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42)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알파와 오메가 페로몬에 베타들의 관심이 높았고, 때로는 자신의 페로몬 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는 알파나 오메가도 있었다. 한서림은 그 점을 놓치지 않고 미국에서 페로몬 향수를 개발했다.

-일반 향수 뿌리면 금세 날아가거나 내 페로몬에 묻히는데, 너네 페로몬 향수 뿌리면 사람들이 진짜 내 페로몬 냄새라고 착각한다니까?

“피부 밀착도가 다르니까. 진짜 페로몬처럼 여겨지게 하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개발했거든.”

그로 인해 알파나 오메가라고 해도 은은한 페로몬 향과 정교하고 섬세한 페로몬 향수를 구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는 베타들에게까지 적용되었다. 베타는 기본적으로 페로몬 향을 감지할 수 없으나, 페로몬 향수의 향은 맡을 수 있었다. 또한, 베타가 페로몬 향수를 뿌리면 마치 페로몬을 흘리는 것처럼 여겨지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알파와 오메가도 베타의 몸에서 나는 향이 진짜 페로몬인지 향수인지, 형질을 구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한서림 능력 대단해. 한국에서도 잘 될 거야. 광고 나가면 더 난리 날 거고.

베타들에게서 알파나 오메가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 역시 다른 페로몬 향을 추구하는 소비층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해 한서림은 누구보다 빠르게 시장을 선점했고, 별다른 광고 없이도 미국에서 빠르게 성공한 것으로 비상한 능력이 입증됐다.

-근데 광고 모델로 우리 해건이를 택한 건 정말 현명한 선택이다. 어떻게 해건이를 생각했어?

“사실 나 네 동생 팬이었…….”

-와, 너 해건이 팬이었어?

워낙 동생 자랑을 많이 했던지라 우애가 두터운 건 알았지만, 말도 끝내기 전에 이렇게 반색하며 뿌듯해할 줄은 몰랐다. 강해건이 데뷔할 때 서정 그룹의 서자라고 밝히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무도 내막을 몰랐을 테다. 그만큼 다른 재벌가와 달리 서정 그룹 형제는 우애가 지극했다. 팬이었다는 말 뒤에 이어질 말은 ‘네 동생 팬이었는데, 대체 동생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는 것이었는데, 강유건은 틈을 주지 않고 질문을 추가했다.

-근데 어떻게 지금까지 나한테 티 한 번을 안 냈냐? 진작 말하지. 아, 그때 내가 해건이랑 인사를 시켜줬었나?

“어?”

-왜, 옛날에 내 생일 때 봤었잖아. 정신없어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내가 친구들 몇 명한테 해건이 인사시켰었거든. 걔가 귀찮아하면서도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게 귀여워서 더 끌고 다녔지.

“아아……. 나는 그때 몸이 좀 안 좋아서 일찍 왔어. 근데 오늘 만났을 때…….”

그 자식이 얼마나 싸가지 없고 무례…….

의식의 흐름대로 뱉어내던 말을 얼른 주워섬겼다. 강유건이 예전부터 강해건을 얼마나 예뻐했는지 아는데, 오랜만에 하는 통화에서 굳이 싫은 소리로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정말로 강해건을 생각한다면 성격개조를 위해 강유건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게 맞지만, 어쩐지 오지랖처럼 여겨졌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테다.

-오늘 만났을 때 뭐? 왜 말을 하다 말아?

“아니, 오늘 만나서 좋았다고. 오랫동안 팬으로 좋아해서 그런지 직접 만나니까 더 좋더라.”

즐거운 음성과 다르게 한서림의 얼굴은 벌레 씹은 표정이었다. 겉과 속이 다른 인간들을 싫어했는데, 지금 제가 하는 짓이 딱 그런 짓인 것 같아서 씁쓸했다. 한서림의 성격이 무심한 탓에 유학을 가면서 대부분 연락이 끊겼는데, 강유건과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져 온 것은 철저히 강유건 덕분이었다. 잊을 만하면 연락이 오고, 잊고 지낼 때쯤 뉴욕에서 만났으니까. 그런 친구에게 가식을 떠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우리 해건이한테 관심 있는 줄 알았으면, 뉴욕에 갔을 때 소개해줄걸.

