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15화 (415/653)

지중해에 감도는 전운(2)

“당신이 나와 동지들을 버린 것은, 비단 자식을 버린 아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희망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뭣들 하느냐, 저 아이를 마차에 태워라.”

“차르라는 사람이 러시아의 신민들이 어찌 사는지 모른단 말입니까! 단 한 번이라도 당신의 신민들이 쓰는 농기구라도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 덕에, 당신의 그 위대한 러시아 때문에 이제 그들은 밭을 갈 제대로 된 철제 농기구조차 없단 말입니다!”

“어서!”

무엇을 해보기도 전에 오흐라나에 의해 체포된 구제동맹이 유배지로 떠난 이후 러시아의 정국은 더 좋지 않아졌다.

구제동맹의 구성원들도 구성원 나름.

드미트리 황자 같은 황족과 대귀족의 자제들은 유배를 가더라도 그 신분을 인정받아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나머지 장교들의 생사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개혁이 시도되지도 못하고 좌절되자, 러시아의 사회는 심각하게 동요되었다.

본래 구제동맹은 드미트리를 중심으로 하는 입헌군주파가 거의 구 할로 대세를 이루었는데, 드미트리가 유배를 떠나게 된 이후부터는 동맹 내부의 분열이 가속화되어 기존의 유배된 동부 결사를 제외하면 서부 결사는 공화정을, 남부 결사는 슬라브 연방제를 주장하며 따로 떨어져 나갔다.

남부 결사는 모스크바의 이목을 피해 말 그대로 남쪽으로 달아난 자들.

이들은 러시아와 문화적으로는 가까워 교류가 잦지만, 그래도 러시아가 온전히 내정간섭을 하기엔 어려운 속국이자 미묘한 위치에 있는 나라, 불가리아로 향했다.

불가리아 대공 일리안 아센(고려식으로 아센재웅)은 러시아의 속국이었고 심지어 블라디미르의 서녀와 결혼한 상태였지만 모스크바의 명령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기로 유명했다.

게다가 그 자신의 자유주의적 통치 철학에 따라 의외로 이 주변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다소 부드럽게 통치하니, 남부 결사들은 이곳을 기점으로 다시금 러시아에 개혁을 불어넣는 것을 꿈꾸기 시작했다.

아들을 유배 보낸 블라디미르는 축적된 정신적 스트레스에 나름대로의 탈출구를 찾았다.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먹는 것으로 쾌락을 찾는 것은 적어도 부도덕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고기와 와인, 치즈와 설탕이 가득 든 빵.

그의 식단은 겉보기에도 전혀 균형 잡혀 있지 않았으며, 그 덕에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전의 잘생기고 강건한 몸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살이 쪘다.

그리고 그 틈을 타 통풍이라는 병이 그를 좀먹기 시작했다.

“나이가 드니 이젠 걷는 것도 아프구나. 오늘 국정은 표트르에게 맡기겠다.”

이에 그는 총신을 불러들이고는 재상으로 임명하여 아들 블라디미르 2세를 견제하며 국정을 돌보라 시켰다.

그라면 태자의 폭주를 잘 진정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하지만, 어느 순간 블라디미르는 신하들이 예전처럼 그를 위대한 러시아의 차르이자 해방제를 경외하는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뒷방에 곧 처박힐 늙은이로 보기 시작한 것을 깨달았다.

물론 여전히 크레믈 내부에서의 영향력은 블라디미르와 표트르가 잡고 있었지만, 군부는 과거에 비해 더없이 나약해진 차르 대신 황태자파에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 젊은 장교단, 구제동맹이 숙청되지 않았다면 차남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몇 차례의 정치분쟁이 이어졌고, 장남과의 관계도 예전보다도 훨씬 안 좋은 방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몸이 예전 같지가 않더라도, 온갖 세월을 헤쳐온 블라디미르가 그의 아들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줄 리가 없었다.

오흐라나는 여전히 차르에게 충성을 다했으며, 사실상 차르가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황태자를 단번에 척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 가뜩이나 둘째를 이르쿠츠크로 보낸 자신의 행동이 러시아의 승계 구도를 불안하게 만들게 되는 셈이다.

황태자의 지지 세력이 구제동맹보다는 훨씬 더 광대하고 넓다는 것도 한 몫을 거들었다.

블라디미르가 여러 이유로 맏이를 숙청하는 것을 머뭇거리고 있을 때, 황태자파는 반대로 정국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대범한 짓을 꾸몄다.

