도 모르고. 이명은 뺨에 멍이 든 채로 킹크랩을 접시에 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졸업 축하하려고…… 불렀어.”
“그렇구나.”
대수롭지 않은 수긍이 돌아왔다. 이제 정말 끝이었다.
“너라면 앞으로도 잘할 거야, 이명. 2년 동안 즐거웠다.”
“나도!”
이명은 소리를 빽 지르듯 내뱉고서 뒷문으로 행진했다. 가만히 서 있던 한선호와 점점 가까워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를 지나치는 순간에 심장이 쿵쿵 뛰고 배 속이 찌르르 울렸을 뿐이다. 흔하디흔한 짝사랑의 감각이었다.
‘그동안 나한테 잘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좋아해.’
이명은 목구멍에 맴도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빠르게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