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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작은 분식집.
그 곳이 내 일터다.
19살 겨울, 집을 나오고 나서 여러 곳에서 알바를 하면서 돈을 모았다.
집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고 그래서 이 곳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낡은 분식집. 어떤 할머니 혼자 하는 분식집이었다.
처음 이 곳에서 일하자마자 든 생각은 왜 알바를 쓰려고 했을까 였다.
가게는 낡고 작았다. 혼자 일해도 충분할 만큼.
"왔으면 일 해."
할머니가 한 그 말을 시작으로 나는 그 분식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손님은 꽤 있는 편이었다. 근처에 학교도 있었고 동네 사람들도 종종 방문했다.
나와 할머니는 그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다.
나도 말이 없는 편이었고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가게, 너 해라."
"...."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진짜 사람들의 말처럼 내가 감정이 없는 걸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왜 저예요?"
그냥 궁금했다.
왜 이 가게를 나에게 주는지.
왜 알바일 뿐이었던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지.
"그냥. 불쌍해 보여서."
종종 나에게 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그 날, 할머니가 웃는 걸 처음 봤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너도 그렇게 해라."
그게 내 기억에 남아있는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정확하게 어떤 뜻인지도 모를 말.
그 때가 내 나이 25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 내 나이는 26.
나는 6년 전 집에서 나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하나 변하지 않은 건 있었다.
바로 내 성격.
"..."
"....아저씨. 사이코패스 아니죠?"
"야, 아저씨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떡볶이를 먹던 학생 둘이 말했다.
뒷 말은 듣지 않아도 안다.
그냥 무뚝뚝한 거라고.
식당은 서비스직임에도 나는 보통의 식당 주인처럼 되지가 않았다.
이건 아마도 평생 못 고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 비 온다."
어느 새 바깥에는 비가 오기 시작한다.
오늘 일기예보엔 비가 안 온다고 적혀 있었는데.
"그럼 저희는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내일 또 올게요."
학생 둘이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선다.
투두둑.
비가 쏟아져 내린다.
우산도 안 가져왔는데 꽤 많이 온다.
'마칠 때쯤에는 그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이어간다.
.
.
.
오늘은 일찍 가게를 접기로 한다.
비가 그칠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더 쏟아지기 전에 가려는 생각이었다.
아직 해는 완전히 지지 않아서 주변은 어스름하다.
나는 익숙하게 가게 문을 잠그고 문 앞에 섰다.
집까진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다. 뛰어서 1분이면 도착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낡은 원룸.
분식집에 할머니가 살고 계시던 집이 붙어 있지만 아직 원룸의 계약기간이 남아서 그 곳에서 살고 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여기로 옮길 생각이다.
쏴아아.
비가 쏟아진다. 빨리 가자.
혹여나 미끄러질까봐 신경 써서 달린다.
후두둑 쏟아지는 비가 시원하다. 아직 초봄의 날이어서 살짝 춥게도 느껴지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저 코너만 돌면 바로 집이다.
나는 머리 위를 손으로 가리며 입구를 향해 달려간다.
그 때.
"왔네."
원룸 빌라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어떤 여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모양새를 봐서는 빌라로 들어가려던 찰나 나를 발견한 것 같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종종 만났던 여자. 그 여자였다.
"자, 네 동생이야. 그러니까 네가 키워줘."
여자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는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깔끔한 외모에 예쁘장한 옷을 입고 있다. 당장이라도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예쁜 아이다.
우산이 하나 밖에 없었던 탓에 아이는 비에 조금 젖어 있었지만 그것 뿐, 대체적으로 좋은 옷을 입고 단정한 머리를 하고 있는 예쁜 아이였다.
그런데 나한테 동생이 있었다고?
나는 분명 외동이다. 그걸 헷갈릴 정도로 기억력이 나쁠 리는 없다.
“제가 왜요?”
반항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여자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했잖아, 네 동생이라고.”
“저는 동생 없습니다. 애초에 아버지도 없는데 어떻게 동생이 있겠어요?”
19살 겨울, 내가 집을 나온 날 이후, 나에게 아버지는 없는 존재였다.
“너 그것도 똑같구나? 감정 없이 말하는 거. 기계처럼 말하는 거 말이야.”
여자가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기계처럼 말 한다라... 어쩌면 저 여자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가끔은 내가 기계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니까.
“네 아빠 죽었어.”
여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
그 말을 듣고서도 나는 별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 사람이 죽든 말든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여자는 살짝 웃은 뒤, 말했다.
“추운데 거기 서 있지 말고 들어가서 얘기해.”
“...네.”
나도 그렇지만 내 동생이라는 저 애도 있으니 들어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집은 3층, 오른쪽 가장 끝 편에 있다.
