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여몽전쟁
두 나라는 비로소 서로를 마주 보았다.
물론 한 나라는 진작부터 다른 한 나라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맹렬한 적의를 담은 그 시선을 눈치챌 수 없었다.
바투뭉케는 상당히 능력있는 정복자였지만, 개성을 점령한 고려와의 첫 만남부터 실책 아닌 실책을 저질렀다.
당혹스러움과 어이없음, 그리고 호기심에 일단 사신을 보내어 정보를 수집했던 것.
이들이 그 고려구들이라는 사실은 거의 확실했지만, 일단 공격한 이 땅의 본래 주인은 원이 아닌 조선이었으니 바투뭉케의 심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조선의 항복이야 이 며칠 새 벌어진 것이라 고려구라는 자들이 이 소식을 알 것 같지도 않았고.
따라서 ‘약간의 오해’만 풀면 충분히 새로운 관계를 다져나갈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바투뭉케의 숙원은 중원 재통일이다.
그가 이 멀고 딱히 비옥하지도 않으며 물산이 풍부하지도 않은 조선 땅에 온 것도, 결국은 중원 재통일이라는 과업을 완수하기 전에 후방의 안전을 보장받고, 더 나아가 수군을 이용해 명의 방어선을 돌파하거나 우회하기 위한 포석을 깔기 위해서였다.
만약 이 고려구라는 자들을 포섭하여 그들에게 적당한 당근을 던져주어, 상당한 수준으로 짐작되는 그들의 함선을 빌릴 수 있다면.
아니, 빌리지 않더라도 다만 명의 남쪽을 약탈하여 그들을 약화시킨다면.
그는 대계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대에 중원을 재통일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바투뭉케는 그 수적들의 우두머리에게 황금씨족의 딸은 물론이고 금인수뉴(金印獸紐)와 일자왕의 지위까지 줄 수 있었다.
물론, 이와 같은 생각은 고려가 들었다면 코웃음을 칠 생각이겠지.
하지만 고려 또한 사신을 통한 교섭에 동의했다.
그들을 내려준 선단이 다시 탐라에서 기병대를 싣고 오는 시간, 그리고 옛 예성항(벽란도)에 다시금 큰 접안시설을 만드는 시간까지.
고려 또한 몽골인들 스스로가 아군의 2차 수송대가 탐라에서 이곳까지 오는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것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 * *
정묘(丁卯, CE 1507)년 3월 10일.
단순한 전령이 아닌 처음으로 사신이 함락된 개성에 도착했다.
조선이 이제는 자신들의 신하가 되었음을 알린 대원제국은 앞으로는 짐짓 조선의 땅을 침범한 것을 나무라며 훈계하는 어조를 띠었으나, 비공식적으론 사신을 통해 협상에 임했다.
원나라의 사신은 평소 바투뭉케가 아끼는 총신.
문신이지만 충성심만큼이나 담력도 강해 제 발로 사지로 들어갈 정도였으며 눈치와 상황판단이 빠른 자라 상대방의 정탐에도 제격이었다.
‘…실로 기이하구나.’
개성 내로 진입한 사신은 의외로 조용한 성내에 처음으로 놀랐다.
조선에서 원으로, 원에서 이 고려구로 짧은 시간 내에 두 번이나 점령자가 바뀌면서 그들에 의해 피도 적지 않게 흘렀지만, 이번에는 혼란이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는, 적들의 모습에 놀랐다.
군의 기강이 엄중히 세워진 것도 그렇지만, 병사들 개개인이 체격이 좋아 키도 짤막한 몽골인에 비해 거의 한 뼘 이상 더 컸다.
양이와 비슷하거나 더 커보이기도 했다.
섭식 상태도 괜찮아 보였다.
본래, 이런 수적들은 배를 곯다가 난폭한 일에 동참하는 이들이다.
당연히 식사를 제대로 못 해 볼은 홀쭉하고 입에서는 굶주린 자 특유의 악취가 났다.
하지만 오다가다 보니 무슨 조그마한 벽돌(페미컨이라 불리는) 비슷한 것을 물에 풀어 각종 야채와 커다란 마(감자)와 같은 것을 집어넣어 국을 끓이고 있었다.
‘…정병이다. 군세의 체계가 확실히 잡혀 있으며 보급도 절박하지 않구나.’
무기도, 군기도 아닌 오로지 체격과 섭식 상태, 그리고 이들의 식사와 방금 전 개경의 분위기로 이 군대의 역량을 파악한 사신은 절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점령한 지역에 대해 약탈조차 하지 않는 수적이라…….
