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조우
외흥안령 산맥(힝칸알린, 스타노보이 산맥).
“후우, 후우.”
온몸에 모피로 만든 두꺼운 옷을 뒤집어쓴 한 무리의 남자들이 모닥불에 앉아 감자와 사냥한 짐승의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형님, 날씨가 오지게 춥구려. 이러다가 정말로 불알이 다 얼어붙겠소. 사냥 멈추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소?”
따뜻한 불에 옹기종기 모여 감자를 까먹고 있는 이 건장한 사내들도 덜덜 떨려오는 다리를 제대로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아니 된다. 언제 다시금 솔빈부에서 이곳까지 오겠느냐. 며칠만 더 눈보라가 잦아들길 기다려보자.”
옥저 모피사냥꾼 무리의 우두머리가 그리 말하자 몇몇 동생들이 투덜거렸으나, 그들 역시 이렇게 빈 손으로 갔다간 올해 겨울은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상국에서의 식량 수입이 평소보다 삼 할은 줄어든 지금, 옥저 곡물의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상태였다.
옥저인들에게 답은 하나였다.
감자는 이미 최대한 많이 기르고 있었지.
그렇다면 모피를 더욱더 많이 팔아야만 했다.
날씨가 추워짐에도 그들은 북으로, 서로 계속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옥저 사냥꾼 우두머리가 주먹을 쥐었다.
“자, 몸을 뉘기 전에 마구간과 이 건물들의 틈을 좀 막아 보거라.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말이나 우리나 다 자다 죽는다.”
청년들은 굼뜬 몸을 움직여 자기 전 이리저리 거점을 보수하기 시작했다.
요새라고 보기엔 좀 무리수가 있었고, 일반적인 오두막보다는 조금 더 견고하게 지어진 이곳은 옥저의 모피사냥꾼들이 이곳에 올 때마다 자리 잡는 거점 중 하나였다.
극한의 환경으로 인해 평상시에는 버려져 있었기에 가끔 다시 돌아와 보면 다른 놈들이 점유하고 있긴 했지만, 그놈들이야 오합지졸에 불과하니 딱히 상관은 없었다.
“형님!”
얼추 거점 보수가 끝나고 날이 저물어 잠자리에 들 때, 보초를 보던 사냥꾼 하나가 달려왔다.
“형님, 저 서쪽의 지평선에서 웬 말을 타고 오는 놈들이 있습니다!”
“어웡(에벤키, 에벤을 총칭) 놈들이냐?”
이곳 산맥 근처에 살아가는 어웡 놈들이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대충 몇 번 허공에 총을 쏴재끼면 알아서 꽁지를 뺄 놈들이니까.
난폭한 여진 놈들도 대부분 흡수하거나 흡수하지 못한다면 박살을 내었던 옥저였기에 이런 야인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도가 튼 지 오래였다.
“모지리 같은 놈들. 설마 우리가 있는 줄 모르는 겐가?”
우두머리가 투덜대자, 보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 정말 처음 보는 놈들입니다.”
우두머리는 보초의 다급한 표정을 보다 벌떡 일어나 주머니에서 망원경을 꺼냈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나가 저 서쪽의 지평선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고려산 망원경은 유리정의 선명성이 좋아 상당히 멀리 볼 수 있는 기물이다.
값비싸긴 했지만 몇 번이고 그들의 목숨을 구해준 물건이기도 했고.
유리정을 통해 멀리 다가오는 무리들을 바라본 우두머리가 이윽고 보초가 말한 적들을 찾아내었다.
그 선두에는 비슷한 망원경으로 이곳을 쳐다보고 있는 적들의 두목도 보였고.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니야.”
야인들이 무슨 망원경을 쓰겠는가.
게다가 말에 탄 자들은 개개인들이 옥저인들만큼이나 두꺼운 모피를 껴입은 것은 물론이고 소화기(小火器)로 무장되어있었다.
