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70화 (270/653)

종기

그렇게 하여, 일만 명의 장정 그리고 그들의 가족은 고려로 향했다.

상당히 타격이 크겠지만, 조선은 오히려 예전보다야 인구가 성장하기에는 더욱 나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감자와 고구마는 말할 것도 없겠지.

농토로 쓰기에는 영 적절치 않은 땅이 많은 조선에겐 더할 나위 없는 작물이니까.

거기에 더해, 의료기술의 개선도 있었다.

과거, 병인몽란 때 충주에 두창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올로스 볼라드가 아버지의 죽음에도 아무것도 못 해보고 퇴각한 이유였었지.

그때 한번 유행했던 두창은 사방으로 번져나가는 듯했으나 고려인들이 실시한 현장에서의 인두법,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우두에 걸린 소를 들여와 우두법을 시행하자 마침내 정복되었다.

초기에는 괴상망측한 의료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불만도 있었겠지만, 결국에는 마마를 잡아내는 것에 성공한 상국에 대한 민심이 얼마나 컸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학질 또한, 이제는 돈만 있다면 어찌 막아 보일 수 있는 질병이 된 것이다.

기나(키닌의 음차, 금계랍)라는 약물만 있다면 왕실도 꼼짝 못 했던 학질을 이제 이겨낼 수 있으니까.

이렇게 사실 고려가 조선의 인구를 뜯어간다고 하더라도, 결국 고려의 존재 자체가 조선에게 큰 이득이 되었음을, 그리고 지금도 되고 있음은 그 아무도 부정하지 못했다.

이금도 또한 명석한 자라, 거절할 수 없는 제의를 거절해보려고 노력하는 대신 여러 가지를 얻어냈다.

일단, 포도아로 한정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수많은 종류의 양이 해적들이 남명과 대만에 있는 주를 건드리다 못해 심지어 조선까지 와 난동을 부리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군선.

이금은 상국에게 청해 새로운 함선 건조의 협조를 받아내어 이백록이 개발한 초창기 판옥선의 구조를 개선해 나갔다.

판옥선은 조선의 전형적인 평저선 군함이다.

기존의 어설픈 맹선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진보를 이루어낸 군선이기도 했다.

일단 노잡이들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고, 총통을 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게 설계된 포함이라는 것 자체가 실로 괄목상대할 만한 진보였으니.

그러나 그 크기는 한계가 있었다.

평저선은 일장일단이 많지만, 배의 대형화를 꾀할 수 없다는 가장 큰 단점이 있기에 거함주의가 팽배한 고려에서는 잘 채택되지 못했다.

조선의 판옥선은 처음에는 그 규모가 소소했지만 이백록이 가진 고려의 거함에 대한 동경으로 넓이를 최고로 끌어올려 원안보다 상당히 커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도 배수량 기준 300여 톤 내외가 한계였다.

배와 배가 넓은 바다에서 싸우면, 대개는 덩치가 큰 쪽이 이긴다.

포가 많을 테니.

하지만 고려마냥 대양항해를 꿈꾸지 않는 이상, 연안에서는 노를 젓는 방식의 갤리가 전술적 기동성(선회력)으로 우위에 서는 면이 많았고, 굳이 갤리가 거함을 추구할 이유는 없었으니 배의 크기는 조선의 입장에선 그 정도면 충분했다.

큰 배들이 나타나면, 더 큰 배들이 나타나 구해줄 것이기도 했고.

또한 서해안과 남해안에 갯벌이 가득한 조선에서는 평저선이 사실상 강제되는 면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한선의 이음방식, 즉 턱따기 이음은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대신 상당히 튼튼했기 때문에 중소형 군함의 건조 방식과 어울렸기도 했고.

판옥선이 가진 필연적인 단점, 즉 흘수선이 낮아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완하기 위해 양국의 기술자들은 함선의 선수와 선미에 균형장치(머리와 꼬리라 부르는)를 달아 이를 보완했다.

이런 우수한 판옥선의 뼈대에다, 고려인 선박기술자들은 명백하게 낙후된 조선의 돛 기술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재질부터.

조선의 전통적인 돛은 옛 삼별초 고려의 배처럼 갈대섬유와 삼베와 같은 천으로 되어 무게도 무겁고 내구성이 낮으며 통기성이 높아 썩 좋지 못한 돛이었다.