‘대칸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신다. 이들이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면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 첫 번째 순위가 될 터.’
어쩐지 그는 이번의 협상이 원만하게만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사신의 불안한 우려는 현실이 돼서 돌아왔다.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진척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논의도 말을 좀 알아들을 의지가 있는 자들과 해야지.
이자들은 사신을 앞에 두고서도 대놓고 딴청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대칸께서는…….”
“흐음…….”
“…이오. 만약 그리한다면 폐하께서 친히 그대들의 수장을…….”
“음…….”
시종일관 콧방귀를 뀌며 사신의 말을 듣고 있던 고려군 지휘관은 대답을 얼버무린 채, 통역에게 사신을 고려군 영내의 막사로 정중하게 안내해주라 명령했다.
사신은 그 제의를 거부하고 말했다.
“본인은 대칸께 오늘의 만남을 보고할 의무가 있소. 그대들이 명예를 아는 전사들이라면 사신의 앞을 막진 않겠지. 게다가 첫 만남이 아니오. 그대들 또한 대원제국의 대칸께 밉보일 이유가 없지 않겠소이까?”
보통, 불안하거나 두려운 자들은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그게 꼭 개가 크게 짖는 꼴과 다르지 않으니 고려군 무장들의 눈빛에 조소가 어렸다.
자신을 둘러싼 고려군들이 심상치 않다 여긴 몽골인 사절이 격노하며 입을 열었다.
“사절을 핍박하는 것이냐! 너희들은 정녕 대원제국과 전쟁을 치르고 싶으냐!”
이윽고 우락부락한 척탄병 두 명에 의해 양 날갯죽지가 제압되어 끌려나가는 사절의 모습을 보던 고려군 사령관이 피식 웃으며 지나가듯 말했다.
“귀국과 아국은 이미 이백칠십육 년 동안 전쟁 상황이었소.”
* * *
정묘(丁卯, CE 1507)년 3월 11일. 오시(오전 11시경)
전쟁이다.
약속된 시간에 사신이 돌아오지 않자, 바투뭉케는 격노하며 날이 밝자마자 칠만의 군세를 모두 일으켰다.
“이 한낱 수적 무리가 주제를 모르고 행동하니, 마땅히 징벌하리라!”
김포에 있던 병력들과 한양에 남아있던 병력들은 모두 한군데로 집결하여, 빠르게 북상했다.
과연 최고의 기동력을 자랑하는 군대답게 해가 떠오른 진시에 출발한 몽골군은 오시에는 이미 파주를 지나 임진강을 도하하고 개성의 남동쪽 평야에 진입해 있었다.
― 히랴!
― 다그닥 다그닥
엄청난 수의 군마와 그를 뒤쫓아오는 보군들이 먼지 바람을 뿌옇게 일으켰다.
모르긴 몰라도, 이 광경을 보는 적병들이 항상 그렇듯, 저들 또한 겁에 질려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들에겐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몽골의 전사들을 만나지 않았던 건가?
멍청한 놈들이군.
바투뭉케는 어이가 없어 실소했다.
“짐이 헛것을 보는 것은 아니겠지?”
훗날, 이제는 그럴 확률이 희박하겠지만 어쩌면 세상에 ‘개성공단’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을 수도 있었을 자그마한 평지에는 이미 남동쪽에서 진격해오는 대원의 군세 말고도 먼저 선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붉다.
저 멀리, 적들의 보군으로 보이는 자들이 늘어서 있었다.
바투뭉케 또한 몽골인답게 탁월한 시력을 자랑하니 미치지 않고서야 헛것을 보는 것은 아닐 테다.
몽골 초원의 전사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적의 보군입니다!”
“감히 대원제국의 전사들에 맞서 회전(會戰)을 선택하다니, 정신이 나가버린 게냐?”
몽골인들의 전술은 기본적으로 다음의 전제조건을 지켰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형에서 싸울 것.
특히나, 그들이 자랑하는 기병이 활약할 평야라면 최고의 상황이겠지.
그리고 평야라면 그들은 질 자신이 없었다.
그보다 더욱 수가 많은 병사를 상대해서도 질 자신이 없는데, 저 한 줌의 병사들을 상대로야 어떻겠는가.
아무리 주우철이 타락한 암군이라고 하나, 그가 이끌었던 명의 사십만 대군이 전부 허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원제국은 이미 그 사십만 대군을 정면에서 거의 박살 내고 천자까지 포로로 잡았지.
