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3)
* * *
정상적인 국가에 근접할수록, 국민들은 전쟁을 썩 달갑지 않게 여겼다.
반전 여론은 항상 있었다.
심지어 고려가 자신들의 과거사 문제로 가장 전의에 불탔었던 서벌 시기에서조차 그런 여론은 존재했었다.
이후 고려가 본격적으로 위대한 고립을 천명하고 자기네 삶에 집중한 이후부터는 더더욱 그랬다.
또한 제아무리 많은 찬란한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전쟁을 치른다면 병사들은 필히 적지 않게 죽어 나갔다.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늙은이요, 죽는 자는 젊은이니 제아무리 값진 보석과 재화를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이미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들의 마음을 어찌 위로하겠는가.
그 여론은 근위여단도 피해갈 수 없었다.
고려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육군.
대규모 상비 육군을 유지할 이유가 별로 없는 고려는 대규모 상비 해군을 유지하는 것에 이미 충분히 많은 돈을 쓰고 있었고, 지금도 육군은 근위여단을 제외하고는 썩 쓸만한 전투력을 가진 이들이 없었다.
물론 각 주의 방위군은 존재했으나, 그들은 처음 창설된 당시부터 지금은 아예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한 원주민들과 드잡이질하는 병사들이었으니 훈련도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게다가 중앙조정으로서는 주방위군을 필요 이상으로 거대하게 키울 요인이 없었다.
만에 하나를 고려해서라도.
그렇다면 근위여단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그대들이 나가서 고려인이 아닌 생판 남의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는가.
그런 질문을 던진다면, 그들은 다시금 질문자에게 물어볼 것이다.
― 그 나라가 제국의 번국입니까?
만약 그렇다 대답한다면, 그들은 고개를 끄덕일 터다.
우리는 형제들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하고.
마찬가지의 질문을 고려가 지금까지 우정을 나누었던 나라들, 에이레나 네덜란드를 위해 싸울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이번에도 그들은 답할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친구들을 위해 싸우겠노라고.
하지만 아라비아는?
이 질문을 던진다면, 과연 좋은 대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근위라는 이름부터 그랬다.
이들은 황제를 위해 충성하는 부대였으며, 황실과 제도를 수호하는 병사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적합한 전장에서 적합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싸우는 것을 바랬지, 지구본에서 곧바로 찾아내기도 힘든 곳에서 싸우는 것은 내켜 하지 않았다.
긍지 높은 이들이, 어찌 용병처럼 싸운단 말인가.
고려가 보유한 또 다른 군도 마찬가지였다.
제국해군 육전대에서 분리되어 별도의 병과로 창설된 제국해병대는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풍족한 지원으로 근위여단에 비해서도 꿇릴 것이 없는 봉급과 대우를 받았지만 복무 여건은 몹시 좋지 못했다.
고려는 남북려대륙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영토를 지배하고 있고, 그 수가 많지는 않더라도 엄청나게 많은 오지에 해병대를 파병하고 있었다.
조선 내에서 한 손에 꼽는 대도시이자 있을 것은 다 있는 최고의 근무지인 개성과 탐라, 그리고 마긴다나오와 누산타라 보호국은 육군 소속 주둔군이 관할하고 있었다.
해병대는 그 외의 지역, 즉 상륙작전에 능해야 하는 곳에 주둔했으며, 태평양과 대동양의 도서 지역에 촘촘히 배치되었다.
이 이역만리 떨어진 해외 격오지 근무는, 제국해병대의 구성원들에게 한 가지 고민을 남겼다.
좋은 남편과 자상한 아버지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 대동양과 태평양의 도서들은 풍족한 삶을 제공해주지는 못하겠지만 평온하고 한적한 삶을 제공할 수는 있었다.
독도나 아조르스, 마데이라나 카나리, 대곡도와 나우루 등의 섬들은 해적들의 시대가 저문 지금은 외침을 받기도 힘들었고 특별한 일이 일어날 곳도 아니었다.
훈련과 근무가 끝나면 아들과 같이 공을 찰 시간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조차된 두바이는 심지어 평온하다는 장점조차 누리지 못하는 곳이 분명했다.
한창 개발 중이더라도 사막 도시는 사람이 살기에는 최악의 장소 중 하나였으며, 바로 앞바다인 페르시아만은 고려가 잠시 한눈이라도 판다면 다시 해적들이 창궐할 곳이었다.
게다가 코앞에 있는 페르시아는 약소국이 절대 아니었으며, 또한 고려와 전쟁을 할 것이 분명했으니 가족을 이곳에 데리고 오기에도 몹시 부담스러웠다.