“같이, 간 적 있어?”

-어. 뉴욕 출장 때, 해건이 화보 촬영이랑 겹친 적 있었거든. 그때 일 끝내고 나흘 정도 같이 여행했는데, 자긴 센트럴 파크에서 광합성 할 거라고 해서 나 혼자 가서 너 만난 거였어. 진작 말했으면 셋이 놀았을 텐데 아쉽다.

만약 그때 강유건에게 정식으로 소개 받고 오늘 강해건과 미팅을 했더라면 그의 태도가 달랐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에 무의미한 생각이었다.

-서림아, 내가 조만간 자리 마련할게. 우리도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과연 강해건이 강유건 앞에서도 그렇게 무례하게 굴지 궁금해서 한서림은 흔쾌히 그러자고 답했다.

* * *

“설마 히트인데 이런 자리에 온 건가?”

“야, 말이 되냐. 미치지 않고서야.”

“그럼 이 냄새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 미친, 나 설 것 같다고.”

“난 이미 섰어, 씨발. 매너 뭐냐. 돌겠다, 진짜.”

알파들의 적나라한 대화가 이어지기 전에, 한서림은 코트 주머니에 넣어둔 억제제를 떠올리며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같이 있던 이들에게도 어색하지 않게 둘러댄 덕분에 의심받지 않았다. 가장 먼저 페로몬 향으로 알아차린 옆에 있던 알파들은 한서림에게 발정기가 왔다는 것을 확신했겠지만, 음욕에 번들거리는 눈으로도 섣불리 다가오지는 않았다. 어떤 형태로든 집안과 연관되어 있는 서정 그룹 본가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약을…….”

약국에서 파는 일반의약품인 다양한 종류의 히트사이클 억제제와 달리, 한서림이 먹는 억제제는 전문의약품이기에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이 있어야지만 살 수 있었다. 흔한 약이 아니라서 파는 약국을 찾는 게 쉽지 않은 탓에 대부분 병원에서 받아야 했다. 그러니 여기에 오메가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도움받을 수 있는 확률은 희박했다.

지금까지 여러 번 위기 상황이 있었으나 늘 억제제로 잘 넘겨 왔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 원망스러웠다. 불특정 다수의 알파가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안 된다. 학창시절부터 지금의 대학시절까지, 교실과 강의실에는 언제나 알파들이 있었고, 발현한 알파들은 향수처럼 페로몬을 은은하게 풍기고 다녔다. 오히려 거북했지 이런 증상이 나타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갑자기 왜…….

“어떡해, 히트 왔나 봐.”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한서림이 코트를 찾기 위해 지나가자 몇몇 이들의 수군거림과 시선이 달라붙었다. 정상적인 히트사이클이 아니기에 자의로 갈무리할 수 없는 발정 페로몬이 새는 까닭이었다. 아무래도 이 자리에는 베타보다,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는 알파나 오메가가 많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유건이 멀리 있기 때문에 제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서림을 주시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이목을 끌지도 않는다는 것이고. 결단코 남의 파티를 망치고 싶지도 민폐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저만 얼른 이 자리에서 벗어나서 약을 먹으면 된다.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제발 그래야 한다.

06.

그러나 미약하게 느껴졌던 전조증상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페로몬이 당황스러웠다. 진한 밀도의 페로몬 때문에 더는 실내에 있을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팽팽하게 솟아오른 앞섶을 불특정 다수 앞에서 보일 수도 없었다. 그거야말로 꼴불견이었다. 이런 경우가 드물기에 한참이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일이기도 했다.

한서림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차에도 비상약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코트에 있는 약을 포기하고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땀이 쏟아지고 어지러웠다.

“하아, 하…….”

주차장, 주차장이 어디였지…….

