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80화 (480/653)

명품(5)

* * *

“주주들에게 제안서를 올렸다고? 정말 귀여운 아이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 ‘작은 회사’가 주주가 얼마나 있겠는가. 사실 상민이 소유한 지분이 압도적일 것이 분명했다.

물론 객관적으로 작다고만 할 순 없었지만, 여전히 상민의 기준에선 병아리조차 아니었다. 알을 깨고 나오지도 않은 회사 중 하나일까.

상민은 이 꼬마 손녀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낭중지추라고 알아서 뾰족한 송곳을 드러낸 아이였다.

당시 상민은 막 아라비아의 사우드 패거리를 정리하고 나디르의 폭주도 막아내어 서아시아를 대부분 정리한 뒤, 이라크에서 약간의 휴식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사막에서 꾸준히 본국의 소식을 받아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대전쟁이 터질 것같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치와 국내정치 말고도 그가 자금을 투자하여 관리하는 백십삼여 개의 거대 기업, 혹은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 회사들까지 돌봐야 했다.

물론 아무리 신체가 강건해도 몸은 하나일 뿐이라 시공간의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선 그 분야에서 유능한 자에게 투자하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상민의 그 포트폴리오에 근래에 새로운 분야의 기업이 나타났다.

려연(麗延)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그러했다. 지금은 여성 속옷 회사에 불과했지만, 그 성장세는 놀라웠다.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태동기에 들어선 패션 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해질 게 분명했다.

나중에는 필히 어마어마한 황금이 오고 가는 분야 중 하나였다.

이전 삶에서도 실로 대단하지 않았던가.

상민은 언제고 일이 있어 아침 열 시쯤 백화점 앞을 지나갔는데, 그때부터 명품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자들의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다소 눈살을 찌푸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이유도 없었던 것 같았다.

사치와 허영을 막을 순 없다.

인간 본성이니, 성리학자들마냥 막는다고 될 것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싶다는 욕망은 다른 부류의 욕망과 견주어보면 오히려 건전하기까지 했다.

다만 국가지도자로서 상민은 적어도 그 소비가 국내에서 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 분야를 미리 선점해놓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이런 패션 명품은 아주 독특한 성질까지 가지고 있었다.

브랜드가 쌓아 올린 명성은 후발주자들에게 꽤나 거대한 벽으로 다가오곤 했다.

지금은 특출난 명성을 가진 브랜드가 없었고, 재봉사 개개인의 능력으로 구매를 하게 되겠지만, 나중에는 유명한 브랜드는 그 브랜드만으로 거대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 분명했다.

에루샤니 디올이니 구찌니 하는 최고의 프리미엄 명품들이 정말 제품의 질만으로 다른 경쟁자들보다 확연히 앞서 있다고 보긴 힘들었다.

하지만 명성은 그저 먼저 만들어 시간만 뭉개고 있는다고 생겨나지 않았다. 무언가 당대에 혁신을 불러일으켜야 했다. 사람들은 브랜드에 담긴 이야기와 철학을 물품과 같이 구매하길 원했다.

연희는 재능을 입증했다. 그러나 몇 번이고 그와 같은 성공을 해주어야 했다. 꼬마 아이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진 않았지만 대주주는 남몰래 회장과 회사의 미래 양측을 모두 기대하고 있었다.

연희는 그의 정체를 모르지만, 상민은 연희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 중 하나였다. 보호자적 마음보다도 투자자적 마음으로 그는 예전부터 그녀의 회사, 려연에 조금씩 지분을 확보하고 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지금은 속옷 회사에 불과했지만 손녀와 회사가 어디까지 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 궁금해하면서.

그러나 이제는 꽤 단단한 확신이 생겨났다. 이런 비전을 제시하기만 한다면, 지원을 해주는 일은 일도 아닐 것이다.

“려연이 과연 미래에 샤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손녀가 코코 샤넬보다는 더 대단한 사람인 것 같구만.”

“코코아 말씀이십니까?”

“…아니, 혼잣말일세.”

이 손녀가 주주들에게 보낸 사업계획안을 보자, 상민은 연희가 비단 샤넬의 재능뿐만 아니라 사업적 재능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녀는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베르나르 아르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 쿵

상민은 결재함 옆에 있는 수십 종류의 도장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찍었다.