이런 이들을 데리고 페르시아 정벌을 명하는 것은 분명히 무리수였다.
사실, 이라크와 이란은 해상 상륙에 특화된 병사들이 활약할 전장은 아니기도 했다.
먼 미래, 군장이 전부 다 발달해 해병대가 다목적 전투 병력이 된다면 모르겠으나, 지금은 이들은 최소한의 무장으로 적 항구를 공격하고 그곳을 점령한 뒤 방어하는 교리에 특화된 정병들이었다.
이것이 상민의 근본적 문제였다.
고려는 사실 해외파병에 자유로운 부대가 없었다.
패권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진 별 상관이 없었으나, 이제 말 그대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시점이 되자 이는 답답한 측면으로 다가왔다.
그가 지금까지 황제나 시중으로 군림했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겠지.
군국주의로 변모하여 미치광이 전쟁광 국가로 만들어버린다면 일어나지 않는 종류의 일일 터다.
또한 유럽의 열강들마냥 점령한 지역에 제대로 빨대를 꽂고, 모든 불만을 누그러뜨릴 만큼 원주민의 고혈을 착취한다면 일어나지 않을 여론일 터다.
그러니, 이것은 상민이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든 대가였다.
그렇게 친다면 꽤나 저렴하지 않은가.
창양에서 만난 해원은 이제는 정말 세월의 흐름을 비껴가지 못하는 듯 흰머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본인은 새치라 우겼으나, 상민은 다시금 후대의 건저문제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가 굵은 해원은 이제 가끔 상민을 놀려먹기도 했다.
특히나 이번에는 제대로 건수를 물었다.
“할아버님의 호색한 위명은 소손이 잘 알고 있으나, 이토록 절륜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놈이….”
한동안 황태자보다도 나이가 어린 여인을 처로 들인 선조를 놀리던 해원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논의한 대로, 외인부대 창설에 대한 안건이 중서성을 통과했습니다.”
“다행이구나.”
“실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도, 의원들의 입맛에 딱 맞는 방법이었으니까요. 귀당의 반대가 있었지만 심지어 그들조차도 일부는 찬성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창양의 정치판은 해원이 알아서 잘 신경 쓸 것이다.
한동안 정권을 잡았던 교당은 다시금 스르륵 위세를 잃어버렸고 지금 시중은 이번엔 경당 출신 인사가 자리를 차지한 상황이었다.
아라비아를 지키는 전쟁은 교당의 편을 들어 찬성하지만, 상민이 계획한 이라크 원정은 귀당과 함께 반대하는 자들.
물론 상민에겐 이 정치적으로 골치 아픈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
하지만 매사를 그런 식으로 처리할 수는 없었고, 이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매번 반복될 문제였기에 상민은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 보다, 마침내 원역사의 프랑스가 19세기 즈음에 써먹었던 사례를 떠올려내었다.
그럼 파병이 쉬운 전용 부대를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사례는 명백했다.
외인부대.
많은 나라들이 이와 같은 부대를 운용했고, 심지어 대한민국마저도 6.25 전쟁 때 중국(중화민국)인 부대가 있었지만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마 프랑스의 외인부대, 레지옹 에트랑제(Légion étrangère)가 제일 먼저 꼽힐 것이었다.
프랑스 왕정의 마지막 왕, 루이 필리프가 만든 이 부대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당시 프랑스의 고민거리였던 외국인 망명자와 부랑자들을 군대로 내몰아 쫓아내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또한 이들로 하여금 프랑스의 이권을 위해 싸우도록 하니, 정말 일석이조가 아닌가.
후대에도 국가체급에 어울리지 않게 이곳저곳에 끼어드는 프랑스의 국제외교에서도 외인부대의 역할은 지대했었다.
자국민의 희생이 누적될수록, 국내의 반전 여론이 높아진다지만 외인부대는 이 법칙과도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물론 외인부대의 구성원이 부대의 규율에 의해 충실히 군 복무를 이행하여 마침내 의무복무기간을 채운다면 그들은 고려인 그 누구보다도 정당한 고려의 신민으로 대우받을 것이지만, 그 전까지 이들은 엄연히 외국인 군대로 취급을 받았다.
희생에 대해 여론이 둔감하다는 의미였다.
더군다나 고려는 여러 이유로 이민을 제한하고 있었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도 이민자들이 문을 많이 두드리는 나라였으니 부대의 인력을 충원하는 일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써먹기 좋은 패.
잔혹하지만 효율적이었다.