위기감을 느끼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힘겹게 달려 나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드넓은 정원을 보는 순간 황망해졌다.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고 눈앞이 자꾸 흐려졌다. 이러다가 이성을 잃어서 원초적인 본능으로 아무 알파에게나 달려들까 봐 무서웠다. 부친의 페로몬 학대로 인한 부작용인데,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결국 알파를 찾는다는 것이 한서림을 가장 끔찍하게 하는 일이었다. 밤이라 쌀쌀한데도 추위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열이 올랐다.

생각해내야 돼. 주차장, 주차장이 어느 쪽…….

본채에서 조금 먼 곳까지 달려와 초조한 마음으로 좌우를 살폈다. 주차장은 좌측과 우측에 모두 있었다. 제 차를 어느 곳에 주차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울컥, 아래에서 무언가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실내에서 뛰쳐나올 때부터 꼿꼿하게 발기해있던 성기도 분출해내지 못한 비정상적인 욕망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전조증상이 끝나가고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하, 씨발…….”

입술을 짓씹으며 불안하게 떨리는 손길로 리모컨을 아무리 눌러보아도 거리가 멀기 때문인지, 아니면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인지, 신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만약 우측으로 달려갔는데 좌측에 주차한 것이라면 다시 좌측까지 달려갈 자신이 없었다. 결코 몸이 버텨주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위급상황이었다. 저절로 터지는 신음을 간신히 참아내야 했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좌측 서편 주차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 순간, 공동 대문을 통과할 때 들었던 직원의 목소리가 기적적으로 머릿속에서 울렸다. 한서림은 아무 생각 없이 좌측 주차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본인은 전속력으로 달린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 한서림은 비틀거리며 안간힘을 다해 약간 빠르게 걷는 수준이었다. 잘 관리된 정원을 구경하면서 감탄하며 본관으로 왔을 때와 달리 좌측 주차장까지 거리가 몹시 멀게 느껴졌다.

정원 조명이 곳곳에 있는데도 눈앞은 캄캄했다가 하�R다가를 반복할 뿐,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 땀범벅으로 젖은 몸에 열이 올랐다. 자꾸만 뒤에서 울컥, 오메가 액이 쏟아져 나왔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제 몸을 이따위로 만든 아버지를 저주하면서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쿵, 단단하고 거대한 무언가에 부딪친 몸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으읏…….”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서 한서림은 제가 누군가의 몸 위로 엎어졌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켜며 페로몬 향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베타구나 싶어서 안심했다. 그러나 제 몸에서 발작하듯이 쏟아져 나오는 페로몬을 컨트롤 할 수가 없었다. 상대는 베타니까 알파나 오메가만큼 페로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아, 도와주……, 내 차……, 주차, 장……, 흣…….”

한서림은 엉망인 머릿속으로 그저 같은 말만 반복했다. 발기한 성기를 단단한 그의 허벅지에 문지르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아내며 마지막 이성을 끌어모았다. 땀범벅이 되어 덜덜 떨리는 몸 때문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누군지 모를 이의 가슴팍에 묻고 있는 머리가 무거워서 드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흐으, 내 차에, 약…….”

제발 좀 도와주세요. 제발…….

끝마치지 못한 말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눈물이 쏟아져 정체 모를 이의 가슴팍과 한서림의 볼을 축축하게 적셨다.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아니, 이런 끔찍한 상황에 놓이느니 차라리 정신을 잃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절망적이고도 무서운 공포가 몰려왔다.

“……흐윽!”

베타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몸에서 농축되어 있던 페로몬이 갑자기 터지며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순간, 온몸이 강렬한 무언가에 휩싸이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전율에 덮쳐졌다. 온몸의 장기가 뒤틀리고 피가 거꾸로 솟으며 세포 하나하나까지 파르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거대하고 강렬한 페로몬이었다. 알파의 페로몬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지만, 페로몬 향만으로도 몸이 먼저 위축되었던 지난날과 다르게 두려움도 공포도 없었다. 믿기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밀도 높은 진한 페로몬 향이 후각을 자극하며 순식간에 뇌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마치 페로몬의 지배를 받아 이성과 의지가 상실된 기분이었다. 한서림은 순식간에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며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어졌다. 자신이 왜 이 상황에 놓였는지조차 잊었고, 오로지 본능만 남은 짐승이 된 것 같았다.

