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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144화 (144/653)

가지치기(2)

현 고려의 예법에 따르면 종친은 부당(父黨)기준 군주의 8촌까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성종 해정은 역대 황제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자식을 보았다.

무려 열한 명의 아들을 생산한 것.

중전과의 사이에서 두 명, 후궁들과의 사이에서는 아홉 명이었다.

태자였던 정종(즉위하진 않았으나 사후 추존되었다.)이 제위에 오르기도 전에 죽고 갓난아기였던 해윤만이 남았을 때, 후궁 소생 차남과 삼남이 역모를 꾀한 적이 있었다.

능력(훈요 128권을 읽고 대답할)도 되지 않았는데 탐욕은 심하고 방탕한 부류들이라, 상민은 그들을 처단하고 파남에 귀양을 보냈지.

그들의 일가는 황실 족보에서 삭제되었으며 일반인 신분으로 강등되었다.

나머지 황자들은 당시 상민의 능력과 빠른 일 처리에 전부 고개를 숙였었고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해우석(解遇奭)은 그 나머지 황자들 중 하나의 핏줄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현 황제 해광의 육촌이 되는 셈.

해광이 조금 늦게 태어난 축에 속하니 둘의 나이도 비슷하게 젊었다.

육촌은 이 시대에선 몹시 가까운 혈연관계였다.

게다가 황위 계승서열에서는 더욱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았다.

태상황 해윤은 형제가 아예 없었다.

황후 안씨와의 사이에서 본 다섯 자식들은 해광을 제외하면 전부 딸이었다.

그러니 현 황제 해광이 만약 불운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면 다음 제위는 아마 이런 육촌들에게 돌아갈지 몰랐다.

이제 막 국본이 태어나긴 했지만, 갓난아기라는 존재는 몹시 취약하니.

실제로 상민 또한 만일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이들 중 영특한 자를 제위에 올릴 계획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황족들의 위세는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권력자들이 황족들의 계승서열을 따지며 권위를 찾을 때, 민간에서는 그런 다른 세상 이야기들보다는 황족들의 몸에 흐르는 피 자체의 고귀함에서 권위를 찾았다.

숭배받는 피.

오현제(해윤을 포함한)의 치세에 확립된 황실의 절대적인 권위는 신민들에게 거대한 존경심을 불어넣었다.

큰 성공은 있었더라도 큰 실패는 없었던 태평성대를 이끈 군주들.

당연한 일일 것이다.

태조 미륵설이니, 태조 쿠쿨칸설이니, 민간에는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황실 스스로도 자신들의 핏줄이 두 마리 용에 근원한다고 했었으니까.

물론 그들이 고려의 법 위에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태조 때부터 원칙상으론 법의 적용에는 성역이 없다 공표했으니.

그러나 결국은 법 또한 사람이 집행하는 것.

아무래도 개인적인 사견이 들어갈 확률이 농후했다.

― 땅 땅 땅.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하오!”

해우석 사건의 판결이 내려졌다.

중앙에 앉아 있던 집법성의 법관이 아무런 표정 없이 나무망치로 사건이 종결됨을 알렸다.

원리원칙에 충실한 그는 혐의만으로 사람의 죄를 판단하는 우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다.

적법절차라는 것은 이미 과거부터 확립되었던 제국법의 기조였다.

옛 고려가 그러했고, 지금의 조선이 그러고 있으며 또한 동시대의 다른 나라들이 혐의만으로 사람을 집어넣고 몹시 혹독하게 고문하여 없는 죄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아 할 때, 적법절차를 따지고 피의자의 죄를 함부로 추정하지 않는 현 고려의 법원의 일 처리는 놀라울 정도로 진보되었으며 혁신적이었다.

당연히 여러 가지 제약은 여전히 존재했다.

시대가 시대였으니까.

수사기법과 증거보관 그리고 기타 수만 가지 한계 때문에 애써 찾은 범죄의 흔적이 위조되거나 사라지는 것도 있었으며, 증인의 말이 어영부영하거나 매수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처럼.

좌측에 있던 법관은 이 상황 자체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으나, 우측에 있는 법관은 슬그머니 웃으며 우석의 변호인과 시선 교환을 했다.

‘고맙소 형님. 나중에 내 한턱 크게 내리다.’

