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
“아이고! 아이고!”
“이것까지 다 가져가시면 쇤네들은 어찌 살라고!”
젖먹이를 안은 여인이 서럽게 소리쳤다.
그러나 군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작 별수미(別收米, 특별하게 거두는 전세)를 내었어야지! 국난이 앞에 다가온 것을 모르겠느냐?”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놓아라, 이년! 정녕 내가 호되게 경을 쳐야겠느냐?”
매섭게 뿌리친 팔에 손찌검을 당한 어미가 이제는 더 이상의 저항 없이 그저 망연자실하게 군졸들이 뺏어가는 식량을 보았다.
별수미고 나발이고 쌀알은 이미 진작부터 없었고 이제는 조, 기장, 수수에 불과할진대 그마저도 빼앗기니 이번 보릿고개는 어떻게 견딜지 막막했다.
군졸들을 이끌고 있던 군관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다 어두운 얼굴을 했다.
흉년이 들은 마을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굶주린 사람들은 죽거나 산으로 숨어들어 산적이 될 것이었다.
‘나라고 이러고 싶어 이러겠느냐.’
군관이 고갯짓을 하자, 군졸 하나가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툭 하고 자루 하나를 던져주었다.
“그걸로 좀 버티어 보게. 왜구를 물리친다면 군량미를 나누어 구휼할 것이라고 대감께서 약조하셨으니.”
“······.”
공허한 약속만을 남긴 채, 떠나가는 군졸들의 등을 바라보던 중년인 하나가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임자, 땅을 팔아야것소.”
지금까지 실시되었던 조선의 과전법은 드디어 한계에 도달했다.
관에서 공급하는 토지의 양보다 수요가 훨씬 많았기에 예견된 일이었다.
따라서, 세조 시기 과전법은 직전법으로 바뀌며 현직 관료만 수조권을 주는 형태로 바뀌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심심치 않게 직전법을 폐지하자는 말이 나왔고, 관리들에게 녹봉만을 지급할 수 있다고도 했다.
당연히 조선 관리들의 토지소유욕구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대농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눈에 불을 켜고 토지를 소유하려는 관리에게 땅을 팔고 다시금 그 땅을 소작받는 것은 사실 개 목줄을 들이밀며 자신의 목에 채워달라는 형국과 다름없었다.
소작은 결국 생산량의 절반을 병작반수(竝作半收)에 의거하여 뜯기게 되었다.
이러한 지주―전호제는 이제 심심치 않게 늘어나 자영농의 규모를 훨씬 웃돌기 시작했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게 토지세만 있는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지역 토산물을 현물로 조달하는 공납도 있었다.
본래 공물이라는 것이 기후와 풍흉에 따라 변덕스럽고 날씨가 바뀜에 따라 생산지가 옮겨가는 것인데, 조정에서는 그러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바락바락 을러대며 내놓으라 요구하니 양인들의 허리가 휘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군역은 말할 것도 없었다.
늘어난 영토는 늘어난 국경을 의미했고, 지켜야 할 땅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했다.
내적인 팽창이 전혀 없었던 조선은 그 모든 군역의 부담을 양인에게 전가했으며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남성은 필히 길고 긴 군역을 살아야 했다.
매년 3개월이 넘도록 끌려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징집군은 자신의 무장을 자신이 해결해야 했으며, 국가의 도움조차 받지 못했다.
조정에선 훈구와 사림이 대립하고 있으나, 둘 모두 군역은 피부에 와닿는 그들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해결하려는 의지가 거의 없었다.
이런 모든 모순을 해결할 방법은 하나가 있긴 했다.
투탁(投託) 노비.
파산한 양인이 양반이나 지주의 노비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 * *
조선
동래(東萊)
동래는 조선의 남동쪽 최대 요충지이자 전조부터 왜와의 무역항으로 기능한 곳이었다.
남조와 통교를 하면서 가장 크게 개항한 곳이기도 했고, 평화로울 때는 북조의 상인들도 이곳에 와 교역을 했다.
물론, 지금은 모두가 영 상황이 좋지 않았다.
