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42)

“물고 빠는, 거……, 흐읏, 싫어한, 다면서…….”

“그러게요. 근데 서림 씨랑 하는 건 좋네요.”

성기를 뱉어낸 강해건이 귀두에 쪽쪽 입을 맞추며 중얼거렸다. 손가락으로 뒤를 쑤시고 있는 데다가 기둥을 쥐고 흔들면서 선단에 있는 작은 구멍을 혀로 집요하게 문지르는 탓에 사정감이 밀려왔다. 페로몬 샘을 제거했기에 페로몬은 사라졌어도 스스로 뒤가 젖은 오메가의 형질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오메가 액으로 강해건의 손이 흥건했다.

“그냥 대충, 하으……, 박고 끝내, 라고…….”

작정한 사람처럼 강해건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쥐고 있는 그의 머리카락을 힘 있게 잡아당겨도 소용없었다. 다시금 성기가 음습한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척추를 타고 아찔한 성감이 내달렸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빼, 빼요, 나 이제……, 으, 으응!”

빼라고 머리카락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으나, 강해건은 오히려 성기를 더 강하게 옥죄며 빨아들였다. 참지 못한 원색적인 절정이 그의 입안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지가 떨리고 눈앞이 새카매졌다가 새하얘졌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삽입 당하면서 사정했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앞과 뒤를 동시에 공략당하며 사정하는 것은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강렬한 오르가슴을 선사했다.

“하, 하으, 흐…….”

급하게 숨을 몰아쉬면서 아연한 표정으로 꿀렁이는 목을 보았다. 당연히 뱉어낼 줄 알았는데, 강해건이 한서림의 정액을 삼켰다. 물고 빠는 거 싫어한다고 초반에는 최소한의 접촉으로 삽입만 하더니, 정액까지 먹는 걸 보면 전부 다 거짓말이었던 게 분명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진심이었는지 모르겠다.

94.

“양치하고 와요.”

한서림이 미간을 좁히며 딱딱하게 말했지만, 강해건은 고개를 내저었다.

“싫은데.”

“찝찝하지도 않아요?”

“왜 분위기 깨는 소리를 하고 그래요.”

강해건이 은근한 미소를 보였다. 강해건에게 펠라티오를 해주고 억지로 정액을 삼켰을 때의 비릿함이 상기되자, 강해건은 어떻게 남의 정액을 먹어놓고도 저리 매력적으로 웃을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비위도 참 좋다 싶었다.

“이 상태 그대로 기다릴 테니까 양치하고 오라고.”

“싫다고. 얘가 아까부터 얼마나 큰 인내심을 발휘해서 참고 있는지 안 보여요?”

강해건이 커다란 성기를 손으로 두어 번 훑으며 미간을 좁혔다. 관능 어린 모습에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껍데기 하나는 정말 억울할 정도로 훌륭한 놈이었다.

“그렇게 사랑스럽게 바라보면……, 다정하게 대해주기 힘들어져요.”

따뜻한 손이 볼을 어루만졌다. 한서림은 거칠게 고개를 돌려 피하고는 강해건을 노려보았다.

“……미친놈.”

“미친놈 소리를 들어도 서림 씨랑 섹스하니까 좋은 건 어쩔 수 없네요.”

강해건은 진짜 미친놈이었다. 사람을 감금한 걸로도 모자라서 질리게 만들 심산으로 하는 섹스에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읏, 좀……!”

한서림은 허리가 반으로 꺾인 자세에서 엉덩이 사이에 들이닥치는 쾌감을 피하기 위해 허리를 비틀었으나, 강해건의 손에 골반이 꽉 잡힌 상태라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손가락으로 연신 희롱하더니 강해건은 끝내 은밀한 곳에까지 혀를 댔다. 오밀조밀한 주름을 부드럽게 핥고, 오메가 액을 전부 빨아먹을 것처럼 강하게 흡입하기도 했다. 높은 콧날이 회음과 고환을 꾹꾹 누르며 자극을 배가시켰다.

“흐, 그, 그거 싫……, 흐읏!”

