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42)

“엄살 안 떨 겁니다. 내 손으로 내 옷 벗고 있는데 강간이라니 당치도 않고요. 강해건 씨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강해건이 마음 놓고 화를 풀 수 있도록 한서림은 구태여 무심함으로 가장했다. 제가 아무렇지 않은 척이라도 해야 강해건도 쌓인 응어리를 조금 더 편하게 뱉어낼 수 있을 테다. 상처받았다는 티를 내면 그 얼마나 꼴사납고 역겹겠는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죠. 오늘부터 애 만드는 기계가 돼보자고요. 임신할 때까지.”

옷을 다 벗고 나체가 되기 무섭게 강해건이 다가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한서림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다리 사이에서 무겁게 늘어진 것이 바짝 다가와 얼굴 앞에 자리했다.

“안 서는 걸 보니 이제 그쪽한테는 얘도 질렸나보네. 알아서 세워요.”

한서림은 개의치 않고 두툼한 덩어리 두 알을 손바닥에 올리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무게감 있게 늘어진 성기를 한 번에 입에 넣어 혀를 한 번 굴렸을 뿐인데, 바로 발기하기 시작했다. 반쯤만 발기했을 뿐인데도 묵직한 것은 입안에 다 넣기 버거운 크기였다. 이렇게 빠른 반응 속도를 보면, 강해건의 말과 달리 얘는 아직 저에게 안 질린 모양이었다. 알파이기에 어쩔 수 없는 생리적인 반응이라는 걸 알면서도 속없는 생각을 한다.

“맛있게 좀 먹어 봐요. 그래서 흥이 나겠어?”

강해건의 큼지막한 손아귀가 뒷머리를 움켜쥐고 샅으로 끌어당겼다. 휘어 잡힌 머리채가 뽑힐 것처럼 아팠다. 숱이 풍성한 음모와 함께 거의 모양을 갖춘 살덩어리가 얼굴에 비벼졌다. 성기로 따귀를 때리는 것처럼 볼에 찰싹, 찰싹, 반동으로 마찰을 일으키는 행위가 변태스러웠다.

그러나 한서림은 반항하지 않은 채, 손바닥으로 받치고 있던 고환을 손으로 굴리며 혀를 내어 기둥을 핥았다. 금세 타액으로 범벅된 성기가 몸을 더 부풀렸고, 강압적으로 입안에 처박혔다.

“우읍……!”

한서림은 근육으로 짜인 탄탄한 강해건의 허벅지를 움켜잡고 예민하고 여린 살이 치아에 긁히지 않도록 입술을 말았다. 가만히 버티기만 해도 알아서 성기가 들락거렸다. 빠른 속도로 깊게 드나들수록 허벅지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후우…….”

“으, 윽……, 크흑…….”

목구멍을 최대한 벌려도 배려 없이 무자비하게 들이치는 성기를 받아내는 건 몹시 괴로운 일이었다. 따끔거리는 목구멍이 붓는 느낌이 들고, 호흡곤란으로 안에서 터진 기침이 삼켜지며, 어쩌지 못하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으나, 기어코 강해건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괴로운데도 강해건의 만족하는 얼굴을 보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다만 조금 의아한 것은, 강해건이 화나서 그런다기보다는 첫 펠라티오 때도 그렇고 원래 이런 취향인가 싶다는 것이다.

“푸, 흐으…….”

잔인했던 움직임은 예고 없이 멈췄다. 강해건이 거칠게 성기를 빼내자마자 기침이 터졌다. 찢어진 건 아닌 것 같았으나 붓기 시작한 목구멍이 괴로워서 한서림은 양손으로 강하게 목을 감싸 쥐었다. 목의 겉을 감싼다고 해서 상처 난 목구멍 안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엄살떨지 않을 거라더니.”

괴로움에 허덕이던 한서림은 싸늘한 일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젖히고 강해건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렁그렁했던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줄줄 흘렀다. 잠시 저를 응시하던 회색빛 눈동자가 진해지면서 탁하게 변한다 싶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버렸다.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조차 불쾌하다는 듯이.