그러나 상국 고려는 시대가 발전하면서 차츰 기존의 삼베 돛과 아마포(린넨) 돛 대신 가볍고 질긴 면 돛(Cotton Duck)을 쓰기 시작했었다.

목화 직조의 개선이 있기 전에도 그랬으니, 지금은 더욱 채택하기 쉬웠지.

이제는 조선 또한 상국에 목화솜을 팔고 대신 면포를 싸게 수입하고 있는 처지이니 이를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돛의 재질과 더불어 돛대의 구조도 바뀌었다.

“근해에서 기동하며 싸우는 것이 조선 수군의 전술이라면, 종범이 주력으로 채택되어야지 않겠소?”

갤리에서 돛은 전투 시 장식이라 한다지.

그러나 전투에서나 노잡이들을 써야 했지, 비전투 상황에서도 노잡이들을 혹사시키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안 되었다.

또한 종범은 전투 시에서도 전술적인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어차피 평저선은 첨저선보다 물의 저항을 더 많이 받는 구조였기에 느린 함선.

그렇다면 태생적인 장점, 즉 첨저선보다 확실히 우위에 서 있는 선회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맞았다.

현 조선 판옥선의 돛대는 전통적인 2대가 아닌 3대로 추가된 상태.

고려는 이들 전부에 거대한 종범들을 달자고 제시했고 당시 고려에서 전통적인 삼각돛을 개선하여 만든 선장종범(Stay Sail)―후장종범(Gaff Rig, Spanker)을 채택했다.

진보된 돛의 형태로 인해 순풍과 역풍 모두에서 전반적인 속도가 확실하게 개선되는 것도 상당한 성과였으나 바람안음 단계와 바람등짐 단계에서의 선회력은 이전보다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실험을 해본 결과, 고려의 순양함이 한 번 선회를 하기 위해 육중한 몸을 뒤틀 때, 양국이 새롭게 건조한 판옥선은 무려 일곱 번이나 선체를 빙빙 돌려댈 수 있었던 것이다.

“…실로 도깨비 같은 배입니다!”

병조판서 이백록을 위시한 조선인 장수들은 크게 고무된 듯싶었다.

만들고 나니, 조선 화포들의 작은 구경(가장 위협적인 천자총통은 화약이 딸리는 조선에게는 사실상 잘 쓰이지 않는 전시용 무기였다)을 감안해봐도 상당히 위협적인 함선임이 틀림없어 고려인 선박기술자들도 흠칫 놀라긴 했다.

그러나 정작 신벽란도에서 새로운 함선의 기동을 참관한 해군 장교들은 박수를 치긴 했지만 딱히 신경을 쓰는 얼굴은 아니었다.

“인상적이군요. 잘 보았습니다.”

이미 고려는 조선이 지금부터 열심히 판옥선 몇십 척, 심지어 몇백 척을 건조해도 그 정도 규모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대양해군을 육성해 나간 상태.

게다가 엄연히 저 판옥선도 고려의 공동개발 자산이 아닌가.

정 필요하면 탐라에서 만들면 되었다.

* * *

양이의 해적선단을 효과적으로 막을 함선을 개발하는 공적인 지원 이외에도 사적인 지원이 있었다.

“끄응…….”

어느날 밤, 이금은 앉아서 정무를 보다, 뻐근함에 목을 주무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선의 왕은 안 그래도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상당히 가혹한 일과를 보내는 편이었는데, 이금 자신도 몹시 근면한 성격이라 그는 하루에 겨우 두 시진(4시간) 정도만 제대로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실로 많구나.’

이금의 대에 들어서, 기존에 조선을 심대하게 무너뜨리고 있던 일천즉천은 폐지가 되었고, 종모법의 재도입으로 인해 노비의 숫자는 크게 줄고 양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또한 진람의 짧은 군정 기간 동안 실시되었던 토지개혁을 근거로 이금 또한 경기와 황해, 심요, 평안과 충청의 지주 세력을 크게 억누르는 것에 성공했다.

가장 중요한 곡창지대, 즉 병인몽란의 여파가 닿지 않아 여전히 지주들이 많은 호남과 영남의 토지개혁은 여러 이권이 걸린 까닭에 지지부진했지만.