변호인은 호형호제하는 그 법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다음 자신의 옆에 있는 고객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축하드립니다. 영공전하(令公殿下).”

“크흠, 고생하셨소.”

우석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을 머금었으나 이내 표정을 지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가다듬었다.

경호병들이 그를 엄중하게 호위했다.

의기양양하게 법원을 걸어 나가는 그의 곁으로 변호인이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

“그래도 몇 년간은 감시의 눈길이 따라붙을 겁니다.”

사헌대가 눈에 불을 켜고 우석을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듣기로는 추밀원 또한 그렇다 들었고.

후자는 영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허헛 참. 이 사람을 뭘로 보고.”

우석은 불만 섞인 말을 내뱉었다.

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려는 중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었지만 증거가 부족하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풀려난 자들에게 감시인을 붙였다.

감시인도 복불복이라 매수를 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순전히 운에 달려 있었다.

“별 큰일도 아닌데 말이야. 그렇지 않은가?”

큰일, 즉 역모나 반란에 연루되어 있으면 풀려나더라도 가택연금을 피할 수 없었겠지만 그가 한 일이라곤 국가적 규모로 볼 땐 별 게 아니었다.

그 스스로도 별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에잉, 거 뭐 그리 비싸게 굴었는지.”

여염집 아낙을 폭행했다는 죄목을 받았던 그가 계속 투덜거렸다.

변호인은 죄를 계속 시인하는 듯한 그의 말에 발을 동동 구르며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우석의 입은 참으로 경망스러웠다.

“금전 몇 원을 쥐여준다고 해도 그리 싫은 티를 내니 내 화가 나는 바람에….”

― 다그닥 다그닥.

마차가 다가와 섰다.

종친들이 쓰는 마차에는 황족이라는 표식이 그려져 있었고, 번호판 또한 다른 마차들과 조금 달리 배열되어 있었다.

“이 몸은 성종 황제 폐하의 피가 흐르는 몸이란 말이다. 자신을 원한다면 마땅히 몸을 바쳐야 하는 것이 예의 아닌가?”

우석은 자꾸만 그 아낙을 떠올렸다.

얼굴이 반반하고 몸의 굴곡이 좋은 것이 극상의 쾌락을 선사해줄 수 있었을 텐데.

범하려는 것이 시도로만 끝난 것이 아쉬웠다.

그녀 자신의 목에 은장도를 들이미는 그 기백에 덜컥 놀라 도망간 것이 화근이었다.

어찌 제압하여 살을 섞은 뒤에 증거를 인멸했으면 이런 추잡스러운 꼴은 안 당하지 않았을까.

“그렇습죠. 그렇고 말고요.”

― 휴

변호인은 드디어 방음이 되는 마차 안에 들어온 후 안심이 되었는지 한숨을 쉬었다.

“다만, 전하. 앞으로는 조금 주의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뭬야?”

우석이 변호인을 노려보았다.

“그 아낙의 남편이 근위군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크흠. 그것은 그때 당시엔 내가 잘 몰랐느니라.”

그렇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병사의 가족에 대한 우대는 다른 자들보다도 좋았으며 그들의 아내를 건드리는 것은 삼별초부터 내려오는 이 고려 사회에서 최악의 금기 중 하나였다.

법체계가 정비되기 전까지, 병사의 아내를 탐한 자는 대부분 목이 잘렸으니까.

‘다른 아낙이었으면 금전을 흔드는 순간 알아서 다리를 벌렸을 텐데.’

“여봐라!”

입맛을 다신 우석이 마부에게 말했다.

“오늘은 내 이 누명이 벗겨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친우들과 거하게 회포를 풀 것이다. 청루 거리로 가거라!”

* * *

마부는 익숙하게 마편을 잡고는 속력을 내었다.

주변의 마차들이 알아서 비켜주는 것이 마부에게도 묘한 쾌감을 주었다.

역시 이 황실 종친의 표식만 있으면 앞뒤로 거리가 잘 유지된단 말이야.

마차는 여유롭게 창양의 거리를 달려나갔다.

청루까지 가는 길은 익숙했다.

청루는 현 고려의 여악(女樂)을 뜻한다.

청루(靑樓)라 함은 말 그대로 푸른 기와로 만들어진 집이란 소리였는데, 처음에는 그저 중의적으로 화려한 저택을 뜻하는 이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기생집이라는 명칭으로 변질되었다.

