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화 과거의 잔재(3)
“후우, 죽겠구만. 비행기도 지긋지긋하고.”
“유구에서는 좀 휴식을 취하시지요.”
“불가하네. 조금만 여유 있게 움직여도 야당 놈들이 아주 물고 뜯을 텐데. 가뜩이나 심양도 무리해서 움직인 것이고.”
숨 가쁘게 바쁜 일정이었다.
보르지긴 노인을 탐라로 보낸 뒤 심양에서 솔빈으로 날아간 워싱턴은 옥저 조정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중화제국과의 경제적 친밀성을 경고하는 말을 남겼다.
원래 옥저가 조명전쟁 이후에 중원 세력과 썩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국민당 시절엔 서로 협력관계였다 하지만.
잠재적 적국이 될 수밖에 없는 상대방과의 필수 원자재 무역 거래라니. 대체 지금 위정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중화제국의 속이 시커먼 줄 알면서도, 그저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 그들의 당근을 받아들이는 꼴이 우스웠다.
그들이 개발해놓았던 광산의 구리는 곧 중화제국군의 탄피가 되어 반도와 옥저의 평화를 위협하는 데 쓰일 것이다. 그때 가서 후회하면 이미 늦었다.
이후 워싱턴은 솔빈에서 능도로 이동했다.
그나마 백제는 제정신이었다. 제정신이라기보단, 원래 예맥한 3개국에서 가장 위태로운 처지였기에 그럴 것이다.
강화라는 구적은 그들이 항상 경계하는 대상이었다. 인구와 영토라는 어쩔 수 없는 체급 차이로 백제는 항상 그들의 서진을 경계했다.
그리고 그 걱정은 옳았다.
그나마 고려 아래에서 부여씨와 나름대로 사이를 개선하던 강화 왕가 덕천씨는 덕천원심의 사후, 지금껏 왜왕들이 전통적으로 그러했듯 아예 힘을 잃었다.
덕천원심 사후 두 명이 짧게 즉위하고 훙하였는데, 현 왕을 포함해 그들 모두 곧바로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했다.
마쓰다이라 타카타케, 고려식으로 송평융맹이라고 불리는 자가 명실공히 강화의 쇼군이 되었다.
강화의 국호도 어느 순간부터 대화(야마토)로 바뀌었다. 덕천의 나라가 아니라, 이제 화족의 나라로 바뀐 것이다.
송평융맹이 추구하는 야마토주의는 중화와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역사와 문화, 반공의 정서와 기타 여러 가지 이념의 측면에서 열도는 중원만큼 역동적이진 않았다. 중화만큼 수많은 군중의 힘을 자발적으로 끌어낼 만큼 엄청나진 않았다.
중화제국의 발흥은 총통의 능력 이전에, 총통에 대한 사랑에 기원했다. 중화사상은 위에서의 혁명과 아래에서부터의 지지가 적절히 버무려진 걸작과 같았다.
하지만 현 대화 특유의 화족(귀족)적 사회도 그들만의 독특한 전체적 군국주의를 만들기 충분했다.
민족 본연의 가치를 다시금 재고하여 국가의 위태로움을 극복하자는 의미와 버무려진 야마토주의는, 아주 강력한 위에서부터의 강압적 명령이었다. 허나 일반 사람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무라이(모노노후)들은 몰락해가기 시작했지만, 상관과 단체에 대한 복종의 정신은 아직도 대화에서는 크나큰 미덕이었으니.
야마토주의를 이루기 위해선, 자신들의 마땅한 생활권, 즉 전 열도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런즉, 백제와의 필연적인 전쟁을 의미했다.
그러니 중화주의와 야마토주의는 절대로 고려가 구축한 동아시아의 질서와 공존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나마 유구, 마긴다나오, 누산타라 순방은 난이도가 쉬웠다.
세 국가는 정치적―경제적 체급이 커 여론이 복잡한 예맥한 3국보다도 훨씬 더 고려에 의존하고 있었다. 유구 같은 경우, 고려가 없으면 애초에 독립국으로서의 기능을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유구국이 현 국가체급에 걸맞지 않게 세 척의 전함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들이 정말로 그들의 옛 소망, 동쪽의 베네치아가 되겠다는(대전쟁 이후엔 아주 끔찍한 꿈이라고 밝혀졌지만) 꿈을 이루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고려가 자국 해안경비대가 쓰기 힘들 정도의 전함을 외국에 헐값에 판매한 덕분이었다.
