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77화 (477/653)

명품(2)

잠자코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계속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미꾸라지처럼 도망가?

지영은 완전히 꼭지가 돌았다. 잔뜩 화가 났는지 말도 못 하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에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시녀가 대신 대답했다. 주인의 기분을 맞춰줄 겸, 호랑이의 권세를 빌리는 여우의 쾌감을 느낄 겸 입을 열었다.

“당신 미쳤어? 이분이 누군지 알아?”

모른다, 어떻게 알겠는가. 사람들은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특히나 일반인들은 신문에 찍혀 나오지 않는 이상 웬만한 고위급 정치인들도 몰랐다. 사진 기술이 발전되고 사진신문도 많아졌음에도 여전히 일면과 앞의 몇 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신문 내용은 활자로 가득 차 있었다.

“제일계열의 일원이시다, 빨리 사과드리지 못해!”

다른 시녀가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궁금증은 충족되었다. 하지만 담당자는 그 말을 듣더니 오히려 파랗게 질렸다. 아무리 그녀가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별 관심이 없어도 이곳 청해에 살아가는 입장으로 저런 회사의 명칭을 들어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거부다. 일반적인 부자의 범위를 넘어선 자들이다. 명품관에 들어선 뒤에도 금액에 상관없이 돈을 쓸 수 있는 자들이었다. 매대에 있는 것을 전부 다 구매하는 것은 아주 소박한 행동일지도 몰랐다. 이들은 가격보다는 희소성으로 움직였다.

백화점으로서는 최고의 고객이 아닐 수 없었다.

“뭐 해? 무릎이라도 꿇지 않고!”

그러니 그 말을 들었을 때, 담당자는 이전과 달리 허망한 얼굴을 했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는 지영과 의기양양한 시녀들을 바라보며 서서히 의지가 꺾이는 것을 느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냥 때려치고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그녀는 재봉에 재능이 없었지만 심미적인 만족을 충족할 수 있는 자신의 일에 굉장히 만족했다. 더군더나 이곳은 급여를 넉넉하게 주었다. 그녀는 돈을 모아야 하는 입장이었기도 했다.

어쩌면 자존심은 별게 아닐지도 모른다. 담당자는 고개를 늘어뜨렸다.

“누나, 제가 잘못했는데 제가…….”

이 모습을 바라보던 신입도 이제 공사조차 가리지 못할 정도로 당혹해하고 있었다. 숫제 울먹일 정도였다.

하지만 담당자는 처연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책임지는 직급이었다.

“됐어, 넌 비켜있어.”

제국과 연방 바깥세상엔 여전히 푸른 피를 가진 귀족들이 존재해 떵떵거리면서 살아갔다. 프랑스 혁명 이후 조금씩 바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러했다.

반면 고려에는 아주 일부의 계층을 제외하면 귀족이 없었다. 황실도 종통에서 분리되어 방계가 된 뒤 한두 차례 더 내려가면 일반적인 국민이 되었다.

그것은 분명한 자랑이었다. 제국이 이상향과 같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계급을 낳았다.

거부들, 황금으로 가문을 일구는 자들.

유럽의 귀족들이 한 줌 땅을 부여잡고 있다 한들 이 고려의 부자들과 그 성세를 비교할 수 없었다. 경제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나라에서 장사하는 자들은 성공만 한다면 천문학적인 돈을 벌곤 했다.

이들이 과연 유럽의 귀족과 뭐가 다른지.

담당자는 무릎이 꺾이는 와중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것들이 이 돼지같은 년들의 팔다리에 걸쳐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폭발시키지 못하는 화는 응어리져 마음속 깊은 곳에 침잠해 들어갈 것이지만.

