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하.” 나른한 오후였다. 초가을의 바람은 신선했고, 햇살은 따뜻했으며, 적당히 배가 불렀다. 강의실에 앉아 있으려니 졸음이 몰려와 꾸벅 꾸벅 고개를 떨구게 되는 그런 날이었다. 그래서 이도하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해 턱을 괴고, 신명나게 졸고 있는 중이었다. 옆구리를 쿡 찌르는 손길에 이도하가 눈을 떴다. “……”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턱을 괴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으며 이도하는 입술을 물었다. 나 이 분위기 아는데. 강단에 선 교수가 묘한 눈초리로 그를 보고 있었으며, 시선이란 시선은 모조리 그에게 못 박혀 있었다. 몇은 핸드폰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리고, 발밑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알지 이거. 이도하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가 앉은 의자 바로 밑, 강의실 바닥에, 새파란 소환진이 펼쳐져 있었다. 서른두 번째 소환이었다. *** “안녕.” 그렇지 않아도 입을 틀어막은 채였으나, 어쨌든 이도하는 말문을 잃었다. 구역질 나는 피비린내와 정신이 아찔한 피의 향연이 아니었더라도 놀라 어차피 입을 틀어막았을 만큼 남자는 기가 막히게 잘생겼지만, 그 잘생김조차 좀 빛이 바랄 정도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찬란한 백금발과 얼굴이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온몸의 피란 피는 죄다 바닥에 쏟아내고 있었으니. 과다 출혈로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서는 태연하게 그렇게 인사하니 머리끝이 주뼛 섰다. “…미친.” “드디어 얼굴을 보는군. 잘생겼는걸.” “…미친놈인가?” “그 미친놈이 이제 곧 죽을 것 같은데 살려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