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362화 (362/653)

연합과 조약, 협상과 동맹(2)

해도 아직 떠오르지 않은 새벽.

닭조차 잠든 시간에, 중년의 장군은 하녀를 시켜 미리 떠 놓은 차가운 물에 세수를 마쳤다.

― 푸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수건으로 닦고, 그제서야 거울을 보았다.

흉측한 얼굴.

루이 13세가 말했듯, 안 그래도 볼품없는 얼굴에다가 전쟁터에서 얻은 여러 가지 상처들이 얼굴에 구불구불 나 있으니, 그 꼴은 참 보기가 힘들었다.

남성으로서의 매력도 어쩌면 썩 찾아보기 힘들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그 또한 중요치 않았다.

외젠 드 사보아카리냥이라는 사람은 이미 외모로는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지위에 올라 있었다.

‘그래서, 명실공히 프랑스의 거물이 된 소감이 어떤가?’

외젠은 너무나 잘 가공되어 그의 추함까지 단번에 보여주는 남포산 은도금 거울을 한참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렇게 물으면, 그의 마음속은 새롭게 답변하곤 했다.

― 아직 끝난 게 아니야.

클로드는 겉으로 보이는 호탕하고 명예로운 성품과는 다르게 너무 우유부단했다.

혹은 너무 탐욕스러웠다.

파리와 프랑스의 안정과 질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왕당파들에게 계속 구실을 주는 것도 그 이유였다.

자신도 그들 중 하나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겠지.

이해한다, 외젠도 고귀한 피가 흐르는 입장이었으니.

그러나 외젠은 이해는 하지만 그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루이 13세가 제대로 재판받고, 제대로 법이 집행되기 전까지 혁명은 온전히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왕조차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혁명의 의미에 도대체 뭐가 남는단 말인가?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에이레와, 고려와 다르다.

그들의 군주는 스스로의 결단에 군주주권을 국민주권으로 이양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나라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명예’로운 혁명을 했던 것이고.

그러나, 루이 13세가 그런 인물이던가?

전혀, 전혀!

외젠이 단지 루이 13세가 그의 외모를 품평하며 버린 것에 거대한 증오를 품고 지금까지 그 감정을 놓지 못해서 복수의 길을 선택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도 이제 서른이 넘었다. 과거의 일은 충분히 덮어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돼지 같은 놈은 그러지 않겠지.

고려의 황제들이 어른이라면, 프랑스의 군주들은 어린애들과 같았다.

똥오줌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해서 매번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놈.

기어코 프랑스의 시민들이 서로에게 총질을 하도록 만들어버린 놈.

외젠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떠한 고난이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혁명의 기치를 수호할 것이었다.

왕의 피는, 전장에서 스러져간 파리지앵의 한 목숨보다도 천박하니까.

방어 전투의 초창기, 어중이떠중이 혁명군들을 이끌고 정병을 부리는 왕당군의 튀렌에게 수없이 패배할 때에도 혁명군의 사내들은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았다.

속에 붉은 와인을 담는 대신, 쌓아 올린 오크통(Barrique)의 겉면에 처절한 혁명의 붉은 피를 흘렸다.

그 바리케이드(Barricade) 위에서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고 시신이 쌓여 있었던가.

그래, 그 전투는 외젠을 완벽하게 바꾸어 놓았다.

백합의 깃발 대신, 국민의회가 만든 청백적의 혁명기를 드는 혁명의 기수로.

그리고 그는 반드시 그 사명을 완수할 것이었다.

“자… 장군!”

우당탕탕거리며 들어온 외젠의 충실한 부하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국왕 폐하가, 아니 루이 카페가 도망갔다 합니다!”

순간, 섬뜩한 미소가 외젠의 입가에 스쳤다.

* * *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것과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 사이엔 큰 간극이 있기 마련.

루이 13세는 프랑스의 땅을 벗어나지 못했다.

본래의 계획은 파리에서 보르도로 가는 열차를 타고 그곳에서 다시 열차를 타거나 마차나 배를 이용해 여러 가지 경로로 넘어가는 방안을 강구했으나, 몰래 기차를 타고 보르도역에 내린 루이 13세는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혁명군들에게 붙잡히고야 말았다.

“어떻게?”

“기차보다 빨리 소식을 전하는 기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셨나?”

루이도 명색이 군주였으니 묘사와 비슷한 기계가 고려에 있다고 듣긴 했었다.

전보라 했었지.

유럽도 진작부터 전보에 대한 필요성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놈의 특허와 여러 가지 문제로 도입하고 있진 못했던 상황이었다.

