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기, 그리고 보안관
택주.
치음 북쪽.
고려가 이츠코우아티틀란을 점령하며 치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의 일이었다.
개척되지 않은 땅 특유의 황량한 풍경이 돋보이는 이곳에는 넓은 벌판을 점유한 목장이 있었다.
진정한 고려인이라면 쌀을 사랑하는 민족답게 어떻게 해서든 이 황무지에 쌀을 재배하려 시도했겠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에서는 아무리 인간이 지극정성으로 땅을 일구더라도 쌀의 생장 자체가 불가능했다.
비가 잘 안 오니까.
더 녹음이 우거진 동쪽으로 가야 제대로 된 파종과 수확을 할 수 있겠지.
이곳은 강수량도 적은 건조한 기후였고 큰 물줄기와도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다.
모래바람이 가끔 불어오는 곳.
다행스럽게도 풀은 잘 자랐다.
곡식이 아닌 말과 소들이 먹을만한 풀들만이 존재하는 이 땅에는 당연히 목장을 만들어야 하겠지.
어차피 원래부터 김안섭도 농사일이 아닌 목장을 운영할 생각을 가지고 있긴 했다.
말은 매력적인 동물이다.
근위군 총병연대에 속한 척탄병인 탓에 많이 타진 못했지만 그는 여전히 이 네 발 달린 동물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머리 쓰는 일에는 능하지 못한 그도 열심히 공부를 할 정도로.
전역을 신청한 뒤, 나라에서 주는 목돈을 모아 토지를 구입한 안섭은 한동안 그에 관한 법을 공부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고려의 토지제도는 상당히 정교했다.
일반농지, 그것도 쌀과 밀을 재배하느냐, 혹은 감자와 고구마 기타 상업 작물을 재배하고 있느냐에 대한 구분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상업 작물은 그 노동집약적 특성상 고용인을 쓰는 것을 막을 순 없었지만, 행여 옛날의 투피족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원주민들을 착취하며 고혈을 빨아들이고 있는지를 감시했으며 정당한 봉급을 주는지까지도 확인했다.
그러고도 여전히 존재할 사각을 위해 관리들은 토지법의 조항을 적은 방을 곳곳에 써 붙이고 조보에도 실어 이곳저곳으로 뿌려대었다.
엄격한 토지법은 삼림에도 적용되었다.
조정은 고목이 우거진 삼림과 저목림, 열대우림 등을 구별했고, 벌목이 가능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그리고 조림사업을 진행하는 지역을 세밀하게 나누어 임야주의 무단 벌목을 엄금했다.
이렇게 삼림을 신경 쓰고 있는 것에는 물론 환경적 이유도 들 수 있었다.
함부로 벌목을 한다면 다가오는 재해에 잘 대처할 수 없었기에.
나무란 가장 큰 자연제방이며 저수지이자 유실되지 않도록 토지를 묶어주는 그물이다.
그러나 조정은 굳이 대외에 언급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 목재란 현 상황에서 잠재적 군수물자다.
항해술과 조선술 모두 발전한 고려의 특성상, 나무를 대대적으로 벌목한다는 것은 곧 민간도 큰 군선을 제조할 수 있다는 뜻.
아무리 현 고려가 중앙집권의 면모가 강하고 통치제도가 원활히 굴러가며 치안이 안정된 나라라고 하나 모든 범죄가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법을 잘 따르고 순박한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포악한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했고, 범죄를 일삼는 도적들 또한 여전히 어딘가에는 존재했다.
고려 외곽이나 가도 주변에 가끔 도적이 출몰하고 태동산맥 북쪽, 타완틴수유의 땅으로 넘어가면 여전히 산적이 존재하는 것처럼.
고려가 바다로 진출하자 이제는 해적까지 등장했다.
예전 카스티야가 칼리나해에 뿌려놓은 전략적 해적들은 모두 토벌된 지 오래.
이제 이곳엔 생김새를 잘 구분할 수 없는 같은 백성인 고려인 해적들이 등장했다.
칼리나해는 해적이 들끓기에 너무나도 좋은 지형을 자랑했다.
수많은 섬과 복잡한 해안선.
이 복잡한 지형에 이제는 양 떼 무리가 순진하게 오가고 있었다.
발전하고 있는 북려와 남려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상선들은 그 존재만으로 탐스러운 먹잇감과 같았다.
해적들은 교활했다.
멀리서 해적기를 올려(고려의 해적은 괴상한 도깨비 문양을 썼다.) 겁에 질린 상선을 약탈한 후, 증거를 인멸하고 다시금 상선의 깃발을 달았다.
살아남은 자가 없다면, 잔혹한 범죄의 흔적은 기록되지 않는다.
