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화 검은머리 고려군 생도들
지나와 소비에트에서 폭풍이 형성되고 있던 개천 516년(CE 1791).
고려의 한 젊은 청년의 사춘기 가슴 속에서도 폭풍이 자랐다.
청년, 합상혁은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탓에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했다.
가정의 전권을 가지고 있는 그의 아버지는 상혁의 편의를 나름대로 봐주었다. 그의 어머니 안토니아가 항상 말하듯, 그의 배다른 형제들에 비해 상혁은 굉장히 많은 이쁨과 관심을 받는 중이라 했다. 어머니의 눈물 나는 노력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황실이랑 외국 왕족, 거대 기업 총수들이랑 비교하면 어쩌자구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비교 대상도 좀 그랬다. 현존하는 자신의 형은 이라크 술탄이다. 이제는 나이가 많아 왕세자 조카가 섭정을 하고 있었지만 예전 나이 어릴 적에 만났을 땐 이라크에 한번 놀러 오라고도 했을 정도로 친밀했다.
그 말고도 친척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고려 황실, 북려 왕가들, 기업가들, 금융인들.
이런 범상치 않은 가족 내력은 자꾸만 상혁을 괴롭혔다.
가족 내력뿐만 아니라 생활 환경도 그랬다. 어린 상혁은 유년기를 육지가 아닌 거대한 함선에서 군인과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자란 것도 모자라서 이후에도 여러 번 학교를 바꾸어야 했고 이사도 다녀야 했다.
투덜거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긴 했지만, 아버지의 정체는 영원히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호적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는 그저 고려 내의 실체 없는 신분, 아버지의 수많은 가명 중 하나일 뿐이었다. 진실된 것은 어머니밖에 없었다.
그런 고로 성씨가 어머니의 성을 따라 합씨인 것도 뭔가 그랬다.
질풍노도의 나이가 되니, 모든 것이 다 불만스러웠고 화가 났다.
심지어 아버지의 이쁨을 독차지하는 흰긴수염고래한테도 짜증을 냈다. 물론 상혁도 체력이 좋고 신체가 건강하며 수영을 워낙 잘해 심청이와 잘 어울리긴 했지만, 그래도 동물은 동물이잖은가. 자신은 사람이고.
‘그래 내 인생은 내가 쟁취하는 거야.’
태조와 인류 황제, 인간신의 아들로서 멍청하게 타성적으로 살 순 없다.
영웅의 자식도 영웅이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상혁은 예전부터 사관학교에 뜻을 두고 있었다. 멋있는 장교, 군인이 되는 것은 그의 꿈과도 같았다. 해군이나 육군, 공군. 어느 쪽도 상관없었다. 셋 모두 좋았다. 전차와 전투기, 전함. 모두 사내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들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사관학교라면 질색을 하셨다. 어머니는 예전부터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직업을 절대 선택하지 말라 누누이 말씀하셨다.
본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 본능이라 상혁의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고야 말았지만.
어머니의 걱정은 노파심에 불과했다. 고려는 강대하고 위대한 나라였으며, 세상의 평화를 책임지는 ‘곤여방위대’였다. 옛날처럼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가 있겠는가. 사람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청소년기 들어 경제위기인지 뭔지가 닥쳐왔지만 그는 어린 나이라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체감하지 못했다. 그럴 만한 환경에서 성장하지도 않았고.
어쨌든 상혁은 결단을 내렸고, 개천 516년에 마침내 그 뜻을 실행에 옮겼다.
아마 어머니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실 수도 있겠지만, 사나이가 어찌 뜻하고자 하는 바를 위해 그런 것도 감수하지 못할까.
어머니의 심정은 아버지가 잘 다스려 주실 것이고, 또한 자식으로서의 효도는 나중에 번듯한 사내가 되어서 해도 되었다.
물론 상혁은 일단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눈동자들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했다.
이런 경우에는 오직 정공법만이 유효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과 동생들이 포함된 큰 가족을 관리하는 존재부터 필사적으로 설득해야 했다.
상혁의 가문엔 스스로를 집사장 혹은 시녀장으로 칭하는 여인이 있었다.
