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87화 (287/653)

해적 토벌(3)

바다에 자주 나가보지 못하면 절대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순간순간의 바람과 해류의 방향, 그리고 파도를 넘는 법과 배를 다루는 법.

부하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지침, 그리고 무력감, 그리고 공포.

스스로의 훈련을 게을리한 무장은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이 전장이었다.

그래서 이 패배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해적들에게 전열함이라니!”

― 콰과광

금오도(金鰲島) 앞바다.

두 함대는 서로 포격전을 벌였지만 대체로 상처를 입는 쪽은 한쪽이었다.

단말마의 비명을 남긴 함대의 총 지휘관 원균은 허무하게 죽고 적들의 포격에 조선의 함대는 반쯤 와해되었다.

그러나 나머지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재빨리 함대의 지휘권을 이양받은 원전이 소리를 질렀다.

“함대 반전! 침로는 북북동! 향도함은 최후미함! 서둘러라!”

사실 지금의 패배는 전열함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저 해적놈들의 다른 배들도 만만치 않았기에.

애초에 덩치가 훨씬 더 큰 대형함들을 상대로 먼 바다에서 포격전을 벌이는 것은 판옥선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함포전은 포문 수가 많은 쪽이 절대적인 우위를 가졌고, 한 차례 사격에서 발사할 수 있는 대포의 수는 조선이 아니라 저 해적 같지도 않은 해적들이 훨씬 더 많았으니.

게다가, 대부분 선박 크기의 한계로 중근거리용 옹포의 숫자가 중포보다 많은 판옥선은 애초부터 사거리 싸움에서 대형함들과 견줄 수 없었다.

해적들은 전열전술과 사거리 싸움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가 갤리선과 비갤리선의 전투에서 근접을 유도하겠는가.

그런 건 굳이 연방사관학교를 다니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의 형은 아니었지만.

처음에는 배의 수적 우위가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조차 함선의 측면 화포 수는 조선군이 열세였고, 설상가상으로 지금 현재 원전의 휘하에는 원균이 말아먹은 함대의 일부 조각―서른여섯 척―만 있었을 뿐이었다.

“통우후(統虞侯), 어디로 가야 합니까!”

“남해도로 간다!”

조선의 수병들은 침몰당한 원균이 있던 자리와, 지금 지휘권을 넘겨받은 원전을 바라보고는 다시금 사기를 쥐어짜 내려는 듯 이를 악물고 배를 돌렸다.

[원전! 네놈이구나, 다시금 꽁지가 빠져라 그리 도망칠 생각이냐!]

무언가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원전은 배의 후미에 서서 망원경을 뽑아 적의 전열함을 살펴보았다.

‘네놈이군.’

적 수괴의 이름을 들었을 땐 혹시나 했었다.

나름대로 흔하지만 그렇게까지 흔하지는 않을 이름이었으니까.

그러나 상국에서 준 정보에 따르면 정말로 적의 지휘관이 이근수 그놈이 맞는 모양이다.

‘괴물 같은 놈이었지.’

원전 자신 또한 재지넘치는 무장이긴 했지만, 그에 비해서는 범재라 생각했다.

근수는 실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동료평가가 그의 점수를 상당히 깎아 먹었지만, 그래도 그는 전체 성적에서 꽤나 압도적인 두각을 나타내었으니.

한 사람을 제외한다면 아마 그가 연방사관학교 전체 수석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세상 일이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제도나 연방주들에서 비단길만 걸을 줄 알았던 너는 그렇게 되었고, 마침내 내 앞에 이렇게 나타났구나.’

자제감 연방사관학교에 가는 조선의 무관들은 일단 무과에 급제를 하고 심지어 관직 생활을 경험한 뒤에 상국으로 유학을 가다 보니 사관학교의 다른 동기들과의 나이 차이는 거진 띠동갑 이상으로 벌어졌지만, 그래도 그 나이 어린 동기들과 지냈던 추억은 꽤나 아련했었다.

그렇기에 그는 제아무리 악랄했더라도 예전의 동기와 싸우는 것에 대해 어딘가 비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렇기에 내가 너를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

돛을 모두 올린 대형함은 제아무리 순식간에 선회를 하고 먼저 가속을 받은 판옥선이라 하더라도 속도에서 비교할 수 없었다.

적 함대는 금방 따라붙었고, 남해도의 북부에서 두 함대는 다시금 결전을 벌일 듯싶었다.

