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e Britons, Must, in turns, to fall.(2)
런던탑, 가장 엄중하면서도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장소.
이 하나의 ‘독방’은 응접실 및 식사 공간으로 쓰일 넓은 곳 하나와 그보다 작은 침실 하나, 그리고 용변을 볼 수 있는 작은 방 하나까지 총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독립된 장소들은 모두 사생활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 것마냥 하나같이 문이 없었고, 밖에서 잘 보일 수 있게 건설되어 있었다.
자살이나 탈출 시도를 언제든지 파악할 수 있도록.
창살 밖에서 가장 처음으로 보이는 넓은 응접실은 화려한 장식들과 가구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 사치스러운 방이었다.
적강목으로 만들어진 붉은 색의 식탁 밑에는 오스만에서 들어온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고려에서 들어 온 청자와 여러 은제 식기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은제 식기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이 있었다.
훈제된 닭과 후추가 가득 뿌려진 스테이크, 부드러운 빵과 과일 잼.
기름에 튀긴 요리들과 생선구이, 그리고 이국적으로 보이는 진수성찬들.
그 향은 실로 감미로워, 실로 바깥에서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병사들은 꼴딱꼴딱 침을 삼켜야만 했지만 정작 식탁에 앉아 있는 주인공은 식기에 손을 뻗지 않았다.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잉글랜드 또한 한 상에 가득 음식을 차려놓고 먹는 프랑스식 관습을 따르고 있었다.
다만 이러한 관습의 단점은 음식들이 빨리 식어버린다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런 사소한 것쯤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남성은 베네치아에서 사 온 투명한 유리 디캔터에 들어있는 와인만을 따라 홀짝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조금 과한 감이 있었지만, 어차피 그에겐 이런 음식들이 몹시 익숙했다.
귀족들은 그에게 꼬박꼬박 이러한 만찬을 제공해야 했다.
식은 음식은 다시금 데워져 올 것이며 변질된 와인 또한 항상 최고급으로 그의 잔에 채워질 것이다.
아무리 그가 런던탑에 유폐되더라도.
그것이 방의 주인, 에드워드 4세가 가진 혈통의 힘이다.
내전의 종식자이자, 위대할 뻔한 랭커스터 가문의 가주, 그리고 잉글랜드의 현왕.
그러나 눈을 감은 채 고블릿을 빙글빙글 돌리는 에드워드는 그 조소 어린 타이틀을 속으로 비웃고 있었다.
― 자박 자박
앞으로 다가올 여인의 앞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잖은가.
― 훅
익숙한 향기가 비강을 찔러왔다.
마시고 있는 와인의 향기는 이미 피로해졌으니, 와인 향보다도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기는 여인의 존재는 감옥 안을 가득 메웠다.
눈을 감고 있던 에드워드는 그만이 느낄 수 있는 익숙한 여인의 살 내음을 느끼고는 천천히 고블릿을 내려놓았다.
“열거라.”
저 특유의 억양까지, 이 모든 순간이 몹시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예, 전하.”
― 끼익
기름칠이 잘 된 듯 부드럽게 열리는 창살.
여인은 한동안 창살 문을 잡고 구관조마냥 가둬져 있는 에드워드를 바라보더니 이내 짧은 한숨과 함께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걸친 옷, 금실로 랭커스터의 장미와 그 본가 플렌태저넷을 상징하는 사자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붉은 벨벳 망토가 바닥에 끌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에드워드는 여인의 그런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지었지만 별말을 하진 않았다.
총애받던 정부, 세실리아 위그모어마저도 저런 의복을 그의 눈앞에서 입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천부적인 당당함과 자신감을 가진 여인의 앞에서 어찌 그 복장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사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오랜만이군.”
“오랜만이네요.”
부부는 탁자를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았다.
왕궁에 있는 탁자는 아주 길이가 길어, 두 명의 부부는 제대로 의사소통도 하지 못했다.
반면 이 탁자는 여전히 길이가 길긴 했지만 일어서서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거리.
어쩌면 이것은 그들의 심리적 거리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꼴이 되어서야 이제 솔직해질 기회를 얻은.
창살 밖에 있는 시종들이 음식을 데우랴, 와인을 따르랴 바쁘게 자리를 오갔다.
“그만, 이이나 나나 스스로 와인 정도는 따라 마실 수 있으니 전부 나가거라.”
축객령을 받은 시종은 공손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잉글랜드 병사들은 약간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왕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들도.”
“하오나….”
“전하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약간은 어설픈 잉글랜드어.
해영이 대동한 자들이 망설이는 잉글랜드 병사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모두 고려의 선인(先人)들.
