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차(2)
가는 길과 가지 않은 길.
기술의 발전은 대개는 순차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 그 기술을 정말로 필요로 하고 집착적으로 개발을 한다면 말이지.
다른 분야들의 시시콜콜한 개선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여 가장 막대한 심력을 쏟은 것.
상민에게 있어, 기차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이 땅에 떨어진 이후부터, 누가 그에게 평생의 소원이 뭐냐 물으면, 하나는 운하를 파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기차를 까는 것이라 했을 정도였을 테다.
철도의 상세한 기술에는 단 한 번도 관심 가지지 않았던 지난 삶을 원망했을 정도.
그래도 그는 계속 노력했다.
기차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하면, 마음껏 후원을 해주기도 했다.
장인들의 실패를 전혀 나무라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다독이기도 했지.
결국 그의 노력은 과실이 되어 맺혔다.
본래, 기차란 것은 토머스 뉴커먼의 증기기관이 발명된 이후 백 년 하고도 이십 년이라는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야 깔리기 시작했다지.
그러나 고려에서는 상민의 노력 덕분에 개천 185년, 장성재와 니키포로스의 증기기관(CE 1460) 이후 65년여 정도의 짧은(상대적으로) 시간이 흐른 뒤에 개통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중간에 북원 원정이라는 인적, 자금적 블랙홀과 다름없었던 희대의 사건을 겪어 십여 년간 개발이 미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욱 빨리 도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최초의 증기기관차는 이미 짧은 구간, 즉 니카라오 운하에서 배를 끄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
물론, 그 운하용 기차는 상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당히 괴상했다.
오직 배를 앞으로 끄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승객은 기관차를 조작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형편없는 초기형 증기기관의 열효율을 투입되는 석탄의 양으로 메꾸고자 기관실 크기도 상당히 컸으며, 그에 따라 열차가 무거워져 궤도에 맞붙는 바퀴도 많았다.
미래에서 온 상민이 탄식을 할 정도로 예전의 기차는 멋대가리 하나 없었던 것이다.
그래놓고도 처음에는 배도 잘 못 끌어 견인선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했지.
견인선의 비중이 9라면, 증기기관차의 비중은 1에 불과했다.
본질적인 구조 말고도, 사고도 많이 일어났다.
뜨거운 증기의 힘을 빌어 움직이는 기관이니만큼 열을 받으면 부품의 취약한 부분이 터지거나 기관을 운용하는 자들이 크게 다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이 운송용 외연기관은 개선되었다.
비단 운하뿐만 아니라 증기기관은 제지기와 제분기, 광산의 수송용 철로나 물푸개(Pump) 등 상당히 많은 곳에서 쓰이고 있었다.
현장에 있는 기술자들은 이 덩치가 크고 답답하지만 정직하게 일하는 쇳덩어리를 어떻게든 발전시켜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고, 곧 광산 일을 하는 고창식과 신경림 등에 의해 기관의 굴뚝과 변동기(Crank), 변동기에 의해 회전하는 곡축의 구조가 크게 개선되었다.
이렇게, 연철의 교련법이 나타나기 전, 이미 기차는 출격 준비가 완료되어 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창양역에는 그 부속으로 여러 가지 시설이 있었다.
운행하는 차량을 보관하는 보관소와, 정비소 그리고 기타 등등.
그중엔 시범개발소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기차를 개발하는 장인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이미 철도 관련 기술은 전부 공무부에 넘겨졌기에 이들은 기술선도국의 소속은 아니었다.
상민이 아무리 부를 추구한다고 하나, 이런 필수적인 기간산업에 대한 것은 대부분 국가가 통제하는 것이 맞았다.
적어도 고려 내의 철도들은.
이제 철도가 민간에 보여지게 되었으니 다른 나라들도 이런 기술을 훔쳐가면, 혹은 모방하면 어쩌냐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지금은 외부 유출에 대한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걱정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이 철도를 국토에 촘촘히 이어 내적 단결성을 끌어올리고 국가 행정력의 전파를 꾀해야 하는 것이 순리에 맞았다.