물론 상혁의 가문 특성상, 이 아주머니는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범한 중년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정체는 무시무시한 사람이다. 주제를 모르는 도둑이 청해 저택에 침입한다면, 아마 십 분도 안 돼서 모두 허파에 바람구멍이 난 채로 싸늘하게 식어갈지도 몰랐다. 상혁도 대단히 뛰어난 체력과 근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살기를 드러낸 시녀장을 이길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시녀장은 거느리는 사람들만 해도 엄청나게 많았다. 거의 백 명이 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녀들도 모두 범상치 않았다.
그런 고로, 자신의 가출 아닌 가출은 십 리를 못 가서 끝날 것이다. 잡혀서 어머니께 볼기짝을 맞을 수도 있을 터.
그래서 정공법을 택한 그는 시녀장을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도련님, 이러시면 어째요.”
“이모… 이모가 엄마한테는 잘 말해줘. 응? 나도 꿈이라는 것이 있잖아. 내가 일탈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 고려 건아로서 나라에 복무하겠다는 거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아버지는 찬성하실걸?”
“하지만 마님께서….”
“엄마는 나를 너무 아껴. 치마폭에 감싸려 그래. 나도 내 몫을 할 수 있는 사내라고…!”
상혁의 선택은 주효했다.
정공법은 보통 이치가 정도에 맞기에 대의명분이라는 큰 우군의 힘을 빌릴 수 있었다.
제아무리 고려의 무시무시한 정보총국 여의국 소속, 아버지 직속의 11사도들 중 하나라 하더라도 설득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한 사이라면 더더욱.
자신의 신념과 장래, 포부와 야망, 온갖 말로 명분을 정당화시키자, 그 무서운 10사도도 결국에는 허락 아닌 허락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 자란 새는 부모의 둥지를 떠나가기 마련이니까, 이것이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무탈하세요. 도련님. 다치시지 말구요.”
그렇게 시녀장은 허락을 내렸다. 합상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재빨리 짐을 챙겼다.
[소자는 꼭 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달랑 한 줄이 적힌 편지를 어머니 화장대에 올려놓은 불타는 효자는 곧바로 파남행 배에 몸을 실었다.
* * *
중려.
파남.
항구에 도착하자, 사방에 자신과 비슷한 까까머리의 청년들이 많이 보였다.
짧은 머리가 유행하는 지금이라도 이렇게 머리를 짧게 깎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군 입대나 사관학교 입학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터.
그리고 굳이 일반적인 입대를 하려고 파남까지 오는 경우는 없었으니 아마 이들은 모두 국제사관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상혁의 경쟁자들일 것이다.
고려와 세계 경제 침체가 대침체라고 불리울 정도로 길어지면서 고려 내의 노동시장의 상황도 많이 변했다.
공장들이 문을 닫고 폐업하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보다 더 안정적인 직장을 원했고, 공직이나 군무직에 지원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전통적으로 고려는 군인에 대한 예우가 굉장히 좋았다.
또한 많은 위인을 배출했기에 사람들이 가진 동경심도 높았다.
장군과 제독, 전투기 조종사. 이런 단어에 단 한 번이라도 설레지 않았던 자들은 고려 건아가 아니었다. 집 안에 있는 남자아이 장난감들 중엔 전함이 꼭 한두 척은 껴 있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사관학교와 군대의 경쟁률은 날이 갈수록 힘들어졌다.
[국제사관학교행 승합차 대기 장소]
사관학교 지원자 무리들은 파남항 한편에 있는 큰 팻말로 향하고 있었다. 상혁도 서둘러 그들 뒤를 따랐다.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 국제사관학교의 광고 문구와 팔짱을 끼고 씩 웃고 있는 고려표범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지원자가 하도 많으니 항구에 이렇게 대기 장소를 만들고 승합차들을 보내는 모양이다.
심지어 승합차도 금방 왔다.
고려의 대중교통이라 함은 장거리의 기차와 선박, 중거리의 승합차, 도심 내의 지하철과 노면전차, 이렇게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말하길 나중에는 여객용 비행기도 떠다닐 거라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청해가 지하철을 깐 뒤, 비슷한 대도시들에도 지하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남은 아직 그 정도로 크지 않았는지 딱히 도입이 논의된 적은 없나 보다. 대신 승합차들이 많이 보였다.
“이번 연도에는 경쟁률이 몇 대 몇이려나.”
“설마 세 자릿수가 되진 않겠지?”