‘삼남의 토지를 전부 개혁하기 위해선, 대사헌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맞다. 허나 대사헌은 그 정도가 심하구나. 임금의 권력을 크게 제한하고, 상국처럼 재상에게 통치를 위임하고 뒷방으로 물러나라니. 대체 어째서 여가 없다면 조선의 개혁이 굴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러한 주장을 거듭하여 펼치는가?’

대사헌 조광조는 처음에는 노비제 혁파와 토지 개혁의 기조를 강력하게 주장한 덕에 이금의 신뢰를 받았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지나쳤다.

정적들이 너무나 많아 그를 마냥 비호하기도 어려운 상태. 그 와중에도 임금의 권위를 건드리는 일까지 스스럼없이 하니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금은 요즘에는 소위 말하는 남학파에 속하는 다른 사람, 즉 예조판서 남곤을 더 총애하고 있었지.

달이 밝은 밤, 일어나서 침전의 마당을 한 바퀴 천천히 돌며 생각을 정리하다 다시금 자리에 앉은 이금은 불현듯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성을 흘렸다.

“으윽.”

심상치가 않았다.

서둘러 손을 뻗어 엉덩이를 만지니, 붉게 물든 감촉이 있었다.

‘이런!’

항문이 환부는 아니었다.

그러나 엉덩이에는 붉게 달아오른 종기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리 아프진 않았는데?

이금은 황망한 와중에, 등골에 서늘한 감각이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하늘이시여. 어찌.”

종기는 무서운 질병이다.

귀천을 가리지 않는 이 질병은 양민은 물론이고 양반과 선비, 그리고 심지어 임금의 목숨도 앗아가곤 했다.

이금의 나이도 마흔이 훌쩍 넘었으니 이제 종기는 그에게도 심각하게 위험한 질환이 된 것이다.

이금은 곧바로 어의를 불렀다.

깊은 잠에 들었다가 급히 일어났는지, 임금의 앞에서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어의는 이금의 환부를 보자, 순식간에 잠에서 깨어났는지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전하.”

“어의는 기탄없이 말하라. 여의 환후라 하나 임금에게 고하는 것이니 어떠한 것도 숨기지 않고 말해야 할 것이야!”

어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종기의 면적이 이미 상당히 커 환부가 몹시 위태롭습니다.”

어의의 표정에게서 자신의 상황을 짐작한 이금이 물었다.

“그대는 치료할 수 있겠는가?”

“…예에 전하.”

그러나 어의의 치료는 실패로 끝났다.

오히려 환부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고 염증이 일어나는 붉은 범위는 이제 둔부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

이금은 악화되는 증상에 자리보전을 했다.

“많은 약들도 효험이 없으니 아마 하늘이 여를 데려가시려는 모양이다. 세자를 부르도록 하라.”

중전과 젊은 세자가 눈물을 흘리고 이금이 무덤덤하게 유언과 같은 말을 남길 때, 하염없이 어느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던 예조판서 남곤은 마침내 부탁한 자가 신벽란도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미친 듯이 말을 몰아 그 사람을 경복궁에 데리고 올 수 있었다.

* * *

“전하를 뵙습니다.”

연서궁, 제국한림원에서 의학을 다루는 최고의 박사이자, 의학영실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다는 고려의 의원, 윤양배는 침전에 들어오자마자 일단 주변인들을 휙 쫓아냈다.

“세자께서도 물러나 주시지요.”

“아… 아바마마를 잘 부탁하오.”

알 수 없는 기백에 물러나는 태자를 바라보던 양배는 이윽고 끓는 솥을 내와 가져온 면포를 전부 다 삶도록 지시하고는, 환부를 살폈다.

오직 남아있던 예조판서 남곤만 멀찍이 떨어져 발을 동동 구르며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 고려인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도 환부가 둔부라 다행입니다, 전하.”

“그런가?”

“등에 나는 등창은 몹시 위험하니 소신이 이곳에 도달할 시간까지 버티시지 못하셨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자신이 와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듯 오만하게 구는 고려인 의원은 그 오만함의 근원이라도 있는 듯 이리저리 환부를 만져보기 시작했다.

일견 민망한 꼴이었지만, 이미 많은 고통에 시달린 이금은 어떤 방법이라도 좋으니 빨리 차도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컸다.

“피부의 종양 조직은 아닌 듯하고, 환부의 특성상 골수와 정혈계(晶血系, 림프계)의 절(節)도 아닌 듯하니…….”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고려인 의원은 그에게 설명하는 대신 기존의 어의들을 불러냈다.

