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67화 (467/653)

아프리카 문제(2)

“그게 서운하다는 겁니다. 각하.”

회의가 지지부진한 틈을 타, 고려의 대사 일행은 무타파 외조판서와 따로 독대했다.

무타파는 먼 옛날부터 독자적인 관직들이 있었지만 중앙행정을 하기엔 체계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정치 체제라는 것은 후발주자인 국가가 선진국에서 수입할 수 있는 아주 대표적인 제도 중 하나였다. 그러니 무타파가 만종과 더불어 친근한 동아시아식 정부질서와 관료제, 명칭 등을 수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므웨네라는 전통적 칭호는 ‘왕’이라는 새 단어와 혼용되어 쓰였으며 기타 여러 가지의 단어도 그랬다.

무타파도 이제는 작은 나라가 아니다. 마땅한 국제적 표준에 따르는 것이 현명했다.

심지어 본래는 무타파 제국이라 불린 이 왕국은 외왕내제라는 개념도 수입했다. 고려는 별반 신경 쓰진 않았지만.

다만 무타파는 국력과 영토에 걸맞게 부의 종류와 기능, 규모가 폭넓은 고려의 3성 15부제와 기타의 관직체제보단 상대적으로 따라 하기 쉬운 조선식의 9조제를 채택했다.

조선과도 차이점이 있긴 했다. 이들은 체제를 수입할 때부터 옛 유교식 부서 이름인 이호예병형공의 이름 대신 고려마냥 직무적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조선은 경신대기근이 지난 이후에야 행정개혁을 하며 부서 이름을 변경했었으니 수출국이 수입국보다 가끔은 늦을 때도 있는 법이었다.

“뭐가 문제입니까?”

“이런 말을 하긴 내키지 않으나, 아국의 정치와 문화는 아직 발전 단계에 있습니다. 다른 열강들이 지금껏 밟아왔던 과정들을 한 걸음씩 뒤따라가는 중이지요. 하지만 고려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걸음 수준 정도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뛰거나 날아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까?”

외무상서가 분개했다.

“어떻게 다른 민족을 학살하지 말라는 것이 뛰거나 날아다니는 요구라 생각하시오?”

무타파 외조판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길면 자연스럽게 곱슬곱슬해지는 아프리카인 특성상 관직에 오른 자들은 대체로 머리가 몹시 짧았다. 얼핏 보면 승려라 생각할 정도로. 아마 불교적 기풍일지도 몰랐다.

외조판서의 복장은 전형적인 최상류 무타파인의 복식이었다. 상류층 남자의 평균 복식은 승려의 가사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세계 최대의 면직물 및 모직물 수출국과 가까이 있는 덕에 지금 이들이 입고 있는 옷들은 대체로 면 소재였다.

이들은 먼 옛날의 고려 승려들이 입던 장삼을 널리 입었다. 승려가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남성이 그러했다. 아무리 열대 기후 중에서는 그나마 온화한 열대건조기후(사바나)라 하더라도 덥긴 더운 나라인 만큼 장수편삼 대신에 소매가 짧은 단수편삼을 입고, 그 위에 따로 무언가를 걸치지는 않았다. 바지는 당연히 군자를 입었다.

굉장히 묘했다. 고려 자체도 불교적 전통이 남아있긴 했지만 사찰과 일부 불교도들에 한정했다. 도리어 고려는 조선계 이민자들이나 유럽계 이민자들로 인해 많은 문화가 복잡하게 섞이고 있었다. 어쩌면 사학자들은 제아무리 조계종과 천태종의 파생 불교에 불과한 만종이라지만 불교적 색채를 짙게 유지하는 대표적인 곳을 꼽는다면 이곳이 아닐까 하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을 법했다.

다만 짐바브웨에 거주했던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무타파 전통 양식도 충분히 도드라졌다.

그들의 전통 장신구인 이포리야나는 다소 몰개성적인 장삼을 대신해서 부와 재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다. 목걸이처럼 목에 두르는 이포리야나는 동물 가죽에 구슬이나 보석을 끼웠다. 어깨에 두르는 가죽인 카로스도 지위를 상징했다. 가끔 무타파 최상류층들은 고려를 통해 이국적인 옥저의 모피를 사들여 카로스로 만들기도 했다.

이제는 무타파도 독자적으로 인도와 교류할 수 있으니 이들의 문화가 어디로 나아갈지는 모르지만, 무타파는 분명히 고려의 제자 중 하나였다.

물론 스승과 제자 사이도 가끔은 언쟁이 오고 갈 때도 있는 법이다.

