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83화 (483/653)

극과 극(2)

최근, 어떤 신문사에선 아주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시행한 적이 있었다.

고려인이 존경하는 가장 위대한 인물 백 명을 묻는 조사였다.

이 설문조사는 역대 황제들을 전부 제외했다. 제국교도와 쿠쿨칸교도를 제외하고도 제국에 널린 수많은 극성 황실지지론자들은 분명히 1위부터 전부 태조를 포함한 역대 황제를 꼽을 것이 분명했다. 이래서야 설문조사의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또한 선황들끼리의 우열을 학술적으로는 몰라도 이렇게 인기투표식으로 논하는 것은 결례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실시된 황제를 제외한 위대한 인물 설문조사는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고 다른 언론사들도 유행을 타서 하게 되었는데, 10위까지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려 초중기의 철학자 4인방(이도, 사유원, 민정산, 안현록)과 개선문을 통과했던 제독과 장군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두 위대한 탐험가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아무 관계도 없었지만 흔치 않은 길 자 돌림의 두 탐험가, 신원길과 배어길은 각자 최초의 세계일주와 최초의 키닌 발견으로 불후의 업적을 세워 고향에 큰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뭔가 허전한 지폐에 인물상을 그려 넣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이들은 분명 그 도안의 후보로 꼽힐 것이었다.

어쨌든 전주 배씨와 동녕 신씨는 위대한 선조들을 둔 덕택에 여전히 그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배씨는 중시조 배어길 이후에도 배정수, 배광민, 배본무 등의 유명한 탐험가들이 고려 내의 수많은 지형을 탐사했다.

신씨는 신수일과 신원길 이후에도 신창운, 신범재 등이 세계의 밝혀지지 않은 도서들을 탐험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에는 끝이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탐험도 그랬다.

세계의 지도는 이제 거의 다 밝혀져 있었다.

대전쟁이 끝나고 국제조약의 시대가 밝아온 지금에는 바야흐로 세계화라는 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러 국제 조약들에 참가한 나라들은 자신들의 국경과 영토를 다시금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로 인해 소소한 분쟁이나 마찰이 생기기도 했지만 대의명분, 즉 ‘항구적인 세계 평화’를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위화감을 제공한 나라는 단연코 고려였다.

이들은 그 항구적 세계 평화를 부르짖는 당사자였지만 가장 무시무시한 영토와 힘을 자랑했다. 지도 한 장으로 이런 공포를 줄 수 있는 것도 대단할 따름이었다.

설령 테무진이나 쿠빌라이의 몽골제국도 이러진 못했을 것이다.

여몽전쟁은 어쩌면 유럽에서 촉발된 대전쟁 이전의 최초의 대전쟁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는 사학자들도 있었다. 설령 하나는 쇠락해가고 있었다 하더라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영토를 자랑한 큰 제국 두 곳이 서로 싸워 끝장을 본 순간이라 설득력 있었다.

하다 하다 이런 나라가 대체 존재했었느냐고, 세계 각국의 나라는 고려가 친절히 건네준 상세한 영유권 주장용 세계지도를 보고 질겁한 표정으로 쑥덕거렸다. 대충은 알고 있긴 했는데 이 정도인지는 잘 몰랐던 탓이다.

세상의 땅이란 땅 중 삼분의 일을 자기들 색깔로 칠해놓은 것도 모자라 온갖 섬들을 전부 다 자기 거라고 해놨으니 양양(태평양―대동양)마저도 사실상 고려의 바다였다. 심지어는 인도양에도 말뚝을 박아넣은 섬들이 있었다.

몽골의 위협이나 역량, 영토는 과대포장된 것이 있었다. 실제로 몽골과 싸워 이긴 자들은 많았다. 바이바르스, 쩐흥다오, 델리 술탄들이 그러했고, 모히 전투에서 패배한 뒤 정신을 차린 헝가리 등의 유럽도 그러했다.

몽골은 테무진과 사준사구 등이 죽고 난 이후에는 그 비대해진 덩치를 유지하기도 급급해했다. 쿠릴타이가 열린다고 원나라와 4칸국이 하나로 뭉칠 수 있진 못했다.

