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화 악의 탄생(2)
남양은 자주 부딪히는 격전지 중의 격전지였다.
가장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곳은 대체로 국민당과 공산당의 접경지였지만, 순의 세력도 만만치 않으니 국민당으로서는 그들을 계속 놔두지 않고 흔들어 보면서 전력을 떠보려 들었다.
아무리 기초적인 군사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 지금 이 소년선봉대는 당장 전선에 밀어 넣어 전투 병력으로 소진하긴 힘들고 아까웠다.
이제는 구시대적 총과 화약 정도는 궁핍한 곳에서도 어찌어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군대에는 총기가 귀했다. 본대도 총을 2인 1조로 쓰는 곳이 많았는데 예비대 취급을 받는 소년선봉대는 더욱 심했다.
부대의 이름과는 거리가 있는 상황. 하지만 ‘소년예비대’보다는 소년선봉대가 조금 더 강해 보였으니 상관없었다.
소년선봉대는 딱 다섯 발 정도 연습 사격을 한 뒤에 군진을 나섰다. 전선에 곧바로 투입되진 않았고 후방 안정화를 맡았다.
“자, 우리는 류영촌을 맡는다. 저 큰 농장에 진을 치고 전방으로 가는 보급대의 길목을 보호하는 것이 임무다.”
황건적마냥 누런 군복을 입은 소년들이 황폐화된 시골을 행군했다. 투구도 무기도 변변치 않아, 대다수는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소수의 건장하고 사격 자세가 좋았던 소년들만 구형 소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류영촌, 진균의 고향인 서령촌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어린아이가 먼 밖에 나다니기는 힘들어 직접 가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소식은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완전히 황폐화되어 있었다.
가옥은 아예 불에 타 있었다. 하늘에는 까마귀가 돌아다녔고 널브러진 백골들과 썩어가는 시신들이 보였다. 풍경에 걸맞은 불쾌하고 끔찍한 냄새가 났다.
― 우웩
소년들 몇 명이 토악질을 했다. 이 시대는 애들도 온갖 광경을 많이 보곤 했다. 들판에서 놀다 보면 오래 묵은 하얀 백골이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곤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끔찍한 광경은 소년들로서도 처음이었다. 풍경에 감정을 이입할 요소는 많았다.
지휘봉을 쥐고 걷던 화신은 애들을 독촉하려다 이윽고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음침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이게 전쟁의 실태다. 적들은 이렇게 잔혹하지. 이런 최후를 맞이하기 싫다면 너희들은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 할 것이다.”
화신도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몰랐다. 어쩌면 국민당이, 어쩌면 공산당이, 어쩌면 자신들의 다른 부대가 저지른 짓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애들을 얼마나 잘 싸우도록 만드느냐 하는 것이 전부였다.
화신은 농장의 작은 방에 지휘소를 차리고 너저분한 침상에 털썩 드러누웠다. 진균이 그의 군화를 벗겼다.
화신은 그에게만 속내를 내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애가 과묵하여 말동무가 되기 참 좋았다.
“여긴 빨갱이가 활약하기에는 조금 거리가 멀다. 가장 가능성 있는 건 31기병여단이지. 지휘관이 못돼먹은 놈이고 포악하거든.”
“…….”
진균은 묵묵히 군화의 먼지를 닦았다. 이런 제대로 된 군화는 구하기 힘들어 오직 고급 장교들만 신을 수 있었다. 고급 장교들은 구하기 힘든 만큼 자신의 군화가 반짝반짝하길 원했다. 진균은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솔로 군화의 먼지를 털어내곤 약간의 물을 적신 천으로 구두약을 둥글게 문질러 발랐다.
화신은 말이 참 많았다. 말을 참 잘하기도 했는데, 아마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혼잣말도, 욕도 많았고, 이렇게 진균을 데려다가 온갖 사항을 구시렁대는 것도 즐겼다. 같은 계급의 부령들이 꽤 나이가 있어 근엄함을 중시한다면, 화신은 아직 철이 조금 덜 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왜인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진균은 장단을 맞추었다. 화신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31기병여단 그놈들은 그 유명한 몽골 기병이거든. 옥저의 탄압을 피해 밑으로 내려온 몽골 놈들로 구성된 기병대다.”
