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40화 (540/653)

540화 전생전훈(3)

* * *

― 그르르릉

저 멀리 강철 괴물이 보였다. 나보는 환호성을 질렀다.

“좋아! 아예 멍청이들은 아니군. 어차피 평원 전차전은 지금 고려할 때가 아니야. 이렇게 되면 오히려 우리는 다르가즈를 공격할 수도, 혹은 아예 비뇰을 역공할 수도 있어. 연방사관학교가 똑같이 전차로 맞대응하지 않는 이상 무궁무진하다고.”

“…….”

희준은 아연실색한 채로 입을 벌렸다.

지휘부 선배들이나 나보나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빠르게 진급하겠지. 그는 그렇게 체념하듯 중얼거렸다.

위장도색을 한 육중한 덩치의 차체가 움직이자, 생도들은 행여나 안전사고가 날까 몸을 피하면서도 동경과 선망의 빛을 내보였다.

이곳에 있는 육군 생도들은 대부분 전차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임관 이후 자대에 배치되어도 기갑부대가 아닌 이상 볼 일이 드문 전차들이 훈련장에 있으니 대단히 신기한 일이다.

이것들은 박물관에 있는 1, 2호 전차나 사관학교 시절 타 보았던 노후화된 3, 4호 전차가 아니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전차들은 일선에서 곧 개발될 7호와 8호 전차에게 밀려 후방으로 배치될 고려 주력의 5, 6호 전차 중 중형전차인 5호 전차였다.

경전차가 여러 가지 이유로 고려 내에서 인기를 잃고, 중형전차로 바뀌면서 고려군 내에서는 다목적의 중형전차와 대전차전을 상정한 중전차의 두 분류를 채택하며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다.

눈 뜨고 사방을 살펴보아도 고려와 제대로 된 전차전을 벌일 국가는 없었지만, 이미 고려 육군들은 대전쟁 이후 거의 대부분 미래 전차전을 학수고대하는 장성들로 바뀌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 장성들은 침실에도 집에 가면 멋들어진 전차 그림을 두어 폭 전시해 놓아 아내에게 한 소리를 들을 양반들이기도 했다.

5호 전차, ‘스라소니’는 언젠가는 아직 이름만 알려진 7호 전차 ‘흑표’에 밀려 생도들이 연습용으로 쓰는 단계까지 밀려나고 있었지만, 현 고려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전차였던 만큼 몹시 훌륭한 신뢰성과 편의성, 복합적인 작전수행능력이 모두 고루 뛰어났다. 전차를 만드는 종동사의 협력사가 주항과 허먼―크리스티안슨과 같은 유명한 자동차 회사임을 고려해볼 때, 이 전차들의 변속기, 현가장치, 추진기관의 신뢰성과 능력은 아직도 3, 4호 전차 수준에 머물고 있는 다른 나라들이 감히 따라 하지 못하는 단계였다.

5호 전차의 방호력과 대전차전 능력도 뛰어났다. 물론 동 세대 6호 전차인 중전차 멧돼지에 밀렸지만, 중전차의 특성상 둘은 상호 보완적이었다.

보병을 상대로 전차는 무소불위의 입지를 지녔다.

괜히 나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 개의 기갑소대만 있더라도 적 보병의 공격에는 무적이었다. 물론 현실에는 대전차포와 같은 무기도 있고, 기타 여러 가지 보병이 어찌 비벼볼 만한 수단이 존재하긴 했지만, 아무리 실전과 같은 훈련상황이라도 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이는 죽은 나디르 콜리도 이해할 것이다.

정말로 전차소대의 활약은 대단했다. 선배들은 이곳까지 자신들을 호출한 후배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연방사관학교 생도들의 지원군을 박살 냈다. 물론 대포를 직접 쏘지는 않았지만, 마치 양 떼를 몰아가듯 적 보병을 포위하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방어전에서 패배하고 목숨표를 하나 제출한 뒤 이를 갈고 증원군을 모아 다시 이곳에 와서 도시 탈환을 노리던 연방사관학교 일학년 보병 생도들은 설마 전차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전차기동 몇 번에 모두 손을 들고 줄줄이 본진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당연히 연방사관학교 지휘부에게도 들어갔다.

“흐음….”

모든 학교의 문화는 다르다지만, 공통적으로 선배는 후배보다 조금 더 잘났다. 일 년의 짬밥은 그 정도로 무시할 수 없었다. 장교로 임관하면 많이 달라지지만, 사관학교 내에서는 기수가 상당히 엄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외는 있기 마련. 사관학교 내에서도 소위 ‘먹혀버린’ 기수가 드물었지만 존재했다. 그것은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한 기수가 유난히 무능하거나, 그 밑의 기수가 유난히 뛰어나거나.

연방사관학교의 현 3, 4학년들은 명실공히 후자였다.

교칙상 여단장 생도는 4학년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연방사관학교의 지휘부에서도 4학년이 명목상의 우두머리에 있었다.

하지만 여단장 생도는 완전히 참모부를 장악한 3학년 후배들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뒷방 늙은이마냥 회의장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 했다.