하지만 몽골 때문에 반도에서 쫓겨난 저 나라는 달랐다. 기어코 아득바득 반도로 다시 와서 칸의 목을 잘라버리는 것도 그랬지만, 건국 이후부터 지금까지 고려는 강해지고 있었다.

일견 탐욕스러울 만큼 비대해 보이는 제국은 운하와 철도, 전신이라는 수많은 혈관과 신경망으로 촘촘히 이어지고 있었다. 지방 주들은 느슨하지도 않았고, 불안요소가 될 의도적인 계급분화통치도 실시되지 않았다. 그러니 전성기가 도래하지 않은 나라라는 소리는 허언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들은 그제서야 고려가 선심 쓰듯 동맹국에게서 뺏은 인도양의 두 섬을 이스라엘에게 던져 준 이유를 이해했다.

일반적인 나라라면 영토욕 때문에라도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고려는 그런 섬들 하나하나가 절실하지는 않은 입장이었다. 세계 평화와 명분을 위해선 섬 두어 개는 충분히 줄 수 있는 나라였다.

고려가 탐험가를 동원해 남은 미지의 땅들을 죄다 처먹었으니, 지금 지구상에 미지의 지역이라 불릴 만한 곳은 오직 두 군데였다.

개천 5세기 말, 사람들은 북극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고려 내에서는 신재함이 이끄는 탐사대와 배병우가 이끄는 탐사대가 서로 북극 탐험을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려가 아무리 땅이 넓다고 해도, 고려만 북극에 접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르웨이나 스칸디나비아의 나라들, 덴마크에서 독립한 아이슬란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러시아와 옥저도 거리와 여건상으로 충분히 북극에 갈 수 있었다.

이 시점 북극 빙하는 굉장히 커서 북대서양 난류의 영향권에서 조금만 지나면 북극해빙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러시아와 옥저는 지금 한가롭게 탐사대를 보낼 여력이 없었다.

그러니 남은 것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나 잉글랜드와 같은 나라들이었다.

특히 노르딕 사람들은 동기부여가 충분했다.

그들은 고려인들에게 아주 자그마한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다.

고려 내로 이민 온 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이들 사이에 일견 접점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노르딕 국가들은 옛날부터 고려에게 묘한 경쟁심을 품고 있었다. 다소 일방적이긴 했지만.

노르딕 사람들은 고려가 남려에 뿌리내리기 한참 전부터 그들의 조상, 바이킹들이 북려에 먼저 발을 디뎠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고려 사학자들도 일부는 인정했다.

빙주와 북려에서 에위스트리뷔그드 유적지 등의 부정할 수 없는 고대 노르드인 유물이 발견되었다.

역사적 객관성을 중시하는 고려의 사학자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유물들이라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물론 사학자들은 이 바이킹 개척자들의 문화와 역사가 곧 단절되었기에 연속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노르딕 국가들도 그 이상의 주장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심지어 이들은 고려가 그린란드―빙주―도 집어삼키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점부터 노르딕 사람들은 위대한 ‘빈란드 사가’에 등장하는 레이프 에이릭손의 이야기를 태조 해민의 이야기와 흡사하게 각색해 읊기도 하며 울화가 치민 속을 다스렸다.

하지만 고려에게 이들의 주장은 애초부터 쓸모가 없었다. 설령 바이킹 개척자들이 연속성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게 대체 뭔 상관인가.

이유는 단순했다.

고려는 이미 이누이트를 범려주의에 따라 마땅한 자국민으로 포용했다. 이누이트의 인구도 상당수 흡수한 상태였다.

설령 너무 외지에 살고 있어 당장 국가의 행정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자신들이 원한다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언제든지 신원부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고려는 이를 기반으로 아주 아득한 시점부터 이 땅에 살아온 원주민들의 영유권을 우선적으로 주장했다.

이게 고려가 예맥한계 대신 주장하고 있는 ‘범고려주의’의 핵심이었다.

범려주의는 개척자들의 명분이 아니었다. 이민자들은 물론이고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명분을 모두 함께 아울러 부르는 말이었다. 고려인들과 해씨 황가는 개척자들이분명했지만, 또한 원래 살던 원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새로운 문명을 일군 자들이다. 타민족을 노예로 부린 자들은 이런 명분을 쓸 수 없었다.

