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648화 (648/653)

648화 (외전) 속재(2)

이후 12사도는 칵틀 루임, 쿠쿨칸교의 성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쿠쿨칸교는 여러 지도자들을 거쳤다.

총대주교는 나이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로마 가톨릭 교황처럼 그들도 짧게 짧게 집권했다.

충성파와 속재파는 서로 번갈아 가며 집권했다. 세력이 비슷했으니 당연했다.

12사도의 시기에는 속재파가 집권 중이었다.

총대주교는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들이닥친 12사도를 접견했다.

“당신의 말이 맞아요. 아버지는 뜻이 확고하세요.”

핏줄적 아버지를 말하는 것은 아닐 테다.

12사도, 처형자의 친아버지는 그 유명한 중화의 독재자이자 인류 최악의 학살자였다.

하지만 그의 딸인 12사도는 스스로 증명해냈다.

핏줄이 아닌 오로지 의지로 쿠쿨칸을 위해 헌신하여 사도의 자격을 따냈다.

지금도 그러했다. 그녀만이 쿠쿨칸의 존재를 제대로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속재파’의 교리에 가장 잘 따르는 신도 중 하나였다.

“감사합니다. 12사도. 당신의 헌신 덕에 우리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총대주교는 떨리는 손으로 혈액 시료를 받았다.

지금의 쿠쿨칸교는 일반적 종교단체가 아니었다. 이미 그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로마 카톨릭의 바티칸, 이슬람의 메카처럼 쿠쿨칸교도 거의 소국 이상의 위세를 자랑했다.

아니, 실제로 나라 하나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루밀 키치파닐은 엄연히 쿠쿨칸교를 국교로 지정한 나라였고, 여전히 카롬테가 다스리는 신정일치국이었다.

총대주교는 루밀 키치파닐을 포함한 세계 수많은 곳에 있는 속재파의 영적 지도자였다. 그는 수많은 신도들과 접선할 수 있었다. 그 신도들은 대학교에도, 온갖 실험실에도 있었다. 위대한 계획을 실행시킬 힘은 충분했다.

속재파에게는 크게 3가지 계획이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계획은 속재파들끼리만 공유한 계획이 아니었다. 충성파도, 제국교도, 광명회도, 심지어 황실도 연관되어 있는 계획이었다.

자유를 갈망하는 기업인조차 쿠쿨칸이 떠난 이후의 질서가 없는 자유, 즉 혼란과 불확실성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주가를 떨어뜨리는 것은 명백한 악재가 아니었다. 혼란과 불확실성이 주가를 떨어뜨렸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건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의 항거불능하며 불변하는 규칙이었다. 용의 존재는 그 규칙의 속재를 의미했다.

오히려 자유를 누릴수록 그러했다. 모두가 자신만 얻을 수 있는 어떠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지만, 반대로는 모두가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길 바랐다.

황실도 마찬가지였다.

해안은 자신의 눈앞에서 독을 먹고 죽은 형의 논리를 여전히 잊지 못했다.

[그러니 너, 새로운 황제여, 나의 형제여. 용을 붙잡아라. 승천을 막아라.

신민을 위해.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제국에는 초월자가, 용이 필요하다. 그것이 태묘에 잠든 모든 분이 원하시는 것일 테다. 국민들도 그럴 것이다.]

해안으로선 형의 말을 반박하고 싶었다. 당장은 못 했지만 늙은 뒤에는 반드시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경험을 쌓았으니, 언젠가는 형의 말을 반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허나 그러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오히려 나이를 먹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는 더더욱 형의 논리를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용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맨 먼저, 대부분의 단체가 관련된 대표적인 [안식의 옥좌] 계획이 있었다.

이 거대한 생명유지장치는 행여 그분의 신변에 무언가 일이 생긴다면 건강의 회복을 꾀할 수 있는 거대한 기계장치였다. 불경한 소리겠지만, 그분을 위한다면 그만큼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다.

다만 계획일 뿐 한 번도 실행되진 않았다. 그분께서 이것을 쓸 만큼 다치시거나 자해하지 않으셨기에 그러했다. 속재파마저도 이 장치를 앞으로 쓸 일이 없기를 기도했었으니.

두 번째 계획은 이미 상황이 벌어진 이후의 대책이었다.

그분이 더 이상 실존하지 않으시거나(죽거나), 혹은 모종의 일로 우리를 떠나신다면 그 이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계획이었다.

여기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분의 의식을 기계에 그대로 전송하여 그 가르침을 따르거나 혹은 부활의 예식을 벌이거나.

다만 이는 굉장히 논쟁적일 수밖에 없었다. 광명회와 일부 교단들은 옹호했고, 황실과 나머지 교단은 반대했다.