몽골도 여러 부류가 있었다. 징기스칸 시절 이후부터 북원까지는 대체로 하나의 국가로 살았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예전처럼 뿔뿔이 여러 부족들로 쪼개진 상태였다.
그들은 옥저, 조선, 러시아, 명의 네 나라에게 번갈아 가며 두들겨 맞은 탓에 그 수가 크게 줄어 있었다. 중간에 준가르가 한 번 부흥했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준가르는 몽골의 후신을 자처했지만 따지고 보면 원류인 할하나 차하르 몽골인들과는 많이 달랐다.
순나라는 몽골인들이 꽤 많이 살았다. 일단 접경지역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고, 예전부터도 모자란 군사력을 확충하기 위해 이들의 손을 빌린 상태였다. 옥저에 내전이 일어나면서 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도망쳐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화신은 자신이 오기의 후손이라 잘 알고 있었다. 오기들이 내전 도중 엄한 몽골 부락에게 굉장히 많은 피해를 입힌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너는 탈영하지 마라. 무서운 놈들이 잡으러 온단다. 목에 밧줄이 걸려 말에 질질 끌려가다 죽을지도 몰라. 알겠나?”
진균은 빠르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장.”
화신 나름대로는 장난을 친 것이었는데, 위협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뭐 상관은 없을 터였다. 화신은 군모의 앞 챙을 깊게 누르고 눈을 가린 뒤 손을 휘저었다.
“눈 좀 붙일 테니, 나가봐.”
중원은 여전히 참호의 시대였다.
이곳에선 몇십 년 전 유럽에서 쓰인 전술이 최신의 전술이었다. 정작 유럽은 고려가 참호를 파훼하려 만든 철괴물을 따라 만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하지만 참호전만이 주류는 아니었다. 내전의 특수성 덕분에 국경이라는 것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전쟁 상황은 수시로 바뀌었다. 시가전과 고지전, 산악전과 참호전 등 모든 조류의 전쟁이 혼재되어 나타났다.
그러니 저위험 지역이라고 해서 위기가 닥쳐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 탕
선명한 총소리다. 화신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났다.
“뭐, 뭐냐?”
군병이 다가왔다. 교관이자 소년선봉대 본부 소속의 건장한 자였다.
“적의 기습입니다!”
“젠장, 이렇게 될 때까지 척후는 뭘 했나?”
“참호로 보낸 꼬마애들이 전부 잔 모양입니다. 귀환하지 못했습니다.”
“멍청한 놈들!”
소년병도 소년이다. 어린애들은 인내심이 없고 생리적 유혹에 굉장히 약했다. 그 대가로 그들은 아마 저세상으로 떠났을 것이다.
“적은 얼마나 되나?”
“적어도 중대급입니다! 이백 명 정도로 짐작됩니다!”
“미친, 이백 명?”
이천 명을 이끌고 있는 대대급 이상 부대의 지휘관답지 않은 말이었지만, 지금 소년선봉대에서 소총을 가지고 있는 자가 부대 규모의 십분지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전력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모자랐다.
화신은 곧바로 고함을 질렀다.
“방어 준비해! 도망치는 놈들은 총살한다! 너, 당장 장교들에게 내 명령을 알려라. 어서!”
부대장, 혹은 대대장 당번병은 사실 평시에는 이런저런 잡무를 하지만 전시에는 연락병으로 활동했다. 화신의 연락을 전달하기 위해 진균은 모자를 눌러쓰고 막사 밖을 나와 뛰어다녔다.
― 타탕
아군 진지에서도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참호까지는 아니더라도 파고 들어간 구덩이를 엄폐물 삼은 소년병들이 대응사격을 했지만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그나마 임시로 구덩이가 있기에 적병도 제대로 진격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특히나 아군이 얼마의 규모인지 알 수 없을 정도라면.
