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화 변절자들
서기 1806년 가을, 바뵈프는 대조국전쟁(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을 선포했다.
습진균의 총력전 선포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였다.
연합군은 그동안 소련이 점령한 지역을 서서히 수복했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조국 러시아의 강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소련은 중화제국처럼 당규삼 같은 사람도 없었고, 생화학 병기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급진적 실험’도 없었다. 독소 포탄과 같은 생화학 무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탄저 개발은 아직 유의미한 무기화 단계까진 올라오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일반적 방법으로는 연합군의 진군을 막을 방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라스푸티차가 없었으면 진작 모스크바가 위협받는 처지였을지도 모른다.
명확한 패배가 크레믈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바뵈프는 연합군 무리들이 소비에트 공산사회를 박살 내고 러시아에 또다시 절망과 분열, 기근을 가져올 것이라 말했다.
1차대전 이후의 암담했던 러시아 사회가 되풀이될 것이라 말했다. 그러니 앞장서서 고려와 서유럽의 침략적 태도를 방어하자고 격려했다.
놀랍게도 이 전쟁을 ‘방어전쟁’으로 규정한 것이다.
본래 인류 문명에서 방어전에 임하는 사람들의 각오는, 대부분 침략자의 각오보다 드높았기에 정치인들로서는 그렇게 규정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제정 러시아도 그렇고, 소련 또한 먼저 그들이 폴란드와 루테니아, 핀란드를 침공했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도 않았다.
사실 딱히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래 그러한 모순이야말로 소비에트가 가진 가장 자랑스러운 무기였다.
허나 러시아 사람들은 중화만큼이나 큰 호응을 보내진 않았다. 그들은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아니, 정말 두 번째였나? 사실 이전부터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고달픈 삶을 살았던 것이 러시아 민중들이었다.
지도자의 자리에 앉은 놈들의 모순 때문에 루스인들은 항상 비참하게 죽어갔다.
이번에도 소련의 총동원령에 의거 많은 러시아 남성들이 징집당했고 전선으로 보내졌다.
그런 와중 바뵈프의 정부는 조금씩, 보이지 않는 부분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 *
고려와 대적하는 국가의 첩보기관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곳은 소비에트의 내무인민위원부, 즉 엔카베데(NKVD)였다.
오흐라나가 루테니아로 전향한 이후, 오흐라나가 버려두고 떠난 유산을 물려받아 태어난 체카는 건국 초 소련의 방첩망을 열심히 수호했다.
아무리 같은 정보부라도 힘의 격차는 존재할 수밖에 없어 신(新)오흐라나는 물론이고 제국 정보총국이나 보안국에게 번번이 농락당하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상대하는 자들이 강했던 만큼 체카도 빠르게 경험치를 먹고 성장했다.
오히려 더없이 강력한 적들을 상대했던 만큼 그들도 강해진 것이다. 실패와 패배를 겪으며 이들은 단단해졌다.
체카가 본격적으로 엔카베데로 개편된 이후에는 그 능력이 더욱 개화하여, 엔카베데는 소련은 물론이고 공산주의 사회권 전부에 대한 방첩과 세계에 대한 첩보 및 책략을 실행하는 거대한 기관이 되어 있었다.
공산주의 이념의 특수성으로 인해 엔카베데의 위세는 대단했다.
기관 내에는 당과 이념에 대한 엄청난 충성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조국 소비에트 밖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엔카베데는 이러한 인적 자원들을 교묘하게 잘 이용했다.
또 엔카베데의 행동 지침에는 당의 이득 이외에는 고려해야 할 최소한의 선 같은 것도 없었다. 다른 정보기관들이 각국의 사정과 외교관계, 그리고 나름대로 최소한의 인권 등과 같은 현실적인 제약에 얽혀 있었다면 이들은 당에 위험을 끼칠 수많은 반동분자들을 사살하거나 저 멀리 시베리아에 있는 굴라그로 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덕분에 2차대전 전후 엔카베데는 명실공히 세계 2위의 방첩력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려를 제외한 하늘눈 정보조약의 구성원 하나하나를 따져봐도 엔카베데와 첩보 싸움을 해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곳은 없어 보였다.
그런 강력한 첩보기관을 이끄는 자는, 현 바뵈프 서기장의 심복 중 하나인 이고르 페트로브였다.
