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29화 (229/653)

여조관계

조선의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남방도원수 박형무가 쓴 서신에는 극히 좋은 소식과, 상당히 이상한 소식이 적혀 있어 도무지 이 상황을 명확히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극히 좋은 소식이란, 당연히 삼남을 침략하려던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왜구를 격퇴했다는 소식이었다.

만 명이 넘는 엄청난 수의 왜구가 왔지만, 대부분의 숫자가 죽거나 사로잡혔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을 땐 믿기지조차 않았을 정도였다.

그래도 북로남왜로 일컬어지는 조정의 주요한 근심거리 중 하나가 사라졌으니, 칼날 위를 걷는 듯한 조정의 분위기는 다소 온화하게 풀렸다.

오죽했으면 이계가 도원수 박형무를 크게 칭찬하며 차기 정승의 자리에 제수하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물론, 그의 성정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뱉은 말이 사실로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장계에 적힌 두 번째 소식은 조정의 신료들과 이계를 상당히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고려라?”

전조의 국명을 들먹이며 동래의 해안가에 나타난 황당선들의 무리는 조선에게 몇 가지 사항을 요구하고 있었다.

조선은 대체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처음, 이들은 부정했다.

역적이거나 해적의 무리들, 혹은 왜구 중 조선의 상황에 밝은 이가 참람된 행동으로 조정을 능멸하는 것이라 여겼다.

전례도 있었다.

조선은 왜남조의 정이대장군 가문인 오우치(大內, 대내) 씨의 일족을 옛 백제의 후손이라 인정한 바가 있었지.

그것에서 영감을 받은 일부 왜인 무리가 이제는 전조를 사칭하는가?

그러나 사관 중 하나가 무언가 떠오른 듯 무종의 실록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무릎을 치고는 그 구절을 필사하여 이계에게 바쳤다.

무종실록에 적힌 바로는, 선대왕 이제의 치세가 시작될 무렵, 멀리서 떨어진 곳에서 고려 삼별초의 후손이라 자칭하는 자가 와 항해에 필요한 음식과 물자를 요구하고 심지어 개경에 위치한 조상의 능에 참배를 원했다 하는 짤막한 구절이 존재했던 것이다.

본래, 이제는 이 사건을 덮고 비밀로 하라 명했으나 이제의 동생, 충녕대군 이도가 가족들을 이끌고 신하 두 명과 함께 이들을 따라나서는 전례 없이 엄청난 일이 벌어졌기에 완벽한 비밀로 덮어놓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조선 사관의 기록욕은 어명조차도 막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결국 사관은 아주 짧고 간략하게나마 그 흔적을 남겼으니, 조선과 고려의 마주침은 단 세 줄에 불과했지만 엄연히 기록 속에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록은 서서히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나중에는 아무도 들추는 이가 없었다.

떠난 이들이 다시금 귀환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남의 첩을 사사로이 빼앗은 등 기행이 많았지만 군사적 업적도 명백한 선대왕인 무종의 행동을 굳이 들춰 어심을 심란하게 하려는 노력도 없었고.

시간이 더 흐른 다음에는 사실관계가 꽤나 왜곡되었다.

지금 그 일을 기억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무종이 자신의 동생을 상당히 참신하고 독특한 방법으로 숙청(혹은 유배)을 한 것이라 여기기도 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다시금 똑같은 일이 벌어지니, 사람들은 이제 실록에 짤막하게 기록된 일이 정말로 문맥적으로 적힌 그대로의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하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와중에도, 장계의 내용에 분노했다.

“전조의 국명을 쓴다니요, 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행여 고려 부흥 운동이 일어날까 저어해 전조의 국성 왕씨를 전부 다 죽이고, 우왕과 창왕의 핏줄마저 자신의 입맛에 따라 신돈의 혈통이라 뜯어고친 조선이다.

전조의 국명을 그대로 승계한 국가에 대해 처음부터 거대한 반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소문이 퍼져나간다면, 건국 이후 백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씨 조선에 감정이 썩 좋지 않은 개경이 동요할 것도 불 보듯 명백했고.