“작년엔 79대 1이었잖아. 올해는 더 늘어날 거 같다고 그러던데.”
승합차에 탄 채로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를 귀 너머로 듣던 합상혁은 깜빡 졸다가 승합차가 멈춰 서는 것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이 무더운 땅의 열대우림 일부를 잘라 내어 만든 거대한 연병장과, 붉은 벽돌로 된 건물들을 마주했다.
고려의 세 사관학교 중 가장 최근에 지어진 곳, 국제사관학교다.
정통성도, 배출한 위인들도 아직 별로 없는 터라 명성은 남려 제국사관학교와 앙주 연방사관학교에 밀렸지만 그렇기에 합격 난이도가 셋 중에서 가장 낮았다.
물론 경쟁률은 어찌 보면 가장 치열하기도 했다.
― 지금 오신 생도 지원자 여러분들은 이 줄에 서 주시기 바랍니다. 곧바로 황열 예방접종을 맞으실 겁니다.
안내자가 목소리를 높이자 사람들은 우르르 가건물 대기열에 섰다.
열대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겐 황열 예방접종은 이미 필수였다.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도 대체로 일평생 파상풍과 천연두를 포함한 몇 가지의 예방접종을 맞아봤기에 그렇게 이상하거나 두려운 일도 아니었다.
몇 분이 지난 뒤, 유리 주사기에 찔린 상처를 주정솜으로 문지르며 가건물에서 나온 상혁은 가건물 뒤쪽의 연병장을 바라보았다.
이 넓은 연병장이 가득 들어차도록 군용 천막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지원자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서 군수물자를 전부 끌어다 쓴 모양, 천막의 수량은 참으로 많았다.
상혁은 자신이 받은 나무 목패를 바라보았다. 사―36번 천막에 들어가 있으면 될 것이다.
‘일반 시험 때까지는 삼 일 더 기다려야 한다지.’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천막을 들추자, 그 안에는 철제 틀과 간이침대들이 있었다. 이 작은 천막 안에 네 명이 숙식하는 모양이다.
네 차례의 시험을 거치고 나면 탈락할 사람들은 탈락해 조금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던데, 그게 딱히 위안이 되진 않았다.
네 자리 중 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상혁은 한 침대를 점유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안녕.”
보통 고려 사회에서는 나이를 기준으로 서열을 정하곤 했다.
물론 유교적 기풍이 거의 없었기에 엄격하지도 않았고, 어디까지나 우대가 아닌 존중의 의미에 불과했다.
하지만 적어도 군대 내에선 나이보다는 기수와 계급이 우선이다. 존중조차도 없었다. 이는 군 특성상 너무나 당연했다.
따라서 생도 지원자들도 동기라면 나이 차이에 관계없이 모두를 친우로 대해야 했다. 이는 권유가 아니라 강제였다.
형님 아우 이런 것은 애초에 논의할 필요가 없었고 모두가 말을 편하게 해야 했다.
“이름이 뭐야?”
“합상혁. 상혁이라 불러줘. 너는?”
덩치 작은 청년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나폴레오네 디 부오나파르테.”
“이름이 특이하네. 어디 출신이야?”
대충 짐을 올려놓은 상혁은 침대에 주저앉으며 물었다. 독특해 보이는 친구다.
나이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 검은 머리 청년은 꽤 동안인 것처럼 보였다. 유럽인이 아무리 동아시아인들보다 약간 더 노화가 빠르게 느껴진다고 해도, 아닌 사람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동안의 대명사와 같은 자신의 어머니가 그랬다. 아버지는… 동안이라기보다는 그냥 이상한 존재였다.
“고려 태생이 아니야. 이탈리아에서 왔어.”
“그렇구만. 혹시 별칭 같은 것은 있어? 너무 길잖아. 이름 다 부르면 숨넘어가겠다.”
“그럼 그냥 나보라 불러줘.”
* * *
아무래도 연고 없는 지역에서 한 천막을 쓰면 자연스럽게 친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적 사항을 알게 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천막에 들어와 쉬고 있던 나보는 상혁보다 무려 다섯 살이 많았다.
의외였다.
물론 사관학교 입학 가능한 나이의 폭은 넓었다.
16세부터 25세까지의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면 모두 가능했다.
열여섯에 입학한 사람이랑 스물다섯에 입학한 사람은 아홉 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셈이다.