그러나 신묘한 기동으로 여러 무인도를 이용하여 둔중한 적선들의 경로를 방해한 원전은 마침내 노량을 통과한 뒤, 명령을 내렸다.

‘병목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좁고 빠른 해협. 선회가 둔한 첨저선에게는 극히 불리한 지형. 저들이 한 차례 포격하려 선회할 때, 우리는 세 번 쏠 수 있다. 적들의 포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빠져나갈 출구도 있으니 내 이곳을 계속 기억하고 있었지.’

[기억하라, 전장은 마치 파도와 같아 그때의 형세가 매번 바뀌기 마련이다. 이기는 쪽도 패퇴할 수 있으며, 지는 쪽도 승리할 수 있다.]

사관학교, 꽤나 젊었던 교수의 말을 떠올린 원전의 목에서 우렁찬 고함이 터져나왔다.

“돛을 접고 닻을 내려라! 우현으로 일자진을 펼쳐라!”

“통우후!”

원전의 수하, 이순신이 기겁하여 소리를 질렀다.

“입부(立夫, 이순신의 자), 나를 믿으시오. 모두 명을 따르라!”

도망가도 모자랄 판에 일자진을 펼치라는 명령에 휘하의 수군 무관들은 기겁을 했으나, 이번에는 원전이 환도를 휘두르며 엄하게 명령을 내렸다.

성격 자체는 원균의 동생이라 그와 닮은 것인가.

불안감을 한가득 머금은 그들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으나 이윽고 몇 명의 장수들이 이를 악물고 부하들을 독촉했다.

노량의 출구에 일자진이 펼쳐졌다.

근거리용 옹포가 장전을 마치고 적을 향해 겨누었다.

소총병들도 제각기 화약접시에 화약을 재우고 적을 겨누었다.

이 지형에서 사거리 싸움은 의미가 없다.

너도 그것을 잘 알고 있겠지.

‘자 네놈은 어찌 할 것이냐. 나와 함께 저승에 가 보겠느냐, 아니면….’

그러나 적 함대는 노량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뿐, 들어오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들이 오히려 등을 돌리자, 원전 휘하의 장수들과 수병들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 * *

“누가 나아가 싸우라고 하였느냐.”

이휼은 노기를 감추지 못하며 장계를 멀리 집어 던졌다.

“그저 지키고 있으라고만 하였거늘!”

“…….”

“상국의 함대가 패퇴하였을 때, 여는 경들에게 하문하였소. 그리고 여가 하문을 하였을 때, 이 자리의 신료들은 충분히 수군이 저들을 막을 수 있다 하였지. 지금 경들은 다시금 그 말을 해 보시오들!”

“…송구하옵나이다, 전하!”

“이제 저들은 아국의 수군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삼남을 유린할 게요. 수륙양면의 포위망은 이제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이고!”

“송구하옵나이다, 전하!”

대신들은 똑같은 대답을 했지만 이제는 무릎을 꿇고 사모를 쓴 머리를 땅에 조아렸다.

“대체, 아국에는 그리 많은 무관들과 무장들이 있으면서 매번 여가 기대야 하는 자는 한정되어 있는가? 매번!”

신료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과인이 이러니 상국 자제감으로 유학을 갔다 온 무장들을 등용할 수밖에. 워낙 현격한 차이를 보이니…….”

몇몇 비유학파 무장들은 약간 자존심이 상한 듯한 얼굴을 지어 보였고, 마침내 누군가 입을 열었다.

“하오나 전하, 패장인 원전 또한 그러하온데…….”

“그대는 잔류 함대를 온존한 이가 패장의 동생인 원전임을 알면서도 뚫린 입이라고 그 말을 지껄이는가?”

― 쨍그랑

거북 모양을 한 연적(硯滴)이 하늘을 날았고,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났다.

나머지는 이런 참패의 보고 현장에서 감히 주상의 진노와 대면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그들 또한 고개를 숙이며 딴청을 피웠다.

옛 당나라의 빈공과는 번국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과거를 보는 제도였다.

빈공(賓貢)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과거제도는 지방의 인물을 바친다(貢)는 의미로, 당대 신라의 지식인들, 특히 6두품 등 사회진출이 불가한 자들의 등용문으로 쓰였었다.

반면 고려의 자제감은 이와 달랐다.

탁월한 지방의 인재가 천자를 위해 나아가 봉사해야 한다는 빈공과와는 달리, 이 자제감은 지방의 인재가 황제의 은덕을 입고 다시금 내려가 그 고향과 번국을 평화롭게 통치하거나 혹은 외적을 물리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였다.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다만 이들이 극도로 친고려 기조를 띨 수 있게 많은 작업을 하긴 했지만, 적어도 그 물밑작업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자제감에 속하는 연방사관학교도 마찬가지.