오직 그녀에게만 충성을 바치는 인물들이었다.
앞으로도 그녀를 위해 이곳에서 왕을 모실 사람들이었고.
병사들은 입술을 깨물더니 밖으로 모두 나섰다.
검은 옷을 입은 선인들이 마치 그림자처럼 복도의 어둠에 스며들자, 해영은 다시금 에드워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야망 넘치던 사내는 이미 얼굴 가득 체념의 빛을 띠고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이 꼴이 나기 전까지 서로 간에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면.’
해영은 안타까웠다.
만약 그가 그녀를 적절히 이용할 수 있었다면.
진실로 부부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쩌면 그녀가 자라온 조국 대신 에드워드와 랭커스터, 그리고 딸 마가렛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었을 텐데.
아마 브리타니아는 그의 치세 때 하나의 왕국으로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고, 해양 패권을 노려봄 직한 열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저 용 또한 턱 밑에 난 역린을 찔리지 않기 위해 브리타니아와 이베리아의 연합을 적당히 어르고 달래며 아프리카에의 조그마한 영향력을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용은 이미 분노가 가득 차 계셨다.
어설픈 도전은 이제 불가능했다.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려면 확실히 숙여야 했다.
황상은 앞으로도 대동양에 대한 도전을 허락하지 않으실 테니까.
기나긴 부부간의 대화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 * *
잉글랜드 의회는 공식적으로 차기 왕좌에 대한 마가렛 랭커스터의 승계를 인정했다.
다만 마가렛은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으니 그전까지 섭정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당연스럽게 해영이 섭정의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고려인이라는 양날의 검 덕분에 그녀는 상당한 권한을 의회에게 양도해야만 했다.
아마 그녀의 딸, 마가렛 또한 의회의 큰 견제를 받아야 할 것이었다.
반면에 의회 또한 해영의 중재를 받아들였다.
고려와의 전쟁이 패배로 돌아가고, 많은 잉글랜드 병사들이 아일랜드에서 포로로 잡힌 지금, 하루라도 빨리 협상에 임해야 그들의 목숨을 제대로 구하고 요동치는 민심을 진정시킬 수 있었기에 해영의 중재는 말이 중재였지, 거의 최종안에 다다랐다.
첫 번째, 고려는 잉글랜드의 명분을 지웠다.
잉글랜드는 아일랜드, 이제는 제대로 에이레 왕국이라고 불려야 할 곳에 대한 모든 영유권 주장(Claim)을 포기했다.
심지어 고려가 주둔한 맨섬까지도.
라우다빌리테르 교서는 이제 휴지쪼가리가 되었다.
두 번째, 고려는 잉글랜드가 이루어 나가는 해양 전통의 두 가지 주요 줄기를 도려냈다.
완전히 뿌리 뽑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성장세는 심각하게 둔화될 것이다.
잉글랜드는 고려가 나포한 HHS 채텀과 기타 여러 군선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항구도시 채텀의 로열 독스에서 건조되고 있는 그들의 최신식 맨 오브 워(군선) 또한 작업이 중지되고 용골이 불태워졌다.
그리고 고려는 항해경험이 풍부한 잉글랜드의 제독들과 선장들, 그리고 수병들을 귀환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에드먼드를 비롯한 제독들, 그리고 잉글랜드 수병들은 포로의 신분으로 전부 다 앙주로 가, 그들의 친근한 이웃 앙주의 프랑스계 고려인들과 함께 오붓하게 지내야만 할 것이었다.
사략해적?
잭 디건은 수장되었고, 나머지 해적들은 템즈 강변에 오고 가는 선박들과 보행자들이 잘 보이도록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지금쯤 까마귀들이 그들의 시신을 파먹으며 때아닌 포식을 하고 있겠지.
잉글랜드에겐 선원의 손실은 군선의 손실보다 뼈아팠다.
배야 무척이나 비싸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과적으로 ‘물건’이기 때문에 나무가 있는 이상 어떻게 만들 생각을 할 수 있긴 했다.
그러나 바다 위에서 상황에 따라 알맞은 전략과 전술을 쓸 수 있는 사람을 찍어낼 수 없는 노릇.
게다가 사관학교급 숭무감을 운영하여 교범을 남기고 전략 전술을 후대에 유지시켜 배우게 하는 고려와 달리 잉글랜드의 선원들은 아직까지도 유럽 대부분의 나라처럼 주먹구구 같은 도제식으로 항해술을 배우고 있었다.
한 번 이렇게 기둥을 뽑아버리면 다시 나아가기까지 적어도 반세기는 지나야 하겠지.
반세기면 정말로 충분했다.