게다가 흉년이 거듭되어 조정에 대한 민심이 땅에 떨어진 지금, 민초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확실치 않았다.

또한, 고려를 떠올렸을 때, 조선의 사대부들은 한 가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불교국가라는 모습.

비록 그것이 창양 고려의 본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편견에 불과할지라도, 사대부들은 스스로 그렇게 단정 지어 상대방을 판단하니 적대적 감정은 더욱 늘어날 뿐이었다.

대부분의 신하들이 분노하고, 분노하진 않았더라도 일단 분노하는 척을 하는 와중에 냉철히 상황을 보고 있던 소수의 신하들은 현실적인 대안을 생각했다.

이미 조선은 이런 소소한 왜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북방의 변란이 있는 처지라 종묘와 사직이 실로 위태로워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시기에 있었다.

병조참의 이거(李琚)가 고했다.

“폐하, 저 자칭 고려의 무리들이 아무리 참람되다 하나, 그들이 아국의 남해안에 들끓는 왜구의 토벌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은 확실합니다.

게다가 저들의 화포와 화약이 백여 척의 왜선을 바다로 가라앉힐 정도로 강력하다 하니, 대승을 거두었다 하나 이제 막 전쟁을 치른 삼남에게 다시금 외란을 겪게 하는 것은 좋지 않사옵니다.

마지막으로 실록에 짧게나마 적힌 바에 따르면 전조의 국명을 쓴다 하나, 저들의 왕족이 왕씨인 것은 아니라 하였고, 심지어 전조에 반란을 일으킨 삼별초의 후손이 세운 나라이니 어찌 전조의 국명만으로 판단하여 곧바로 적대적으로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오랑캐를 다스리는 것처럼 일단 회유하여 그 정세를 판단케 하고 추후의 처분을 논하시는 것이 합당하다 사료되옵니다.”

몇몇 신료들이 이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듣기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 이계 또한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나 의심은 더욱 커져 가는 모양이었다.

“···남방도원수가 애초부터 거짓을 고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리 화포가 강하다 하더라도 기껏 일천 명의 병사와 서른 척의 함선이 전부라는데, 어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참고로 이계가 이 말을 한 시점은 스스로 신이 나서 도원수 박형무를 차기 정승의 자리에 올리겠다는 발언을 한 지 채 일각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고질적인 의심병이 또다시 발동한 이계의 말에, 신료들이 고개를 떨구고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계는 불타는듯한 눈동자로 이거에게 말했다.

“병조참의는 지금 즉시 동래로 내려가 저들의 동태를 살피고는 장계를 올려라. 모든 것은 명백한 사실을 고해야 할 것이야!”

이거가 엎드려 어명을 받았다.

* * *

동래의 전투가 끝났다.

이것이 후대에는 대체 어떻게 기록될진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조선은 실로 동래 대첩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의 전공을 세웠다.

받은 피해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동래의 시가지가 불타고, 논과 밭이 황폐화되었으며 사람들이 상했지만 그 불길은 동래의 밖으로 번져나가지 않았고 불씨를 일으킨 원인조차도 잡아낸 상태였다.

실로 몇십 년의 근심이 하루아침에 쓸려가게 된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잔존했다.

동래 대첩이 일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을 제공한 저 함대는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항구에 정박하지 않고 멀리서 경계할 뿐이었다.

형무는 그럴 생각이 없긴 했지만, 혹여나 하여 동래에 맹선들을 이끌고 도착한 다른 수사들에게 물어보았다.

만약 조선이 저들을 죽기로 막아야 한다면, 얼마나 상대할 수 있느냐고.

나중에 합류하여 동래 앞바다의 풍경을 보지 못했던 무장들은 필사의 각오로 싸운다면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호언장담을 하기도 했지만, 가장 빨리 합류하여 직접 저들의 화력을 보았던 경상우수영의 수사와 경상좌수영의 살아남은 장수들은 어두운 낯빛으로 조심스러운 대답을 내보였다.