동래에는 남방도원수 거처가 있었다.
본래는 공석이었지만, 최근 들어 왜구의 위협이 잦아 도원수의 직이 북방과 같이 상설화가 되었었다.
현 남방도원수 박형무(朴衡武)는 군량을 살피더니 이윽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군량은 그래도 썩 모였소. 이만하면 일군을 운용할 수 있을 테지.”
“···대감, 원성이 산과 들에 자자합니다.”
“···어찌하겠소. 모두 왜구를 막기 위함인데.”
형무도 비통스러웠지만 할 수 있는 바가 극히 적어 안타까운 침음성만 흘릴 뿐이었다.
임술년(CE 1503)과 계해년(CE 1504)은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충청에선 역병이 돌았고,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왜구가 해안가에 빈번히 출몰했으며 사람을 해하고 납치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북쪽에서는 북원이 남하하였다.
그리고 최악으로, 흉년이 찾아왔다.
하지만 조선은 현재 민간에 구휼미를 풀기는커녕 오히려 별수미라는 전쟁목적의 특수세금을 걷고 있는 상황.
백성들보고 아예 죽으라 등 떠미는 현재의 실태에 좌중의 문무신들 중 일부는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방의 변이 몹시 심각하다 하나, 남쪽도 만만치 않습니다. 군사 이만 삼천을 심요에 올려보냈으니, 나머지 이만으로 삼남의 구역을 방어하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입니다.”
남방군의 이만은, 북방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하다.
게다가 그 이만의 병사들도 장부상으로만 존재하는 터라 다 모아보면 제대로 전부 나올지 의문이 들었다.
그마저도 삼남의 주요 거점에 고루 분배되어야 한다.
꽤나 중요한 거점인 동래에도 그 수가 삼천을 넘지 않을 것이었다.
약탈이 주목적인 왜구가 한 곳에 와서 준비된 조선군과 자웅을 겨루겠는가, 아니면 의도한 소기의 약탈을 끝내면 바람과 같이 꽁무니를 빼겠는가.
“각 수영의 인원은 충분하오?”
형무는 도원수가 주최한 회의에 참석한 충청수영과 전라수영, 경상수영의 대표자들을 모두 돌아보며 말했다.
동래에 위치한 경상좌수영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에 만호를 보내었다.
“···북방군에 보낸 까닭에 화약이 없다시피 하나, 맹선에 태울 인원은 괜찮습니다.”
본래, 남방의 주요한 근심거리는 왜구가 명백했으므로 육군이 허술할지언정 수군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기피직이긴 하나 충실하게 편제되어 병선에 오르게 하니, 조선은 지금 맹선에 태울 수군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다.
“육군은 부족하나, 절망적이진 않고 수군은 항상 믿음직스러웠으니 제장들은 군의 사기를 끌어 올리시게.”
“···예, 대감.”
“저들이 대체 어디로 올꼬···.”
조선은 고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왜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아예 소홀하지는 않았다.
원의 동국정벌 이후 왜가 중원의 질서에 편입되면서 한반도의 사람들도 그들의 역량을 제법 자세하게 알게 되니, 조선으로서는 항상 동쪽의 무리들을 경계해야만 했던 것이다.
주나라가 멸망하고 삼각무역 체제가 붕괴되자 남조는 힘을 급격하게 잃었다.
공교롭게도 북조에서도 쇼군직을 놓고 아시카가 가의 내부싸움이 있는 상황이라 양국은 지방 다이묘들의 통제권을 잃은 상태였다.
그리고 왜구들은 그때를 틈타 엄청나게 발호했다.
“왜구란 존재들은 잔인하고 포악하며 윗사람을 흠숭하는 예가 전혀 없어 심지어 같은 왜인들의 임금이 있는 능도와 에도에 가서도 약탈을 한다 합디다.”
왜의 두 개의 수도와, 교토를 약탈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을 정도.
세토 내해가 얼마나 무법지대인지, 오죽하면 북조가 남조를 정벌하지 못하는 이유가 세토 내해의 왜구들 덕분이라는 이야기도 나돌 정도였다.