보잘것없는 비숙련공의 아들로 태어난 이고르는 혈통이 아닌 능력으로 이 소비에트 관료사회의 정점 근처에 오르며 입지전적인 신화를 써 내려갔다.
소비에트가 그래도 추축국을 구축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제정 러시아에 만연했던 부패를 많이 없애고 당과 이념에 충성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 중용했던 것, 소위 말하면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을 터였다.
동유럽보다 한참 진보한 서유럽에서조차 혈연을 따지지 않는 확실한 능력주의적 체제가 도입된 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프랑스도 볼테르 시절 때나 고려식 대입시험의 일종인 바칼로레아(Baccalauréat)가 처음 나왔고, 도이치도 프리드리히 2세와 테레지아의 시대, 그리고 아들 빌헬름 1세의 시절에 들어서야 융커니 뭐니 안 따지고 고위 공무원과 군인들을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등용했던 것이다.
고려의 영향을 더 일찍부터 받은 동아시아는 유럽보다 능력주의가 더 빨랐지만 그래도 특유의 혈연, 지연, 학연 등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려만큼 경쟁력 있는 사회는 어쩌면 소비에트가 두 번째로 구축했을지도 몰랐다.
그런 면에서 소비에트가 강해진 이유는 분명히 존재했다. 습진균의 중화도 순수 한족에 한해선 조금은 비슷했다.
조국과 이념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기반으로 이고르는 서기장에게 충성을 다했다.
바뵈프도 그를 신뢰하여,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이고르는 서기장의 총애를 받은 만큼 결과를 내었다.
발칸 적화와 이베리아 적화, 잉글랜드 지원, 그리고 여러 가지 기술 확보까지. 하나같이 찬란한 업적들이었다. 정보총국 대외국의 방해를 받았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실로 탁월한 성과였다.
물론 T―25 전차와 같이 기술적 사보타주를 당한 건에 대해선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거리가 없었지만, 고려의 악의적인 정보 유출까지 전부 계산하고 작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뵈프도 그 정도는 이해했다.
허나 최근 이고르는 자신의 긴 첩보원 생활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심각한 보고를 들었다.
“잉글랜드가 그렇게 당했다고?”
잉글랜드 최고 위원회 중, 극소수는 잠수함을 통해 소련의 무르만스크 해군기지로 도주하여 잉글랜드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곧바로 고려가 어떻게 잉글랜드를 무너뜨렸는지 정보를 공유해 주었다. 패잔병이라 하나, 이들은 잉글랜드 최고 권력자들이었으니 가진 정보의 질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이고르는 한참 동안 엔카베데 지하에 보관된 퀴퀴한 옛 문서들을 다시 헤집었다. 그리곤 잉글랜드 최고 위원회에서 온 정보를 옛 기록들과 대조했다.
석연치 않은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디밀었다.
“이상하군….”
이고르는 자신이 앞에 쌓아놓은 자료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얼굴로 자료를 바라보았다.
온갖 풍파를 겪어오며 만들어진 그의 험상궂은 얼굴에도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올라 있었다.
대부분의 공산주의자는 극단적 유물론자였고, 공산주의적 반종교주의자였다. 공산 국가도 국가 무신론을 기본적으로 채택하는 나라였다.
과학이 발전한 제국이나 다른 국가에서도 무신론자들의 비중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이들의 사회는 종교를 믿건 안 믿건 그 종교가 사이비라 특별히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라 존중하는 사회였다.
반면 소련은 애초에 종교를 탄압하고 믿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곳이었다.
하지만 자료들에 적힌 ‘사실’들은 무언가 이상한 것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국가무신론과 유물론과는 정반대의 말들을.
자료에 적힌 것들만 보면, 쿠쿨칸교나 제국교 놈들의 혹세무민하는 사악한 교리를 모아놓은 느낌이 아니던가.
그동안 이고르는 사실과 소문을 분리했었다.
그는 이 땅을 거니는 위대한 불사의 존재에 대한 소문(혹은 교리)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일고의 여지 없는 종교적 헛소리였다.
다만 이고르는 이들을 하나하나 독자적으로 해석했었다.
고려 황실이 좋은 군주만을 배출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에 불과했다. 그 황실은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경우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고르는 고려 정재계 뒤에 이상한 손길이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낙후된 봉건적 제국주의자’들 특유의 그림자 정부 혹은 이너서클이라 규정짓고는 이곳에 침투하기 위해 온갖 애를 썼다.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었지만.