하지만 그때,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 또각 또각

담당자는 순간 자신의 팔뚝을 붙잡고 들어올리는 힘을 느꼈다. 여인의 힘이라 강하지는 않았을 텐데, 어느새 그녀는 반쯤 꺾여진 무릎을 바로 폈다. 담당자는 멍하니 자신을 일으켜 세운 상관을 바라봤다. 같은 건물 안에 있더라도 까마득한 사람이라 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그녀는 이 여인을 먼발치에서나마 한 번 보았고 그때 이후로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의기양양하게 행동하던 지영은 처음으로 크게 당황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실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몸에 걸친 것부터 남달랐다. 거의 황실에서만 입는다는 비쿠냐로 만든 페르시아식 숄은 엄청난 가격 이전에 구할 수 없었다. 이러한 외형과 그 속에 내재한 기품은 이 여인을 정녕 황금의 암사자라고 부르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암사자는 지영의 앞에 와 입을 열었다.

“제 직원이 저지른 무례를 사과드리죠. 보상을 원하신다면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저자세적인 말. 하지만 서늘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연희의 모습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께서는 나가주셔야 하겠습니다.”

“그…그럴 수는 없잖아요!”

지영은 처음으로 존댓말을 했다. 지영조차도 그녀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반항했다. 상점 주인이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

하지만 연희는 고갯짓을 했다.

이곳은 그녀의 왕국, 그녀의 궁전이다. 어중이떠중이가 발을 붙일 곳이 아니었다.

“이… 이렇게 할 순 없어. 아무리 당신이라도!”

경호원 두 명이 망설임 없이 지영을 잡아끌었다. 그들이 상전을 회전문 바깥으로 보내려 걸음을 옮기자 그 뒤에서 시녀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따라나섰다. 한순간에 이곳에서 벌어진 소란은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구경꾼들은 많았다. 흥미진진한 볼거리였던 모양이다. 백화점 임직원들에게는 썩 좋지는 않았다.

“괘…괜찮으시겠습니까?”

연희를 따라오던 본부장 중 하나가 말했다.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아무리 연희라도 저 정도 거물은 이렇게 악연으로 남기기엔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연희는 상관하지 않았다.

“잘 들어요.”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본부장도, 무릎을 꿇을 뻔한 담당자도,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표정의 신입도, 그리고 심지어 구경하던 사람들도 모두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이곳은 내가 아는 한, 최고의 맵시 왕국입니다.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연희는 입을 계속 열었다.

“내가 말했듯, 손님은 공후(公侯)입니다. 그대들은 그러한 분들을 잘 모실 의무가 있어요. 이것이 당신들의 업인 이상에는.”

그녀는 이제 담당자를 보았다.

“허나 반대로 받은 대접만큼의 존중을 이 왕국에 보여주지 않으신다면, 그 손님 또한 이 궁전에 발을 디딜 자격이 없습니다. 이를 잘 알아두세요.”

― 짝짝짝

누군가 절묘한 순간에 박수를 쳤다. 연희는 내심 놀랐다. 필요한 말이었고, 실제로 연희 백화점의 신념과 같은 말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굉장히 강한 말이었다. 손님들이 듣기에는 어쩌면 불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중들은 처음의 박수 소리에 호응했다. 박수 소리가 여러 군데로 번져나갔다. 심지어 일 층뿐만 아니라 위층에 있는 사람들도 갑자기 박수를 따라 친다거나 혹은 무슨 일이 났는지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연희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만 그 전에 담당자를 보았다.

“당신을 기억해요. 저저번 달 우수 사원이었죠?”

평소 행실은 항상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네? 네!”

“이번 일은 잊어버려요. 잘했으니까. 어떠한 견책도 없을 거예요.”

“가…감사합니다!”

연희는 이곳을 본 다음 금방 다른 곳으로 갔다. 둘러볼 곳이 남아 있었다.

담당자는 괜시리 붉어진 눈동자를 비볐다. 고객을 응대하는 백화점 직원들은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실격이었다.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려던 찰나, 갑자기 아까 전에 온 손님이 다시 오셨다.

사건이 일어난 상품들의 주인이었다. 물론 그분들에게 잘못은 없었다.