병사의 수는 많아 보이는데, 응사하는 병사는 거의 없는 것이 수상해 보일 수 있었다.
진균은 총알이 오가는 그런 구덩이 뒤에서 뛰어다니며 구두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막 징집된 소년병들을 훈련시키던 기존 병사―교관―들은 자연스럽게 부대의 중간급 장교로 있었다.
계급상으로는 이런 장교들과 이제야 이등병이 된 진균이 당연히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진균은 조금 특수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몽둥이로 쥐어패고 같이 징병된 동기 소년병들을 때리던 그들이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묘한 쾌감을 가져왔다.
물론 자신의 명이 아니라, 자신을 보낸 화신의 명이겠지만, 진균은 갑자기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어쨌든 진균이 열심히 연락병 일을 한 덕인지는 몰라도 기습으로 인한 혼란은 가라앉았다. 부대는 단단히 웅크려 적의 공격을 받아내고 반격했다.
적은 금방 물러났다. 아마 정말 떠보기 위한 공격이었을 것이다. 화신은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다행이다. 저들이 포라도 끌고 와 쐈으면 그날로 우리 부대는 와해되었을 거야.”
화신은 상황을 잘 살폈다. 훈련도와 사기가 턱없이 낮은 그의 부대의 특성상, 한차례의 포격을 버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전례 없는 패배를 당했을 것이고, 고작 십분의 일에 불과한 적병에게 패퇴했으니 당연히 그의 진급길도 막혔을 것이다.
“네가 참 잘해주었다. 용감하구나.”
화신은 진균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끔 사색에 잠겨 있는 놈이었지만 의외로 언뜻언뜻 야심도 있었고 능력도 있었다.
* * *
그렇게 진균의 소년병 시절은 이어졌다. 그가 속한 소년선봉대는 창설된 지 거진 이 년 동안 이런저런 곳에 예비대로 들어갔다.
이 년이라는 기간은 짧은 것 같지만,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특히 생사가 오가는 곳에는 더더욱 그랬다.
주로 후방에 있었는데도 등주의 소년선봉대는 원래 인원에서 적어도 5할은 죽었고, 그만큼 새로 모집되었다.
이제 계급도 서로 많이 분화되었다. 진균은 이제 상등병이었다. 나이대가 나이대인지라 불쑥불쑥 커 이제는 마냥 어려 보이지도 않았다.
진균과 화신의 관계도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둘은 이제 꽤 인간적인 교류가 충분하여 나이 차이가 좀 되는 형제처럼 보였다. 어쩌면 남들의 생각보다 조금 더 깊을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금 그들의 부대가 나설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전투 임무였다. 순은 했을 때 상양과 신양을 공격하여 대부분 함락할 정도로 국민당의 서쪽을 밀어붙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전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국민당은 삼면이 전선이었지만 저력이 굉장했다. 더군다나 순은 공산당처럼 열의 있는 사람들의 충성심 같은 것도 모자랐다. 공산당과 불가침조약을 맺지 않았으면 진작 밀렸을지도 몰랐다.
그들은 포위당한 순의 점령지, 신양의 후퇴로를 사수해야 했다.
후퇴로인 신양 북쪽엔 회하가 흘렀고, 그 회하의 맞은편엔 감안진이라는 나루터 겸 진지가 있었다. 그들은 그곳으로 행군했다.
명령을 받고 부대에 복귀하여 이곳까지 올 동안 화신의 얼굴은 딱딱히 굳은 채 펴지지 않았다.
감안진에 도착한 소년병들은 무구를 지급받았다. 지금까지 총 한 자루 제대로 소유하지 못했던 자들도 무기를 받았다. 의외였다.
아직 들기엔 좀 무거워 보이는 총에는 잔뜩 피가 묻어 있었다. 려어, 혹은 양이들의 글씨가 어지럽게 쓰여져 있었다.