그마저도 해군경쟁이 굉장히 치열한 동아시아에서는 대단한 전력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하항과 도읍 슈리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세계적 불경기라도 여러 가지 필수적 물류들은 여전히 바다를 오가고 있었고, 유구는 그 해운의 틈바구니에서 경제적 수혜를 입었다.
조선이 루손을 거쳐 가기 위해서나 백제가 보르네오에 가기 위해서도 나하항에는 반필수적으로 들러야 했다. 고려의 물류 회사들도 개성이나 탐라에 들르기 전 마지막으로 기항하는 섬이었다.
나하항은 최근 대대적으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유구는 국가체급이 작아서 그런지, 혹은 상업적으로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서 그러했는지는 몰라도 빠르게 신문물을 받아들이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최근 고려에서 엄청난 항만노조의 반발을 뚫고 도입된 체계를 그들도 도입하려는 모양이다.
“사랑스럽지 않나? 난 이 나라가 마음에 드네.”
워싱턴의 말에 정약용도 나직이 웃음을 터트렸다. 상관이 뭘 보고 그렇게 좋아라 하는지 비서관으로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항만에는 거대한 금속제 상자들이 있었다. 사람의 힘만으론 거의 움직이기 힘든 크기와 부피의 금속제 상자가 전용 기중기에 들려 작은 항만철도에 올려지는 것이 보였다.
[물류와 국가 기반시설의 혁신.]
워싱턴과 교당의 신경제정책 중 몇 개의 정책을 일컫는 말이었다.
저 ‘협동일관용기(컨테이너)’가 이를 상징했다.
워싱턴은 덩치 큰 고려 사회에서 필연적이라 생각했던 전통적 비효율성을 줄이고, 새롭게 표준화와 신공정을 도입해 능률을 끌어올리는 경제의 해결사를 자처했다.
경제 침체 속에서의 그러한 주장은 단순한 인권적 문제나 혹은 고립주의만을 자청하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확실히 두각을 나타내었으니, 다른 당도 머뭇거리다가 이를 따라 하려 들기도 했었다.
결국 원조 맛집인 워싱턴이 정권을 잡긴 했지만.
워싱턴이 대외적 성격상으론 경당에 어울린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더라도 결코 경당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그의 과감하고 전격적인 추진 능력에 있었다.
그는 불합리한 비효율을 끔찍이 싫어했다.
강철이나 기타 금속으로 만들어져 반복사용이 가능한 내구성을 지닌 협동일관용기는 선박이나 철도의 물류를 실어나를 때 압도적인 효율성을 자랑했다.
기존에 그저 항만의 배 근처에 짐 더미를 늘어놓고 하역하는 방식은 개품산적화물이라 불렀다. 당연히 비효율적이었고, 절도와 파손이 심심치 않게 있기도 했다. 기중기를 쓰긴 했지만, 인부가 나르는 비중도 컸기에 사람의 부상도 많았다.
남파주 열대 습지의 대개간과 범려철도는 지금 막 워싱턴이 주장한 것이고, 지금껏 고려라는 거대한 국가를 유지시켰던 것은 막대한 해상운송체계라 봐도 무방했다. 배와 항구는 제국의 유지에 필수적이었다.
그러니 워싱턴은 그 효율성을 재고하길 원했다.
중서성 의원 시절, 워싱턴은 북려의 매사추세츠 항구 현장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매사추세츠는 주도 테르샤로마에 뒤이어 진주의 두 번째 도시였고(바로 밑의 해군도시 마나하탄보다 컸다), 북려 중부와 오대호로 가는 곳의 중요 거점도시기도 했다.
그때는 한창 항구에 차(茶)가 많았다.
불교의 기풍이 큰 고려는 세계 최대의 차 수입국임과 동시에 세계 최대의 차 수출국이기도 했다. 최초의 고려 마약이 마라차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고려인들의 유별난 차 사랑은 유래가 깊었다.
녹차와 홍차뿐만 아니라 흑차로도 부를 수 있는 커피, 카카오와 쇼콜라 차 같은 것들은 이미 너무 대중화되어 길거리의 어떤 음식집에서도 주문하면 거의 대부분 나올 정도였다.