흐물흐물하게 녹은 구멍 안으로 뾰족하게 세운 혀가 들어왔다. 엉덩이에 힘을 주며 침입을 막으려 했으나, 강해건은 엉덩이를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벌리며 반항을 허락하지 않았다. 간질간질하고도 기이한 성감이 전신을 내달렸다. 강해건은 오늘 한서림을 쾌락에 빠트려 죽이려고 작정한 사람 같았다.

치부에 달라붙은 혀가 거침없이 안을 헤집었다. 어느새 발기해있는 성기가 아랫배에 달라붙은 채로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강해건이 구멍을 힘주어 다시 빨아들이는 것과 함께 백탁의 점액질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름 끼치는 절정이었다.

“자, 잠깐, 나 지금 너무 예민, 하윽……!”

사정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불시에 거대한 성기가 구멍을 벌리고 들어왔다. 민감하게 펄떡대던 세포들이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이미 눅진하게 풀린 구멍은 폭력적인 크기의 성기를 무리 없이 받아들이며 차지게 움찔거렸다.

어렵지 않게 뿌리 끝까지 푹 쑤셔 넣어진 성기가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정의 여운이 날카로운 쾌락으로 변질되고, 절정에 이어 또 다른 절정이 계속되었다. 버거운 감각의 소용돌이에 빠진 한서림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흣, 아! 아!”

강해건의 성기가 들락거릴수록 한서림의 신음도 높아져만 갔다. 그가 야만적으로 처박을 때마다 구멍이 빠듯하게 벌어지며 더 깊이 삼키려고 몸부림쳤다. 이미 두 번이나 사정한 한서림의 성기를 강해건은 쉴 새 없이 흔들며 자극하고 있었다. 처음 삽입했을 때부터 내내 빨렸던 젖꼭지는 퉁퉁 부어서 고통인지 쾌감인지도 모른 채 뾰족하게 세워진 상태였다.

“읏, 거기, 그, 만……!”

또다시 젖꼭지에 입술이 닿으려는 순간, 한서림은 몸서리치면서 제 가슴을 감싸 안았다. 빼곡하게 얼룩진 상체는 원래의 살색보다 붉은 흔적들이 훨씬 더 많았다. 온몸을 물고 빨린 탓에 한껏 예민해진 살갗은 강해건의 손끝이 잠깐 스치기만 해도 자지러졌다. 강해건과 이렇게까지 제대로 된 전희를 거쳐 발끝까지 저릴 정도로 섹스하는 건 처음이었다.

“후으, 한서림…….”

“흐, 아! 아, 아!”

폭렬하고 빠른 움직임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이채가 도는 회색빛 눈동자에는 정염이 가득했다. 굵고 긴 성기가 전립선을 찔러 올릴 때마다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극한의 쾌락이 번졌고, 전립선을 뭉갠 채 강해건이 허리를 원으로 돌리면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황홀해서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사랑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애틋한 고백이 귓가에 번졌다. 그동안 어떻게 숨겼나 싶을 정도로 깊은 감정이 폭풍처럼 다가와 한서림을 집어삼켰다.

강해건이 혀로 귓바퀴를 굴리고 귓불을 질겅이자 소름 돋는 감각이 퍼져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부족함 없이 사랑받는 느낌에 자꾸만 울컥거림이 넘어오려고 했다.

“사랑해, 한서림…….”

사납고 난폭한 하반신과 달리 정결하게 마주쳐오는 눈빛이 애처로웠다. 강해건이 그대로 얼굴을 가까이하며 키스하려는 순간, 한서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피했다. 키스하고 싶지 않았다. 저에게 진실을 숨기려 했을 때의 배신감과 이혼하자는 말에 감금으로 화답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 억울할 정도로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사랑해.”

“싫…… 흐읍!”

강제로 뒤통수를 잡고 돌리려는 행동에 반항해 보았으나, 거침없는 손아귀는 힘을 풀지 않았다. 입술이 맞닿자 안을 드나드는 성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한서림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열지 않았다. 강해건이 아무리 혀로 입술을 핥고 쪽쪽 부드러운 입맞춤을 퍼부어도 고집스럽게 버텼다. 하지만 손아귀에 잡힌 성기가 빠르게 흔들리고 노골적으로 전립선만을 찍어대는 성기가 폭렬하게 움직일수록 신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아, 흣, 흐윽……!”