그만큼 연방사관학교의 현 3학년 생도들은 대단히 빼어난 능력들을 자랑했다.

이들에게는 지금 국제사관학교와의 전투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건 어차피 이기고 들어가야 할 싸움이었다. 저 촌놈들에게 질 수가 있겠는가. 자랑스러운 연방사관학교 237기가?

일부 생도들은 현재 작전 도중에 다음번 모의전인 제국사관학교와의 전투 계획을 떠들어대기도 했다.

실제로 훈련이 시작된 지 사흘 동안 그들은 줄곧 우세를 점한 상태였다. 이렇게 된 이상, 빠르게 밀고 체력을 회복하고 일정상 불리한 제국사관학교를 이길 준비를 해놓는 것이 좋았다. 모의전 상대가 없는 제국사관학교는 지금 전갈대대와 대침투 훈련 중이었다.

그러나 이 연방사관학교 생도들은 방돔이 공격당했다는 소식에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불침(不侵) 거점인 타브릭에 짱박혀 있지 않은 이들은 아예 전방에 속하는 다르가즈에 지휘부를 꾸렸다. 위험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소식이 빨랐다. 정보수집 속도 자체가 무계에 짱박혀 주고받는 적보다 적어도 3할은 빠를 것이었다.

그러나 방돔이 공격당했다는 말은 그들 지휘부가 노출되었다는 말과 동일했다. 3학년들은 빠르게 긴장감을 되찾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장우!”

허수아비 여단장 생도를 대신하여 사실상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작전참모 안장우는 지휘부 문짝을 박차며 들어온 동기들을 바라보았다.

한창 전차전을 준비하고 있던 조아킴 뮈라는 성질이 잔뜩 난 상태였다.

“베시에르 그놈에게 내 기갑중대 지휘권을 주었다고? 나는?”

“너는 방돔을 탈환해. 끌고 온 전차 소대 하나로.”

“그건 내가 갈 필요까진 없잖아!”

“명령이다. 뮈라.”

장우와 뮈라가 눈싸움을 벌이자, 다른 동기 하나가 튀어나와 그들을 말렸다. 재능 있는 생도들은 제각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 욕망의 대립이 어찌나 험악한지 매번 이렇게 갈등을 일으키곤 했다. 이 재능 있는 생도들을 모두 엮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큰 재능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여기 있는 사람 중 가장 우수한 생도인 장우가 이들을 총괄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장우마저도 뮈라 같은 드센 성격의 생도들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뮈라는 몇 마디 더 고함을 치다, 결국 같은 동기이자 보급참모인 모르티에의 만류에 밖으로 나와 진정했다.

“뮈라, 란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야. 란이랑 베시에르가 너와 란만큼이나 사이 좋지 않은 거 잘 알잖아.”

“그러니 그 새끼는 내가 베시에르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겠지. 아주 객관적으로다가 말이야.”

뮈라는 땅에 침을 뱉었다.

모르티에는 그를 더 달랬다.

“베시에르는 쉬셰랑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 그래. 너도 알잖아. 인선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는 걸.”

“알았어. 어울려준다고. 괜찮아, 모르티에. 그 건방진 국제사관학교 새끼들이 대체 어떻게 허를 찌를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해결해주지. 얘들아, 시동 걸어!”

“예! 선배님!”

그는 전차에 올랐다.

“무적 장다름이 간다. 이 새끼들아.”

분노를 지우고 금세 씩 웃어 보인 뮈라가 전차를 몰기 시작했다.

“선배님, 뚜껑 닫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닥치고 그냥 몰아. 건방지다, 정규야? 먼지 나게 맞아볼래?”

“아… 아닙니다.”

운전하는 2학년이 투덜댔다. 저러다 포탄을 머리에 맞으면 골로 가는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실전이라면 어차피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라 저래도 뭐 이해는 가겠지만, 지금 이건 어디까지나 훈련. 선배의 과도한 승부욕은 전혀 공감 가지 않았다.

이 괴팍한 선배가 죽는 것은 죽는 건데, 자기까지 영창, 혹은 퇴학하지 않겠는가? 후배는 속으로 계속 투덜거렸다.

전차가 보병에게 직접 포격하는 것이 금지된 것과 별개로, 전차와 전차전에서는 연습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포탄 대신 염료가 든 연습탄은 죽었다 깨어나도 전차의 장갑에 손상을 입히진 못하고 겉에 화려한 붉은 색의 표식을 남겼지만, 구경이 구경이다 보니 직격하면 수박 정도는 능히 깨트릴 수 있었다.

사람 머리도 비슷하게 터져나갈 것이다. 하지만 조아킴 뮈라는 굳이 전차 뚜껑을 열고 사방을 바라보며 지휘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가자!”

저 멀리 익숙한 5호 전차들이 보였다. 군청색인 그들의 도색과는 달리 짙은 녹색의 도색이 분명했다. 4 대 4의 전차전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경진이, 마르탱, 우측으로 우회해!”

뮈라가 고함을 질렀다. 명령이 멈추는 적이 없었다.