워싱턴이 기억하기로는, 그때 항구에 있던 그의 눈앞에서 하역하던 차들이 바다에 풍덩 빠진 일이 있었다. 그 수량은 적잖았다.
아까운 차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현장 속에서 항만 노동자들은 무덤덤히 일을 했다.
노동자들이 비통 속에서 울부짖는 것을 희망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막대한 양의 차들이 바닷속으로 굴러 들어갔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그들의 태도가 이상하여 워싱턴은 그 자리에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서 그 정도의 손실률은 어쩔 수 없다는 다소 무성의한 답변만을 받았다.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제국이 대단해도, 저렇게 술술 새어 나가는 분야가 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때 워싱턴은 군납비리를 제보한 뒤 갓 정계에 입문한 터라 정의감과 사명의식에 굉장히 투철한 상태였다.
그런 그가 해결책을 강구하다 아타나토스 물류회사 출신의 일개 회사원, 김흥덕 씨의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며 정책의 방향성을 결정한 것은 운명적인 일일 테다.
“저 모든 짐을 포장할 용기가 있으면 해결될 문제지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했다. 가능해 보였다.
고려의 제철 수준은 이미 놀라울 정도의 경지까지 올라와 있었다. 독보적인 수준의 강철 생산량을 자랑하는 최근의 제철소들은 오히려 경제 불황으로 강철이 안 팔려나가 끙끙대는 것이 더 심했을 것이다.
용기 자체의 단가는 저렴하진 않을 터다. 하지만 저런 용기는 부식을 방지하면 재사용이 가능해 큰 문제는 아니었다.
또한 무엇보다 개품산적화물을 운송할 때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었다. 기중기의 활약이 크게 늘어났고, 짐을 옮기다 사람이 다치는 것도 많이 줄어들었다.
군인 출신으로서 느끼는 일이었지만 고려 군대의 보급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안이기도 했다.
그러니 워싱턴은 중서성 의원 시절부터 물류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발이 땀나도록 뛰어다녔다.
당연히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 고려 항만 노동자들은 이를 악물고 반대했지만, 어떻게 위정자라는 자가 시대가 진보하는 방향과 정반대의 구시대적인 방면으로 조타륜을 쥐겠는가.
워싱턴은 단호한 입장을 취했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덕분에 고려의 물류비용은 크게 감소했으며, 대공황으로 비화되었을 수 있었던 경제위기 속에서도 상당한 호재요인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부두 노동자들은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었다. 이제 시중으로서 할 일은 그들의 일감을 어떻게 해서든 구해주는 것이었고.
보아라, 자신이 맞다는 것을 유구에서도 증명해주지 않았던가.
유구국 쇼온 왕과의 접견에서, 그는 한동안 쇼온 왕의 찬사를 듣기도 했다.
“물류 하역 효율이 무려 서른세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시중께서 중서성 의원 시절부터 제기하신 그 엄청난 정책들의 효용을 아국이 톡톡히 누리고 있어요. 실로 고맙소이다.”
지금 유구인들은 고려어를 잘했다. 국제어 시대에도 빠르게 적응하는 모양이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전하.”
“자 자, 여가 귀빈이 오신다는 것을 듣고 준비하라 닦달한 음식들입니다.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소국이라지만 워싱턴도 황제의 신하인데 왕의 술을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결국 숙취로 인해 워싱턴은 강제적인 휴식을 취해야 했다.
휴식 기간 동안 그는 현지 문화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고려와 교류 이후 류큐에서 압도적인 종교가 된 불교 사찰에 들르기도 하며 심신을 가다듬었다.
워싱턴은 모태신앙상 고려 성공회 신도였지만, 딱히 크게 열성적이지 않았고 시중으로서 다른 종교들에 대한 존중도 깊었다. 특히 그는 절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하기까지 했다.
그 덕인지 워싱턴은 류큐와 고려 불교계 모두에서 유명한 대사 한 분을 만나 뵙고 자신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때로는 과거에 대한 고찰이 현재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주기도 하지요.”
“…그렇습니까.”
고승께서도 딱히 제국 시중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주시지는 못하시는 모양이다.