그런 그들이 한반도에 오면 오죽하겠는가.
정치적으로도 영향이 없었으며 문화적으로도 이질감이 남다르니, 그 포악한 성정에 절제하는 바가 전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왜구들의 배후에는 혼란스러운 두 왜왕 사이에서 자신의 가문을 발전시키고 싶어 하는 다이묘들이 있다는 사실은 당연한 소리겠지만, 조선은 그 배후를 정확히 파악할 정보력까진 가지지 못했다.
사실 지금의 첩보도 남조에서 조선이 왜구를 좀 물리쳐 달라고 보낸 것이었다.
“듣기로는 남조 내에서도 왜왕과 막부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왜구를 가장하여 노략질을 한다 하던데···.”
“남왜왕과 그의 정이대장군으로서는 손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겠지요.”
“빌어먹을 놈들···.”
이번 왜란은 전례 없이 그 규모가 클 것이었다.
박형무는 각지에서 온 병영과 수영의 대표에게 단단히 일렀다.
“적들이 온다면 재빨리 봉수를 올리시오. 적의 세력이 많으면, 공세를 나아가지 말고 굳게 버티다가 원군과 합류하여 적을 양면에서 막으시오. 수군 또한 적의 규모가 크다면 수적인 열세를 자처하지 말고 다른 수영들의 함선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버시구려. 부랴부랴 약탈을 막는 것보다, 시간을 들이더라도 약탈을 하고 돌아가는 것을 모조리 추살(追殺)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선택임을 제장들은 잊지 마시오.”
“예, 대감.”
* * *
보름 전에 그렇게 당부하긴 했었다.
하지만 정작 형무 자신이 동래 앞바다에 빼곡하게 몰려든 왜구를 보자 절로 탄식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사실 방비가 괜찮은 축에 속하는 동래에 오진 않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었다.
판단 착오였나.
군사를 더 확실한 거점에 집중시켰어야 했는가.
사실 북방군에 대한 지원만 없었어도, 동래에는 더 많은 숫자가 있었을 텐데.
그가 긴 생각에 빠질 동안, 왜 특유의 군선이 수평선을 가득 메웠다.
한 척, 두 척.
그리고 수십 척.
이제 늙어 행동이 기민하지 못한 그보다 젊은 부관이 먼저 빨리 그 수량을 헤아려 보고를 했다.
“대감, 적선의 수가 무려 백 척이 넘습니다.”
“봉화를 올리고 전령을 보내라. 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이 상황을 다른 곳에 알려라. 동래가 떨어진다면 몹시 큰일이니 전령들은 제 시간 안에 서신을 전달해야 할 것이야!”
― 탁 탁 탁
동래수영의 위치는 도원수의 거처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직접 오는 것 대신, 전령을 보낸 경상좌수영의 수군절도사는 이미 한창 선박 위에 오르는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사께옵서는 직접 함선을 이끌고 나아가 저들의 공세를 둘로 가르겠다 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지 못했는가? 그것은 사지로 뛰어드는 행동이네!”
“백여 척의 선박에서 내릴 인원이 만이 넘을 것인데, 세 배가 넘는 수적 차이는 필히 큰 어려움이 될 거라 스스로 시간을 벌겠다 하셨습니다.”
“······.”
사실 도원수가 수군절도사보다 품계는 높았지만 완전한 지휘체계에 넣고 있다 볼 수는 없었다.
또한, 수사의 판단이 옳기도 했고.
그러나 동래에 있는 경상좌수영의 맹선은 고작 서른 척.
거의 세 배가 넘는 적선을 상대로 유인작전이 실패한다면 큰 곤경에 빠질 것이었다.
‘저들을 제대로 상대하려면 우수영과 전라수영의 함선이 전부 와야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그때까지 버티겠는가?’
봉화를 보고 바로 온다 하더라도, 전라수영이 이곳에 당도할 때까지 적어도 사흘은 걸릴지 몰랐다.