물론 여전히 화려한 것은 같았다.

청루에 출입할 수 있는 자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고관대작이나 황족들, 그리고 저명한 인사들과 부유한 상인들만이 들어올 수 있을 뿐.

범인의 신분으로는 들어오는 것조차 꽤 힘들었다.

이것도 매독의 영향이었다.

철저하게 관리된 신분만을 받는 것.

그러나 무분별하게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하는 것은 어찌 되었든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청루 기생들이 전부 몸을 파는 자들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노래와 춤, 그리고 음악을 파는 자들이었지.

이들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권세와 금전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충분한 노력과 유대감을 쌓아 올려야 했지.

그 밑의 등급에는 홍루(紅樓)가 존재했다.

홍루는 예기와는 달리, 아예 다른 목적으로 찾는 곳이니 건물과 조명,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의 구조들이 조금 더 노골적이고 음란한 기색을 띠었다.

그 밑에는 이제 공창가(公娼街)가 존재했다.

대항해시대가 열린 지금, 바다와 싸워온 뱃사람들은 여성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부두 근처의 공창가를 가야 했다.

바다는 여전히 몹시 위험한 곳이었고 매일 사선을 넘나드는 수병들과 선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누가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에 나가겠는가?

이것은 불법으로 규정할 수 없는 필요악이었다.

게다가 민간에게 맡겨보았자 음지로 파고들며 매독의 전파지가 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고려는 그렇기에 이른 시간부터 공창제를 실시하고 있었지.

매독이 몇 번 일어나긴 했으나, 양지에서 관리되고 있었기에 그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창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청루, 설화루(雪花樓)는 연중 내내 대체로 온화하여 눈도 잘 보기 힘든 고려 창양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인기는 무척 좋았다.

고려 특유의 건축기법으로 지어진 이 고루거각은 이름처럼 흰 벽돌과 푸른 기와로 지어졌는데 건물의 외형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 그 층수가 무려 지상으로 오 층이나 되었다.

최신 공법을 수용하고 본관이 이전한 것도 근래의 일이었기에 층간의 소음이 적었으며 쾌적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도록 설계되어 가히 창양의 명물이라 할 수 있었지.

게다가 그 예기(藝妓)들의 질은 어떠한가.

향악과 고려가요는 물론 시조까지 술술 읊어댈 수 있는 이런 예기들은 춤도 잘 추었으며 얼굴 또한 몹시 아름다웠다.

“전하.”

번을 서고 있던 경비병이 우석을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일개 경비병이 얼굴을 바로 알아본다니, 얼마나 우석이 설화루를 뺀질거리며 드나들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렷다.

“내 벗들은 안에 있는가?”

“이미 와 계십니다.”

“좋아.”

우석이 그를 지나치려 하자, 경비병이 그를 제지했다.

“…일단 신체검사를….”

그러고 보니, 재판 기간 동안에는 행실에 주의하라는 부친의 명령에 한동안 이곳에 오고 가지 않았지.

덕분에 이 상황이 꽤나 낮설다.

“크흠. 알겠네.”

우석은 입구 좌측에 마련된 탈의실로 마지못해 걸어갔다.

따라 들어온 경비병 앞에서 훌렁훌렁 탈의한 그는 자신이 어떠한 질환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후 다시금 의복을 정돈하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화려한 방에 올라간 그가 문을 열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앉아 있었다.

“오셨습니까!”

부유한 상인의 자식들과 고관의 자제들 중 내로라하는 탕아들이 한가득 모인 자리에 우석은 성큼성큼 상석에 앉았다.

전형적인 쥐상의 사내 하나가 재빨리 그의 자리에 있던 술병을 가지고 그의 빈 술잔에 공손히 잔을 따랐다.

우석이 오만하게 코를 씰룩이며 그의 잔을 받았다.

그가 잔을 높이 들자, 다른 자제들이 모두 다 같이 외쳤다.

“실로 경하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정원후(定遠侯) 우석은 국본과 자신의 아버지를 제외한다면 제국 계승 서열에 가장 가까운 순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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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고려는 푸를 청의 청루를 예기로, 붉을 홍의 홍루를 창기로 분류합니다.

현 고려 종친들은 친왕을 포함하여 공 후 백의 모든 경칭은 영공전하, 혹은 전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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