기어코 강해건의 혀가 허락하지 않은 곳으로 침범했다. 맞닿은 혀가 뒤엉키고 성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여린 살들을 농락하는 혀가 거침없이 입안을 헤집었다. 아까의 정액 때문인지, 거북한 비릿함이 번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정감이 몰려왔다.

어느 순간 정신을 놓아버린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몸이 말끔하고 보송보송했다. 강해건이 씻겨 놓은 모양이었다. 온몸이 울긋불긋하고 붉은 자국이 난자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한서림은 욕실로 들어가 양치와 세수만 대충하고, 비치되어 있는 가운을 걸쳤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특히 허벅지 안쪽의 살들이 걸을 때마다 부들부들 떨리고, 아직도 안에 강해건의 성기가 들어있는 것처럼 묘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일어났어요?”

거실로 나왔을 때 배달음식을 들고 들어오던 강해건과 마주쳤다. 그는 환한 미소로 한서림을 주방으로 데려가 식탁 앞에 앉혔다. 사람을 감금시켜놓고 뭐가 그리 좋은지 강해건의 웃는 낯이 반질반질해서 광이 나고 있었다.

“배고프죠? 서림 씨가 좋아하는 고기 위주로 시켰어요.”

대놓고 다정해진 강해건이 야살스럽게 눈웃음을 쳤다. 각인 전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설레서 이게 사람을 홀리려고 작정했나 싶었겠으나, 지금은 아무 감흥도 없었다. 그저 무슨 남자가 저렇게 앙큼하고 야하게 웃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전부였다. 껍데기는 참 질리지도 않게 예뻤다. 그러니 저 얼굴로 먹고살았겠지. 아니, 칭송받는 연기력도 일품이니 세상을 사는 게 무척 쉽고 우스울 거라는 비아냥거림마저 올라오려고 했다.

“뭐가 그렇게 좋다고 웃어? 웃음이 나와?”

존댓말을 써줄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탈하고 인권을 유린한 놈에게는 반말도 아까웠다.

“왜. 반말하니까 거슬려? 너도 하든가.”

“……아뇨. 난 지금이 편해요. 그리고 서림 씨가 강 전무 친구니까 나보다 네 살이나 많잖아요.”

새삼 강해건의 나이가 실감 되자 어이가 없었다. 이 어린놈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이혼하자는 말에 감금시킬 생각부터 한 것인지, 안타깝다 못해서 측은하기까지 했다.

“핑계 좋네. 어제 보니까 잘하던데. 이름도 막 부르고.”

“……서림 씨가 반말하니까 더 친근감 있고 좋네요. 진작 말부터 놓으라고 할걸.”

진짜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지.

강해건의 무구한 미소를 보자 전의가 상실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화기애애하게 웃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갇혀 있는 신세가 너무 억울했다.

“불고기볶음에서 이상한 비린내 나는 것 같아.”

강해건이 포장을 풀어놓은 음식들은 전부 먹음직스럽고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지만 한서림은 괜한 트집을 잡았다.

“그래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럼 내 코가 이상한가 보네. 불고기볶음은 안 먹을 거니까 치워.”

마음 같아서는 아예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시위라도 부리고 싶은데 너무 배가 고파서 그 또한 여의치 않았다. 꼬박꼬박 먹을 걸 넣어줘야 하는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셰프가 바뀌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래도 감이 떨어진 것 같은데 셰프를 갈아치워야겠어요.”

중얼거린 강해건은 흔쾌히 웃으며 불고기볶음을 싱크대로 가져갔다.

강해건의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매일 배달주문으로 먹는 음식은 한서림의 입에 잘 맞았다. 직접 가서 먹었을 때 머리가 희끗한 메인 셰프와 인사도 했는데, 그가 얼마나 정성과 신념을 다해서 요리하는지 느껴졌던 탓에 괜한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가 없었다.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참고 먹을 수는 있을 것 같아. 다시 가져와.”

“안에 들어있는 당면이 벌써 불었는데. 당면은 빼고 줄게요.”

똥개훈련을 시키는데도 강해건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움직였다. 오히려 다시 가져오면 시키려고 했던 불은 당면까지 미리 건져냈고 말이다. 마음에 안 들게 눈치가 너무 빠르고 섬세하며 세심했다.