물론 이제 박형무는 수군에 대한 생각을 더 이상 이어가진 못했다.
적선에 빼곡히 탄 왜구들이 앞다투어 모래밭에 하선하며 검과 창을 꼬나쥐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의 정곡(丁髷, 촌마게)은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지금은 저들 특유의 흉폭함을 나타내는 상징같이 변했다.
왜구들은 육전에 상당히 능했다.
매일같이 전쟁이 벌어진다는 왜의 땅에서 살아왔으니 당연한 소리였다.
조선으로서도 북방에서 야인들과 매일같이 드잡이질하는 심요의 정병들이나 맞수가 되겠지.
* * *
그래도 박형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동래의 백성들을 대부분 동래읍성 안으로 피난시키고 삼천의 조선군 또한 동래읍성에서 결사로 항전했다.
미리 준비한 까닭에 화살과 무기, 식량이 부족하지 않아 수적인 열세에도 방어가 굳건했다.
왜구들은 혀를 차면서도 본디 목적했던 대로 이리저리 사방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형무는 일부 피신하지 못한 백성들이 상하고 남겨둔 가옥과 재산들이 불에 타는 것을 보며 가슴이 미어졌지만, 그래도 추후 저들에게 해줄 복수를 위해 이를 갈았다.
그러나 왜구들의 우두머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으하하하, 너희들의 수군 대장은 이미 죽었고 놈이 이끌던 무리의 잔당들은 서쪽으로 쫓겨가고 있으니 그만 성에서 목을 내밀고 패배를 받아들여라!”
세키부네의 빠름에 비교하여, 조선 수군의 맹선은 그야말로 속도도 둔하고 높이도 높지 않으며 내구력도 나약하여 어떤 장점 하나 가지지 못했다.
만약 조선이 폐주 이성의 집권 시기처럼 함부로 백병전을 시도하지 못하게 배의 갑판을 한 층 더 쌓아 올리고 내구력과 기동성을 보강한 최신의 함선을 원래 계획대로 만들었다면 모를까, 지금 당장의 조선 수군은 옛날 원세조 쿠빌라이가 극찬했다는 한선(韓船)이라는 이름이 부끄럽게도 나약한 상태로 정체되어 있었던 것이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군절도사의 목을 동래읍성 안으로 던지게 한 수괴가 이틀이 다 되도록 신나게 부산포와 동래 근방을 약탈하고는 마침내 명령을 내렸다.
“멍청한 조선놈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간다. 어이, 네놈, 그 계집은 그만 내려놓고 빨리 대열로 돌아가라!”
* * *
“이런!”
저들이 떠나가고 있었다.
형무는 등을 돌리고 떠나가는 왜구들을 보며 갈등했다.
지금 성문을 열고 나가 싸우면 저들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겠지.
그러나 병사들은 물론이고 기껏 힘들게 피난시킨 동래의 백성들까지 한순간에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반면 지금 이곳에서 잡지 못한다면?
그럼 저자들은 다시 왜국으로 넘어가거나, 혹은 어딘가에 들러 보급을 받은 다음 다시금 조선의 해안가를 들쑤실 것이다.
동래에 왔으니, 이번에는 반대편인 전라도로 가겠지.
그렇게 해서 농락당한다면 대체 성상의 용안을 어찌 뵐 수 있단 말인가.
형무가 끝없는 고민에 빠져들 무렵, 이미 저들은 상당히 멀리까지 행군해 가고 있었다.
군율과 속도 둘 모두를 살펴보건대 분명히 일반적인 왜구는 아니었다.
“내가 몸이 날랜 자들을 추려 저들을 다시금 기습할 터이니, 그때 동안은 병사(兵使) 자네가 지휘하시게.”
“대감!”
형무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직접 오백의 정병들만을 선별하여 그들의 후미를 뒤쫓았다.
죽더라도 저들의 발목을 잡아 시간을 늦출 생각이었다.
다른 원군이 제때 오지 않는다면 헛짓거리가 되겠지만.