“하아, 흡…….”

알파의 페로몬이 이렇게 달콤할 수 있나, 피부로 느끼면서 허겁지겁 누군지 모를 이의 입술을 빨며 달려들었다. 그토록 혐오했던 순간이 눈앞에 닥쳐서 제 몸으로 행하고 있는데도 뇌를 녹일 것 같은 강한 페로몬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도 부친의 페로몬보다 더 뇌를 압박하는 페로몬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부친의 페로몬이 공포와 두려움을 조성하는 강압적인 것이라면, 지금 저를 휘감아 옭아맨 페로몬은 몹시 달콤하고 황홀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도록 강인했다. 끝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심장이 거세게 뛰었으며, 통제를 잃은 뒤에서 오메가 액이 마구잡이로 흘렀다.

“으응…….”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생각뿐이었다. 어서 빨리 이 타오르는 갈증을 해결하고 싶었다. 사납게 하체를 비비며 입술을 빨았다. 단단하게 발기한 서로의 성기가 비벼지며 고양감이 더해졌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상관없었다. 알파인데도 이렇게 아름답고 황홀한 페로몬은 처음인지라, 짙은 소유욕이 느껴지는데도 그저 빨리 타들어가는 열기에서 해방시켜 주기만을 원했다.

“허억……!”

시야가 한 바퀴 빙 돌아가며 급격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온몸이 흔들리고 멀미가 났다. 성기가 닿는 곳을 아무렇게나 비비면서 울먹이던 한서림은 도어록 소리가 귓전을 울렸을 때야 제가 누군가의 어깨에 매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푹신한 무언가에 몸이 떨어졌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급하게 옷을 벗어냈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어스름한 달빛만으로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질척하다 못해서 흥건하게 젖은 뒤를 꽉 채워주기만 바라며 더듬거리는 동작으로 알파의 허리에 올라탔다. 그도 옷을 벗어낸 것인지, 몸에 닿는 맨살의 감촉이 기꺼웠다.

“하아, 빨리…….”

“아, 읏……!”

전희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알파의 입에서 나온 신음을 듣는 순간, 돌아버릴 것 같은 쾌감이 피부를 기어올랐다. 주체하지 못하는 몸을 겨우 다잡으며 한 손에 다 잡히지 않는 알파의 성기를 입구에 맞췄다. 알파의 진하고 밀도 높은 페로몬 때문에 아까보다도 더 질질 흐를 정도로 흥건하게 젖어 있는데도 삽입이 쉽지 않았다.

“아, 흐으…….”

대체 어떻게 다리 사이에 이런 무기를 달고 다닐 수 있는 것인지, 너무 크고 길고 두꺼운 탓에 도무지 넣을 수가 없었다. 한서림은 제 손가락으로 구멍을 벌리며 어떻게든 귀두 부분만이라도 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겨우 선단을 넣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더 많이 삼키기 위해 같은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나 한참을 움직이며 많이 넣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손에 잡히는 기둥이 훨씬 많이 남아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며 나 좀 어떻게 해 달라고 엉엉 울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아흑!”

“읏, 하아…….”

갑자기 허리를 퍽 쳐올린 알파로 인해 반도 삼키지 못했던 성기가 뿌리 끝까지 한 번에 처박혔다. 짜릿한 전율이 등줄기를 훑으며 정제되지 못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안을 한계까지 벌리며 빠듯하게 채우는 압박감에 숨조차 쉬기가 힘들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예민해진 몸이 벌벌 떨렸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밀도 높고 진한 알파의 페로몬이 뇌까지 장악했다. 뇌가 터질 것 같은 격정적인 압박감에 숨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다.

페로몬 샤워라는 게 이런 건가, 손톱과 발톱 하나하나까지 전부 알파 페로몬에 노골적으로 애무당하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정신을 잃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07.

“하으, 흡……, 으응…….”

