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105화 (105/653)

중려대륙(2)(지도 첨부)

이 ‘이츠코우아틀 팽창기’는 북려대륙(치치멕강 이북)의 정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 치치멕강 부근과 북려대륙 건조사막기후에 걸쳐 살던 아파치계가 그들을 마주했다.

그들 또한 전투적인 민족으로 명성이 높았던 만큼, 싸움 한 번 안 해보고 물러나려 들진 않았다.

그러나 격차는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전사의 숫자와 무기 기술 또한 비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파치계는 같은 민족성을 공유하고 있더라도 정치적으로 전혀 통일이 되지 않은 민족들.

그들은 호기롭게 공격했으나, 비참하게 지리멸렬했다.

저항하는 부족은 전부 그 자리에서 씹어 먹혔고 항복한 자들은 인간 목장에 들어갔다.

치치멕강 하류의 아파치계, 리판족이 멸망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다른 아파치계의 민족들은 강 상류로 조금씩 도망갔다.

상류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건조사막기후이니 저들도 굳이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었다.

두 번째는 카도 계의 민족들이었다.

치치멕강 이북부근부터 미시시피강 서쪽까지 점유하며 살던 그들은 순식간에 동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어찌 항거할 수조차 없었다.

불안에 떨던 그들은 이츠코우아틀 틀라토아니의 건강이 악화되며 아즈텍의 팽창에 제동이 걸리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 * *

이츠코우아틀은 큰 강역을 획득했으나 정작 본인은 영광을 누리기 위해 테노치티틀란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후아스텍의 도시에서 병으로 쓰러졌다.

임종 직전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불러놓고 말했다.

이츠코우아틀은 독실한 종교인이었다.

“신들을 노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위한 제물은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만 해.”

“알겠습니다. 틀라토아니시여.”

“미나미틀란강 남쪽으로 뻗어가지 마라. 그곳은 빽빽한 열대우림이며 환경이 좋지 못하다. 또한 그곳에는 싸움에 능한 전사 수천이 우리 못지않은 무기를 들고 숲에 잠복하고 있으니….”

검은 숲의 재규어들.

먀아인들을 경계하라는 말에 후계자는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삼촌.”

이츠코우아틀은 죽음의 문턱에 도달했으나 그래도 자신의 혈족 중 가장 똑똑한 이를 바라보고는 한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몬테수마(Motecuhzoma Ilhuicamina), 네가 우리의 제국에게 영광을 가져다주기를.”

몬테수마 1세가 이츠코우아틀 1세에 뒤이어 아즈텍의 틀라토아니에 올랐다.

그는 선왕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종교인이었다.

신들을 만족시켜야만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는.

이츠코우아틀은 정복전쟁을 하며 치치멕강 부근에 농장을 지어 놓았다.

이곳은 비옥하기로 치남파 농법을 쓸 수 있는 텍스코코 호수가 존재하는 테노치티틀란과 비교할 수는 없었으나, 재배 환경은 더욱 안정적인 경향이 있었다.

이 시기 아즈텍의 인구를 부양하고 있던 테노치티틀란은 냉해와 홍수라는 재해를 번갈아 가며 겪고 있는 중이었다.

새로운 틀라토아니는 테노치티틀란에 내린 신들의 진노를 풀어야 했다.

북부의 농장은 냉해로부터 안전하니 신들께서는 그들이 북부로 올라가기를 바라시는 것이 틀림없었다.

내부의 혼란과 기근에 대한 해답을 끊임없는 정복이라고 생각한 몬테수마는 조금의 숨을 고른 이후 다시금 북쪽으로 뻗어 나가기로 다짐했다.

이때가 개천 163년(CE 1440) 초의 일이었다.

* * *

2일 10월 AD 1440

누벨 오를레앙

오를레앙 기사단국

오를레앙 기사단국은 1435년 건립된 나라였다.

그들은 프랑스 백년 전쟁에서 활약한 잔 다르크와 그녀 휘하의 무장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로마 교황청의 비호 아래, 그들은 많은 지원을 받았다.

에우제니오 4세는 자신이 베네치아 출신이기에, 제노바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제노바, 카스티야, 고려로 이어지는 무역의 흐름을 어지럽힐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창 진행되고 있는 대오스만 십자군 때문에 제대로 서방십자군을 선포하지는 못했지만, 여력이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서쪽으로 넘어갔다.

본디 정착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초기 투자가 필요했다.

파종을 할 때까지 꾸준한 식량과 안정된 치안.

치안이야 기량이 출중한 기사가 널려 있는 오를레앙이었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식량은 큰 문제였는데.

