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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36화 (236/653)

정원가도

시중과의 개인 수업이 확정되어 절망하는 재무상서의 모습에 숨죽여 웃는 군무상서를 바라본 상민이 이번엔 외무상서에게 고개를 돌렸다.

"재정의 문제는 대체로 해결 가능하다 치면, 그다음은 외교적 문제가 남았군. 외무, 북원을 공격하는 데 협조를 받을 세력이 있소이까?"

고려 혼자 이만 오천으로 북원과 일전을 벌이겠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했던 대전략 게임에서도 패배를 맛볼 확률이 농후했다.

나폴레옹의 명언, ‘대군은 병법이 필요 없다.’처럼 수적인 우위가 중세의 전투에 끼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했으니까.

물론 고려의 군대는 북원의 군세에 비해 훨씬 강력한 열병기를 소유하고 있으니 란체스터의 법칙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는 않겠지만 엄연히 먼 거리의 보급선이라는 불이익을 안고 싸우는 것이기도 했다.

일단은 확실히 아국을 도와줄 수 있는 동맹국들부터 살펴봐야 했다.

파병까지는 거의 불가하겠지만, 적어도 다른 협조를 구할 수 있겠지.

"아까 두 상서가 말한 것처럼 배의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소신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플류트가 빠르게 건조할 수 있는 범선이라 하나 일정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니카라오 운하를 거쳐 태평양을 횡단하려는 아국의 동맹국들에게 기왕 북태평양 남부항로나 남태평양 북부항로를 이용할 때 다바오 거점에 아국 물자나 병력의 수송 지원 정도를 부탁하면 어떨까 합니다."

정석적인 접근이다.

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카디스 조약에 참가한 국가들이 제각기 함선 건조에 열을 올리며 활발하게 태평양으로 나가고 있다지. 그래, 한번 추진해 보시오."

마침, 카디스 조약에 동맹국들을 끌어들여 이득을 분배한 고려이기에, 이 정도 부탁이야 충분히 요구할 수 있었다.

"예. 당하."

"전통적 동맹국 말고,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어떠하오?"

머릿속에서는 이미 대충 견적이 나오고 있지만, 상민은 외무상서의 생각과 다른 대소신료들의 견해도 궁금했기에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북원은 몰락하여 기존의 천명을 참칭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약해져 초원의 그저 그런 유목민으로 여겨졌던 기존의 역사와는 달리 여전히 강성한 상태였다.

시기는 다르지만 형세상으론, 요의 영역을 넘어 마치 화북을 점령하고 송을 남쪽으로 밀어낸 금과도 비슷했다.

그러나 금과도 비교해보면, 영역 자체는 비슷할지언정 애초에 북원이라는 나라는 대원대몽골국의 고토(정말로 넓은)를 수복한다는 강력한 명분을 손에 쥐고 있으며, 문화적으로 당시의 여진에 비해 훨씬 발달했고, 문화와 경제, 정치 제도 또한 원과 같아 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빼어났으니 더 저력이 있는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군세도 마찬가지겠지.

금도 유목민답게 강력했으나, 몽골의 군세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까.

물론, 양측이 제대로 된 전력을 가지고 맞붙는다면, 상민은 질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걱정도 별로 하지 않았고.

그러나 엄연히 제국급의 세계 최강국 중 하나를 세계에서 가장 넓은 바다를 건너 ‘홀로’ 공격한다는 것은 나사가 하나가 아니라 두어 개는 빠진 선택이기도 했다.

‘에스파냐와도 비교할 수 없겠지.’

콩키스타도르는 어디까지나 원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개척자.

유럽에 비해서도 꿇리지 않는 기술력을 보유한 동아시아의 국가들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고려와 유럽으로 대변되는 범대동양 국가들이 기술력으로는 동아시아를 능가하고 있는 상황이 다소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었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국가를 따져보면 중원 황조를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니까.

붉은 제복을 입은 근위군과 푸른 갑옷을 입은 장다름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바다 건너에 도착하고도 강력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이번 기회에, 육군전통을 쌓는 겸 그 한계를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만 현지의 협조세력이 명백하게 필요하다.’

조선, 명, 왜.

북원 정벌전에서 삼국의 역할은 몹시 중요했다.

"명은 아마 본격적인 북진에는 나서기 힘들 것입니다."

현 북원은 남명을 누르고 있는 형세였다.

이들이 요와 같이 전연의 맹을 꿈꾸지 않는 이상, 남명은 앞으로 원에게 시달릴 것이 분명했다.

화평의 변이라.

상민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명 중기부터 중원의 천자란 자들이 맛이 반쯤 간 인물들만 어찌 의도적으로 고른 것마냥 즉위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원역사의 정통제보다도 더욱 심한 인물이 등장한 것은 솔직히 좀 충격적이었다.