입에서 나오는 대로 신음을 쏟아내며 그의 가슴에 손을 짚고 본능을 좇아 엉덩이를 들썩였다. 처음 넣을 때는 그토록 어렵고 힘들었는데, 한 번 길을 트니 깊은 곳을 찌르는 성기가 오메가 액에 미끌거리며 들락거렸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과 다리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힘을 빼고 자세를 조금 더 편하게 잡은 후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골반을 잡아 오는 커다란 손에 힘이 가득했다. 그게 신호인 양 한서림은 무너지듯이 알파의 가슴에 쓰러졌다.

“흣, 빠, 빨리…….”

강인한 팔이 몸을 안아왔다. 스스로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나운 움직임이 이어졌다. 사정을 봐주지 않고 퍽퍽 박아대는 알파에게 매달리며 흐느꼈다. 느끼는 부위를 노골적으로 찔릴 때마다 전신이 경련하듯이 떨렸고, 틈 없이 맞물린 결합부를 비집고 오메가 액이 흘러나왔다. 온몸이 흐물흐물해지더니 액체가 되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주 안고 있는 단단하고 부드러운 피부가 느껴지는데도, 눈송이가 빗물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제가 알파의 몸에 흡수되는 것 같았다.

“아, 흐, 으응……!”

이후로는 엉엉 울면서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알파에게 매달리기만 했다. 자욱하게 깔린 알파의 페로몬과 한서림의 발정 페로몬이 섞여서 숨만 쉬어도 몸이 달아올랐다. 몇 번인지 모를 사정을 여러 번이나 했는데도 뇌를 장악하며 피부에 달라붙은 알파의 페로몬으로 인해 계속해서 발기하고 오메가 액이 흘렀다. 몇 번인가 정신을 잃었고, 눈을 뜨면 입술이 겹쳐지며 끝없는 열락 속으로 떠밀어졌다. 하반신은 앞과 뒤가 다 얼얼해서 감각이 없었다. 이러다가 죽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싶을 때쯤 완전하게 기절했다. 어렴풋한 정신으로 창밖이 환해지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으윽…….”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낯선 공간에서 발가벗은 채로 누군가의 옆에 누워있었다. 온몸의 근육통과 지저분한 침대로 인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순식간에 피가 차갑게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잠들어 있는 상대의 얼굴을 봤지만, 짙은 흑발을 가진 알파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몹시 아름다운 얼굴에 홀린 것도 잠시,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자, 책상 위에 강유건과 함께 찍은 건장한 남자의 사진이 보였다. 한 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고, 지금 한서림의 옆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단번에 이 사람이 강유건의 동생이자 서정 그룹의 막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한기가 덮치며 소름이 돋았다. 뒷모습만으로도 강건한 알파의 기운을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고 위축되게 만들었던 강해건인 것이다.

“하아, 미쳤어. 어쩌려고 이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차라리 상대가 일반인이라면 돈으로 보상이라도 하겠지만, 강해건은 한서림의 집안과 비교도 되지 않는 서정 그룹의 알파였다. 한서림은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른세수를 해봐도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비정기적 발정기가 왔다는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정원에 나서는 순간부터 기억이 끊어진 탓에 어째서 강해건과 이런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더욱 두려웠다.

설마 내가 강제로 덮친 건 아니겠지…….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이 불안했다. 지금이 오전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고, 마지막 기억이 밝아오는 창밖을 봤던 것 같으니까, 아주 잠깐 잠들었던 것일 테다. 일단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두려움을 느낀 한서림은 더러워진 슈트를 대충 끼워 입고 도망치듯이 강해건의 집을 나섰다.

서편 주차장에 있던 직원에게 술에 취해 자다가 이제 돌아가는 것이라고 묻지도 않은 변명을 했다. 그는 영업용 미소로 해장까지 하고 가실 분들이 게스트룸에 꽤 남아 있다고 아침을 권했으나, 한서림은 어색한 미소로 거절하며 급하게 차를 몰고 도망치듯이 웅장한 저택을 빠져나왔다. 서정 그룹 본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가 목을 졸라오는 것 같았다.