누가 이 명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설령 그럴 마음을 가지기 위해선 이보다 더 대단한 명분뿐만 아니라 고려를 압도할 힘을 가져야 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크는 늦든 빠르든 타수의 회원국이 될 예정이었다. 꼬리 내린 강아지들은 제대로 짖지조차 못했다.

* * *

그러나 노르딕 사람들은 한 가지 정도는 해내길 원했다.

적어도 뭔가는 고려보다 앞서 해보자고.

적어도 북극점에는 자신들이 먼저 깃발을 꽂아보자고.

그들 몸에 흐르는 바이킹 선조들의 피가 끓고 있었다.

이전과 같이 도끼를 들고 설치지는 못했지만, 조선인들마냥 지부상소를 올릴 결의는 있었다.

강대국 고려가 많이 무섭긴 했다. 그래도 고려인들은 굉장히 공명정대했으니 이런 것을 트집 잡아 그들 나라를 두들겨 패진 않으리라.

노르드인들의 희망은 바로 노르웨이인 파울 에게데와 닐스 에게데 형제였다.

파울과 닐스는 아버지 한스 에게데로부터 노르드인의 북려 진출 역사를 배웠고, 덴마크인 스승 비투스 요나센 베링에게는 탐험가로서의 자질을 교육받았다. 에게데 형제는 노르웨이 최북단 스발바르 북쪽의 북극점을 탐사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 충분한 의지와 잠재력이 있었다.

이에 고려의 여론도 슬슬 달아올랐다.

뭐든지 제국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길 하길 원하는 제국인들은 건방진 노르웨이인 대신 신재함과 배병우 둘 중 하나가 이 위명까지 차지하길 원했다.

그러니 개천 466년 신재함이 먼저 북극을 향해 떠났을 때, 사람들은 모두 열광하며 그의 승리를 기원했다.

하지만 재함과 그가 이끄는 탐험대는 돌아오지 못했다.

비극적인 소식이라 사회에는 한동안 애도의 물결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는 이어졌다. 신씨 가문과 배씨 가문의 자손들에겐 이런 비극은 흔했다.

개척과 탐험은 원래 위험한 일이었다. 희생 없이는 진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가훈이었기도 했다.

병우도 재함이 떠난 이 년 뒤인 468년에 자신의 탐험대를 이끌고 나녹에 도착해 탐험 전초기지를 세웠다.

에게데 형제도 비슷한 순간에 출발하려 한다니, 병우는 서둘러야 했다.

‘놈… 대체 왜 먼저 가서.’

탐사대장 병우는 자신의 천막에서 한숨을 쉬었다. 재함은 경쟁자였지만 사적으로는 친구이자 팔촌 친척이었기도 했다. 끼리끼리 잘 어울린다고 배씨와 신씨는 이미 몇 번 서로 결혼한 적이 있었다.

병우와 재함은 서로 만나서 같이 탐사대를 꾸리는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

에게데 형제와 같은 경쟁자들이 더 많이 생겨나기 전에 우리끼리 힘을 합쳐 먼저 업적을 이루자는 말이었다. 북극이 끝난 다음에는 남극도.

하지만 탐험대의 구성과 기타 여러 가지 세부 사항에서 좁혀질 수 없는 의견 차이를 보인 그들은 결국 따로 가기로 했었다.

병우는 자신이 그때 의견을 굽혔다면 행여나 재함을 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한 적도 가끔 있었다.

물론 과거로 되돌아가도 의견을 굽히지 않을 것 같았지만.

‘너의 희생을 헛되이 하진 않겠다.’

그는 탐사대를 점검하러 천막을 떠났다.

― 멍, 멍!

밖에는 사람들보다 많은 개들이 우글거렸다.

몇몇은 저희끼리 서로 싸우려다가 주인이 밖으로 나오자 그제서야 조용해졌다.

병우는 혀를 차는 소리를 내며 싸우던 개 두 마리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이 모든 개들이 다 병우가 기른 아이들이었다.