외조판서가 입술을 떼었다.

“저도 역사 공부를 꽤 했습니다. 부여와 고씨 고려로부터 시작되는 고려의 역사와 지나의 역사도 배웠지요. 또한 유럽의 역사도 배웠습니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지금껏 그들의 역사가 지금 우리가 나아가는 역사와 다를 바가 있습니까?”

그는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인류 문명의 발전엔 필연적으로 정복과 지배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야 통합과 번영이 뒤따랐지요. 아프리카의 형제들은 비유하자면 옛 고씨 고려 시절의 원삼국시대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귀국의 선교와 문화 전파 덕에 발전한 우리 무타파가 아닌 다른 부족들은 그보다도 더 못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여쭤보겠습니다, 각하. 고씨 고려가 주변의 흉노와 선비, 오환, 구옥저와 숙신, 읍루 같은 다른 부족들을 창칼로 통합하는 것은 위대한 정복이고, 우리가 다른 부족들을 창칼로 통합하는 일은 비참한 학살입니까?”

그 말엔 외무상서도 즉시 반박하진 못했다. 현대주의의 발행으로 도덕적 면모를 생각하며 온갖 군데에 오지랖을 부리기 시작한 고려의 지식인 계층으로서 한마디 따끔한 질타를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지금 고려의 시선으로 저들을 보는 것도 굉장히 불합리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려의 체면이라는 것이 있었다.

고려 외무상서 이익은 조선 출신이다. 루손에 있었던 그의 아버지 이하진은 사헌부 관리였지만 조선 지식인들이 수틀리면 그러하듯 중추원 의원 비리를 캐며 한번 들이박았다가 결국 고려로 이민 온 사람이었다.

당금 천하를 전통적 동아시아의 조정에 비유하자면 군신의 체계와 같았다.

천하관이 이제는 시간과 공간, 인식의 제약을 거의 넘어 바야흐로 전 곤여(坤輿, 지구)와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그 체계는 이전과는 사뭇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비슷한 점은 있었다.

역적질을 하려던 자들은 전부 오체분시를 당했거나 사약을 마셨거나 혹은 저 눈 쌓인 곳으로 귀양을 갔다. 그러니 마침내 조정에 평화가 드리운 순간이었다.

이제 곤여의 대전 앞의 용상엔 고려의 천자가 앉아 있었고 그 앞에 국가들이 나뉘어 있었다.

삼사삼공태자부를 전부 논해보자면 삼사에는 조선과 백제, 근래에 좀 불민한 일이 있었더라도 옥저가 있었고, 삼공에는 도이치와 에이레, 네덜란드가, 태자부의 위에는 이탈리아와 아련, 이라크 같은 나라가 앉아 있었다.

완전히 비슷하진 않더라도 어쨌든 그러했다.

그러니 이 곤여라는 조정에서, 어떠한 문제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당연히 용상에 앉은 자의 책임이다. 그게 ‘군주들의 군주’라는 호칭에 따라오는 책임이었다. 곤여에 발을 디딘 자 중에서 고려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처럼 고려의 행동을 기대하지 않는 이도 없었다. 심지어 고려의 국민들도 그랬다. 전쟁의 승리는 귀당의 일시적인 약체화를 불러왔고 경당과 교당의 강성함으로 이어졌다. 두 정당 모두 어떻게 해서든 고려의 대외 책무를 이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식민지 해체라는 소리를 직접 꺼내어 열강이 타고 오르던, 타고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죄다 끌어내리고 불태운 고려는 그 뒷수습도 마땅히 해야 했다.

이런 문제는 어렵다. 천자에게도 정말 어려웠다. 적으로 규정한 역적놈들에게 거대한 군함을 끌고 가 사방의 항구에 대포를 쏘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다.

하지만 조정에서 나름대로 이유를 들며 타당한 불만을 제기하는 인물에게 지금 무슨 소리를 내었느냐며 철퇴를 휘두르는 것은 폭군이라는 명칭을 받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이러면 모든 나라는 고려의 패권을 인정하더라도 불만이 섞인 눈으로 바라볼 것이 분명했다. 이 불만은 지금 당장 표출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고려가 등에 종기가 나 앓아누웠을 때 비로소 터져 나올 것이다. 고려도 항상 완벽할 순 없었다. 가끔은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으니까. 메뚜기, 화산, 해일, 지진. 대자연은 천자를 가리지 않았다.