“엎드려서 직접 구멍 벌려요. 넣기 편하게.”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은 후, 평정심을 되찾은 한서림은 강해건이 요구한 대로 침대에 올라가 엎드렸다. 어깨와 볼로 몸의 무게를 버텨내며 손을 엉덩이 쪽으로 가져갔다. 강해건의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던 펠라티오에도 한서림의 성기는 착실하게 발기해서 맑은 액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양손에 엉덩이를 쥐고 벌리자, 언제부터 흐른 건지 모를 오메가 액이 질척하게 만져졌다. 흥분한 알파의 페로몬이 온몸을 애무하고 있었다.

강해건은 침대로 올라와 한서림의 엉덩이 앞에 자리를 잡고 손으로 성기의 뿌리를 쥔 채 귀두로 입구를 문질렀다. 갑작스러운 자극을 받은 몸에 힘이 들어가며 주름이 꽉 조여졌다. 뒤에서 어이없어하며 낮게 조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장난하나. 손으로 벌리면 뭐 해요. 그렇게 힘을 주면 넣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읏!”

찰싹,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엉덩이에 화끈거림이 번졌다. 힘을 풀려다가 맞은 터라 반사적으로 다시 힘이 팍 들어갔다. 강해건이 성기를 밀어 넣으려고 했으나 오메가 액으로 젖었는데도 불구하고 다물린 주름은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왜 직접 구멍 벌리라고 했는지 잊었어요? 힘 빼라고요, 넣기 편하게.”

그러면서도 강해건은 다시 한번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화끈거림이 얼얼함으로 변하고 열이 올랐다. 붉게 변했을 게 뻔했다. 최대한 근육을 이완시키면서 힘을 풀려고 노력했다. 엉덩이를 쥐고 있는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한껏 벌렸다.

“으, 흣…….”

강해건은 기다렸다는 듯이 굵은 귀두를 꾹 밀어 넣었다. 적응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좁은 내부를 채워오는 압박감에 숨이 버거웠다. 이전에 했던 행위처럼 들락거리면서 내부를 넓히는 과정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부드럽게 스치던 입술이나 상냥하게 어루만지던 손길 따위도 없었다.

“아, 흐윽!”

단번에 뿌리 끝까지 확 처넣어 정통으로 전립선을 쾅 짓찧은 탓에, 순간적인 강렬한 쾌감에 휩싸인 한서림이 몸을 벌벌 떨었다. 아랫배가 왈칵 조여지고 허벅지가 부들부들 경련했다. 찰싹, 소리와 함께 또 한 번 엉덩이에서 쾌감인지 통증인지 모를 화끈거림이 번졌다.

“흐, 읏!”

“조이지 좀 말라고.”

“으응, 흐, 하으…….”

“알파 자지를 먹기만 해도 좋은가. 넣어주기만 하면 싸네.”

엎드려 있던 탓에 한서림은 무릎으로 버티고 서 있는 제 다리 사이가 잘 보였다. 척추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전율의 증거로 움찔거리는 성기에서는 정액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 자, 잠깐……, 아, 아!”

한서림에게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신음이 터졌다. 아직 사정도 다 마치지 못했는데, 강해건은 일말의 배려나 자비도 없이 한서림의 골반을 틀어쥔 채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빠른 속도로 쑤셔 박으며 깊은 곳에 있는 극점을 멍들게 할 것처럼 열감 어린 단단한 몽둥이로 퍽퍽 때렸다. 엉덩이를 움켜쥐고 벌리던 손이 미끄러지며 떨어졌다. 어떻게든 엄살을 떨지 않기 위해 시트를 구겨 쥐며 공포스럽기까지 한 반복되는 절정을 버텨냈다. 시트를 쥐고 있는 손이 하얗게 질리는 건 금방이었다.

“아, 흐윽, 아, 아……!”

“이래서 임신이 되겠어요? 잘 좀 버텨 보라고. 정액이 흘러넘칠 때까지 쌀 거니까.”

비명처럼 내질러지는 신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한껏 예민해져 있는 와중에 전립선까지 공격당하자, 한서림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날카로운 오르가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면서 입꼬리를 타고 타액이 흘렀다. 한서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강해건의 성적인 페로몬에 온몸이 압박당한 상태로 감당할 수 없는 쾌감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뿐이었다.

69.

“엉덩이, 들어요.”

“흐으, 응! 아, 하으, 흑……!”

“엉덩이, 읏……, 내리지 말라고.”