“진행하라고 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도 해 주고.”

청해 패션위크, 아니 맵시경연이라.

스스로 시장을 열어젖히겠다는 실로 혁신적인 발상이 아니던가.

* * *

“봉안탑엔 왜 갔느냐.”

사장은 애써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돌아왔는데 주열이 공장의 기숙사(혹은 감옥)에 없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현재 그의 대계의 대부분은 주열의 능력에 기원했다. 물론 혹시나 해서 덩치를 붙여놓았지만 그가 붙인 덩치는 멍청하고 둔했으니 주열이 계속 이렇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 한다면 정말 위험했다.

“…….”

주열은 대답을 회피했다. 사장은 그를 다그치려다가, 고개를 젓고 일부러 나긋한 투로 말했다.

“그래, 여기가 네 집이다. 다른 데 갈 생각 말아.”

사장은 이제 채찍으로만 그를 휘두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금 더 구체적인 당근을 내밀었다. 이미 주열은 공장에서 그와 비슷한 소년들 여럿을 이끄는 지위에 올라 있었다. 사장은 그것보다도 조금 더 너머의 권력과 위치를 보여주기로 했다.

감투야 만들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같은 배를 탔다고 인지시키는 것이었다.

‘아니면 뭐 숙희라도 줘도 되지. 이 정도 똘똘한 놈은 흔치 않기도 하고.’

딸은 필사적으로 반대할 것이고 주열은 무관심하겠지만 사장은 대수만큼은 아니라도 가족애가 딱히 없었다. 그리고 후계자니, 사업적 동반자니 뭐니 하는 말로 교묘히 주열의 행동을 조종하려 들길 원했다. 설령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하지만 그는 주열의 탁하게 가라앉은 눈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제야 애써 친밀하고 가식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한 사장은 그가 오래 자리를 비운 이유를 꺼냈다.

“보아라. 창양의 황립 고급의상조합에 등록된 자들의 도안이다. 특허청에 등록된 것들이지.”

그는 주섬주섬 종이들을 탁자 위에 꺼내 올렸다. 소년은 인상을 찌푸리다 돋보기를 가져다 대었다.

“굉장히 복잡하고 우아하지 않느냐? 손가방도 그러하고 허리띠와 다른 의류도 그렇다. 하지만 원가는 얼마 되지 않아. 아무리 비싼 원단을 써도 그렇다. 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덧붙여져 형성된 가격이라는 소리지.”

도안은 굉장히 구체적이었다. 적힌 필체는 악필이었지만 바느질을 하는 방법과 어떻게 옷감을 덧대는지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으로 쓰여 있었다. 주열은 도무지 어디서 이런 걸 가지고 왔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대로 만들라는 소립니까?”

“그래. 그거야. 우리는 자체적으로 피혁과 원단을 수급 가능하고 염색까지 할 수 있다. 이런 물건들만 만들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단다. 어때, 가능하겠느냐?”

사장의 말은 명백하게 어폐가 있었다. 아무리 도안이 있더라도, 도안대로 만드는 것도 굉장히 힘든 작업이다. 오로지 최고의 재봉사들만이 이런 것들을 자유롭게 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사장은 알고 있었다. 그가 가진 보석의 잠재력을. 그런 자들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아이는 그가 아는 한 최고의 재봉사였다.

주열은 무덤덤히 대답했다.

“이렇게 복잡하면 애들한텐 많은 걸 시키진 못할 겁니다.”

“주열아, 주열아. 내 몇 번을 말해야 하겠냐. 네 기준에서 아름답고 좋은 것을 만들라는 게 아니다. 그냥 적당히, 빠르게 많이 만들라는 거야. 애들은 그냥 원단을 자르고 밑 작업만 시키면 되지 않겠느냐? 그게 어려우면 그래, 내가 가르치겠다. 너는 그저 끝마무리만 하면 된다.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말이야.”

말은 설득 투였지만, 거부권은 없었다.

고급 노예는 다음 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다른 노예들이 그의 방에 원단을 가져다주었다. 소년은 손잡이를 돌려 재봉틀을 다루기 시작했다.