95.

식사를 하면서도 강해건은 한서림의 젓가락이 자주 가는 음식들을 앞으로 밀어주었다. 중간중간 물을 채워주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말간 미소를 보였다. 누가 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연인이라고 오해할 법했다.

“그만 먹을래.”

“벌써 배불러요?”

“어. 먹기 싫어.”

“서림 씨가 평소 먹는 거에 반도 안 먹은 것 같은데.”

“먹기 싫다고.”

허기만 조금 달래자 입맛이 뚝 떨어졌다. 갇힌 채 사육당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 먹고 싶지도 않았다. 한서림은 대답 없이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치우는 것도 강해건이 알아서 하라는 의미였다.

양치를 하고 나와 가운을 벗고 맨몸으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강해건이 질려서 저를 내보내 줄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니, 질리게 하는 것보다 신뢰를 주는 게 더 빠를까. 다양한 가능성이 떠올랐으나 어떤 게 가장 효과적일지는 해보지 않고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서림 씨. 더 자려고요?”

“……이리와 봐.”

강해건을 향해 팔을 뻗었다. 안면근육이 말을 듣지 않았지만 애써 미소도 만들어냈다. 의심의 눈빛을 하면서도 강해건은 순순히 다가와서 이불에 싸인 한서림의 몸을 안아주었다. 한서림은 기다렸다는 듯이 강해건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해건아.”

“네.”

“나 사랑해?”

“네,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연기의 기본은 눈빛 연기라고 말했잖아요.”

강해건이 피식 웃으며 핀잔을 줬다. 그래도 마음은 진심인데 너무 성의가 없었나 싶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눈을 마주치고 입을 열었다.

“사랑해. 진심이야.”

“…….”

“키스해줘.”

닿아오는 입술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강해건의 목을 끌어안고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여전히 강해건을 사랑하는데도, 지금은 강해건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

“저것들 좀 치워. 기분 나빠.”

소파에 누워서 강해건의 다리를 베고 책을 읽던, 정확히는 책 읽는 시늉을 하고 있던 한서림이 천장 모서리에 있는 CCTV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켰다. 한서림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던 강해건이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턱을 두어 번 매만졌다.

“많이 거슬려요?”

“어. 심하게 거슬려.”

“무시해도 되는데.”

“어떻게 무시해. 계속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잖아. 집에서는 좀 편하게 있고 싶은데, 누가 보는지도 모르니까 너무 신경 쓰이고 불편해.”

“지금처럼 편하게 있어도 돼요. 나만 보는 거니까.”

다리를 베고 누운 채로 올려다보면 콧구멍만 보여서 아주 못생겨야 정상인데, 어째서 이 각도마저 강해건의 껍데기는 훌륭한 것인지 억울할 지경이었다. 외모에 재력에 능력에 집안에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으면서, 오로지 한서림밖에 안 보인다는 듯이 집착하는 면모가 어울리지 않았다. 하찮고 우스웠다.

“너는 나랑 같이 있는데 저걸 왜 봐? 변태야?”

“외출했을 때도 서림 씨가 보고 싶어서요.”

“…….”

“그 잠깐도 보고 싶어서 못 참겠어.”

“……그래. 24시간 내내 나만 보고 있어라.”

“이미 그러고 있는 거 알잖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전의를 상실해서 대충 뱉어낸 말에, 강해건은 참 예쁘게도 웃으며 고개를 숙여 한서림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속은 다 썩어서 곪고 문드러졌는데, 더럽게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한서림은 감금 첫째 날과 둘째 날, 강해건을 회유하기 위해 섹스하며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배신감과 실망감으로 점철된 머리와 달리,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하는 섹스에도 쾌락을 느끼고 절정을 맞는 제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셋째 날은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에 밤을 꼴딱 새우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 환멸과 자기혐오에 빠졌다. 밖이 환해질 때쯤에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집안의 물건을 다 부수며 내보내 달라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강해건은 때려 부수느라 온 기력을 소진한 한서림을 욕조에 넣어두고 사람을 불러 난장판이 된 집안을 말끔하게 치우도록 했다. 불면증 때문에 예민해지면 다 깨부술 수도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이중호가 추천해줬다면서 외출했을 때 사 온 향초를 켰다. 같은 일이 넷째 날과 다섯째 날까지 반복되었으나, 한서림의 체력만 바닥나고 강해건의 경계심만 높이는 꼴이 되었다.

