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화 준동(4)
― 쪼르륵
향긋한 고량주의 냄새가 퍼졌다.
황전겸은 다른 이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술을 직접 따랐다.
그는 자신의 신변 보호에 철저했다. 지금껏 굉장히 많은 중국의 군주들, 지도자들이 암수에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는 자신도 그런 운명에 처하길 원하지 않았다.
관저의 고용인들과 요리사들은 전부 신분이 엄선된 자였다. 게다가 전겸은 식사를 하기에 앞서 기미상궁과도 같은 사람들을 몇 명이나 두었고, 음식도 넉넉히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의 호위는 오직 충직한 선봉대들이 맡았다. 이러니 대총통은 그를 노리는 수많은 암수에도 불구하고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인민들은 참으로 멍청하지. 야속하기도 해.”
그는 튀긴 돼지고기 한 점을 집어 들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내전은 끝난 것이 아니야. 거의 끝났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또 만약 내전이 끝났다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할 것이 참으로 많아. 이렇게 서로 생산성 없는 다툼을 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야.”
전겸은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그 앞에서 마주 식사를 하는 낭화신도 딱히 대답하지 않고 젓가락으로 해삼을 집어 들었다.
“이럴 때, 올바른 하나의 지도자 아래에서 빠르고 훌륭하게 성장해 나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전겸은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고는 차를 마셨다.
“보게, 우리 국가는 이제 좋은 기회를 잡았어. 자본주의 체제 아래 있던 많은 나라가 제풀에 지쳐 헥헥거리는 와중에도 우리에겐 큰 내홍이 없었지. 물론 내전이라는 참혹한 분쟁이 계속 이어져 내려왔지만,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된다면 우리는 이제 다른 이들이 멈추어 선 이 순간부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네.”
그렇다면 어쩌면 몇십 년 뒤에는 중화민국이 도이치와 조선은 능가할 수 있는 경제 대국이 될지도 모른다고, 황전겸은 그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저 장광형 일파들은 그런 꿈과 희망도 가지지 못한 놈들이야. 그들은 말로만 인민을 위한답시고 설치고, 민주니 의회니 뭐니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지. 서로 의회에서 싸움박질만 하는 중우정치는 경제 개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그들은 대총통의 권한을 조금씩 옥죄어 오고 있었다. 또한 황전겸의 종신대총통 야욕에 사사건건 간섭했다.
황전겸은 이러한 짓거리를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의 항구불변한 권력을 위해서라도.
석암이 죽은 것도, 그 뒤를 이어 자신이 이 중원의 구세주가 된 것도 모두 하늘의 명에 따른 일이다. 옛 천자들이 그러했듯, 황전겸도 기꺼이 그 책무와 권리를 받아들 요량이었다.
단지 이제 천자의 명칭이 대총통으로 바뀐 것, 그뿐이다.
― 쾅
그는 갑자기 분노한 듯 탁상을 내리쳤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어.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낭화신이 그렇게 대답했다.
황전겸은 잘생긴 화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묘하게 믿음이 갔다.
“어쩔 수 없지. 이 중화민국이라는 거대한 배를 움직이기 위해선, 무게를 줄이고 쓸모없는 것들을 쳐내야 할 때야.”
“명을 내려주십시오.”
“작전을 세워 보거라. 곧 석암 선생의 기일이 다가오니 많은 이들이 경사 석암릉에 참배하러 올 것이야. 그때를 전후로 일을 벌이는 것이 좋을 테다.”
전겸은 석암릉 근처에서 국공내전의 도화선이 당겨졌다는 것을 아주 잘 기억했다. 그리고 그는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도화선을 당기고자 했다. 이번에도 내부 단속을 위해서.
전겸은 식사를 마무리했다. 커피와 탕후루가 나왔다. 값비싼 설탕의 가격도 이젠 옛말이다. 이제는 사탕무나 고과당 옥수수 등에서 설탕을 만들기 시작했고, 다른 감미료들도 성장함에 따라 설탕도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전겸은 여전히 어릴 적의 입맛 취향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네, 진균 그 친구와는 사이가 돈독한가?”
커피를 마시며 전겸이 흘러 지나가듯 그렇게 물었다.
물론 평온한 어조와는 달리 속내에 담긴 뜻은 중요했다. 일반적인 물음이 아니었다.
전겸의 물음에 화신이 즉답했다.
“동향 사람입니다. 뜻이 맞아 지금껏 같이 걸어왔습니다.”
전겸이 그것을 모르겠는가.
그는 이미 화신과 진균을 등용하기 전부터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알았다.
그리고 순의 군대에 복무했었던 그들에게 직접 사면을 내려주기도 했었다.
물론 이들이 순이 아니라 공산당이었다면, 사면 대신 총알을 선사해주었을 것이지만.
전겸은 지금껏 두 청년을 꽤 유용하게 사용했다.
정치적, 무력적으로.
특히나 화신은 나중에 하북을 정리한 후 순을 어떻게 해보려 할 때, 순의 군부에 닿는 끈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진균도 대단히 많은 일을 해 주었다. 전겸은 그를 통해 여론을 주물럭거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진균은 느낌이 좀 이상했다. 다른 이들과 무언가 살짝 달랐다.