괜스레 특허권을 확보하기 전에 뭐 어찌해보려고 하다간, 또 쥐어터질지 어떻게 아는가.

재산권에 대한 침해는 저 고려의 귀당들마저도 전쟁에 반대할 수 없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제는 고려통신이 세워진 지 반백 년이 지났고, 최초의 전보가 창양과 해문 간에 오간 것도 사십 년이 되었다.

전보통신의 특허권이 만료되어 고려에도 사설 통신회사가 들어서고 있는 차례.

따라서 프랑스 국민의회는 한창 바쁘고 혼란한 와중에도 돈을 들여 전신을 깔았다.

대공포 이후 지방과 중앙의 정보교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혼란한 와중에도 주요한 도시에는 연락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했고, 보르도는 서해안의 최고 중요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튈르리에 유폐된 루이 13세가 이를 알 리는 만무했다.

게다가 설령 전보가 있었다 하더라도, 열차 노선 어디서 내릴지, 어떤 역으로 도망칠지 어떻게 추측했단 말인가.

막말로, 네덜란드나 잉글랜드로 도망칠 수도 있는 마당에.

“대체 어떻게?”

루이 13세가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열차를 타고 그를 잡으러 온 외젠이 그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그 계집이 도리어 열심히 정보를 불어대더군. 기분이 어떠한가? 그토록 끼고 돌던 여자에게서 배신당한 느낌이?”

위기의 순간에, 루이 13세는 자신의 아내이자 프랑스의 적법한 국모인 에스테파니아에게 지난날의 과오를 빌고 용서를 구했다.

복벽에는 그녀의 친정인 카스티야의 힘이 절실히 필요했기도 했을 터.

비운의 국모, 에스테파니아는 결국 남편을 용서해주었다.

하지만 역으로 버림받은 신세가 된 몽테스팡 후작 부인은 루이 13세를 용서하지 못했다.

같이 튈르리에 유폐된 신세라 하더라도 군주의 권위로 보호받고 있는 국왕 부부와는 달리, 몽테스팡 후작 부인은 국민의회가 법봉을 두드린다면 언제든지 목이 매달릴 국민의 주적 중 하나였다.

그런 그녀를 버려두고 둘만 도망쳤으니, 그녀가 증오로 실성한 채 외젠에게 루이 13세의 상세한 계획을 일러바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터였다.

허나 이는 한낱 정부에게도 비밀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루이 13세의 입이 무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네놈은 정말이지 역사를 써 내려가는군. 세계사에서 너만큼 멍청한 군주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저 창양 해씨 가문의 해제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4세도 너만큼은 멍청하고 이기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

외젠은 루이 13세와 에스테파니아의 화려한 옷을 벗기고, 일부러 추레하고 꼬질꼬질한 농부의 옷을 입힌 뒤 파리로 개선했다.

파리는 침묵 속에 휩싸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왕을 동정하는 자는 참수형에, 국왕을 모욕하는 자는 교수형에 처한다.’

혁명정부가 시민들에게 미리 공포스러운 언질을 주었기 때문일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지킨 채 열린 창문으로 과거의 군주를 보는 파리 시민들의 눈에는 엄청난 실망감이 서려 있었다.

* * *

루이 13세가 붙잡히자, 해외의 에미그레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루이 13세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들며 카스티야의 국왕을 설득했다.

“루이 13세 폐하께서 돌아가신다면, 우리들과 폐하의 약속도 이루어질 수 없는 셈이 됩니다!”

“에스테파니아 전하를 구하지 않으실 겁니까?”

“…….”

에스테파니아는 카스티야의 현 왕, 카를로스 3세의 누이였으니 그로서도 이 사태를 좌시할 수는 없었다.

카스티야는 군대를 일으켰다.

고려의 등장 이후, 그들은 해군 병력을 식민지만 간신히 유지할 정도에 그칠 뿐 전처럼 많이 육성하지 않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육군은 이전보다 그 규모가 더욱 커져 있었다.

카를로스 3세는 아라곤 왕, 후안 6세를 설득해 참전시키기도 했다.

“마요르카 왕국에 대한 페르피냥의 권리를 보장해주겠소.”

아라곤 군주는 명목상이지만 마요르카 왕국의 군주이기도 했으니, 그 잃어버린 땅을 획득하겠다는 클레임은 마냥 억지라고 보기도 힘들었다.

물론 프랑스로서는 이미 수백 년도 넘게 프랑스 땅이었던 페르피냥과 프랑스 왕의 영토였던 나바르에 탐욕을 부리는 두 나라를 극악무도한 외적으로 인지했다.