지랄과 발악, 난동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흘 동안 온몸을 내던져 깨닫고 한서림은 모든 전의를 상실했다. 그리고 결국 어제부터 다시 타협하고 강해건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 강해건이 경계심을 낮추는 틈을 이용하면 어떻게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든 나가야 했다.

“배 안 고파요?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인 것 같은데.”

“별로. 생각 없어.”

“그래도 먹어야죠. 요즘 계속 생각 없다고 저녁 안 먹고 있잖아요. 살이 많이 빠져서 걱정되는데.”

“……해건아. 그렇게 걱정되면 내보내 줘. 그럼 밥도 잘 먹고 살도 찔 테니까. 응?”

“생각 없으면 억지로 안 먹어도 돼요.”

재수 없을 정도로 예쁘게 웃은 강해건이 한서림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도무지 대화가 안 통한다. 밥을 안 먹고 버텨서 영양실조로라도 병원에 실려 가면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굶주림은 한서림을 나약하게 만들었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에 최대한 적게 먹어서 허기를 달래고 저녁을 굶은 게 일주일째였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섹스와 기절을 반복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고, 셋째 날부터는 난동을 부리며 지랄하느라 일부러 안 먹었다. 어제는 힘겹게 굶주림을 참으며 최대한 빨리 쓰러지고자 악으로 버텼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기운이 없고 가끔 현기증이 일면서 살만 쭉쭉 빠지고 있을 뿐, 강해건의 마음을 돌리거나 영양실조로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강해건은 걱정된다고 하면서도 억지로 먹이려고 하지는 않았다. 강해건의 침실에 날짜와 요일이 함께 표기되는 LED 전자시계가 없었더라면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조차 모른 채 시간 감각마저 상실할 뻔했다. 그만큼 무력하고 의미 없는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향초 효과가 좋은가 봐요.”

강해건이 팔을 뻗어 거실 테이블에 있던 향초를 들고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미세하게 은은한 향이 점차 번져오기 시작했다. 향초는 거실과 침실에 여러 개 비치되어 있었다.

“요즘은 불면증 괜찮죠?”

“…….”

“중호 형이 이거 좋다고 추천할 때는 미심쩍었는데 서림 씨 예민함이 사라진 거 보니까 확실히 왜 그렇게 추천했는지 알겠어요.”

그럴 리가. 한서림은 매일 밤 강해건의 품에 안겨 눈만 감을 뿐, 일주일 째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눈은 매일 건조함이 지나쳐서 뻑뻑했다. 세수를 할 때 거울을 보면 붉은 실핏줄이 군데군데 터져있을 때도 있었다. 그게 보이지 않는 것인지 강해건은 헛소리를 참 예쁘게도 했다.

강해건이 불붙인 향초를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한서림은 일렁이는 불꽃에 시선을 두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빨려 들어갈 것 같기도 했고, 몽롱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한참이나 말없이 그렇게 보고만 있으려니 불꽃이 타오를수록 갈증이 일었다. 한서림은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물 한 잔 마시고 허기를 달랜 후 침대에 가서 눕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

한서림이 상체를 일으키고 소파에서 일어나 두 다리에 힘을 주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거센 현기증일 일고 눈앞이 새카맣게 변하며 꺼지는 불씨처럼 모든 것이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강해건이 당황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른 것 같기는 한데 정확하지는 않았다. 이후로는 기억이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암막 커튼으로 빛이 차단된 공간에는 아주 약한 은은한 불빛만이 존재했다. 협탁에 있는 스탠드의 조도를 낮춰서 켜두었다는 건 고개를 돌려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알았다.

손등에 꽂혀있는 링거 바늘이 새삼 따갑게 느껴졌다. 쓰러졌는데도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눈을 뜬 곳은 병원이 아니라 강해건의 침실이었다. 지금 이곳이 병원이었더라면 아무리 강해건과 경호원들이 감시한다고 해도 의사나 간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검사실이나 진찰실에서 도주 경로를 모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몸을 망치거나 자해하는 걸로는 강해건의 마음을 돌릴 수 없나 보다. 그는 또다시 의사를 불러 치료해주고 지금 같은 무력감을 선사할 것이다.