진균도 총을 한 자루 받았다. 당번병 겸 전령까지 총을 주다니, 그는 오싹해졌다.
그나마 양이제가 아니라 려제였다. 소총에는 홍강―427이라고 희미하게 쓰인 글자가 보였다. 만들어진 지 벌써 거의 팔십 년에 달하는 유구한 무기였다.
화신은 총을 차고 있는 진균의 앞에서 그만 한숨을 쉬었다.
“이거 큰일이다, 정말 위험한 작전이야.”
“그렇습니까?”
“여기는 격전지 중 격전지다. 신양은 빼앗았다 뺏겼다를 반복하는 곳이지. 이곳만 뚫으면 우한과 합비로 갈 수 있으니까 양보할 수 없는 요지 중의 요지다.”
화신은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잘생긴 얼굴도 피곤과 시름에 젖어 있었다.
“얼마 전에 한번 우리가 맹렬히 치고 나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함정이었지. 지금 이곳에 거의 수만 단위의 병력이 포위된 상태다. 멍청한 새끼들. 말을 했으면 들어야지.”
남양 방어사령관 낭상보는 몇 차례나 상부에 서신을 보내 현 순의 작전이 위태롭다 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지금 순은 전투 한 번에 크게 휘청거리게 생겼다. 독안에 든 쥐는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비틀고 있었지만 맹수의 악력은 훨씬 강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알았지? 불안은 전염되기 마련이니까.”
화신은 그렇게 대답을 요구했다.
“예, 알겠습니다.”
과연 전황은 끔찍했다. 엄청난 포격이 떨어졌다. 청군은 이곳저곳에서 탄을 보급받는 터라 지나의 관점에서는 대단한 화력을 가졌다. 진에 포격이 수십 발씩 떨어졌다.
생전 처음 겪는 어마어마한 포격에 소년들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그 와중에 경계하고 있던 강 너머가 아니라 북동쪽에서 청군이 몰려왔다. 푸른 깃발이 물결쳤다.
“기… 기관총이다!”
처음 등장했을 땐 세계의 무기사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던 자우어 450식 기관총도 이제는 연식이 굉장히 오래된 물건이었다. 단순하면서도 신뢰성 높은 이 기관총의 원리는 이제 국제 표준이 되었다. 각국은 이를 복제한 무기를 사용했다.
국민정부도 내전 기간 동안 백제산 기관총을 면허 생산하여 배치했다.
철조망도 기관총도 다 없거나 모자란 순으로서는 도무지 대적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소년선봉대는 완전히 궤멸했다. 이천 명의 전력은 밀려오는 파도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한 병력이었다. 쓸쓸하게 대지에 몸을 뉜 자들은 아마 그대로 썩어버려 역사에서 잊혀질 터였다.
균진과 화신, 두 사람은 살았다. 역사는 그들을 아직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포로로 붙잡혔다.
진균은 전령의 임무를 수행하다 포격의 후유증으로 기절한 뒤, 나중에 전장 정리 때 붙잡혔다.
화신은 순식간에 와해되는 부대를 버리고 홀로 도망가려 시도했다. 그는 작은 나룻배를 타고 회하를 거슬러 올라가려 했지만 결국 나룻배가 가라앉으며 실패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붙잡혔다.
둘은 따로 떨어져 수용소에 들어갔다. 하지만 도착지는 같았다.
* * *
호남성에는 석탄 광산이 많았다.
청군은 이곳에서 연료를 많이 수급하는 처지였다. 광서공산당이 근처에 있지만, 외지라 버티고 있는 것이지 그 세력은 하북의 공산당 본체보다 약했다.
둘은 이곳의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해야 했다. 적군 포로에 대한 예우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사치였다. 죽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아니 나는 장교라니까, 왜 사람 말을 못 믿고 그러나!”
“그대처럼 젊은 부령이 어디에 있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라. 그리고 장교가 군복을 입어야지 네놈은 민간인 복장을 입고 있었다.”
“그야….”