‘그리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이 옆 나라에 생겨났더라도 그것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나만큼 절박하게 느끼는 자는 별로 없을 것이니.’
그러니 저들이 이 철로를 보급하는 것도, 상당한 세월이 흘러야겠지.
그전까지 고려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영토에다가 쭉쭉 철로를 깔아나가야 했다.
“오… 오셨습니까?”
고려에선 사농공상의 구분은 없지만, 그래도 관직의 품계는 깡패와 같다.
장성재처럼 일가를 이룬 명장이 아닌 이상에야, 대부분의 기술자들은 품계가 그렇게까지 높지 않은 실무자들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창양역은 높으신 분의 가장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이었다.
뜬금없는 시중의 방문에 기차를 만드는 장인들은 모두 당혹스러운 얼굴이 가득했지만, 상민은 이렇게라도 무언의 압박을 넣는 것에 아주 정통한, 실로 악마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 기차 속도의 개선은 잘 되어가고 있는가?”
“몇 가지 돌파구는 찾았습니다만….”
말꼬리를 흐리는 것을 보니 딱히 극적인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은 듯싶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만 하시게. 연서궁에서 놀고먹는 학자들에게 일거리를 주어서라도 그대들을 도우라 말을 하겠네.”
장인들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예에….”
그러나 상민은 한술 더 떠서 그들이 듣기 싫어할 말을 기어코 입 밖으로 내는 것이다.
“공무상서에게도 꼭 이곳에 많이 들러 기술의 진척을 확인하라 했으니, 그대들에게 가야 할 지원이 끊기는 일은 없을 게야. 내 약조하지. 그래, 퇴청할 때마다 이곳에 들러 불편한 점은 없는지, 지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라 해야겠구만. 비서관!”
상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예!”
비서관이 후다닥 달려와 필기구를 꺼내 들었다.
“공무부에 확실히 전달하게. 상서가 여유가 나지 않으면 시랑과 낭중이라도 꼭 들르라고.”
“예, 확실히 전달하겠습니다.”
장인들은 얼굴이 아예 새파래졌다.
악마는 겉으로는 호탕하게 껄껄 웃었지만, 속으로는 실로 잔인한 생각을 이어갔다.
‘내가 직접 이끄는 기술선도국의 장인들만큼 패기와 열정은 없구나. 이 소위 말하는 공직에 있는 장인들 또한 시중의 관심이 지대하다는 것을 알아야 민간만큼 빠른 기술적 진전이 있을 것이다.’
아랫사람들에게 높으신 분들 중에서도 가장 높으신 분이 지켜보고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이리저리 하고 다닌 상민은 이곳에 파견된 공무부의 실무자들과 대담을 나누었다.
실무자도 바짝 긴장한 듯했다.
“경해선의 원활한 개통 다음에는, 순차적으로 다음 철로들을 증설할 계획이네.”
“예, 전달받았습니다.”
“다음 노선들은 정말 힘들 게야. 이번 경해선이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지만, 다음부턴 그럴 수가 없으니.”
사실, 경해선의 길이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는 표현은 옳지 못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서울과 전주까지의 거리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의 거리였으니까.
그러나 작달막한 대한민국의 스케일은 이곳에서 통용되기 힘들었다.
남려의 국토 면적만 남한보다 178배 더 큰 상황이니까.
대국으로서의 고충에 상민은 아득해지는 마음을 추슬렀다.
“이제 곧바로 다음 달에는 서산을 통과하는 경영선(창양과 영서 간의 노선)을 착공할 것이고, 그다음에는 경포선(창양과 포항)을 이을 것이네. 그 후에는 창양에서 출발하여 건양을 거쳐 청해로 가는 노선(경청선)을 이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창양에서 북령, 그리고 쿠스코로 가는 경북선을, 그다음에는 청해에서 연죽곶까지의 동해안 노선과 영서에서 홍진과 회계를 잇는 서해안의 노선을….”