비록 거대한 군선들을 운용하는 청해와 근위함대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놈들이지만, 이들은 해적답게 강약약강의 묘리를 손수 실천하는 자들이었다.
거대한 조정의 물자를 수송하는 대함대를 건드릴 깜냥도, 그럴 능력도 없는 자들은 애꿎은 민간 상선만 집요하게 괴롭혔다.
조정에서는 토벌대를 편성하여 해적을 토벌했다.
그러나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정말 해적이 운용할 수 없는 거대한 후기형 범선과 기선의 시대가 도래해야겠지.
따라서 조정은 그와 동시에 대규모 삼림 벌목에 대한 규제를 강력하게 증가시키고 청해와 해문, 그리고 남포와 같은 곳에 위치한 유명하고 큰 조선소들에 대한 감시를 늘림으로써 이들 해적이 일정한 수준의 규모를 갖추는 것을 경계했다.
적어도 해적들이 협저선과 지백선(支栢, 카스티야의 지벡(Xebec)에서 유래) 정도에 머무를 수 있도록.
* * *
애꿎은 토지법이 강화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강수량이 부족한 토지에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
목장으로 쓸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이렇게 광활한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된 것.
북려에서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자들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최대한 말의 유출을 엄금할 것.
물론 평원 놈들은 고려인 이전부터 유럽인들에게 들여온 말을 어찌 가지게 되었었지.
평원 부족민 스스로가 말을 아주 잘 길러 타고 다니는 광경이 심심치 않게 관찰되자 이 규정은 약간 사문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목장의 주인들은 말에 대해 보호와 책임의 의무가 있다.
‘말을 보호하라… 정말 웃기는 말이야.’
누가 자신의 재산을 평원 부족 놈들에게 빼앗기는 것을 즐기겠는가?
목장의 주인, 김안섭은 갓 지은 가옥의 쪽마루에 앉아 잠결에도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가 앉아 있는 흔들의자가 그의 호흡에 맞춰 조금씩 움직였다.
얼굴 위에는 검은 가죽 갓(피립, 皮笠)이 놓여 있었다.
고려인의 모자 사랑은 유별났다.
그 사랑은 건(巾)과 관(冠)과 같은 수많은 형태의 모자로 표출되었으나, 가장 많이 애용되는 것은 역시 갓(笠, 립)이었다.
갓의 문화는 옛 전조 고려에도 있었으며 그전부터 반도의 오랜 역사에서 기원했다.
물론 얼굴을 거의 다 가리는 수준의 삿갓, 방립과 개립은 동북아시아는 물론이고 대월(베트남)과 그 주변의 국가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관찰되었다.
그러나 중원과 왜, 월과 한반도의 국가들을 구분 짓는 특유의 면이라고 한다면 바로 관(모자 위 솟은 부분)과 챙(테두리)의 구별이 확연하게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다소 둥글둥글하게 생겼던 관은 그 모양이 다양해졌고 현재에는 원통형과 구형, 혹은 심지어 뾰족한 윗부분까지 정말 각양각색의 갓이 고려 내에서 착용되어지고 있었다.
재료 또한 과거와는 달랐다.
대나무 혹은 짚으로 만들어진 삼국과 고려 초기의 갓과는 다르게, 현 고려시대에는 갓의 대부분은 가죽 혹은 모직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창강대평원 유역의 엄청나게 많은 가축들과 태동산맥 부근에서 서식하는 양, 알파카 등은 갓의 재료 가격을 충분히 떨어뜨렸고, 이제 고려인들은 외출 시 대부분 갈색빛이 감도는 소가죽으로 제작된 피립(皮笠), 혹은 모직물을 이용해 만든 전립(氈笠)을 즐겨 썼고 초립과 패랭이는 정말로 형편이 좋지 않은 인물들이나 쓰게 되었다.
요 근래에 유행을 타는 것도 있었다.
검은 갓이라 하여 이름을 흑립(黑笠)이라 하였는데, 독특하게도 말총으로 갓을 만든 형태였다.
전조 고려를 멸망시키고 들어선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였다는데, 상서령 이도가 황상을 대동하는 외유에서 한 번 쓰고 나온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도는 굳이 이들에게 말총이라는 재료 자체가 몽골의 영향을 살짝 받았다는 것을 설명하진 않았다.
어찌 되었든 말의 숫자는 많았고 말총 또한 꽤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니 흑립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물론 아무리 말의 털이 질기더라도 가죽과 모직물보다는 훨씬 섬세하게 다뤄야 했고 손상되기도 쉽다 보니 특정한 계층에서나 쓰였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긴 관리나, 상인들 같은 높은 신분들의 의복이 돼버린 것.
안섭과 같이 목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겐 흑립이야 멋은 있을지 몰라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란 힘든 물건이었다.