이 근처의 어웡 놈들이나 몽골의 잔당 놈들이 아직까지도 제대로 총과 같은 소화기를 다루지 못하고, 가지고 다닌다 하더라도 화약이 없어 제대로 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저 피부색도 이질적인 자들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협적인 놈들이겠지.
우두머리의 말에 옥저인들 또한 마른침을 삼키며 제각기 총을 집어 들고 화약접시에 장전을 시작했다.
“일단 말이라도 걸어보자.”
* * *
“…목책 요새라. 게다가 화기를 제대로 쓸 줄 아는 모양이군.”
루스 차르국, 아니 이제는 러시아 제국이라고 불릴 곳에서 마침내 이곳까지 당도한 돈 카자크의 지휘관 하나가 감탄의 말을 내뱉었다.
저 이방인들은 그저 야만스러운 놈들이었던 지금까지의 시베리아의 원주민들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외모는 타타르인과 비슷했지만 지금 보니 고려인들과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이곳인가? 드디어 러시아가 동방의 끝에 다다른 건가?’
지나와 몽골, 그리고 옥저와 조선 등이 있다는 극동의 땅.
결국 동으로 동으로 가다 보니 도착한 것이렷다.
― 이랴, 이럇!
천천히 그곳으로 말을 몰아 가고 있으니, 저쪽에서도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말의 발굽에 눈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대장, 어찌할까요.”
총기의 시대가 왔다 하나, 그래도 여전히 기병에게 속도를 통한 충격력을 일방적으로 주는 것은 몹시 위험한 행동.
대응의 여부를 묻는 부하에게, 카자크 무리의 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싸울 의사는 없는 모양이군.”
어느덧 속도를 천천히 줄인 옥저인들이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카자크 무리의 앞에 섰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기병 소총은 비록 아직은 사선으로 바닥을 보고 있었지만 언제라도 그 총구를 올려 사격을 할 수 있겠지.
그들을 힐난하기엔, 이미 카자크 무리들도 장전된 총을 안장 위에 걸쳐둔 상황.
두 무리는 묘한 대치를 시작했다.
옥저와 러시아의 개척자 겸 사냥꾼 겸 군인들은 서로에 대한 궁금증과 경계심, 호승심이 공존하는 태도로 서로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 다그닥 다그닥
카자크의 지휘관 혼자 앞으로 천천히 말을 몰고 나오자, 옥저의 우두머리 또한 손짓으로 부하들에게 혼자만 앞으로 나가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고는 말을 몰았다.
“안녕하시오.”
‘호오.’
“반갑소.”
카자크의 지휘관이 어설픈 고려어로 말을 꺼내자, 옥저의 우두머리는 당혹스러움 반쯤, 신기한 감정 반쯤을 품고 대답을 해 주었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게 생겼건만, 이자 또한 우리와 같이 상국의 말을 할 줄 아는구나.’
정말로 놀라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말을 꺼낸 카자크 지휘관은 별다른 감흥이 없어보였다.
이미 유럽의 귀족들과 식자들이란 사람들은 프랑스의 위신이 땅바닥에 떨어진 이상 라틴어와 고려어를 교양의 필수적 요소로 여겼고 그것은 유럽에서 가장 궁벽한 곳에 있는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러시아는 위대한 세 이반의 치세에 국가의 체계를 잡으면서 그 틀을 고려에서 엄청나게 많이 참고했던 터라 바그 코히엔을 가장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나라 중 하나였다.
“…아국 옥저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것이오?”
카자크의 지휘관은 그의 얼굴을 한 번, 저 멀리 지어져 있는 목책 요새를 한 번 바라보고는 짧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뭘 어찌해야 하나.
‘이들은 시비르 칸국과 같은 미개한 놈들과는 다르다. 결국 이자들과 조선이라는 자들이 몽골의 마지막 황조인 북원을 박살 내었지 않는가?’