공무부의 관원들도 개발소의 장인들마냥 이제 하나같이 어질어질하여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아국의 광대한 영토를 몰라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네. 그래도 상기한 목표는 적어도 이번 세기(개천 3세기) 안에는 끝냈으면 좋겠다 싶구만.”
그래도 기간은 오십 년으로 넉넉하지 않은가.
게다가 철도라는 것이, 도로와 같이 아무것도 없는 땅에 처음으로 세우는 것이 지극히 힘든 것이지만 그것이 계속 누적된다면 다른 노선을 깔 때에는 쉬워지는 감이 있었다.
상기된 저 노선들을 깐 이후의 다른 철도 노선들은 확실히 빨리 설치될 것이었다.
‘진작 흙길이라도 다져놓았던 것이 다행이다.’
쇄석길은 창강대평원 중심의 평탄하고 인구가 많은 지역들에게는 마차로 오가기 쉽도록 꽤나 꼼꼼히 깔려 있었지만, 오지로 가는 곳에는 관리와 유지보수의 비용으로 잘 깔려있지 않았다.
아주 중요한 회랑의 가도 몇 개를 제외하고는.
그래도 그곳들은 이미 한 번 개발을 한 곳에 철로를 까는 것이니 예전보다는 쉬울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기술적 난이도보다는 노동력의 공급인데.
예전처럼 동화되지 않은 원주민들을 노역시키는 그런 행동은 이제 남려에선 원주민이라는 존재도 구경하기 힘든 시대가 왔으니 불가능했다.
게다가 난민도 많이 줄였고.
행정명령을 취소할까라는 생각이 얼핏 지나갔지만, 상민은 고개를 저었다.
서둘러 일을 하려다 그르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다시 조선을 쥐어짜야겠다.’
그에게 만만한 것은 조선밖에 없었다.
영토는 광대하나 인구수는 조선의 팔분의 일도 되지 않는 옥저와, 북조랑 시시콜콜하게 싸워대는 백제를 건드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금의 치세에 들어서 조선은 빠르게 회복하여 병인몽란 이전과 같은 국력의 상황에 도달하였으니 이제는 여유가 조금 생겼겠지.
그럼 또 인구를 삥뜯을 시간이 된 것이다.
안 그래도 조선에는 상국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으니, 철도 건설의 노동자로 올 수 있게끔 한다면 앞다투어 올 것이었다.
입조한 뒤, 고려는 그 인구 노략질의 규모를 많이 줄였으니 지금 와서 다시 늘린다면 조선 왕 이금은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재조지은은 물론이고 병인몽란 이후의 식량난을 극복하라며 옥저처럼 감자도 고구마도 모두 퍼다 준 상국의 은혜를 갚기 위해선, 조선의 특산품인 인구를 원활히 공급해야 하지 않겠는가?
옥저의 모피, 백제의 은과 금속이라면, 조선에는 엄연히 풍부한 인구와 소량의 인삼이 있었다.
그래도 조선은 그 지도층이 몹시 유순한 국가니 이번 일도 참을 것이었다.
상민은 부하들에게 일러, 그가 입안한 철도 개발 오십개년 계획을 공무부 이곳저곳에 붙여놓도록 지시했다.
이 계획은 후임자 시중이 누가 오든 간에, 기본적인 틀은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
“제철소의 최우선 목표는 철도 건설로 할당할 것이야. 모두 열심히 노력해 주길 바라네.”
“명심하겠습니다, 당하.”
들리진 않지만 느껴지는 소리 없는 통곡을 뒤로하고 상민은 밖으로 나섰다.
* * *
“황상께서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오!”
개성 총독이 한양에 와 상국의 명령을 전달하자, 이금은 근정전의 옥좌에 앉아 탄식을 흘릴 뿐이었다.
똥만 싸던 아비는 결국 죽었고, 드디어 조선의 임금이 되었건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제약되어 있었다.