전겸이 허투루 대총통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종신대총통, 항구불변한 독재권력을 꿈꾸는 이는 항상 다른 2인자, 경쟁자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진균은 젊었음에도 너무 대단했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가 이끄는 중화당은 국민당 내에서 상당히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나 더 찝찝한 것은, 전겸의 측근들도 그의 논리에 동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끔찍할 정도의 현란한 입담을 지닌 자다.
그가 한 번 선동에 나서면 수천 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전겸이 보기에 그는 류용도, 기윤도 당해낼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높았다.
그야말로 사람의 감정을 지배할 수 있었다.
가극단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다는 그의 몸짓도 그랬다.
아마 그런 선동적 재능에서는 장각과 관수경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물론 진균의 중화당은 지금도 전겸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니 전겸이 계속 종신집권을 위한 무리수를 두고 있음에도 국민당 내에서 세력을 전혀 잃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전겸은 습진균이 자신의 아래에서 끝까지 만족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젊은 놈이니, 내 시대가 끝난 뒤에 해 먹으라고 하고 싶지만.’
하지만 그놈이라면 그런 말을 들어 먹을 놈이 아니었다.
습진균은 적당히 권력이나 재물, 여자에 취한 자가 아니었다. 그는 신념에 미친 놈이었다. 중화민족의 회복과 구원을 떠드는 종교쟁이와도 같았다.
전겸은 전자의 부류보다 후자의 부류가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화신은 전겸의 불안과 의심을 눈치챘다. 그래서 방금 대답에서 끝내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어떤 것이 권력자를 어떻게 불안하게 하는지 그는 이제 많이 깨달은 상태였다.
“허나 각하, 사적 친분이 각하의 호위에 방해가 된다면 끝맺겠습니다.”
화신은 자신의 충성이 오직 황전겸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래? …그렇다 이거지?”
황전겸은 그에게 술 한 잔을 내밀었다. 화신은 공손하게 받았다.
“진균 그 친구, 요즘 많이 이상해. 거사에 앞서서 자네가 잘 처리해 봐.”
중화당의 수장을 바꾸어야 할 차례였다. 전겸은 자신을 위한 사당(私黨)이 진균의 사당으로 변하기 전에 제지해야 한다고 느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겸이 모르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중화당은 이미 완전히 진균의 사당이었다. 처음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또한 진균은 이미 진작부터 전겸의 흉수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전폭적인 지원을 주었던 초창기와 달리, 어느 순간부터 대총통은 사사건건 말을 바꾸고 딴지를 걸어 대기 일쑤였다. 이는 충분히 전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정치적 지도자가 둘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진균도 애초부터 자신이 이 중화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깊게 믿었다. 그것이 진사당이 그에게 내린 가르침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열망이었으며, 또한 조국의 부름이었다. 황전겸은 자신이 위로 올라가기 위한 동아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군.”
또한 화신과 진균의 사이는 대총통의 예상보다 훨씬 더 깊었다.
지고한 권력을 추구하는 지배자가 지금껏 한둘이었겠는가. 하지만 지금껏 성공한 지도자들을 본다면, 그들은 하나같이 권력에서 더 나아간 무언가를 제시했다.
작게는 자신을 따르는 측근들의 광명부터 크게는 신민과 국가의 안위까지.
그렇기에 황전겸은 절대로 류용급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습진균은 한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 자체를 제시했다. 그 포부는 다른 권력자들보다 훨씬 더 배포가 크고 웅혼한 것이었다.
어조와 주장이 다소 격정적이라곤 해도, 그 정도는 열의로 포장할 수 있었다.
자신이 반옥저―반한족이라고 생각하는 화신도 그에게 깊게 감화되었을 만큼 진균은 대단했다.
“습 동생, 어떻게 할까? 죽일까?”
“낭 형, 우리 손으로 황전겸을 쳐낼 순 없소. 그러면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무는 셈이 되니까.”
배신은 어떠한 문화권에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일화였다.
심지어 그 대상이 동탁과 같은 자라도 그러했다. 인외의 무력을 지녔다던 여포도 주군을 배신했다는 오명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이 황전겸의 휘하에서 세력을 기른 것은 확실하니, 먼저 배신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수는 가능하겠지.”
* * *
경사.
중화민국 대회의장.
“망탁조의와 같은 놈이다. 아니, 황전겸은 그 네 명보다도 더 죄질이 무겁다. 중화의 스승과 중화의 신민을 모두 배신했으니.”
최근 국민당 전당대회가 세 차례나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이 줄어들자 황전겸은 노골적으로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있었다. 오로지 장광형 등의 일부 인사들이 그에게 반대하는 덕에 아직까지 그 마수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만약 전겸이 계속 망치로 돌을 두드린다면 언젠간 석문도 깨질 수 있었다.
장광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빈자리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동지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있었다. 교활한 마수에 심신이 위협받는 처지에 피로감을 느낀 것일 수도 있었고, 암담하고 답답함을 못 이겨 자포자기했을지도 모른다. 광형은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증 총장도 사임했고. 이제 남은 편이 얼마 없구만.”