물론 조금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선 써야 했기에 장롱 안에 고이 보관해놨지만.
소치기는 대체로 햇빛을 가리기 위해 챙이 넓은 피립과 전립을 쓴다.
피립은 가죽답게 단단하여 내구성이 우수했지만 통풍이 잘되지 않았고, 전립은 피립보다야 내구성이 약했지만 더욱 통풍이 잘되었으니 상황에 따라 둘을 혼용하면 좋았다.
안섭은 군인 출신답게 내구성이 좋은 면에 집착하여 피립만을 애용하고 있었지.
지금은 그 피립이 햇빛 가리개로 전락해 있었지만.
― 다그닥 다그닥
안섭은 한참 오수를 즐기다 멀리서 들리는 말발굽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얼굴을 덮은 피립을 슬쩍 들어 올려 자신의 가옥으로 달려오고 있는 자를 확인했다.
고려인이다.
저 멀리 달려오는 사람의 머리 위에는 역시나 전립이 보였다.
살짝 위로 휘게 매만진 흔적이 보이는군.
멋 부리기를 즐겨하는 젊은이.
누구인지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교하에서 온 정가(鄭家) 놈.
젊은 놈답게 미지의 대륙에 대한 동경이라도 있는지 분가하자마자 혈혈단신으로 택주에 와서 정착한 놈이다.
왼쪽에 놓여진 활을 슬며시 내려놓은 그가 입을 쩌억 벌리고는 하품을 내뱉었다.
햇볕이 여전히 기분 좋게 따갑다.
해가 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는 것이 명백했다.
게다가 안섭에겐 이제는 목장 일에 익숙해진 장성한 아들이 두 명이나 있었다.
더 자련다.
저 아이는 안섭의 장남과 친우라, 그 아이에게 볼일이 있겠지.
그러나 안섭의 기대 섞인 바람은 산산이 부서졌다.
“나으리!”
정가 놈의 용건은 안섭에게 있었던 모양.
안섭은 다시금 낮잠을 취하려는 자신을 방해하는 교하 출신 정숙우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어찌 안색이 급하다.’
단잠을 방해받은 약간의 짜증은 순식간에 불안 섞인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안섭이 이유를 묻기도 전, 교하 출신 정숙우가 고함을 질렀다.
“누무누 놈들이 북쪽에서 떼거지로 몰려온답니다!”
“뭐?”
* * *
지방의 행정이 제대로 설립되기도 전, 북쪽에 있던 평원 부족들이 난리를 부리기 시작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땅, 옛 반도보다도 훨씬 넓은 면적을 일거에 정복한 정벌전이 치러진 바로 그 직후의 공백.
택주는 시작부터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젠장.’
아즈텍 토벌군이 승리를 선언하고 군대를 물렸다는 소문이 들려오긴 했는데.
그들이 이곳에 오는 것은 시간이 꽤 흐른 뒤의 일이겠지.
지금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안섭은 서둘러 가족들을 불러모으고 모두 도시 방향으로 피난토록 했다.
치음은 성곽이 있으니 안전할 것이다.
“우리의 가축들은요?”
차남이 소리를 질렀다.
말과 소. 이들의 재산은 위협받고 있었다.
“누무누 놈들은 거의 이삼백에 이른다. 어떻게 항거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야! 말과 소는 다시 구할 수 있으나 가족들은 그렇지 않다. 어서 몸을 피하거라.”
하지만 차남은 거칠게 아버지의 손길을 뿌리쳤다.
“어찌 대고려인이 저 누무누 놈들에게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꽁지를 말 수 있단 말입니까?”
빌어먹을 자식놈들.
한창때의 혈기가 머릿속을 지배하는 모양이렷다.
“가축들을 마을 한곳에 모으고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목장주들, 그리고 마을의 건장한 남성들을 모아 시가전을 벌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장남 또한 이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놈들이… 너희들이 진짜 사람을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총과 칼을 휘둘러 보았느냐! 전투는 장난이 아니다!”
안섭은 목재로 된 마을에서 한바탕 방어를 해 보자는 아들의 말 같지도 않은 제의에 호통을 쳤다.
그러나 여전히 아들들은 반항의 눈매를 띠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의 아들들은 안섭과 너무나도 닮았다.
항거하려는 저 기질. 그리고 앞장서서 전투를 지휘하는 용맹함.
뒷골이 땡겨오는 것을 느끼던 안섭은 아직도 옆에 있는 장남의 친우, 숙우가 입을 여는 것을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놈은 왜 지 집에 안 가고 여기 꼭 붙어 있어?
숙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놈들은 아즈텍 난민들을 척살하려던 무리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평원은 북쪽이고 웬만해선 이곳까지 깊숙하게 내려오는 놈들이 아니잖습니까.”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저들은 난폭하고 용맹해.”