오스만이 고려의 도움을 받아 지은 보스포루스 해협의 방어요새, 포이라즈(Poyraz)에 공격을 했던 것.

블라디미르는 이 소식을 듣자, 분노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라고? 포격? 벨리키 바실리나 벨리키 이반함이 그랬느냐?”

자랑스러운 흑해의 전함 두 척을 언급하는 차르의 말에 표트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테오도로의 흑해 함대는 오로지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애초에 흑해 함대는 표트르의 명을 받아 만들어진 만큼, 지금도 후임자를 잘 선별해 오직 차르의 명만을 받들도록 해놓은 상태였다.

블라디미르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전함이 대동되었다면 사태는 돌이킬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블라디미르, 이 빌어먹을 아들놈이!”

하지만 여전히 군함을 동원해 한바탕 포격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블라디미르는 통풍으로 부어오른 발만큼이나 아픈 머리를 움켜쥐고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어찌하시오리까?”

“우리는 이번 일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 튀르크 놈들의 자작극이라 둘러대라.”

비선으로는 해명을 해야 하겠지만, 블라디미르도 이런 일에 대해선 자신이 유한 태도를 보일 수 없다고 깨달았다.

그런 순간, 군부는 완전히 등을 돌리고 신료들 또한 실망하는 자들이 생길 것이다.

천하에서 두 번째로 강한 강대국이라는 아편에 빠져, 그래도 삶의 고단함을 억누르고 있던 신민들의 불만도 터져 나올 것이다.

이놈, 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썼다.

자신보다도 더.

블라디미르는 갑자기 크게 웃었다.

맏아들의 출생을 의심한 것도 있었지만, 지금 보니 영락없이 그와 마리아 안나의 음흉한 면만을 모두 빼닮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래서, 그는 더더욱 아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정치적으로가 아닌, 정말 생물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내려야만 했다.

‘일이 끝난다면 드미트리의 아들을 다음 대 차르로 만들 것이다. 이번에는 내 정말 열과 성을 다하여 손주의 교육을 끝까지 신경 쓰리라.’

“표트르. 자네만 믿겠네.”

이번에도 믿을 사람은 오직 표트르밖에 없었다.

거구의 충신이 차르 앞에서 고개를 숙여 보였다.

* * *

제국 재상,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로마노프는 너무나도 과중한 업무에 치여 살고 있었다.

블라디미르가 통풍으로 정사의 삼분지 일을 내려놓자, 그 몫은 황태자가 아니라 그에게 갔으니 앞으론 더 심해질 것이다.

물론 그런 덕에, 로마노프가는 류리크 가문에 뒤이어 러시아에서는 도무지 따갈 수 없는 최고의 명문가로 군림하고 있었다.

표트르가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로마노프가의 위세가 등등하다 하나, 류리크의 이름값은 무거웠으며 그는 언감생심 그 위를 넘보려 하지도 않았다.

주군과의 불화가 있었다면 모를까 황제의 총애는 젊었을 적부터 지금까지 여전했고, 그렇기에 이 신하의 충성심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의 충성심이 로마노프의 뜻은 아니었다.

표트르가 황제파로 분류되는 몇몇 신하들을 불러놓고 차르의 명을 전달하는 밤.

그들은 로마노프가의 정원에 위치한 고려식으로 설계된 정자와 그 옆의 연못에서 간단한 식사와 함께 앞으로의 일의 계획을 공유했다.

평범했을 날이었다.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음식은 화로로 계속 데워져 귀족들에게 더없는 만족감을 선사했을 테고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변함없이 차르에게 충성할 것이었다.

하지만 식사 중 간단히 와인을 즐기던 자들이 하나같이 목을 붙잡고 쓰러졌다.

음식을 나르던 시종들에게서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으윽…….”

“로마노프 공작! 대체 무슨 일을…!”

표트르는 자신의 손님들이 피거품을 게워내며 쓰러지자 경악하며 일어났다.

“뭐… 뭣이?”

독살이라니, 자신은 이런 일을 절대 꾸미지 않았다.

와인에 입을 대지 않아 살아남은 귀족 세 명이 황망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칼을 뽑아 들고 표트르를 경계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두리번두리번 정원의 출구로 향하는 와중에도, 표트르는 단지 아연실색한 채로 그의 옆에서 죽어가는 그의 친우인 톨스토이 백작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이번 일은 기억할 것이오! 로마노프 공!”

“차르의 믿음을 배반한 역적! 차르께서 당신을 얼마나 아끼셨는데…!”