상민은 이와 비슷한 구상을 아련―페르시아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아니 아랍 연방이 세워지기도 전부터 하고 있었다.
― 인종과 종교를 불문하고, 고려에 충성할 외국인 부대를 창설하라.
그리고 해원은 그 특유의 군사적 관심과 재능으로 상민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했다.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그는 상민이 주문한 군대를 조직해내었다.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금세 제 기능을 하는 부대를 맨땅에서 창조한 것이다.
“외인부대는 모두 3개의 보병여단과 1개의 포병여단으로 편제했습니다. 기병대는 말씀하신 것처럼 편제하지 않았고, 사령부 직할로는 전투공병과 산병들을 포함했지요.”
“잘했다.”
상민은 편제를 유심히 훑어보다, 문득 외인부대장의 이름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음? 이자의 성씨는….”
조르지오 다 몬테펠트로. 어디서 많이 본 성씨였다.
“이탈리아식 성씨라 익숙한 이름이실지 확신하지 못하였는데, 할아버님께선 역시나 기억하시는군요.”
“그렇다마다. 용맹한 친구였지. 이 친구가 그 아이의 후손인 게냐?”
“상당히 먼 후손이나, 예 맞습니다.”
상민은 드디어 해원이 외인부대를 무엇에서부터 만들었는지 깨달았다.
맨땅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뼈대는 있었구나.
옛날 옛적, 고려는 이미 자신들의 궂은일을 도맡아서 해줄 용병대를 고용한 적이 있었다.
첫 만남은 해상십자군이었기에 썩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고려에 순종했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의 용병대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당시 고려의 조차지였던 카디스의 경비를 맡았고, 그 이후로도 고려의 의뢰를 받아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화약 무기와 함께 용병의 시대가 저물어가자, 페데리코 용병대도 천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듯했다.
영세중립국을 자청한 스위스의 라이슬로이퍼가 조금 특이한 경우일 터.
그들은 교황령의 경호와 콘스탄티노플의 경비를 관할하며 안정적인 수입을 창출하는 성공한 용병대였다.
하지만 페데리코 용병대는 도리어 용병대로서는 특이하게도 특정 국가, 즉 고려에게 가장 앞장섰던 이들이니 다른 나라들이 뭘 믿고 이들에게 일거리를 많이 주겠는가.
게다가 안정적인 나라들은 이제 용병을 고용할 금액으로 화약 무기를 쓰는 정규군을 육성하는 것을 택했다.
이들은 체질 개선을 시도했으나 지금 시대에는 미래의 용병대라 부를 수 있는 PMC가 활약하기엔 조금 일렀을 것이다.
그러나 해원은 거의 다 몰락해버린 페데리코 용병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아예 충성의 대상을 바꾸라고.
본래라면 단체의 성질을 완벽히 바꾸는 일이라 고민을 조금 해야 할 일이었지만, 이미 용병대는 반쯤 망해있었기에 당대의 용병대장은 마침내 고려에 귀속되자는 결정을 내렸다.
고려는 이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군대를 편성했고, 훈련과 무기의 수준을 정규군과 동일하게, 혹은 정병에 속하는 근위여단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려 주었으니, 이들은 빠르게 적응하여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부대는 우리의 조국이다(Legio Patria Nostra).]
자신들의 구호에 따라, 이들은 고려에 그들의 명예와 충성을 다하기로 맹세했고 마침내 이라크의 전쟁에 뛰어들 준비를 마친 것이다.
* * *
상민은 준비를 마친 외인부대를 수송선에 태우고는 빠르게 복귀했다.
새벽호는 위엄급 전함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군함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했다.
아마 덩치에 비해 무장 자체는 방호순양함급에 불과할 것이다.
다만 상민 자신의 개인적 편의시설과 동승한 여의국 요원들이 사용할 부대시설, 그리고 정보와 문서를 보관하는 등의 이동식 사령부의 기능을 하고 있었기에 새벽호는 출항할 때마다 일정 수의 호위함들이 필요했다.
이는 곧 두바이에는 순양함 세 척만큼의 공백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걱정이 들지는 않았다.
아무렴, 위엄급 전함 두 척, 상승과 화엄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두바이에 도착하여 아부다비로 향한 상민은 자신이 없는 사이 후푸프에서 아랍 연방의 군대가 괴멸하고, 심지어 아부다비에서 전투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랐다.
피곤이 누적되어 거의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반쯤 시체로 걸어 다니는 해병대원들을 대신하여, 외인부대의 병사들이 곧바로 경계근무와 전장 정리에 투입되었다.