한서림이 초조한 불안함으로 지내는 것과 달리, 한 달이 지나도록 강해건이나 강유건, 혹은 서정 그룹 쪽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다행히도 제가 강제로 덮친 건 아니었나 보다. 심각하게 생각했던 저와 달리, 강해건은 그저 파티에서 있었던 원나잇으로 치부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자, 한 달 내내 바짝 조여 있던 긴장이 풀리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제야 마음 편히 유학을 떠날 수 있을 듯했다. 혹시나 싶어 그날 이후로 강유건에게조차 연락을 못 하고 있었기에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약 복용은 이제 중지해도 되겠는데요?”

유학을 떠나기 직전에 억제제를 미리 잔뜩 받아두고, 뉴욕 병원에 제출할 소견서를 받으러 들른 병원에서 의외의 말을 듣게 되었다. 한서림이 의문어린 얼굴을 하자, 나이가 지긋한 의사는 환한 웃음을 보였다.

“최근에 아주 강력한 형질의 알파에게 페로몬 샤워를 제대로 받았을 텐데, 기억하고 있죠?”

“……네?”

“이런 사례가 처음이라 나도 당황스럽긴 한데, 일단 검사한 결과로는 덕분에 한서림 씨 페로몬이 완전하게 안정되었어요. 확언할 수는 없는데, 아마도 극우성의 농도 짙고 밀도 높은 강한 페로몬 샤워를 받으면서 충격 효과가 좋은 쪽으로 나타난 것 같아요.”

“그럼 이제…….”

“네. 페로몬 학대로 망가졌던 페로몬 샘은 회복되었다기보다 기능을 멈춘 것 같지만, 한서림 씨의 경우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 할 수 있어요. 페로몬 향만 감지할 수 있고 베타와 다름없는 몸이 됐으니까요. 그래도 임신에는 지장이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아…….”

“이 사진을 보면 전과 달리 뿌연 부분이 사라진 게 보이죠? 조금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앞으로는 이보다 더 강한 페로몬이 아니면 반응하지 않을 거예요. 심리적인 부분이야 본인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고. 이쪽으로 소견서를 써줄 테니 심리 상담 치료만 받으면서 상태를 지켜보면 되겠어요.”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전에는 미약한 알파의 페로몬에도 심리적 거부감과 두려움이 강하게 느껴지며 몸이 떨렸는데, 습관이 되어버린 심리적 공포는 남아있을지언정 몸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제멋대로 덜덜 떨리던 손끝도 아무렇지 않았다.

워낙 어릴 때부터 강하게 자리 잡은 두려움으로 인해 심리치료를 조금 오래 받긴 했지만, 검사 결과에서 나타나듯이 뉴욕에서의 생활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흘러갔다. 알파들이 잔뜩 섞여 있는 자리에서도 위축되거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베타와 다름없어진 형질 덕분에 지긋지긋했던 비정기적 발정기는 물론이고 히트사이클까지도 사라졌다. 이성을 놓고 짐승으로 변하는 히트사이클이 사라진 것이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은 사고처럼 함께했던 그날의 강해건 덕분이었다. 그래서 강해건은 한서림의 은인이었다. 더 나아가 제 인생을 정상적으로 만들어준 구원자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부친에게서 벗어나, 언젠가는 꼭 은혜를 갚으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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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는 고귀한 형질 보존을 위해 극우성 집안에서는 근친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쉬쉬하며 행해졌던 근친은 부작용으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극우성이 아닌 열성이나 베타를 낳게 되었고,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숱한 질타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재벌가의 정혼이 좋은 시선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기업과 기업의 비즈니스라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여전히 고귀한 형질의 2세를 위한 것이니 말이다. 세간의 인식이 안 좋은 만큼, 연애결혼처럼 포장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로 재벌가의 형질 보존을 위한 정혼은 계속 이어졌으나, 진짜 연애결혼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걸 알면서도 연애결혼으로 포장하는 것은 맹비난을 피하려고 내세우는 일종의 재벌가 관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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