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7)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한 번에 저렇게 많은 화력을 낼 수 있는 병기에 대한 갈망은 유럽도 다르지가 않았다.
무려,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부터 발명된 제사총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개량이 시도되었다.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제사총을 개발했고 프랑스도 지금 그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알제에도 다섯 정인가 있었지.
하지만, 제사총은 기나긴 재장전 시간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졌다.
그래서, 콩데 공작은 아군의 전열이 무지막지한 피해를 입어가며 적의 선두 대열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짧은 희망이나마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완벽하게 박살 났다.
저 물건 개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기나긴 전장에서 그 영향은 국지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저것들이 있는 곳에서는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꼿꼿이 서 있는 프랑스군은 마침내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지지 않았던 자들도, 이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는지 총을 던지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도망가거나 엎드려 벌벌 떨었다.
사기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고, 적포군은 이제 일어나 온갖 곳에서 약진하여 사격하거나 돌격하여 총검을 휘둘러대었다.
“후퇴!”
콩데 공작은 말을 갈아타며 미친 듯이 전장을 누비며 와해되는 군열을 수습했다.
장교건 부사관이건 저 괴상망측한 병기에 죄다 죽었는지, 혼란은 잘 가시지 않았다.
콩데 공작이 단 한 번의 격돌에 무려 절반의 병력을 잃었지만, 나머지 절반을 어찌 수습하여 후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용맹무쌍하게 후방에서 지휘를 가다듬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하늘이 도왔는지 그는 지근거리에 다가온 고려 저격병들의 총탄을 잘 피했던 것 같았다.
엄지손가락이 깔끔하게 날아갔고, 허벅지에 총탄이 박힌 정도로 끝난 것은 분명한 행운이었다.
비록 다시금 알제의 요새에 처박힌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날 밤.
콩데 공작은 총탄 제거 수술을 받는 와중에, 비명을 참으며 부관을 불렀다.
“부관.”
“…예 공작 전하.”
“참으로 이상하지 않는가? 저 고려라는 것이.”
“이상한 것은 모르겠으나, 기사도 정신이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저들은 푸른 피가 없으니, 이렇게 전하를 저격하는 무례한 행동을 저지르는 것이지요. 부르봉의 핏줄을 무엇으로 보고….”
누가 동아시아에서 기원한 나라가 아니랄까 봐, 고려는 조선과 명마냥 지휘관 저격에 일말의 거부감도 느끼고 있지 않았다.
“끄으으… 그…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세.”
― 탁
의무관이 마침내 집게로 총탄을 빼내는 것에 성공하자, 콩데 공작은 바람 빠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상처를 봉합하는 과정이 더 남아있으니 그는 다시금 인상을 구겼다.
“루… 루부아 후작이 그런 말을 했지. 저… 끄으… 고려 놈들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야… 얄밉다고.”
한 발짝 따라잡으려 하면, 한 발짝 더 나아간다 했었다.
전열함을 개발한 것도. 범선에서 기범선으로, 그리고 기선으로 나아가는 것도.
저들은 꾸준히 선도하며, 후발 주자들에게 출혈적인 지출을 강요했다.
생각해보면, 한 번에 진보할 수 있었던 것들도 몇 개는 있었을 텐데, 그들은 마치 모방자들에게 시행착오를 강요하는 것처럼 단번에 진보를 이루어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벌었던 것이다.
프랑스를 비롯해서 유럽의 열강들 또한 앞서 나아가는 자의 옷자락을 잡은 경우는 있었지만 본체를 추월해 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진보가 무시할 만한 수준이냐?
그것은 또 아니었다.
그것이 쌓이고 쌓인다면 그 격차는 실로 심각해져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바로 지금처럼.
콩데 공작은 해군총감이었던 루부아 후작의 예전 넋두리를 지금에서야 비로소 온전히 체감할 수 있었다.
이젠 해군뿐만 아니라 육군도 피해자였으니까.