잊기도 힘들 정도로 독특한 외모의 손님이었다. 키는 거의 일 미터 구십에 달했고 덩치는 자신이 본 어떤 남성보다 컸다. 뚱뚱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슨 돌덩어리를 보는 것마냥 원초적인 야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분은 부인과 같이 계셨다. 입 밖으로 꺼내면 실례인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부인은 굉장히 이국적인 미인이었다. 아마 서아시아 쪽의 사람일지도 몰랐다. 부인께선 나이가 오히려 남편보다 많아보였다.

굉장히 특이한 조합이었다.

이 남성은 언뜻 보기엔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격식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어떤 면에선 더없이 화려했다. 손목에 찬 시계, 저거 자신의 눈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 분명히 찰나의 최고급 시계일 것이다. 저런 것 가격은 정말 엄청났다. 일반 사람들이 정말이지 몇 년 일해도 얻기 힘들 정도의 귀물이었으니까. 심지어 찰나나 헨라인 같은 최고의 시계회사는 백화점에 매장조차 보내지 않았다. 백화점 명품관에서는 휘선과 청금, 뒤테르트레 같은 차상의 상표 등이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아시아의 미부인은 이제 젊다는 수식어를 쓸 수 있는 시점이 지나고 있음에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몸은 통채로 된 아바야, 혹은 차도르를 입고 있었다.

종교적 강권은 존재하지 않고 또한 사막 모래가 휘날리는 곳이 아닌 만큼 미부인은 금과 청금석으로 된 비녀를 꽃아 머리를 완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어깨에는 눈이 내려앉은 듯 보석이 박혀 있으니 미부인 또한 기품이 흘러넘쳤다.

“오, 꼼꼼하게 포장을 잘 해주셨구려. 내 딸아이가 좋아하겠소. 자, 이거 받으시오.”

남자는 갑자기 흰 봉투를 내밀었다.

“예?”

“별 건 아니고, 아까 좀 지켜봤소. 아까 나 때문에 곤욕을 치른 거 같던데. 미안하외다.”

대체 왜 미안해하시는지는 몰랐지만, 담당자는 얼결에 봉투를 받아들었다.

“이…이런 것을 주시면 받을 수가 없습니다.”

“거절하지 마시구려. 이건 부정한 청탁이나 그런 것이 아니오. 그럴 이유도 없고. 단지 내 호의일 뿐이니까 부담가지지 마시구려.”

먼저 받아놓고 딴소리를 하는 것이 웃겼지만 그녀는 이상했다. 보통 이런 것은 거절해야 하는데, 이 남자의 앞에선 감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기세라 해야 할까, 심리적 압박이라고 해야 할까. 이 남자의 명령 아닌 명령은 방금 전의 진상, 지영과는 완전히 달랐다. 감히 견주지조차 못했다. 심지어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속삭였다.

“자 이만 나는 바빠서 가봐야겠구려.”

담당자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남성과 부인은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바로 화장실에 가서 봉투를 열어보았다.

헉 소리 나는 금액의 수표가 들어 있었다. 담당자는 떨리는 손으로 그 봉투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갑자기 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돈이면 정수랑 정연이 공부 더 시킬 수도 있어. 그러고도 한참 남아…!’

그녀는 세수를 했다. 화장품을 다시 발라야 하겠지만 괜찮았다.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한 존재라, 처박혔던 기분은 어느덧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 *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연희는 경비원들만 남아있게 될 백화점을 뒤로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주차장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그녀의 자동차와 운전기사가 부름에 다가왔다.

그녀는 자동차에 올라탔다.

자동차는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움직였다.

박람회 이후 곧바로 산 것이다. 가격 값을 했다.

비서 한 명이 몇 가지 서류를 들고 그녀의 옆좌석에 올라탔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아까 본부장이 했던 말과 똑같았다.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연희는 되물었다.

“괜찮지 않을 이유는?”