화신은 입을 다물었다.
겸허히 항복하는 것보다 나 홀로 부대를 버리고 도주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하긴 힘들지 않겠는가. 또한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 필연적으로 순의 사령관 중 하나인 낭상보와 자신이 부자지간이라는 것도 밝혀야 하는데 이것이 과연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는 확실치 않았다.
자신을 인질로 삼을 텐데, 그렇게 된다면 그냥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었다.
심문을 담당하던 청군 장교가 버럭 화를 내었다.
“얼굴 반반한 놈이 거짓말은 거리낌 없이 하는군. 여봐라, 이놈을 가장 힘든 곳에 집어처넣어라. 몸이 제대로 고생을 해 봐야 거짓말에 대한 교훈을 뼈저리게 느낄 터!”
“알겠습니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곤경에 빠진 화신과 달리, 진균은 무난한 수용소 생활을 했다.
청군은 세 세력 중에서 그나마 포로 대접이 괜찮았다. 특히나 소년병으로 끌려온 아이들에 대해서는 약간의 동정심 같은 것도 있었다. 그들은 규칙적이고 근면한 노역을 하는 조건하에 다른 이들―성인 포로나 혹은 불량 포로들―보다 꽤 많은 자유를 누렸다.
석탄을 캐고 수레를 옮긴다. 단순한 작업이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진균은 세태에 따르고 묵묵하게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위를 면밀히 살폈다. 그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야심도 있었다.
힘든 몇 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 수용소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식사 배급 문제가 기폭제였다. 수감자들이 탈출을 시도했고, 간수들이 총을 발포해 십여 명이 죽었다.
분위기는 삽시간에 냉랭해졌다. 소년병 구역도 찬바람이 불었다.
노역수용소를 담당하는 소장은 사태 이후 직접 주변을 꼼꼼히 순찰하며 간수들에게 당부했다.
“이 새끼들도 폭동을 일으킬지 몰라. 어린 놈의 새끼들이라고 해도, 부역자들이야. 잘 감시해.”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진균이 지나가듯 말을 흘렸다. 중얼거림이었지만 일부러 목청을 조금 높였기에 똑똑히 들렸을 것이다.
“억누른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틈이 너무 많아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지.”
소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 새끼가 미쳤나, 그는 크게 노해 저놈을 당장 끌어내라 지시했다.
“내 직접 저놈을 훈계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진균은 태연했다.
“저 하나 본보기로 죽인다고 노역수용소에서 폭동이 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으십니까? 분명히 앞으로 두세 번 더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노역수용소는 누가 설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제가 봐도 심히 비효율적입니다.”
소장은 몽둥이를 치켜든 상태로 한동안 가만히 있다, 이윽고 몽둥이를 내려놓았다. 그는 분노와 궁금증이 뒤섞인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봤다.
대체 이 아이가 뭔 개소리를 지껄이려는 것인지 몰라도, 자신의 설계에 허점이 있다는 소리를 당당하게 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자신이 수용소를 심히 대충 만들었기에 이 사달이 난 것을 마음속 깊은 곳까지 부인하지는 않았다.
진균은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모름지기 이런 부류의 다스림이란 다스리려는 자들을 하나로 묶어 놓는 것이 아니라 분열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은 제각기 처한 바가 전부 달라, 아는 정보의 차이가 심합니다. 간수들은 죄인의 방에 하루 종일 있지 못하니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릅니다. 마땅히 복역자 중 청군에 협력하려는 자들을 뽑아 더 후대한 뒤 스스로 다른 복역자들을 감시하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진균은 그러한 체계 말고도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 계속 지적했다. 숙소의 구조와 사람들이 마주치는 동선, 그리고 식당과 같은 소소한 것들까지.
소장은 멍하니 소년을 바라보았다. 진균은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눈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이래도 자신을 등용치 아니할 것인가.
십 대 중반의 소년이라고 볼 수 없는 음험함, 실로 타인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에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로다. 소장은 팔뚝에 난 소름을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