“경사장갑 위에서 직격당하면 연습탄도 파괴판정이라 했다. 언덕 내려가지 말고 돌아서 가!”

뮈라의 기갑 운용은 국제사관학교 생도보다 두 수는 앞서 있었다. 원래부터 연방사관학교가 프랑스 출신들이 창설한 중기병대 장다름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기병대와 기갑 전통이 몹시 강한 곳이다. 게다가 뮈라는 자동차 정비소집 아들이기도 했다. 기계와 몹시 친한 그는 전차가 어떻게 구동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베시에르를 뺀다면.

훈련 시 연습탄은 적중당한 부위를 기준으로 파괴판정을 내렸다. 뒤에 박히면 파괴였고, 장갑이 두꺼운 부위에 박히면 도탄이나 방호 판정을 받았다. 그러니 전차들은 서로 최대한 전면부 장갑을 마주 보며 싸우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이런 전투에서는 처음 기습적 공세를 취한 쪽이 주도권을 잡았고, 전차를 절반씩 나누어 놓은 뮈라는 적 전차 네 대의 측면을 선공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무난히 승리했다. 추진기관 근처에 연습탄이 박히자 전차들이 알아서 동작을 정지했다. 안에 앉아 있는 생도들은 잔뜩 투덜거리고 있겠지만 이런 연습에서 그들은 무조건적으로 정직해야 했다. 죽었는데도 죽지 않았다고 하거나, 파괴되었는데도 파괴되지 않았다 한다면 큰 질책과 벌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군 생활에서도 정직과 신뢰의 미덕에 항상 의문부호가 달리게 되는 셈이었다.

나보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4 대 4. 숫자가 비등하다고 해서 실력이 비등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단 한 대도 못 부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마지막 전차가 최후의 저항을 하고자 모형 도시로 후진하여 도망가는 것을 본 나보가 문득 기상천외한 생각을 떠올렸다.

“수류탄 남는 거!”

“왜?”

“날 따라와!”

그는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미친놈, 생도들이 욕을 하면서도 그의 뒤를 따랐다.

지금 한번 승리감을 맛본 그들은 모든 훈련장의 선배들과 적군 생도들이 자신들의 위대한 방돔 강습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도취된 상태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연습 수류탄을 들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기다렸다. 그리고는 첫 번째 전차가 지나가기가 무섭게 과감하게 뛰쳐나가 나머지 전차 위에 올라탔다.

“뭐 이런 미친 새끼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뮈라가 고함을 질렀다. 그가 전차에서 소총을 집어 올리기 위해 고개를 숙일 때, 나보와 국제사관학교 1학년 생도들은 이미 후방의 두 전차들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연습용 수류탄을 집어 던졌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전차는 뚜껑이 안에서 잠겨 있었다.

마지막 전차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다, 포구를 나보를 향해 조준했다. 나보도 그제서야 손을 들어 올렸지만, 이미 전차 두 대는 파괴판정이 났을 것이다. 선두전차에 탄 뮈라가 괜스레 항복한 나보의 엉덩이에 소총탄을 발사했다. 앗 따거, 나보가 등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이 미친 새끼, 전차가 기동하는데 함부로 튀어나와?”

그는 후방 전차장에게 남은 적의 전차의 공격을 명하고는 훌쩍 뛰어내려 나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리다시피 당겼다.

“위험하게 뭐 하는 짓이냐? 규정도 안 읽었냐? 정말 뒤지고 싶어 작정했어? 전차에 깔려 내장 다 튀어나오고 싶은 거야? 미쳤냐?”

어차피 죽음 판정을 받아들인 터라 나보는 뮈라가 멱살을 잡고 흔들면 흔드는 대로 따라갔다.

“전차 두 대 파괴되었습니다. 아시죠?”

“이… 이 짐승 같은 새끼! 너 지금 얼마나 위험한 짓을 했는지 아냐?”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니까.”

나보는 툭툭 그의 손을 쳤다. 내려달라. 뮈라는 그의 태연한 모습에 아연실색했다. 자신이 아무리 용맹하고 과감하며, 훗날 고려군 최고의 맹장이 되리라 자부하는 사람이라 해도, 정말로 광기에 찬 사람의 앞에서는 그의 성정도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승리를 위해선, 우리는 불가능을 가능케 해야 합니다.”

그것이 대적할 수 없을 것 같은 강철 괴물에 맞서 싸우는 보병의 입장이더라도.

완전히 무력한 것은 없다. 실전에서는 다양한 변수가 나온다. 그는 그 변수를 창조해낸 것뿐이다.

먼 옛날 나디르가 세웠던 이 훈련장은 그저 생도들의 소꿉장난 놀이터가 아니었다.

나폴레오네 디 부오나파르테는 지금 이 순간, 나디르 샤의 입장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하는 모든 훈련은 정말로 실전을 가정해야 했다. 설령 조금의 인명사고가 날 수 있을지언정, 그 모든 경험과 자료가 훗날 고려군의 승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장병들의 목숨은 물론이고, 고려 국민과 전 세계 사람들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보는 필연적인 위험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

월요일 연재는 휴재입니다.

안장우의 프랑스식 이름은 장 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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