엉덩이에 매서운 손이 날아드는 것과 동시에 한서림은 다리에 힘을 주며 바짝 허리를 들었다. 찰싹, 연이어 들리는 소리가 흥분을 고양시켰다. 처음에 느꼈던 고통 어린 화끈거림은 어느새 쾌감으로 바뀌어 날뛰고 있었다. 사정을 하고도 여전히 발기해 있는 성기가 또다시 사정이 가까워왔음을 알리며 움찔거렸다.

“흐읏, 하, 흐윽…….”

강해건과의 섹스 경험을 되새겨보면, 저는 사정의 횟수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렇게 빨리 또 사정을 하게 되면 평소보다도 못 버틸 것이 뻔했다. 한서림은 얼른 제 손으로 성기를 쥐어 입구를 틀어막았다.

“이제 하다 하다, 별짓을 다 하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싸늘한 비웃음이 들려왔다. 한서림은 개의치 않으며 최선을 다해 사정을 참았다. 강해건이 만족할 때까지 체력을 유지해야 했다. 고갈된 체력을 비축하는 건 노팅이 시작되었을 때 해도 된다. 제가 아버지에게 느끼는 감정처럼, 페로몬 폭주의 원인을 제공한 제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스러울 텐데도 계약서 내용부터 지키려 하는 강해건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한서림의 사죄는 겨우 이런 요구나 들어주는 거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사정을 참으려는 노력이 무색하게도 안을 때려 박는 폭력적인 쾌감이 반복될수록 사정의 욕구는 강해지기만 했다. 기어코 한서림은 제 손목을 이로 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금세 비릿함이 번졌다. 버거운 쾌락 앞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

한서림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눈가가 따끔거려서 한서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하도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은 잘 뜨이지도 않았다. 암막 커튼을 단단히 쳐놓은 강해건의 침실은 캄캄하기만 해서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마치 8년 전 그날 강해건의 침실처럼, 사람의 얼굴조차 확인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한 군데도 빠짐없이 멍이 든 것처럼 온몸의 근육들이 욱신거리고 비명을 질러댔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일어날 기운조차 없었다. 손목이 답답해서 확인하려고 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반대쪽 손으로 만지고 나서야 손목에 붕대가 감겨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사정을 참기 위해 이빨로 물었던 손목은 살갗이 찢어져 기어코 피를 흘렸다. 저는 세 번째 노팅에서 완전하게 기절했으니 이건 아마 강해건이 치료해둔 것일 테다. 아무리 차갑게 굴어도 모질지는 못한 사람이었다. 만약 한 회장이 다쳤다고 해도, 아니 돌아가셨다고 해도 저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을 것 같은데. 치료해주는 것은 고사하고, 어쩌면 더 빨리 죽지 않았음을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까마득한 증오는 속을 썩어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강해건이 어떤 마음으로 제 손목을 치료해줬을지 아득해졌다.

한서림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어둠에 익숙해지려고 했다. 그래 봐야 모로 누운 채 벽만 보고 있는 탓에 아무 의미 없는 행위였다.

“…….”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등 뒤에 강해건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닌데. 임신이 중요한 게 아닌데. 각인부터 해야 페로몬이 안정될 텐데.

걱정이 돼도 강해건이 각인의 ‘기역’도 꺼내지 못하게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증오가 깊어도 각인을 위해 저를 찾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르게 들려오는 숨소리에 괜히 울컥거림이 넘어오려고 했다.

얼마나 잔 거지…….

“아, 흐윽……!”

시각을 확인할 새도 없이 두껍고 단단한 살덩이가 아래를 무자비하게 벌리면서 들어왔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엉덩이를 움켜쥐고 강제로 삽입했다. 한서림은 버거운 크기의 성기를 무리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 어떻게든 몸에 힘을 빼려고 했다.

“으응, 흐…….”

의도가 명백한 마찰에 본능적인 성감이 차올랐다. 오랜 시간 동안의 삽입으로 인해 구멍은 흐물흐물하게 풀려 있었으나, 반복된 자극 때문에 살짝 부은 상태라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예민해진 몸이 오메가 액을 흘려주고 있어서 통증이 심하지는 않았다. 강해건은 조금씩 들락거리며 점점 깊이 들어오고 있었다.