저 고려구들은 실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치 눈앞에 맛있고 달디단 떡이 있는 상황.
오로지 손을 뻗으면 그 달콤한 공훈이 입으로 들어오는 상황이기에 장수들이 앞다투어 간청했다.
““대칸! 부디 소장에게 저들의 피를 취할 수 있는 영예를 주소서!””
바투뭉케는 적절하게 장수들을 분배했다.
환호성을 지르며 휘하의 투멘과 전사들에게 달려간 장수들이 제각기 기마를 정돈하는 광경이 보였다.
그는 보병을 점검했다.
아무리 기마민족이라 하더라도, 한화(漢化)가 조금 진행된 이상 전 군세가 다 기병일 수는 없는 법.
자체적인 보군과 한족 보군까지 합쳐서 거의 절반 이상은 보군이었기에 보군을 통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김포에서 그대로 온지라, 조선왕 이계도 바투뭉케 옆에 나란히 말머리를 두고 섰다.
나머지 조선의 신료들도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 회전의 향방을 잘 보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결렬된 협상, 바투뭉케는 미련을 두지 않고 차라리 저 수적들을 모조리 주살해 본보기를 보일 생각이었다.
임진강이 피바다가 되도록 저들의 수급을 잘라, 장대에 꽂아 개성과 한양의 길목에 늘어세우는 것도 괜찮겠지.
대원 제국이 얼마나 잔혹하고 압도적이며 강력한 군대인지.
저들의 군주와 유학자들과 백성들은 두 눈을 크게 떠서 이 광경을 바라볼 것이다.
“잘 보게. 대원제국의 힘을.”
너희 조선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었다.
* * *
멀리 보이는 두 군세.
기묘한 침묵이 두 세력 사이에 있는 이 작은 평야에 맴돌았다.
아니, 침묵은 몽골군만의 소유였다.
저 멀리, 이상한 소리가 은은히 퍼져 나왔다.
처음 들어보는 악기들과 병사들의 노랫소리.
[우리의 위대한 고려의 군대는]
[세상의 남에서 북으로 가니]
[발 디딘 땅에서 노래하리라]
[제국의 영광과 찬란한 승리를]
조선말과 어딘가 비슷하다지만 애초에 몽골인들은 두 언어 모두 모르니 가사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 푸르륵
줄지어 선 몽골 기병들이 탄 말이 투레질을 했다.
그들의 기수와 감정을 공유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는지 저 멀리 보이는 붉은 적군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 뿌우우
기다리던 북과 호각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공격하라!”
대원의 선봉장이 몽골 특유의 만곡도를 뽑아 들었다.
― 와아아!
몽골의 말은 지구력이 강하다.
말이라는 동물이 애초에 사람보다 더욱 빠르니, 그것이 큰 지구력과 겹쳐진다면, 적들의 보병에게는 악몽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랴, 이럇!”
몽골의 위대한 궁기병.
세계 최대의 영역을 자랑했던 제국을 세운 일등 공신.
그들은 이곳에서도 승리를 거두리라 의심치 않았다.
궁기병의 물결이 마치 파도치듯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의 위대한 연방의 군대는]
[세상의 동서로 한없이 가니]
[나아간 곳에서 바라보리라]
[모두의 번영과 위대한 진보를]
그 파도는 이제 꽤나 육지에 접근했다.
서서히 준비를 해야 할 순간이 왔다.
― 콰앙
그러나 그 순간, 의외의 공격이 날아왔다.
“으아악!”
‘화기!’
수적들이 화포를 쓴다는 것은 예상외의 일.
공기를 찢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더니 몽골 기병 몇 명이 마치 땅에 꺼진 듯 사라졌다.
한 명으로는 부족한지 포탄은 그 뒤로 더 날아가며 아군의 기병을 더 박살 냈지만 선봉장은 여전히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화포 자체는 전혀 낯선 무기가 아니었다.
비록 이 화포가 불랑기포보다 훨씬 더 강해보였지만.
빌어먹을 명나라의 불랑기포는 그래도 꽤 많이 상대해보았다.
그리고 제아무리 화포라도 험준한 요새와 그를 호위할 충분한 병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겁먹지 마라! 화포는 재장전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전에, 저 허약한 보군을 모두 죽이면 끝이 나는 것이다.
화포는 그들의 전리품이 되겠지.
고함을 지른 그는 이윽고 특유의 휘파람 소리를 내었다.