이고르는 원석유결제체제의 큰 축을 이루는 아련과 이라크, 그리고 몇몇 국가들이 고려에게 비상식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사실도 알았다. 소련이 파고들 여지가 전혀 없을 만큼. 본래 국가 간의 사이는 그러면 안되었다. 아무리 친해도 서로 간의 이득이 최우선이었다.
2차 세계대전 개전 이후 고려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기술진보를 이루어낸 사실도 마찬가지였다.
소련은 고려가 문명 이전에 존재한 초고대문명이나, 혹은 외계인이나 미래인을 생포하여 고문했다는 설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다.
허나 그런 극단적 가정들을 여러 번 믿는 것보다 어쩌면 저 쿠쿨칸교적 교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적 논리로 더 합리적이라면, 과연 그 교리를 완전히 헛소리로 치부하는 것이 옳은가.
이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테고.
이고르가 이렇게 깊이 과거의 일들을 전부 꺼내 놓고 고민할 만큼, 고려의 초인 병사들에 관한 사실은 너무 이상했다.
고려의 특수부대가 강력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기껏 특수부대 따위가 이렇게 한 나라를 주물럭거리다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하지만 적의 특급 기밀 부대는 그 일을 실제로 해냈다. 대략적으로 소대 이하급의 분견대 수준인데, 그들이 지금껏 해낸 것은 사단도, 군단급 병력도 장담하지 못할 정도의 난해한 작전들이었다. 특히 이런 작전은 단발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런던을 여러 번 침투했고, 수많은 요인들을 암살했다.
그리고, 잉글랜드 최고 위원회 생존자들은 저들의 칼날이 이제는 크레믈을 향해 다가오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고르는 공포에 질린 자들 특유의 정직함을 위원회 생존자들에게서 간파했었다.
그는 이 초인 병사들의 정체를 알아내야만 했다. 서기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 것 같다고?’
자문을 청한 소련 과학자들은 겨우 그렇게 답을 내놓았다. 뭐가 되었든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소련 과학자들은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는 더 지나야 인류가 그 정도의 기술력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넋두리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저 기술은 필히 외계인 수준의 기술력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니야, 외계인의 실존을 고민하기보다는 오히려 저 교리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엔카베데의 비밀기록보관소에서 밤을 꼬박 지새운 이고르는, 마침내 저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대공녀 테레지아에 뒤이어 두 번째로 진실의 파편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이고르는 다음 날 아침까지 보고서를 겨우 작성했다. 자신의 사견으로 범벅이 되어, 도무지 논리라곤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지만 가장 진실에 근접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바뵈프 서기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집무실을 나갔다.
“크레믈로. 당장.”
하지만 그날따라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속이 답답하여, 자신의 관용차가 아닌 다른 차를 타고 크레믈로 향했다.
루스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운전 도중 안전띠를 일부러 잘 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루스인들의 마초스러운 생활 태도에서 기원한 이 관습은 제국이 발명한 이 바보 같을 정도로 갑갑하며 쓸모없는 안전장치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의 일환으로 확산되었다.
허나 초창기 자동차에는 이 안전띠만이 유일한 안전장치였다. 고려의 일류 자동차 기업들은 이제 막 다른 안전장치들을 꼼꼼히 만들고 있었지만, 소련은 그런 것 따윈 사치라 생각했다.
― 쾅
“커헉!”
그렇기에 자동차가 장애물과 충돌했을 때, 앞좌석에 탄 이고르 또한 스스로의 덩치가 가진 운동량을 이기지 못하고 앞 창문을 깨고 한참을 날아가 눈이 녹은 진흙탕에 처박히고야 말았다.
그러고도 숨이 붙어 있는 것이 과연 188센치에 96킬로에 달하는 인간 자체가 강한 괴물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렸지만.
“끄허억….”
하지만 그렇게 죽다 살아난 이고르마저도 자신을 뒤따르던 다른 차에 탄 남성들이 그를 부축하기는커녕 오히려 권총을 뽑아 들고 서로 총격전을 벌이는 것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
아마 기습받은 쪽이 이고르의 편이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모두 바닥에 차갑게 누워 있었다.
이고르는 한 놈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탄 차량의 운전수였다. 그가 피를 흘리면서도 보고를 하는 것이 들렸다.
“보그다노프, 놈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내가 직접 처리하지.”