남쪽의 대륙으로부터 유입된 신대륙의 작물들, 감자(프랑스어: Goamja, Gamza)와 고구마(프랑스어: Goguma)들은 이 상황에서 무척 좋은 효과를 발휘했다.

감자가 유럽으로 어떠한 경로로 전파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기 자체는 유럽과 고려가 처음으로 조우한 그 시점이라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본디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작물들을 외부로 유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당연한 소리였다.

전략적 이유도 있었고, 지적 재산권을 주장할 권농서와 농무부도 피가 거꾸로 솟구칠 테니까.

하지만 고려와 카스티야가 마주한 직후 이미 감자는 유럽으로 달아났다.

한번 건락(치즈)감자를 먹게 된 카나리 대공 후안 1세는 태생이 프랑스인답게 미식가였고 상민과의 연회에서 맛본 건락감자의 아름다운 맛을 도저히 잊지 못했다.

잠자리에서까지 그 맛을 떠올리며 뒤척거리던 후안 1세는 마침내 귀중한 거래 상대인 고려를 향해 소소한 음모를 꾸몄다.

고국으로 돌아갈 때가 다가오기 전까지 그는 고려의 주방장과 사적으로 친해졌다.

헤어지기 전날 밤 후안은 주방장에게 진탕 술을 먹였고, 몰래 부엌에 들어가 파종할 수 있는 크기의 작은 감자를 자신의 엉덩이에 넣고 숙소에서 빠져나오는 것에 성공했다.

조금 더러운 방식의 프랑스식 문익점이 된 그는 그 감자를 돌아가는 배 안의 화분에 심었고 애지중지하며 기른 덕분에 잎사귀에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채로 카나리 제도까지 도착했다.

이 사실은 세계의 영원한 비밀이 되었다.

심지어 상민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카나리 대공 후안 1세가 제정신이라면 자신의 일화를 글로 남기지는 않았을 테니까.

한참이 지난 이후에도 상민은 언제 어떻게 감자가 유럽에 전래되었는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는 물론 전 세계의 학자들 또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 수 없을 것이었다.

* * *

축복받은 작물 감자는 카나리에서 카스티야로, 카스티야에서 프랑스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프랑스인 잔은 이 감자를 북려대륙의 정착지에 심었지.

효과는 굉장했다.

개간이 덜 된 땅에도 잘 자라는 작물 덕에 한 시름을 놓게 된 그들은 천천히 기세를 가다듬었다.

견고한 목책을 세우고 토성을 쌓아 화포를 배치하니 주변의 원주민들은 얼씬도 하지 못했다.

이제는 남쪽의 대적을 마주할 순간.

하지만 그녀는 최근 들어온 보고와 멀리서 누벨 오를레앙을 찾아온 사절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단장님.”

“벌써 회의 시간인가요?”

그녀에게 말을 건 자는 질 드 몽모랑시―라발(Gilles de Montmorency―Laval)이었다.

유능한 장군인 그는 백년 전쟁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워 촉망받는 미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지와 가산을 처분하고 이곳으로 넘어와 아직 황량하기 그지없는 누벨레의 백작이 되었다.

사치스럽고 방탕한 성격에, 꽤나 가학적이라는 소문도 들렸지만 그는 적어도 그녀의 아래에서는 상당히 고분고분했다.

그 눈동자에 어떤 감정이 서려 있는지 정도는 종교와 전쟁 이외의 분야엔 무관심한 그녀라 할지라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녀는 항상 그래왔듯 가뿐히 무시했다.

“제가 조금 일찍 왔습니다.”

“뭐 하러?”

“샤를이 저를 프랑스 원수(Maréchal de France)로 삼았답니다.”

그는 약간 까딱대며 지휘봉으로 가볍게 그의 손바닥을 때렸다.

“축하해요.”

그녀는 지도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다소 무미건조하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에 애가 탔는지 질이 헛기침을 하며 그녀에게 지휘봉을 내밀었다.

“제 공은 아닌 듯해서, 단장께 지휘봉을 가져왔습니다.”

“왜 당신의 공이 아니죠?”

잔은 다소 의아해하며 물었다.

“일 드 프랑스를 탈환한 것은 엄연히 질 당신의 공인데.”

“단장께서 직접 사방을 포위하지 않으셨으면 이루어 낼 수 없었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진심을 느낀 그녀가 약간 머뭇거렸다.

“제가 가지기엔….”

― 끼이익

회의 직전이기에, 에티엔 드 비뇰(Etienne de Vignolles)과 장 포통 드 생트라이유(Jean Poton de Xaintrailles)를 비롯한 단원들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무 화려하군.”

에티엔은 얼굴을 씰룩대며 질이 내민 지휘봉을 바라보았다.