폐주 이성의 심정을 절절히 느끼고 있는 이금은, 같은 민족이지만 자신에게 영 호의적이지 않은 상국과 주변국들, 그리고 가끔 반도까지 올라와 날뛰는 양이들(대부분 개성 총독부 선에서 정리되었지만), 훈구가 망하니 이제 서로 싸움박질을 하는 사림들, 그리고 그 사림 내에서 상국에 갔다온 뒤 머리가 회까닥 돌아버려 조선으로서는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급진적인 소리를 줄기차게 하는 조광조와 같은 무리들 때문에 머리털이 다 뽑혀 나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공인들을 매년 바치라니!”
공인(貢人)들.
이금의 표현은, 마치 원나라에 고려가 바쳤던 공녀(貢女)들을 빗대어 고려의 요구를 비판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개성 총독은 심드렁하게 말을 이을 뿐이었다.
“전하, 그냥 저잣거리에 나가 상국에 가 품삯을 받고 노동할 사람 여기 오시오, 하면 되는 것인데 뭐 그리 어렵게 생각하시옵니까. 게다가 일이 끝나면 노동자들 중 희망하는 사람들은 이곳 조선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고려가 어디 공녀를 필요로 하던가.
애초에 공녀를 필요로 하는 제일 이유인 궁녀제는 신분제가 철폐되는 수순을 밟은 고려에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의 개혁 끝에 대부분 급료를 받는 고용인이 되었던 것.
직급의 중요성과 근속연수에 따라 급료는 천차만별이었지만, 적어도 허드렛일을 하는 자들도 엄연히 자유민이었고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었다.
고려가 원하는 것은 공녀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다. 노동할 사람.
그리고 이금에게는 안타깝지만, 조선 내에서 조선인에게 ‘노동을 하더라도 고려로 갈 의사가 있소?’라고 물어본다면 열에 다섯은 그 자리에서 손을 번쩍 들 것이요, 넷은 그래도 부모님의 허락은 구하거나 부모님까지 뫼시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할 것이요, 오직 하나의 근엄한 선비만 남아 뒷짐을 진 상태로 혀를 차며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고향을 떠나는 것은 불효며 불충이라 그리 떠들 것이 분명했다.
‘노동자들을 고향으로 다시 돌려보내 준다고 말은 하나, 그중 십분지 일이라도 돌아오면 많이 돌아오는 것일 테다.’
사태가 이리된 이유는, 아마 이금이 큰 실책을 저질렀기 때문일 것이다.
개성이라는 곳에 대한 할양을 아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바다 건너편에 있는 탐라와는 다르게 이 개성은 한양과 너무나도 가까웠으며, 조선에 너무나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개성 자체는 남려의 다른 도시들, 그리고 연방주의 도시들에 비한다면 상당히 낙후된 곳이다.
거리가 멀어 물자의 수송에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방문하는 사람들이 놀랄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곳이었다.
누구는 구리가 귀해 동전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그 구리로 똥물을 바다에 던져넣는 하수구를 만들고 있지 않나(그 똥물 묻은 구리관을 파내어 도둑질하려던 조선인들이 개경의 기마경관에게 잡힌 사건은 고려의 조보에도 대서특필되었던 적이 있다), 도자기로 변기를 만든다 하질 않나, 도시는 죄다 벽돌이요, 판석을 깔아 도로를 놓는다 하지 않나.
공중세신실(샤워실)이라 하여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은 물통 아래 관을 뚫어 놓은 간이 칸막이 시설에서 세신을 하며 비누라는 것을 써 머리의 이와 몸의 벼룩을 없애지 않나.
방적기와 방직기가 초래한 의류혁명으로 인해 고려에 목화 재배지가 많이 생겨나면서 이제는 면실유의 공급이 원활해지고 비누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여전히 비싼 그 비누에 매료되어 고려인 병사에게 웃돈을 얹어 기껏 보급용 비누를 사들이고는 자랑하지 않나.
고려 내에서는 그리 유명한 의원은 아니었지만, 조선의 그 어떤 의원보다도 용하다는 고려 주둔군 군의관은 낮에 줄지어 선 조선인 환자들도 모자라 밤마다 누가 급하게 아파 좀 어찌 봐줄 수 없겠소, 하며 자신의 문을 두드리는 소위 양반댁 시종들에게 그의 수면시간을 박탈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대부들은 상국을 동경하고 재조지은에 감복하고는 있더라도 은연중에는 상국과 같은 개혁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서민들은 그러한 개념 없이 여전히 고려에 가고 싶어 했다.