예맥한계 동아시아 삼국은 그 특수성을 인정받아 4년마다 몇 명의 무관들을 뽑아 자제감에 입학시킬 수 있었으며, 이들은 그곳에서 수년의 군사 교육을 받은 뒤 다시금 돌아와 본국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이들이 그 나라의 군주에게 중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로, 각국에서 상당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휼은 눈을 감았다.

“안 그래도 삼남에 흉년이 들었는데 저런 성세를 지닌 해적이 아국의 백성들을 유린하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소이다.”

“주상…….”

“도원수를 불러들이겠소.”

“하오나, 전하. 지금 봉명관의 성세는 극히 위태롭습니다. 주익상(朱翊爽)이 경사를 떠나 연경에 기거하고 있는 이상, 언제든지 봉명관을 넘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가 심양에 가지.”

“저…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익상, 그놈이 연경에 가 봉명관이 위태롭다면, 여가 심양에 가면 마찬가지의 형국이 되는 것이 아닌가? 여의 말이 그릇되었느냐?”

“…….”

이제는 대놓고 정승과 고관들에게 하대를 하는 이휼의 말에도 그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도원수를 불러들여라. 대계가 늦춰진다 하더라도, 조선은 기회가 있도다. 또한 여가 생각건대, 이번의 해적 침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근래에 고려에서 몇 가지 정보를 준 적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이번의 일도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었을까.

‘조르제, 그놈을 번왕에 분봉한다라. 익상 네놈이 정말 얕은 꾀를 부리는구나.’

주우철 이후 명은 다시금 중흥의 길로 들어섰고, 몇 차례의 성군과 암군, 평군을 모두 겪은 이후 황제의 위에 오른 주익상은 단연코 명에서 손꼽히는 잠재력을 드러내 보이는 자였다.

이휼은 그만 생각하면 밤에 잠을 제대로 잘 날이 없었다.

‘지나의 놈들은 반도의 대계에 항상 걸림돌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않는다면, 감히 천명을 참칭하며 아국을 공격할 놈들이야.’

상국의 도움이 있지 않았다면, 조선은 매번 저 서쪽의 나라에게 정복당해 머리를 숙였어야 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개성에서 고려인 학자들에 의해 제왕교육을 받은 이휼은 스스로를 계몽전제주의(啓蒙專制主義)의 총아라 여겼고 또한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합스부르크나 류리크, 부르고뉴김, 보르자, 혹은 호엔촐레른 가문 등의 왕들보다도 능력에서는 우위에 있다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국내에 산적한 똥 무더기들을 바라보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북쪽의 이의정, 그놈은 오히려 형편이 좋은 편이지. 비록 가호 수가 적다 하나, 그렇기에 솔빈부 내엔 똥만 싸는 축생들이 적지 않는가?’

그나마 심심찮으면 도래계―토착계 갈등이 크게 일어나는 부여씨의 백제보다는 낫겠지만, 항상 비교의 대상은 자신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자들이지 않는가.

이놈이고 저놈이고 도움이 안 돼.

아직도 케케묵은 서적, 그것도 인쇄기로 편찬한 시절의 것들이 아닌 과거의 망령들이 써 놓은 것들을 신봉하며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양반들.

차라리 저 한창 떠오르는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이나 스칸디나비아의 융커들, 루스의 보야르들은 전쟁에 재능이라도 있다, 그리 들었다.

대신 문화적으로는 멍청이라니, 집에서 글만 읽어 답도 없는 자들을 서로 반반씩 섞어 나누어 가졌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며, 이휼은 저 먼 나라의 왕들에게 서신을 보낼까 하다 그냥 그만두었다.

* * *

조선.

요서도.

봉명관.

“도원수 대감. 조정에서 경차관이 어명을 받들고 왔습니다.”

이제는 희끗희끗한 백발을 자랑하는, 중년에서 노년기로 들어가는 장수 한 명이 봉명관의 관아에서 꼿꼿이 허리를 펴고 정무를 보고 있다가 부하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의관을 정제할 시간을 주시라 전해다오.”

“예, 대감.”

언제라도 출진할 수 있도록 계속 갑주를 받쳐 입고 있으려니, 철릭은 많이 해졌다.