세르게이 보그다노프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고르의 심복이었다. 엔카베데 내에서의 공식 서열은 세 번째였기도 했다. 실권을 따져본다면 이인자가 맞았다. 그는 대고려방첩을 담당하는 자였으니까.
‘대체 왜? 권력욕 때문에? 나를 짓밟고 올라가면 엔카베데의 수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입으로 논하는 것이 불경스럽긴 했지만, 소비에트 연방 내에서도 승계서열이 있었다. 행여 강철의 서기장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에 이어 소련을 지휘할 사람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영원하지 않더라도 체제는 영원해야 했으니.
그중 엔카베데의 수장인 이고르 페트로브는 유력한 차기 서기장 후보로 꼽혔다. 당내에서는 다른 고위급 정치위원들이 존재했지만, 엔카베데 수장만큼 서기장의 총애와 실권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나? 차기 소련 서기장을 논하는 내 지위가 탐나서?’
하지만 세르게이가 이고르의 앞에 서서 오연히 그를 바라볼 때, 이고르는 애초부터 이놈이 변절자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쭙잖은 권력욕 따위로 뒤늦게 자신을 해할 생각을 품은 것은 아닐 터였다. 자신을 이렇게 죽인다고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고.
“이념에 대한 충성은 실존하는 신성에 대한 충성을 이길 수가 없지.”
세르게이는 씁쓸한 얼굴로 이고르를 바라보았다. 이고르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짧은 질문을 던졌다.
“……네놈, 설마?”
“그래.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 네가 조사하라 시킨 모든 정보에서 나는 그분의 실존을 느꼈다. 나는 진실을 찾았고 빛을 받아들였다. 너는 아직 그러지 못했구나.”
“세르게이, 네놈이 소련과 당을, 이념을 배반한 것이냐?”
세르게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곳에서 배신자 특유의 자조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난 이념을 배반한 적이 없다. 너는 그분께서 정여립 동지를 유럽에 보낸 것을 모를 것이다. 그분께서 손수 노동조합을 만드신 것도 모른다. 그리고 그분께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오셨는지도 모른다. 메이블리는 실로 현명한 자였다.
오히려 너희가 먼저 인류를 배반한 것이다. 중화와 손잡을 때부터 그 모습은 명백해졌지.”
― 크흐…흐!
이고르가 웃음과도 같은 신음을 터트렸다.
“쓰레기 같은 반동분자로다, 이젠 어머니 조국이라고 하지도 않는구나.”
세르게이는 손을 들었다. 접근하려던 엔카베데 요원들이 그 지시에 뒤로 다시 물러났다.
소련을 수호해야 할 엔카베데가 진작부터 이렇게 타락했을 줄이야, 이고르가 핏발 선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고려가 키워준 거였나. 내부 배신자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세르게이가 이고르의 상념을 끊었다.
“그래도 축하한다. 세 번째로 진실에 닿았구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는 가련한 운명에 처하여 딸을 바친 여인도 될 수 없고, 나처럼 그분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할 터. 그렇다면 남은 운명은 오로지 하나뿐이겠지.”
“네놈들이 숭배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
― 읍읍!
세르게이 보그다노프, 제4사도가 군홧발로 욕을 하려는 이고르의 머리를 진흙탕에 눌렀다. 거구의 사내는 요란하게 발버둥을 치며 저항하려고 시도했지만, 직전의 교통사고로 인해 뼈가 부러졌는지 힘을 영 못 썼다.
“불멸의 용을 위하여.”
마침내 이고르가 진흙 속에서 질식해 죽자, 4사도가 나직이 중얼거리며 발을 떼었다.
“어찌합니까?”
그 모습을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던 엔카베데 대고려방첩부 요원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이 변절자들은 이고르처럼 진실에 닿지는 못했다. 그럴 위치도 아니었다.
그래도 조국의 모순에 대한 회의감으로 칼을 거꾸로 잡는 이들이었다. 이런 배신자들이 마침내 소비에트를 무너뜨릴 것이었다.
잉글랜드가 획책하려 한 청해대학 4인조 등은 실제로 고려의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을 끼칠 수 없는, 그저 귀여운 수준이었다.
허나 고려의 첩보는 달랐다. 그들의 모략은 체제를 뒤흔들 정도의 모략들이었다. 실제로 엔카베데 자체는 이미 설립단계부터 고려의 입김을 받아 암세포가 안에서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암세포는 엔카베데가 성장하자 마침내 밖으로 드러났다.
그렇기에 병든 괴물은 이제 필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