하지만 표트르가 이에 변명하기도 전에, 정원 문을 열고 나온 일단의 사람들이 살아남은 세 귀족을 붙잡았다.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표트르가 소리를 질렀다.

“알렉세이!”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로마노프, 표트르의 아들.

부자 갈등은 류리크조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는지, 로마노프에서도 마침내 그 갈등이 터져 나왔다.

― 꺼흑

단도를 빼 들어 귀족 하나의 등을 찌른 알렉세이가 땅에 주저앉은 그의 아버지를 보고 비웃고 있었다.

표트르는 한바탕 연설을 끝낸 뒤 자신도 뒤늦게나마 와인을 들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는지, 고함을 친 이후에 곧바로 밀려오는 현기증에 땅에 쓰러졌다.

“네… 네놈이….”

“어머니의 복수입니다.”

다음 날, 차르가 일어나 로마노프 가문의 변고를 전해 들었을 땐 이미 시간은 늦어있었다.

차르파 귀족들은 어제 일로 대부분 숙청되었고 심지어 이젠 크레믈까지 태자의 손에 떨어져 있었다.

오흐라나는?

응답하지 않는 자들을 불러대며 이리저리 크레믈을 휘젓던 차르의 앞에 마침내 맏아들이 찾아왔다.

“아버지. 안심하세요. 전 알렉세이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제 형제를 죽인 당신과도 다르지요. 목숨만은 살려드릴 테니. 앞으로 좋아하는 음식 많이 드시고, 여자도 많이 탐하시다 가세요. 아들로서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수즈달에 유폐한 뒤 마침내 스스로 제위에 올라, 모스크바 정교회 총대주교로부터 블라디미르 2세라는 칭호를 받아내었다.

해방제의 폐위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제일 먼저 고려가 반응했다.

고려인들이 해방제를 아니꼬워한 것은 사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보다 더 심각했다.

외교적으론 그저 포이라즈의 포격에 대해 사과하라는 입장에서 더 나아간 것은 없었지만, 도리어 종교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설전이 오갔다.

러시아는 상당히 종교적으로 정교회를 신봉하는 나라였으니, 이 같은 논쟁은 정치적 논쟁 못지않았다.

청해 대성당에 있는 고려 정교회의 총대주교와 아테네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대주교는 불의에 편승한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비판하며 새로운 차르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 밝혔다.

심지어 해방제가 임명했던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도 새로운 차르를 비판했다.

― 아들이 아비를 폐위하다니, 이 얼마나 무도한 일인가?

러시아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 선대 차르가 자신의 형을 죽일 땐 가만히 있었던 놈들이 지금 와서 왜 이리 야단인가? 한 가지만 해라.

― 형제들의 제위 다툼이 패륜과 같나? 그리고 현 차르 또한 그 아들이 아닌가?

모스크바를 제외한 세계의 정교회는 블라디미르 2세를 공식적으로 파문했고, 이에 블라디미르 2세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의 이름을 통해 사방에 역으로 파문을 선언하니, 이는 다시금 정교회와 로마의 정통성이란 주제로 회귀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차르가 불러일으키는 갈등은 계속 증폭되어 이전과 달리 도무지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 * *

불가리아.

터르노보.

불가리아 대공국의 주인, 대공 일리안 아센은 침실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침대에 같이 누워 있는 아내가 그를 감싸며 애써 토닥였지만, 아버지가 유폐된 그녀의 속도 만만치 않게 타들어 갈 것이다.

일리안이 입을 열었다.

“여보.”

“왜요.”

“우리, 그냥 고려로 도망갈까?”

일리안은 이 엿 같은 생활을 전부 때려치우고 불가리아 사람 일리안이 아니라 고려 사람 재웅으로 살아가고 싶은 충동을 하루에도 스물네 번씩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제 새로운 차르가 자신을 접견하라며 모스크바에 오라고 권유 아닌 명령을 내렸을 땐, 그의 이 같은 충동은 급격하게 팽창되었다.

빌어먹을 대공은 무슨.

이 땅은 요구르트 빼고는 정감이 가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가 공위에 오른 뒤부터 수도 터르노보는 상당히 많이 발전해 이제는 소피야나 플로브디프의 성세를 목전에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여전히 낙후된 곳에 불과했다.

배달 음식 같은 현대문명의 정수는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보다 훨씬 기본적인 것들도 수준 미달인데 무슨.

처음 그가 이곳에 와서 놀란 상하수도의 미비와 신민들의 끔찍한 청결 의식은 그가 침식을 잊고 매달린 덕에 대폭 개선이 되었지만, 다른 건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아직도 이곳은 전보 대신 비둘기를 썼으며 열차도 거의 깔리지 않았고 땅은 비만 오면 질척거렸다.