― 그토록 강력하며 수가 많은 왜인들의 함대를 한 번에 수장시킨 자들이옵니다. 열 번 싸운다면 한 번의 승리도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형무 자신도 필히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저 황당선의 주장을 고려할 때, 저들과의 사사로운 통교는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따라서 형무는 아주 기본적인 교류, 즉 음식과 식수를 나누는 정도의 행동을 제외하고는 입항을 허락하지 않았다.

조정에서 수 필의 말을 갈아타며 달려온 병조참의가 도착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저 고려인이라는 제독 및 그 일행과 회담을 나눌 수 있었다.

* * *

6척도 넘어 보이는 장신의 사내들이 나룻배에서 내려 부산포의 관아로 다가왔다.

하나는 영락없이 조선인과 똑같이 생겨 구별하지 못했고, 다른 하나는 말로만 듣던 양이(주로 중원의 남부에 오간다는)와 비슷한 이목구비가 있었다.

회담이 아닌 처음 마주했을 때엔 실로 놀랐었지.

그들의 입에서는 상당히 독특한 조선어가 흘러나왔을 때는 더욱더.

이질적이고 생소한 사투리였지만 놀랍게도 알아들을 수 있는 종류의 말이었었다.

처음 형무는 지극히 놀라, 한동안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었다.

이젠 병조참의가 보름 전의 자신과 같이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을 지켜본 박형무는 미묘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회담장에는 오직 네 사람만 앉아 있었다.

조선 측에는 도원수 박형무와 병조참의 이거가 왔고, 고려 측에서는 동아시아방면의 해군 총독이자 다바오 총독인 이광영과 앙주 안평공이자 동아시아회사 사장 로베르 드 아르크가 참여했다.

고려는 이번엔 공식적인 국서를 조선에게 주지 않았다.

지난번에 이제에게 국서를 전달했으니 이번엔 굳이 줄 필요는 없다는 논리였다.

그것을 무시한 것은 조선의 과오이니, 굳이 고려가 다시금 줄 필요가 있겠는가.

다만 고려는 이전보다 조금 더 강압적인 태도로 나왔다.

해준 것이 있다 보니, 요구할 만큼의 권리도 존재했다.

“동래를 개항하여 아국의 상인들이 동래에서 자유롭게 상행하도록 허하여 주시오.”

다른 속내가 있는 고려였지만, 일단 표면적으로는 무역의 이유를 들어 조선과의 관계를 다져가길 원했다.

상업적 교류는 서로의 관계를 진전시키게 만든다.

비록 거대한 태평양을 넘어야 하는 까닭에 일 년에 서너 번 오갈까 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것은 오히려 이들의 경계심을 희석시킬 수 있을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태껏 수많은 나라들과 무역관계를 맺어왔던 터라 이번 일도 쉽게 풀릴 것이란 고려의 생각과는 달리 이거는 장고에 빠졌다.

삼각 무역을 주도했던 전조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그 상업을 중흥하는 분위기가 그대로 계승되어 이어져 내려오진 않았다.

명은 주에게서 교훈을 얻어 영파를 개항하여 포도아 같은 양이와 교류하는 모양이었지만, 조선은 양이가 굳이 찾아올 만큼 좋은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또한 조선은 의외로 유학의 본산지인 명보다도 더욱 강력하고 확고한 주자학적 질서에 의해 구축되고 있는 사회였다.

건국 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사농공상의 위계 중, 사를 제외한다면 농을 특별히 더 우위에 치고 있는 사상적 가치관에서는 중상에 대한 기틀이 확고하게 자리잡히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조선은 아직까지도 화폐경제가 자리 잡고 있지도 않았다.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특산품 또한 별 볼 일이 없었지.

반대로 생각해보면 먹고살기에 급급하기에 농공상 중 농이 특별히 우대받는 것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왜구들이 들끓으며 기존에 존재하던 왜남조와의 교역도 사칭의 문제로 차츰 시들었고, 폐주 이후 북원과의 관계도 잘라냈으니 명과 여진 일부 마을 간의 교역을 제외한 조선의 대외교역은 건국 초에 비하면 대폭 줄어든 것이었다.