도원수는 그것을 천천히 벗고 개어놓은 다음, 다시금 반듯한 새 철릭을 갖추어 입었다.

의관을 정제하는 그의 손에도 굵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두정갑까지 입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몸가짐을 단정하게 했음을 살핀 도원수는 마침내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호호 손을 불며 서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반가움도 잠시, 도원수는 천천히 미리 깔린 돗자리에 무릎을 꿇고 네 번 절한 뒤 어명을 받았다.

“도원수 이윤신(李玧臣)은 어명을 받들라!”

“…….”

“…….”

어명의 전달 자리가 끝나고 일어나 다시 한번 예를 차린 도원수 이윤신은 일단 경차관을 관아 내로 들게 했다.

“면오, 자네가 올 줄은 몰랐네.”

“대감, 아니 여해(汝諧) 형님. 참으로 뵌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지. 그래, 시간이 참으로 빨라.”

가벼운 웃음을 머금은 이윤신이 물었다.

“그래, 병조참의께서 이곳까지 행차하심은 무엇인가. 또한 조정에서 이 사람을 남쪽으로 보내는 것은 또 무엇이고. 예감이 좋지 않은 것은 오직 이 늙은이의 주책이면 좋겠네.”

김시민이 입을 열었다.

“수군이 패퇴하였습니다.”

“…….”

가벼운 웃음을 베어 물고 있던 이윤신이 눈을 천천히 감았다.

“내 지휘관의 능력이 그 무엇보다 중하다고 그리 아뢰었건만 전 영상께선 그렇게 평중(平仲, 원균의 자)을 아끼셨지.”

“정치군인이지 않습니까.”

도원수는 그 말을 따로 긍정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대가 이곳의 경차관으로 오게 되는 것인가?”

“소제는 단지 경차관으로서 성상께서 심양으로 이어하시는 것을 대비할 뿐입니다. 군무는 체찰사나 도체찰사께서 맡으시겠지요.”

이윤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방이라… 수군이라…….”

솔직한 말로 너무 오랫동안 바다와 떨어져 있었던 터라 전략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는 조선에는 그만큼 유능한 수군 장수들이 있었다.

그는 단지 가서 군기를 엄정히 세우고 지역 육군과 수군을 통합하여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 아래에 놓고, 제장들의 능력에 따라 인선을 재분배하는 것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하면 될 거라 그리 생각했다.

“알겠네. 채비하도록 하지.”

도원수 이윤신은 소박한 행낭만을 꾸린 채 부관과 병사 몇 명만을 데리고 남쪽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이윤신이 가기 전 김시민에게 얼마나 많은 참고사항을 알려주었는지, 아예 책으로 한 권을 묶어 써 내려가도 되었을 정도였다.

“유정을 조심하게. 그는 만만치 않은 인물이야.”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명군의 사령부의 방향을 가리킨 윤신이 말했다.

“그자는 대체로 평야에서 총기병을 운용하는 것을 즐기지. 벌떼 전술이 아무리 구시대적 전술이라 하더라도, 급작스럽게 포병대의 측면을 노릴 수 있으니 만약 자네가 야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항상 예비대를 후미에 두어 탄력적으로 병과를 운용해야 하는 것을 잊지 말게.”

“봉명관에서 나가 싸울 일이 있겠습니까?”

“명의 군세는 화포가 많네. 현대전에서는 성벽에 마냥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대도 잘 알지 않나?”

“…예.”

“명은 봉명관을 다시금 점거하고 요동에 진출하는 것을 숙원으로 여기고 있네. 이 사람이 자리를 비운 것을 알게 되면 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아.”

자신을 치하하는 말은 아니었다.

객관적인 상황 판단이었다.

정말이지 도원수의 위명은 가히 명군(明軍)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아 봉명관 그 자체라느니 그런 소리도 나돌았었으니까.

“상국의 것을 배운 우리의 화포가 더욱 사거리가 길다 하나, 포신이 긴 것은 재장전에 시간이 드네. 주철 대포의 내구성 문제도 매번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이네. 항상 병기공들을 가까이 두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

오랜만에 뵌 분이지만 여전하시다, 김시민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명은 우리에 비해 물산이 크게 풍족하여 우리는 다만 군의 정예함과 기강, 그리고 지휘관의 현명함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이야.”

다행스럽게도 김시민 또한 완전한 유학파는 아니더라도, 개성에서 몇 번의 위탁교육을 받은 인재기도 하였다.

긴장인지 부담감인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어깨를 두들겨 준 이윤신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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