농민들은 일자무식에 사나웠고, 외국인 왕에 대해 봉기를 획책하기도 했다.

어찌 이리저리 당근을 흔들며 다독이곤 있었지만, 당근을 사기 위해선 돈이 있어야 했다.

일리안도 나름대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불가리아의 내탕금을 탈탈 털어 이리저리 굴려 돈을 벌긴 했다.

고려 내에서 어마어마한 돈이 오가는 청해 거래소는 안타깝게도 대규모 외인의 돈을 잘 허락하지 않았으나, 그는 상대적으로 제약이 적은 정앙 거래소나 옥저의 솔빈 거래소, 암스테르담 거래소 등을 통해 자금을 현명하게 운용했다.

일정 이상의 자금을 번 뒤에는 불가리아의 환경 개선은 물론이고 기반시설에 재투자했으니, 처음엔 외국에서 뜬금없이 임명된 대공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신민들도 차츰 그에게 자애공이니 하는 명칭을 주며 호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전쟁이 터지면, 이 알량한 도시건설 놀이는 끝을 맺을 것이고, 일리안이 열심히 가꾼 터르노보는 포탄 세례를 맞아 예전으로, 아니 예전만 못한 곳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그는 아내를 바라봤다.

처음엔 이 여자가 블라디미르의 서녀라는 사실에 의심하고 짜증을 내며 밀어냈지만, 그녀가 진심을 다해 자신을 돌봐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그도 마음을 연 상태였다.

물론, 그녀 또한 정기적으로 보내는 크레믈에의 서신을 남편에게 털어놓아야 했지만, 그 후 이 부부는 운명공동체의 처지를 자각하게 되었다.

“콱 죽여버릴까?”

“뭐라구요?”

“당신 오빠 말이야.”

옐레나는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자애롭고 내정에는 유능하지만 성격은 영락없는 겁쟁이인 남편이 하는 말과 달리 그런 면에선 영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번 모스크바에 반기를 들지만, 모스크바가 한 번 째려보면 지레 겁먹고 물러난 적이 한두 번인가.

그러나 일리안은 진지했다.

“…이번에 내가 모스크바에 가면,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한 사람이라도 덜 알아야 하기 때문에 세부 내용을 알려줄 수는 없었지만, 그는 아내에게 확신을 듣고 싶어 했다.

고려의 대외부가 비밀리에 접근해 참수 작전의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 어제의 일이다.

성공확률은 모른다.

하느님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결단을 내리면, 장인을 다시 권좌에 복귀시킬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오흐라나의 무시무시함이 길거리의 괴담으로 떠돌아다니는 정도였다면, 고려의 정보국은 그 괴담마저도 나돌아다니지 않게 없애 버리는 수준의 서늘한 그림자와 같았다.

“미쳤어요?”

하지만 옐레나가 펄쩍 뛰었다.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남편의 눈에 정말로 처음 보는 살기가 감도니 여러모로 위험한 일이었다.

“당신이 그런 행동을 한다면, 우린 다 죽어요! 우리뿐만 아니라 불가리아 사람들도! 우리는 러시아의 봉신국이니 러시아가 우리를 징치해도 그 어떤 이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끼어들겠어요? 고려도 그 정도까지 하지는 못할 거예요!”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낀 약소국의 비애.

옐레나는 러시아 공주로서 크레믈의 주인들이 가진 잔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모략은 성공할 때는 좋은 일이나, 실패할 때도 고려해야 했다.

게다가 루스인들은 약자에겐 한없이 잔혹했다.

그녀도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고 오빠를 증오했지만, 그보다는 일리안을 더 사랑했다.

“약속해요. 당신과 나를, 당신의 아이를, 신민을 위험에 빠트릴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알았어. 약속할게.”

남편은 다시금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쩌면, 그저 웅크려 있다면 평화가 찾아올지 모른다고.

어쩌면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위기로만 끝나고 예전 같은 삶이 이어질지 모른다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빌어먹을 요구르트.

일리안이 울다 웃었다.

도망을 꿈꾸는 대공은 꿈을 실행으로 옮기기엔 이미 이 고약하고 냄새나는 터르노보에 큰 애증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의 말]

작중에 나온 톨스토이 백작은 그 유명한 톨스토이의 직계 선조입니다.

ps.

3차백신은 2차보다는 약간 버틸만하네요.

하지만 세상이 멀쩡한 것 같지가….

위태로운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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