‘인물도 인물이지만, 명의 국가체계가 과거에 비해서도 딱히 나아진 것이 없으니.’

명은 애초부터 비대한 돼지였지, 혁신이 감도는 나라가 아니었다.

최근의 소식에 따르면, 이들은 회수를 경계로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에만 골몰할 뿐, 앞으로 치고 나가 화북을 빼앗아 설욕하는 것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한다.

천자가 인질로 잡혀 있으니,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든 해결되지 않는 이상 공격은 무리겠지.

차라리 주우철이 죽어버린다면 일이 편하겠지만, 북원 대칸의 머리가 장식이 아니라면 오히려 명 황제의 신체에는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을 것이었다.

명은 됐고.

"왜는?"

외무상서가 준비한 자료를 내밀었다.

어제 보고받지 않았으니, 오늘 아침에 쓴 것이 분명했다.

왜와 고려의 관계는 미묘했다.

왜구 토벌을 빌미로 고려는 조선의 연안, 즉 동해안과 남해안에서 조금이라도 왜구의 선박으로 의심되는 세키부네들을 친절히 바닷속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 흉악한 행패에 왜북조의 아시카가 막부는 외세 선박의 입항을 금지하고 교류를 일절 하지 말라는 명을 다이묘들에게 내렸다.

이 외세는 가공할 화약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으니, 이런 무기를 손에 넣은 다이묘들이 중앙에 대드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남북조 모두 중앙의 지방통제력이 크게 약화되었던 터라, 아시카가 막부가 내린 쇄국의 명령은 잘 지켜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번에 동래를 공격하는 왜구의 배후에 있어 큰 손해를 직접적으로 보았던 다이묘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다이묘들은 머릿속에서 주판알을 튕기며 새롭게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고려라는 국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왜남조는 ‘고려’라는 세력의 등장에 혼란스러워하다가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접촉에 나섰다.

왜남조의 쇼군, 오우치 요시오키는 고려의 탐라 총독부에 사신을 보내 인사를 하기도 했으며, 동래왜란의 배후에 남조의 오우치 막부가 전혀 관련이 없음을 주장했고 만약 남조를 따르는 다이묘가 사사로이 행패를 부렸다면 스스로가 엄히 징치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외교적 수사법으로는 정말로 이례적인 저자세였다.

하기사, 백여 척이 넘고 일만 명이 넘는 군대가 바다 건너편에서 완전히 박살이 나 단 한 사람도 귀환하지 못했던(왜인 포로들은 조선이 데리고 있을 것이었다.) 것을 보면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겠지.

탐라 총독부에 보낸 사신을 통해 정말 이 신(新)고려가 왕씨 고려의 후예라는 것을(혹은 자처하는 것을) 깨달은 요시오키는 새로운 세력과의 연계를 통해 캄캄한 왜남조의 정국 및 다이묘들과의 불안한 관계, 북조와의 대립에서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남왜왕은 그 스스로가 피에 테무진의 피가 흐른다 주장하지 않습니까?"

"황금씨족은 부계일 뿐, 모계가 참칭하진 못하지. 그것은 더럽혀진 왜왕가의 권위 대신 외부의 혈통을 통해 왕가의 권위를 높이려는 시도일 뿐, 그들이 그 말을 한다고 지금 현 북원과 친하게 지내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 게요."

실제로 원 말기 흥성했던 주―고려―남왜의 무역 관계를 보았을 때, 아무리 현 남왜왕계가 쿠틀룩테무르계의 황금씨족의 피를 이었다고 하나 어느 순간부터 몰락해가는 원을 배신하고 독자생존의 노선을 택했다는 것은 명백했다.

구주 울루스의 칸이 죽은 이후 후계 계승에 난입하여 그 방계를 모두 모살한 것도 모자라 중앙이 파견한 다루가치를 사사로이 참하고 스스로 구주의 칸을 칭한 것도 마치 공민왕이 심요를 정벌하고 심왕을 칭한 것만큼의 선을 넘은 행위와 같았고.

원이 하북을 제외한 중원의 영향력을 잃어버린 지 거의 백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사이가 가까워지기는커녕 더욱 벌어졌을 것이다.

"차라리 우리가 먼저 남왜와 연결하는 것이 이들이 북원에 붙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겠지."

북원이 지금 당장은 구주 울루스를 멋대로 병합한 남왜를 배신자로 여긴다 하더라도, 실리를 위해 그들의 행위를 묵인해주고 대신 북원에 입조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 전에 고려가 남왜에게 접근한다면 잠재적인 적을 하나 줄여 후방을 안정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이 총독의 보고에 따르면 오우치 요시오키는 아마고 츠네히사라는 대(大)다이묘를 크게 견제하고 있다 했었다.