수습이 끝난 이후, 고려는 곧바로 적에 대한 공격에 나설 것이었다.
다만 상민은 빠르게 결과를 보고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휘관을 불러 묻는 자리에서, 상민은 약간 대조적인 육군과 해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디르 샤는 물러갔습니다. 척후가 보고하길 다시금 후푸프를 거쳐 바스라 쪽으로 향했다는데 그 뒤를 뒤쫓지는 못했습니다.”
“잘하셨소. 굳이 추격할 이유는 없지요.”
결과적으로 볼 때는 승리였다.
상민은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다.
아부다비의 근처에는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있었다.
고려군과 고려군의 동맹인 바니 야스 부족들은 시신을 모두 수습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상민은 그 멀리 엄청난 수로 쌓여 있는 페르시아군의 시신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페르시아 불패의 명장은 아부다비를 넘지 못했다.
“효과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전장을 보지 못한 상민이 대충 전개된 전황을 생각하며 해병 지휘관에게 물었다.
해병 지휘관은 자신과 부하들이 세운 전공에 뿌듯해하다가도, 갑자기 얼굴이 돌변하여 딱딱하게 굳었다.
“…너무나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간단한 철사로 그토록 일방적인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정말 소장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불패의 명장이 아부다비를 넘지 못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전술 철조망.
물론 병기의 차이도 크긴 컸다.
후미장전 약실개폐(Rolling Block)식 홍강―427 소총은 그 특유의 작동방식으로 신뢰성도 준수했으며 사막 모래 등의 오염에도 굉장히 강했다.
또한 금속탄피가 제대로 적용된 화기라 장전 속도는 예전의 정윤식 종이탄피 소총보다 월등했다.
대포나 다혈포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으로는, 이러한 병기들이 제 몫을 다할 수 있게 적의 기동을 제약한 철조망이 틀림없었다.
적절히 파놓은 참호에 총과 다혈포를 거치하고 그 앞에 철조망을 몇 겹이나 두른다.
적들이 하나를 넘어도, 다른 하나를 넘기까지 시간은 계속 소비될 것이고, 고려의 화력은 계속 유지될 터.
장미 넝쿨을 본떠 만든 이 보잘것없는 발명품은, 북려대륙에서는 그저 양치기들이 가축을 외부의 적대적 생물로부터 보호하는 용도 따위로 쓰는 것에 불과했지만, 군사적인 분야에서는 실로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나디르 샤는 인세에 강림한 도살장이 무엇이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하, 다혈포와 참호, 그리고 철조망의 조합은… 분명히 전장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 확실합니다.”
마치 근시일 내의 전장이 어떤 풍경이 될지 예상이 된다는 듯, 사령관은 입술을 짓씹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상민은 그의 어깨를 두드린 후, 다른 장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고생이 많으셨소. 폐하께 이 공은 제대로 작성하여 올릴 터이니 기대하셔도 좋소이다.”
“감사합니다. 전하.”
어차피 군공 보고는 자동적으로 시중에게 올라가지만, 황제에게 따로 하사를 받는다면 금전적으로 적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이들은 모두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같이 모인 해군 장교들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해병대와 해군의 관계는 육군과 해군의 관계보다는 좋았지만, 그래도 희비가 오가는 순간에는 다 무의미했다.
“그래서, 귀관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하시겠소?”
설레발은 필패라고, 상민이 생각했던 불패의 제국해군은 무려 위엄급 전함 중 하나인 상승이 중파되는 치욕을 겪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국해군의 조익현급 방호순양함 세 척은 바다에 완전히 가라앉았으니, 멀쩡한 것은 전함 화엄과 방호순양함 두 척이 전부였던 것이다.
의외로 상민은 담담했다.
배들의 피해에 비해 선원들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아부다비의 해안가는 수심이 얕아서 함선이 조금 더 멀리 밖으로 나가 포격 지원을 해야 했지만, 덕분에 적의 공격에 피격된 후 퇴함을 명령받은 선원들이 육지까지 어찌어찌 올 수 있기도 했다.
설마 전함이 흑해도, 북해도, 발트해도, 지중해도 아니라 페르시아만에서 박살이 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상민은 도저히 현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그래도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납득할 수 있었다.
전함은 소모품, 다시 건조하면 그만이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지 없는지가 더 중요했다.
“말씀해 보시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 전장에서는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법이오. 다만 솔직하게 고하시구려. 황상께선 거짓을 좋아하시지 않으니.”
“…예, 영공 전하.”
해군 지휘관이 그늘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