“제일계열은 대단한 회사잖습니까? 아마 이 제국 내에서 열 손가락에 꼽을 겁니다. 게다가 언론사도 있으니 전하를 물어뜯으면 어쩝니까?”

“그 년이 호랑이의 기세를 빌린다면, 나도 똑같이 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어?”

비서는 그 말에 할 말을 잊었다. 물론 그렇긴 했다. 그러면 아무리 제일이건 나발이건 저항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연희도 자신이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을 알았다.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뻔했다. 아마 그 사건이 벌어진 명품 매장의 상표가 그녀의 남편이 밑바닥에서부터 쌓아올린 것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집에 도착했다.

경호원이 큰 저택의 문을 열어주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덩치 큰 개가 달려와 꼬리를 쳤다. 똘똘이라는 다소 성의 없는 이름과 달리 이 개는 스코틀랜드 산의 고급 견종에 속했다.

연희 부부는 이 개를 정말 좋아했다. 개 또한 주인에게 말 그대로 눈이 되어주는 등 참으로 많은 것들을 베풀곤 했다.

한바탕 개를 쓰다듬은 뒤 마당을 지나친 그녀는 불이 꺼져 어두컴컴해보이는 집의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바라보면 아무도 없어보였다. 평소 집사를 따로 두진 않았고 청소부와 정원사 등만 계약한 덕에 지금 시간에는 그들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가 거실의 불을 켜기도 전에, 집의 지하실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다.

― 달달달달

연희는 경계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씻은 다음 옷걸이에 옷을 걸어 놓고 평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런 뒤 갑자기 술이 끌리는 것을 느껴 보관해놓았던 나파곡산 포도주 한 병을 열어 유리잔에 한 잔 따랐다. 그리고는 그 잔을 가진 채로 아래층으로 가는 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안에도 여전히 어두웠다. 그녀는 익숙하게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아늑한 작업실에서 한 남성이 재봉틀을 만지며 작업을 하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포도주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는 홀린 듯 남편의 등을 바라보았다. 집중하느라 약간 굽어져 보였다. 건강에 좋지 않으니 빨리 등을 펴라는 잔소리를 하는 대신, 그녀는 그의 작업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아 방해하기 싫었다.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빨랐다. 어느 한 분야에 전문화된 것을 넘어, 일가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명장이다. 시력은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의 작업은 한동안 이어졌다. 어딘가 하나에 집중을 하면 주위를 다 잊어버리는 것은 천재들의 공통된 특징일지도 몰랐다.

어깨가 뻐근한지 마침내 남편이 작업을 멈추었다. 덜덜거리는 재봉틀의 소리도 멈추었다. 전기 재봉틀은 박람회장에도 있었다. 사람들은 별 관심 없었지만 연희는 남편에게 최고로 잘 설계된 재봉틀을 사 주었었다. 저게 그것이었다.

소리가 조용해지고 나서야 나지막한 사람의 숨소리를 들은 모양. 남편은 한순간에 경계했던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안온한 미소를 띠었다. 입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아내의 체취를 그제서야 맡은 것일까.

“왔어?”

“당신도 늦을 줄 알았는데.”

“내가 술을 안 마시니까 다르크 서방이 먼저 잔뜩 마시더니 취하더라고. 부름차를 불러 주고 보냈지.”

“당신이 해준 이야기가 재미있었나보네.”

“그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장대로 더듬거리려 하자 연희는 유리잔을 쥔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그의 팔짱을 끼고는 지하작업실 계단을 올랐다.

“난 지금 술 마시고 있는데.”

“그럼 나도 한잔 줘.”

“당신 못 마시잖아?”

“변명인 거 알잖아. 오늘 작업도 마쳤으니 그냥 줘.”

짓궂게 웃던 연희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잔을 하나 더 꺼냈다.

아이를 기숙사가 있는 중학교에 보내 놓으면 이렇게 여유가 생긴다.

부부는 프랑스식 안락의자, 즉 소파에 앉아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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