소총과 대포의 진보.
그리고 저 정체불명의 대포총(다혈포).
오롯이 무기의 차이가 낮 동안 거의 삼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군의 사상자와 삼천 명 정도의 고려군 사상자를 판가름했던 것이다.
“나도 이제 늙었나 보군.”
“어째서 그러십니까?”
“전쟁이 재미가 없어.”
“…….”
“오늘 보지 않았는가? 사내들이 용맹과 명예를 겨루던 장소는 이제 완전히 사라진 듯허이.”
제복을 더럽히는 것을 거리끼지 않고 겁쟁이처럼 엎드리는 자들이 멋있고 용맹하게 나아간 자들을 일방적으로 도살한다.
이런 광경을 목도한 구시대적 귀족 장교, 콩데 공작은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전쟁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절로 욕지거리가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저것이 더없이 강력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콩데는 그 와중에도 고려가 두려웠다.
다른 무엇보다도 저런 정신이 제일 무서웠다.
제국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할 정도의 실리주의가.
― 콰앙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듯 갑자기 포격소리가 들렸다.
잠을 재우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의 포격은 저번과는 달리 성안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무슨 기묘한 무기를 만들어 냈는지, 작렬탄은 성형요새의 성곽은 건드리지 않은 채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알제 도심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콩데 공작은 화약고와 식량 창고가 적의 작렬탄에 터져나가는 광경을 의지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얼굴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백기를 내걸도록.”
* * *
다음 날 아침.
작렬탄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알제의 성곽에는 프랑스 왕실을 상징하는 푸르고 흰 백합의 문양 대신 제국의 삼태극기가 휘날렸다.
“내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이 없어져, 직접 검을 드리지 못해 미안하오.”
“아닙니다. 공작.”
앙주계 고려인 정 세바스티앙이 유창한 프랑스어로 대답하며 콩데 공작 대신 그의 부관에게서 검을 받아들었다.
고려의 고위급 장교단들과 프랑스의 살아남은 고위급 장교단들은 심지어 알제의 총독부에서 만찬을 즐겼다.
어제만 해도 엄청난 혈전으로 싸운 자들이지만, 워낙 전세가 일방적이었고 게다가 프랑스―오스트리아처럼 해묵은 감정이 마냥 깊지는 않아 분위기는 그렇게 험악하진 않았다.
이곳에도 작렬탄이 피해가진 않았는지, 한쪽 벽이 완전히 허물어졌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알제의 시가지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고려군 장군들의 눈에 흑인 노예들과 베르베르계 하인들이 열심히 정리를 하는 것이 보였지만, 그 누구도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자, 이제 어쩔 거요? 군세를 휘몰아 마르세유와 몽펠리에를 공격하시나? 국왕 폐하의 항복이 선언될 때까지?”
어제 무려 두 발의 총을 맞았는데도 멀쩡히 움직이는 콩데 공작은 고통을 참으며 만찬장에 자리한 목적, 그의 가장 궁금한 질문을 물어보았다.
“아니요. 아국은 이제 별다른 군사적 행동을 더 할 생각은 없습니다.”
고려는 이미 화가 풀려있었다.
타격감이 좋은 나라를 때려본 것도 만족스럽지만, 추심전쟁의 원래 목적, 즉 빚을 갚는 명목 또한 이미 해소되었다.
프랑스의 온갖 식민지들을 죄다 약탈하자, 많은 금전을 한 번에 확보할 수 있었다,
고려의 채권이 다른 나라의 상인들에게서 구입한 것까지 포함하여 대략 1억 3천만, 전쟁 경비를 포함하여 1억 5천만 리브르라고 가정했을 때, 그중 삼분의 일 정도를 벌써 구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1억 리브르도 곧 해결될 것이다.