이에 프랑스의 위그노들은 이베리아의 왕국 특유의 가톨릭적 문화에 대한 반발심을 더해 프랑스 전 국민적인 저항정신을 다시금 일깨웠다.

“비열한 서고트 쓰레기 놈들의 야욕을 분쇄하자!”

국민의회는 거의 만장일치로 외젠을 대이베리아 전쟁의 총사령관으로 선출했다.

루이 13세의 해외 도주 시도로 인해 왕당파의 수장 클로드는 이번 일에 발언권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카르카손(Carcassonne).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의 대표 요새 도시인 이곳은 그 역사가 상당히 긴 도시 중 하나였다.

기원전 100년경 로마인들이 오드강을 끼고 요새를 건설한 후부터 쭉 난공불락의 요새로 명성을 떨쳤다.

샤를마뉴의 아버지인 피핀 3세가 무슬림들을 몰아낼 때도 차마 넘지 못했던 곳이기도 한 이곳은 프랑스에 점령된 이후에는 이베리아로부터의 침입을 방어하는 가장 대표적인 요새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카르카손은 그 명성을 톡톡히 보여주고 있었다.

대포가 발달하고 작렬탄이 개발된 지금에서야 요새는 그 기능을 거의 상실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의미하지도 않았다.

카르카손을 배후에 놓고 야전을 벌이는 프랑스군은 카스티야와 아라곤 연합군에 비해 상당한 지리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에게는 비밀병기가 있었다.

머리가 깨지면서 배운 교훈은 충격적이지만 그렇기에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콩데가 대판 깨지고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고려와 맞붙은 알제 전투의 결과는 프랑스에도 널리 퍼졌다.

따라서 이후 프랑스 또한 종이탄피와 니들건에 대해 집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으니 마침내 그 결과물 중 일부는 카르카손 전투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국민의회가 만든 생테티엔 조병창에서 만들어졌다고 이름 붙인 이 생테티엔 소총은 고려의 정윤―381 소총을 모방한 소총이었으며 그 성능도 상당히 괜찮았다.

후장식 소총의 개발은 이전부터 서유럽에서도 계속 시도되었던 것이니 개념의 제시가 있다면, 추격은 불가능하지 않은 법이다.

게다가 기존의 제사총 또한 계속 개량되어, 이제는 어쩌면 다혈포와도 겨루어 볼 수 있을 만큼의 성능을 가진 카농 아 발레스(Canon à Balles)가 도입된 프랑스군은 명백히 강군 중 하나였다.

또한, 외젠은 더 이상 튀렌과 맞붙었을 때의 그 어설픈 애송이가 아니었다.

그는 장담했다.

전성기의 튀렌과 동등한 조건에서 동일한 전장에서 마주 볼 수 있다면, 승리하는 쪽은 항상 자신일 것이라고.

콩데도, 튀렌도, 심지어 같은 전우였던 클로드조차도.

그는 모두 이길 자신이 있었다.

카스티야가 승리를 입에라도 담기 위해선, 적어도 엘 그란 카피탄(El Gran Capitán, 곤잘로 데 코르도바)을 무덤에서 일으켜 세워 왔어야 할 것이었다.

* * *

대북방전쟁은 처절했다.

하지만, 프랑스―이베리아 전쟁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프랑스야 외적으로부터 국토를 수호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국민들과 병사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국민들은 철 지난 왕정 문제의 전투에 피 흘리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양국의 민족적 감정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도 않았고.

그렇기에 카르카손 대회전과 그 이후의 소소한 전투에서 모조리 패배한 뒤 가공할 만한 혁명군의 위력과 외젠의 엄청난 지휘력에 놀란 카스티야와 아라곤 연합군은 어마 뜨거라 하며 군세를 물렸다.

받을 빵보다 잃어버릴 빵이 더 클 것이 명백했다.

에미그레가 아우성을 쳤지만, 봉토도 없는 망명 귀족 나부랭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봤자 이제는 대세에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외젠 드 사부아카리냥.

프랑스를 배신하고 외적과 결탁한 루이 13세를 붙잡은 자.

그리고 또한 루이 13세가 끌어들인 외세를 박살 내고 대승을 거둔 자.

외젠이 다시금 수도로 개선했을 때, 파리의 분위기는 마치 백년전쟁에서 승리한 샤를 7세의 귀환을 보는 것과 비교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외젠이 프랑스 최고의 권력자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때의 친우이자 현재의 정적인 클로드조차 그를 막아 세울 명분이 없는 지금.

“루이 카페. 일어서서 법관에게 예를 표하시오.”

외젠이 프랑스 최고 권력자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시민’ 루이 카페를 법정에 세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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