하지만 고려인이 의무교육과정인 중학교를 나오면 대체로 15~16살이 되었고, 그 이후 사관학교로 진로를 잡고 준비하면 보통 상혁처럼 열일곱 살 전후로 입학(혹은 지원)하기 마련이었다. 열일곱에 입학시험에 떨어져 다시 재시험을 치른다 해도, 열아홉에서 스물 정도에는 대부분 붙곤 했다. 스무 살 중반에 입학하면 아무래도 많이 늦었다.
하지만 나보는 벌써 스물둘이었다. 스물둘도 아주 젊은 나이었지만, 그럼에도 또래에 비해선 약간은 늦었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이민자로서 적응을 해야 했거든.”
망나니 같은 아버지. 카를로 디 부오나파르테의 손에서 탈출한 나보 형제들은 무사히 고려로 오는 것에 성공했다.
이들을 도와준 구승표 참령은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호의를 베풀었다. 이민 추천서를 써주고 정착지원금에 작고 아늑한 집까지. 맨손으로 건너온 이들도 곧 괜찮은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처음, 나보는 딱히 군대에 뜻을 두고 있지 않았다.
물론 예전부터 국제사관학교를 유심히 바라보았던 것은 사실이나, 일단 이 새로운 조국과 나라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나이가 나이였던 터라 의무교육과정도 뒤늦게 밟아야 했다.
게다가 그의 형, 장남 주세페는 이곳에서도 공부를 하고 싶어 했기에 차남이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돌볼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구승표 참령은 끝까지 나폴레오네가 사관학교에 입학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게 했다. 나폴레오네도 결국 구 정령(그사이에 두 계급 진급했다)의 지극정성에 감동해 뒤늦게라도 스무 살에 사관학교에 지원했고,
두 번이나 떨어져 구승표 정령의 기대를 산산이 조각냈다.
“그래서 나는 재재시험을 보는 셈이지.”
골 때리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구승표 정령이 여의국으로서 엄청난 권한이 있다고 해도 입시 결과에 손대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였다.
결과를 조작해 엄한 이를 떨어뜨리면, 떨어진 이는 무슨 죄인가. 떨어진 이가 위대한 장군이나 제독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기회를 충분히 주었으니, 잡는 것은 자신의 능력대로 해야만 했다.
앞에서는 나폴레오네를 위로한 구승표 정령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자기 아들의 입시 결과를 듣는 사람마냥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물론 나폴레오네가 이런 뒷사정을 알 수는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이 다른 고려인들보다 신체적으로 부족한 탓에 체력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아 그러했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려인들은 나보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심지어 여기 있는 덩치 큰 상혁도 나이가 다섯 살 어린 주제에 벌써 머리 하나 반은 더 컸으니까.
나보는 일반시험과 적성검사는 대단히 훌륭한 성적을 보여주었지만, 체력시험과 면접에서는 평균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경쟁률을 감안해 볼 때, 무조건 네 시험에서 평균 이상을 해주어야 붙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
상혁도 어쩐지 자신이 없어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은 위대한 용의 친아들이긴 했지만 아버지처럼 만능은 아니었다.
호부 밑에 견자 있다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용부 밑에 토룡자가 있을 수도 있었고.
게다가 이렇게 호기롭게 집을 박차고 나왔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실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상혁은 어릴 적부터 상민과 함께 운동기구를 다루고 바닷가에선 고래와 수영하던 소년이었다.
아버지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미 육체는 운동선수급이었다. 그런 육체적 핏줄도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체력시험은 정말로 수석까지 차지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것은 좀 그랬다. 상혁은 특수한 집안에서 자란 탓에 공부도 그렇게 열심히 하지 못했다.
물론 어머니는 이 말을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들놈의 변명이라고 여겼지만, 그건 순전히 어머니의 관점일 뿐이다.
단 한 번도 나쁜 환경에서 자란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적당한 또래의 영향을 받으며 포근하고 아늑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니.
입학시험에는 시사와 상식, 중학교까지의 학업성과를 보는 1차 일반시험과 2차 체력시험, 3차 적성검사와 4차 면접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이들 네 가지가 고루 중요했다.
“난 체력시험이랑 면접은 자신 있는데… 일반시험이랑 적성검사는 모르겠어.”
그러니 상혁은 제안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 가르쳐주고 도와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