“그대들 쇼나족은 반투계요, 하지만 같은 반투에게도 많은 일들을 저질렀지. 지금 하나하나 다 말해볼까요? 카랑가, 통가, 느과토, 마콰, 제주루. 이런 부족들이 직접 고려에 와서 그대들의 행동을 제지해 달라고 얼마나 사정했는지 아시오?”

“아국은 귀순한 부족장들에겐 마땅히 예우를 다했습니다.”

이익은 그 말에 핏대를 올려 가며 말했다.

“그 귀순한 부족이라곤 마니카와 은데벨레 정도가 전부지 않소이까? 그대들의 대외정책은 너무나 강경하오. 하, 만종을 국교로 삼으면 대체로 그러하지. 왜 그런 게요. 그대들이 말하는 백귀들, 유럽인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으면 같은 형제들을 그렇게 핍박하는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이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왜 저 양이들의 나라인 포르투갈령 남아프리카, 아니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내버려 두신 겁니까? 마땅히 본국으로 쫓아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익은 그 말에 격노했다.

“왜냐면 더 이상 그곳에 유럽인이라 불리는 자들은 없기 때문이지!”

외조판서가 목을 움츠렸다. 이포리야나가 살짝 흔들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람들은 본국과의 연락이 어려워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했소. 더 이상 포르투갈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별로 없소. 혼혈도 많아요. 그럼 그들까지 전부 도륙할 생각이시오? 단지 피가 섞였다는 것만으로?”

외조판서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외세의 무리들은 마땅히 이 신성한 대지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무타파 외조판서 같은 고위 관료들은 영양 상태가 상당히 좋았다. 또한 만종을 신봉하는 교도답게 검은 피부 밑에 꿈틀거리는 근육도 대단했다. 방금 자신의 기세에서는 밀렸지만 이익도 어조를 다소 누그러뜨렸다. 다독여야 할 때다.

“그 신성한 대지의 범위는 너무 광범위하구려. 어떠한 역사의 기록들에서도 그대들의 역사적 영토가 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영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순 없소.”

무타파가 항변하려 했다. 하지만 이익은 그 순간 적절하게 외조판서의 변명조차 먼저 잘라냈다.

“소토나 줄루, 소사와 같은 반투계 부족의 존재를 들며 그대의 주권이 그곳까지 닿는다 말하진 마시구려. 그들은 오히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속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으니까. 그대들이 한 행동의 결과 덕분이지.”

무타파 외조판서는 심각한 얼굴을 했다.

이익이 슬며시 뒤를 바라보았다. 대화를 듣고 있었던 세희가 앞으로 나왔다. 좋은 경관 나쁜 경관 역할을 구분하자는 것은 이익의 제안이었다.

“세계가 바뀌었어요. 우리도 더 이상 정복전쟁을 하지 않아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요. 영토는 대국의 조건이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황실도 무타파의 사정을 알고 있어요. 무타파는 분명히 큰 나라예요. 대국이라는 소리지요. 이미 무타파의 강역은 그대들을 억압했던 유럽의 나라들보다 영토적인 면에서 훨씬 큽니다.”

무타파는 아프리카의 곡창지대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짐바브웨 부근은 무타파의 빵 바구니였으며, 관개농업이 제대로 된다면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비옥한 대지기도 했다. 제대로 된 발전이 이어진다면 잠재력은 유럽 못지않았다.

세희는 외조판서를 보았다. 세희의 칭찬에 약간의 미소를 띤 이자는 무타파 조정의 실권자였다. 현 므웨네가 만종에 심취해 매일 수련장에서 무술을 연마하겠답시고 봉을 휘두르기만 하면서 국정을 소홀히 하는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세희는 사전에 받았던 해청의 제안을 입에 담았다. 그녀의 오빠는 황궁에 들어앉아 있음에도 전 세계의 상황을 속속히 알았다.

“제가 테테 회의와는 별개의 제안을 하나 하지요.”

“예?”

“비밀은 아닙니다. 따로 공표할 겁니다. 황상께서는 잠베지강 상류에 무타파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건기와 가뭄을 대비하기 위해 대형 둑을 지어드릴 의향도 있으시답니다.”

“대형 둑… 말입니까?”

건축 기법이 발달하며, 둑의 크기와 구조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게 커지고 있었다.

과거에도 둑은 많았다. 신라 시대에도 벽골제 등의 제방이 있었고 로마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시절에도 둑은 많았다.

다만 산업화된 이후의 대형 둑은 정말로 과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것들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구조물 중의 하나로 속했다.