가장 끝에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도 적은 곳.
나는 빗물을 뚝뚝 흘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좋은 데서 사는 구나?”
좋은 곳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19살 전에 살았던 그 집에 비해서는.
나는 화장실로 가서 수건을 꺼내왔다.
"이거."
"아, 고맙다."
여자는 다정하게 아이를 먼저 닦아준 뒤, 자신에게 튄 물기를 닦아낸다.
“젖었어.”
"그래, 우리 다연이 젖었네."
아이가 작게 말하고 여자는 살짝 웃으면서 부드럽게 대답했다.
내 어린 시절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다.
여자도 내가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그래서 왜 오셨어요?”
“일단 마실 거라도 좀 줘. 비 때문에 추웠거든.”
나는 여자와 아이 몫의 물을 준비해서 내놓았다.
“따뜻한 건 없니? 다연이 추울텐데.”
“왜 오셨냐고요.”
“말했잖아, 네 동생 키우라고.”
“저 동생 없다니까요.”
그리고 여자가 물을 홀짝 마신다.
“에취!”
옆에 있던 아이가 재채기를 했다.
코가 간지러운 듯 코를 문지르다가 손으로 자기 얼굴을 쓰다듬었다.
"우리 다연이, 추운가 보네."
여자가 그렇게 말한 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말을 이었다.
“네 동생 맞아. 나랑 네 아빠 딸이고 네 동생이고.”
“자세하게 말 하세요.”
그리고 여자가 말을 이었다.
여자가 쏟아낸 말은 이랬다.
우선 아버지가 죽었다. 암으로 죽었다는데 저 여자가 장례를 치뤘단다.
이 아이는 그 전부터 낳아서 기르던 애였고. 아버지와 여자의 아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나이는 6살.
“나도 키우고 싶은데 그건 힘들 것 같아. 그럴만한 사정이 있거든."
그럴 만한 사정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낳아놓고 못 키운다는 말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말도.
“네가 키워야 해. 너 밖에 없어.”
여자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멍청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말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제가 안 키운다고 하면요?”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면... 보육원에 맡겨야지. 말했잖아. 사정이 있다고. 네가 선택해야 돼. 네 동생 키우던지 아니면 보육원에 보내던지.”
여자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저 여자를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애초에 아버지와 만난 여자가 제정신일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하지만 아이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여자가 왜 자신이 키우지 않고 나에게 맡기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무슨 사정인데요?"
"..."
하지만 내 말에도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아이의 눈치만 볼 뿐이다. 그러면서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그래서 내가 말을 이었다.
“.... 저도 못 키워요. 혼자 살기도 빠듯하고.”
“키워줘.”
그렇게 말하는 여자는 조금 간절해 보이기도 했다.
원래 그런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던 여자였는데 그 모습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싫어요.”
“....한 번 더 생각해 봐."
그렇게 말하는 여자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고 단단했다. 마치 말할 수 없는 중요한 비밀이라고 있다는 듯이.
왜 그러는 건진 모르겠지만.
"싫습니다. 저 혼자서 살기도 힘들어요."
"....그래. 알겠어."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말했잖아. 보육원에 맡길 거라고. 네가 키우지 않으면 네 동생은 보육원에 맡길 수 밖에 없어.”
그 말에 집에서 나온 뒤, 처음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사정을 말해주지도 않고 무턱대고 키우라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세요."
여자는 처음과 달리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자기가 아이를 버린 거면서 왜 저렇게 얼굴이 굳어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갈게. 해야 할 게 많아서.”
“....”
집을 나온 뒤, 나 혼자서 살아가기에도 빠듯했다.
그런 상황에 동생이라고 하는 저 아이까지 키울 수는 없었다.
실제로 내 동생인지도 모르겠고.
여자가 현관문으로 걸어간다.
그 뒤를 따라가던 아이가 고개를 돌려서 힐끗 나를 바라본다.
‘눈이 나랑 닮았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턱.
그리고 손에 작은 감촉이 느껴진다.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그래도 다연이가 오빠인 건 아는 모양이네."
그 순간 할머니가 떠올랐다.
정확하게는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마지막처럼 간절한 손의 감촉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불쌍해 보여서.’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말도 떠오른다.
‘너도 그렇게 해라.’
이제야 조금이나마 그 말의 뜻을 알겠다.
나도 할머니처럼 그렇게 하라는 말이었다.
불쌍해 보이면 너도 나처럼 그렇게 하라고. 네가 그러고 싶다면.
그 말 때문에 나는 아이와 눈을 맞춘 채 이렇게 말했다.
"나랑 같이 살래?"
안녕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