하다못해 일주일에 두 번씩 청소하러 오는 사람과도 마주칠 수 없었다. 한서림이 볼 수 있는 사람은 강해건과 복도에 있는 최 팀장을 비롯한 경호원들이 전부였다. 한서림을 도와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하아…….”

링거를 맞고 있기 때문인지 몸도 가볍고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안 드는데, 정신적인 피로감과 피폐감이 온몸을 짓누르듯이 쌓여 있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 해도 나갈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자 누워만 있는 것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이 마치 1년처럼 버거웠다. 절망의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96.

“정신이 좀 들어요?”

방문이 열리고 강해건이 들어왔다. 열린 방문으로 쏟아지는 햇볕에 눈이 부셨다. 쓰러진 후부터 밤새도록 잔 모양이었다. 이 집에 감금당하고 처음으로 푹 잔 날이었다. 아니, 이건 잔 게 아니라 기절한 거였다. 침대 맡에 앉은 강해건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한서림의 볼을 쓰다듬었다. 걱정과 염려, 애정이 깃든 손길이었다.

강해건은 이렇게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인데, 한서림은 제가 왜 갇혀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인권을 유린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해건아.”

“네.”

“……나가고 싶어. 너무 답답해.”

“아직은 안 돼요. 집안에서도 쓰러지는데 밖에 나가서는 어쩌려고요.”

수면부족으로 기력이 쇠하고 작정하고 안 먹기까지 했으니 쓰러진 거지 한서림이 허약한 체질은 아니었다. 그런데 강해건은 한서림을 마치 바람 불면 날아갈 존재인 양 조심스럽게 다루려고 했다.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지만 한 번 눌러낸 한서림이 최대한 불쌍한 목소리를 냈다.

“아직 안 되면 언제 되는데?”

“밥도 잘 먹고 몸 회복해서 이 생활에 익숙해지면요. 그러면 같이 나가서 영화도 보고 데이트도 하고 쇼핑도 해요.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강해건과 경호원들의 감시를 받으면서 나가봐야 의미가 없었다. 기회를 잡아 도주한다고 해도 1분도 안 돼서 잡힐 게 뻔했다. 그럼 아예 나가고 싶어 하는 기색을 전혀 안 보이면 안심해서 내보내 주지 않을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역시나 이 전략이 먹힐 가능성이 더 클 듯했다. 시위나 난동은 강해건에게 먹히지 않으니 고분고분하게 굴어서 그를 안심시켜야 한다. 결국엔 도돌이표처럼 첫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냐, 못 들은 걸로 해. 안 나갈래. 익숙해져도 안 나갈 거야. 나가기 싫어. 그냥 여기 있을래.”

“…….”

“섹스할까?”

“서림 씨 아직 링거도 다 안 맞았고, 지금 기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회복부터 해야 돼요.”

“그럼 밥 줘. 밥 먹고 기운 차리게.”

“바로 연락해서 가져오라고 할게요.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뭐든 다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한서림이 눈까지 확 접으며 환하게 웃었다. 여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말 잘 듣는 인형뿐만 아니라 더한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 아프고 나서 그런가. 되게 예쁘게 구네요.”

강해건이 고아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

“너 말 잘 듣는 인형이 취향이라며. 나 다시 말 잘 듣는 인형 하려고. 생각해 보니까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서림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그럼 밥 오기 전에 이거 먼저…….”

“팔 조심해요.”

상체를 세운 한서림이 강해건의 바지를 내리며 묵직한 성기를 꺼냈다. 말릴 줄 알았던 강해건은 오히려 주삿바늘이 꽂힌 팔을 조심할 수 있도록 링거 줄을 정리해주었다. 어지러움 속에서도 강해건의 성기를 입에 담는 한서림은 망설임이 없었다.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하루빨리 이 집에서 나가고 싶다는 간절함뿐이었다.

***

어디를 다니는지는 몰라도 강해건은 이삼일에 한 번, 몇 시간씩 외출했다. 한서림이 유일하게 긴장을 풀고 늘어지는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