“한 번 기세를 꺾으면 저들은 물러날 겁니다.”
“…….”
“나으리, 이와 같은 일은 언제든지 발생하겠지요.”
숙우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천천히 말했다.
장남 또한 친우와 죽이 맞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저에게 그토록 말씀하셨던 기세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여기서 우리 고려인들이 대응을 서투르게 하고 무력하게 가축을 빼앗긴다면, 저 유목민 도적 떼들은 항상 고려를 업신여기며 변방을 약탈하는 것에 맛을 들이게 될 겁니다.”
안섭은 한숨을 내쉬며 여전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맞서 싸우자?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화약도, 총기도 심지어 활도!”
“아버지, 우리 마을에는 마침 정벌군이 남겨두고 간 치장물자가 있지 않습니까?”
아즈텍 정벌군은 너무나 많은 성과를 단기간에 빨리 올렸다.
빠르게 남진하다 보니 그들이 본래 써야 할 군수품 중 일부를 머물던 군영에 남겨두었었다.
그 군영은 철거되지 않고 고려의 정착민들이 들어서 마을로 바뀌었고.
정북행성에서 이 물자들을 함부로 대충 방치한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차츰 수거하여 택주에 주둔할 방어군의 군수물자로 쓸 계획이었다.
근데 그놈의 방어군은 대체 언제 오는지.
“나라의 물건이란 귀히 여기는 것이어야 하는데 어찌 우리가 사사로이 황상과 군대의 물건에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역모에 해당되느니라.”
“황상께서도 자식들이 이리 피 흘리는 것을 분명 안타깝게 여기실 겁니다. 자식들이 자식들의 방위를 위해 원주민 도적 떼들에게 총기를 드는 것을 어찌 역모라 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땅에 침입한 저들에게 찔려 죽는 것이 충정입니까?”
“…….”
빌어먹을.
안섭은 군인이었지만 군인이기에 그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래.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잔존한다. 여기는 죄다 소치기들뿐. 총기와 화약을 다룰 수 있는 자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아버지가 계시지 않습니까?”
“…….”
그래, 이 말이 나올 줄 알았다.
“나으리께서는 대고려 근위군에서도 유명한 교관이셨다 들었습니다. 단기간이라도 빠르게 교육시킨다면 총기의 특성상 어찌 쏠 수는 있을 겁니다.”
자신의 아들들은 물론이고 장남의 친우, 숙우란 놈도 자신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총기란 물건은 활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직관적인 무기라 손에 근력이 없는 자들도 쉬이 다를 수 있는 병기였다.
갓난아기도 힘센 천하장사를 죽일 수 있는 단순하고 치명적인 무기.
“저들이 이곳으로 오기까지는 대충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남아 있겠지요.”
안섭은 머리를 굴렸다.
신병을 조련하던 시절도 있었던 그에게, 마을 주민들에게 총기를 다룰 수 있는 정도의 교육은 정말 쉬운 일이다.
사람들은 총기의 폭음과 연기에만 익숙해진다면 어찌 무기를 곧잘 다루어 냈으니까.
“…알겠다.”
차남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 철없는 아들들을 바라보던 그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들이 다치진 않을까 하는 아주 기본적인 걱정부터.
그가 경험했던 것과 같은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면 성정이 변하지 않을까.
그처럼 손가락에 상처가 나면 어찌할까.
그러나 어쩐지 아주 약간은 흐뭇한 감정도 피어올랐다.
용기 있는 행동은 고려인 그리고 개척민의 미덕임이 틀림없다.
우리 것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행위이며 권리이다.
그러니, 총을 들어라. 젊은 소치기와 목동들이여.
[작가의 말]
고려인 소치기(목동, Cowboy) : 넓은 챙이 위로 살짝 구부러진 갓(피립 혹은 전립)을 쓰고 말 위에 올라타 총을 쏴대는 목장주인.
아무래도 황량하고 말 탄 유목민들이 생겨난 북려에선 총기 휴대 이외에는 개척민들이 스스로 방어를 할 구석이 없겠죠.
미국 서부개척 시대에 총기가 사용되었던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수정헌법 제2조가 내려져 오고 있는 것은 썩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농사를 짓기 부적합한 광활한 목장, 말 탄 적대적인 원주민들….
삼별초가 갓 정착한 남려대륙의 초창기야 화기가 없고 냉병기 일색이라 생각조차 않았겠지만 이미 화기가 뿌리 깊게 정착한 현 북려 개척 상황에 ‘민병대’가 총기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일 겁니다.
요즘 ‘그 나라’가 계속 남의 문화를 지네나라 문화라 우겨대는 꼴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갓에 대한 설명이 조금 긴 것은 이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