첫 번째 노팅이 시작되었을 때 강해건의 품에 기대서 내벽이 찢어질 것 같은 압박감을 견디며 시간을 보냈다. 대화 한마디 없는 건조하고 서늘한 시간이었다. 노팅이 풀리자마자 강해건의 요구대로 다시 그의 것을 세운 후 삽입했다.

두 번째 노팅이 시작되었을 때는 잠깐 정신을 잃었다. 노팅을 당할 때는 차라리 의식이 있는 상태보다 없는 상태가 견디기 수월했다. 적어도 고통을 적나라하게 느끼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노팅이 풀리자 그때는 강해건이 만족한 것인지, 후희를 즐기는 듯 몇 번 들락거림을 반복하는 사이에 다시 발기했다.

한서림은 참고, 또 참고, 제 살을 물어뜯는 노력까지 해가며 참다가 강해건이 사정할 때만 함께 사정했다. 사정을 컨트롤한 덕분에 그나마 덜 지쳐서 무리한 섹스와 노팅이 반복되는 동안에도 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세 번째 노팅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긴장이 풀리며 기절했지만 한서림은 최선을 다했다.

“아, 흐윽……. 흣, 아, 아……!”

뿌리 끝까지 겨우 삽입한 강해건은 말없이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낮인지 밤인지도 모른 채 각자 밥을 먹고 섹스와 기절을 반복하는 짐승 같은 생활은 나흘 내내 이어졌다.

***

“갑자기 런던 지사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몇 번째일지 모를 노팅이 시작되기 무섭게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한서림이 기절했다가 눈을 떴을 때는 귀에 착 감기는 낮은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무슨 전근을 이렇게 갑자기 가냐고. 아버지가 억지로 보내는 거야? 일단 만나서 얘기해.”

강해건이 통화하는 목소리였다. 들리는 내용으로만 유추해보건대, 아마도 강유건과 통화하는 듯했다. 모로 누워있는 한서림은 움직일 힘도 없어서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암막 커튼을 걷어내지 않은 탓에 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거실 창의 빛을 통해 낮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공항? 하…….”

강해건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버릇처럼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모양이었다. 곤란하거나 난감할 때 턱을 매만지고, 답답하거나 짜증 날 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행동은 강해건의 사소한 습관이었다. 그를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찰하며 알아낸 것들이었다.

“강 전무 추진력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하네. 몇 년이나 근무하게 될지 모른다면서 얼굴도 안 보고 간다고? 기다려, 내가 지금 공항으로 갈 테니까.”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아 있던 강해건이 몸을 일으켰다. 서로 끌어안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갑작스럽게 몰려드는 한기가 소름 끼쳤다.

한서림은 힘겹게 몸을 돌려 강해건을 바라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당당하게 서 있는 그의 몸은 어느 한 군데 빠짐없이 탄탄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넓게 벌어진 어깨와 가슴, 꽉 조여진 복근, 눈으로만 봐도 단단함을 알 수 있는 길게 뻗은 다리까지, 어느 하나 모난 구석이 없었다. 다리 사이에 반쯤 발기해 있는 성기가 눈에 들어오자, 쟤는 지치지도 않나 싶어서 조금 질릴 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전용기 띄울 거면서 왜 못 기다리는데. 기다리라면 기다려. 지금 출발하니까.”

강해건의 입에서 나온 말만으로도 강유건의 상황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강유건이 인사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런던 지사로 가게 된 모양이었다. 워낙 애틋한 우애를 자랑하는 형제이니 강해건의 반응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유건이 만나러 가요?”

나흘 동안 하도 울고 신음을 내지른 탓에 갈라진 목소리가 듣기 흉했다. 급한 갈증이 밀려왔다. 침이라도 삼켜서 진정시키고 싶은데, 바짝 마른 입안은 건조하기만 했다.

강해건은 곁눈질로 한서림에게 잠깐 시선을 던졌을 뿐 대답 없이 무시로 일관했다.

“…….”