재함은 북극의 추위를 다소 과소평가했다. 바닷사람 출신이라 이동용 동물에 대한 이해도 약간 적었다. 말을 끌고 북극으로 향했으니, 동물들은 전부 얼어 죽었을 것이다.

말은 수송용으로는 비교할 수 없는 가축이었다. 하지만 내한성은 한계가 있었다.

병우는 예전부터 재함에게 극지방에 말을 끌고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그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며 말귀를 들어먹지 않았다.

반면 가문 자체는 무더운 열대지방 전주 출신이라고 해도 이누이트를 어머니로 둔 병우는 북극의 맹렬한 추위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병우는 외할아버지의 조언대로 수송동물로 개를 이용하기로 했다.

북려에 사는 개들은 추위를 견디는 능력이 굉장했다.

이누이트들이 기르는 빙주개와 마흘레뭇, 그리고 옥저와 러시아에 살다가 고려로까지 넘어온 축치개와 사모예드는 원주민들이 썰매견으로 이용하기까지 했다.

개썰매의 역사는 수 세기 동안 지속되었고, 그동안 개들은 인간에 의해서 개량되기도 했다. 강력한 몸과 두꺼운 모피를 자연 선택한 것이다.

게다가 추운 오지로 가면 탐험대는 기름이 잔뜩 껴있는 건육괴(페미컨)밖에 먹을 것이 없었다. 병조림이나 통조림 같은 다른 음식은 죄다 얼어붙고 터지거나 해서 잘 먹지도 못할 것이었다. 초식동물인 말과는 달리 개는 인간과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개들은 문제가 없구나, 병우는 한시름 놓았다.

이제 나머지는 나녹을 기점으로 최대한 멀리까지 보급기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식량과 연료, 피복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이 시대의 탐험대는 조금씩 조금씩 보급기지를 멀리 건설해나가며 최종 탐험까지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방식을 택했다.

배씨 가문은 병우를 위해 큰 지원을 했다. 심지어 신씨 가문도 병우에게 지원을 했다. 또한 사회 각계각층의 기부도 잇따랐으니, 보급소의 자원은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이 문제가 되었다.

보급기지를 건설하다가, 그가 꾸린 탐사대원들 중 한 명이 빙하균열에 빠졌다. 균열이 크진 않아 금방 구하긴 했는데 그 충격으로 발이 부러졌다.

몹시 불안했다. 이제 곧 있으면 출발해야 하는 시기였다. 탐험이라는 것은 웬만하면 계획된 날짜를 엄수해야 하는 것이 좋았다. 극지방은 백야와 극야현상이 계속 나타냈으니.

또한 이런 탐험은 최고의 몸 상태로 가도 위험했다. 자신의 건강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탐험대 전체의 문제였다. 민폐가 되지 않으려면, 확실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맞았다.

발이 부러진 대원은 객관적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판단한 뒤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도 어찌나 분한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병우는 그를 토닥여준 뒤 그에게 나녹의 병원에서 요양하라 했다. 상태가 호전되면 전초기지를 부탁한다고.

병우는 이내 고민에 휩싸였다.

대원을 두고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탐험대에 한 자리가 비는 것은 굉장히 꺼림직했다.

탐사대원은 자신을 포함해 모두 다섯, 저마다의 몫이 있었다. 낙오된 그 탐험가는 지리정보에 통달한 자라 병우와 함께 탐험대의 경로를 조정하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그토록 깐깐하던 병우도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더 늦으면 정말 에게데 형제가 먼저 깃발을 꽂을 것 같았다.

병우도, 에게데 형제들도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북극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졌다. 그들은 심지어 보급소를 건설하다가 해빙 위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었다.

에게데 탐험대와 병우의 탐험대는 불타오른 경쟁 구조에도 불구하고 서로 상대를 굉장히 존중했다. 미소 지은 채 악수를 하며 덕담을 주고받은 사진도 있었다. 탐험가끼리는 목숨을 걸고 목표를 쟁취한다는 동질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만큼 상대방을 이기길 원했다.