‘젠장 저 빌어먹을 소리, 대체…….’
뭔 전쟁에 저런 짜증 나는 악공들을 데려왔는지.
저들의 보병과 가까이 붙자, 괴상망측한 운율이 자꾸만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었다.
묘하게, 묘하게 위축된다.
[함께하는 자들은 영광을 나눌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응당한 분노를 받을 것이다]
그래도 장수의 휘파람을 듣긴 들었는지, 혹은 자체적으로 판단을 한 건지 몽골의 기수들은 다음 전술을 준비했다.
속도를 유지시킨다.
오로지 안장에 올려진 발과 허벅지의 힘으로만 자신의 상체를 고정하고 활을 꺼내 든다.
기사(騎射)의 능력은 몽골인들에게 필수적인 덕목.
말 위에서 쏘는 이 궁술로 이들은 세상을 제패했던 것이다.
한 번에 적 보병에게 화살을 쏘아 보내고, 자신들은 다시 후퇴하여 다음의 사격을 준비하는 것.
유럽인들은 이 전술을, 마치 벌떼(Swarm) 같다 표현하기도 했지.
압도적인 기동력으로 적에게 일방적인 손실을 강요하는 치졸한 전술.
그러나 몽골의 전사들은 그것이 전혀 치졸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전장의 미덕은 오로지 승리.
이번에도 몽골 전사들은 그 아름다운 덕목을 충실하게 이행하리라.
“준비!”
대지에 발붙여 쏠 수 있는 큰 활이었다면 충분히 닿을 거리.
그러나 궁기병용 활로 저들에게 충분한 위력을 선사해 주려면 적어도 50보 이내에는 접근해야 했다.
이제는 저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수적들이 가까이 보였다.
손에 든 활에서 시위를 놓아 살을 쏘아보내고, 말 머리를 좌와 우로 돌려 자리를 이탈하는 것.
선봉장은 힐끔 하늘을 보았다.
곡사로 날아오는 적의 화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너희들은 이미 화살을 쏘았어야 했다. 지금은 늦었지.’
저들이 만약 지금 쏜다 하더라도, 얼마 되지 않을 적 궁병의 화살은 이미 일을 끝낸 몽골 기수들의 말발굽이 지나간 자리에 허탈하게 남을 것이 분명했다.
덜떨어진 자들이로구나.
선봉장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
그리고, 그 순간 몽골군의 선봉장은 순식간에 얼굴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을 잘못되었다.
[저 멀리 보이는 적의 무리는]
[기필코 우리 앞에서 짓밟힐 테니]
물결치는 번쩍임.
무려 두 자에 달할 만큼 기다란 검이 앞에 달려 있는 총으로 무장한 전열의 병사들이 무릎을 꿇고 병기를 치켜든다.
그 뒤에는 높게 앉아서.
그 뒤에는 서서.
그리고 그 뒤에도 긴 총이 그들을 향해 겨누어지고 있었다.
총 자체야, 명 또한 노밀총을 쓰기도 했으니 어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야말로 전 군대가 동일한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
앞에 선 자와 뒤에 선 자가 모두.
창병이라고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저들 모두가 총병이다.
사각형의 대기병 방진(Infantry Square).
수많은 총병들이 밀집하여 어깨와 어깨가 맞부딪힐 만큼 좁은 틈을 가진 방진의 전면부 모서리에서 삽시간에 엄청난 불꽃이 튀어나왔다.
빛에 이어, 소리가 그들의 귀에 당도했다.
시끌벅적했던 저들의 운율이 삽시간에 뇌리에서 사라질 만큼 겹친 총성의 소음은 밀려오는 파도와 같았다.
― 타타탕
“허윽…….”
선봉장은 삽시간에 뜨거워지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한숨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총에 맞은 자신의 말이 먼저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느끼며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 털썩
꼴사납게 대지에 나동그라진 선봉장은, 충격으로 시야가 일그러지고 이명이 웅웅거리는 것을 참고 그대로 고개만을 돌려 좌우를 바라보았다.
몽골의 기병대는 이미 전부 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그들의 활은 화살조차 내보내지 못한 채로 형편없이 부러져 있었다.
‘허…….’
허파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와 같은 헛웃음을 지은 그가 눈을 감았다.
뒤이어 피어오르는 거대한 화약 연기의 냄새를 맡은 채로.
죽어가는 선봉장은 마지막에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쓰러진 적들은 듣게 되리라]
[너희의 비명과 우리의 함성을]
초원 전사들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