이거는 장고 끝에 회피의 대답을 내놓았다.

어차피 그는 명확한 대답보다는 조금 더 내밀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어명을 받고 온 처지였다.

“그것은 이 사람이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 대답에 고려인들은 크게 실망했다.

지금 시간을 얼마나 허비하고 있는가.

비록 뒤로는 소소한 일을 꾸미고 있긴 했지만, 선단 자체는 바다 앞에서 둥둥 떠서 하루 종일 조선의 산천만 구경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가 그대들에게 구명지은을 준 것을 부정할 셈이오?”

조정의 신료들은 장계상으로 결과만을 들었던 입장.

애써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는 경향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박형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부끄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형무는 귀엣말로 이거에게 물었다.

“참의··· 조정에서는 대체 뭐라 지시가 내려왔소? 무역이야 왜의 무리가 아닌 것이 명백하니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소이다만···.”

“···주상께서는 일단 소신에게 전후의 사정을 면밀하게 알아보라 하셨습니다. 또한 덧붙이시기를 만약 저들이 이번의 기회를 빌미로 삼아 통교와 항구 개항과 같은 무리한 요구를 해온다면 거절을 하라고도 하셨습니다.”

박형무는 어이가 없었다.

일단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듯한 성상의 태도는 둘째 치고.

“무리한 요구라니, 부산포의 개항이야 무종대왕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니오?”

“···주상께선 그저 저들이 어심에 차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그러나 박형무가 생각하기로는 이번 일은 이계의 심술과는 달리 냉철하게 접근해야 했다.

지금 이 상황은 마음에 들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저 무지막지한 함선들이 죄다 한강의 나루터로 몰려간다면 대체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날 지 도무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이 사람이 장계에 저들의 규모와 화력에 대해 보낸 것을 읽지 않으신 게요?”

사실 박형무가 저들의 무리 숫자를 자세히 파악하여 올린 것이 잘못일지도.

저들의 함선이 가진 위력과는 별개로 저들의 인원 수 자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최대한 객관적인 숫자로 기입했으니 서른 척의 함선을 차치하면 그곳에 올라탄 천여 명의 병사들은 실로 가소롭게 보일 것이 당연했다.

“읽기는 하셨으나···.”

병조참의 이거 또한 대답을 하면서, 내심 심란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 와보니 박형무가 쓴 표현인 ‘거함(巨艦)’이라는 것이 실로 피부에 와닿았다.

그러나 여기에 없는 조정 신료들의 대다수와 주상은 이를 전혀 체감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미치겠군.”

이미 이계는 국명과는 상관없이 저들을 명의 남부에 출몰한다는 양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전에서는 왜선을 박살 낼 정도로 몹시 강하지만, 육지로 들어온다면 만만한.

* * *

그 와중.

어느 날 밤에 사건이 있었다.

형무와 이거가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전라우수사 강흠과 그를 따르는 무관 몇 명이 사전에 모의하여 정박한 고려의 함대를 공격하는 일이 있었다.

전라우수사 강흠은 동래 앞바다에서 벌어진 일을 직접 본 적이 없었고, 평상시 그 성격이 몹시 다혈질적이라 도원수가 저 외인(外人)들에게 절절매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저들의 배가 몹시 크고 강력한 것은 사실이나, 성채의 높낮이가 항상 병법에서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강흠은 다소 답답한 도원수의 행동 대신 자신이 실천하여 큰 군공을 세우길 원했다.

게다가, 회담장에서 오가는 말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도원수와 병조참의의 얼굴이 구겨져 있는 것을 보아 할 때, 마냥 저치들과의 협상이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 게 확실해 보였다.

더군다나 주상은 큰 공을 세운 도원수 박형무 또한 썩 좋아하지 않으실 것이 분명했기에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공을 세운다면 도원수를 견제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도원수는 삼남의 군세를 지휘하지만 수군절도사들을 편제에 넣고 있진 않다.

자신은 항명이 아닌, 충의로 일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강흠은 달이 없는 날을 골라 맹선을 움직여 고려의 함대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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