“우리는 해적 세력에 어찌 저항합니까?”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의 입장이 되니, 그제서야 울부짖는 잉글랜드인들.
함선과 선원 두 방면으로 기반을 상실한 잉글랜드는 해군 재건은커녕 당장 저지대의 바다의 거지들의 침입을 걱정해야 했다.
고려는 동맹국 네덜란드의 사략해적질에는 별 대응을 하진 않았다.
잉글랜드의 업보였으니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섭정의 자리에 오른 해영이 그녀의 백성들을 안타깝게 여겨 저지대로 편지 한 통을 보내니 놀랍게도 바다의 거지들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모두가 이 중재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1490년, 굴욕적인 협상과 외국인 섭정 왕비의 출신 성분을 문제 삼아 큰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의 주동자,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는 왕비 해영 대신 자신이 그 섭정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스스로도 정통성이 딸린다는 것을 인지하긴 했는지, 헨리 튜더는 두 가지 타협안을 해영에게 제시했다.
마가렛 랭커스터와 헨리 튜더의 결혼.
혹은 해영과 헨리 튜더의 결혼.
그러나 해영은 둘 모두를 거절했다.
“남편은 나를 버렸지만, 나는 남편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설령 남편이 죽어 내가 미망인이 된다면, 나는 잉글랜드와 결혼을 하겠습니다.”
당대 유럽을 대표하는 세 여걸(카테리나 스포르차, 해영, 마리 드 부르고뉴) 중 하나답게 해영은 말 한마디로 성난 군중과 귀족들에게서 찬사를 받아냈다.
훗날, 잉글랜드의 문학을 집대성할 작가 셰익스피어는 그녀와 대조되는 에드워드 4세의 시대극을 쓰며 노래했다.
[배반당하는 자는 배반으로 인하여 상처를 입게 되지만, 배반하는 자는 한층 더 비참한 상황에 놓이기 마련이라.]
그러나 헨리 튜더와 그 파벌은 해영의 거절을 듣고는 격노하며 앞으로 더 이상의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선포하며 본격적인 반란의 시작을 알렸다.
잉글랜드는 다시 지긋지긋한 내전 속으로 빠져들어 갈 기미가 보였다.
* * *
브리튼 제도가 내전에 휩싸일 때, 오히려 통합을 모색하는 곳도 있었다.
이탈리아반도.
아주 먼 옛날, 찬란했던 로마의 시절이 지난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통합되지 못했던 이탈리아반도는 봉건제의 시작과 끝을 건너뛰며 새로운 시대로의 문을 가장 먼저 열고 있었다.
세속의 발전은 오히려 종교의 위기로부터 파생되었다.
교황 바오로 2세가 먼저 옛 과오를 인정하고 고려에게 고개를 숙이는 행동을 할 정도로, 교황령 그리고 가톨릭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종교개혁은 한창 진행 중이고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는 이미 교황청에 등을 돌렸으며, 북부 게르만과 스칸디나비아 또한 이단의 기운이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폐교황 펠릭스 5세의 끔찍한 짓에도 불구하고 그 후임자들은 성직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에 나서지 않았다.
펠릭스 5세의 후임자 갈리스토 3세는 족벌주의를 통해 자신의 가문, 드 보르자 가문에게 어마어마한 혜택을 뿌려 교황청 곳곳에 곰팡이를 심어놓았다.
그의 후임자 비오 2세는 정치적 영향력이 없었으며, 그다음 후임자 바오로 2세는 여전히 사치스러웠다.
바오로 2세의 후임자 식스토 4세는 그 특유의 무자비함으로 너무나 많은 적들을 만들고 다녔고 식스토 4세의 후임자 인노첸시오 8세 또한 바오로 2세보다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이 모든 교황들의 악덕은 1492년, 기나긴 시간 끝에 베드로의 권좌에 착좌한 한 사람에 감히 비할 수 없었다.
알렉산데르 6세.
갈리스토 3세의 조카이자 이탈리아반도를 좌지우지하는 드 보르자 가문의 가주.
갈리스토가 뿌려놓은 곰팡이의 결정체.
사악하며 탐욕스럽고, 교활하며 음탕한 이 교황은 끔찍하게도 그 모든 악덕을 합친 것 이상으로 유능했다.
알렉산데르 6세는 무너져가는 성직을 바로 세우는 대신, 오히려 그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표면적으로는 과도한 교황령을 개혁한다는 입장을 내세웠지.
반면에 그의 가문인 드 보르자 가문의 권위는 몰락하는 성직의 신성성에 반비례하여 하늘로 치솟았다.
교황령을 이루고 있던 벽돌들은 드 보르자 가문의 담장을 쌓는 곳에 이용되고 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