“종기의 치료는 어찌하고 있었습니까?”

아무리 특출난 재주를 자랑한다는 상국의 의원이라지만 하는 행동이 안하무인이 따로 없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의들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크흠… 우리들의 치종술(治腫術)은 일단…….”

그래도 현지 의학에 대한 존중은 있었던 고려의 의원은, 한참 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듣다가도 마침내 내의원 어의가 입을 이용해 종기의 고름을 빨아내었다는 대목에 도달하자 실로 어이가 없어 자신의 귀를 후벼보더니, 이윽고 고함을 질렀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게요!”

“…뭐, 뭣이?”

“썩 나가시오, 이런 쓸모도 없는 작자들 같으니라고!”

어의들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는 광경에 그야말로 어이가 없어져 방 안에 엎드려 있을 임금 대신 마당에 서 있는 예조판서 남곤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으나, 남곤은 고개를 저어 보일 뿐이었다.

“…두고 봅시다.”

모멸감에 입술을 짓씹은 어의들이 나가자 양배는 자신의 수발을 들기 위해 남들이 다 나가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한 명의 젊은 의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대는 일단 손부터 제대로 씻으시오.”

양배가 가지고 온 비누로 젊은 의원이 벅벅 손을 닦는 사이 자신의 행낭을 전부 펼쳐 보인 양배는 이미 한 번 가열소독해 가져온 수술도구들을 다시금 고농도의 소독용 주정에 담그기 시작했다.

도가니제강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한 수술도구들을 쥐고 한 눈에는 돋보기안경을 쓴 양배는 자신의 입에 먼저 입가리개를 한 뒤 아무 말 없이 다른 입가리개들을 젊은 의원에게 주었다.

‘쓰라는 것인가.’

눈치를 보던 의원이 입가리개를 그와 비슷하게 착용했다.

사각형의 면포 네 귀퉁이를 목과 머리 뒤에 묶어 고정시키자, 그제서야 양배가 입을 열었다.

“명심하시오. 환부는 절대적으로 청결해야 하오. 오가는 숨, 환부에 튀는 타액, 사사로이 환부를 씻지 않은 손으로 건드리는 행위 한 번 한 번에 전하의 예후가 천차만별로 바뀔 것이니.”

“아… 알겠습니다.”

“좌에서 우로. 수술 도구들을 일 번, 이 번으로 하겠소이다. 정확히 신속하게 주시오.”

“좌에서, 우… 알겠습니다.”

“환부는 둔부의 종기. 모낭에 균이 침범하여 염증이 번져 확산되는 것으로 추정되오. 환부와 그 밑의 피지주머니를 제거해야 피지낭종을 완전히 없엘 수 있으니 절개하여 뿌리를 도려내는 수술을 할 것이니 기억하고 계시구려.”

완벽한 것은 몰랐지만, 언어가 같아 의미는 얼추 이해가 되었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다시금 주정을 둔부에 골고루 발라 소독을 완성시키는 양배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 내의원 의원, 임언국(任彦國)은 혀를 내둘렀다.

그 또한 치종의로 분류되는 만큼 종기에 대해 상당한 조예가 있었으나, 눈앞의 의원은 자신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고 있는 것마냥 소독에 대해 강박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송구하오나 전하, 이제 수술이 시작되오니 몹시 아프실 것이옵니다.”

이금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일 번 수술도(刀)를 주시오.”

“여깄습니다.”

― 툭

“으으…….”

왕의 신음에도 양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을 놀렸다.

“삶아놓고 일광건조한 저 천으로 조심스럽게 피와 고름을 닦으시오. 닦은 후에는 삼 번 집게와 사번 가위를.”

“예, 예.”

수술은 상당히 빨리 끝났다.

어차피 양배의 입장에선 기껏 종기를 절개하는 외과적 수술중에서도 소규모 수술이었다.

내부 장기를 건드리는 위험천만한 대수술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옆에서 그 윤양배를 지켜보았던 임언국은 상당한 충격에 휩싸인 지 오래였다.

‘…개성의 고려인 의원들도 실로 현묘하다 했는데, 이 자는 실로 하늘이 내린 신의와도 같구나.’