차르께서도 만약 이들과 조우한다면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하라 그렇게 말을 하셨지.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는 고작 천 명도 되지 않는 병력으로 시비르 칸국을 멸망시켰으나 그것은 시비르 칸국이 국가라 보기 힘들 정도로 낙후된 집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카자크의 지휘관도 눈앞의 옥저인들과 싸우면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했으니.
우리의 팽창이 이곳으로 끝나는 것인가.
약간의 아쉬움을 담은 채 그가 말했다.
“몸을 덥힐 장소가 필요하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본 옥저 우두머리가 고개를 까닥하더니 길을 풀었다.
왜 안되겠나.
* * *
태조 이자윤이 서기 1509년(개천 234년) 솔빈부에 도읍을 정하고 옥저를 개창한 이후, 이 조그마한 북방의 나라는 짧은 세월 동안 실로 엄청나게 발전했다.
인구는 초창기 정말 수십만도 되지 않은 자그마한 조선인―여진인 반농반목 연합체였던 것에서, 건국 후 거의 백 년이 지난 이후에는 무려 백만에 달하는 국가 규모로 발전한 것.
태생적으로 인구수가 엄청난 조선에 비해서는 아직도 몹시 초라한, 거의 십분의 일에 불과했으나 그것은 동아시아 특유의 인구 과다로 인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것이었지, 저 멀리 유럽의 나라와 비교해본다면 칼마르 연합의 해체 이후 구스타프 1세 바사가 바사 왕조를 개창한 뒤 북방에서 잘 나가고 있는 스웨덴과 체급이 엇비슷해진 것이다.
이는 건국 자금으로 은 일만 관을 선물해 주고, 그것도 모자라 감자가 있더라도 농업생산량이 형편없는 옥저에게 계속 식량을 주어 기틀을 다질 수 있게 해줌으로써 씻지 못할 은혜를 준 고려 덕분인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조선계 이주민이 의외로 꾸준히 이어져 왔다는 것도 큰 이유가 되었다.
이금과 후대의 왕들이 어떻게 두들기고 두들겨 보았지만 결국 확고한 신분제를 무너뜨리지 못했던 조선과 달리, 옥저는 건국 초부터 신분이라는 것이 별로 없었다.
고려에 유학을 갔다 온 옥저의 남학파들은 소리높여 고려의 풍습을 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이민족 통합에 있어서 고려의 풍습을 많이 따르는 옥저는 고려의 동화정책과 신분제도를 따르게 된 것.
신분제에 염증을 느껴 도망쳐온 조선인 뿐만아니라 그 수많은 여진 부락들 또한 의외로 잡음 없이 흡수할 수 있었던 것에는 보고 배울 본보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상당히 컸다.
덕분에 지금 옥저는 인구수로는 조선에 현저하게 밀렸으나 군사적 규모로는 조선과 자웅을 겨루어도 밀리지 않았으며 감자와 보리, 호밀과 메밀, 귀리 등 척박한 토지에서도 견디기 쉬우며 높은 북방한계선을 지닌 작물에 대한 농법이 보급화된 이후 식량 현황도 상당히 개선된 상황이었다.
아직 어느 정도의 식량은 고려에게서 수입해와야 했긴 했지만, 이 정도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러한 옥저와는 체급이 아예 달랐다.
타타르의 멍에를 벗어던진 류리크 왕조는 그야말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위대한 세 이반(과 하나의 바실리)의 치세.
즉 해방제 이반과, 승리제 바실리 3세, 경외제 이반 4세, 정복제 이반 5세의 치세를 겪으며 모스크바 대공국은 루스 차르국으로 바뀌었고 마침내 로마의 또 다른 적통, 러시아 제국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해방제 이반 3세는 루스의 공국들을 통합하고 킵자크 칸국을 공격하여 마침내 타타르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그 다음, 바실리 3세는 그의 제위에 크림 칸국과 카잔 칸국을 정벌했으며 체르노좀(Чернозём, 흑토 지대)를 병합할 근거를 만들었다.