“희망을 잃지 마시지요. 장 총장.”
측근의 위로에도 장광형은 한숨을 흘렸다. 어떻게 대항해 볼 여지도 이제 없었다.
황전겸은 애초에 부유한 상인 출신이라 재력이 많았다. 게다가 지금은 선봉대라는 군사 사조직과 중화당이라는 사당으로 그 세력을 공고히 유지하고 있었다.
세 축 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아마 황 총통은 정말로 황씨 천자 가문을 세울지도 몰랐다.
동지들이 옆에 있기에 그는 위험한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속으로 궁리했다.
‘암살을 하려 해도, 틈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지만 그의 짧은 생각은 이내 끊겼다.
맞은편에서 장광형이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는 당사자가 성큼성큼 걸어왔던 것이다.
대총통과 국무총리, 대총통이 임명한 기타 다른 총장들이 걸어오자 회의장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젠 한눈에 보기에도 황전겸의 파벌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오랜만이오, 장 내무총장. 좀 아프셔서 저번 당무회의 때 참석 못 하셨지요. 어때, 몸은 좀 쾌차하셨소?”
“…각하께서 살펴주신 덕에 괜찮습니다.”
광형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가 불편한 미소라는 걸 지은 당사자도, 보고 있는 사람도 알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자, 오늘은 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상해 경제 개발 건과 연경 진격, 그리고 총통의 지도력에 대해 포괄적으로 말이지요.”
드디어 올 것이 왔는가.
광형이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늘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석암 선생이 이룬 모든 중화민국의 결실은 전부 저 탐욕스러운 돼지의 입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오물이 되어버릴 터.
자신은 실패자였다.
하지만 회의가 진행되는 그때, 갑자기 황전겸이 이상한 말을 했다.
― 킁킁
“흐음… 어디서 풀 냄새가 나지 않는가?”
정말로 맡아보니 그러했다. 신기한 일이다. 이곳은 보안의 이유로 창문조차 없는 곳이었다.
회의장에 참석한 자들은 전부 중화민국 핵심 간부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약간의 궁금함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회의를 시작했다. 그들의 시간은 금과도 같았다.
하지만 광형은 환기구를 살펴보러 간 병사들이 픽 쓰러지는 것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 으아아악
병사들이 고통 속에서 절규했다. 그제서야 모두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동시에 고관들은 제각기 호흡 곤란을 느꼈다.
마치 폐를 누군가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었다.
그토록 대단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라도, 보이지 않는 암습에는 어찌 대응할 도리가 없었다. 대총통도, 국무총리도, 내무총장도 모두 바닥을 뒹굴었다. 일부는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광형도 시야가 흐려짐을 느꼈다.
그는 일어서서 회의장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미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거의 기어가듯 출구로 향했다.
―벌컥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뒤집어쓴 병사 한 무리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눈구멍이 달린 두건 같은 것을 씌웠다. 입 부위에는 이상한 원통도 있었다.
― 쌔액 쌔액
숨쉬기가 괴롭다. 하지만 광형은 두건을 뒤집어 쓴 이후에야 다소 편안해짐을 느꼈다.
고통은 여전했지만 증상은 악화되지 않았다.
출구와 가까웠던 덕에 그는 생존할 수 있었다. 그를 구해준 병사들은 몇 명의 고관들을 더 구출했다. 전부 자신의 동지들이었다.
“…무… 무슨 일인가.”
광형은 웅얼거리듯 대답했다. 병사들이 무신경하게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내무총장. 이제 다 끝났습니다.”
“…끝났다니 뭐가?”
말을 할 때마다 자신이 스스로 폐를 찢어버리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지만, 광형은 비릿한 핏물을 삼켜가며 그렇게 물었다.
병사들은 더 대답해주지 않았다.
생존한 고관들은 그 자리에서 전부 병동으로 이송되었다. 병사들은 회의장의 시신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회의장의 문을 열어놓자, 비지속성 작용제의 효과는 금방 사라졌다.
하지만 황전겸은 깨어나지 못했다. 방독면을 쓴 병사들이 그의 시신을 두 차례 확인했다.
습진균은 중화당의 당수로서, 이번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문하러 갔다.
회의 참석자 마흔두 명 중 오로지 열한 명이 살아남았다. 모두 장광형의 일파였다.
더 이상 습진균을 후원하는 이는 없었다. 또한 그를 견제하여 축출하려던 이들도 없어졌다.
“쾌유하시길 빌겠소. 물어볼 것도 많으니.”
진균은 여러 기자를 대동하여 병실을 위문한 다음, 잠에 빠진 광형의 옆에서 그렇게 뇌까렸다. 뒤에 서 있는 중화일보 기자가 수첩에 맹렬히 연필을 휘갈겼다.
그날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럼에도 공식적인 일과 후 진균은 한 사람을 불러들여 치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진균이 정말로 보배라고 생각하는 이였다.
“흐흐흐, 제가 효과가 죽여줄 것이라 했습지요?”
“고생이 많았소. 당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