툭툭, 성의 없이 연결되는 가죽과 원단이 새롭게 조립되어 모양새를 갖추었다. 지금껏 밤에 몰래 일어나 애련의 옷을 만들 때와는 달리 한 줄기의 열정이 없는 손길이었지만 그의 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손길로 도안에 따라 만들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장도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대단한 놈이었다. 심지어 그마저도 이 아이가 정말 자신의 자식이었다면 끔찍하게 아껴주었을 것이라고 흘러가듯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짝퉁이 등장했다.

고려의 의복은 원래부터 맞춤복이었다. 산업화로 대량생산되는 기성복이 생겨났지만, 맞춤복 또한 고급화하여 여전히 살아남았다.

또한 기성복과 고급 맞춤복 사이에는 고급 기성복이라는 새로운 분류가 등장했다. 말 그대로 고급화 전략을 한 기성복이었다. 반쯤은 수작업으로 만들긴 했지만, 일반적 체형을 가정하여 미리 생산해 놓는 것은 대량생산과 같았다. 사장은 고급 기성복 시장과 원래부터 맞춤의 개념이 없는 가방과 허리띠 등의 시장을 노렸다.

짝퉁은 틈새시장을 잘 공략했다. 아직 지적 재산권에 대한 개념은 잘 없었다. 그나마 기술에 대한 특허는 모두의 인식 속에 자리 잡히는 것에 성공했지만, 이런 도안과 도식에 대한 노고를 인정하는 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상류층이 아닌 사람들은 상류층들과 비슷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재화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짝퉁은 그들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제도의 재봉사들이 번뜩이는 영감으로 밤새 만들어낸 옷과 작품들은 이 어울리지 않는 홍진의 공장에서 불법적으로 생산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만큼 사장은 돈을 벌었다. 이 추세라면 금방 빚을 갚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장이 주열의 도주에 대한 경계를 약간씩 풀게 되자 주열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들 잘 모아 놔.”

주열의 지시에 아이가 궁금해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 위험했기에 일부러 똘망똘망한 아이에게 이렇게 넘겨주고 숨기라 했다.

“형아, 왜?”

“…다 쓸데가 있어서 그래. 상자에 넣어서 어디에 묻어놔. 누가 절대 보지 못하게. 알았지?”

주열은 자기 한 몸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하지만 실행에 옮길 순 없었다.

자신과 똑같은 애들이 이 공장에 수십, 거의 백여 명이 넘게 있었다. 이 아이들은 도망치지 못했다. 그리고 설령 몇 명이 도망친다 하더라도 이 악몽은 계속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 모든 것들을 그냥 두고 떠날 만큼 주열은 냉혹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조금씩 다른 작업을 준비했다. 어릴 적에야 몰랐지만 어린아이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청년으로 가는 과정에서 그는 조금씩 사회를 깨닫기 시작했다.

사장을 쓰러뜨릴 수 있는 비수를 준비하고 적당한 시기를 골라 가슴팍에 꽂아야 했다.

‘홍진시경에 가는 것은 안 돼. 사장은 여기 치안감이랑 인연이 있댔어.’

주열은 고민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배워먹은 게 없는 내가 뭘 어쩌겠어. 그냥 가위와 재봉틀만 다룰 줄 알지.’

체념하고 싶었다. 평생 사장의 아래에서 고혈을 빨리다 죽을 것만 같았다. 설령 사장이 정말 그의 감언이설대로 그를 좋게 대우해준다고 해도, 그는 공장의 동생들이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번 애련을 잃어 본 주열은 더 이상 아끼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

문득 머리에 무언가 생각이 떠올랐다.

거리에 나도는 소문이 있었다. 특히나 의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흥미롭고 민감한 주제라 더욱더 빨리 퍼질만한 소문이었다.

주열은 갈피를 잡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그는 눈을 비볐다. 시야가 한순간에 이상해졌지만 반대로 무언가 흐릿하게 보이는 듯했다.

― 달달달달

주열은 그 이후 밤늦게까지 재봉틀을 돌렸다.

손잡이를 돌리는 수동식 재봉틀은 한 손으로 옷감을 고정해야 하느라 굉장히 불편했다. 게다가 기계의 소음이 최대한으로 나지 않게끔 하느라 속도는 느렸다. 취침시간을 따로 빼서 하는 탓에 온몸에 피로가 누적되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낮과 달리 밤이 되어서야 그의 눈동자에 열정이 피어났다.