홍예 혹은 더 광범위하게는 아치로 일컬어지는 구조를 띤 이 구부러진 대형 둑은 강회 건축과 공학 기술이 충분히 발전된 지금에서야 어떻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건축이 되었다.

고려도 창강과 광하 유역, 치치멕강과 미시시피의 거대한 수운을 통제할 필요를 느껴 둑 건설 사업에도 예전부터 큰 관심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려는 아랍 연방에게도, 이집트에게도, 물이 절실한 다른 몇 개의 나라들에게도 대형 아치 둑을 지어주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다. 왕이 신민들을 위해서 관개수로를 정비하던 것처럼 이것들도 그 땅에 살아가는 자들에게 큰 이득이 될 것이 분명했다.

무타파도 이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다만.”

세희가 손가락을 하나 폈다.

타인종끼리는 가끔 사람 간의 매력을 헤아리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외조판서는 이 황녀가 소문대로 대단히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외모뿐만이 아니라 분위기와 기품 모두.

미인계, 선천적 본능이고 가장 위험한 계략이다. 그의 정신이 살짝 흐려졌을까, 판서는 뒤늦게서야 황녀의 제안을 겨우 따라갔다.

“조건은 간단합니다. 향후 십 년간 무타파는 국경 내외로 다른 부족들에게 심한 유혈사태를 일으키지 마세요. 특히나 나미브의 코이산족에게는 더더욱.”

“그… 심하다는 기준은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전적으로 황상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세희가 언급한 둑은 황제의 제의인 만큼 정부의 돈이 아닌 전적으로 황실 자금으로 나갈 예정이었다. 황제의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었다.

무타파 외조판서는 아주 솔깃한 모양이었다. 대형 아치 둑은 지금 돈을 천문학적으로 지불해도 얻지 못했다. 무타파가 그 천문학적인 돈을 지불할 능력이 되는지는 고려하지 않더라도.

다만 직접 중산이나 시대 등의 대형 건설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황실은 큰 무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건설이 큰 경험이 되고는 했다.

공동의 이익, 평화를 논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식이다. 외무상서 이익도 이를 인정했다.

외조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황은에 감사드립니다.”

“휴식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아, 판서께서는 회담장으로 돌아가신 다음 콩고 왕세자를 불러주시지요.”

음판주 아 니미, 말입니다. 세희가 일부러 뒷말을 강조했다.

피곤에 찌든 이익이 파안대소하려다 자신의 뺨을 두들기며 참아냈다.

* * *

[지출내역 추가.

무타파에 대형 둑 건설.

콩고 철도 건설.

지부티 항구 건설.

부간다 항구 건설.

범서아프리카 해안 철도 건설.]

상민은 만년필을 들어 내일 시장에서 장 볼 목록을 적은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끄적이곤 수첩을 닫았다.

각기 어마어마한 수준의 토목 공사였다.

식민제국들처럼 남의 나라에 함부로 철도와 항구를 부설한 다음 그 이윤을 온전히 집어삼키는 패악질을 부린 것도 아니다. 정말 건설해주고 그 이윤을 알아서 챙겨보라는 의미의 ‘적선’이었다.

건설비 회수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이들은 개발도상국 수준도 아닌 극히 낙후된 최빈국들이다. 건설비 회수가 착취 수준일지 몰랐다.

하지만 상민은 상관없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무려 황철의 소유자다.

현시점 황립철도는 고려 전역에 무시무시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눈 덮인 서한주 철도까지도.

아프리카 작은 구역에 복선 하나 정도 까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둑 몇 개와 항구 몇 개 짓는 것도 일도 아니었다. 고려는 심지어 대전쟁이라는 혼란한 기간에도 자기가 쓸 만한 군항들을 이리저리 지었고, 이라크에서 튀르키예까지의 철도를 깐 적도 있었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도리어 기분이 꽤 좋았다.

기반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런 나라들은 이런 시설이라도 있어야 뭔가 희망이라도 보일 것이다. 부자가 빈자에게 하는 적선은 마음의 안정과 평화라는 측면에서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물론 그도 알았다.

‘이건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정치와 경제, 종교적 질서가 그의 손아귀에 있다 하나, 매사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진 못했다.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가랑비에 옷이 젖고야 말 것이다.

그러니 상민은 현시대, 벌써부터 모든 지식인들과 피억압자에게 단연코 천고일제(千古一帝)라 불리는 해청을 만나러 갔다.

[작가의 말]

작중 가나의 위치는 모리타니와 세네갈의 위치가 맞습니다. 원래의 가나는 아샨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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