존중은 존중이고, 승리는 자신들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재함은 이런 압박감 속에서 먼저 떠나는 악수를 두었겠지, 병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악수를 내리는 것일까. 그는 출발을 준비하며 그렇게 되물었다.

그때 한 남자가 탐험대에 찾아왔다. 불과 출발 엿새 전의 일이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신다고 하셨소?”

“음… 김, 박, 아니 최민상이오.”

자기 이름도 더듬는 걸 보면 영락없이 수상한 사람이다. 병우는 다시금 추천서를 살폈다.

그러나 수상한 어투와 달리 추천서에는 정말 빙주지사와 진주지사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고려 탐험가 협회에서도 이 사람의 경력을 보장했다.

협회에서 탐험 전문가라는 이름은 함부로 얻을 수 없었다. 병우도 자신이 협회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끙….’

탐험대가 출발 직전에 인원 보충을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병우의 경우도 전례가 없었다. 병우는 갈팡질팡했다. 어찌해야 하는가. 이 사람이 정말 도움이 될까. 행여 짐이 되지는 않을까.

신체적 능력은 괜찮아 보였다. 도리어 지방이 너무 적은 것 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완성된 몸이다. 나머지 능력은 집요하게 질문하는 수밖에 없었다.

작명에는 젬병이라 겨우겨우 최민상이라는 가명을 만들어낸 상민은 병우의 집요한 물음에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그의 미소도 어찌나 해맑은지, 병우는 그제서야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목숨을 도외시하는 탐험을 눈앞에 두고 이렇게 웃는 자는 분명히 그와 같은 동류였다.

다른 대답도 청산유수였다. 탐험가는 탐험가를 알아보았다. 이자는 객관적으로 볼 때도 탐험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자가 맞았다. 혼자 어디 한주의 산골짜기에 떨어뜨려 놔도 살아올 인물이 분명했다.

“최 선생께선 왜 탐험대장을 하지 않으시오? 충분히 하실 경력과 실력을 갖추신 것 같은데.”

“북극과 남극은 아무리 위명 높은 탐험가라 하더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흉험한 곳이라 하였소. 내 배 대장의 위명을 잘 알고 있어 이렇게 도전하는 것이라오. 류 대원의 일은 비극인 일이지만, 설령 그 일이 일어나지 아니하더라도 이렇게 뵈어 여쭈고 싶었소.”

병우는 그의 칭찬에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사교성도 꽤 있는 모양이다.

물론 상민으로서도 탐험대장이 되어서 역사에 대문짝만하게 이름이 박힐 일을 자청하진 않았다.

중동에서 쓴 박성민처럼 가명을 쓰면 되긴 했지만, 이런 위업은 다른 자에게 양보하고 싶었다. 자신과 같은 사기적인 신체를 가진 자가 아니라 정말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었다.

상민은 그저 그곳에 함께 가는 것으로 족했다. 존중받을만한 고려인 탐험대장 병우의 이름이 전면에 나오는 것은 그가 더 바라 마지않았다.

상민의 방위 계산과 지리 파악 능력을 몇 차례 시험해본 병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우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상민을 대원들에게 소개했다.

기존 대원들은 이 근육 덩치에게 조금 주눅이 든 것처럼 보였지만 새로운 대원이 힘 하나는 기깔나게 쓰는 것을 보고는 박수를 쳤다.

심지어 이자는 개와도 잘 어울렸다. 평생 자신이 길러온 개들인데 제 주인보다도 더 헥헥거리며 상민에게 침을 발라대는 꼴을 보니 병우는 어딘가 배알이 뒤틀리기도 했다.

어쨌든 출발이다.

에게데 형제도 노르웨이 전초기지를 떠날 채비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도 지금 출발해야 했다.

계획이 바뀌고 또 바뀌었지만 병우는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엄습해오던 불안감은 갑자기 사라졌다. 태조께서 그를 보우하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병우는 제국교도의 상징에 입을 맞추고는 옷 속에 집어넣은 뒤 대원 네 명과 함께 나녹에서 출발했다.

[작가의 말]

빙주개 : 그린란드견

마흘레뭇 : 말라뮤트

축치개 : 시베리안 허스키

사모예드 : 동일

빙하균열 : 크레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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