침실에 붙어있는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온 그는, 여전히 한서림에게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도 없이 곧장 방에서 나가 버렸다. 드레스룸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잠시 후 현관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났다. 소리만으로도 강해건이 서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라도 말리고 가지.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온몸이 구타당한 것처럼 욱신거리는 한서림은 각인이고 뭐고 걱정할 여유조차 없어서 의식의 흐름대로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강해건이 페로몬을 풀지 말라고 한 탓에 초 단위로 긴장의 끈을 붙잡고 있었기에 정신적인 피로감이 상당했다. 나흘 내내 쉼 없이 극우성 알파와 섹스하는 일은 두려울 정도의 환락을 느끼는 것과 비례하여, 몹시 고단하고 힘겨운 일이었다.

70.

***

강해건과 강유건이 만난 곳은 공항에서 바로 이어져 있는 호텔의 룸이었다.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이 강해건을 알아보고 대신 노크했고, 곧이어 문이 열리고 강유건이 모습을 보였다. 강유건은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강해건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는 어깨너머를 살폈다. 강유건이 누구를 찾는지 뻔했으나 강해건은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왜 혼자야? 서림이는?”

“나 혼자 왔어.”

심드렁하게 대답하면서 문을 닫았다. 성큼성큼 넓은 보폭으로 소파에 앉기까지는 몇 걸음 걸리지 않았다. 강유건이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같이 안 왔어? 너 온다고 해서 당연히 서림이도 같이 올 줄 알았는데.”

“……몸이 좀 안 좋아서 누워있어.”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부단히도 마음을 먹은 덕분에, 한서림에게 모질게 대하며 쓰레기처럼 굴 수 있었다. 작정하고 배려 없는 섹스를 하며 상처를 주고 있었으나 실상은 너무 괴롭고 마음이 아팠다. 저를 싫어하게 되면 닿을 일조차 없을 테니, 기회를 박탈당하기 전에 원 없이 안고 싶은 더럽고 치욕적인 욕망이었다.

애달픈 눈과 마주칠 때마다 키스하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는 일은 너무도 힘겨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뉴욕에서부터 질리도록 키스했을 것이다.

이렇게 한서림과 키스 한 번을 제대로 못 할 줄 알았더라면.

그동안 섹스는 셀 수 없이 많이 했으면서, 대체 왜 키스조차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마음을 깨닫는 순간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여서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던 것 같은데…….

아……. 좋아한다는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키스하지 못한 거구나. 괜한 여지를 주면 한서림도 저를 좋아하게 될까 봐.

저 혼자만 한서림을 짝사랑해야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제 곁에 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괴물로 변하고 있는 저 때문에 한서림이 다칠 것이 무서워서 착각할 만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랑……, 각인해요.’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을, 사랑하는 이에게 키스 한 번을 못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못 할지언정 사랑을 담아 키스는 해볼걸. 후회로 점철된 마음이 짓물러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다.

“서림이가 몸이 안 좋다고? 왜? 어디가 아픈 건데?”

“별거 아냐. 나흘 내내 섹스만 했더니 그래.”

울컥대며 피를 쏟아내는 심장을 모른 척하며 능청스럽게 답했다.

“……미친놈. 짐승 새끼도 아니고. 서림이가 그렇게 좋냐?”

버석하게 웃는 입꼬리가 떨려왔다. 강해건은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제 표정이 강유건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깨달은 탓이었다. 제가 제일 잘하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얼른 표정 관리를 하고 씩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강유건의 얼굴을 살피는 척했다. 들어오면서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가 한눈에 보였다.

“강 전무. 뭐 힘든 일 있었어?”

“내가 힘들 일이 뭐가 있어.”

“근데 왜 얼굴이 까칠해졌을까. 살도 많이 빠졌고. 몸무게 줄었지?”

“아…….”

“이상하네, 건강을 위해서는 적정 체중을 늘 유지해야 한다고 유난 떨던 사람이 눈에 보일 정도로 살이 빠지고. 대충 봐도 5, 6킬로그램은 빠졌겠는데.”

강유건의 유들유들했던 인상이 날카롭고 예민해 보이도록 변했다. 평소라면 보자마자 알아차렸을 텐데, 온 정신이 한서림에게 팔려있어서 이제야 알았다.

“눈썰미하고는. 다이어트했다, 왜.”

“죽어라 운동해서 몸 유지하더니, 뭘 했다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전이 훨씬 나은데.”

“나도 막상 빼보니까 별로라서 다시 찌우려고. 살을 빼는 게 어렵지 찌우는 건 자신 있어.”