신의 성체와 의식을 교단이 함부로 다룬다니, 이 얼마나 불경한 짓인가. 심지어 속재파들 중 일부도 이 계획에는 절대 찬성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또한 계획일 뿐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어차피 계획의 목적 또한 신 잃고 예배당 고치기에 불과했다.

마지막 계획은 달랐다.

마지막 계획은 상황이 벌어지기 이전,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예방적 조치의 성격이 강했다.

교단은 쿠쿨칸이 떠나지 않게, 이승에 미련을 가지게끔 해야 했다. 그런 미련이 있어야만, 그분께서는 자의적으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었다. 영원히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테다.

이것은 오로지 속재파의 일부, 광명회의 일부만 관여했다.

그렇게 속재파의 주도로 만든 계획이 바로 [미련] 계획이었다.

직접적으로 그분의 육신과 관련되지 않으면서도, 그를 만류할 사람들.

즉, 속재파는 고대의 성녀들을 다시금 깨워내는 계획을 세웠다. 신의 육신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반대로 그분을 이 대지에, 이 지구에 계속 머물도록 하는 방법.

잔정이 많으신 분이다. 만약 고대의 인연들이 모두 부활한다면 그분께서는 지구를 떠나가시려는 행동을 멈추실 것이었다.

그들은 결정적으로 그분의 첫 인연에 주목했다.

그분의 첫 인연이자, 우리 모두의 어머니, 천덕태성황후를 살려낼 수 있다면 일말의 가능성이 생길지 몰랐다.

그렇게 그들은 역천의 기술에 손을 대려 시도했다.

당시 세계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생물학도 엄청나게 빠르게 진보하는 중이었다.

과학계는 개천 550년 즈음엔 이미 유전체(Genome)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심지어 제국 내 몇몇 대학에서는 돼지와 양을 복제하여 성공하기까지 했으니, 그때서야 비로소 허겁지겁 윤리가 기술의 뒤꽁무니를 쫓고 있었다.

그런 기술적 진보기에 속재파가 집권한 교단도 [미련] 계획을 시작했다. 속재파는 자체적으로 영향력이 닿는 명문대, 칵틀루임 신성 황립대학교와 기타 여러 가지 시설을 동원했다.

교단이니만큼 인적 자원을 동원하기란 쉬웠다.

논리와 이치를 따르는 저명한 과학자들도 일부는 종교를 믿곤 했다. 오히려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 때문에라도 믿었다.

쿠쿨칸교도 자금이 풍부했고 대단한 과학자들을 동원할 수 있었으니 미련 계획을 시도하긴 충분했다.

성유물을 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우리들의 어머니의 유해는 황릉에 고이 안장되어 있었고, 어떻게 일부라도 빼낼 여지도 있었다.

허나 여전히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어머니를 부활, 아니 복제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구할 수 있던 것은 한참 전의 유해였다. 살아있는 세포를 구해도 힘든 것이 육체 구성―인간 복제―인데 이미 수백 년 전 잠드신 분을 깨우는 건 훨씬 더 어려웠다.

과학자들은 열심히 노력했다. 비어있는 핵산 구조를 메꾸기 위해 과학자들은 그들 자신의 세포를 뽑았다. 놀랍게도 실험에 참가한 과학자들 전부가 어떻게든 그녀의 피를 이은 상태였다.

해씨는 이미 고려에서 굉장히 흔한 성이었으며, 부계가 아닌 모계로라도 관여하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모두의 노력이 닿았는데도 실험은 계속 실패했다. 그게 그렇게 쉽게 메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 유전체 지도가 거의 확보되었다고 하나, 아직 인간이 모르는 분야가 더 많았다. 생명의 신비도 아직은 미지의 영역에 있었다.

허나 때마침 12사도가 가져온 시료가 빛을 발했다.

그 조금의 용혈에서 기적이 발생했다.

그들은 용혈에서 적백혈구, 혈소판과 응고인자를 분리해 혈청만 추출했다.

그것은 마치, 예전 그분께서 직접 현존하는 첫 번째 사도에게 전시로 응급투약한 그 혈청과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 혈청을 통해, 마침내 어머니의 세포를 되살렸다. 유전체까지 완벽히.

실험이 성공했다.

심지어 모든 실험이 성공한 이후의 문제까지도 단번에 해결되었다.

유전체 복제를 성공한다 하더라도, 세포 자체가 가진 한계, 즉 말단소립(텔로미어)의 문제가 존재했다. 말단소립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늙어 죽을 수밖에 없는 원인 중 하나였다.

허나 신비롭게도 용혈은 그 문제 자체도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만들었다.

직접 혈청을 맞은 제1사도조차도 여전히 노화가 진행되는데, 어머니의 세포는 세포 단위에서 시도하여 그랬는지는 몰라도 완전한 태초의 세포로 돌아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첫 번째 알’이라 불렀다.