알 듯 말 듯 묘한 미소를 지닌 대사에게 합장을 한 워싱턴은 그다음 날, 예정된 마긴다나오와 누산타라의 순방을 취소하고 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 * *
돌아갈 때도 4호기는 북태평양 횡단 방향을 타고 비행했다. 대곡도(마리아나 제도)와 방산도(웨이크섬), 하와이의 공군 비행장을 거쳐 미주에 도착하는 경로였다. 각 섬들의 위치는 4호기의 항속거리와 여유롭게 맞았다.
“가지가지 하는군.”
순방을 하느라 밀린 소식을 취합해보니 큰 사건이 일어난 모양이다.
시중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에 대한 불신임결의안이 제출되었다. 아직 중서성에서 여론을 수렴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수의 교당 의원들이 워싱턴에게 여러모로 실망한 모양이다.
정적의 숨통에 왜 칼날을 박아넣지 않느냐는 말에 설득이 된 것일까. 그리하여 자신이 정말 빨갱이처럼 보이게 된 것일까.
워싱턴은 근래의 정치가 너무 편협하고 극단주의적이 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래도 못마땅해하고만 있으면 안 되었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다.
경당은 여당 당수를 무너뜨리는 일이라지만, 권남도에 대한 지지를 절대로 표명하지 않을 것이 확실해 오히려 괜찮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귀당이다.
워싱턴의 활발한 개입주의(당장 이번 순방도 개입주의의 일환이었다)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던 귀당이 교당의 소수파와 연합하니 그 수가 상당했다.
“황상께서는?”
“결의안거부권을 행사하시진 않으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부담이 되시겠지.”
“그래도 은연중에 당사자 없이 이러한 일들을 채결하는 것이 썩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고까지 말씀하셨으니….”
약용이 말을 순화해서 했지, 해안은 대놓고 남자답지 못하고 비열한 술수라고 중진 의원들을 불러놓고 말을 했었다.
이런 중대한 일을 꾸미려면 당사자의 면전에 대놓고 하는 것이 제국정치의 근본이 아니냐는 옥음에 의원들의 행동도 조금은 가라앉은 상태긴 했다.
“그저 황공할 뿐이다.”
황실의 힘이 강력한 고려는 내각불신임결의나 중서성 해산에 대한 권리를 황제가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이 힘은 시대가 지날수록 약해졌다. 게다가 황제가 정치적으로 능수능란하지 않고 젊거나 경험이 없어 보인다면, 입법기관의 행동에 대해 제동을 거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해안은 영명하나 나이가 아직 젊었다. 국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으니 더더욱. 그저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전부일 테다.
워싱턴은 무릎을 쳤다. 그는 시중직에 딱히 미련도 없었다. 믿을지 안 믿을진 모르겠지만, 그는 언제든지 그냥 지방에 내려가 자신의 농장을 경영하며 여생을 보내도 무방했다.
그저 나라가 자신의 봉사를 필요로 하기에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의 신념이 옳다는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니까.
“고립주의로 빠져들면 안 된다. 그건 죽어도 안 돼. 세상이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기 일보 직전인데 대체 어떻게 하려고!”
워싱턴은 시중의 비행기 한구석에 동승해 있는 노인과 손녀를 바라보았다. 저들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남의 일이라고? 그것도 원수의 일이라고? 곧 아니게 될 것이다.
워싱턴은 자신이 ‘중화 혐오자’라고 불리는 걸 잘 알고 있지만 혐오할 대상을 혐오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을 억지로 외면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지.
‘이걸 어찌한다.’
워싱턴은 고민했다.
당장 자신이 뭘 어찌해야 하는가? 결의안이 제출되기 전에 막았어야 했다.
순방을 하자고 한 것이 정치적으로 큰 패착인 것인가? 하지만 이번에 들르지 않았다면 예맥한 3국의 상세한 정보를 얻지도 못했을 것이고, 조선과 옥저의 멍청한 짓거리는 도를 넘었을 테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정치라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워싱턴은 골치가 아파 그냥 잠을 청하기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철원에 도읍한 어떤 미친 땡중이 철퇴로 머리를 내리치는 악몽에 비명과 같은 신음을 흘리며 깨어났다.
“그래, 제국에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니었구나!”
[작가의 말]
마나하탄 : 맨해튼
매사추세츠 : 매사추세츠, 보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