오죽했으면 개성에 주둔하는 고려군의 헌앙한 병사들과 눈을 한 번이라도 마주치기 위해 기웃거리는 처녀들이 그리 많을까.
그래서 공인들이라는 표현은 실로 잘못된 것이었다.
총독을 내보내고, 신료들과 토의를 해봐도 조선의 신료들이라는 사람들은 영 엉뚱하고 속 터지는 소리만 했다.
“그래도 황상께서 이전과는 달리 함부로 아국의 백성을 징발하지 않으시고, 이리 먼저 제후국에게 의사를 물으시니 실로 다행입니다.”
사실 조선이 고려에 입조한 이후에도, 탐라총관부는 은근슬쩍 삼남의 백성들을 빼돌리고 있었긴 했다.
“그렇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개성 주변의 헛바람이 든 불순분자들을 노동자의 명목으로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실로 일리가 있는 소리올시다.”
“어차피 대부분의 백성들은 고향과 친지들이 모두 이곳에 있으니 다시금 돌아올 겝니다. 그렇고 말고요.”
도움도 안 되는 말, 혹은 사태 파악이 전혀 되지 않는 말들만 내뱉는 대신들과의 회담 이후, 다시금 총독을 불러들인 이금은 우울한 음색으로 타협안을 제시했다.
“황상, 아니 시중께선 어느 정도의 규모를 요구하십니까?”
“대략 일 년에 만 명 정도 규모의 인원을 받길 원합니다. 되도록 젊은 장정과 아낙으로 말이지요.”
이금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대체 노역에 장정이면 족하지, 아낙은 왜 필요하오?”
“상국에 노역을 하러 온 장정들이 오랫동안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신 당하의 배려겠지요. 물론 이들에 대한 식량은 모두 제국이 책임지고 넉넉하게 먹여 살릴 것이니 전하께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그 요구가 아국에게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지 알고 계시오?”
“다만 시중께선 조선산 면화에 대한 관세를 폐지하고 거기에 덧붙여 지금 이 북원의 혼란기에 화북이 주우철의 손에 떨어질 때, 임유관(臨渝關, 산해관)까지의 조선군 진격을 해로를 통해 지원할 수 있다, 그리 석명하셨습니다.”
“…….”
국력에 맞지 않는 과분한 영토 확장이 어떤 꼴을 일으키는지 조선은 많이 깨달은 상태였지만, 방금의 제의는 실로 솔깃했다.
공교롭게도 조선과 옥저 모두 고려에 입조한 까닭에, 조선의 북방은 심히 안정되었다.
옥저가 괜스레 조선의 북방을 침탈해 상국과의 관계를 어지럽힐 이유도 없었으니 옥저의 존재 자체가 북방 여진족들의 위협을 완벽하게 봉쇄하게 된 것.
백제 또한 마찬가지.
북조와 다툼을 벌이고 있는 덕에, 왜구는 이전보다도 더욱 잠잠해졌으니 조선은 지금 대외적으로는 유례없는 안정기를 누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상국에 충성하라고.
개성 총독은 여전히 조선이 잡아야 할 동아줄이 무엇인지 직시하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임유관만 장악할 수 있다면, 서쪽의 세력을 경계할 수 있었다.
중원과 오랑캐 모두.
조선과 명의 관계는, 병인몽란 이후 소 닭 보는 관계가 되었지만 주우철의 숙원인 화북 탈환이 성공한다면 다시금 바뀔 가능성이 있었다.
중원의 나라들이 반도의 나라들에게 가진 감정을 고려해본다면, 분명히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감정을 품을 것이었다.
수의 세조나 당의 태종과 같이.
결국 이금은 이번 고려의 노동자 대여 요청을 무기력하게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다시금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선택을 내릴 것이 자명했음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