당대 조선에서는 여러 이유로 크게 퍼지지 못했던 외과적 처치를 섬세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술 후의 뒤처리까지 깔끔하니 이금의 둔부에 났던 종양은 불과 일주일 만에 외과적 수술 부위를 제외하고는 그 염증이 순식간에 사라져가고 있었다.

양배는 꼼꼼히 이금의 옆에서 머물며 환후를 챙겼다.

가위로 완전히 진피층의 피지주머니를 도려내었기에 재발조차 하지 않았고, 감염도 잘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시 한 주의 시간이 흐르자 이금의 엉덩이는 약간 푹 파인 흉터가 생겨났을 뿐 이전과 같이 멀쩡해졌다.

이에 크게 매료된 임언국은 임금에게 고려로 가 의학을 배워오겠다는 주청을 올렸다.

의학은 가장 실용적인 학문 중 하나다.

옳고 그름이 정말 완벽하게 정해져 있기도 했으니.

따라서 조선의 의원들은 고려의 의술을 대체로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었지.

조선의 의학적 한계를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임언국 또한 윤양배에게 크게 감명을 받아 유학(留學)에의 동경을 크게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거의 죽다 살아난 이금 또한 윤양배가 준 환자를 위한 하루 세신 및 운동 일과표를 들여다보다가 그의 말에 흔쾌히 윤허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후에 조선 최고의 외과 의사가 될 임언국은 그의 스승 윤양배와 함께 신벽란도에서 배를 타고 머나먼 동쪽으로 향했다.

* * *

고려인들이 살리고 있는 자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이들의 의술은 유럽의 여러 왕족들도 살려내고 있었으니까.

이미 유럽 왕실들은 고려인 의사를 천금을 구해서라도 얻어 궁정에 두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상태.

이탈리아도, 프랑스도, 잉글랜드도, 신성로마제국도 궁정의사는 고려인 출신들이 많았다.

어쩐지 고려인 의사들이 아니면 다른 나라가 업신여겨 조금 위신이 떨어져 보이기도 했고.

그것은 저 북쪽에 있는 모스크바 대공국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죽기에는 아까웠는데, 그대가 날 살렸구나.”

모스크바 대공국의 대공, 바실리 3세 이바노비치 또한 이금과 비슷한 환후를 앓고 있었다.

게다가 병환이 치료된 것도 이금과 비슷하게(비록 고려가 파견한 사람이 아닌, 황금으로 구한 의원이었지만) 고려인 의원에 의해서였다.

그의 어머니 소피아도 몇 번이고 사촌 언니가 보낸 의원에 의해 병환이 치료되었지.

그 의원은 늙어 죽었지만 소피아와 이반의 아들인 바실리도 백방으로 사람을 구하다 마침내 카디스에서 적당한 의원을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로 꼬셔 궁정으로 데려왔으니 드디어 효험을 보았던 것이다.

바실리 3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의 위업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이반 3세에 뒤이어, 그 또한 모스크바 대공국을 넓게 확장하고 있었다.

프스코프 공화국, 랴잔 대공국, 노우호로드 시베르스키와 볼로콜람스크. 그리고 스몰렌스크까지.

그러나 그것으로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우리의 사촌에 의해 저 머나먼 동쪽에서 대칸들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으니 우리 또한 동쪽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

서방정교회의 수호자, 고려 로마는 드디어 옛 원수를 물리쳤다 한다.

그 가슴 뜨거운 소리를 듣고 어찌 루스인들 또한 격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드디어 지긋지긋한 타타르의 멍에를 떨쳐버릴 때가 온 것이다.

서기 1530년.

바실리 3세는 마침내 모스크바 대공국을 루스 차르국(Ру́сское госуда́рство)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려에 뒤이어 동로마의 또 다른 후예라 주장한 뒤 카잔 칸국과 크림 칸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당대 크림 칸국과 카잔 칸국은 둘의 힘을 합쳐도 도저히 모스크바 대공국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들을 지원할 만한 오스만 또한 제 코가 석자인 상황.

마침내 바실리 3세는 두 칸국을 제압하고는 우랄 서쪽의 지배력을 공고히 다지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다.

루스인들에게는 더욱 광대한 영토가 동쪽에 있었으니까.

“시베리아가 우리를 기다리노라.”

수많은 병사들 그리고 모피사냥꾼들.

바실리 3세는 그들 앞에서 해가 뜨는 방향, 우랄의 동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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