네덜란드가 향료제도를 포함하지 않는 파푸아의 서쪽 지역을 온전히 그들의 손에 넣기 위해 거금을 제시했고 돈이라면 썩어 넘치는 베네치아령 튀니스 또한 알제를 손에 넣기 위해 엄청난 금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남은 금액은 적었으니 그 정도는 상황을 지켜볼 요량이 있다.
고려의 목적이 부르봉 왕가를 끝장내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콩데 공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루이 13세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군주였지만, 그의 친척이었고 그 또한 부르봉으로서의 명예와 긍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왕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다.
하지만 고려가 그럴 의지가 없다 하더라도, 현재 부르봉의 운명이 그들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니었다.
* * *
사건은 알자스 로렌에서 일어났다.
무슨 원인이었는지는 아직도 파악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철소와 공장의 노동자들이 난데없이 대규모의 명령불복종―파업―을 일으켰다는 소식은 파리에 곧바로 알려졌다.
끔찍할 정도로 가혹한 환경.
너무하다 싶을 만큼 낮은 임금과 대우.
가뜩이나 인기 없는 왕이, 전쟁에서 계속 패하고 있다는 소리.
고려의 식민지 공격, 그리고 항구 봉쇄에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며, 바이에른과 네덜란드의 국경선에 있는 장교들과 병사들이 조금씩 다른 곳으로 재배치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불만은 지극히 컸는데, 그 커다란 불만들이 해소되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 있었으니.
추심전쟁은 마지막으로 가장 큰 화약 포대를 던져놓고 그 위에 횃불을 떨어뜨리는 것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알자스 로렌의 소요사태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흔한 이름을 가진 세 명의 노동자, 껑땅과 장, 마크에 의해 일어난 노동자 봉기는 날이 갈수록 커져 프랑스 왕정은 메스와 낭시에 대한 통제력을 아예 잃어버렸다.
게다가, 바로 옆에 바이에른 빨갱이들이 있는 것을 감안해 보면 앞으로의 후폭풍은 훨씬 더 심할 것이 분명했다.
비록 그 국경선에는 프랑스 군대가 남아있다지만, 보급품이 끊기고 앞뒤로 포위당한다면 제아무리 프랑스 군대라도 노동자들에게 패배할 수 있었다.
이는 지금은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고려의 위협을 훨씬, 아득하게 상회했다.
시시각각 악화되는 상황에 루이 13세는 기도실에 처박힌 뒤 절박하게 신을 찾았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의 곁에도 전략적 지혜를 꺼내 줄 사람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네 명의 장군들은 이미 다 떠난 상태.
심지어 그중 하나는 패배하여 붙잡혔다지.
데 콩데마저도 그렇게 패배했는데, 튀렌 자작이나 셍베란 후작, 뤽상부르 공작이라 한들 저들에 대적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항구 봉쇄로만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육전을 시도한다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에, 저들이 그토록 친하다는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아니꼽게 보는 이탈리아의 은밀한 후원을 받아 상륙하여 우회한다면.
그때는 답이 없는 것이다.
프랑스는 로테르담 체제의 구성원이었지만, 유럽의 역사가 증명하듯 조약이란 존재는 결국에는 파기되기 마련.
이젠 뭘 해야 하는가.
루이 13세는 후회했다.
삼부회에서 적어도 타협의 의지는 보였어야 했다.
제3신분에게 그렇게 대했으면 안 되었다.
그 말을 꺼냈으면 안 되었다.
고려와 대적했으면 안 되었다.
콜베르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콜베르, 콜베르는 어디에 있느냐?”
그제서야 중요한 것이 생각난 것처럼, 루이 13세는 미친 사람처럼 궁정을 휘적거리며 돌아다녔다.
“콜베르 남작은 낙향한 뒤에 한적한 수도원에 은거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렇다면 다시금 불러오라. 이제는 짐이 그의 말을 절대 허투루 듣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리고 그 수도원에서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콜베르 남작은… 올해 초에 세상을 떠났다 합니다.”