명장들의 옷의 도안을 함부로 보고 익히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불법적인 일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이 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지 않은 주열조차도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면죄부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일도 수확이 있었다. 그는 이러한 복제품을 만들면서 지금 현시대 옷맵시의 흐름에 대한 식견을 조금씩 알아차렸다.

이런 사람들은 옷이나 가방을 만들 때 이렇게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하면 더 예쁘고 깔끔한 박음질이 되는구나.

주열은 자신이 약간은 소홀히 했던 미세한 사항들이 품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주열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제도에 사는 재봉사들도 제각기 그에 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일 것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것마냥 주열은 도안 속에 있는 옷을 만들며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개화시키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그는 일과시간엔 대충 일했다. 주문한 작업속도에 맞추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밤에는 미친 듯이 집중했다. 새벽에도 서너 시간밖에 쓰진 못했다. 주열의 계획은 기간이 있었다.

그가 겨우겨우 만들어 빼돌린 최고급 원단과 모피, 금사는 한정되어 있었다. 실패는 허락되지 않았다. 오직 한 벌, 그 한 벌이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최초로 ‘걸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아….”

그는 멍하니 자색 치마와 배자, 저고리를 바라보았다.

애련의 봉안탑에 두고 온 옷이나 그 전후로도 만들었던 옷과 비교할 수 없었다.

전통적인 고려의 저고리와 치마의 색 배합은 대조성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주열은 비슷한 색의 저고리를 만들었다.

다만 색의 채도와 명도를 조절했다. 끝동부터 진동까지, 그리고 곁마기까지.

어찌 보면 색동저고리라고 볼 수도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주열이 만든 저고리는 색동과 색동의 구분이 아예 불가능했다. 이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애초에 침염된 실로 만들어진 원단부터 자신의 생각대로 구현되어 있었다.

상의 전체를 넘어 한 벌로 구성된 치마까지.

색은 진해졌다 연해졌으며, 연해지다 끝에 가서 날아오르듯 진해졌다.

주열은 색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는 단 한 번의 거슬림도 없는 색의 이어짐을 구현했다. 이어진 색은 여성의 신체에 맞추어 강조점과 이완점을 두었고 치마의 끝자락에 가서 날아오르듯 점정했다.

그가 가진 장점을 이용해 의복의 전체적인 모습과 색을 구현한 뒤에는 주열은 철저하게 당대의 관습과 유행을 이용해 다른 부분을 꼼꼼히 마무리했다. 파격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격식을 지킬 때는 지켜야 했다. 고대와 깃은 평범하게 했으며 길지 않은 옷고름을 장식용으로 달았고, 드러나지 않도록 겉섭 안에 단추를 달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머릿속에 희미하게 떠다니는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그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재봉틀을 돌렸던 것이 자신이지만, 이런 정도의 옷을 만들어낼 수 있다곤 자신하지 못했다.

주열은 다소 떨리는 손으로 그 옷을 곱게 접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상자에 넣었다. 그다음은 꽁꽁 싸맸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수수한 보자기로 상자를 칭칭 감았는데 그것도 불안해서 뜯어버리지 않는다면 열어볼 수 없게끔 바느질까지 겉에 대충 했을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주열은 평상시 알고 지내던 아저씨를 만났다. 공장에 재료를 납품하는 자였고 반대로 공장에서 우체국까지 물건을 배송하는 자였기도 했다. 꽤 중요한 업무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사장과 알고 지내는 자였으며, 당연히 그동안 그의 범죄 행각에 어울리기도 했다.

다만 이제 주열은 꽤 많은 업무를 하고 있었고, 지나가듯 자연스럽게 거짓을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 아저씨는 약간 머리가 나빴고, 공장의 세세한 업무에 대해서는 별 간섭 혹은 의심을 하지 않았다.

주열은 떨리는 속마음을 숨기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여기 이번 달 물품이에요. 이거 다섯 개는 등기로 보내래요. 대금은 여기.”

“어후, 뭐가 이렇게 많아.”

한참을 투덜거리던 아저씨는 확인하지도 않고 마차에 짐을 잔뜩 실었다. 그리고는 우체국으로 출발했다.

주열은 그 짐칸에 실린 것들 중 유난히 시선이 가는 한 상자를 바라보다 이윽고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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