그러나 그가 필사의 각오로 나아간 부산포에는 동래를 약탈했던 왜구들이 멍청한 얼굴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 쿠웅
멀리 떨어진 탓에 어딘가 웅웅거리는 굉음이 그의 귀에 들어왔다.
형무가 반색했다.
“전라수영인가? 그곳에 화약과 화포가 남아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그의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그 굉음은 하늘이라도 노한 듯 바다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 쿠구궁
“···조금 더 다가가 보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형무는 오백 정병을 이끌고 부산포 주변의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라갔고, 그제서야 제대로 된 부산포의 광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부산포 앞바다, 빼곡하게 정박해 있던 엄청난 수의 왜선들이 불에 타고 있었다.
몇십 척은 이미 반파되어 침몰하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허둥지둥 바다로 나아가려 시도하고 있었지만, 성공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형무는 고개를 들어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정체불명의 함선들이 바다에 일자진을 펼치고 있었다.
그 수는 얼추 서른.
서른 척 모두 무척이나 컸지만, 그중에서도 선두 다섯 척의 배는 몹시 웅장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함.
비록 왜선보다 훨씬 더 멀리 있음에도, 지금 이 시점에서 서로의 크기가 비슷한 것을 보아할 때, 실제로 저 두 척의 배를 나란히 놓는다면 정체불명의 저 선박은 바위를 번쩍 들어 올릴 정도의 장사이고 왜선은 엊그제 어미에게서 젖을 뗀 갓난아기와 다름없을 것이었다.
‘무슨···.’
― 쿠웅
울렁이는 화포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멀리 있음에도 번쩍이는 섬광과 피어오르는 흰 연기가 보였다.
대체 왜 그 귀중한 화약을 저리 무식하게 쏘아대는지.
흡사 바다 안개와도 같은 흰 연기가 저 함대 주변에 맴돌았다.
괴함대의 주변에 낀 흰 안개가 마치 몽환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부산포 앞바다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나뭇조각과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뼛조각과 피, 살점이 섞여 있을지도 몰랐다.
명령대로 서둘러 배에 오르려던 것이 왜구들에게는 더욱 큰 피해로 다가왔다.
바다 안으로 가라앉는 배에서 필사적으로 뛰어내려 수영을 하려던 왜인 한 명이 물에 빠져 익사하려는 동료의 손아귀에 잡혀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형무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먼 거리의 배를 실눈을 뜨고 노려보았지만 정체는 물론이고 깃발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도원수로서 그는 지금 이 광경을 멍청히 바라만 볼 수는 없었다.
“···너는 곧바로 동래읍성으로 달려 전 군의 출정을 명하라!”
“예! 대감!”
정체불명의 대함대와 그 함대가 뿜어내는 엄청난 화포 공격에 사기가 박살이 나 버린 왜구들이 황망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며 뒤로 물러날 때, 물러나는 방향에 위치한 동래읍성에서 나온 조선군들이 그 배후를 치자 왜구들은 수적인 우위와 나름대로 잘 다져진 군율이 무색하게도 순식간에 기세가 밀려 사방으로 달아났다.
게다가 봉화를 보고 곧바로 달려온 전라와 충청의 우군이 당도하니, 일만의 왜구들은 내지에 숨어 추격을 당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박형무가 삼천여 명의 왜구를 추살하고 이천여 명의 왜구를 생포하여 동래에 돌아왔을 때, 그만큼의 숫자를 바닷속으로 수장시킨 대함대는 아직도 부산포 앞바다에 대열을 갖추고 둥둥 떠 있었다.
황급히 지원 온 경상우수영과 전라수영의 배들도 그저 부산포를 방어하려는 행동만 해 보일 뿐 섣부르게 나아가지 않았다.
형무는 황망한 마음을 다잡으며 붓을 쥐었다.
서둘러 한양에 장계를 보내야만 했다.
모든 미사여구와 격식을 생략한 그가 간결하게 보고를 작성했다.
[폐하, 조선의 해안에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토벌하였사오나.]
그러나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으며 의지와 육신 모두 강건한 무관의 붓끝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황당선이 내항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