그 후 즉위한 경외제 이반 4세는 국내의 머리 굵은 보야르들을 죄다 때려잡는 엄청난 숙청의 피바람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고려의 삼성을 모방하여 젬스키 소보르(의회)와 행정부를 설립했고 수제브니크 법전을 보완하고 편찬했으며 전반적인 관료제도도 재정비했다.
또한 그들의 숙적,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시비를 분쇄하여 잉그리아(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전신)를 수호하기도 했으며 노가이 칸국 등 킵차크 칸국의 잔당들과 가지쿠무크 등의 이슬람 왕조들을 때려잡고 캅카스 산맥 이북을 확보하기도 했다.
또한 예르마크를 통해 시비르 칸국을 멸망시키기도 했지.
마침내 선대의 위업을 디디고 선 정복제 이반 5세는 바실리 3세의 유지에 따라 우랄의 동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는 정말로 폭풍과도 같아, 루스 차르국은 바야흐로 동로마의 또 다른 적통을 칭제하기에 어울리는 영토와 위신을 얻어낼 수 있었다.
바야흐로 북방의 제국이 깨어난 것이다.
그러나 옥저와 마주한 러시아는 의외로 친근하게 이들을 대했다.
심지어 러시아의 차르(임페라토르를 칭하지는 않았다.)는 직접 쓴 안부 서신을 카자크를 통해 옥저의 왕에게 전달하기도 했으며, 옥저의 왕 또한 답신을 전달해 보냈다.
오고가는 것에 실로 엄청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러시아 또한 세계지도가 상당히 많이 밝혀진 지금, 동쪽으로 뻗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극동의 국가들에게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도 했고 늪지대이긴 했지만 이미 잉그리아라는 곳을 확보하고 흑토지대를 병탄한 이상 부동항에 대한 열망이 예전만큼이나 대단하지는 않았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멀리 떨어져 있다 하나 발트해를 오가는 북유럽회사를 통해 무역은 계속 하고 있던 덕에 의외로 고려와 친밀했고 적으로 두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스웨덴, 폴리투, 오스만 등 사방에 온통 적대적인 외교 관계를 자랑하는 러시아에게 고려는 지극히 우호적으로 두어야 할 첫 번째 나라였다.
발트해의 국가들도 북유럽회사는 잘 건드리지 않았으니까.
그들의 이런 외교적 위치는 두 나라 황실 간의 교류에서도 그 흔적이 많이 나타나 류리크 황조의 차르들은 비공식적인 서신 교류에서 지극히 친밀한 어투로 고려의 해씨 황제들을 ‘우리의 친애하는 사촌이여’라고 칭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강력한 사촌의 머리 굵은 부하를 건드려 봐서 좋을 것은 없지 않은가?
차라리 카자흐나 준가르를 건드리면 건드렸지.
옥저도 이들을 건드릴 생각을 안 했으니, 두 나라는 자연스럽게 남쪽은 외흥안령 산맥을 경계로 삼았다.
동쪽의 경계는 알단강과 베르호얀스크 산맥으로 정해졌다.
야쿠츠크에서 그 확장을 멈추었는데, 일단 비동도 기준 영하 60도~70도에 달하는 날씨는 그렇게 추위를 잘 견딘다는 러시아인들에게도 너무 추워도 너무 추웠고 때마침 본토, 즉 우랄 서쪽에 기근이 몰아닥쳤으며 이곳 영토와 가까운 곳에 있는 옥저가 그네들이 살지도 않으면서 알단강과 백한 산맥(베르호얀스크 산맥) 동쪽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기에 마냥 강짜를 부리기 힘든 환경도 있었다.
두 나라는 이 만남 이후 서로에 대한 적대행위를 하진 않았고 괜스레 애꿎은 북원 잔당들을 두들기곤 했다.
시베리아.
시비르 칸국의 이름에서 따온 이 잠자는 대지를 둘러싸고 경쟁 구도를 펼치게 될 두 나라의 최초 조우는 후대의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길 정도로 꽤나 평화로웠다, 그리 기록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