아마고 츠네히사는 서국제일의 다이묘라 하여, 주고쿠 지방의 패권을 쥔 거대한 세력.

강력하기도 오우치 막부에 비빌 수 있을 정도였다.

고려는 애초부터 아마고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첩보에 따르면 동래왜란의 배후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왜구를 간접적으로 지원하여 탐라의 주요한 골칫거리의 근원이라 할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남왜에 빚을 하나 지우는 것도 좋겠지.

‘혹은, 옛날의 삼각무역 대신 고려―조선―남왜에 이르는 삼각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겠고.’

그리고 상민은 그 아마고가 지금 남조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을 오히려 반겼다.

이유는, 현재 고려의 악법이라 평가받는 아대륙 자원 보호법의 돌파구이기도 했으니까.

‘내가 그리는 큰 그림을 동시대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하는 것도 나름대로 고충이 크구나.’

21세기, 명백히 세계 패권을 장악한 미국도 자원의 보고라 불리는 알래스카를 굳이 적극적으로 개발하지 않았지.

전 세계의 자원이 고갈되는 추세에 접어든다면, 자국에 풍부한 자원을 가진 국가는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위를 점하기 때문.

고려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고려가 연은분리법이나 수은채취법을 통하여 포토시 광산을 활기차게 파먹는다면, 동시대 전 세계의 은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온전히 포토시에서만 파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광산이란 매장량이 정해져 있다.

그 엄청난 광산도 결국 이백 년이 넘고 폐광했으니까.

게다가, 내적 팽창 없이 금은을 비롯한 귀금속을 캐내는 것은 금은을 모두 본위로 여기고 있는 고려의 입장상 통화량의 증대로 이어져 통제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자국 내의 영토로 남을 테니 미래 세대를 위해 그 자원을 천천히 개발하는 것이 맞았다.

상민은 수십 가지 입장을 고려하여 금은과 같은 희귀금속의 광산들을 통제했으나 여전히 민간에는 불만이 조금은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 불만을 밖으로 돌리자.

‘땅이 충분하다 못해 배가 터질 지경인 우리는 적극적인 식민지 개척과 정복보다 오히려 자원 채굴권을 선점하는 것이 더 이득인 입장이지.’

이광영을 시켜 알아보게 한 결과 이와미 광산은 이미 당대에도 왜국 서부의 대표적인 은광이라 소문이 나 있다 한다.

그러나, 아직은 그 중요성을 엄청나게 인지하고 있진 않은 모양.

은 산출량에 가장 중요한 열쇠인 연은분리법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중요했다.

애초에 대규모 파병을 결정한 만큼 남조와 흥정하여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후방을 안정시킨 뒤 평가절하된 자산의 지분을 요구하는 것도 꽤나 괜찮은 일일 것이다.

오우치 막부에 우호적으로 접근하는 외교 노선을 정한 상민은 이제는 마지막 관문, 조선에 대한 노선을 밝혔다.

"조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려의 그늘 안에 들어와야만 하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상민의 말에 모든 관리들과 장수들이 하나같이 긍정했다.

북원 정벌을 위해선, 조선의 협조는 필수적이었다.

반도의 특성상, 북원을 비롯한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와 같았다.

또한 한반도는 그래도 안정되기만 한다면 삼만에 달하는 고려의 병력을 충분히 먹여 살릴 식량 생산지.

"민심은 충분히 우리 쪽으로 돌릴 수 있겠습니다만···."

조선과 탐라, 탐라와 미주를 오가는 선박에는 자리가 없다.

고려군 스스로가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민심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면, 조선인들은 이 전례 없는 자비롭고 동질적인 정복자를 충분히 환영할 것이었다.

그러나 위정자는 아니겠지.

그들은 자신의 권력 턱밑에 들이대는 단도를 극히 경계할 것이었다.

분명히 관군을 동원하여 고려의 군세를 저지하려 들 것이다.

상민은 고심하지 않았다.

자신이 조선에 일말의 동정심이 있다고 치면 오직 조선의 백성들에게 있었지 그들의 위정자에게 있지는 않았으니까.

현 조선왕 이계는 옥좌에서 내려올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스스로 내려오든, 혹은 강제로 내려오게 되든.

"외무, 서신을 쓰시오."

"말씀하소서."

상민은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북원을 정벌할 터이니 길을 열라(征元假道), 그렇지 않으면···."

시중이 보여주는 섬뜩한 기세에, 범과 같은 고려의 장수들이 모두 고개를 수그렸다.

"너 이계는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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