교단은 그 귀한 용혈을 써서 모두 여섯 개의 알을 더 만들었다. 잔과 연화, 루크레치아와 아이샤, 안토니아, 콤니니까지. 유해의 세포와 후손들의 세포를 채취하고 만드는 것까지 모두 동일했다.

그 뒤엔 만들 수 없었다. 용혈을 다 써버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목적은 달성했다.

마지막 실행만이 남았을 뿐이다.

허나 그 이후에 속재파는 한동안 어영부영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다음 총대주교는 충성파였다. 그는 전임이 죽고 총대주교좌에 오르자마자 교단에 감도는 수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전임 총대주교와 속재파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곤 충격을 받았다.

“당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시오!”

후임 총대주교는 푸들푸들 떨었다. 속재파의 행동은 죄악이다. 단연코 이것보다 심한 죄악을 본 적은 없었다.

육신을 복제한다 하더라도, 의식이 동일할까?

아니다. 일란성 쌍둥이조차 그러지 않았다. 과학기술이 기억까지 만들어낼 순 없었다.

설령 기억을 복사해도, 동일한 기억을 가진 이가 동일한 인물인가?

영혼이라는 것은 복사 가능한가? 그 논쟁도 해결된 바 없었다.

충성파 총대주교는 속재파들이 만들어낸 ‘기적’은 오로지 껍데기였을 뿐이며 소위 말하는 어머니의 육신을 되살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어머니는 아닐 거라고 일갈했다.

속재파마저도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영부영했을 터다.

정작 알까지 만들어낸 그들도 전임 총대주교의 죽음 이후엔 마지막 대의를 실행하는 걸 끝까지 주저했으니까.

총대주교는 이 사실을 덮었다. 교단이 둘로 쪼개지는 걸 감내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그분의 진노와 실망이 교단에 들이닥치는 것 또한 감내할 수 없었다. 이미 말라붙은 면죄부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그저 진노가 몰아닥치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죄악은 실행되었으니까.

그 와중에 알은 끝까지 초저온으로 보관되어 있었다.

충성파는 차마 알을 부수진 못했다. 그들은 속재파를 욕하면서도 아주 깊은 보관소에 그 알들을 소중히 보관했다.

그리고, 그 일곱 알 중 하나가 사라졌다.

개천 559년의 일이었댔다.

* * *

“믿을 수 없다.”

상민은 자신이 소환한 충성파 총대주교의 발언조차도 불신했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 어떻게 교단을 믿겠는가?

그는 거침없이 손을 휘저었다. 오로지 믿을 만한 1사도에게 모든 일을 맡겼다.

“지금 사태에 관련된 모든 인물을 포박하고 증거를 수집하라.”

상혁은 12사도를 제명하고 여러 자료를 확보했다.

알들까지 확보했다. 정말 말 그대로, 칵틀 루임 지하 깊은 곳에 알들이 있었다.

상민은 그 초저온 냉동고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저주받은 과학기술의 산물이 그 자리에 있었다.

상민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할 뻔했다.

그는 주먹을 휘둘러 초저온 냉동고들을 박살 내려 했다. 하지만 1사도가 필사의 각오로 아버지의 힘을 막아냈다. 신체가 거의 한계까지 밀렸지만 거대한 분노가 어머니들께 닿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아버지! 이미 존재하신 분입니다! 아버지마저도 그러실 순 없습니다!”

“…….”

“저 알에 계신 분들이 제 어머니들이 아니라는 건 저도 압니다. 허나, 허나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설령 아버지라 하더라도 그 천부적 권리를 제약할 순 없습니다! 그것이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자유가 아니셨습니까?”

할 말이 많았다. 허나 상민은 할 수 없었다.

그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알들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모두 여섯 개의 알을. 이미 저질러진 일 중 하나는 저 밖에서 평화롭게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상민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충성파 총대주교의 말처럼, 세포를 복제하여 다시금 사람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본질이 전이되진 않는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허나, 왕예진은 왕예가 맞았다. 육신만을 의미하는 바가 아니다. 정신도, 혼백도, 모든 것이 동일했다.

그녀는 일반적인 사람이 감히 알 수 없는 것들도 알았다. 교단조차도 모르는, 오로지 둘만의 내밀한 비밀도 알았다. 그리고 본질을 본다는 상민의 직감마저도 그녀가 정말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상민은 12사도를 찾았다.

세월이 좀 지났던 덕에 그녀는 이제 사도가 아니었다. 그저 그녀는 나타시난주에서 일반적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한 거니?”

시청은 길러준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한 점 의심도 없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저를 존재하지 않은 열두 번째 사도의 자리에 올려놓으신 건 아버지의 결단이지요. 저는 그 목적을, 그 목소리를 따랐을 뿐입니다.”

상민은 본능적으로 대답을 하고 있는 그녀가 그녀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디서 많이 본 보랏빛 장막이 그녀의 눈에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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