사실 보고 자체는 진작 올라갔지만, 공황 상태에 빠져 기도만 하고 있었던 루이 13세는 그 보고조차 읽어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루이 13세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달타냥, 짐이 틀렸다, 짐이 틀렸어. 애초에 이렇게 되게 내버려 두면 안 되었어.”
그는 총애하는 늙은 신하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 * *
마침내 1680년(개천 405년).
추심전쟁이 선포된 지 불과 삼 년 만에 루이 13세는 돈을 갚겠다며 사실상 굴복했다.
사실, 전쟁 내용을 들여다본 이들이라면 삼 년도 잘 버텼다 칭찬할 만했다.
프랑스 북부를 방어하던 튀렌 자작은 서둘러서 알자스 로렌의 노동자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떠났다.
반면 고려군은 센강을 거슬러 올라 보무도 당당하게 파리 거리를 활보했다.
파리는 적대감으로 뒤덮여있었다.
그 적대감이 나아가는 곳은 일차적으로 고려의 군대임은 명백했지만, 두 번째로는 아마도 베르사유였을 것이다.
호화로운 거울의 방에서 마침내 베르사유 조약이라는 평화조약을 맺게 된 두 나라는 이 짧은 갈등을 매듭지었다.
“알제와 파푸아 식민지 및 향료제도의 매각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이에, 고려 제국은 프랑스 왕국의 채무가 모두 변상되었음을 확인합니다.”
구두 확약 말고도 긴 내용을 잔뜩 담은 조약서가 마침내 고려어와 프랑스어로 각각 두 부씩 작성되었다.
“후우….”
고려인들은 전쟁총감 루부아 후작이 독하기로 유명한 기주산 시가를 연달아서 피우는 광경을 딱히 뭐라 하진 않았다.
아국 제품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 심정을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국과 귀국이 불운한 일로 지금껏 서로 다투었지만, 앞으로는 우리 모두 공동으로 평화를 위해 노력합시다.”
“……그러길 바라오.”
밤새도록 울었는지 얼굴이 퉁퉁 부은 몽테스팡 후작 부인은 달달 떨리는 손으로 고려의 장교에게 스페렌자 블루―이젠 고려어로 푸른 희망으로 불렀다―를 건네었다.
눈앞의 아름다운 보석이 과연 진품인지, 장교는 대동한 늙은 보석감정사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동안 고려 장교가 능글맞게 웃었다.
“사람은 때때로 가진 것들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지요.”
“…….”
“어질러진 방을 청소한다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마치 베르사유를 뜯어갈 것처럼 고려의 수많은 장교들이 궁전을 이리저리 들쑤셨다.
채무?
프랑스는 이미 식민지를 팔아넘겨 갚을 건 다 갚았다.
하지만, 전쟁에 들어간 비용은 따로 또 계산해야 하지 않겠는가?
푸른 희망 금강석 말고도 많은 것들이 차압당했다.
베르사유에 있는 프랑수아 지라르동(François Girardon)이 만든 대규모 조각들은 물론이고, 루이 13세의 명으로 루브르에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가져다 놓은 대리석 조각들이 고려의 품에 안겼다.
오스만이 그리스에 대한 패권을 오스트리아에게 잃어버리기 직전, 헐값에 프랑스에게 팔아넘긴 조각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밀로의 비너스라든지, 사모트라케의 니케라든지.
국가의 빚은 쌓이고 쌓이는 와중에 왕정은 이런저런 예술품들을 사들였는지, 심지어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의 유물, 레반트 지역의 유물들도 보였다.
그것들은 물론, 왕정이 사놓은 여러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도 차압한 고려는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포장하여 증기선에 실어날랐다.
창양 예술의 전당 근처에 대형 박물관을 지을 예정이라 하니, 이것들이 전시되면 꽤 볼만할 것이다.
[작가의 말]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를 비롯한 이탈리아 화가들의 보물들은 현재 이탈리아 왕국의 소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