한 번도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그랬는지 찰나의 궁금증이 들었으나, 온 신경이 집에 혼자 두고 온 한서림에게 쏠려있는 탓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 시간만이라도 한서림이 편히 푹 쉬길 바라면서도 빨리 돌아가서 보고 싶은 이기심이 공존했다.

“그나저나 갑자기 런던 지사로 간다는 건 무슨 말이야?”

강해건의 입에서 뒤늦게 급한 만남에 대한 이유가 나왔다. 강유건은 별일 아닌 것처럼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런던 지사도 이제 자리 잡았는데, 이 기회에 능력 좀 보여야지. 이사회는 내가 서정을 계승하는 걸 계속 불안해하고 못 미더워하니까. 오메가라서 그렇지 뭐.”

“말 안 통하는 꼰대들이야 무시하면 그만이고.”

“의결권 가진 대주주들이 그런 꼰대들인데 어떻게 무시를 하냐.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어도 뿌리째 뽑을 수는 없어. 아버지도 네가 회사로 안 들어오고 버티니까 나한테 기회 주시는 거지, 정작 이사회가 반대하면 별수 없잖아. 내가 능력으로 증명하면 더는 반대 못 하겠지.”

시대가 어느 땐데 시대를 역행하는 착오적인 낡은 발상으로 회사의 발전을 막는 것인지. 그들이 과연 진정으로 회사의 미래와 안위, 발전을 기대하는 사람들인지 의문스러웠다. 표면적으로는 회사를 위하는 척하면서 속내는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고 불리려는 검은 야욕으로 똘똘 뭉친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트렌드에 발맞춰 혁신과 발전을 거듭하는 강유건에게 고작 오메가라는 말 같지도 않은 형질 핑계를 대고 앞길을 막으려는 것일 테다.

강해건은 제가 서자인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강유건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연예계에 데뷔했고 경영에는 일체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서자인 걸 알기 전까지 꾸준하게 받던 후계자 수업도 다 때려치웠다. 더구나 강유건이 제 페로몬의 폭격을 받아 임신이 불가능한 몸이 되면서 죄악감까지 더해졌다. 강유건의 서정 그룹 계승을 도울 수만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그럼 한국에서 맡고 있던 일들은.”

“본사 전무 타이틀은 당연히 그대로 가져가고, 런던에서 신경 쓰기 힘든 계열사들은 대충 다 정리했어. 엔터 대표는 막내 고모가 맡으실 거야.”

“잘됐네. 계약 기간 두 달밖에 안 남았는데 재계약은 하지 말아야겠다. 어차피 은퇴할 생각이었으니까.”

페로몬 폭주 주기가 점점 짧아지면서 강해건은 은퇴를 생각하게 되었다. 연기하는 일이 적성에 잘 맞고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으나, 점점 더 빠르게 괴물로 변해가는 탓에 하고 싶어도 더는 할 수가 없을 테다. 강유건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일이 부담스러웠는데, 이 기회에 정리하면 여러모로 편할 듯했다.

“드디어 회사로 들어올 마음이 생긴 거야?”

“나 제정신인데.”

반색하며 묻는 강유건에게 무성의하게 뱉어내면서 피식 웃었다. 이전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너 하고 싶은 일 하라고 응원해줬을 강유건이 씁쓸한 표정으로 변하면서 한층 낮아진 목소리 톤을 냈다.

“해건아. 네가 회사로 들어온다고 해서 반대할 사람 아무도 없어. 오히려 아버지는 좋아하실 거고.”

“염치가 있지. 강 전무가 알아서 잘 경영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거기에 숟가락을 얹어.”

“염치는 무슨. 너도 서정의 일원이야.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고. 해건아, 연예계 생활 힘들어서 은퇴하려는 거면 회사로 들어와도 돼. 나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무조건 존중하고 응원할 거니까.”

“누누이 말했지만 회사에 관심 없어. 난 아버지 개로 살기 싫어.”

극우성 알파인 강해건이 회사로 들어가는 순간, 경영 능력과는 별개로 강유건의 입지는 확연하게 좁아질 것이다. 강유건 역시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 속없는 말을 한다. 적어도 제가 양심 있는 놈이라면 강유건이 설 자리마저 빼앗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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