모든 전략은 잔이 세우고, 선봉은 언제나 용감무쌍한 자신이 행했는데 프랑스 원수의 자리는 가장 뽐내기를 좋아하는 놈에게 돌아갔다.

샤를의 간계가 분명했지만 받은 당사자도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대의 공에 걸맞지 않은 과분한 상이야.”

질이 한 호흡 늦게 화를 내었다.

“지금 뭐라…!”

성격이 뒤틀린 두 장군들 사이에서, 잔은 지휘봉을 빼앗듯 건네받았다.

가장 연장자인 장은 화가 난 듯한 그녀를 보고는 에티엔과 질 사이의 분쟁을 능숙하게 중재했다.

“그만들 두지?”

파견 주교 마티외까지 자리하자 무장들 사이의 소란스러움은 수그러들었다.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잔이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서쪽에서 계속 원주민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곳을 인도로 생각하는 멍청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디언이라는 명칭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뒤이어 장이 덧붙였다.

“남쪽의 적대적 부족에 의해 쫓겨 올라오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오는군.”

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 근방에 그리 많은 수의 원주민들이 있었습니까?”

직접 말을 타고 사방을 정찰했던 장본인이기에 질은 그 소문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인구가 가득 들어찬 중부 유럽에 비하면 이곳은 정말 놀랄 정도로 황량했다.

체계적인 농사를 짓는 자들도 없었고 모두가 야만인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토지의 잠재력은 대단했다.

“남쪽에는 꽤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해요.”

잔이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었다.

기반이 닦이고 최근 들어서야 정찰을 한 까닭에 그리 자세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근처 해안가는 전부 알고 있었다.

“몰려온 이들은 장의 영지 바깥에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 딱히 적대적이지 않다 합니다.”

누벨 오를레앙을 건설하며 기존의 원주민과 몇 번의 전투가 일어났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심지어 이 미시시피강 하류의 부족들과 서쪽의 부족들은 친척 관계라고 들었는데.

“오히려 도와달라 하더군요.”

도와달라?

싸울 때는 언제고, 지금은 또 애원하고?

“뭐, 받아만 주면 당장 기독교인이 되겠답니까?”

질의 빈정거림에 잔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력한 무위를 뽐냈던 프랑스 기사들의 위용은 주변의 부족들에게도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일면식도 없는 부족들은 물론 고향을 잃고 서쪽으로 떠났던 하류의 부족들까지 다시금 찾아와 예전의 원한을 잊고 보호를 자청하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에티엔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뭐, 어찌 되었건 우리에게 좋은 일이 아닙니까? 제 발로 이곳에 와 진실된 믿음을 믿겠다는데.”

개인적으로 싫은 인간이기는 하나, 질 또한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들이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도무지 위협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많은 수의 원주민들을 받아들이면 처음엔 다소 소란스럽겠지.

하지만 주교 마티외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그들을 개종시키고 나면 그들은 누벨 오를레앙과 자신의 영지 누벨레의 충실한 농민이 될 것이었다.

‘개종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귀중한 인력이다.’

가톨릭은 아직 약간의 순수함이 남아 있었다.

교황 에우제니오 4세는 포르투갈과 카스티야, 그리고 누벨 오를레앙에 의해 본격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개척 운동에 대해 칙서를 내렸던 적이 있다.

― 노예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오래 전에(Sicut Dudum)]라는 칙령은 인종을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노예제도에 대해 규탄하는 칙서였다.

특히 개종을 하는 자에 대해선 더욱 철저하게.

이 칙서는 당시로선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직 유럽이 노예제도로 엄청난 이득을 누리고 있지는 않았기에 독실한 기독교인인 교황은 올바른 칙서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칙서의 내용이 얼마나 효과가 있고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노예 무역의 선두 주자 포르투갈은 콧방귀를 뀌었고 카스티야 또한 은근히 무시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직은 기사수도회라는 본질을 지키고 있던 오를레앙은 그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우리의 적은 고려입니다.”

질이 단언하듯 말했다.

“우리의 선단이 ‘정체불명의 함대’에게 공격당한 일도 있지 않습니까? 선교사들도 잡혔지요.”

정체불명은 개뿔.

누군지 특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동예 혹은 고려.

하지만 그들이 알기론 동예라는 나라는 신성로마제국의 일개 제후 정도의 영향력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에티엔도 다소 삐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장 또한 말을 멈춘 뒤 잔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에, 좌중은 침묵에 잠겼다.

“그 선교사가 지금 누벨 오를레앙에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포로로 붙잡혔다 무사히 석방된 선교사를 통해 자신에게 전해져 온 서신을 다시금 읽어내렸다.

이국적인 그 두루마리에는 고풍스러운 필체로 프랑스어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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